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등신불 1
고3 때 국어교과서에서 읽은 김동리 작품 <등신불>
이 광동성에 실재로 있다.
대낮에도 길을 가로막고
운전자들에게서 통행세를 받고서야 길을 터준다는 광동성 북쪽 남화사 가는 길.
그만큼 궁벽한 산간이었다.
다행히 산적은 만나지 않았다. 절 앞쪽은 평야지대로 벼가 심어졌다. 부슬거리는 안남미 이모작 쌀이다. 절뒷산을 조계산이라 불렀다. 우리나라 조계종의 명칭이 여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있는 주차장 오른쪽은
초, 향, 불교용품 가게가 즐비했다. 왼쪽으로 사찰직영 채식당이 있다.
절규모는 절강성, 안휘성 등지의 사찰에 비해 큰 편은 아니었다. 우리 3보 사찰보다는 컸다. 남방에는 지금도 도교가 세서 도관이 절 안에 함께 있거나 따로 있기도 하다. 음력 절기, 숫자에 대한 미신, 혼령을 믿는 민간신앙이 일반적이다.
중국불교가 기존의 도교를 흡수하면서 대중속으로 깊이 함께 한것 또한 사실이다.
2000년 10월1일 국경절! 만4세가 안 된 김상병 손을 잡고
남화사 조사전에 봉안된 6조 혜능조사의 진신등신불을 친견하러 갔다.
당시 남화사 입장료가 삼천원. 시내 버스비 100 원일 때다. 불전함에 10 원, 20 원 짜리기 수두룩하다. 100 원도 큰 돈, 입장료가 비싸긴 했다. 대학교수 기본급 4만원, 지금은 150만원 정도. 병원 외과과장 3백만원이다.
밀레니움 그해에 광저우에서 5식구가 기차타고
샤오관 역에서 예약된 호텔로 갔다. 4성인데도 깡촌이라 비싸기만 했다. 안전상 호텔이용이 필수였다.
담날 호텔에서 불러 준 차로 남화사까지 1시간여룰 달렸다.
절문을 들어서자 목이 아파왔다.
광저우 군병원서 셋째를 수술로 낳고 몸조리를 한국식으로못해서인지
내몸은 많이 쇠약했다. 위로 두아이를 현지 보모에게 맡기지 못했고, 둘만 낳아야하는데 셋을 낳았고, 친정모친은 동생들 산바라지에 이골이 나 있었다.
한국을 못가서인지 애 셋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산후 우울증도 왔던 것 같다.
이곳은 절 경내에서 대형 향에 불을 붙여 연기를 자욱하게 낸다.
대웅전 앞 도량에는 불 붙이는곳과 대형 향을 꼽는 향로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고찰인데 여기저기 쌓인 먼지, 이끼 등이 정겹기는 커녕 옷에 묻을까봐 전전긍긍했다. 모기는 왜그리 물어대는지. 딸애 종아리가 불긋불긋했다.
모기가 더 센지, 향이 안 독한 건지
향(화학성분이 많다고 함)연기 때문에
내 목이 먼저 부어서 침을 삼키기 힘들 정도였다.
사찰은 힐링, 휴식, 수행처로 알고 있는데
모기와 향연기로 인한 통증으로 힘이 들었다. 황금연휴가 겹쳐 관광객, 동남아 화교 성지순례 팀 등등으로 발디딜틈이 없었다.
드디어 조사전 앞!
육조 혜능 등신불!
좌탈 입망-열반 후 3년간 육신이 썩지않고 몸에 남은 수분만 걷히면 사부대중이 등신불조성에 들어간다.
육조의 원래 성씨는 노가이다. 광동 남서쪽 신주에서 태어나 10 살때 홀어미를 도와 나무하다가 금강경 한구절-응무소주 이행기심-을 듣고 불법에 심취해
오조( 홍인대사)를 찾아나섰다.
당시 오조에게는 신수라는 내정된 법계승자가 있었다.
게시판에 쓰여진 육조의 게송을 읽은 오조는 법계승표지인 의발(가사, 바릿대)을 몰래 혜능에게 내주며 남쪽으로 내려가 법을 일으키라고 당부했다. 뒤늦게 신수일당이
쫓아 왔지만 육조는 이미 찾을 수 없었다. 법을 받을 당시 행자신분으로 디딜방아를 찍던
평민 복장이 도움이 되었다.
숨어살던 육조가 광저우 법성사(지금의 광효사)에서 풍번문답을 통해 비로소
초조 (1조)달마에서 혜가 승찬 도신 홍인에 이은 법계승자로
세상에 나타난다.
소문만으로 숨어지내던 혜능이 짜잔 나타나자 당 조정에서는 국사로 받들고 조계현 조계산에
남화사를 지어 법석을 열게 했다.
육조는 신수와의 갈등으로 더이상 법계승자릏 지명하지 않았다. 초조 달마조사가 200년 후면 법을 아는 자가 많아지므로 더이상 세우지 말라 했다고도 한다.
이심전심, 불립문자룰 내세워 선불교를 대중화시켰다.
강호 제사 라는 뜻도 절강성의 강, 호남성 호를 따서 두성에 쟁쟁했던 선불교 조사들을 말한다.
첫댓글 와~!!
현우 맘님~~
머릿속에서 선종의 정리가 한꺼번에 되는 듯 해요~~^^
"육조 혜능" 이라고 관념적으로 알고 있던 스님 이야기를 생활체험으로 들려 주시니 이런 고급지식을 얻게 해 주는
"을아인" 이 더욱 소중합니다,.
다음 편도 학수고대 합니다~~*^^*
죄송합니다
현장중계하려다보니
현우 어머니 글에 댓글답니다~~^^
제가 오랜만에 한잔하는데요
거래처 분하고 ~~
그분 집이 구포역 동원아파트라서~~
을아인 첫번개 구포시장~~
옛추억 카페 구포역 골목길
전호규 선배님이 기타 치신곳
3번째 왔습니다
IP판 휘트니휘스턴 노래 들려주시네요
그때 번개 오신 어무이 아부지들 장소 기억하시지예
좀 있다가 주인장께서 글 올립니다
오랜만에 한잔합니다
내일 아침 5시30분 기상합니더 ㅎㅎ
카페주인장입니다.잘들계시지요
늘건강하시고ㆍ연말에항상행복한나날되시길기도합니다.
제가 우리 번개 때문에
추억을 되살려서 응원글 적어 달라했습니다
.
현우 어머니 미안합니다 ~~
이 기타가 전광재 선배님이
저하고 첫 만남에 쳣던
기타입니다
그날 제가 음악이 좋아서 ~~~
기차가 없어 택시비 육마넌 ㅋㅋ
카페 있어 기억을 되살 리고자
사진 찍었습니다 ㅎㅎ
민국 아버님과 광재 아버님의 아날로그 감성이 만났던 추억의 장소에 가셨군요~~^^
카페 사장님도 그 추억에 동참해 주시니 고맙네요.
비록 제가 알지 못하는 그 시간이지만,
그 또한 "을아인"의 진한 역사가 아닐런지요~~!
민국 아버님~~
내일 아침 새벽기상 생각하셔서 이제 그만 귀가 하소서~~^^
푸르름을 잃지않은 님의 감성에 박수를 보내며~~♥
.
이모님 감사합니다
집에 도착했습니다 ~~^^
오메~~~현우엄니 글 자체가 교과서여~~~
재주여 재주~~~♡
현우 맘 님의 글 와 대단 합니다 .
@민구기 아부지!
카페만남의 추억이 한잔 술에
진하게 살아나셨네요.^^
1년도 안된 시간, 주고받던 위로의 말씀들에 저 역시 미소가 떠오릅니다.
우짜던동 건강 잘 챙기시소.
대한의 예비역 민국이!
잘 복귀해서
잘할 거라 믿습니다.
효자!
민국예비역!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