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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가
안겨준 사연(事緣)
이 규 석 (짧은 소설)
무서운 속도로 달리던 오토바이가 삐~익 소리의 금속음을 뒤로하며 급브레이크를 잡는다. 포장도로가 아니다. 흙먼지를 몰고 다니는 비포장도로에서는 위험한 행동이지만 머리에는 하이-바를 쓴 중무장을 한 차림이라선지 좀은 과격한 동작이었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사람은 길가에 바람타고 뒹굴러 날리는 빈 시멘트 봉지를 주어서 오토바이 꽁무니 짐받이 고무 밧줄 안으로 끼어 넣는다. 70년대 초기의 개발붐은 경부고속도로가 생겨 서울과 부산이 한나절 생활권으로 들어왔다. 중공업의 육성과 산업 활동으로 인하여 생산성과 경제적 효과에 있어 고도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효과를 얻어내고 있었다. 온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져 있던 시기였다. 그 성장속도는 하루 밤을 자고나면 새로운 것이 태어나듯 훈풍에 돛 달아놓은 것처럼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국민들 가정마다 소득증대사업에도 활력이 붙어서 새마을 사업을 국책으로 삼아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온 국민이 찌들고 어려웠던 가난에서 벗어나 사는 맛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어디를 가서 어떤 일을 하던 자기가 열심히 일을 하면 얻는 것이 많았다. 지금처럼 일을 하면서 직장을 골라서 취업을 한다든지 3D 업종이라 기피하는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할 일이 없어 비능률적인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개발 붐에 여파를 타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어느 만큼의 수입은 얻어지는 것을 보장할 때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운영하던 사업을 실패로 정리했다. 고향으로 내려온 것은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제삼자로부터 영업적 손실을 크게 본 것도 귀향에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잘 운영하고 있던 업체를 관리부실로 하루아침 된장국에 밥 말아먹듯이 집어 삼키면서 말이다. 가슴에 눈물을 철철 넘쳐나게 담아서 시골집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조금은 생소했지만 그래도 고향이라는 포근한 어휘 속에 끌려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직장을 잡는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직장에 취직을 하는 것보다 장사를 하자는 쪽으로 무게를 두었다. 억매인 회사생활보다 내 생각대로 영업을 하면 더 큰 부(富)를 짧은 시간에 창출(創出)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여러 회사를 상대하는 고물장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고향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눈초리는 엄동설한에 배고픔을 당하는 것처럼 매정할 정도였다. 서울에서 크게 성공을 했다고 자랑하더니만 머리까지 돌았나 봐! 아니면 어떻게 잘못된 것이냐고 남에 말하기 좋아하는 부류들이 이상스런 말들을 하는 웅성거림이 보였다. 부모님들까지도 내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신다. 크게 말다툼까지 하면서 이해 시켜드리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누가 뭐란다고 생각이 바뀔 것이라면 처음부터 시작을 하지도 않았다. 며칠 동안을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깊은 상념에 사로잡혀 고민을 했다. 이미 결정한 결심은 확고한 것이었다. 이제 주사위는 내 손에서 떠났다. 물건을 사거나 줍기 위하여 공사 현장이나 각 기업체에 침투 작전이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극비리에 정보 입수작전이 시작되었다. 어느 곳에 어떤 회사가 얼마의 물량이 있느냐가 문제였다. 어떻게 접근하는 루트가 있는가를 면밀하게 살피는 일은 집에 돌아온 후에 필히 거쳐야 할 하루에 일과표가 되었다. 좋은 생각은 마음을 윤택하게 하는데 매우 큰 선물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오늘은 이쪽 방향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돌았으니 내일은 저쪽까지 모래는 각 지역 축사(畜舍)나 돼지막사 그리고 양계장을 돌아다닌다는 계획이다. 빈 사료포를 사야한다는 것에만 머릿속은 짜여 진다. 도움이 되는 것은 우선 어느 회사든지 누구를 만나도 안면이 있고 선후배들이 있어 대화를 시작하기가 좋았다. 역시 고향은 엄마의 손길처럼 따스하고 포근했다. 내 진실을 아는 마을 사람들도 하나같이 도와주려고 하는데 용기를 얻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느티나무고물상의 성공 열쇠를 반드시 얻고 말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특수하게 제작한 자전거를 가지고 출발한지 1개월 정도 되었을 때 농협에 근무하던 중학교 후배가 나를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면서 약속장소로 나갔는데 커다란 술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술상이 차려진 방으로 안내를 받고 들어가니 진수성찬(珍羞盛饌)이 차려져있었다. 이미 후배는 자리에 와 있었다. 내가 들어가니 웃으며 나에게 선배님! 어서 오세요! 라고 인사를 했고 나도 초대해줘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철철 넘치듯이 따라진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가고서야 후배는 입을 연다. 선배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서 사업에 실패를 하고 고향으로 왔다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는 것이다. 마침 자전거에 물건을 잔뜩 실고 힘들게 끌고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무슨 사연이 있구나 생각했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그 어려운 학비를 들여가며 서울로 유학을 보내 공부를 할 만큼 했는데 선배가 너무나안타까워서 만나자고 했으며 술이나 한잔 같이하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고맙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다. 사업이 잘되지 않아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할 것이니 도와 달라고 했다. 한참을 묵묵히 듣고 있던 후배는 나는 선배님 용기에 놀라서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허기야 요즘은 대학을 나와도 먹고 노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물며 청소 미화원이라도 서로 취업하려고 한다는 것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들었지만 어려웠던 그 시절이다. 더구나 대학물을 먹은 사람이 고물장사를 한다는 것은 꿈을 꾸기도 어려웠고 생각조차 하지도 않았을 때였다. 사실이 그랬다. 신설회사도 많았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며 삶에 생활이 좋아져가는 그 시절에 기업체들이였으니까! 인근지역을 제외하고 우리 지역만 해도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굴지에 기업들이 10여개 업체나 들어와 있었다. 근무하는 종업원 숫자도 몇 만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후배하고의 술잔을 어느 정도 주고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선배님 오토바이 면허가 있나요! 느닷없이 후배에 질문에 아니 왜? 내가 선배님에게 오토바이를 한 대 드리려고 묻는 거란다. 며 오토바이 열쇠를 상위에 내어놓는 것이다. 이 사람아! 내가 돈이 어디 있어 오토바이를 사겠는가? 나는 한마디로 거절에 의미를 부여했다. 후배는 그냥 드리기는 뭣하고 한 달에 만원씩만 9개월만 달란다. 오토바이는 자기가 타던 것을 잃어버려서 새로 구입을 했는데 3일전에 잃어버렸던 것을 경찰서에서 찾아왔다는 것이다. 팔려고 생각하다보니 선배의 안타까운 소리를 직원에게 들은 일이 있었는데 마침 자전거에 물건을 잔뜩 실고 힘들게 지나가는 나를 보았다는 것이다. 선배가 저런 일을 꼭 해야 하는가? 그런 저런 생각 끝에 그래서 선배인 나에게 그냥 줄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 내 스스로도 놀랬지만 나는 한편으로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는 후배가 있다는데 적잖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비싸지만 오토바이를 갖고는 싶었다.
돈이 없어 구입할 엄두도 못한 것이었는데 하며 고맙다는 말을 다시 몇 차례 했다. 그렇게 해서 생긴 오토바이는 내 자산 1호가 되기도 했지만 사업에 활력이 붙어 하루가 다르게 번창(繁昌)하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리는 것 같았다. 우선은 기동력이 확보되니깐 몇 배의 영업적 매상이 보장되었다. 거래 선이 많이 늘어났다. 그 후 나름대로 비굴하지 않게 장사를 하는 비법(秘法)을 터득했다.그것은 행(行)하는 자에 주장이지만 바로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같은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영업을 하는지 그 근황에 대하여 정보를 입수했다. 아침 8시경 수원에서 짐자전거를 타고 3-4명이 함께 신갈 쪽으로 매일 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에 물건을 어디에서 어떻게 산다는 것도 알아냈다. 나는 그들을 상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내가 먼저 움직이면 내게 틀림없이 승산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옛날 말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다. 결국은 적의 동정과 정보를 미리알고 그들이 작전을 어떻게 활용한다는 것을 알면 백번 싸워 백번 다 이긴다. 지략을 미리 짜서 현장싸움에 대처할 수 있기에 말이다. 나는 그들이 움직이는 길목에서 갈만한 곳을 미리 짚어 먼저 돌아다녔다. 10원에 사야 할 물건을 11원에 사기도하고 계약금을 선금으로 주기도 하는 상술을 써 가면서 그들보다 앞서 행동했다. 며칠이 지난 후 그들을 만났다. 여기는 내가 영업을 하는 지역이라는 것을 틀림없이 강조하며 알렸다. 나는 분명하게 말하면서 지금까지 이쪽에 다니면서 장사를 잘 하셨으니 이제부터는 물건을 사고 싶으면 우리 영업소에 와서 물건을 당신들이 돌아다니면서 사는 가격에 가져가라고 했다. 그들은 놀래면서 그게 가능하겠냐고 했지만 그들은 얼마 전부터 소식을 듣고 영업 전향을 검토하게 됐다는 말까지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영업은 2년 사이에 커다란 점포로 성장했다. 주변에 있는 기업체에서는 담당자들이 선배나 후배들이 많았다. 물건을 구입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나에게 호의적으로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데 크나큰 의미가 있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했다. 직접 물건을 가져오기도 했다. 내가 거래하던 큰 회사에서 처음 물건을 가져 올 때의 이야기 한토막이다. 이른 새벽 먼동이 틀 무렵 집을 나서 큰 회사에 들어가서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나는 물건을 수집하기위하여 회사 안에서 몇 군데를 돌아다녀 각종 폐품을 정리한다. 파유리를 수집하는 곳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파유리를 섞어 각종 잡 유리를 만드는 것보다 각각 필요에 따라 색을 구분하여 분리를 한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하루는 인근도시에 있는 파유리 도매상을 찾아갔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색깔 별로 분리하면 값을 훨씬 많이 쳐서 가져간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부터 회사에 들어가 작업을 시작했다. 커다란 기계를 수입하여 오면서 포장했던 나무 빈 박스를 가져다 놓고 흰 유리, 검은 유리, 잡 유리를 담아 달라고 큼지막하게 글씨를 써놓았다. 회사에서도 적극적인 협조로 작업이 한결 쉬워졌다. 일주일에 180kg이 넘는 무게를 4가마정도 가져다가 느티나무 밑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지만 물건 값이 싼 관계로 관심밖에 일이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유리가 담겨진 가마 숫자가 280가마이상 쌓여갔다.
가을철 농협 뒷마당에서 벼 수매현장을 연상하듯 가마의 숫자는 바로 금전하고 직접 연결되는 것이다. 장사는 운(運)때가 맞아야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이었다. “세월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결코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는 말이 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값이 싸다고 돌아보지 않던 물건 값을 언젠가는 제 몫을 할 때가 있다는 비유(比喩)적인 말을 어려운 작업을 통해 가져오는 유리제품에게 하고 싶어서 한 말이다. 그러나 바로 내가 운(運)이 좋았는지 효과는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적인 경제 한파(寒波)인 1차 석유파동이 우리나라에도 불어 닥쳤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로 인하여 매스컴에서는 연일 톱뉴스로 전파를 띄웠다. 세계적인 어려움에서 헤어나기 위한 노력은 대단했지만 나라마다 참아낼 수 있는 인내(忍耐)의 한계는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전쟁을 방불케 하듯이 정신적으로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유리의 원료는 석유제품이다. 그와 연관이 있다는 초등학교 자연시간을 떠 올리는 생각을 빨리 감지하며 알아들을 수 있었다. 파동 후 처음에는 파유리 값이 kg당 15원을 준다고 말 하는 것을 나는 팔지 않겠다고 말했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그들이 와서 kg당30원을 제시했다. 280원이 넘을 때까지는 오지 말라고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런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상태로 계속 영업하는데 가일층 노력하면서 불황을 이겨내려고 애를 먹었다. 그동안 유리상에서 몇 차례 사람이 왔다갔다고 말을 들었으나 묵살해버렸다. 뉴스에서는 이제 어느 정도 석유파동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영업은 그런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 더욱 많은 이익을 산출해낸다는 것을 알았다. 날이 갈수록 영업이익이 무척 많이 늘어났다.
그 당시 우리처럼 회사를 상대하는 고물상영업점은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새벽에 돌아 다녀도 물건을 공짜로 수집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종이 박스를 사고파는 세월이었기에 제지공장에서 파지를 구입하는 값이 좋았다. 그런 시간이 흐름에 관계없이 회사에 들어가 작업은 고정으로 하기 때문에 유리제품의 량(量)은 계속 늘어났다. 그와 비례로 내 마음에 풍요(豊饒)도 점점 커져만 가는 것이었다. 드디어 물건을 팔기로 한 D-day가 결정되었다. 내일 오후에 물건을 보러온다고 크게 수집하는 대상 쪽에서 전화가 연결됐다. 이미 소식을 듣고 오는 사람들이기에 만나면 쉽게 연결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파유리 평균값이 kg당 250원씩 21톤 0577kg은 어마어마한 숫자다. 당시 거래되는 부동산집값으로 5채를 사고도 남을 돈이었기에 말이다. 그때 나에게 큰돈을 벌게 했던 유리무게의 숫자를 잊어버리지 못하여 지금 쓰고 있는 내 핸드폰 전화번호와 끝자리를 연관 시켰다면 우연은 아니다.
내가 쉽게 만질 수 있는 금액도 아니지만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던 물건에서 생각지도 않은 큰돈을 얻었기에 말이다. 그것이 내게는 대도시에서 낙향하여 얻은 첫 번째 귀중한 선물이었다. 그 동안 눈주름으로 멸시 받으며 마음속으로 눈물방울을 수없이 떨어트리면서도 잘 참아준 첫 번째 선물이었기에 말이다. 더욱 열심히 노력을 했다. 좋은 결과로 4년을 넘기며 영업은 계속했다. 나는 다른 업종으로 전향키로 마음을 먹었다. 우선은 주변 사람들의 성화가 불 같아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고물상영업을 계속하도록 그냥 놔두지 않았다. 나를 아는 친지들의 무시하는 말 틈새에 늘 불쾌했지만 참아내기 위한 나 자신과의 싸움도 인내(忍耐)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어려운 심경(心鏡)을 현실을 회석시키기 위하여 고향지역에서 각종 지역 발전단체 모임에 가입도 했다. 봉사 단체인 국제(國際)로-타리클럽 365지구 신갈지역 로-타리클럽을 창립하는데 적극 참여했다. 새벽이면 동네 선후배들 모임인 조기축구회를 만들어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신갈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건강을 위해 달음질을 쳤다. 신갈 테-니스클럽에 가입도 했고 의용소방대에 대원으로 지역 발전에 한몫을 하면서 흥건히 고인 눈물 속에 산 4년에 세월을 씻어내면서 참아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식으로서 구름이 잔뜩 덮여 한줄기 소나기라도 쏟을 것만 같았던 암혹의 시간이었다. 앞을 보기 힘든 세월 속에 참아내기 의한 인고(忍苦)에 긴 시간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때론 가슴으로 운다. 결코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다. 기쁨을 맛본다는 것 자체가 바로 인간이 좌절을 이기고 성공의 신화적인 행동이었다. 그래! 아픈 마음을 지우려고 우는 것이다. 아파진 세월 앞에 무릎을 꿇고 내게 모진 고난(苦難)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주신 부모님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믿고 사랑으로 보듬어주신 것이 큰 몫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줄줄이 딸린 어린 자식들을 보살피며 불평 한마디 없이 뒷바라지를 해준 아내의 사랑이 그 씨앗을 잉태했다고 보는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어머니(94세)를 짜증하나 섞여내지 않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목욕을 시켜드리면서 수발(鬚髮)해드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겠는지 말이다. 가뜩이나 노안에 치매로 세상 일을 모두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시어머니를 보살펴야하는 외며느리의 고충! 피곤한 모습을 내 자신이 알아줄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커다란 현실에 처한 덕목(德目)이 되며 아내 사랑으로 보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많은 세월을 함께하면서 행복으로 충만(充滿)하게 가정을 이끌어 자식들 아무 탈 없이 성장하도록 돌봐주었고 출가시켜 준 아내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이제 우리 부부에게도 생(生)을 갈라놓아야할 시간이 점점 가까워진다. 그 남아진 시간만이라도 행복한 미소가 끊어지지 않게 받아드릴 수 있도록 가정에 화목을 위하여 사랑하고, 이해하고, 믿음과 소망(素望)으로, 교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색칠을 진하게 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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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아침마당에서 손자병법을 역설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강사가 하는말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하더군요
그런말도 상용이 되는지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만나고 싶어 자꾸 글을 올리는데 신통찮아요!
남에 글을 읽어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ㅎㅎㅎㅎㅎㅎㅎ벙어리 냉가슴이 이거라면
자주 좋은 글 올려 주시는데 옆 짝이 침묵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분발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