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퀸★단비 http://cafe.daum.net/dododanbi7
28.
16살 도인혁은 외로웠다.
사무치게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자랐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란 시를 읽어도 읽어도 텅 빈 가슴은 채워지지 않았다. 자신처럼 불행하고, 슬픈 사람이 있을까…. 고독 속에 자신을 가둬 버렸다. 그래서 공부에 매달렸다. 사람을 믿을 수 없는 도인혁은 친구가 아닌 공부를 택했다. 누군가 알아주기를, 누군가는 자신을 보듬어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언제나 같았다. 지독하게 춥고 시렸다. 그러다 18살이 된 어느 날. 한 여자애를 만났다. 천방지축에 목소리는 크고, 몸은 가늘었다. 외국인처럼 큼지막한 이목구비를 가진 건 아니었지만, 선이 야릇하면서 신비스러운 매력이 외모에서 풍겼다. 웃을 땐 시원스럽고 개구쟁이 같기도 하고… 무척이나 투명하고 해맑아서 그 웃음을 오래도록 보고 싶었다. 계속 웃고 해주고 싶은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여자애. 그 애가 갑자기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따뜻했다. 여자의 품이 이렇게 부드럽고 기분 좋은지 처음 알았다. 계속 안고 싶었다. 밀쳐내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친구의 여자친구니 밀어내야 한다고 하면서도 가슴은 요동함이 없었다. 이대로… 이대로…….
탕.
“전화번호 대. 집 전화번호!”
“……”
“이 자식이. 보호자 안 부르면 여기서 못 나가.”
인혁의 머리를 얇은 파일로 내리치는 경찰아저씨.
“핸드폰 이리 내.”
인혁이 잔뜩 반항어린 눈길로 경찰을 노려본다.
“안 내놔?”
인혁이 주머니에서 꺼내 핸드폰을 내민다. 경찰은 재빨리 휙 낚아채 핸드폰 플립을 연다. 무조건 1번을 누른다. 가장 중요한 번호인 집 번호가 물어보나마나 1번이겠지 하고 말이다.
얼마 후.
강남 경찰서 안으로 한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10분도 안되어 달려온 남자는 트레이닝 복 차림의 신이남이다. 집에 있다 바로 나온 모양이다. 허겁지겁 나오느라 가죽자켓만 덜러덩 걸친 모양새가 영 아니다.
“아, 수고하십니다.”
이남이 앉아있는 인혁을 발견하고 그 앞에 앉은 경찰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보호자 맞으시죠?”
“네.”
“누가 보호자예요? 이 사람 내 보호자 아니거든요?”
인혁의 날을 세우고 외치자, 경찰은 이남을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본다. 보호자…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젊고, 차림새로는 영락없는 백수…다.
“보호자 아니세요?”
“맞습니다. 이 녀석 담임입니다.”
“아. 아이고오. 선생님이세요?”
“네.”
선생님을 존중하는 밝은 사회인, 경찰은 벌떡 일어선다. 그리곤 이남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이남은 경찰과 악수를 한다. 경찰은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저기 보이는 대학생 두 놈하고 시비가 붙어서 싸움이 난 모양입니다. 먼저 건드린 건 대학생 놈들이라는데, 보다 피시 멀쩡한 건 얘라서. 일단 좋게 좋게 합의를 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경찰이 이남에게 슬쩍 목소리를 낮추어 말한다.
“저쪽 놈들 파워가 장난이 아닌 듯싶어요. 있는 집안 아들들이라는데.”
이남은 긴 의자에 편안하게 대자로 뻗어서 구긴 인상을 더욱 험악하게 만들고 있는 대학생 두 놈을 바라본다. 인혁에게 맞아서 얼굴은 탱탱 부어있고, 핏빛으로 얼굴이 물들어 있었다. 턱이 아픈지 한 녀석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한 손으로 턱을 감싸고 있다.
이남이 터벅터벅 걸어가 그 녀석들 앞에 섰다.
“너희가 먼저 시비 걸었냐?”
이남의 물음에 두 녀석이 피식 비웃는다.
“시비는 누가. 담배 한 대 있으면 달라고 한 게 시비냐고.”
“시비조로 얘기하면 시비가 될 수 있지.”
“아이, 씨. 우리 얼굴 안 보여? 저 자식이 얼굴을 이따구로… 아아, 아.”
언성을 높이다 얼굴이 아픈지 말을 멈춘다.
“너희 대단한 도련님들이라며? 어느 댁 도련님들인데?”
“그걸 알려주면 우리 집안에 침 뱉기지. 집안 먹칠 하고 다닌다는 소문은 뿌리기 싫거든.”
“먹칠인 건 아나보지?”
“아, 뭐야.”
“대충 합의보자. 우리도 집안 먹칠 하기 싫어서.”
“뭐?”
두 녀석들이 이남을 흘끗 본다.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가진 남자에겐 진지한 눈빛만 강렬하게 남았다. 영향력 있는 집안의 자제라는 느낌이 한순간에 감지된다.
“내가 꿇으면 되겠냐? 이걸로 퉁 치자.”
이남이 갑자기 두 녀석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일순간 경찰서 안이 조용해졌다.
“……!”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인혁이 화가 나 벌떡 일어섰다.
두 녀석은 송구스러워 엉덩이를 들썩인다. 침을 어렵게 삼키며 일어난다.
“아, 됐어요. 이걸로 그냥 마무리하지요.”
두 녀석은 자신들의 집안을 단번에 무너뜨릴 능력있는 집안 사람이라는 걸 느낌으로 알았다. 무릎까지 꿇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히려 그가 무서워져 발발 떨며 자리를 피했다.
“누가 이래 달래!!!”
기차 화통 삶아먹은 큰 목소리가 경찰서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다들 그 목소리에 기가 질려 꼼짝도 못했다.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무릎을 꿇어, 나 때문에!!!”
이남을 죽일 듯이 으르렁거린다. 달려가려는 걸 경찰이 막았다.
이남이 일어서며 무릎에 닿은 먼지를 탈탈 턴다.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여유롭다. 뒤를 돌아 인혁을 쳐다본다.
“제길!!! 왜 그러냐고!!!”
“네 담임이니까.”
이글거리는 인혁의 눈빛에 미소로 화답한다.
“역겨워!”
인혁이 경찰의 막는 걸 제치고, 이남에게 달려가 이남의 멱살을 잡아 올린다.
“뭔데! 왜 무릎 꿇어!”
“몇 번을 얘기하냐. 내 제자를 위해서라면 무릎 닳도록 꿇을 수 있어.”
“자존심 다 버릴 수 있다? 내가 제자라서?”
인혁이 더 화가 나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한다.
“단지 제자라서?”
“……”
인혁이 힘을 꽉 준다. 그의 눈가가 젖어든다. 눈동자에 붉은 실핏줄이 선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지만, 참아낸다.
그 모습을 보고 이남이 입술을 연다.
“아니.”
“……”
“네가 내 동생이라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젠장. 촌스럽게 눈물이 난다.
인혁은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토록 그리웠던 단어였는데… 이제야 들어본다. 온 몸에 기가 빠져 나감을 느낀다.
인혁이 이남의 멱살을 놓아버린다. 손아귀에 힘이 하나도 없다.
“내가… 형을 싫어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
“이래서 형이 싫은 거야.”
이남의 한 마디에 무너질 듯 아프면서 기쁜데…… 이남은 아무렇지 않은 거. 인혁은 자신만 초라해지는 것 같고, 바보 같고, 멍청해 보이는 이 순간을 이남만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늘 화가 났다.
“내 앞에서 사라져 버려.”
인혁이 눈물을 거칠게 훔쳤다.
“왜 하필 우리 학교야. 아니, 왜 하필 우리 반이야! 날 왜 가만두지 않는 건데!”
“도인혁.”
“매일 얼굴 보는 거 싫어. 내 담임 노릇하는 꼴도 보기 싫고, 내 일에 일일이 간섭하면서 감싸는 것도 싫어. 짜증나!”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낸다.
인혁은 자신의 가슴에 상채기를 내는 동시에 이남의 가슴에도 똑같은 상채기를 남긴다.
“잘난 척 그만 해. 역겨우니까. 왜 이제와서 착한 척인데! 왜!”
인혁의 윽박을 가만히 들어주던 이남이 찬찬히 그를 쳐다본다. 그리곤 말한다.
“척이라도 안 하면. 널 괴롭혀주길 바래?”
“그래. 괴롭혀. 그 편이 낫다니까?”
“도인혁. 내가 참고 있는 건 안 보이지? 역겨워야 할 쪽은 내 쪽이야. 그건 알아?”
“왜 참아. 누가 참으래!”
인혁의 목소리 톤이 저절로 높아진다.
“피하는 거잖아! 난 그게 더 화나! 나 같은 거 애초에 몰랐듯이 일부러 피하잖아! 차라리 욕을 해.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해!”
“왜.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그래야 내가……,”
인혁이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그의 숨결이 슬프다.
“그래야 내가 덜 미안하니까.”
“……!”
인혁의 굵은 눈물방울이 주르륵 흘러 내린다.
형이 그럴수록 난 더 아파…….
형이 그러는 게 난 더 아프다고.
……대체 왜 이 둘이 이렇게 된 걸까?
몰랐었다. 인혁은 어려서 ‘불륜’이란 걸 몰랐고, 그냥 행복한 한 가족이거니 생각했다.
조금 큰 중학교 때 알았다. 이복 형 이남과 이남의 엄마를 내쫓은 장본인은 다름 아닌 본인이라는 진실을.
그걸 알고는 단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다.
“날 원망해야지. 날 미워해야지!”
인혁이 토해내는 말을 듣고 있던 이남이 읊조렸다.
“삐뚤어졌어.”
“이제 알았어? 나 삐뚤어졌어.”
“한참 엇나가고 있어. 아주 잘하고 있네. 질풍노도의 시기란 거 여실히 드러내는 구만. 너가 어리고 어리석고 나한테 지고 있다는 걸 모두에게 잘 보여주고 있어.”
“내가 왜 이렇게 된 건데. 난 집이 싫어. 아버지가 싫어. 형이랑 형네 어머니를 그렇게 버려두고 내가 그 처마 밑에서 살면서 얼마나 숨이 막혔는지 알아? 형은 몰라. 난… 숨이 막혀.”
미안해서…….
이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인혁의 눈빛엔 오롯이 드러난다.
“그런데 형은 하하호호 뭐가 그렇게 항상 즐거운데? 상처 받은 건 형이면서 왜 내가 대신 아파해? 끝까지 쿨한 척, 착한 척.”
인혁이 결국 눈물을 쏟아낸다.
“착해빠져서 나한테는 어떻게 욕지거리 한 번을 안 해! 사람이 어떻게 그러냐고! 예수야? 부처야? 뭐야? 형이 뭔데!!”
“그럼 내가 널 패랴? 내가 널 욕하랴? 그래야 돼?”
“차라리 그러라고. 패! 패라고! 빼앗았잖아. 빼앗겼잖아. 왜 참아!”
이남은 인혁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손이 올라가지 않는다.
“난 너 안 미워. 원망 안 해. 난 아무렇지도 않거든. 진짜로.”
“…하.”
“너만 나 안쓰럽게 생각하는 거야. 아버지를 버린 건 우리 엄마고, 사랑을 택한 건 아버지야. 합의, 몰라? 두 사람 사이에 인연은 깨끗하게 정리된 거라고. 나 또한 더 이상 미련 안 둬. 미우나 고우나 우리 아버지고, 넌 내 반쪽짜리 피가 흐르고 있는 형제야. 동생인 널 목 졸라야 돼?”
이남이 말을 잇는다.
“네 죄책감, 버려. 네가 왜 그래.”
이남은 처음엔 아팠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했다. 아버지를 떠나는 어머니는 사랑에 굶주려 목매는 여자가 아니었다.
엄마였다. 강한 엄마.
“난 너 싫지 않아.”
“아니. 아직도 형은…….”
인혁의 얼굴이 다시 차갑게 변했다.
“머리 따로 가슴 따로 놀고 있어. 이래서 난 형이 싫어.”
인혁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복잡한 심정으로 이남은 바라본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답이 도대체 뭔데, 도인혁.
* * *
16살 이오리는 어느 순간부터 발레가 지겨워졌다.
지쳤다고 해야 하는 게 맞을 거다. 언젠간 지루하다고 느낄 거라 예감하고 있었는데 그 날이 온 것뿐이다. 황당할 건 아니다. 늘 새로운 것에 눈을 뜨는 아이라는 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으니.
개나리의 온화한 노란빛이 물든 따스한 봄날, 발레학원 친구들과 발레 연습이 끝나고 나오다 작은 공원에서 힙합 춤을 추는 남자아이들을 발견했다. 오리는 쪼르르 달려가 아이들과 구경을 했고, 그 열정에 반해버렸다.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우와~’ 탄성이 절로 흘러 나왔고, 오리의 몸이 자연스레 움직였다. 신나서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서있던 한 여자애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저게 뭐야. 날라리 같아.”
발레 콩쿠르에 나가 오리가 1등을 차지할 때, 입상도 하지 못한 아이였다.
“저렇게 정신없는 춤은 딱 질색이야.”
오리는 되려 그 애에게 ‘난 그런 말하는 네가 딱 질색이야!’란 말을 해주고 싶었다. 멋있다고 박수까지 치고 있는 손 무안하게 그런 심한 말을 툭 내뱉자, 오리가 기분이 상했다.
“천박해.”
가관이다. 인상을 찡그리는 그 애의 가치관이 의심스러웠다. 발레하는 자기는 고급스럽고, 힙합하는 남자애들은 천박하다는 거야? 그런 기준이 어디 있는가.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건 고정된 게 아니란 말이다.
그 날부터 오리는 세상에 발레 말고도 감동을 주는 수많은 춤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 춤을 다르게 추기 시작했다. 백조인 줄 모르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 * *
16살 김장원은 다이어트에 빠진 중학생이었다.
머릿속엔 온통 다이어트 생각뿐이었다. 노트북에 달라붙은 개미를 보며 부러워했다. 죽이지 않고 살려둔 개미는 늘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나 살아있지롱~’ 약을 올렸다. 하지만 장원은 놓아준다. 살아서 움직이는 개미를 죽일 순 없지. 생명이 소중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가족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장원은 이번에도 멀러 떨어져 나가라고 후- 입바람을 불었다. 개미가 안 보인다. 저 멀리 날아갔다. 반대 방향으로 기어가는 모습을 보며 장원은 혼잣말을 하였다.
“개미는 대체 몸무게가 얼마나 나갈까?”
얼마나 가볍길래 훅 부니 날아가지? 관심사는 온통 다이어트뿐이었다. 다이어트를 하게 된 건 충격 때문이었고, 마침 불어 닥친 웰빙 열풍에 동참하였다. 위를 줄이는 수술한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까지 해서 예뻐지고 싶은 게 여자의 욕망일까? 깊이 생각해보다 내린 결론은 ‘그럴 수도 있겠다’였다. 허나 몸에 손을 대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굶고 운동만 하였다. 1년 후 예쁜 몸매가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매점에 빨래처럼 널려 있는 피자빵, 호빵, 만두, 과자, 음료수 등등 맛있는 것들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쳤다.
“나 또 살쪘어. 조금만 정신 놓으면 이래. 1kg 훌쩍 올라간 거 있지. 왜 난 물만 먹어도 찌지?”
“별로 안 쪘어. 너 말랐어. 더 먹어도 돼.”
“안돼! 무슨 소리!”
“왜 그렇게 다이어트에 집착하는데?”
“태생이 마르게 태어난 오리 넌 모를 거야. 뚱뚱보의 비애. 나 중학교 때 60kg 넘었었다니까.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애들이 날 뭐라고 불렀는 줄 알아? 슈퍼 돼지. 슈퍼 뚱땡이.”
“못됐다, 애들.”
“그 말에 자극 받고 살 빼서 괜찮아. 아무튼 난 그 때로 되돌아 갈까봐 조마조마 하다고, 항상.”
“그래도 쉬엄쉬엄 해. 너 그러다 진짜 문제 생긴다. 몸에 균형 흐트러지면 살 대신 건강 잃어. 내 말 명심해.”
“아~ 언제쯤 다이어트에서 해방될 날이 올까?”
늘 고민이 ‘다이어트 해방’이었는데, 요즘 그녀는 그 고민을 하지 않아도 살이 쪽쪽 빠진다. 쾌재를 부를 일이지만 그러지 못한다. 기뻐할 시간이 없다. 한 가지 고민 때문에.
“장원이 너 요즘 너무 안 먹어. 쓰러진다.”
“입맛이 없어서.”
“입맛으로 먹니? 잇몸으로 먹지. 먹어야 돼!”
“오리야.”
“왜.”
“영원이랑 또 연락이 안돼.”
“또?”
영원이 시험이 끝나고 학교에 코빼기도 안 비춘다. 체육대회, 축제로 정신없어 출석체크를 안 하는 허술한 담임이 원망스럽다.
“이진기 만나는 날 있잖아.”
“응.”
“왜 못 나간지 알아?”
“모르지. 네가 말 안 했잖아. 왜? 영원이랑 연관 있는 일이구나? 그렇지?”
오리를 멀건히 바라보며 망설이던 장원은 이내 고개를 돌린다.
“아니야.”
“왜 그래? 말해봐! 듣고 싶어! 무슨 일이길래?”
“아니야, 진짜. 아무것도. 얘가 여자 만나나 감시하는 거야.”
말도 안되는 말로 둘러댔다.
“김장원.”
“얘한테 나밖에 없지?”
“그걸 말이라고. 너뿐이지, 영원이한테.”
신신당부 했다. 아이들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다고. 자기 상황을 말하면 학교에 얼굴을 못 들고 다닐 거라고.
장원은 영원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 * * * *
태양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뜨거운 가슴을 찾아 헤맬 줄 알아야 한다.
그 길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가서 돌아오지 못할 길이라 할지라도.
- 체 게바라(Ernesto Guevara de la Serna)
* * * * *
신이남은 라인의 커피 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테이블에 코를 박고 머리를 찧는다.
컨츄리한 음악이 귓가를 간질인다. 가을에 어울리는 불타는 노을이 상상되는 음악이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
모든 이야기를 듣고 라인이 하는 말이다.
“그 애도 너도 많이 아파.”
“난, 진짜 모르겠다.”
“모르면 모른 채로. 알면 아는 채로. 그래서 그냥 그대로 헤어진 거야?”
“어.”
“잘했어. 못한 것도 없다. 그 정도로 진하게 얘기해봤으면 이제 풀릴 일만 남았네.”
라인이 킥킥 웃는다. 이남은 심각한데 말이다!
이남이 고개를 들고 라인을 흘긴다.
“놀려?”
“쨍 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노래가 나와?”
“곧 둘이 죽고 못사는 사이가 될 것 같은데? 뜨거운 형제애! 태극기 휘날리며 후속편은 너희 둘이 찍으면 딱 이겠다.”
이남이 눈썹을 찡그린다.
“그래서 엔딩에 형 죽는 거?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야?”
“하하하. 그렇게 받아들이나? 너가 죽으면 내가 어찌 사니.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신이남은 100살까지 살아. 내가 죽기 전엔 못 죽지.”
이남은 자기 앞에 놓인 카라멜 프라푸치노를 단숨에 들이킨다.
딸랑, 기분 좋은 종소리가 울린다. 커피 하우스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안으로 들어선다. 이남은 그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걸 본 라인이 얼른 뒤를 돌아본다.
이남의 시선이 머문 자리엔 촌스러운 여자가 머뭇거리며 커피 하우스 안을 살펴보고 있다. 고급스러운 커피 하우스와는 안 어울리는 여자라고 해야 할까? 아가씨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줌마도 아닌 스타일. 무릎을 덮고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긴 갈색치마, 노란색 물방울 무늬가 박혀있고 정신없이 샤링이 들어가 있는 셔츠, 골덴 점퍼는 마른 몸의 그녀를 부하게 만들어 보인다. 각진 단발머리, 검은색 뿔테에 동글 동글 잠자리 안경은 얼굴을 가리고 있다. 80년대에서 갓 상경한 여자 같다.
“뭐야, 신이남. 고민거리는 어따 팔아두고 그새 여자한테 눈 돌려? 그것도 저렇게 어글리한.”
라인은 질투도 나지 않는다. 신기해서 라인도 쳐다보고 있다.
“학생들 가르치다보니까 눈이 팍 낮아지디? 아님 취향이 바뀐 거야? 네 취향 아닌데.”
“내 취향 아니지.”
“그렇담 모델 같은 날 놔두고 촌스러운 어글리한테 눈길 돌리는 연유가 뭐야?”
“아는 여자야.”
“누군데?”
“우리 학교 수학 선생.”
라인이 더 집중해서 그녀를 본다. 같은 직장에서 저런 여자를 매일 본다면서 왜 신기한 듯 바라보는 건데?
“수학선생 아닌 것 같네.”
“맞아.”
“요즘 저렇게 시골틱한 분위기 풍기는 선생도 있어?”
“저기 있잖아.”
그녀가 자리에 앉는다. 창밖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고개를 팍 숙이고 있다. 뭐 죄진 사람처럼.
“수학선생은 사감선생처럼 날카롭고 그러지 않나? 나 학교 다닐 때 수학선생은 진짜 악녀였는데.”
“수학을 못하는 애들한텐 선생님이 악녀지.”
이남의 말에 라인이 흥분한다.
“아니야! 그 선생은 진짜 악녀였단 말이야!”
“저 여자도 악녀일까? 악녀 본능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겠다. 그치?”
“그렇지. 여자는 다 악녀야. 어쩌면 저게 다 계획적인 걸 수도 있다.”
“무섭다, 그건.”
“진짜야. 그런 애들 있다니까. 근데 왜 자꾸 쳐다보는데?”
“꽤 꾸민 거거든.”
“뭐? 꾸민 거야?”
황당하다.
“립스틱 색이 촌스럽고 눈두덩이는 파랗고. 나름 꾸미려고 화장을 하긴 한 거지.”
“누구 만나나?”
그 때, 커피 하우스로 한 남자가 들어선다. 말끔하게 생긴 샐러리맨이다. 연한 갈색 바바리 코트를 입은 그 남자는 휙휙 고개를 돌리더니, 이남과 앉아있는 라인을 쳐다본다. 예쁜 여자에게 눈길이 먼저 가는 게 남자의 본능이려니. 그러나 약속을 정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사진과 똑같은 조선시대 여자에게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뒷모습에서 한숨 내쉬는 게 느껴질 정도다.
“남자친구?”
“아니야. 백프로. 소개팅 같은 걸 하는 것 같은데?”
라인의 말에 이남도 동의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괴녀샘’으로 통하는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을리 만무하다. 그리고 저렇게 허둥지둥 대며 일어나 꾸벅 꾸벅 인사를 하는 거 보니, 처음 만난 사이가 분명하다. 이남은 흥미롭게 지켜본다.
“아, 아, 안녕하세요.”
지영은 말까지 더듬으며 인사를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네. 차, 차 뭐 드실래요?”
“그냥 블랙커피 마실께요.”
남자는 더 이상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기 싫다는 표시를 얼굴 표정으로 드러낸다. 대충 한 잔 마시고 일어날 생각을 하고 있다. 차 한 잔 안 마시고 돌려보내기엔 양쪽 집안 어른들에게 미안하고, 앞에 있는 괴녀에게도 예의가 아니니 말이다.
“수학선생님이라고요?”
“네.”
“수학 재밌어요?”
“저는 재밌는데 애들은 싫어하죠. 수학 좋아하세요?”
“아뇨.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었어요.”
“아…….”
지영은 입술을 닫는다.
“사실 제가 맞선 볼 생각이 없었어요. 집안에서 하도 성화라.”
“네…에.”
“결혼적령기네 뭐네 못이 박히도록 듣는데, 남자 나이 마흔이고 오십이고 갈 사람들은 늦게라도 제 짝 만나서 가드만. 안 그래요?”
“네, 그렇죠.”
“취미가 뭐예요?”
지영이 심사숙고하여 대답한다.
“뜨개질이요.”
“그럴 것 같더라고요.”
“제가요. 목도리는 기본이고, 스웨터도 거뜬히 짜요. 손뜨개질 선물 받아보신 적 있어요?”
“뭐 하러 힘들게 짜요. 백화점에 널렸는데. 1분이면 사잖아요.”
“아…”
“편한 세상이잖아요.”
남자는 지영이 고리타분하다는 듯 바라본다. 지영은 흘러내리는 안경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어색하게 웃어 보인다.
“지영아!!”
지영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팟 들었다.
누군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눈이 나빠 한참을 들여다 보니, 신이남 선생이었다!
지영은 흠칫 거리며 어깨를 좁혔다.
“이야, 여기서 만나네?”
신이남이 친한 척을 한다. 지영은 당황한다. 앞에 앉아있는 남자의 눈치를 한 번 살피고 이남을 쳐다본다.
“저기 앉아서 몇 번이고 보면서 너 아닌 가 긴 가 했는데. 우리가 인연은 인연이구나! 하하핫!”
이 남자가 왜 이래?
“누구야?”
“서, 선보는 남자예요.”
“그래?”
이남이 지영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비집고 들어 앉는다. 잘생긴 남자가 지영이 옆에 앉으니 당혹스러운 남자의 표정은 한동안 계속된다.
“우리 지영이 사랑하십니까?”
“네? 아뇨. 처음 만난.”
“아, 그렇군. 지영이 보자마자 어떤 생각 들어요?”
“뭐, 그냥…”
“뭐 그냥 뭐요?”
남자가 좋게 이야기하려는 듯 입술은 뗀다.
“참하다는 생각이 들죠.”
“훗.”
이남이 비웃는다.
“참하긴. 속마음은 안 그렇잖아.”
이남의 굳은 표정을 보고 남자의 눈이 커진다.
“이 애 변신해요. 이거 컨셉인 거 모르지?”
“네?”
“외모에 안 속고 진짜 사랑할 줄 아는 제 짝 만나기 위해서 쇼하는 거라고.”
이남의 말에 지영도 놀라고 남자도 놀란다.
“진짜 예쁘고, 몸매 죽이고, 능력 있겠다, 쌓아놓은 돈도 좀 되거든. 지영이 앞으로 빌딩이 몇 챈지 알아?”
남자의 눈이 반짝거린다.
“아. 그럽니까.”
“근데 넌 안돼.”
이남이 손가락으로 두 번 젓는다.
“이 사실 알고 나서야 태도가 달라지잖아.”
남자는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마냥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출 길이 없다.
“뭐,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속마음 들켰으면 잘 가.”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지, 지영씨. 전화하겠습니다.”
떠나면서 그런 말을 한다. 만나겠다는 여지를 남겨두는 저 여우같은 놈.
“지영아. 전화해도 받지 마~”
이남이 꽁무니 빼고 달아나는 남자의 뒤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피곤한 놈이야!”
완전히 파토난 상황에 지영은 어이가 없었다. 어디서 튀어나와 뜬금없이 거짓말이나 줄줄 늘어놓는가. 옆에 앉은 이남이 실실거리며 손을 흔드는 걸 보며 화나서 소리친다.
“이게 뭐하는 짓이예요, 신선생님? 왜 남의 자릴 망쳐요?”
이남이 지영에게 고개를 돌린다.
“망친 거예요? 내가?”
“그래요!”
“저 자식은 일어나고 싶어서 똥구녁이 근질거리던 거 같던데.”
“뭐라구요?”
지영도 모르는 게 아니다. 내내, 아니 처음부터 느끼고 있던 거다. 헌데 꼭 찝어서 그런 말을 하니까 자존심에 상처 받는다.
“진짜 사람 이상하네.”
“이상한 건 김선생이지. 왜 쿨하지 못해? 저 사람이 맘에 들어?”
“그런 거 아니예요. 예의를,”
“예의가 밥 먹여줍니까? 표정 보면 눈빛 보면 딱 답이 나오잖아. 왜 멍청하게 굴어요? 왜 착한 척을 해!”
이남이 자신이 뱉은 말에 깜짝 놀란다.
‘왜 착한 척을 해!’, 귓가에 인혁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아……!
순간 답의 실마리가 풀린다.
“하…….”
이남이 멍해진다.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한다. 착…한…척…….
“비켜요. 나 갈 거예요. 신선생이랑은 말 섞고 싶지 않네요.”
자리에서 일어난 지영이 비켜달라고 하지만, 이남은 굳은 조각상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봐요. 신이남 선생님!”
이남이 낮은 음성으로, 아주 쓸쓸하게 말을 던진다.
“오늘 나랑 술 마실래요?”
“뭐라구요?”
“기분이… 꿀꿀한데.”
“허.”
“선생들끼리 대화 좀 해봅시다.”
이남이 지영을 올려다본다.
지영이 이 남자 황당하다는 듯 쳐다본다.
뭐야...역시둘이형제였구나..-_- 그래도 재밌어요~!ㅋ
그럴줄알았어요 ㅠㅠ 수학선생은또뭐에요!!!!!!!!!!!!!!!!!!
수학선생님 .!! 뭐지 ? 재밌어요 !
수학 머얏!! 이래서 수학쌤들은!!! ㅠㅠㅠ 이남이 안돼!!
역시~~~ 둘이 형제 ㄲㄲ
아 이런!!!이렇게엮이면안될것인디!
가지마 이남쌤 ㅠ.ㅠ
수학샘은 안되요~~~!!
역시인혁이랑이남이랑둘이형제였군요........--;;수학선생님은뭐지??
뭐죠?28편에등장하는저무시무시한인물은.
이남아!!! 그러면 안되느니라! 너에게도 수학쌤말고 진정으로 찾아갈 짝이있느니라!! 아아아악!!
재밌어요,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
진짜 재밌다...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다음편도 부탁 드릴게요
수학선생님?ㅋㅋㅋ
혹시 수학 선생님의 변화가 예상되는..ㅋㅋ
이남이같은선생님있으면 참 좋을텐데
결국 이 둘의 관계는 역시나 형제였던게야ㅋ 얘들이 장난 삼아 했던 추리가 얼추 반은 맞아 떨어진거 같은데요ㅋㅋ
아... 수학쌤 여자구나... 난 남잔줄알았는데 ㅋㅋㅋ
ㅋㅋㅋㅋㅋ라인이라는 사람 새로운 호감형인데요?ㅋㅋㅋㅋㅋㅋ
수학쌤 맨날 애들한테 뭐라고 하길래... 남잔줄 알았는데.. 여자였군하???ㅋㅋㅋㅋ
아뭐야 왜 오리 많이 안나와...
수학쌤이 여자였구나.. ㅋㅋㅋ 설마 수학쌤하고 이남 쌤하고 이어지는건 아니겠지 ㅋㅋ
수학쌤이 여자?! 충격ㄷㄷㄷ
진짜 둘이 형제였던거야?!?!
아...수학여자엿어?.....ㅎㄱㄱ
아......하하...설마했는데ㅋㅋㅋㅋㅋ
수학썜쩌심 ㅋㅋ
드디어 밝혀지는 비밀!!! 근데... 왜 난 이남쌤이랑 수학쌤이랑 잘 하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아아... 이남쌤한테 미안하네...ㅋㅋㅋㅋ
안돼ㅠㅠㅠ이남이ㅠㅠ
장원이돗자리펴도되겠군 어떻게맞췄지호홓
장원이돗자리펴도되겠군 어떻게맞췄지호홓
한명씩 남자들을 여자들한테 줄때마다 가슴이 아려와 ㅋㅋ 말도 안되는 작사 실력 ㅋㅋ 완전 랩인데 ?zz
아까는 수학샘 사나이어쩌고했는데 여자남자 둘다있나봐요
수학쌤과 이남 선생님이라....
수학쌤 남자인줄 알았는데.... 아 근데.... 이남쌤이랑... 수학쌤은 절대로 러브러브 안돼!!!!!!!!!!!!!!!
수학쌤이랑 되면 안되는데.ㅠㅠ 나는 오리랑 신이남선생님이됐으면 좋겠다.
수학쌤이랑 않어울릴거 같은데...ㅜㅜ
ㅜㅜ 우엉엉 ㅜㅜ
수학샘 뮝미?오리랑 이남쌤일아 되ㅐ야되는데
이남쒸......수학은안돼!!!.........차라리 나랑.................ㅎㅎㅎㅎㅎ
어머...안돼는데 ㅠ
시러 수학쌤이랑 이남쌤..............ㅠ
왜그러니 이남아.ㅠㅠ
설마..설마..설마.. 내가상상하는 그런거 아니죠?? 이남이랑 수...수학...이..이라앙.. 안돼!!
이건또 왜이래.?
장원이가 맞춘거야????그럼??ㄷㄷ 짱이네
뭐여-_-;; 이남이랑 지영샘이랑....?????? 아니돼!!!
아악 빨리 인혁오리러브스토리가나오란말이야 !!!!!!
장원이는 무당이였던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