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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스크랩 스웨덴(SWEDEN)
해바라기 추천 0 조회 167 08.12.03 17: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스웨덴(SWEDEN)

 노벨상과 복지의 나라 라고 알려진 스웨덴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동쪽에 위치하며 서쪽으로는 노르웨이, 동쪽으로는 핀란드와 접해 있다. 스웨덴에 역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바이킹의 활동이 시작된 9세기 부터이며, 북유럽의 왕자였던 덴마크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시기가 1523년 이었고, 19세기 중반 나폴레옹의 몰락과 더불어 입헌군주제로 전환했다. 1905년 노르웨이가 군주 연합에서 이탈하여 오늘날의 스웨덴이 정착하게 되었다.

 150년에 걸쳐 중립을 지키면서도 예산의 15%를 군비에 돌리고 있는 군사강국이기도 하며, 아울러 "요람에서 무덤까지" 의 사회 보장 제도를 갖춘 나라 이기도 하다.

 북위 55도 20분에서 북위 69도 4분에 위치한 가늘고 긴 스웨덴은 총면적 약 450,000㎢로 유럽에서 네 번째로 넓은 나라다. 멕시코 난류의 영향으로 기후는 온화하며, 남북의 기온 차이가 심하다. 주요 도시는 수도인 스톡홀름(STOCKHOLM)을 비롯하여 웁살라(UPPSALA), 괴텐버그(GOTENBERG), 말뫼(MALMO)등이 있다.

 

개   요

o 국   명 : 라트비아공화국(Republic of Latvia)

o 면   적 : 64,589㎢

o 인   구 : 246만명

o 수   도 : 리가(Riga, 인구 74만명)

o 인   종 : 라트비아인(56%), 러시아인(32%), 백러시아인(4%), 우크라이나인(3%), 폴란드인(2%), 기타(3%)

o 언   어 : 라트비아어(공식언어), 러시아어

sweden-map.gif

o 종   교 : 루터교, 카톨릭교, 러시아정교

o 정   체 : 입헌공화제

o 정부형태 : 의원내각제

o 국경일  : 독립기념일(11.18)

o 기   후 : 비교적 따뜻한 기후

o 시   차 : 우리나라보다 8 시간 늦음.

              (SUMMER TIME 실시할 경우 7시간)

o 교육제도 :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무료.

o 주요특산 : 크리스탈, 모피제품, 가구, 목각제품, 꿀

o 전   압 : 220 V

o GDP : 84억불

o GDP성장률 : 6.5%

o 물가상승률 : 2%

o 실업률 : 7.5%

o 화폐단위 : 라트(lat)

o 환   율(2002.5.19 현재) : 미화1$ = 0.57 라트

 

지   리

 스웨덴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면적은 449,964㎢로 한반도의 두배에 해당하는 크기이다. 동서의 길이는 499㎞, 남북의 길이는 1,574㎞로 가늘고 긴 국토를 가지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산맥을 경계로 노르웨이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동부로는 핀란드와 접하고 있다. 스웨덴의 국토는 대부분이 바다와 접해 있으며, 동부는 발트해와 보트니아만, 서남부는 스카레가크와 카테카트 해협, 남부는 외뢰순 해협이 위치해 있다. 유럽에서 네번째로 큰 국토를 지니고 있으며 삼림지대가 전국토의 50%, 경작지가 10%, 호수와 하천이 9%, 기타 31% 로서 구성되어 있으며 호수도 96,000여개에 달한다.

 

사회문화

 스웨덴의 인구는 약 900만명으로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중의 하나였으나 80년대부터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젊은 노동인력의 부족으로 외부 이민을 받아들였으며 2차 대전 이후에는 약 70만명의 외국인이 이주하여 정착했다. 70만명중 약 50%는 핀란드인이며 나머지는 노르웨이, 덴마크, 동구 및 기타지역의 이민자들이다. 전체 인구의 95%가 스웨덴인이며, 이외에 우랄 알타이어계에 속하는 핀족 약 2만명이 북부 국경지대에 거주하고 있다.
스웨덴인은 게르만족의 한 갈래로 다른 인종과의 혼혈 정도가 적으며, 북부 지방의 소수 토착민인 랩족을 제외하면 북게르만어파의 일종인 스웨덴어를 사용한다.

 스웨덴어 외에도 영어와 독일어도 널리 쓰인다. 매우 적극적이며 합리적인 국민성을 가지고 있으며, 공동이익에 대한 협력성은 강하나 개인생활에 있어서는 개인적인 성향을 보인다.

 

기   후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동일 위도에 위치하고 있는 타 지역보다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북부의 노를란드 지역은 1년 중 6 개월 동안 눈에 덮여 있으며, 여름의 평균기온은 14.7℃, 겨울의 평균기온은 -12.8℃으로 하루종일 영하권에 머물게 된다. 또한 6월부터 7월까지는 백야현상으로 수주일에 걸쳐 태양이 24시간 지속되기도 한다. 스웨덴 국토의 7분의 1이 북극권에 속한다. 이에 비해 남부지역은 겨울이 짧으며 날씨도 대체로 온화하다. 여름의 평균기온은 16.6℃, 겨울의 평균기온은 -0.6℃이다. 연강수량은 500~750m로 남동부의 발트해 연안과 북부의 노를란드 내륙지방은 강수량이 300~400m로 적은 편이나 서남부의 노르웨이 접경 고산지대는 약 2000m로 많다.

 

스톡홀롬 기후(℃)

지   역

구   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스톡홀름

(Stockholm)

최고평균

-1

0

2

8

14

19

22

19

15

9

4

1

최저평균

-6

-6

-5

1

4

9

12

11

8

3

-1

-5

평    균

-2.9

-3.1

-0.7

4.4

10.1

14.9

17.8

16.6

12.2

7.1

2.8

0.1

강우일수

15

13

14

11

12

12

15

16

14

16

15

17

 

스웨덴의 역사

1. 선사 시대

 스웨덴의 역사의 여명은 스웨덴을 덮고 있던 빙하가 녹아 내리기 시작하여 남방으로부터 민족이 이동해 온 때부터 시작된다.

 B.C. 3000년께 유랑 어민과 수렵민들이 스웨덴에 정착하여 곡식을 가꾸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처음 그들은 돌과 흙으로 만든 연장을 사용하였으며, 그후 점차로 청동과 구리, 철로 만든 연장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바위에 새겨진 유적을 통하여 알 수 있으며, B.C. 1800~1500년께 사용했던 동기로 미루어 보아 이 민족은 대략 지중해 방면으로부터 이동해 왔다고 추측된다.

 그후 800~1000년대에 바이킹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뿐만 아니라, 멀리는 흑해와 지중해까지 석권하여 북구인의 위력을 유럽 전역에 광범위하게 확장하였다. 이는 스웨덴 역사상의 한 분기점으로 기록되고 있기도 하다. 바이킹 시대로부터 현재까지의 스웨덴의 역사는 매우 복잡하고 독특한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스웨덴 역사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중세부터의 역사를 크게 5개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겠다.

 

2. 중세

 중세 이전부터 스베아란드 지방의 멜라랜(M aren) 호수 주변에 살고 있던 스베아족은 촌락을 형성하고 집단 생할을 하였으며, 점차로 다른 부족을 흡수·지배하게 되었으니 그들의 해상 활동은 바이킹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이 때 바이킹은 콘스탄티노플에 이르는 해로를 지배하면서 유럽과 동방 사이에서 무역을 행하였다. 그 당시 덴마크 영토였던 스웨덴 남부 지방에서 살고 있던 바이킹족은 서부 유럽과 영국의 도서 지방 침입에도 참여하였다.

 바이킹족을 해적으로만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나 그들의 해상 약탈은 부분적인 현상이었으며, 실제는 당시 극도로 한랭한 기후 때문에 물자의 교류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서 남쪽으로 민족 이동을 시도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역사 학자도 있다. 볼가 강이나 드네프르 강 유역에 스웨덴계 바이킹의 대규모적인 식민지가 건설된 것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증거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노브고로트와 키예프는 역사적으로 유명하며, 콘스탄티노플까지 모피를 가지고 아라비아인들과 교역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가장 세력이 컸던 종족은 중부 지방의 스베아족과 남부 지방의 예타족이었으나, 600년께 스베아족이 예타족을 정복하여 부족 국가를 이루고 수도를 감믈라 웁살라로 정했다. 830년에는 안스가르라고 불리는 프랑스 수도사가 최초로 기독교 선교사로 스웨덴에 도착하였으며, 영국과 독일 북부로부터 온 카톨릭 선교사들은 많은 원주민을 개종시켜 성당을 세우고 교구를 설치하였다.

 바이킹의 활동은 11세기에 종료되었으며 이 시기에 전국적인 통일의 기운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여러 지방에서는 각기 별개의 지방 법률을 보유하였으며, 왕족들은 권력 투쟁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치가이며 새 왕조를 연 비르예르 얄(Birger Jarl)은 13세기 중엽에 법률을 통일하는 기초 작업을 끝내고 스톡홀름을 건설하여 수도로 정했다. 전국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법률은 1350년에야 채택되었다.

 한자 동맹(Hansaneatic League) 시대에 들어가서는 스웨덴과 유럽 북부 상업 도시 사이에 무역이 증대되었고, 한자 동맹의 상인들은 고틀란드의 중심 도시인 비스비(Visby)와 수도 스톡홀름에 정착해 있었다. 이 시기에 한자 상인의 경제적·정치적 지배가 강화되어 스웨덴은 잠시나마 독일인의 세력하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스톡홀름 원로원의 반수 이상을 독일인이 차지한 사실은 그 당시의 정세를 역력히 설명해 주고 있다.

 

3. 독립 대국

 스칸디나비아 3국은 14세기 초반에 통합되기 시작하였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1319년부터 한 왕의 통치를 받았으며, 이어서 1397년에는 덴마크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3국이 한 사람의 왕에게 지배를 받게 됨을 의미하는 역사적·국제적인 칼마르 동맹(Karlmarunionen)이 결성되었다. 이 동맹은 한자 동맹의 지배권에 대한 방파제로서 결성된 것이었으나, 왕위권이 덴마크에만 부여되었던 관계로 스웨덴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었으며 점차 덴마크인들을 외국의 압제자로 간주하게 되었다.

 1430년대에는 스웨덴의 농민 지도자 엥엘브렉트(Engelbrekt)가 덴마크 통치자들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며, 칼마르 동맹과 이 기구의 외교 정책에도 반항하였다. 그후 덴마크와의 완전한 분리를 요구하는 소리가 고조되었으며, 1521년에는 스웨덴의 젊은 귀족인 구스타브 에릭손 바사(Gustav Eriksson Vasa)가 또다시 반란을 일키고 성공함으로써, 스웨덴은 완전히 독립된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15세기에는 귀족, 성직자, 상공인, 농민 등 4개 계급의 대표자들이 모인 스웨덴 역사상 최초의 의회가 구성되었다.

 1523년에 왕위에 오른 구스타브 바사는 근대 주권 국가로서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그는 1527년에 기독교에 대한 개혁을 단행하여 카톨릭 교회와 절연하고 개신교(프로테스탄트)를 받아들였다. 1560년에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세 아들이 차례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1611년에 왕위에 오른 구스타브 바사의 손자인 구스타브 아돌프 2세(Gustav II Adolf)는 북방의 사자로 불렸는데, 그는 리보니아를 정복해 스웨덴 동부를 발트 해 유역까지 확장하고 중앙의 행정력을 개선, 강화하였다. 1630년에는 독일로 진격하여 30년 전쟁에 개입하였다. 그는 청교도의 한 선교사로서 브라이트펠트(Breitenfeld) 전투에서 카톨릭 연방을 패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1632년 뤼첸(L zen)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그후 스웨덴은 1648년 웨스트파리아 조약에 의하여 독일 북부의 광대한 영토를 얻게 되어 유럽의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어서 칼 구스타브 10세(Karl X Gustav)는 덴마크를 패배시켜 현재의 남부 스웨덴 지방을 덴마크로부터 획득하였다. 이 때가 스웨덴이 군사적으로 가장 용맹을 떨쳤던 시기이다. 한편, 핀란드는 1100년께부터 해안 지대를 중심으로 장기간 스웨덴의 세력하에 놓여 있었다.

 이와 같이 대국이 된 스웨덴도 1700~1721년의 북방 대전쟁에서 덴마크, 러시아, 폴란드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젊은 칼 12세(Karl XII)는 용감히 싸워 러시아군을 대파하고 덴마크와 폴란드를 항복시켰지만, 볼타바(Poltava) 전투에서 러시아에 크게 패한 후, 터키로 도주하여 1718년에 사망하였다. 결국 핀란드를 제외한 발트 해 남부와 서부에 있는 많은 영토, 그리고 북부 독일의 영토를 상실하여 스웨덴은 유럽의 강대국 대열에서 급속히 탈락하였으며 이로써 스웨덴의 대국 시대는 막을 내렸다.

 

4. 번영과 융성

 1718~1772년까지는 스웨덴 의회의 역할이 상당히 두드러진 기간이었다. 이른바 하타르(Hattarna) 당과 뫼소르(M sor) 당으로 불리는 두 정당이 서로 정권을 장악하려 하였으며, 그들의 투쟁은 의회를 구성한 네 개의 계급간에 전개되었다. 왕의 절대 권한이 상당히 약화되었기에 정당들은 이 시대를 자유주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불안정한 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는 경제적·정치적으로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농업의 근대화와 함께 철광 생산이 증대되고, 외국 무역이 급속히 번창하였으며, 신문

이 처음 발간되고 과학도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다가 1772년에 즉위한 구스타브 3세(Gustav III)는 의회의 권한을 파기하고 새로운 전제 왕권을 행사하였다. 그는 주로 음악, 미술, 문학 등을 진흥시키는 데 노력하여, 이 시기에 스웨덴은 문학과 예술 부문에서 꽃을 피웠다. 스웨덴 한림원과 왕립 오페라 극장, 그 밖의 문화관들이 이 시기에 설립되었다.

 구스타브 3세가 1792년에 암살당한 후, 그의 아들인 구스타브 4세는 1805년에 러시아와 한편이 되어 나폴레옹에 선전 포고를 했으나, 그후에 러시아는 나폴레옹과 강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결과 러시아는 당시 스웨덴 영토였던 핀란드를 잃게 되었다(1809년). 국민들은 왕의 퇴위를 강요하게 되어 구스타브 4세는 폐위되었다. 이 때 왕과 의회의 세력 균형을 꾀하고자 권력의 분립을 기초로 한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나폴레옹 휘하의 명장 베나도트를 스웨덴 왕위에 오르도록 초청하였다. 베나도트는 즉위하여 칼 요한 14세(Karl XIV Johan)가 되었으며, 그가 바로 스웨덴 현재 왕가의 시조이다.

 

5. 근대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공격했을 때, 국민들은 프랑스의 원조를 받아 핀란드 영토를 러시아로부터 되찾을 것을 기대했으나, 나폴레옹의 대국주의와 프랑스 군의 약점을 잘 알고 있던 칼 요한 14세는 국민의 기대와는 반대로 러시아를 공격하는 모험을 저지르지 않고 오히려 노르웨이를 양도받는 조건으로 1813년에 반나폴레옹 군에 가담했다. 스웨덴 군대는 그 당시 덴마크 군대와 동맹을 맺은 나폴레옹 군대와 최후의 전투를 하여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쟁은 스웨덴 역사상의 마지막 전쟁이었으며, 이로 인하여 1814년 스웨덴은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를 양도받았다. 노르웨이 국민들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였으나, 결국 1815년에 스웨덴과의 합병에 마지못해 동의하게 되어 1905년까지 합병이 지속되었다.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나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평화로운 가운데 발전이 계속되는 기간이었다. 농업을 발전시켜 농민들은 점차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지위를 강화해 나갔으며, 위생 시설과 식품 공급의 개선으로 사망률이 낮아짐과 동시에 급속히 인구가 증가하였다. 그러나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는 농민 계층이 늘어났으며, 그들의 생활은 점차로 비참해졌다. 그리하여 1860년대에서 1914년 사이에 스웨덴 인구 가운데서 약 100만 명이 신천지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해 갔다. 이와 함께 사회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개혁이 단행되었다. 낡은 철강 공업은 점차로 근대화되었고, 제재업이 급속히 발달하였다. 1842년부터는 무상 초등 교육 제도를 확립하였고, 상업 은행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으며, 1850년대에는 국유 철도의 건설이 시작되고, 지방 행정 조직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1865년에는 4개 신분의 신분제 의회가 해체되고 처음으로 양원제 의회가 채택되었다.

 1870년대에 이르러 가난한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으며, 국민의 대다수가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스웨덴은 처음으로 산업화의 물결을 체험하게 되었으며, 제재소와 펄프 공장 그리고 철강 회사들이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됨에 따라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의회는 물론 행정부와 일반 관리들은 새로운 산업 시대의 요구에 주저할 뿐만 아니라 이에 저항하였으며 새 시대에 따른 정치 개혁을 외면하였다. 이에 대하여 하층 계급에서 이른바 민중 운동이 일어났다. 공업화에 따라 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으나 그 당시 이들은 투표권을 갖지 못하였다. 노동자들은 강력한 조합과 정당을 결성하여 보통  선거권을 얻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여, 마침내 1918년에 그 뜻을 이루게 되어 일반·보통 선거권이 인정되었다.

노르웨이와는 1814년 연합 왕국을 형성하였으나 이 동맹은 평화적으로 해소되었으며, 스웨덴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모든 전쟁으로부터 중립을 지키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비동맹 정책을 채택하였다. 스칸디나비아 3국은 1차 세계 대전중 협력하여 모두 중립을 유지하였다. 스웨덴의 비동맹 정책은 이 기간중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1차 세계 대전 후 스웨덴은 점차로 근대적인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발전시켜 나갔으며, 1920년에는 사회 민주 노동당(Socialdemokratiska arbetarpartiet) 내각이 발족된다. 그러나 정권의 빈번한 교체로 인한 다수당 체제의 문제와 의사 진행 과정에서의 미숙함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1930년대는 스웨덴이 복지 국가로 발돋움한 시기였다. 세계 경제가 침체되었던 이 무렵, 1932년에 실시된 총선거에서 국민 다수의 새로운 지지를 얻은 사회 민주당이 농민당(Bondef bundet)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였으며, 침체된 국내 경제를 타개하기 위한 공익 사업을 계획하고, 농민 소득을 보조하며, 어린이를 위한 양육비를 책정하는 등 제반 개혁을 단행하여 사회 보장 제도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사회 민주당은 단독으로 혹은 다른 정당과 연합하여 1932~1976년까지 44년 동안 정권을 장악하였다.

 2차 세계 대전중에는 사회 민주당의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이 4개 정당의 연립 정부를 이끌면서 대외적으로 독일과 연합군에게 적당한 회유 정책을 쓰면서 평화를 유지하였다.

 

6. 전후 시대

 2차 세계 대전은 종료되었으나 국제 정세는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다. 1944년 9월 소련에 항복한 핀란드는 1947년에 대소 상호 우호 원조 조약을 체결, 강력한 소련의 영향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대전중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아이슬란드를 포함하여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4개국은 새로운 북구 블록을 형성하였다.

 북구 제국은 2차 세계 대전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소국 단결의 필요성을 통감했던 것이다. 이들은 모두 전쟁 전이나 전후를 통해서 사회 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한 국가였다. 이들 정당의 정책은 어디까지나 온건한 중도주의적인 것이었으며, 자유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구가하면서 정치적 민주주의 단계를 넘어선 경제적 민주주의의 단계로 진입했다.

 2차 세계 대전중 소련과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점령당했던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전후의 불안한 국제 정세와 소련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1949년 4월에 발족한 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했으나 스웨덴은 계속 중립을 고수하기 위해 NATO에 가입하지 않았다. 스웨덴은 어느 나라와도 동맹을 체결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중립 정책을 100년 이상이나 유지하고 있다.

 타게 에르란데르(Tage Erlander)가 수상으로 재임한 1946~1969년까지의 기간중에 스웨덴에서는 경제적 번영과 함께 많은 사회 개혁이 이루어졌다. 연금 제도를 보완한 것을 비롯하여 사회 보장의 충실한 실시와 제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이 추가로 수립되었다. 1971년 구성된 단원제 의회에서도 팔메(Palme) 수상이 이끄는 사회 민주당이 계속 정권을 장악하였다. 1973년 9월에 실시된 총선거에서 사회 민주당과 비사회계 블록간의 의회의 세력 분포는 175 대 175로 균등하게 나타났으며, 이와 때를 같이하여 덕망 있는 학자이던 구스타브 아돌프 6세(Gustav VI Adolf)가 서거하였고 그의 손자인 칼 구스타브 16세(Karl XVI Gustav)가 왕위를 물려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30년부터 장기 집권해 오던 사회 민주당은 1976~1982년까지 잠시 실권했다가 1982~1991년까지 재집권하였으며, 이 사이에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던 팔메 수상이 비명에 가고 그후 계속된 경제 사정의 악화와 국내외 정세의 변화로 1991년 9월 총선에서 다시 비사회계 정당으로 정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1994년의 총선 결과 사민당은 또다시 재집권에 성공하였고, 1998년의 선거에서도 재집권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관광 명소

스톡홀름(Stockholm)

 스웨덴의 수도로 발트해로부터 약 30km 거슬러 올라온 멜라렌호(湖) 동쪽에 있으며, 시가는 많은 반도와 작은 섬 위에 자리잡고 있다. 넓은 수면과 운하 때문에 흔히 ‘북구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기온은 1월이 -1.6℃, 7월이 16.6℃, 연간 강수량은 555mm이다. 해항·공항·지하철·버스망이 완비되어 있으며 이 나라의 정치·문화·상공업의 중심지이다. 스톡홀름은 1250년에 스타덴섬에서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그 무렵의 교회와 시장의 광장, 불규칙한 도로 등이 남아 있다.

 1255년경부터는 한자동맹(Hansa League)에 속하는 항만도시로서 번영하였으며, 그 당시에는 독일계 시민의 세력이 컸다. 1520년에는 스웨덴 국왕을 겸하고 있던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가 반대세력을 탄압하여 스웨덴계 귀족을 학살하였다. 이를 계기로 구스타브 바사(후일의 구스타브 1세) 아래 결속한 세력은 1523년에 한자동맹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17세기에는 크리스티나 여왕 치하에서 시의 정비가 진행되었으며, 수도였던 웁살라 대신 수도가 되어 북유럽의 문화적 중심지로서 급속히 발전해 나갔다. 그 특징은 바로크풍의 건물에 잘 나타나 있다. 1850년부터는 제3의 발전기에 들어갔으며, 낭만적인 전원도시에서 현대적인 도시로 발전하였다.

 1950년부터는 대규모의 도시계획으로 도심지를 헐어 새로운 비즈니스가(街)와 공원을 건설하였다. 특히 빈민가가 전혀 없는 것이 스톡홀름의 자랑이다. 시의 주요부는 스타덴섬의 북쪽 대안지구(對岸地區)에 있다. 도심 가까이에 중앙정거장이 있고, 수로를 건너 시청사(1911∼23 건조)가 있는데, 이 청사는 건축미로 유명하다. 역의 동쪽에는 상점가에 섞여서 은행·신문사·인쇄소 등이 각각 분화된 지구를 이루고 있다. 문화시설로는 스톡홀름대학·아카데미·국립박물관·노벨연구소 이외에 의학·경제·공학·행정·미술·음악 등의 전문학교가 있고, 2개의 교향악단과 하나의 가극단 등이 있다. 해마다 있는 노벨상 수상식은 콘서트홀에서 거행되고, 축하연은 시청사에서 베풀어진다. 시가지의 북부에는 1912년에 만들어진 올림픽 경기장이 있고, 동쪽의 스칸센섬에는 노르딕박물관과 유원지가 있다.

 수로의 남안(南岸)에는 많은 조선소와 공장이 있으며, 그 밖에도 양조·식품·화학공업 등이 활발하다. 또 역사가 오래 된 성냥 제조도 널리 알려져 있다. 주요공업 중에서도 의복·인쇄 등의 공장은 시가지 쪽에 분산해 있고, 조선·화학·직물·자동차·고무·전기(電機) 등의 공업은 본사만 시내에 두고, 공장은 땅값이 싼 지역으로 옮기는 경향이다. 시의 서쪽 약 10km 지점의 브로마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시가지는 많은 섬과 반도에 흩어져 있으나 철도·지하철·버스 등으로 능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교외에는 높고 낮은 아파트군(群)이 뒤섞여 변화의 묘를 보이고 있으며, 건설 당시의 기술과 사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에는 중립국의 수도로서 외교활동의 무대가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핵무기 금지운동을 비롯하여 국제적인 회의가 많이 열리고 있다.

 

스톡홀름의 음식점

오페라셀라렌(Operakallaren)

 스톡홀름의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1694년에 오픈했다. 맛있는 노르딕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요금은 조금 비싼편이다.

☞Tel: 46) 08 111125

Mon-Sat:12.00pm-01.00am

Sun-17.00pm-24.00pm

 

펨 스모 후스 (Fem Sma us)

 스웨덴 요리와 프랑식, 영국식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영업하며,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후 1시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영업한다. 감라스탄(Gamla Stan) 지하철역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요금은 177-220 SKr 정도이다.

☞Tel: 46) 08 100482, 108775

 

 

 

하나스 크로그(Hanna's Krog)

 스웨덴 가정에서 흔희 요리해 먹는 음식들이 주메뉴이며 스웨덴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다. 가격도 저렴하여 스톡홀름 방문시에 꼭 들러볼만한 곳이다.

☞Tel: 46) 08 6438225

 

그라다 엔큰(Glada Enkan)

 예술가들을 위한 지역의 모임 장소로 널리 알려진 레스토랑으로 특별한 메뉴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경제적인 곳이다.

☞Tel 46) 08 339575

 

닐스 에밀(Nils Emil)

 매우 대중적이고 인기있는 레스토랑으로 넓은 식당내에는 전통 스웨덴식으로 음식을 접대하고 있으며, 가격도 적당하다.

☞Tel: 46) 08 407209

 

 

스톡홀름의 쇼핑정보

 디자이너 의상이나 아름다운 스웨덴 크리스탈과 손공예품등을 알맞은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상가의 영업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이다. 주요 대도시의 경우 몇몇 백화점은 오후 8시에서 10시까지 영업하며, 일요일에도 오후 12시부터 4시까지 영업한다.

 

 

스톡홀름의 쇼핑센터

스벤스트 그라스 브틱(Svenskt Glas Butik)

 매우 다양하고 특색있는 유리제품, 주전자, 수공예 목각제품등을 다양하게 구비해 놓은 상점이다.

☞ 주소: Add. 8 Birger Jarlsgatan

 

크록카가든(Klockargarden)

 스웨덴의 전통적인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가게로 부피큰 가구에서부터 직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공예품을 접할 수 있다.

☞ 주소: Add. 55 Kungsgatan

☞ Tel: 46) 08 214726

 

헴린스 복핸들(Hemlin's Bokhandel)

 외장용 장식품이나 특색있는 그림들, 다양한 판화들을 판매하는 곳으로 스웨덴의 예술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 주소: Add. Vaster langgatan 6

 

노르디스카 백화점(Nordiska Kompanient)

 유럽에서 품격있고 매력적인 'NK' 백화점으로 최고의 디자인 센터가 위치하고 있어 다양한 상품과 더불어 수준 높은 스웨덴 디자인을 접할 수 있다.

☞ 주소: Add. Hamngatan 18

 

 

스톡홀름의 축제

 유명한 여름 훼스티벌인 Water Fastival을 비롯하여 일년내내 흥미로운 행사로 가득하다. 스톡홀름을 방문하기에 제일 좋은 때는 12월이다. 이때 스칸디나비아와 시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반기는 불빛으로 휘황찬란하다. 스톡홀름의 전통적인 루시아(Lucia) 축제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동안 빛의 여황이 촛불 왕관을 쓰고 도시를 돌아다니고 크리스마스 시장은 어둠속에서 빛으로 축하를 한다.

 

스톡홀름 여행길잡이

로얄 스웨덴 오페라 & 발레(The Royal Swedish Opera & Ballet)

 로얄 오페라하우스에서 펼쳐지는 오페라와 발레를 즐길 수 있다. 스톡홀름에서 7마일 떨어져 있는 Drottningholm Court Theater (18세기 양식으로 건축된 극장)에서 여름철마다 펼쳐지는 오페라와 발레의 관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줄 것이다.

 

스톡홀름 카드(Stockholmcard)

 1명의 어른과 18세 미만의 어린이 2명을 기준으로 하루당 SKr 185로 버스, 시내전차, 지하철등과 70여군데의 박물관 및 관광지 입장료, 주차장 이용, 5월 10일부터 8월 30일까지 실시되는 보트를 이용한 스톡홀름 시내 관광비의 모든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카드이다. 스톡홀름 카드는 여행자 사무소(Swedenhouse, 중앙역에 위치해 있는 Hotellcentralen) 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 Sverigenhuset -The Sweden House

-Tel: 46) 08 789 24 95

-주소: Hamngatan 27, P.O.Box 7542, S-103 93 Stockholm

 

* Hotellcentralen

-Tel: 46) 08 24 08 80

-주소: Central Station, S-111 20 Stockholm

 

 

 

 

노벨(Nobel, Alfred Bernhard(1833.10.21 ~ 1896.12.10))

 폭탄뇌관과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막대한 부를 얻은 후, 사후 그의 유언에 따라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상 노벨상을 제정, 세계평화, 과학을 포함 여러분야에서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수여되고 있다. 노벨이 태어난 스톡홀름에서 물리학상, 화학상, 경제학상, 문학상, 생리학/의학상 등이 시상되고, 노벨이 죽은 날에 오슬로에서 평화상 시상식이 열린다.

 폭탄뇌관과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막대한 부를 얻은 후, 사후 그의 유언에 따라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상 노벨상을 제정, 세계평화, 과학을 포함 여러분야에서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수여되고 있다. 노벨이 태어난 스톡홀름에서 물리학상, 화학상, 경제학상, 문학상, 생리학/의학상 등이 시상되고, 노벨이 죽은 날에 오슬로에서 평화상 시상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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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탄뇌관으로 부와 명성을 얻게 된 노벨은 1867년 다이너마이트로 또다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다이너마이트는 건설현장에 폭발적으로 사용됨으로써 노벨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다. 협심증으로 고생하던 노벨은 1896년 이태리 산레모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사망후, 그의 유언에 따라 노벨상이 제정, 1901년 12월 10일 최초의 노벨상 수상식이 있는후, 해년마다 노벨상이 수여되고 있다.

 

 

시청사(Stadshuset)

 건축가 라구날 오스트벨리의 설계로 1912 - 1923년에 완성되었다. 내셔널 로만 양식의 건물로 북유럽 중세풍의 디자인이 독특하며, 베니스 궁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외관은 시청이라기보다 궁전이나 고성 분위기가 느껴진다. 쿵스홀멘(Kungsholmen)섬 남쭉에 위치해 있는 시청사는 북유럽 최고의 건축미를 자랑한다.

 1923년 라그나르 오스트베리의 설계로 만들어 졌으며, 800만개의 벽돌과 1,900만 개의 금도금 모자이크 완성되어 졌다. 시청사 내부의 푸른방(Bla Hallen)은 해마다 12월 10일경에 열리는 노벨상 수상식후의 만찬회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높이 106m의 탑위로 올라가면 스톡홀름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바사 박물관(Vasa Museum)

 구스타프 2세 시대인 1625년에 건조되어 1628년 8월10일 처녀항해때 스톡홀름항에서 침몰한 스웨덴 왕실의 전함 바사호가 전시된 곳이이다.

 구스타프 2세 시대인 1625년에 건조되어 1628년 8월10일 처녀항해때 스톡홀름항에서 침몰한 스웨덴 왕실의 전함 바사호가 전시된 곳이이다. 침몰된이후 1956년에 해양 고고학자인 안데스 프란첸(Anders Franzen)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발견후 333년만인 1961년에 인양되었다.

 1962년 임시 박물관이 문을 열어 이곳에서 1979년까지 보호액을 뿌리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1988년 바사호는 반정도 완성된 새로운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1990년 바사 박물관이 개관되었다. 건조 당시 스웨덴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호화 전함으로 침몰한 이유는 애초에 계획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포를 이 배에 싣고자 한것이 원인이었다. 당시의 건조기술로는 경험이 없었던 큰 선박을 건조해야 했고 이에 있어서 바사는 상부하중이 너무 커 균형을 유지 하지 못하고 돌풍에 침몰하고 만 것이다.

 총길이 69m, 최대폭 약 11.7m, 높이 52.2m, 배수량 약 1,210t, 적재 대포 64문, 탑승 가능인원은 450명(300명의 군인)이다.

 바사호의 인양과 함께 당시의 목조품과 배안의 조각상등과 더불어, 당시 선원들의 유골과 유품들이 함께 발견되어 17세기의 사회상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박물관은 총 7층으로 구성되어져 있어, 바사호를 여러각도에서 바라 볼 수 있다.

[VASA 박물관 관람]

o 개장일시 : 1월 2일 ~ 6월 9일, 8월 21일~ 12월 30일 - 매일: 10:00 ~ 17:00, 수요일: 10:00 ~ 20:00

                  (Vasa 레스토랑: 11:00 ~ 16:00)

                 6월 10일 ~ 8월 20일/9.30 ~19.00 (Vasa 레스토랑: 9:30 ?18:30)

 

☞ 바사호 추적 발굴현장

 

o 바사박물관 공식사이트

http://www.vasamuseet.se

 

o 바사박물관 한국어사이트

http://www.vasamuseet.se/

Vasamuseet/international/Korean.aspx?lang=en

 

 

 

밀레의 조각공원(Millesgarden)

 스톡홀름시내 북동쪽의 리딩외(lidingo )섬에 위치해 있으며 스웨덴의 세계적인 조각가 카를 밀레스의 저택에 만들어진 조각 공원이다. 정문에 들어서면 조금은 작은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저택내의 조각품과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는 정원, 그안을 가득채우고 있는 규모 있는 조각품들에 감탄을 금지 못하게 된다.

 밀레스의 조각품은 그리스와 북유럽의 신화를 주제로 하고 있으며, 발트해를 배경으로 서있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조각에서는 넘치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화살이 없는 활을 들고 악마를 겨누고 있는 천사와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악마의 조각품은 밀레스의 예술세계의 독특함을 느낄 수 있다.

 

 

세르겔 광장(Sergels Torg)

 현대적인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스톡홀름 중심지 위치해 있다. 세르겔 광장을 중심으로 모든 길이 뻗어 나가고 있어 여행자들에게는 휴식처이자 이정표 같은 곳이다. 광장 중앙에는 8만개의 유리로된 타워가 있으며, 길이 160m의 유리로 만들어진 문화회관(Kulturhuset )이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문화회관 내부는 시립극장, 갤러리, 놀이시설, 도서관, 카페테리아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광장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과 노점상들로 항상 붐빈다.

 

 

대성당(Storkyrkan)

 왕궁앞에 위치해 있는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13세기의 성당으로 1279년에 건축되어 여러차례 증·개축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성당의 내부는 왕가와 귀족의 문장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덴마크와의 전쟁의 승리 기념으로 1489년에 제작된 4m 높이의 나무조각상인 <성조지의 괴물퇴치상>과 바로크 양식의 옥좌, 흑단과 은으로 제작된 제단등이 특히 눈이 띈다.

 또한 이 성당에서는 역대 국왕의 세례식, 대관식, 결혼식이 거행되기도 했으며, 현 국왕인 구스타프와 실비아 왕비도 1976년 이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왕 궁(Kungliga Slottet)

 감라스탄의 북쪽에 세워진 3층 건물로 약 60년의 공사 끝에 1754년 완성되었다. 이탈리아의 바로크와 프랑스의 로코코 양식을 도입한 건축물로 대대로 왕실 궁성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그 역할은 드로트닝홀름 궁전이 담당하게 되었다.

 지금은 외국의 귀빈을 위한 만찬회장으로 쓰이고 있다. 3층 건물안에는 608개의 방이 있는데 도자기와 유리그릇, 테피스트리등 귀중한 유품들이 전시된 베르나도트의 방, 영빈의 방, 왕관과 보석 및 귀금속이 있는 보물의 방, 대관식과 왕실의 행사에 쓰이는 마차와 의상 등을 볼 수 있는 무기관등이 볼만하다. 매일 12:00에는 위병 교대식이 있다.

 

감라스탄(Gamla Stan)

 13~19C에 지어진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구시가의 중심은 스토르토에트 광장이다. 오래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중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들 건물 내부는 레스토랑이나 목로주점, 카페, 부티크등으로 개조되어 관광객의 인기를 끌고 있다. 다리를 건너 국회의사당을 지나면 왕국과 대성당, 1776년에 세워진 증권거래소등도 볼 수 있다. 또한 증권거래소의 맨 윗층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뽑는 스웨덴 아카데미 본부가 있다.

 

 

 

스칸센 박물관

 스칸센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에는 스웨덴의 각 지역의 특성을 담은 150 여개의 전통적 집들을 볼수 있다. 이곳에는 Katowice 마을을 마지막으로 이끌어나갔던 관리의 집도 볼수 있으며, 북부 Silesia지역의 목가적 가옥들도 발견할 수 있다. 옥외에 전시된 조각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Kazimierz Skiba 갤러리와, 일본정원도 큰 볼거리이다.

o 주소 : tiftelsen Skansen Box 27807 11593 Stockholm

o 전화 : : 08 - 442 80 00

o 팩스 : 08 - 442 82 80 

 

 

민속학 전통마을

 스톡홀름에서 북서쪽으로 몇시간만 가면 다랄나 가까이에 스웨덴 민속학 전통 마을을 볼 수 있다. 민속 무용단이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가 하면 여름축제가 이어진다. 다랄나는 아름다운 경치로 전통적이며 민속적인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꼭 한반은 방문할 만한 곳이다.

 

 

 

스톡홀름 근교

드로트닝홀름(Drottningholm)

 현재 스웨덴 왕과 여왕이 거주하는 곳으로 연중 일반에게 공개된다. 이 17세기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은 스톡홀름 시내에서 약 11km 떨어져 있다.

 드로트닝 홀름까지 가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보트를 타는 방법(왕복 70kr, 50분 소요)이다. 보트는 스톡홀름 시청사 옆의 Stadshusbron에서 출발한다.

 다른 하나는 T-BANA를 타고 Brommaplan에서 하차, 드로트닝홀름으로 연결되는 Malaro 버스를 타면 된다.

 주요 볼거리는 아직도 옛 무대장치를 이용해 공연되는 드로트닝홀름 극장(Drottningholm Court Theater)과 '작은 베르사이이유'로 불리우는 드로트닝홀름 궁전(Drottingholm Palace)이다. 궁전의 극장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무대 중의 하나로 아직도 18세기 발레와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다(입장료:어른 30kr)궁전은 1662년 스웨덴 여왕 엘레오노라를 위해 지어진 것으로, 내부는 17~19세기 회화와 장식품들로 꾸며져 있다.

 

웁살라(Uppsala)

 스톡홀름 북서쪽 65km 지점에 위치한다. 1270년 대주교좌의 소재지가 되었으며, 18세기까지 스웨덴의 수도로서 문화와 학술의 중심이 되었다. 성과 교회가 있으며, 13~15세기에 건립된 대성당에는 G.바사·C.린네·E.스베덴보리 등의 무덤이 있다. 1477년 창립된 웁살라대학은 학술적 업적으로 유명하며, 그 도서관에는 귀중한 고서와 희귀본이 소장되어 있다. 그 밖에 대주교 관저, 빅토리아박물관, 린네박물관, 왕립과학협회, 천문대, 식물원, 웁살라 성 등이 있다.

 1860년대에 철도가 부설된 후로 산업은 농업에서 공업으로 이행하였으며, 주요공업으로는 인쇄업·기계제조·철공업 등이 있다.

 

웁살아 대학

 1477년에 설립되어 북유럽에서는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설립은 당시 덴마크 지배하의 연합왕국이던 스웨덴의 문화적 독립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설립 후 얼마 동안 재정빈곤과 학교 내외의 분쟁으로 자주 운영이 침체되었으나, 1624년 구스타브2세의 토지기증과 1626년의 대학헌장에 의하여 그 기초가 확립됨으로써, 코펜하겐대학과 함께 북유럽의 학문적 중심이 되었다. 신학 ·법학 ·의학 ·문학 ·사회과학 ·과학 ·약학 등의 학부가 있고, 국제적으로 알려진 지진연구소가 있다.

 

린네박물관

18세기의 세계적인 식물학자 린네가 식물을 연구하던 집으로 현재는 박물관이 되어 그의 유품과 웁살라 출신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 1,000종이 넘는 화초가 자라는 정원과 함께 내부가 공개되고 있다.

 

 

 

 

 

웁살라 대성당

 13세기 후반에 착공하여 150년 후에 완공된 스웨덴 루터 교회파의 총본산이다. 2개의 첨탑은 1702년의 화재로 불타고, 오늘날의 것은 19세기 후반에 복원된 것이다. 성당 내부의 석관에는 스웨덴의 국부 구스타브 1세와 두 왕비가 잠들어 있다.

 

웁살라성

 스웨덴왕국의 창시자 구스타브 바사의 명령에 1540년대에 지어진 요새이자 성. 왕실의 주거지이기도 했다. 또한 스웨덴 왕들은 성의 앞쪽 언덕 아래에 있는 웁살라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하고 이곳에서 연회나 축하파티를 했다.

 

 

말뫼(Malmö)

 스웨덴 최남부 말뫼후스주(州)의 주도(州都). 인구 26만 4989(2002).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과 외레순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으며, 국내 철도의 중요한 접속역(接續驛)으로서, 또한 덴마크를 경유한 유럽대륙으로부터의 무역항으로서 중요하다. 무역항으로서는 스웨덴 제3위의 무역고를 차지한다. 잔교(棧橋)의 총연장은 10.5㎞에 이르며, 3개의 건독(乾 dock)과 1922년에 비관세잔교(非關稅棧橋)가 설치되었고, 공업도시로도 유명하다.

 12세기에 도시가 되었으며, 14세기에 청어잡이로 번영하였고, 튀베크 등 여러 도시와의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1353년에는 시장권(市場權)을 획득했다. 16세기에는 코펜하겐 다음가는 덴마크 제2의 도시로 성장하였으나, 1658년에 체결된 로스킬레화약(和約)에 따라 스웨덴령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베드로 교회 (ST. PETER'S CHURCH)

 15세기 고딕양식. 남부 스웨덴 최대의 교회로 벽돌로 지어진 여 러채의 예배당을 갖춘 건축물, 17세기의 제단이 볼 만하다.

 

시청사 (TOWNHALL)

 16세기에 창건된 르네상스 양식(현재의 것은 19세기에 재건). 1층에 인상적인 홀이 있고, 일찌기 성크누트의 길드에 의해 사용 되었던 것.

 

(MALMOHUS CASTLE)

 15세기에 창건되어, 16세기에 크리스찬 3세에 의해 재건된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성. 현재 내부는 시의 역사를 말해주는 박물관이다.

 

시 박물관

   (STADSMUSEET, MALMOHUSVAGEN)

 석기 시대부터 중세까지의 말뫼의 역사를 폭넓게 보여주고 있다.

 

미술관

   (KONSTMUSEET, MALMOHUSVAGEN)

 16세기에서 현대까지의 미술을 전시.

 

기술박물관

   (TEKNISKA MUSEET, MALMOHUSVAGEN)

 옛날의 증기엔진, 잠수함, 비행기, 자동차, 오토바이 등 옛날의 과학 기술을 전시한다.

 

해양박물관

   (SIOFARTS MUSEET, MALMOHUSVAGEN)

 스웨덴에 있어서 이 지역의 바다와 선박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전시실에는 바이킹 배와 해적선의 모형이 있다.

 

사령관박물관

  (KOMMENDANTHUSET, MALMOHUSVAGEN)

 과거 스웨덴이 개입했던 전쟁을 묘사한 투시도와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마차박물관

   (VAGNMUSEET, DROTTNINGTORGET)

 각 시대별로 다양한 종류의 마차를 전시.

 

 

스포츠박물관

   (IDROTTSMUSEET, BALTISKA HALLEN)

 스포츠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스웨덴 유일의 박물관.

 

림하문박물관

   (LIMHAMNS MUSEUM, LIMHAMNSVAGEN 102)

 18∼19세기의 에레슨드 해협을 따라 있었던 어부의 집을 재현하 여 전시.

 

말뫼 미술홀

   (MALMO KONSTHALL, SIT JOHANNESGATAN7)

 현대의 작품을 다수 전시하고 있는 근대 미술관. 가이드에 의한 투어 가능. 안에는 서점과 카페가 있다.

 

포름 디자인센터

   (FORM AND DESIGN CENTER, LILLA TORG)

 스웨덴의 디자인과 장인 예술의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안에는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다. 오픈은 화, 수, 금요일에는 오전11 시에서 오후5시까지하고 목요일에는 오전11시에서 오후6시까지 토요 일에는 오전10시에서 오후4시까지 일요일에는 정오에서 오후4시까지 한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토루프성

   (TORUPS SLOTT. 말뫼의 동쪽 15km)

 공원 안에 있는 16세기에 건설된 성. 성을 둘러싼 해자(성둘레 에 판도랑)와 성벽은 담쟁이넝쿨로 구분되고 있다. 성내에는 회화 등을 5∼6월의 주말에 전시. 성내에는 30분마다 가이드에 의한 투어가 있다. TORUP행 버스는 SLUSSPLAN 광장에서 발착.

 

스바네홀름성

   (SVANEHOLMS SLOTT. 말뫼의 동쪽 30km)

 말뫼 근교에 있는 16세기에 건립된 스바네홀름성은 성내의 다르메 레스토랑으로 유명. 스웨덴 국왕과 왕비도 이 곳에서 식사한 적이 있다. 월요일에는 호화로운 스뫼가스보드를 즐길 수 있다.

 

 

 

예테보리(Göteborg)

 고텐부르크(Gothenburg)라고도 한다. 카테가트 해협 연안의 예타강 어귀에 있다. 덴마크의 북단과 마주보고 있다.

 스웨덴 남부 예탈란드지방 서쪽에 있는 항만·공업도시. 인구 47만 4298(2002). 스웨덴 제 2 의 도시로서 예테보리보후스주의 주도이다. 예타강 하구에 있으며, 카테가트해협으로 대서양과 통하는 부동항이다. 만 바깥은 다도해가 펼쳐져 있어서 풍광이 아름답고, 군항(軍港)으로서도 좋은 지역이다. 약 13㎞의 안벽(岸壁)을 가지고 있는 스웨덴 제일의 수출입항 및 어항이다. 볼보자동차공장·조선소를 비롯하여 약 900개의 기업과 해운회사가 있다. 지방행정의 중심지로서 지방항소법원이 있다. <젊은이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각종 교육기관을 갖추고 있으며, 종합대학 외에 공업대학·의과대학·예술대학·선원대학 등이 있으며 울레비경기장과 북유럽 제일의 실내경기장이 있다.

  예타광장·성지공원을 중심으로 미술관·박물관·극장이 늘어서 있으며, 큰 오락시설도 있다.

 중세부터 상업지역으로 알려졌으며, 1473년 시가가 건설되어 예타홀름이라고 하였다. 1603년 카를 4세에 의하여 현재의 시가지가 건설되어 스웨덴 서부의 경제·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1731년 스웨덴동인도회사의 설립과 함께 무역항이 되었으며, 1800년대 후반 예타운하의 개통으로 철재·목재의 수출량이 늘어났고, 20세기에 들어서자 철도의 부설과 자동차 교통의 발달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유럽에서는 이제 보기 드문 시내전차가 있고, 스웨덴에서 가장 긴 조교(弔橋)인 엘브스볼리교가 있다.

 

》교  통

 철도는 스톡름홀에서는 4:15분 걸린다. 그밖에 말뫼에서는 4시간, 오슬로와, 코펜하겐 에서는 각각 4:45분 걸린다. 버스는 스톡홀름에서 7시간, 말뫼와 오슬로에서는 5시간 정도 걸린다. 시내는 버스와 전차를 이용하게 되는데, 24시간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는 공용 패스를 사면 편리합니다. 요금은 19Skr, 1회 티켓은 10Skr이다.

 

예타 광장

 시내의 메인 스트리트인 Kungsportsavenyn 남쪽 끝에 있는 문화 중심 광장, 광장 중앙에는 포세이돈 상 분수가 있고 그 주위로는 시립극장과 , 미술관, 콘서트 홀, 도서관 등이 있어 흔히 문화 센터라고 불린다.

 

리세베리 유원지(Liseberg)

 예타 광장 북쪽에 있는 예술 공예 박물관으로 각종 기획 전시회가 자주 열린다. 북유럽 공 예품 외에도 중국, 일본 등지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요금 : 4월 중순~9월에 개원 35~40Skr, 7세 이하는 무료.

 

뢰스카 박물관(Rohsska Museet)

 예타 광장 남동쪽에 있는 북유럽 최대의 유원지 항상 젊은이들로 붐비는 이 곳에는 카를 밀 레스 등 조각가들의 작품이 많아 공원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호수의 도시 키루나(Kiruna)

 키루나는 스웨덴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이 20,000㎢에 달하여, 스위스 면적의 절반에 해당된다. 그 면적에 있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하지만 주민은 26,000명으로 매우 적은 수의 사람이 사는곳이기도 하다. 주민의 80%가 키루나 시내에 거주하고 있다.

 키루나에는 6,000여개에 달하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그중 토르네트라스크 호수는 가장 큰 호수로 무려 70에 달한다. 이외에 7개의 호수가 모여있는 지역은 "유럽의 마지막 야생지"라고 불릴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유명 관광지이기도 한 이곳은 Norrbotten주로 모여드는 관광객의 절반 가량을 끌어들이고 있다. 다양한 스포츠도 즐길 수 있는데, 카누를 비롯하여, 래프팅, 스키등을 즐길수 있는 곳이다. 또한 Jukkasjarvi 라 불리는 얼음호텔은 키루나에만 맛볼수 있는 자연을 만끽할수 있는 곳으로 호텔 외부와 내부, 장식품, 조각등이 모두 얼음으로 만들어진 세계 유일의 얼음호텔이다.

 

키루나의 문화체험

 스웨덴 최북단에 위치한 키루나에서는 연중 겨울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세계 최고 아이스하키 팀들의 경기도 볼만하며, 올림픽 에서 단골로 메달을 따내는 크로스 컨트리 스키코스가 잘 되어 있어, 선수들이 많이 연습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등산, 카누경기, 래프팅 등의 스포츠는 여름에도 즐길수 있다.

 

키루나 시의 다양한 축제들

 7월에 열리는 민속춤 & 민속음악 페스티발을 비롯하여 다양한 전통 축제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1월 말경에 열리는 스웨덴 눈 조각 대회에는 세계에서 참가자들이 모여들어 다양하고 아름다운 눈 조각품을 선보인다.

 한편 3,4월경 열리는 개썰매 대회 (일명 Fjlldraget)는 유럼에서 가장 큰 대회이자, 과격한기로 소문난 대회로, 그 역사를 자랑한다. 26,000명의 키루나 시민보다 개의 수가 더 많기로도 유명한 이곳의 개썰매 대회에는 많은 관광객들도 모여든다.

 이밖에도 케네브네카이스 산맥을 등반하는 산악등반대회, 토르네트라스크 호수에서 열리는 얼음 낚시, 대회, 등 겨울을 만끽할수 있는 다양한 축제가 연중 끊이지 않는다.

 더 자세한 키루나 여행안내를 원하는 이는 키루나 관광사무소로 연락하면 된다.

 

》키루나 관광사무소

o 주소 : Lars Janssongatan 17 Box 113 S-98 122 Kiruna

o Tel : +46 980 188 80Fax: +46 980 182 86

o E-mail : lappland@kiruna.se

 

 

얼음호텔 (Jukkasjarvi)

 세계에서 하나뿐인 얼음호텔로, 얼음침대에서 잘수 있는 객실이 100여실 마련되어 있다. 눈과 얼음으로 외부는 물론, 내부의 등을 비롯하여, 각종 얼음 조각품, 침대 등이 모두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다.

 호텔내부에 특별히 얼음바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얼음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특별한 경험을 할수도 있으며, 얼음 예배실도 마련되어 있는데, 심지어 성경책까지 얼음으로 되어 있다. 보통 영하 2℃~ 3℃의 기온이 되면 공사를 시작하여 겨울철내 사용을 하다가 봄이되면 자연히 녹아없어지는 자연 그대로의 호텔인 셈이다.

스웨덴-얼음호텔.jpg

 한해 평균 6000여명의 투숙객이 묶어가며, 관광객도 5만명 정도가 다녀간다. 객실료는 하루밤 $200 정도 한다.

 

 

케브네카이즈 산(Kebnekaise mountain)

 스웨덴에서 가장 높은 산맥으로 무려 해발 2,117m에 달하는 산이다.

 산봉우리 정상에 서면 스웨덴 국토의 9%에 달하는 지역이 눈에 들어오며, 다양한 산봉우리가 백색의 눈으로 덮인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수 있는 곳이다. CITY HIL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라이니오(Lainio) 호수

 이곳에서는 캠핑을 하며 한적하게 낙시를 즐기기에 안성마춤인 곳이다. 호수 주변에는 작은 오두막들도 자리잡고 있어, 주말 휴가를 가족들과 지내기에 좋은 곳이다.

 

칼리스 강(Kalix)

 키루나는 호수의 마을이기도 하다. 70km에 달하는 토르네트라스크 호수를 비롯하여, 7개의 유명한 호수가 있다. 이들은 칼리스, 토르네, 라인오, 로타스, 비타니, 님, 그리고 핀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무오니오 강이 이들로, 그중 특히 칼리스 강은 매우 아름답다.

 

광산(Kiirunavaara)

 키루나에서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광산을 관광할 수 있다. 이 광산에서는 철광석이 추출되는데, 이곳은 Kirunavaara의 TOP에서 370m 지하에 위치해 있다. 관광객에게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o 전화 : 0980-188 80

 

토르네트라스크 호수(Tornetrask Lake)

 면적 320㎢. 길이 120km. 너비 1~10km. 노르웨이와의 국경 부근에 있는 키루나 북쪽에 있다. 가장 깊은 곳이 164m이고, 호면의 해발고도 341m이며 남동쪽 끝에서 토르네엘벤강이 흘러나간다. 호숫가에는 라프인이 이곳저곳에 천막집을 짓고 군락()을 이루며 산다. 호수 북쪽의 남안에 있는 아비스코는 관광지로 알려져 있으며 룰레오나르비크(노르웨이)를 잇는 간선도로와 철도가 지난다.

 

 

아비스코 국립공원(Abisko National Park)

 아비스코 국립공원은 1909년 설립된 공원으로 7,700헥타르에 이르는 광활한 자연공원이다. 토르네트라스크 호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스웨덴에서 가장 햇볕이 강한 곳 중의 하나이다.

 Njulla 산에서 바라다본 아비스코 국립공원의 전망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이곳에서는 등산과 스키를 비롯하여 다양한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데 가족 관광객이 특히 많이 찾는 곳이다. 도한 여름철에는 산악 자전거도 즐길수 있으며, Riksgrnsen 스키장에서 여름에 즐기는 스키도 정말 재미있다.

 

 

 

보덴(Boden)

 스웨덴 북부 노르보텐주에 있는 도시로 룰레오의 북서쪽 32km 떨어진 룰레올브강(江) 연변에 위치한다. 스톡홀름에서 오는 철도가 여기서 대서양 연안의 나르비크(노르웨이) 방면, 룰레오 방면 및 핀란드 국경의 하파란다 방면으로 갈라진다. 철도를 비롯한 교통의 요지에 있어 1918년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스웨덴의 최강·최신의 요새가 있고, 제화(製靴)·제재·목재 공업이 활발하다. 북쪽에 있는 비행장은 라플란드지방에 대한 의료구급 보급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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