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 커피농장
애초에 나의 달랏여행은 관광이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게 날씨였다.
일단 도착하자마자 맛본 날씨는 기대했던 그대로 였다.
아침 공기는 퍽이나 싱그롭다.
지금은 우기(雨期)인지라 하늘이 파란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흐리지만 뭐 그런대로 돌아다닐만 하다.
인터넷에서 건져올린 많은 정보들.
그러나 이제까지의 경험에서 유명한 곳은 실상 내게는 별 볼 일 없었다.
다음 방문을 위해 뭔가 기대할 꺼리를 남겨두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그냥 날씨와 사람들만 추구하기로 했다.
어제 커피농장을 한다는 처녀의 아버지 집으로 일단 가보기로 했다.
택시를 타기 위해 고개를 돌려보지만, 사이공만큼 택시는 많지 않다.
한참을 걸어서야 놀고 있는 빈택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소를 말해주고 얼마나 걸릴까 물어보니 놀랍게도 30킬로미터가 넘는단다.
달랏시내가 아니다.
남반(Nam Ban).
달랏시에서 남쪽으로 약 30킬로미터.
고도는 1500고지인 달랏보다 500여미터 아래다.
여전히 높은 고도지만 그래도 달랏보다는 더울 듯 싶다.
남반까지 내려가는 도로에서 겪은 급커브는 우리네 한계령이나 대관령고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100개의 급커브까지 세다가 중도포기.
30분정도 운행 후 도착한 남반은 우리나라 면단위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멀리서 보는 모습은 푸르른 산허리에 드문드문 보이는 빨갛고 파란 지붕으로 마치 스위스의 마을 한 곳을 연상케한다.
물론 멀리서 보는 모습이다.
베트남의 시골거리는 지저분하기 그지 없다.
그나마 이곳은 포장이라도 되어있다.
엄마 이름은 Tam, 아빠 이름은 Trinh, 처녀의 이름은 bich....
커피농장이름은 부모의 이름을 따서 Tam Trinh 이다.
<유통회사 땀찐>
bich이 나를 데리고 집으로 인도하면서 하는 말이 자기 집은 나무로 지어졌다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통나무집을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6000만원짜리 산타페골드를 타고 다니니 설마 나무로 얼기설기 지어진 빈민가를 생각하겠는가.
허허....
정말로 나무로 지어졌다.
그러나 통나무로 지어진 집이 아니라, 글자그대로 나무판때기를 이어붙여 만든 집이다.
실내는 어두웠고 거실 한쪽으로 난 통로로 문도 없는 방2개가 보이지만, 방마다 큼직하게 자리잡은 더블침대 때문에 방이라기 보다는 그냥 잠만 자는 공간이다.
그 훌륭한 산타페 주차공간을 위한 곳도 집 옆에 나무판때기로 얼기설기 지어진 곳에 차만 간신히 들어간 모습이다.
6000만원짜리 차를 몰고 다니는 부자의 집이 판자집?
시골에서의 사람들의 한달 임금이 4~5만원인 세계에서 6000짜리 차를 타고 다닌다면 분명 부자가 아니고 또 무엇인가.
<판자때기를 이어붙인 그들의 집>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원래 집은 면소재지에 있고, 이미 10여명의 임차인에게 임대했다고 한다.
지금의 집은 짓고 있는 농장을 관리하기 위한 임시 땜빵.
아무리 돈이 많다해도 티를 내지 않는 베트남인의 소탈함을 맛보았다.
한달이나 걸려도 끝나지 않는다는 펜스작업.
넓이는 약 3만평이라고 한다.
30여명의 일꾼이 울타리작업을 하고 있다.
그 중 앳된 소녀도 있다. 그래도 남자들 못지 않게 울타리벽에 시멘트바르는 손놀림이 재빠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또다른 일꾼들이 농장에 커피묘목 심을 곳에 웅덩이를 파고 있었다.
습기먹어 새빨간 황토. 내 마을 해남이 생각났다.
커피는 나무에서 자란다.
앵두 크기의 푸른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이 열매를 껍질과 분리하면 글자 그대로 원두가 나온다.
껍질은 그냥 불때기 위한 연료로 따로 쓰인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커피는 크게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두 종류.
지금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브라질이나 콜롬비아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베트남커피는 아직은 손으로 제조되는 천연커피다.
물론 로스팅(생원두를 볶는 과정) 기술이 살짝 뒤쳐지기는 하지만,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모든 과정이 이루어진다는 이곳,
남반의 커피는 정말 그 향이 대단하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아직 익지 않은 푸른 커피체리가 주렁주렁 매달린 농장만 본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번 겨울 다시 한번 들러서 커피를 만드는 공정을 자세히 볼 수 있을 듯 하다.
<커피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커피체리>
<웅덩이를 파고 묘목을 심어야 뿌리가 튼튼하다>
<녹색체리가 이렇게 빨갛게 익으면 수확한다>
<원두에서 분리된 껍질은 불때는 연료로 쓰인다>
처녀아빠가 운영한다는 또다른 공장 한 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실크공장.
누에를 길러서 실을 뽑는 공장이다.
부수적으로 한쪽에서는 그야말로 신선한 뻔 뻔 뻔데기가 삶아지고 있었다.
누에로부터 가는 실을 뽑는 과정은 그야말로 섬세함을 대표하는 베트남의 정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뻔데기의 곱지않은 냄새를 맡아야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기계 옆으로 다가가서 살펴볼 수 있다.
<누에고치>
<더운 물에 불린 고치에서 실이 뽑혀나온다>
<여러 고치에서 뽑힌 실을 하나로 연결시킨다>
<실패에 감는다>
<최종적으로 이렇게 작업이 마무리되면, 염색공장으로 가져간다>
<실크를 강탈당한 고치는 이렇게 신선한 뻔데기로...>
<우리네 까만 뻔데기도 원래를 이렇게 노란 색이었을게다>
다시 돌아간 전원주택(?)에서는 손님을 위한 특별한 시골밥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냄새는 시골틱하다.
음식냄새는 거의 똥냄새 수준을 넘어가고 있었다.
먹기좋게 자른 닭고기에 쌀로 만든 바바바(333)맥주를 들이붓는다.
어느 정도 고기가 익으면 다시 맥주를 붓고, 여기에 야채를 넣어 익혀먹는다.
또 하나의 음식은 돼지고기.
한국인이 싫어할만한 각종 허브와 같이 삶았기 때문에 묘한 냄새가 난다.
그렇다고 정성껏 차림 음식 앞에서 얼굴을 찡그릴 용기가 나에게는 아직 없다.
간신히 먹는 도중에도 재차 확인사살이 들어온다.
언(맛있냐)?
언 쿠와 (정말 맛있다).
정말이지 더럽게도(?) 맛이 있었다.
식사에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지옥. 데운 술.
처녀아빠의 술사랑은 이미 나의 도를 넘고 있었다.
팔팔 끓인 술인 벌써 세 주전자 째.
나를 죽이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다.
벵글벵글 도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처녀의 침대에서 잠시 쉴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닭고기에 맥주를 붓고 있다>
<냄새고약한 치킨탕과 돼지고기볶음>
흔들어 깨우는 처녀와 처녀의 친구들에 의해 끌려간 곳이 폭포.
일명 코끼리 폭포라고 한다.
물론 나이아가라 폭포에 비할 수는 없지만, 실로 장관이다.
물이 떨어지는 굉음과 함께 피어오르는 물안개.
아직 관광로가 개발되지 않아서 물이 바위를 때리는 밑에는 내려갈 수 없었다.
또한 폭포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지점도 없었다.
다만 폭포가 시작되는 첫머리와 옆에서 살짝 엿볼 수 있는 중간 허리까지만 볼 수 있다.
아쉽다.
<강하게 떨어지는 폭포 머리 부분>
<떨어지는 장관은 볼 수 없었으나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충분히 그 규모가 짐작된다>
<폭포의 허리부분>
<폭포의 머리부분과 피어오르는 물안개. 높이가 40미터인데도 물안개를 위에서 볼 수 있었다>
잠시 햇살이 비추지만 뜨겁지는 않다.
마치 늦가을 비추는 따사로운 햇볕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어 찾아간 곳은 폭포 바로 옆에 있는 절.
이름이 링 안 뜨 (Linh An Thu).
사이공에서 본 빙엄사에 못지 않은 규모의 큰 절이다.
대웅보전에는 우리나라 불상과는 사뭇 다른 곱게 단장한 부처가 앉아있다.
절 밖에는 큰 귀를 가지고 넉넉하게 웃고 있는 대머리보살이 나를 바라본다.
방학 중 불교를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이 귀여운 승복을 입고 이리저리 뛰어놀고 있다.
조용한 불경소리가 퍼지는 우리네 사찰과는 달리, 이곳은 거의 가라오께 수준이다.
시끄러운 음악(물론 찬불가이겠지만)이 전자음과 함께 사찰 곳곳을 누빈다.
<Linh An Thu 절>
<방학을 맞아 수련회에 참가한 어린 학생들>
<인도식 불상인가보다. 대웅보전이다>
<불상보다는 보살상을 더 중시하는 듯>
<커리나무의 커리꽃과 커리열매. 우리가 좋아하는 카레라이스의 카레는 이 열매로 만든다>
다시 돌아온 시간이 오후 5시.
하루종일 먹고 마시고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다.
또 음식을 내온다.
이번에는 관심을 보였던 뻔데기를 삶은 접시 하나, 그리고 기름에 볶은 접시 하나를 가져온다.
부른 배를 통통거리며 또 먹어야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까만 뻔데기에 비할 맛일까.
싱싱한 노란색의 오동통한 뻔데기가 징그럽게 내 앞에 놓여있다.
이쑤시개로 콕콕 찍어먹는 것이 아니라, 수저로 한가득 입에 우겨넣는다.
향긋하다. 고소하다.
<기름에 튀긴 뻔데기>
<삶은 뻔데기>
달랏에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아이고...이게 웬 떡이냐. 20만동을 웃도는 택시값 절약 찬스.
그러나 저녁을 달랏에서 먹자한다.
또 다시 밀려오는 데운 술의 공포.
얇은 라이스페이퍼(쌀종이)에 돼지고기와 각종 야채를 얹어먹는 월남쌈.
물론 사이공에서도 많이 먹어보았지만, 이곳의 고기는 더 연하다.
나를 포함한 우리 팀 6명이 먹은 고기 두 접시와 데운 술 모두의 가격은 놀랍게도 16만동.
가져온 계산서를 보고나서 믿을 수 없었다.
우리 돈으로 1만원. 6명이 배불리먹었다.
사이공에서는 2사람이 먹어도 30만동은 나오는데....아...너무너무 감격이다.
그래서 내가 냈다. 생색 엄청 내면서....
<달랏 nem>
내가 식사를 샀으니 자기가 커피를 사겠다는 처녀아빠.
눈은 감기지, 다리는 풀리지....그러나 어쩌랴, 가야지.
쑤안흐엉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그 커피숍은 참 예쁘다.
2인용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누비는 연인들도 참 예쁘다.
잔잔한 물결에 같이 넘실거리는 불빛도 참 예쁘다.
오손도손 정을 누리는 처녀가족도 참 예쁘다.
<땀과 찐 가족>
첫댓글 캬!! 내가 평소 꿈꾸던 그런일인데...^*^ 달랏쪽 거부들은 커피농장주들이 많더만요,해남에도 커피가 자랄가요??
해남에서는 배추가 잘 자랍니다...웬 써늘한 농담을 다 하시고...
이야.. 글 너무 .. 잘 읽었습니다... ^^ 퍼가도 될까요 허락하시면 퍼갈께요 ^^
허락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달랏 커피농장은 내가 가보고 싶던곳이고 여행기를 너무 맛갈나게 잘적으셨습니다.
나중에 제가 커피농장 열면 그때 와서 경험하고 가세요...임금없음. 체험비 내고 오세요
재미있는 경험하셨군요!!
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경험이셨네요. 부럽구 약간의 질투도 나네요...
질투하지 마시고 질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