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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 시인
본명 姜洪基
전남 순천 출생 (1940년 6월 19일) 1962년 서울대학교 국문과 졸업. 1988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현대시운율연구' 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 「현대문학」지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임보의 시들 · 59-74』 『山房動動』 『木馬日記』, 『은수달 사냥』, 『황소의 뿔』, 『날아가는 은빛 연못』, 『겨울, 하늘소의 춤』『구름 위의 다락마을』 『운주천불』『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자연학교』『장닭설법』
논저
『현대시운율구조론』 『엄살의 시학』 충북 대학교 인문대학 국문과 교수 역임, '우리시회' 황동 중
--------------------------------------게시된 시------------------------------------
새들을 날개 위에 올려라 / 임보 물의 칼 / 임보 사람의 몸값 / 임보 바보 이력서 / 임보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林步) 바람들의 길 / 임보 귀거래별사(歸去來別辭) / 임 보 가시연꽃 / 임보 가두리 / 임보 울타리 / 임보 스승 / 임보 부치지 못하는 편지 / 임보(林步) 자작나무에서 돌배나무까지 / 임보(林步) 등잔 / 임보(林步) 가을 편지 / 임보(林步) 짐 / 임보(林步) 나무 / 임보(林步) 사슴의 뿔 / 임보(林步) 시월 / 임보(林步) 아들에게 주는 시 / 임보(林步)
새들을 날개 위에 올려라 / 임보
새는 날개로 허공을 받치고 떠오를 때 새다
새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 반짝이는 눈으로 지상을 응시할 때 새다
버려진 먹이를 찾아 인가의 주변을 서성거리거나
먹다 남은 먹이를 얻으러 육식동물의 곁을 어정거리는 놈들은 이미 새가 아니다
철원에 가서 겨울 독수리 떼를 보았는데
인간들이 던져둔 고기에 취해 검은 쉼표들처럼 빈 들판에
날개를 접고 있었다
상원사에 가서 고운 멧새들을 보았는데
방문객들의 손바닥에 올라 스스럼없이 모이를 쪼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새가 아니라 가금(家禽)
언젠가는 닭처럼 날개를 잃게 되리라
간악한 인간의 손들이여
새의 날개를 꺾지 말고
그들을 맑은 날개 위에 올려라
우이시 (2006년 7월호)
물의 칼 / 임보
대장간의 화덕에서 벼려진 굳은 쇠붙이만이 예리한 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로 가슴을 베인 적이 없는가?
해협을 향해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의 모서리가 아니라
몇 방울의 물
두 안구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방울도
사람의 가슴을 베는 칼이 된다.
사람의 몸값 / 임보
금이나 은은 냥(兩)으로 따지고 돼지나 소는 근(斤)으로 따진다
사람의 몸값은 일하는 능력으로 따지는데 일급(日給) 몇 푼 받고 일하는 사람도 있고 연봉(年俸) 몇 천만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한 푼의 동전에 고개를 숙이는 거지도 있고 몇 억의 광고료에 얼굴을 파는 배우도 있다
그대의 몸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알고 싶은가?
그대가 만일 몇 백의 돈에 움직였다면 몇 백 미만이요 몇 억의 돈에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몇 억 이상이다
세상에는 동장의 자리 하나에도 급급해 하는 자가 있고 재상의 자리로도 움직일 수 없는 이도 있다
사람의 몸값은 세상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가 결정한다
한국시학 (2005년 여름호)
바보 이력서 / 임보
친구들은 명예와 돈을 미리 내다보고 법과대학에 들어가려 혈안일 때에 나는 영원과 아름다움을 꿈꾸며 어리석게 문과대학을 지원했다
남들은 명문세가를 좇아
배우자를 물색하고 있을 때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란 현모양처를 구했다
이웃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강을 넘어
남으로 갔을 때 나는 산을 떨치지 못해 추운 북녘에서
반평생을 보냈다
사람들은 땅을 사서 값진 과목들을 심을 때 나는 책을 사서 몇 줄의 시를 썼다
세상을 보는 내 눈은 항상 더디고 사물을 향한 내 예감은 늘 빗나갔다
그래서 한평생 내가 누린 건 무명과 빈곤이지만 그래서 또한 내가 얻은 건 자유와 평온이다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林步)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林步) 아내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 때마다 내 앞에 가져와 한 숟갈 내밀며 간을 보라 한다
그러면 "음, 마침맞구먼, 맛있네!" 이것이 요즈음 내가 터득한 정답이다.
물론, 때로는 좀 간간하기도 하고 좀 싱겁기도 할 때가 없지 않지만―
만일 "좀 간간한 것 같은데" 하면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뭣이 간간허요? 밥에다 자시면 딱 쓰것구만!' 하신다.
만일 "좀 삼삼헌디" 하면 또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짜면 건강에 해롭다요. 싱겁게 드시시오." 하시니 할말이 없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고? 아내 음식 간 맞추는 데 평생이 걸렸으니
정답은 "참 맛있네!"인데 그 쉬운 것도 모르고….
바람들의 길 / 임보
언덕 위에 서면 바람들의 길이 보였다 바람들도 빛깔이 있었다 투명하지만 색유리처럼 맑고 깨끗한 빛깔이었다 감귤밭을 넘어온 남풍은 노오란 빛 전나무 숲속을 빠져나온 북풍은 청록빛 쪽빛 바다를 밟고 온 서풍은 남빛이었다 바람들은 들판에서 서로 만나 오색 실타래들이 꼬이듯 몸을 부비며 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바람의 실가닥은 풀리어 초가집 사립문 틈으로 슬며시 스며들기도 하고 어떤 가닥은 잠자는 송아지 코 속으로 조용히 빨려들기도 했다 문득 꺽꺽꺽 장끼 한 마리 숲을 깨고 솟아오르자 황 록 청 백 홍 오색 바람들이 소용돌이 치며 몰려와 눈부신 날개를 허공에 만들었다 주위를 가만히 살펴보았더니 이 어찌된 일인가 감귤밭을 향해서는 다시 황색 바람이 쪽빛 바다쪽으론 다시 남색 바람이 전나무 숲으론 다시 청록색 바람들이 떼를 지어 달려가도 있었다.
귀거래별사(歸去來別辭) / 임 보
―지게의 독백―
주인님 이제 그만 돌아갑시다. 어디선들 입에 풀칠이야 못 하겠오. 우리가 떠나왔던 그 고향으로 다시 돌아갑시다. 산 좋고 물 맑은 그 산골로 어서 내려갑시다. 지금은 고향도 많이 변해서 우리 같은 놈 발붙일 곳 없어져 간다고 합디다만 경운기 구루마 같은 놈들이사 들판에서 놀라 하고 산에 오르내 리는 일이사 그래도 아직은 제몫이 아니겠습니까. 여름이면 풋풋한 풀짐, 겨울이면 삭정이 낙엽 얽어 집채만큼 만들어 지고 마을 뒷동산 언덕빼기 신명나게 내려올 적에 이놈 목다리 장단 두드리며 구성지게 뽑아 올리던 그 육자배기 가락 ― 주인님 젊었을 때 그 폭포수 같던 목청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가을이면 낟가리 곡식 휘청휘청 짊어지고 노적 쌓던 그 달밤도 즐거웠고요. 볏섬 지고 물레방앗간 오르내리면서 큰골 댁 담장 너머 보름달 같던 곱단이 얼굴 훔쳐보며 볼 붉히던 주인님 생각나시지요. 그 곱단이가 주인님 마님 되어 우리 셋이 밭일 가선 내 등에 그 색시 올려놓고 덩실덩실 맴돌다 엉클어져 콩밭 뭉개던 일도 알고 계시지요. 읍내 장날이면 발대 얹어 닭 돼지 잡곡들 싸짊고 가서 팔아 다가 조기 북어 미역 어물 등속 마련하여 명일 제일 조상 제사상도 푸짐하게 보았고요. 허기사 즐거운 일만 늘 있었던 건 아니지요. 읍내 신작로 낼 땐 강변에 자갈 모래 몇 달을 등이 휘게 져다 부려도 보 고, 동란 땐 총부리에 끌려 탄약통 걸머지고 유탄이 비오듯 퍼붓는 구름재 그 험한 능선을 몇 번이나 넘나들었던가요. 그러나 정말 슬펐던 일은 염병이 불꽃처럼 번지던 어느 봄날 곱단이 마님 서른도 채 못 되어 세상 떠나던 일이었지요. 거적 에 싸인 마님 등에 업고 산천 갈 때에 철쭉들도 우리처럼 목이 터지게 울고 있었지요. 그리고 주인님 우리가 고향 산천 버리고 떠나온 것이 아마 그 무렵이었지요. 아무 물정 모르는 우리 시골것들 홧김에 서울 대처에 올라오기는 하였지만 눈도 멀고 귀도 먼 일자무 식 우리들이 뭐 해먹겠다고 올라왔을까요. 논밭 팔아 몇 푼 손에 쥔 것 오다가다 만난 뺑덕에미 밑구멍에 다 털어 넣고 청계천 다리 밑에서 훌쩍훌쩍 울던 것도 생각나지요. 서울역 광장, 동대문 시장, 을지로, 종로통 퍽도 싸대고 다녔 지요. 그래도 그때는 제법 일거리들이 있어서 종일 헤매면 국밥에 막걸리 사발이라도 마실 수 있었어요. 그 자유당 시절 까지만 해도 그런 대로 우리에겐 살만 했지요. 손수레, 용달, 택시들이 쏟아져 나오자 세상은 개판이 되었 지요. 고속도로 뚫리고 전철 생겨 사람들은 개미떼처럼 북적대 기 시작했지만 이젠 우리 쳐다보는 놈 한 놈도 없어요. 온종일 터미널 입구에 주저앉아 기다려 봐도 우리에게 짐을 맡기는 어리석은 자는 아무도 없어요. 어쩌다가 물정 모른 시골 아낙 네들이 고구마 보따리라도 싸들고 오다 우리를 부르는 일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겨우 차 타는 곳까지 옮겨다 주는 일일 뿐 일다운 일거리는 택시 용달들이 다 독차지하는 세상 어디 분하고 원통해서 살 수 있겠오. 주인님 이 복잡하고 한많은 서울땅 어서 등지고 우리 고향 으로 떠납시다. 주인님 이제는 쓸모없다고 혹 저를 내던질 생각은 않겠지요. 주인님 저는 남이 아닙니다. 한 평생 주인님 등에 붙어 다니던 등뼈입니다. 주인님의 등뿔 주인님의 한 부분입니다. 어서 저를 데불고 고향으로 가 주세요. 고향에 가기만 하면 봇맥이 자갈짐도 내가 다 지고 오뉴월 똥장군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어서 돌아갑시다. 어서 돌아갑시다.
- 시집<겨울, 하늘소의 춤>(작가정신,1997)>
가시연꽃 / 임보
가시연은 맷방석 같은 넓은 잎을 못 위에 띄우고 그 밑에 매달려 산다 잎이 집이며, 옷이며, 방패며 또한 문이다 저 연못 속의 운수행각, 유유자적의 떠돌이 그러나 허약한 놈이라고 그를 깔봐서는 안 된다 그를 잘못 건드렸다간 잎과 줄기에 감춰둔 사나운 가시에 질려 한 보름쯤 앓게 되리라 그가 얼마나 매운 마음을 지니고 있는가는 꽃을 피울 때 보면 안다 자신의 육신인 두터운 잎을 스스로 찢어 창으로 뚫고 올라온 저 가시투성이의 꽃대, 그 끝에 매달린 눈 시린 보라색, 등대의 불빛 누구의 길을 밝히려 굳은 성문을 열고 저리도 아프게 내다보는가
우이시 (2006년 10월호)
가두리 / 임보
남해 바다에 가서 가두리를 본다 어족들의 감옥, 아니 목장이다 가축의 우리나 축사처럼 바다 속에 그물로 설치된 어육장 닭에 모이를 주듯 소에 여물을 주둣 치어들에게 사료를 주어 성어로 길러낸다 횟집의 도마 위에서 퍼덕거린 광어 우럭 넙치 볼락 들이 대개가 다 가두리 출신이다 교도소의 높은 담벼락을 볼 때처럼 사람들은 사각형의 가두리 앞에서 쓸쓸해 하지만 갇혀 사는 것을 너무 안타까워 할 것도 없다 생각하면 갇혀 살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가정과 직장과 국가도 가두리 사랑도 우리를 가두지 않던가? 우리가 달라붙어 사는 이 지구도 허공에 떠 있는 완벽한 가두리가 아닌가?
우리시 (2007년 3월호)
울타리 / 임보
울타리는 경계와 경계 사이에 설치된 장애물이다
초가집 울타리는 수수깡이 되기도 하고 관수원 울타리는 탱자나무인 수도 있다
돌이나 흙으로 쌓은 담도 있고 철사나 철망으로 막은 철조망도 있다
개나리. 쥐똥나무의 부드러운 나무울타리 블럭이나 시멘트로 높이 차단한 단단한 벽
울타리는 도둑이나 적들을 막는 방어진인데 섬을 가둔 바다를 물의 울타리라 부른 이도 있다
인간이 만든 가장 긴 울타리는 만리장성 그러나 신이 만든 보이지 않는 울타리도 있다
보라, 지상과 천국 사이에 설치된 저 완벽한 허공!
우리시 (2007년 3월호)
스승 / 임보
1
지난여름 내설악의 계곡에 들어 찬 물에 발을 담그고 한잔씩 기울이면서 거나해 지자 요새 아이들 버르장머리 없다는 얘기로부터 시작하여 지나간 제 스승들 자랑을 했다
우리 조지훈(趙芝薰) 선생은 말일세, 한 학기에 세 번쯤 강의를 하는데 두 번은 개강과 종강을 알리는 강의고, 학기 중간의 한 번은 어쩌다 월급지급일과 겹치는 날이었네. 그분은 아예 학교 출근을 잘 안 하셨는데 지금처럼 온라인 통장이 있었더라면 검은 두루마기 차림의 그 준수한 모습도 못 뵐 뻔했지…. 한 시인의 자랑이다.
우리 스승 장욱진(張旭珍) 선생은 말일세, 강의실이 아예 대폿집인데 제자놈들에게 술만 가르쳤지. 흥이 나면 당신의 고무신짝을 벗어 그것으로 술잔을 했는데 거기다 막걸리를 따라 당신이 먼저 자시고 차례로 돌렸단 말이시. 그런 학교생활도 귀찮다고 일찍 그만두고 말았지만…. 한 화가의 자랑이다.
우리 스승 구자균(丘滋均) 교수는 말일세, 학생들에게는 교재를 읽으라고 지정을 해 주고 당신은 교탁 뒤에 쪼그리고 앉아 책가방에서 소주병을 꺼내 혼자 홀짝이며 술을 즐겼는데, 강의시간이 끝날 무렵쯤엔 너무 취해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단 말이야, 그러면 제자들이 업어다가 연구실에 누여 놓곤 했지…. 한 국문학자의 대꾸다.
그러자 곁에 있던 한 스님이 끼어든다 내 스승은 내게 10년 동안 한 말씀도 안 해 주셨는데 하도 답답해서 어느 날 부처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주장자로 내 골통을 내리치더란 말일세. 경봉(鏡峰) 선사 얘기다.
도대체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가? 지나간 스승들은 그렇게 가르쳐서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스승도 제자도 없는 오늘 참 답답도 하다.
2
새 학기를 맞게 되어 학생들에게 다시 시(詩)를 강의하면서 시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는 내가 시에 대한 얘기를 지껄이면서 무엇이 진짜 가르치는 일인가를 곰곰 생각해 본다. 시인 지훈(芝薰)이 화가 욱진(旭珍)이 학자 자균(滋均)이 선사 경봉(鏡峰)이 다 그렇게 하며 지냈던 것은 그랬으리, 그러했으리 그들도 나처럼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회의했으리 학문(學問)― 그 불확정(不確定)의 덧없음 허황한 지식들 차마 이것들을 진리(眞理)처럼 가르칠 수는 없었으리 그들은 거짓을 거부할 수 있었던 용기로운 선비 양심을 지키는 스승들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들은 가르치지 않고도 일만(一萬) 제자들의 스승으로 길이 남았다
부치지 못하는 편지 / 임보(林步)
한 여인에게 편지를 쓰노니 밤 깊도록 잠들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시며 편지를 쓰노니 우리들의 조국이면서도 갈 수 없는 지척의 땅 북녘에 살고 있는 한 여인에게 글을 보내노니 아무리 추운 엄동설한이라도 언젠가는 대지가 풀리는 따스한 봄이 온다고
어느 외국 기자의 카메라에 찍힌 남루의 한 여인―내 누이여 들판에서 풀뿌리를 뽑고 있었던가 흙 묻은 손으로 젖 달라고 달려드는 영아를 밀쳐내는구나 母性도 삼켜버린 魔의 饑饉이여
엄동보다 더 모진 혹한이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었구나 불쌍한 누이여 누가 너를 거친 들판에 그렇게 내팽개쳤는가 비단옷자락 날리며 얼굴에 연지도 바르고 젊음의 풍만한 가슴도 자랑하고 싶을 그 나이에 이 무슨 악령의 형벌이란 말인가 고운 볼은 다 망가지고 뼈만 남은 앙상한 손마디 젖무덤도 시든 밤 쭉정이처럼 쭈그러들고 말았구나
편지를 쓰노니 북녘의 내 불쌍한 누이에게 편지를 쓰노니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노니 저승까지도 사무칠 영혼의 언어로 봄이 멀지 않다고 편지를 쓰노니 신이여, 제발 이들을 버리지 마소서.
자작나무에서 돌배나무까지 / 임보(林步)
그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고 묻기에 동東은 아침인데 서西는 저녁이고 남南은 여름인데 북北은 겨울이라고 대답했더니 토공土公이 웃는다 그의 집 뜰은 한 십여 평 되는데 하루에 만 리를 달리는 그의 말馬도 뜰 좌편의 자작나무 한 가지 끝에서 뜰 우편의 돌배나무 한 가지 끝까지 이르는 데는 몇천 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
등잔 / 임보(林步)
등잔은 내 가족들이 살던 따스한 동굴이다. 그 속엔 동백 기름의 젊은 어머니 지금도 물레를 잣아 무명실을 뽑아 내고, 구부정히 앉아 놋쇠 그릇을 닦고 있는 할머니 나를 보고 빙긋이 웃고 있다. 할아버지 긴 장죽에선 아직도 담배 타는 매운 냄새…… 그리고 저건 뭔가? 동짓달 늦은 밤 고모가 내온 동치미 사발인가 보다. 등잔은 내 유년의 꿈들이 가득 담긴 작은 항아리다.
가을 편지 / 임보(林步)
은사시나무들도 그들의 마지막 혈관을 뽑아 내일 떨쳐 버릴 여린 잎들을 저리도 곱게 치장하는구나
나도 이제껏 내 기억의 깊은 골방 속에 감추고 감추었던 푸른 추억들을 하나씩 끌어 올려 황금빛 치마를 입힐가 보다
이 땅이 서럽다고 바다 넘어 어느 먼 낯선 나라로 구름처럼 훌쩍 떠나간 눈이 큰 친구여 문득 밤을 새워 그대에게 긴 편지를 쓰노니
기러기야 하늘 뚫는 청둥기러기야 나도 가을이면 지상을 박차고 떠오른 한 마리 철새가 된다.
짐 / 임보(林步)
청명한 아침 휘파람 불며 그대를 두 팔에 안고 처음 산을 올랐을 때 그대는 몇 캐럿쯤의 눈부신 보석이거나 짙은 향기의 꽃다발이었다 해가 중천에 솟고 떡갈나무 잎새들도 더위에 지쳐 늘어지기 시작할 무렵 산중턱에서 그대는 어느덧 나의 젖은 등에 업혀 있었고 정오 산마루에 올랐을 땐 그대는 이미 한덩이 납처럼 빛깔도 냄새도 없었다 아, 그리고 힘이 다 빠진 오후 자작나무 가지 위에 그대를 묶어 끌며 산을 내려오게 되었을 때 그대는 드디어 다 뭉개진 한 뭉치 짐이었다.
나무 / 임보(林步)
나무는 한 자리에 서 있어도 잎으로 끝없는 바람의 노를 저어 푸른 입김을 대기에 가득 심는다.
나무는 기교의 손이 없어도 긴 여름 먼 일광(日光)의 끈들을 뽑아 생명의 주머니를 곱게 짠다.
그대 보고 듣고 움직이는 교만한 자여, 나무는 발도 눈도 귀도 없이 그대가 서 있는 바로 여기까지 이렇게 이미 와 있다.
사슴의 뿔 / 임보(林步)
사슴의 아내가 말했다. [오늘은 이상해요 산까치가 슬피 너무 슬피 울어요]
노오란 흑먼지를 일으키며 聖 베드로 목장의 이른 아침을 몇 대의 눈부신 승용차가 진군해 왔다.
주인은 퇴역 장성답게 쇠톱으로 우명의 수컷을 골라 솜씨껏 잘라 냈다.
붙들린 녀석은 그의 잘린 뿔로 殉敎보다 더 붉은 몇 컵의 뜨거운 피를 토해 냈다.
그리고 목장은 온종일 해살대는 햇볕 속에서 목이 굵은 자들의 미친 웃음소리를 竹槍처럼 뽑아 냈다.
다시 사슴의 아내가 말했다. [그래고 아직 애들은 무사해요] 그리고 남편의 잘린 뿔에 혀를 묻고 밤새 울었다.
시월 / 임보(林步)
모든 돌아가는 것들의 눈물을 감추기 위해
산은 너무 고운 빛깔로 덫을 내리고
모든 남아 있는 것들의 발성(發聲)을 위해
나는 깊고 푸른 허공에 화살을 올리다.
아들에게 주는 시 / 임보(林步)
아들아, 내 무덤 앞에 한 조각 묘비(墓碑)를 세우고 싶거든 그렇게는 하라. 그러나 언어에 때묻지 않은 순수한 돌을, 길을 오다 가다 흔히 볼 수 있는, 아니, 너무 못생긴 탓으로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런 것으로 하나 골라 세우라. 그러면 아들아, 그 돌 속에 가난한 내 영혼이 깃들어 때로는 비도 맞고, 때로는 바람도 마시면서 더러는 이끼도 피우고, 작은 산나비도 앉히면서 생전에도 그랬듯이 그렇게 그렇게 지내리라.
내 서재(書齋)를 쓰려거든 아들아 그렇게는 하라. 그러나 내 한 생애를 방황케 했던 저 열병의 서책(書冊)들은 모두 불태우고 나를 밤마다 불면케 했던 저 젖은 붓과 종이도 다 치우라. 그리고 그 빈 서가(書架)에 네 애비의 사랑으로 놓고 싶은 것이 있다면, 청풍(淸風)의 수석(水石) 한 점과 무등(無等)의 춘란(春蘭) 한 분으로 채우라.
아들아, 네 애비가 살던 이 땅에서 그대로 살고 싶거든 그렇게는 하라. 허나, 불쌍한 네 이웃들에 연민하지 말고, 더러운 이 땅에 꿈의 씨를 뿌리지 말라. 우리의 세대가 너희에게 베풀었듯이 ㅡ아니 그보다 더 철저하고 용감하게 비정(非情)과 불의(不義), 음모(陰謀)와 약탈(掠奪)의 장갑차로 무장을 하고 떠가는 새, 이름없는 잡초들에게까지도 증오(憎惡)와 살육(殺戮)의 화살을 쏘아 하늘과 땅 온 산들과 강물 위에 무덤을 쌓으라. 그러면 아들아, 이 땅 위에 한 천년쯤 빙하기가 오고 또 한 만년쯤 폭풍우가 씻어 간 다음, 비로소 우리들의 잃었던 먼 마음에서 싹이 돋아 푸르게 푸르게 이 땅을 지키리라.
그러나 아들아, 세상이 네 뜻대로 되지 않아 분하고 역겨울지라도 서두르지 말라. 우리들은 인생의 짐을 번갈아 져 나르는 노역자(勞役者)일 뿐, 우리들의 것이란 애당초 이 지상에는 없었던 것, 때로는 술도 마시고, 때로는 지각(遲刻)도 하면서 네 나이 한 사십쯤 넘다 보면 문득 한 아침에 네가 제왕(帝王)이 되어 비어 있는 무거운 세상을 너의 발 아래 얻으리라. 그러면 아들아, 너도 나처럼 너의 어린 아들에게 들려 줄 너의 묘비명(墓碑銘)을 밤새워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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