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대 2학년 한성민(20)씨는 고향인 광명시에서 '독학의 달인'으로 통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학원 한 번 안 다니고 교실에 남아 혼자 공부한 것만으로 전교 1~2등을 유지한 까닭이다.
그는 무조건 외웠다.
손바닥만한 수첩에 영어 단어를 깨알같이 적어 통학 길에 달달 외우고,
수학도 답이 이해될 때까지 답안을 통째로 반복해서 베껴 적었다.
남들이 학원 다니면서 하는 선행학습도 혼자서 했다.
고1 여름방학부터 8개월 걸려서 독학으로 고2 수학 교과서를 떼는 식이었다.
한씨가 독학의 달인이 된 것은 가정형편 탓이었다.
한씨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1년, 철강회사에서 트럭을 몰던 한씨의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66㎡(20평)짜리 집이 있어 거리에 나앉는 건 면했지만 생활은 극빈으로 떨어졌다.
전업주부였던 어머니가 구할 수 있는 일은 월 100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한씨는 "엄마가 고생하는 걸 생각하면 중간고사를 앞두고 문제집 값 5만~6만원을 타는 것조차 죄송스러웠다"고 했다.
한씨는 장차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반신반의했다.
그는 "내신 1등급이었지만 솔직히 논술은 자신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논술학원에 다닐 형편은 못됐다. 따로 글짓기 연습할 겨를도 없었다.
한씨가 찾은 돌파구는 '서울대 지역균형선발 전형'이었다.
논술 없이 내신 위주로 평가하고, 서울 1등과 지방 1등이 같은 점수를 받는다는 점이 용기를 줬다.
부모의 소득 격차가 자녀의 성적 격차로 이어지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각 대학은 저소득층과 지방 학생을 위한 문을 열어두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서울대가 2005년 도입한 지역균형선발 전형과 2008년 도입한 입학사정관제가 대표적인 예다.
정운찬 당시 서울대 총장은 "취임 직후 신입생 통계를 뽑아보니 사교육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 지역 학생이 전체의 40%에 육박했고, 그 대부분이 강남 출신이었다"며 "저소득층 자녀와 지방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것이 사회 정의에 부합하고, 대학에도 활력소가 된다고 봤다"고 했다.
교수사회의 반발을 딛고 시행된 지역균형선발전형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실험'으로 판명됐다.
2005년 입학한 1기생들의 4년간 평점(3.37)이 같은 해 입학한 정시 일반전형(3.21)보다 훨씬 높았다.
2기~5기생들도 순조롭게 대학에 적응하고 있다.
서울대는 2011학년도 신입생부터 전체 정원의 38.6%(1201명)를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뽑을 방침이다.
서울대 김영정 입학관리본부장은 "서울대 입시에서 지방 학생에 대한 배려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본다"며 "앞으로는 대도시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특별전형을 확대하는 데 힘을 싣겠다"고 했다. 김 본부장은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이 캠퍼스에 모여야 '상승효과'가 생긴다"며 "이제까지처럼 신입생이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편중되는 현상은 학생에도, 대학에도, 국가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다른 대학들도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는 추세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올해 입시에서는 전국 47개 대학이 신입생 2만695명을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뽑을 방침이다. 지난해 40개 대학이 4555명을 선발한 것보다 4.5배 늘어난 규모다.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올해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입학한 유영철(18)씨는
"나 같은 저소득층 학생에겐 '하면 된다'는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고2 때 부친을 여읜 유씨는 모교의 배려로 기숙사에 무료로 거처하면서 담임교사가 주는 문제집과 EBS 강의만으로 공부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대로 주저앉으면 미래가 없다'는 생각으로 독하게 공부했어요.
다행히 서울대에 입학해 앞으로 전문직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됐지요.
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누가 따로 공부를 시킨 적도 없어요.
태어나서 성장한 출발점이 달랐다면,
대학에서라도 다시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할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