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렴동계곡
백두대간종주를 같이했던 산우를 우연히 터미널에서 만나고 이런 저런 지나간 산이야기를 하다보니 버스는 세시간도 안 걸려 용대리에 도착한다.
널협이골로 들어가는 잡초 사이로 뚫려있는 산길을 관심있게 바라보다 버스정류장에 내려 구비구비 언제나 맑은 계류가 흘러내리는 백담계곡을 올라 간다.
20여년전만 해도 가을을 만끽하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호젓했던 자갈길은 이제 시멘트로 덮혀 있고 갈길 바쁜 산객의 발소리만 저벅저벅 도로를 울린다.
수렴동 계곡에는 일주일 사이에 성큼 밑으로 내려온 단풍들이 빠알갛게 물들고 있고 산에서는 많은 등산객들이 내려오며 인사를 건넨다.
봉정암을 세번 오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무지막지한 돌길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운동화를 신고 어설픈 복장으로 내려오는 할머니들을 보며 아직도 늙어가는 자식의 건강을 비는 어머님을 떠 올린다.
새파란 하늘에는 구름 몇점 떠있고 단풍잎이 흔들거리는 넓은 소에는 물고기들이 까맣게 몰려있으며 과자봉지를 들고 있는 젊은 여자들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수렴동의 소)
- 곰골
처음 만나는 길골 계곡을 지나치고 두번째 철계단을 건너기 전 왼쪽으로 꺽어져서 제법 뚜렸한 숲길을 따라 계곡으로 들어간다.
한적하지만 때 묻지않은 잡목길을 따라가면 돌무더기들이 쌓여있는 화전민터가 줄지어 나타나고 곳곳에 야영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한동안 뚜렸하던 길은 계곡과 만나며 없어지고, 희미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계곡위로 올라가다 물소리도 작아지고 아무래도 저항령쪽으로 가는 것 같아 되돌아 온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붙으니 밑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길과 만나고 오래된 산악회의 표지기도 한개 보인다.
잡목들과 덤불들을 헤치며 올라가면 제법 규모가 큰 폭포가 처음으로 보이고 한동안 편안한 길이 이어지다가 계곡과 만나며 길은 슬그머니 사라진다.
(곰골의 맑은 소)
(첫폭포와 소)
(폭포)
- 모듬터
바위들을 건너며 계곡을 올라가면 저항령쪽에서 내려오는 지류들을 자주 만나며 붉은 색 단풍들로 예쁘게 치장한 담과 소가 줄지어 나타나고 세찬 바람을 맞으며 물결은 일제히 몸을 잘게 흔든다.
한동안 계곡을 따라가니 드디어 시야가 트이며 밋밋한 마등령이 모습을 드러내고 파아란 하늘밑으로 저항봉으로 이어지는 암봉들이 멋지게 솟구쳐 보인다.
최근까지 불을 피운 흔적이 있는 약초꾼의 모듬터를 지나면 계곡은 점점 좁아지고 큰 소를 오르면서 잡목들이 무성해진다.
넝쿨들을 잡아가며 이끼가 낀 미끄러운 절벽을 간신히 통과하고 날카로운 협곡들은 가파른 너덜지대를 올라 길게 우회한다.
물길이 끊어지는 건천지대가 나와서 이제 계곡이 끝나는가 했더니 다시 가느다란 물길이 나타나고 계곡은 점점 좁아지며 경사가 급해진다.
(저항령에서 내려오는 지류)
(단풍에 물드는 계곡)
(마등령)
(낙엽이 쌓여있는 깨끗한 소)
(단풍으로 치장하고있는 아름다운 폭포)
(모듬터)
(암반을 내려오는 계류)
- 마등령
협곡은 점점 험해지고 절벽을 피해 올라가다 보면 급하게 내려오는 물길이 나타나며 왼쪽의 수직사면으로 올라간 족적이 희미하게 보인다.
나뭇가지들을 잡아가며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는 가파른 절벽을 올라가니 길은 끊어지고 발밑으로 올라온 계곡이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키낮은 측백나무숲을 뚫고 관목들을 잡아가며 길도 없는 암릉을 기어 오르면 지능선과 만나고 잡목들 사이로 올라가니 이정표가 서있는 마등령 정상으로 나오게 된다.
계곡만 따라서 올라갔으면 샘터를 지나 안부로 나왔을텐데 족적을 따랐다가 고생만 하고 목적지에서도 약간 벗어난 꼴이 되었다.
돌탑이 있는 안부의 나무등걸에 앉아 점심을 먹고 낯익은 공룡능선으로 들어가니 단풍을 시샘하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며 땀에 젖은 몸이 떨려온다.
(세존봉)
(화채봉)
- 공룡능선
나한봉을 넘고 울긋불긋하게 물들어 가는 암봉들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며 쉬엄쉬엄 발길을 옮기면 대청과 중청이 우뚝하고 용아장성위로 하늘금을 가르는 서북주능선도 사뭇 역동적으로 나타난다.
희운각에서 오는 많은 등산객들을 만나고 바위에 기대어 힘들어 하면서도 담배를 물고있는 사람들을 지나 바윗길을 오르 내리니 위험구간에 밧줄을 설치하는 산악경찰들이 안간힘을 쓰고있다.
암봉을 휘돌며 가파르게 올려치는 긴 암릉길을 지나 1275봉에 오르면 천화대와 범봉으로 이어지는 암봉들이 멋지게 보이고 바람은 몸뚱이를 날려 버릴듯 거세게 불어 닥친다.
빗물이 흘러 내리며 미끄러웠던 절벽을 쉽게 내려와 설악좌골 진입로를 지나서 가야동으로 내려가는 수많은 갈림길들을 지나친다.
마지막으로 힘든 암릉을 올라 바람 거센 신선봉을 넘고 인적 끊어진 무너미고개로 내려와 참외 하나 깍고 소주 한잔을 마시니 단풍구경도 다 했고 설악동으로 빨리 내려가 집에 가는 일만 남았다.
(대청과 중청)
(공룡능선)
(천화대)
(1275봉)
(용아장성)
(신선봉)
- 설악동
무릎에 부담을 주는 돌밭길을 천천히 내려가 염주골을 지나고 양폭산장으로 내려가면 많은 사람들이 하산을 서두르고 있고 이제 날은 서서이 어두어져 간다.
랜턴을 켜고 끝이 없이 이어지는 철계단 길을 지나 반가운 불빛을 바라보며 비선대에 도착하니 7시인데 저녁 8시에 떠나는 시외버스를 타려면 발걸음을 급하게 서둘러야 한다.
어둠속에서 뛰듯이 설악동으로 내려가니 웬일인지 그 많던 택시가 한대도 보이지 않고 잠시후 도착한 시내버스를 타려다가 이번에는 잔돈이 없어 쫓겨난다.
간신히 잡은 택시를 집어타고 시외버스터미날에는 8시전에 도착하지만 단풍 인파로 표가 매진되었고 10시 심야버스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다시 고속버스터미널로 달려가 마지막 한장 남은 9시표를 끊고 찬 캔맥주 하나를 마시며 힘들고 탈도 많았던 설악산 단풍산행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