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이자 갤러리가 돼버린 섬유작가 최애자의 집을 만났다.
자연에서 뽑은 무궁무진한 색을 재료 삼고, 우리 전통의 감성과 미감을 주제 삼고, 자신의 타고난 재주를 도구 삼아 의미 있는 미를 만드는 그녀를 만났다.
1 한강 상류가 보이는 거실 쪽 발코니. 닥종이로 만든 물고기 조명이 허공을 헤엄치고 있다.
2 다양한 컬러의 염색 모시를 패치워크한 그녀의 작품은 조명의 형태로 입구에 걸려 있다.
3 직접 염색한 오래된 원피스를 입고 고운 자태로 거실에 앉아 있는 최애자 교수.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녹색 물을 들인 소파 옆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앤틱 반닫이와 그녀가 혼수로 해왔던 또 다른 앤틱 수납함이 보인다. 사진 왼쪽에 걸린 펜던트 역시 그녀가 직접 염색한 모시를 패치워크해 씌운 것.
“작품에 버금간다”는 집 사진을 편집부로 보낸 제자의 추천에 힘입어 최애자 교수의 집을 찾은 날. 곱게 치장한 메이크업, 화려한 액세서리,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화사한 차림의 최애자 교수가 반갑게 촬영팀을 맞았다. 순간, 흠칫 놀란 건 사실이다.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전통복식학과 겸임교수이자, 섬유작가인 그녀의 타이틀을 기본 정보로 동양적인 혹은 수수한 차림의 작가적인 분위기를 상상했음을 고백한다. 에디터의 이 고루한 편견을 보란 듯이 깨버린 그녀의 모습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반전’에 가까운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그녀와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깨달은 진짜 ‘반전’은 자칫 화려함 때문에 가려질지 모르는 그녀의 소박한 삶과 섬유작가로서의 진짜 실력임을 알았다.
그럼 범상치 않은 그녀의 집 이야기부터 해볼까. 최애자 교수의 집을 처음 들어섰을 때 만나는 것은 바로 패치워크한 모시 작품을 패널 조명과 접목한 인테리어 공예 작품이다. 색깔 고운 모시를 투과하는 조명의 빛이 환상적인 그림을 만드는 모습. 정면으론 물고기의 가열찬 움직임이 생동감 있는 그녀의 대표작 ‘구어도’가 보인다. 거실 또한 허투루 볼 것이 없는데, 오래된 가죽을 녹색빛의 모시로 커버링한 소파를 중심으로 손으로 찢어 붙여 완성한 풍경화와 대형 컬러칩 같은 염색 종이 작품이 커다란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포인트 벽이라 불릴 법한 거실의 벽 한 면 역시 직접 염색한 모시로 패널을 만들어 붙였다. 평범한 사각 천장 조명 역시 종이와 모시를 배접해 그녀가 직접 마감한 것. 버려진 조명의 스탠드는 그대로 두고 조명 갓만 모시로 바꿔 씌워 쓰는가 하면, 앤틱 가구점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쟁반엔 거울을 끼워 액자처럼 걸어두었다.
이사하는 친구에게 고급 식탁을 사주고 바꿔온 낡은 앤틱 코너장이 이 집에선 어엿한 디스플레이 선반이 돼 있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제주도 절구는 테이블로 용도를 바꿨다. 생명이 다하거나 홀대 받던 물건이 이 집에서 새 삶을 찾은 예는 이 밖에도 많다. 진주에서 구해온 떡판은 현재 최애자 교수의 작업 테이블로 쓰이고 있고 버려진 툇마루의 마루짝들은 다시 재조합해 평상으로 쓰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가구와 소품에는 모두 그녀의 손길이 깃들어 있다.
“가장 좋아하는 색은 쪽으로 뽑아낸 녹색이에요. 녹색이라는 단순한 색깔뿐 아니라 그린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환경적인 부분까지요. 내년 4월경 그린 인테리어와 관련한 전시를 열 예정인데, 집과 인테리어를 접목해 그 안에 다양한 친환경적 요소를 풀어내는 전시를 하고 싶어요.” 자신의 재주를 나누는 데 있어 그녀는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천연 염색은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어요. 보통 옷이나 소소한 공예품만 생각하기 쉬운데, 얼마든지 좋은 문화 상품으로 만들 수 있죠.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감성은 버릴 수 없거든요. 그 시기가 언제 됐든, 한국적인 것에 끌리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이 집은 그런 최애자 교수의 의지를 실험하는 작업실에 가깝다. 조명으로 둔갑한 6개월짜리 정성의 패널 작품이나 조선시대 흉배를 모티프로 제작한 침실 베딩과 헤드보드, 팔팔하게 허공을 헤엄치고 있는 닥종이 조명도 모두 전통 공예를 현실로 끌어내는 그녀 작업의 일환이다.
대학원 수업이 있던 첫 번째 날, “수많은 원단을 그 자리에서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는 교수님의 실력에 전문가를 자부하던 대학원생들마저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제자의 스승 자랑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그녀의 집을 찬찬히 훑어본다. “대학에서는 패션을 전공했어요. 실제로 그 쪽에서 일도 몇 년간 했었고요.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에 흥미가 많았고 재주도 있는 편이었어요. 특별한 계기도 없이 천연 염색에 끌려 새롭게 공부를 시작한 것이 20년 정도 됐네요. 테크닉을 알아도 염색은 손맛인지라 그대로 흉내 낼 수 없는 게 사실이에요. 재료 함량의 차이와 염색을 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어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예술이죠. 그 점이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 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더 매력있는 작업이고요.”
20년 전 입던 원피스를 여전히 염색해 입고, 명품 가구 대신 낡은 가구에 직접 염색한 원단 옷을 입히며, 버려진 물건을 작품으로 변화시키는 그녀. 인공조미료 대신 매실 엑기스로 음식 맛을 내고 30년 된 국간장으로 국물 맛을 내는 최애자 교수는 말 그대로 천상 여자다. 무엇보다 화려한 외모와 화통한 성격이 오히려 손해가 될 정도로 수많은 열정과 진지한 재주를 지닌 현재진행형 작가다.
1 벨벳 커버를 모시로 감싼 식탁 의자, 테이블보, 패치워크 펜던트는 모두 최애자 교수의 솜씨다. 다이닝룸 한켠에 보이는 나무 수납 가구는 오래된 배의 일부를 수잡장으로 변형시킨 가구.
2 한지를 배접해 입체적인 물로기 형태로 만들고 있는 최애자 교수의 작업 일부.
3 다이닝룸 바깥쪽에 자리한 평상. 창밖으로 한강 상류 풍경이 펼쳐지는 이 집의 명당 중 하나다.
1 앤틱 실함에 가지런히 정리해둔 색실의 고운 모습.
2 오래된 재봉틀 역시 여전히 사용 중이다. 물론 건재하다.
3 버려질 찰나에 있던 진주 떡판을 장안평에 맡겨 책상으로 제작한 것. 최애자 교수는 그 떡판을 발견한 순간 자신의 작업 선반으로 점찍었다. 그리고 여전히 사용 중이다.
4 소소한 소품을 이용해 만든 오너먼트들. 작업실 평상 위에 걸어둔 조명은 막걸리를 걸러내는 도구를 조명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1 중국에서 구입한 싸구려 보료에 직접 물들인 원단을 입혀 이처럼 우아한 자리를 만들었다. 테이블과 방에 놓인 평상은 오래된 툇마루를 유명한 고재 제작소에서 맡겨 평상으로 제작한 것.
2,3 다다미판이 놓인 공간에는 시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오래된 병풍이 놓여 있다. 유럽 앤틱 가구는 모시 조각보를 응용한 쿠션과 방석 덕에 동양적으로 바뀌었다. 방 곳곳에 놓인 모든 소품은 최애자 교수가 직접 제작한 작품들이다.
1,2 집 안 구석구석에서 만날 수 있는 작업의 흔적들.
3 십장생을 모티프로 제작한 벽 패널과 조선시대 흉배 모티프로 수를 놓은 베딩. 침실 자체가 커다란 작품 같은 모습이다.
첫댓글 섬유작가답게 직업의 향기가 마니 풍겨나네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독특하네요. 화려한 색상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