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럭셔리아웃도어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산행후기 스크랩 설악 서북릉.
정윤배 추천 0 조회 20 09.11.04 22: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속초 고속버스터미날에 오면 언제나 들리는 짱께빵이 있다.

북한에서 일사후퇴때 피난 내려와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정착민이 아닌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아바이동네. 그곳엔 짱께와 짬뽕을 정말 잘하는 집이 있다.


짱께에 이과두주 한병을 마시고 설악동행 시내버스에 몸을 싣는다.

당연히 2,000원 하는 설악산 입장료는 낼 수 없다.


"뿌득 뿌득, 빠지직"


설악동 매표소에서 비선대를 향하는 길엔 인적하나 없다.

신흥사 입구를 지나고 한여름 암벽훈련 전진기지 노릇을 하던 저항령 캠프 장에선 그때 당시의 술먹고 얘기하는 소리 ,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오버행 인공등반 연습바위를 지나고 음식점을 지나고 동명 항에서 부터 마신 술기운이 숨결을 통해 내가 걸어온 길에 酒跡을 남긴다.

알코올의 이동경로를 추적해 영상으로 남기는 장치가 있다면  B셔터를 놓고 손전등으로 소를 그려낸 피카소의 사진처럼 내 족적을 그려 나갈 것이다.



덩그마니 페치카가 놓여있는 재래식 군대침상을 연상케하는 비선대 산장에선 한 명의 얼음꾼과 3명의 아저씨가 이제 금방 산행을 마치고 왔는지 짐정리와 함께 늦은 저녁식사준비를 하고 있다.



대충 짐을 풀어놓고 잠 오기만을 기다리는 나에게 3명의 아저씨중 한 명이 다가와 이것 저것 산행에 대해 묻는다. 언뜻 복장이 아저씨 복장이지 산행경력은 나와 비교될 수 없게 많은 사람들인가 보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다보니 산에 왔고 그러다 보니 산이 좋아졌다는 40대 후반의 사람들



입고 있는 다나거위털파카를 보더니 내 산행 경력이 대단한지 아나 보다.

40대 후반이라고는 하지만 대단한 건각들이다. 어제 새벽 오색으로 올라와 대청에서 일출을 보고 공룡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길이란다. 꼬박 산행만 20시간

날이 좋아 공룡능선에서 사진 찍으며 한참 놀고 오느라고 늦었단다.


오색에서 대청까지 5시간, 희운각 1시간, 공룡능선 5시간, 마등령에서 비선대 3시간,아침과 점심식사 각 한시간씩 두시간.

잠도 제대로 못잤을텐데 그 시간에 그 산행경로를 온다는 건 내 체력으론 버겁기는 커녕 불가능하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소청산장 문이 잘 안열렸었다는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들이다. 게다가 동계산행장비와 사진장비의 무게는 장난이 아닐텐데



눈을 감았다 떠보니 아침이다. 사람이 몇 안되는 산장의 공기는 코끝이 짱하게 시리다.나중에 혼자 먹은 이과두주때문인지 숙취가 남아있진 않지만 입안이 깔깔한 게 입맛이 통 없다.



서둘러서 설악산장에 도착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설악산장에서 일박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 들어가봐야 딱히 할 일도 없고 언제나 서둘러 내려오던 천불동 계곡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올라간다.


적설기 산행에서 비박장비를 짊어지고 느긋이란게 있을까


비선대를 지나 설악골 입구, 양폭까진 어떻게 올라왔다.

벌써부터 희운각 앞, 뒤로 있는 깔딱고개가 겁난다.


'혼자 내려가게 내버려두지, 산에 들어와 있는 놈이 혼자 잘 내려가는 놈을 뭐한다고 고속터미날까지 바래다준다고 내려갔다 이 고생을 하냐'


희운각 무너미고개를 오르는데 깔딱 깔딱 댄다.


24시간 전에 커다란 배낭으로 잘 내려가지도 않는 엉덩이 썰매를 타고 내려온 길을 무거운 발걸음으로 한발 한발 올라간다.

아무생각없이 오르기만 해야 하는데 자꾸 꾀가 나고 잡생각이 든다. 이럴 땐 그 아름다운 천불동 계곡(무너미고개 오르막엔  볼 경치도 없다)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꾸 짜증만 난다.


독심술 있는 사람이 이렇게 올라가는 내 마음을 읽었다면 아마 웃다 웃다 떼굴떼굴 굴러서 저 설악동 까지 굴러 내려갈 것이다


말은 안하지만 그 짜증을 내면서 구태여 중청까지 가야 하는 내 심사



희운각산장엔 어림잡아 40대 중반의 사진작가와 50대 초반의 산꾼이 앉아서 잡설을 풀어놓는다.

그 잡설이 처음 대하는 사람도 솔깃하게 딥따 재밌다


수렴동에서 아침에 출발해 가야동 계곡을 혼자 럿셀하면서 올라왔다는 50대 초반의 산꾼

희운각에서 낼 아침 신선대에서 일출을 찍겠다는 40대 중반의 사진작가

둘다 체격이 보통이 아니다.



50대산꾼이 살살 꼬신다.


"아 글씨, 신선대에서 찍는 일출은 별 볼일 없어요. 나랑 소청 가서 자면 집에서 담근 술 이거하고 시바스하고 한잔하자니까. 소청에서 보는 공룡 일출이 얼마나 멋있는데, 참나 모르시네."


"거참 여기서 자겠다는 사람을 왜 꼬셔요."


아 글씨로 시작하는 50대산꾼의 입담이 정말 재미있다.

플라스틱등산화에 하드웨어 오버복, 기타 산행 장비들이 삐까번쩍하다.

그러다 나 한데로 시선이 옮겨온다.

산에서 보면 학생으로까지 보는 나에게


"선생님도 같이 소청에 갑시다. 담근 술하고 시바스 시바스 좋은 거 있다니까."


"전 그저께 소청에서 잤습니다. 서북 탈려면 설악산장에서 자야돼요."


"그제 소청에서 잤다면서 서북 타려는데 왜 무너미에서 올라와요."


"그렇게 됐어요."


한낮이라곤 하지만 희운각의 온도계는 영하 12도를 가리키고 있다.


소청으로 향하는 철계단에서 한번도 쉬지 않고 꾸준히 올라간다.


'대단하다. 대단해.'


그 연세에 저런 체력을 갖고 있다는 게 부럽다. 나이만 젊으면 뭐하나.

아무나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열린 마음과 튼튼한 체력. 이분들의 얘기를 들으며 올라가는 길이 힘들지 않다.

50대 산꾼이 그 힘든 오르막에서도 풀어놓는 잡설들이 기름 집에 깨 볶듯 상당히 고소하다.



체력이 딸려 페이스를 못 맞추겠다


"먼저 가세요."


소청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소청산장 지름길이 만나는 곳 쯤에서 퍼졌다.


이게 무슨 개쪽이란 말인가.

머리 히끗 히끗한 분들과 같이 출발했는데 도저히 발을 못 맞추겠다.



한참 산행 철엔 간단한 복장으로 백담사를 거쳐 봉정암을 오르는 젊은 연인들을 볼 수 있다.

굽높은 운동화, 길게 늘어틀인 생머리, 들뜬 화장, 화장품이나 겨우 들어갔을 것 같은 이쁜이 배낭을 메고 올라가는 여자를 가끔 불수 있다.


"자기야 물. 자기야 쉬었다 가자. 자기야~ 자기야~"



70을 넘기신 할머니가 절에 공양할 쌀,부식을 배낭에 메고 산에서 주은 나무지팡이에 의지해 쉼없이 발걸음을 옮기신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쁜 아가씨 힘들 땐 자기야 자기야를 외치지 말고, 할머니처럼 관세음보살을 외우라고. 자기가 자기를 그렇게 불러대니까 자기가 힘들어 죽을 라고 하잖아."


힐끗 고개를 왜로 꼬며 째려본다.



힘든 이 마당 나도 관세음보살이다.


산행가이드인지 긴 머리에 자그마한 배낭에 무전기 하나 들고 플라스틱등산화에 12발 아이젠을 하곤 저벅 저벅 내려온다


아줌마 부대 아니 어머니 부대다.

꽤 규모 있는 단체인지 산행 복장들이 단단하다. 비록 배낭은 도시락 배낭이지만 제대로 된 동계산행복장을 갖추고 있다. 적게 잡아도 50대 중반 정도

그 이상 되 보이시는 분들도 꽤 있다.


삶의 여유가 보인다. 관광버스 안에서 스트레스 해소하는 것 보다 체력관리면에서나 정신건강에 얼마나 이로운가?


아닌가?

어머니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또 들고 뛰실 까?

그렇게 여자들은 나이 들어서도 체력이 뛰어날까?

에이 모르겠다


하여간에 중년의 연세에 이런 모습은 젊은이들의 모습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시세말 중에 곱게 늙으란 말이 있다.

곱게 늙는 것이란 결국 자기 내면 세계를 단단하게 아름답게 쌓아 나간다는 것일 게다



소청봉이다.

설악산. 더구나 적설기의 설악산은 어느 곳에 서 있어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저녁 노을 빛을 머금기 시작한 북쪽으로 뻗어나간 공룡능선의 화려함

산그늘이 가려져 어두워지기 시작한 화채능선과 천불동 계곡

모진 북풍한설에도 굳굳하게 가슴을 활짝 핀 서북능선과 귀때기청봉

끝없이 이어져가는 산, 산줄기



중청봉 안부 능선 길엔 몸을 가눌 수 없는 바람이 불어댄다. 어제 아침보다는 덜하다. 하지만 가시 같은 눈 조각들이 얼굴을 때려 바람 보는 쪽으로 얼굴을 돌릴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귀찮게 배낭을 풀어 고글을 뒤집어 쓰기에도 성가시다.



일요일 오후 설악산은 한산하다. 150명 숙박정원에 채 50명 정도나 될까.

자리를 배정 받고 짐정리를 하는 동안 천불동 계곡을 거쳐 나를 앞질러 갔던 몇몇의 무리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느라고 취사장과 침상 통로가 부산하다.


내일 아침 식사까지 넉넉히 준비를 한다.


혼자서 산에와 식사 준비를 하는데는 이골이 났다.

커다란 비닐 봉지에 눈을 가득 담아 코펠에 퍼담는다. 하나가득 물이 찰 때까지 퍼담은 눈이 잦아들때가지 눈을 퍼담는다.

시커멓고 누르스름하고 눈 녹인 물 특유의 먼지 맛이 나는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된장 찌개를 끓인다.



하루종일 별로 먹은 게 없어서인지 여기저기 음식 하는 냄세에 입맛이 살아난다.

쌀이 충분히 익게 가장 작은 불로 은근하게 오래 뜸을 들인다.

부부인지 연인인지 젊은 쌍 하나는 내가 밥하는 것을 보더니 저렇게 해야 했어야 한다면서 여자가 볼멘 소리를 한다. 아마 밥이 설익었나 보다



' 뚝딱~ '


한 그릇인지 두그릇인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장 밖으로 나와본다.

속초 앞바다의 어선 불빛들

마치 도시의 가로등 불빛 같지만 혹한기 중청에서 내려다보는 어선의 불빛은 주위의 기온만큼이나 차갑게 느껴진다.

대청봉에서 아주 느릿느릿 이쪽을 향해 내려오는 불빛이 하나 있다.

"혼자 오는 사람인가 본데 다쳤나 봐. 속도가 엄청 느리네."

답답한 산장을 나와 속초 앞바다 야경을 내려다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천천히 담배 두대를 피워 물고 한참을 지난 다음에야 산장 가로등 불빛이 닿는 부분으로 느리게 걸어 들어온다.

한쪽은 나무 지팡이를 짚고 한쪽 다리를 끌면서 들어오는 내 나이 또래의 남자. 올라오다 다리 인대가 늘어나 여간 고생을 한게 아니란다.

고생한 표정이 역력하다.

설악에서 가장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 대청봉에서 중청 내려오는 길이 아닌가 싶다.



동계용 중형비브람이 길 들지 않아 대청에서 오색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리를 끌면서 내려간 적이 있었다. 급기야 도저히 신을 신을 수가 없어 수건으로 발을 동여매고 비닐로 싸서 질질 끌고 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렇게 설악산은 나를 애닳게 한적이 두, 서너번 있었다.



일출산행을 준비하는 부산함에 눈을 떴다.

서북릉을 가기 위해 온 것이지 일출을 보러 온 것은 아니다. 취사장에 놓았다 꽝꽝 얼은 된장 찌개를 데워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짐을 챙겨 나온 시각이 대충 6시 20분


산장에서 대승령까지 평상시엔 8시간을 잡고 있다. 대승령에서 장수대로 내려가는데 약 2시간

오후 7시 전에는 장수대에 도착해야 무사히 서울로 올라갈 수 있다.



설악산장 외부 온도계의 기온은 영하 28도

끝청으로 향하는 길은 그다지 바람이 많이 불지는 않는다.

겨울엔 아침 8시 정도가 가장 춥다.

뜨끈한 아침에 중무장한 복장이라 추위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해가 뜨기전 눈 위로 드리워진 푸르스름한 빛은 심리적 위축감을 주어 실제 기온 보다 더 춥게 느껴지게 하곤 한다.


다들 대청으로 향하던가 소청으로 향하지 한계령쪽 서북을 향하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혼자 가는 길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까? 누구와 같이 갔던 길 보다 혼자 갔던 길이 기억에 더 많이 남아있다. 아니 여럿이서 갔던 적은 웃고 떠드느라 기억에 안 남는지도 모른다. 행복한 사람의 일기장이 텅 비어 있듯이, 행복한 여정을 다녀온 파티션은 텅 비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지금 서북릉 길을 혼자 걷고 있다는 것뿐이다.


 자연휴식년제가 폐지되어 개방된 서북릉을 종주 하려고 대승령에서 1408을 향하던 중 비박한적이 있었다. 그 다음날 설악의 기상 이변으로 중도에 포기했던 것을 다시 한번 시도 해보는 것이다.



96년 12월 31일 대승령과 1,408 사이 능선엔 동계용 침낭과 파카로 비박하기에 더울 만큼 날씨가 포근했다.

새벽 빗소리에 잠을 깨고 30여분 내리던 빗줄기가 갑자기 눈보라로 돌변하면서 설악산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었다. 비를 맞은 장비 일체가 얼어붙고, 한계령 길은 온통 빙판으로 도무지 차가 움직일줄을 몰랐다. 오후 2시에 장수대를 출발 이튼날 새벽 4시에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그 기상이변으로 설악산 공룡능선에선 3명의 동사자가 발생했다.



주변이 밝아오는데도 기온은 점점 내려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간혹 간밤의 바람으로 날린 분설로 인해 러셀 흔적이 지워져 등산로 밖으로 나간 적은 있었지만 끝청까진 별 무리 없이 갈 수 있었다. 끝청에서 내려다보는 내설악의 그 푸근함, 용아장성릉, 공룡능선 저 멀리 대암산, 금강산이라고 짐작되는 곳까지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씨에 설악산은 그 은밀한 속살까지 다 보여주고 있다.



끝청에서 한계령 갈림길까지는 내리막이다. 오르락, 내리락 전체적인 길은 내리막길임으로 힘들이지 않게 갈 수 있다.

바람이 잦아드는 곳은 차곡차곡 눈이 쌓여 있어 발걸음을 내딛는데 신경을 써야 할만큼 힘이 들어간다.

한계령 갈림길에 섰을 때가 몇 시쯤 됐을까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은 나지 않는다.



눈을 걷어내고 5~6인용 텐트를 쳤었던 텐트사이트가 있다.

고글을 써야 할 정도로 눈으로 인해 반사되는 햇빛은 강렬했다.

멋모르고 참고 가다간 눈에서 눈물이 찔끔 찔끔 나다가 못 견디게 아파온다. 내가 격은건 아니고 그렇다고들 한다.


귀청 오름 길은 티벳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고행 승들이 연상되는 그런 길이다.

너덜너덜, 너덜 지대에 오르면 등산화도 금방 너덜거리고 무릅연골도 금방 너덜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바위가 어떤 현상으로 이런 너덜지대를 형성하게 됐을까. 잘 아는 사람으로 부터 설명을 듣고 싶다.


눈 조각들이 드러나 있는 얼굴에 난도질을 한다. 따끔 따끔 따끔따끔

어떤 눈 조각들은 예리한 칼날로 베인 것처럼 화끈한 감을 주기도 한다.

귀청봉을 내려서면 잠깐인지 알았다.

조금 걸으면 1,408 조금 걸으면 대승령. 다 왔네


다 오긴 뭐가 다와


귀청 내리막에서 학생인 듯한 젊은이 두명을 만났다. 아침에 장수대에서 출발했단다.

대승령과 귀때기청봉 사이에 위험요소가 많다고 들었다. 세미클라이밍을 해야 하는 곳도 몇 군데 있고, 연초 대승령에서 1,408을 향해 갈 때 포대능선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곳들을 몇 번 만났었다.



길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러셀은 대부분 잘되어 있고, 바위 트래버스 하는 데에도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한 학생이 의문을 던진다.


"야 거기 우리 내려오는 길이였으니까 그렇지 올라갈려봐. 혼자서 힘들 꺼 아냐."

"글쎄 우린 둘이라서 잘 내려왔는데요. 어쩌고저쩌고."

"예 즐거운 산행되시고 설악산장까지 갈려면 서둘러야 겠네요."


오늘 서울 올라가기는 틀렸나 보다.


암릉이 시작되기 전 밧줄이 메어져 있고 세미 크라이밍을 해야 하는 곳에 다다랐다. 껌길은 껌길 인데 80리터 배낭에다 바위 틈틈에는 반질반질하게 얼음과 눈이 박혀 있어서 완력을 요구하게 만든다.

어쩌겠어 올라가야지


바위와 얼음을 벅벅거리며 12발 아이젠 이빨을 박아 넣는다.

빈 몸이라면 금방 올라갈 길인데 배낭이 치여서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나 이러다 떨어지는 거 아냐.'


발 딛을 곳이 불안해 손에 온 체중을 의지하니 팔뚝 전완근에 금방 펌핑이 온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에 나온 그런 동아줄을 부여잡고


"버둥버둥"

' 휴 올라왔다. 아찔하네 '


껌길 이네......


담배 한대 피고 능선 넘어 내설악 쪽을 내려다본다. 북주능을 겨울에 한번 가봐야 할텐데 혼자서는 자신 없고, 같이 갈 만한 사람이 누구 없다.


배낭 메고, 장비검사하고 출발.


어~ 장난이네

말등같은 능선을 조금 올라서자 바위와 흙사면이 V자를 이루고 있는 곳에 차곡차곡 눈이 쌓이고 얼음이 박혀 올라가는데 의지할 것이 없다.

발은 아이젠 발톱에 의지해서 어쩐다 해도 균형 잡을 홀드 하나 없는 맨 질 맨질한 빙설구간이다.

코베아 12발 아이젠에 온 체중을 의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올라가 올라가'


테라스 같은 부분 약 1미터 정도 남기고 균형이 깨졌다.

왼쪽 바위, 장갑낀 손으로 잡기엔 턱없이 부족한 미세한 홀드가 있는 부분을 버벅된다.

순간 여기서 추락하면 밧줄을 잡고 올라섰던 쿨루와르 하단까지 추락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 이 시간에 왕래하는 사람들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바위를 헤집던 손이 눈 쌓인 부분에 철사장을 하듯 내리 찍었다.

3센티쯤 들어가 박혔을까 그 손에 의지해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고, 타닥 뛰어 오르듯 테라스로 올라섰다.



찰나의 순간 이였다.


금방 숨이 목구멍까지 차고 토해내는 숨결이 백미터 달리기하고 난 듯 헐떡거린다.

'

헉 헉 허억 허억, 살았어.'


살았다. 눈 바닥에 찔러 넣었던 손가락을 얼른 장갑에서 꺼내 살펴보니 뻘겋기만 할뿐 멀쩡하다. 정말 아찔했다. 거기서 미끄러졌다면 급사면에서 30여미터를 추락했을 것이다.


' 히히, 쿠하하, 파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온다. 큰일 날뻔 했다.

아까 학생들이 얘기했던 데가 여기인가 보다.


겨울 산 짧은 해는 어느덧 나트륨등 같은 불빛을 자아낼 만큼 약해졌다.

긴장의 연속이다. 5~6미터 트래버스 하는 부분엔 악마의 아가리처럼 사태 지역이 입을 벌리고 있다. 누군가가 매어 놓은 9미리 자일에 의지해 트래버스 한뒤 홀드와 스탠스가 불안 불안 한곳을 딛고 올라섰다.

한계령을 오르내리는 차량들이 눈에 보이고, 한국의 마테호른이라는 가리봉, 주걱봉이 그 험준함을 들어내 보이고 있다.


어디쯤이나 왔을까?

주위는 어둑 어둑해지고 1408봉이 어디쯤인지를 생각해봤다.

귀청봉에서 만난 학생들이 장수대산장에서 묵고 아침 일찍 출발한 시간을 대략 8시로 잡고 귀청 내리막에서 만난 시간이 3시쯤 됐으니 대략 8시간 정도 걸렸다. 오르막 길이 였지만 배낭이 나보다 훨씬 가벼운 복장이라 나와 비슷한 시간이 소요되리란 판단이 섰다.



'도대체 얼마 정도 가야 대승령인지 알수가 있어야지.'



아까와 같이 바위를 트래버스 해야 한다거나, 세미 클라이밍을 해야 하는 곳이 나오면 난감하다. 연초에 비박했던 곳까지 가기만 해도 지형 판단과 시간을 숙지하고 있으니 안심 할수 있을텐데......


대승령을 향해가는 길은 백담계곡쪽 능선으로 이어진다.


암릉을 우회하면서 나 있는 길엔 쌓여있는 눈이 허벅지까지 온다. 럿셀 되어 있는 곳이 그 정도이니 길을 조금 벗어나면 표면이 크러스트 되어 있다 하여도 허리 이상까지 빠진다.



산에서 특히나 겨울산에선 허기를 느끼기 전에 뭔가를 먹어야 한다. 건과와 땅콩등을 먹었지만, 서북릉의 거센 바람을 맞아가며 오랜 시간 산행에 지쳐있었다.

암릉으로 이어지던 길은 끝나고 육산으로 이루어진 길을 걷는데 도무지 연초 비박지와 비슷한 곳이 없다. 조금만 조금만 해서 온게 이미 저녁시간을 넘었다.



능선길 적어도 영하 20도는 되는 곳에서 한기를 느끼기 시작하면 바로 저체온증에 빠지게 되고 텐트도 없는 장비로 저체온증을 벗어나긴 쉽지 않다.

저녁 8시 쯤 바람이 잦아드는 안부에 2~3인용 텐트 사이트가 눈에 들어온다.



괜히 무리해서 대승령- 장수대까지 가다 사고라도 나면 대처능력이 없다. 더 이상 지치기 전에 저녁을 해먹고 비박을 하자.


지도상 대승령과 설악산장까지 소요시간은 8시간으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기상조건, 적설량에 따라 3박4일 이상이 소요되기도 한다. 비박을 감안하고 준비한 장비이기 때문에 야간에 무리할 필요가 없다.


가스랜턴에 불을 ?히고 스토브에 코펠을 얹어 눈 부터 녹인다. 주위 기온이 차고 심란하게 부는 바람 때문인지 눈 녹는 속도도 더디다.

눈 녹인 물로만 만 하루를 버티고 있다.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대기의 산성화는 자연의 자정능력을 벗어나 남극에 내린 눈의 산성도도 심각하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마사이 족은 건기에 소의 오줌물도 받아 마신다는데 이 정도 산성 눈 쯤이야. 눈을 찔끔 감는다.



펄펄 끓던 국물도 식기에 옮기는 순간 마시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 식는다. 기온이 대략 영하 18도 정도 체감온도는 그 이하일 것이다.

그다지 평탄치 못한 텐트 사이트는 빨래판 메트레스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쪽으로 자꾸 내려간다. 다운파카와 동계용다운침낭으로 추운지는 모르겠지만 지면과 닿아 있는 엉덩이와 다리 부분이 차게 느껴진다.



금세 뜨거운 식사를 마쳤는데도 이 정도로 느껴지는 추위라면, 동이 틀때까지  고생 좀 하겠다. 심란하게 휘도는 바람결엔 분설이 휘날려 얼굴을 덮는다.

깊고 푸른 밤엔 별이 초롱 초롱하다.



왜 무섭지 않으랴.

산짐승이 음식냄새라도 맡고 덤비기라도 하면, 이러다 갑자기 기상이변이라도 일어나면, 모진 바람결에 나무라도 쓰러져 덮치기라도 하면 일어날수 있는 모든 상황을 떠올리며 공포감에 치를 떤다.



그러기를 한 시간여 추운 곳이여서 인지 소변을 봐야 할 일이 생겼다.

침낭과 침낭커버를 들추고, 침낭 속에 넣어뒀던 등산화를 꺼내고, 침낭속에 분설이 날아들지 못하도록 잘 여미고, 바람 부는 방향 반대편에 선다.

다운파카를 들추고 오버자켓을 내리고, 파일바지를 내리고 내의를 내리고 공산국가 여행 수속 만큼이나 복잡하다. 이런 일을 치루고 나면 엄청난 체온의 손실이 따른다.

여자들은 체온 손실이 더 할것이다. 동계야영산행에 나서는 여자들을 보면 존경스럽기 까지 하다.



꿈이였을까, 생시였을까. 어떤 짐승이 내려다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잠이 깼다. 하늘엔 별이 초롱 초롱하다. 메트레스와 닿아있는 신체부분이 시려 몇번은 뒤척였다. 눈만 빠끔이 뜨고 사방이 밝아오기만을 기다린다.



10분, 20분, 30분. 아무 생각도 안난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이렇게 누워 있기 보다 움직이자. 침낭과 침낭커버 사이에 넣어 뒀던 등산화도 꽝꽝 얼어있다. 일단 스토브에 불을 붙혀 등산화 부터 녹여 신고, 인스턴트 국과 밥을 넣어 끓인다.


침낭과 침낭커버 얼굴 주변엔 내쉰 숨의 수증기가 그대로 얼어붙어 허옇게  고드름이 맺혀있다. 그래도 다행이다 플라이 하나 없는데서 간밤에 눈이라도 왔었다면 밤을 지새는데 더 많은 고초가 따랐을 것이다.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바람에 날리는 분설로 배낭이며 장비들이 하얗게 눈가루를 뒤집어 쓰고 있다. 입맛이나 시장기가 있어서 밥을 먹는게 아니다. 체온을 올리기 위해선 뜨끈한 국물 이상 가는게 없다.



그 악조건 하에서도 여지없이 아침을 먹은 뒤 배변을 해야 한다. 여자들은 하루에도 몇번을 치뤄야 하는 의식이지만 가장 힘든 의식이다.

오버트라우져, 파일바지, 내의를 내리고 담배를 붙혀물고 상의 파카를 부여안고 일을 보는데는 30초도 안걸린다.



'으~ 춥다 추워. 항문이 ?어지는것 같다.'


여자들은 매서운 바람에 매번 어떻게 일을 치룰까.....


푸르스름하니 주변도 밝아지는것 같다. 바람하나 피할곳 없는 곳, 그 자리에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육산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를 3개 쯤 넘자 연초 비박했던 곳이 나타났다.

'덜그럭 덜그럭'

아이젠이 풀렸다. 등산화와 아이젠을 고정시켜주는 앞쪽 철사가 어디론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 눈속에 그 철사줄을 찾는다는건 불가능 한 일이다.

풀러서 배낭에 우선 달아맨다.

(그해 5월달 서북릉 종주때 이 철사줄을 찾았다. 5월 말이였는데 서북능선상에 10여센티의 눈이 간밤에 내렸었다.)



인기척이 나는것 같더니 젊은 남자와 여자가 단단히 복장을 갖추고 나를 향해 내려온다. 아마 이쯤 어디서 야영을 했나 보다. 둘다 산행 경력이 대단한가 보다. 여자는 화장끼 하나 없어서 그렇지 미인형의 얼굴이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는 길이에요?"

" 어제 대청에서 출발. 중간에 비박하고 오는 길이에요."

"텐트 없이 비박을요?"


상당히 의아해 하는 눈이다. 설악산 그것도 혹한기에 혼자 비박하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길 상태에 대해서 묻는다. 여자는 바위 경험이 전혀 없단다. 보조자일 가져온것도 없고......


"가지 마세요. 그러지 말고 내려가서 한계령에서 중청으로 가는 길로 가세요."


내 의견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여기까지 오기도 쉽지 않은데 내 생각을 듣고 길을 돌린다는 것은 어쩌면 두고 두고 후회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승령에서 온 길 보다 더 험해요?"

"가려면 가겠지만, 바위경험도 없고, 자일도 없이 어떻게 여자분 안전을 보장할려고 그래요. 잘 판단하세요. 가라 가지마라할 권한은 내게 없으니까."



나는 대승령으로 항하고 그들은 귀청으로 향한다.


대승령을 가기 위해선 두번의 클라이밍 다운과 세미 클라이밍을 해야 하는 곳이 있다. 그중 첫번째 클라이밍다운 장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홀드와 스탠스를 어떻게 하며 내려갈것인지 머리속에 그려봤다.


가운데 박혀있던 나무도 어딘가로 없어지고 7밀리 보조자일도 없어졌다.

귀청을 향해 가던 둘이 되돌아왔다. 아무래도 무리인것 같다는 생각이란다.


남자가 먼저 내려가고 배낭을 내려받다 놓쳐 2~30미터 아래 급사면으로 굴러 떨어졌다. 내가 내려줄걸 그랬나 보다.


일단 배낭은 놔두고 여자에게 홀드와 스탠스 위치, 어떻게 몸을 돌려 내려가야 하는지를 위에서 알려줬다. 다 내려가서 겁을 먹었는지 뒤로 떨어지는 것을 남자가 받아줬다.


'영화를 찍는군.'



급사면으로 굴러떨어진 배낭을 주워오는데 빈몸으로 갔다가 가슴까지 올라오는 눈을 럿셀하느라고 기진맥진들이다.


한계령에서 중청으로 계획을 바꿨단다.



요즘 보기 드물게 예의 바른 젊은이들은 내려가고 집에 돌아가기 이른 시각이라 안산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십이선녀탕과 안산 가는 갈림길까지는 럿셀이 양호하게 되어 있고, 드문 드문 양지에는 맨땅이 드러난 곳도 있다.



왠걸 갈림길을 지나치자 럿셀이 하나도 안되어 있다. 간혹 자국은 있지만 눈으로 덮혀 있어 일일이 럿셀을 하면서 가야 했다.

금방 숨이 턱에 찬다.


'괜히 왔나. 힘들어 죽겠네.'



치마를 두루고 있는 듯한 안산까지 3~400미터를 남겨두고 돌아와야만 했다. 럿셀이 전혀 안된데다 이 속도로 안산을 갔다왔다간 또 하루를 묵어야 될듯 해서이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에 자리를 트고 들어앉아 미군시레이션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내려가는 길이 한계산성길이 아니기만을 바라면서 때론 양지의 눈이 녹아 얼어붙은 급사면을, 때론 허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어렵지 않게 내려올수 있었다.


' 이길을 올라가라면 못올라가겠다. '



잘 가꾸어진 숲길을 지나자 대승령길과 만나고 얼마 안가 대승폭포가 보이는 장소에 다달았다.


장수대에서 한시간여 올라가면 볼수 있는 대승폭포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폭포의 길이만 백여미터가 휠씬 넘고 거대한 직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턱하고 막히는 감동을 받을수 있다.



간밤의 그 고생도 대승폭포를 지나 장수대 매표소에 이르니 언제 인가 싶다.

한참을 기다려 버스에 오르자 얼었던 얼굴과 몸이 녹아 확확 달아오름을 느낄수 있었다.

무슨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했을까 지금 내 기억엔 군데 군데 눈이 녹은 원통, 인제의 들판 만이 기억에 떠 오른다.



사족: 이 글은 97년 2월쯤 3박4일로 다녀온 설악산행중 서북릉만의 기록이다. 만 3년이 지난 지금 그 산행의 일정들이 눈에 선연하다. 산행 중 생각했던 것과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것들이 일치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확신이 서질 않는다. 오래전의 기억을 더듬어 쓰는 글은 어딘지 덜그덕 거린다. 사용한지 오래된 방에 들어간 기분이랄까. 눈에 많이 익은 것이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


1999. 2.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