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닥 모를 '천갱'에 다녀온 남편은 이내 끝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 속이 빤한 노인의 간병인 노릇…그 수고로움에 기대 숨 쉬는 남편
- 그러나 … 미늘은 맥없이 빠졌다. 허물 벗은 노인은 언제 떠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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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오면 팔다리가 쑤셔온다는 노인들처럼 난 비가 내리면 오래전 바늘을 삼킨 채 낚싯대를 끌고 유유히 저수지 가운데로 들어간 그놈이 생각난다. 대어(大魚)의 기품 있고 여유 있는 태(態)를 망각한 채 인간이 던진 얍삽한 미끼를 먹으려다 입천장에 미늘이 걸려 힘겹게 몸부림치던 놈. 놈은 지금도 비만 오면 어디선가 '꺼욱'거리며 울부짖고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폭우가 내리는 날은 물고기 우는 소릴 들을 수 있어. 빗소리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모르지. 좀 큰 녀석들은 '꺼욱꺼욱'거리며 울고 작은 놈들은 '거욱거욱' 소릴 내며 운다고.
비가 오는 날이면 그는 우비를 입고 수면에 떠오른 낚시찌를 바라보다 억지춘향이처럼 끌려온 내가 하품을 해대면 미안한지 물고기가 운다는 얘길 들려주곤 했다.
그놈을 보게 된 건 벌겋게 불어나고 있는 저수지 물가에 그가 서너 대의 낚싯대를 드리우고 차안에서 찻물을 끓이고 있을 때였다. 난 넓은 저수지 위로 뽀얀 물분자를 만들며 떨어지는 빗방울이 마치 전쟁터의 비 오듯 쏟아지는 총탄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가 차문을 열고 빗속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곧이어 그의 고함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깜짝 놀라 나가 보니 그는 저수지 한가운데를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는 그가 바라보고 있는 저수지 가운데를 플래시로 비췄다. 그러나 담수(潭水)는 쏟아지는 빗방울로 끓고 있는 물처럼 요동칠 뿐 그가 고함을 치는 이유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때, 불빛이 지나는 저수지 중간쯤에서 뭔가가 철퍼덕거리며 움직이는 게 보였다.
뭐야? 저게?
제기랄. 놈이 내 낚싯대를 끌고 가버렸어. 그것도 새로 산 낚싯댈.
저게 물고기가 울고 있는 거야?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캄캄한 저수지 한 가운데서 뭔가 철퍼덕거리던 것이 남편의 낚싯대를 끌고 들어간 놈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라니. 가끔 낚싯줄을 끊고 바늘을 삼킨 채 도망치는 녀석은 봤지만 걸쳐놓은 묵직한 낚싯대까지 끌고 가는 놈을 보긴 처음이었다.
놈의 철벅거리는 소리는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들려왔다. 눈 깜짝할 사이 놈은 남편이 던져놓은 미끼를 물었고 먹이를 삼키는 순간 악, 하고 입천장을 찔러오는 미늘의 통증에 뒤늦게 인간의 속임수에 넘어간 걸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사력을 다해 뱉어내려다 하는 수 없이 낚싯댈 끌고 깊숙한 곳으로 도망을 쳐버린 놈. 놈은 방향감각을 잃은 건지 계속해 한자리에서만 빙글빙글 돌았다. 얼마나 큰 놈인지 놈이 물 위로 뛸 때마다 저수지가에 파동이 만들어졌다.
빌어먹을. 하필 왜 새로 산 낚싯대야. 분명 잉어 일거야. 잉어는 힘 자체가 좋아서 어떨 땐 태공도 딸려갈 정도거든.
그날, 움직일 때마다 미늘은 점점 더 놈의 입안을 파고 들어가 입안의 살점들을 헤집어놓을 것이고 힘이 빠지고 찢겨난 살이 곪아 끝내 놈이 괴사할 것이라는 남편의 말이 신경 쓰여 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놈이 철퍼덕거리는 저수지 가운데를 몇 번인가 돌아다봤다. 그것은 남편의 끌탕처럼 잃어버린 새 낚싯대나 놓친 월척에 대한 미련과는 다른 것이었다. 입천장을 찔러오는 이물질을 뱉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놈들의 요동치는 손맛을 즐기는 걸 취미로 삼았던 일종의 죄책감이랄까. 아마 그날 난 작은 쪽배라도 있었다면 저수지 가운데로 들어가 놈의 입속에 박힌 낚싯바늘을 빼주고 돌아왔을 것이다.
지렁이 반 토막을 먹으려다가 인간이 쳐놓은 야비한 덫에 걸려 엄청난 대가를 치른 놈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용케도 입속에 미늘을 빼내고 가끔 그것에 대한 후유증으로 딸꾹질을 하며 인간을 원망하고 있을까.
휴가 가는 길이라며 아침 일찍 노인의 주치의가 들렀다. 요즘 들어 기력이 떨어지고 혈압까지 불규칙해 주치의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새벽에야 연락이 닿았나보다. 일찍부터 머리가 희었는지 전체적으로 백발이 된 주치의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들러 노인의 상태를 체크하고는 잠시지만 노인의 말벗도 해주는 노인의 친구이다. 얘기라야 일방적으로 주치의가 다 하는 편이지만 주치의가 오는 날이면 노인은 내게 부리던 몽니는 다 어디로 가고 말 잘 듣는 순한 어린아이가 된다. 그때가 유일하게 내가 의기양양해질 때다. 그가 가방을 챙겨들고 일어서며 던지는 선물 같다는 걸 노인은 알 리가 없다.
양회장 엄살이 심해요. 다 받아주면 아주머니가 힘드니까 꼭 들어줄 것만 들어주고 어지간한 건 스스로 하게 해요.
그는 급격히 떨어진 노인의 혈압을 체크하고는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자신에게 알리라고 당부하곤 떠났다. 다행히 주사를 놓아서인지 노인이 겨우 잠들었다. 윤사장은 해외출장중이고 노인마저 잠드니 모처럼 한남궁이 정전이라도 된 듯 조용하다.
'하루아침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노인의 수발을 드는 일. 큰 기업의 회장집이라 일하는데 있어선 까다로울 수 있지만 숙식이 제공되는데다 월급은 만위안 정도, 조건은 사십대 여자로 꼭 한국어 가능한 간호사.'
병원을 드나들던 브로커가 내민 제안은 십 오년을 넘게 중국 상해병원에서 일하고 있던 내겐 꽤나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다. 돈이 필요했다. 간호사인 내 월급으론 얼마나 걸릴지 모를 남편의 병원비며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을 잃고 장애를 가진 채 어린아이를 키우는 시누이까지 먹여 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가면 안 될까요? 조부모님이 한국인 출신이기에 한국어도 할 줄 알고 나이야 뭐 출생신고를 늦게 해 서너 살 줄었다고 해두면…. 그렇게 염치불구하고 들이댄 덕에 탈 수 있었던 한국행 비행기. 그러나 내가 수속을 밟느라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그 자린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가 버렸다. 때문에 난 근 일 년 동안을 서울에서 떨어진 소도시 공단에서 체력이 바닥날 때 까지 일을 해야 했다.
외국인근로자들이 많이 산다는 소도시공단의 비좁은 방은 내가 살던 중국 상해의 고향집보다 열악했다. 작은 옷장과 엉성한 살림 몇 개를 두면 꽉 차는 그 쪽방에서 여름이면 낡은 선풍기가 탈탈거리며 돌아갔고 겨울엔 방방마다 문을 닫아놓고 국적불명의 요릴 해대는 음식냄새로 잠이 들 때까지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야했다. 며칠 동안 장맛비가 내리면 눅눅한 공간에서 축축한 채 말라가는 빨래의 쉰내, 방음도 안 되는 허름한 골방에서 남녀가 내는 괴성. 그 어느 것도 그립지 않은 그곳에서의 생활에 난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자동차의 외형인 패널을 만드는 일이었다. 벽지처럼 둘둘 말린 채 입고된 철판을 필요한 크기로 잘라주면 여기에 금형을 장착한 프레스기계로 찍어서 일정한 성형의 철판조각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대부분 남자가 하는 일이다. 처음엔 기곌 잡고 일하는 사람들의 잔심부름이나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잔일들을 했다. 그러나 그 일은 일찍 시작해 늦게까지 하는데다 월급도 남자들보다 훨씬 적었다. 그래서 직접 기계를 잡았다. 위험하고 힘든 프레스기계작업이라 한국 사람들이 꺼리는 일이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밀리지 않고 나오는 돈 앞에서 그깟 것쯤은 새털만큼이나 가뿐했다. 내 고단함이 언제쯤 종착역에 다다를지 까마득했지만 난 이미 돈과 싸우는 전쟁터에 스스로 총알받이로 자원했던 것이다. 퇴근 후엔 씻는 둥 마는 둥 그대로 곯아떨어졌고 아침엔 겨우 비몽사몽 일어나 출근해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월급이라는 돈과 맞바꾼 내 노동의 삯. 그 대가를 받기가 무섭게 난 길림성으로 송금했다. 4년째 병실 한구석에서 시름시름 꺼져들고 있는 남편이 그런 내 노고를 알고 미안함에 벌떡 일어나주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한 고단함도 치러낼 텐데.
중국 자연사박물관 직원이었던 남편은 어느 날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질 않았다. 정확히 4년 3개월 전 중국 사천성 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는 천갱에 다녀온 이후부터이다. 체력약화로 첫 탐사단에 합류하지 못했던 그는 2차 탐사에 합류하기 위해 근 4개월간을 아침저녁으로 두 시간씩 운동을 해 체력을 쌓으며 몸에 좋다는 것들까지 챙겨먹은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2차 탐사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탐사를 떠나기 전날 소풍가방을 싸놓고 달뜬 아이처럼 설레던 사람. 어머니의 기도를 받으며 떠나던 그날도 그는 발이 허공을 닿는 것처럼 들뜬 채 집을 나섰다. 그리고 탐사계획 일주일보다 이틀이 더 걸린 9일 만에 돌아왔다. 돌아와서도 그의 얼굴은 가던 날보다 더 흥분해 있었다. 자료들을 꺼내놓고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행여 컴퓨터 파일마다 가득 채운 자료가 손상될까봐 따로 몇 개의 복사본을 만들어둘 정도로 끝없이 깊다는 '천갱'의 깊이만큼 빠져있었다.
너무 근사했어! 환상, 그것보다 더 근사한 뭐라고 할까. 암튼 내가 상상도 못한 다른 세계가 그 안에 있었을 게 분명해. 아마 그 물 속을 따라 들어갔으면 그 세계에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한 달이 지나도록 그 달뜬 기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한 채 사진을 볼 때마다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난 그가 들여다보고 있던 사진은 아무리 봐도 도무지 그가 말한 환상적인 다른 세계는커녕 그저 흔한 자연의 일부분의 용암 깔때기 식 지모일 뿐이었다.
뭐가? 뭐가 다른 세곈데? 그냥 무척 큰 동굴이구먼.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 생겨난 커다란 구멍. 이렇게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 있는 동굴이 이곳 한곳뿐이겠어? 단지 다르다면 이 허여멀겋고 눈이 퇴화된 물고기가 좀 신기하긴 하네.
그러나 그는 그런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여전히 사진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물줄기는 여기에서 멈췄어. 더 갈 수가 없었어. 그 많던 물이 아주 크게 뚫린 땅 속으로 소용돌일 만들며 빨려들어 가버리는 통에 차마 그곳까진 갈 수가 없었어. 끝까지 가보고 싶었는데….
그리고는 유독 한 사진을 오래오래 들여다보았다.
뭐야? 이게? 배꼽?
플래시를 터뜨려 찍은 사진 속엔 흡사 흑백사진처럼 거무죽죽한 사물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암만 봐도 그건 알 수 없는 피사체였다. 사막에서 가라앉고 있는 모래기둥 같기도 하고 태풍의 눈, 혹은 소용돌이치고 있는 강물 같기도 한.
가지고 간 고무보트로 물길을 따라 갔지만 모두 그 속으로 사라졌어. 속으로…. 어딜까? 그곳은.
그가 쓰러진 것은 그 곳에 다녀온 지 꼭 한 달 보름만이다. 휴일인 그날도 다른 날과 별다를 것 없이 그는 아침부터 저녁 해가 넘어갈 때까지 그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녁준비를 위해 시장엘 다녀올 때까지도 그는 그 자세로 사진을 보고 있었다. 상을 차리며 얼핏 바라본 그의 등도 해가 지고 있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있어 산자락에 걸린 저녁 해가 넘어가면 그도 툭 넘어갈 것 같았다. 나는 밥상을 차려가며 그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 사이를 못 기다리고 그는 컴퓨터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그의 방으로 갔을 때 그는 잠깐 든 선잠이 아닌 깊은 잠에 든 것처럼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얼굴을 책상에 묻은 채 자고 있었다. 불현듯 이상한 기분이 들어 그의 등을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그는 마치 볼링 핀이 쓰러지듯 힘없이 무너져버렸다. 그때까지도 난 그가 며칠 동안 잠들지 못한 깊은 잠을 자는구나 싶어 쓰러지는 그의 어깨를 끌어안다가 너무 놀라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가 엎드려있던 책상위엔 그의 코에서 흘러나온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순간, 난 당황해 그를 흔들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어이없게도 그땐 내 자신이 간호사라는 걸, 그래서 그때에 필요한 응급처지가 어떤 것인지 생각도 나질 않아 쓰러진 그를 놔둔 채 응급차가 올 때까지 울부짖으며 발만 동동거렸다. 그리고 그를 병원으로 옮기고 나서야 온몸이 땀으로 젖은 걸 알았고 너무 무섭고 불길한 생각이 들어 오소소 한기까지 들었다.
며칠이 지나도 그는 깊은 잠 속에서 깨어나질 못했다. 실력 있다는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추측하는 병명도 의사마다 달랐다. 과로에 의한 뇌혈관 문제나 혈액순환의 문제로 생긴 뇌경변 혹은 미확인 바이러스감염 즉, 일종의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에 의한 뇌 손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의사도 있었다. 어느 병원엘 가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닌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신께 사정 혹은 협박하며 매달렸다. 그 덕분일까. 다행이 한 달이 좀 지나 그의 의식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일어서질 못했다. 먼데 시선을 모으고 뚫어지게 보거나 고단한 모습으로 길게 하품을 해대는 게 고작이었다. 단 한 번도 나와 눈을 마주치질 않았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이곳에서 버는 돈으로는 당신을 낫게 해줄 수가 없어서 그래요. 잘 참고 있으면 당신 등산장비랑 낚시도구도 좋은 걸로 선물해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땐 벌떡 일어나 천갱에 함께 가는 거예요, 라고 하며 그의 이마를 쓸어내릴 때도 그의 눈은 여전히 다른 곳에 있었다.
이 곳에서 일을 하는 우리들끼리는 이곳을 '한남궁'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곳은 내가 태어나 자란 상해의 고향집이나 이곳으로 오기 일년 전 일했던 소도시에 비하면 왕궁 같은 곳이다. 처음 이곳으로 오던 날, 대형버스도 드나들 정도로 너른 골목으로 들어와 궁궐 같은 집 앞에서 얼마나 위축되고 주눅 들어 했던가. 성벽처럼 높은 담 주위론 더듬이 모양의 감시용 카메라가 빼곡히 박혀있고 그것도 모자라 담장 주위로 심은 소나무며 대나무들이 둘러처져 개미새끼 하나 얼씬 못하는 그야말로 있는 자의 요새였다. 그 요새 안엔 우리 쪽방민들은 상상조차하지 못한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보안요원과 집사나 기사가 상주했고 주기적으로 청소나 조경 해충업체에서 나와 관리를 했다. 그 외 찬모, 경비, 그리고 세탁과 집안청소를 하는 사람이나 나처럼 간병인까지 궁궐의 하인들처럼 각자 맡은 일을 해나가며 밥값을 하고 있었다.
우리 윤사장님 참 젊고 이쁘죠? 안 가꿔도 젊은데 매일 돈 들여 가꾸니 새 여자 티가 팍팍 나잖아요. 지금이야 회장님이 종이호랑이가 되셨지만 예전엔 한국 경제를 쥐고 흔들 정도로 거물이었데요. 회사 경영진이 쓰러지고 아들과 새 마누라가 세력다툼을 하고 있는 걸 알면 회사 주가가 떨어진다며 재활치료 끝나자마자 집에서 모신 건데 있는 사람은 다 그런가 봐요. 사생활이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외부인은 일체 집으로 안 들이는 거래요. 중국 사람인 우리야 뭐 한국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 사생활을 퍼다 나르든지 하지 뭐. 하긴, 그래서 한국의 연고자가 없는 우리 같은 사람을 들이겠지.
이야길 하며 주위의 눈치를 살피는 버릇이 있는 미숙 씬 이십대 초반에 이 집으로 들어와 마흔 나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자신의 후임 병이라고 생각되는지 그렇게 한남궁의 숨겨진 얘기들을 꺼내 죽 펼쳐놓는다.
미숙씨가 나를 노인에게 소개할 때 허름한 쌀자루처럼 누워있던 노인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만 빠끔히 뜬 채 일부러 인지 '끄응' 하는 신음소리로 답했다. 그것이 늙고 병들었어도 난 아직 부리는 자라는 걸 잊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뇌졸중으로 쓰러진지 7년째, 한쪽 눈꺼풀이 반쯤 덮이고 입이 틀어져 저작운동도 방해되고 오른쪽 수족을 쓰지 못하고 허리까지 굽어 거동도 어려운 전형적인 뇌졸중환자. 그래서 그런지 노인은 일흔의 나이치곤 훨씬 더 늙어보였다.
옷을 갈아입기가 무섭게 노인의 방 커다란 창문 앞으로 가득 쌓아놓은 일회용품부터 창고로 옮기곤 창문을 열어젖혔다. 오랫동안 갇혔던 탁한 공기와 퀴퀴한 냄새가 허겁지겁 빠져나간 자리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와 따스한 봄 햇살에도 미처 다 빠져나가지 못한 뿌연 분필가루 같은 먼지가 어지러이 떠다녔다. 노인은 그런 내게 한손을 들어 손짓 하며 뭐라고 웅얼거렸다. 그럴 때마다 노인의 입에서 끈적끈적한 침이 흘러내렸다. 아마도 뭔가 내가 하는 행동이 마뜩치 않아 잔소릴 하는 것 같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환기를 시켜야 해요" 하며 노인의 불만을 못 들은 체 했지만 등 뒤로 들러붙는 노인의 눈초리가 느껴져 등짝이 움찔거렸다. 아마도 노인 근처에 재떨이라도 있었으면 내 뒤통수를 향해 날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노인을 목욕시키던 날, 노인은 내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닫게 해줬다. 하긴 호화저택에서 등 따습고 배부르며 슬슬 노인의 수발을 드는 일로 두둑한 보수까지 주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의 일이 생면부지인 이국의 내 차지까지 올 때에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한다는 걸 계산하지 못한 내가 어수룩한 건지도 모른다.
노인의 몸은 욕창도 없고 대체로 피부도 건강했다. 그러나 그에 비해 몸은 청결하지 못했다. 목욕한 지가 언제인지 몸에선 지린내를 없애기 위해 뿌려댄 방향제가 진득하니 묻어났고 옷을 벗길 때마다 묵은 눈 같은 살 비늘이 우수수 떨어졌다. 더군다나 목욕하는 것이 익숙지 않았는지 옷을 벗길 때부터 난 노인과 실랑일 해야 했다. 머리를 감기고 비누질을 해 씻기는 중간에도 힘을 주며 도무지 협조하질 않았다. 게다가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에서 보리알 아니, 국숫발 같이 밀리는 때가 밀어도 밀어도 계속해 나왔다. 빌어먹을. 윤사장은 세컨드니 그렇다고 치자. 그동안 그를 수발한 간병인들은 도대체 무슨 명목으로 따박따박 월급을 챙겨갔을까 싶을 정도로 노인의 몸에서 밀려나온 때는 수챗구멍을 막을 정도로 밀렸다. 하긴, 아무리 돈을 받는 일이라도 생판 모르는 남자의 사타구니까지 씻긴다는 게 쉬운 일인가. 먹을 복 있는 년은 넘어져도 죽사발에 넘어진다던데 복이 없어서인지 난 어딜 가나 그렇게 일복이 수북했다.
목욕타월이 지날 때마다 노인은 몸을 움츠리며 성한 한쪽 손으론 치부를 가리려 애썼다. 목욕에 익숙지않았나보다. "괜찮아요. 전 회장님을 도와주는 간병사이니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라고 하며 거치적거리는 노인의 손을 치우는 순간 나도 모르게 훅, 하고 호흡이 멈추고 말았다. 빈 쭉정이처럼 늘어 붙어있던 노인의 물건이 슬그머니 고갤 드는가 싶더니 발딱 서 버리는 게 아닌가. 난 난감하고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스웠다. 가끔씩 성인남자의 아랫도리를 치료할 때 보아왔다. 하지만 먹고 배설하는 기능도 남의 손을 빌려야하는 노인이 그건 키워 뭘 어쩌겠다고, 하며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던 참이었다. 허릴 숙이고 있는 내 티셔츠 속으로 시선이 가 있던 노인이 느닷없이 손을 쑥 집어넣어 젖가슴을 움켜잡는 게 아닌가! 하마터면 붙잡고 있던 노인의 머리통을 물속으로 처박을 뻔 했다. '이런, 괘씸하고 흉측스런 늙은이 같으니라고.' 어디에 그런 힘이 숨어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노인은 수컷의 본능과 돈으로 사람을 제 마음대로 부리던 가진 자의 오만함이 아직도 살아있었다. 그제야 난 왜 노인의 보이지 않는 곳에 때가 그렇게 많았고 간병인들이 수시로 바뀌었는지, 그 좋은 조건이 이국 멀리 생면부지인 내게까지 기회가 왔었는지 알 것 같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머릿속은 갑자기 어려운 수학문제를 접한 것처럼 깜깜했다. 몸에 좋으라고 먹어둔 무수한 약들과 자양강장제들이 뇌혈관에 피떡을 만들어 반신불수로 만들었는데도 다른 신경세포로 탈출한 정력을 간수하지 못하는 노인에게 난 어떤 언도를 내려야 할지. 재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겼다. 못된 손버릇을 가진 중증환자 증세로 취급하며 쓸데없이 자라나는 성욕을 눌러버릴 것인가. 아님 어차피 어쩌지도 못하며 흉내만 낼 테니 그냥 노망난 노인으로 눈감고 모른 채 해줄 것인가. 만약 전자를 선택한다면 그는 이제껏 그렇게 내보낸 간병인들처럼 사정없이 내 목을 칠 것이고 후자를 택한다면 돈이야 모으겠지만 난 또 기어올라올 차후의 성욕까지 두고두고 견뎌내야 하는 곤혹스러움까지 참아내야 한다. 이제껏 노인의 간병 일을 했던 이들이 이런 상황에 놓였을 것이고 전자를 선택한 죄로 목이 잘려 내 차례까지 온 것이다.
내 계산이 복잡하더라도 답은 빼도 박도 못하고 하나다. 어떻게든 난 돈을 모아야한다. 그러니 내가 목적한 '돈 모으기' 전략을 위해서라면 구차스러워도 난 그 중간의 계산을 해야 한다. 힘들고 더러운 일에 따르는 큰 보수와 편하지만 작은 보수의 일 둘 중 선택을 하라면 내 망설임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어렵고 쉬운 일의 조건이 아닌 어떻게든 내가 목적한 돈의 크기를 선택해야한다. 그러니 당연히 돈을 벌어 남편을 살려야한다는 부등호가 더 크다. 더군다나 소도시 공단에서 보냈던 그 힘든 생활이 악몽처럼 떠올라 난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조건이 더럽다 하더라도 그만큼 보수가 훨씬 좋은 노인의 돈을 마다할 힘이 내겐 없다.
나라와 종교를 막론하고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산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게 돈이고 또 어쩌면 그 돈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산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 아마 죽음을 관장하는 신의 명부엔 십중팔구는 돈 때문에 죽은 사람들일 것이다.
난 조금도 흔들리거나 놀라는 기세 없이 아직 젖가슴을 쥔 채 내 눈치를 살피는 노인의 눈을 뚫어져라 보았다. 노인도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맑고 투명함이 사라진 그의 눈은 아무리 잘라내도 잘려나간 자리에서 다시 새 팔과 다리가 자라나오는 공상과학영화의 파충류의 눈처럼 흐리고 탁했다. 그런 노인에게 난 정중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회장님, 이러시면 안 되지요.
그러나 노인은 꿈쩍도 않은 채 다시 한 번 젖가슴을 쥐고 있는 손에 남은 힘을 주며 내 눈치를 살폈다. 빌어먹을. 마음만 먹으면 슬쩍 밀어도 픽 쓰러질 노인이지만 내 목적의 오랜 지속을 유지하려면 노인의 생명 줄을 잡아당겨 늘여서라도 내 목적한 바를 채워야한다. 그래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어차피 당신은 돈을 미끼로 끼워 낚싯댈 드리웠고 난 내가 물어버린 돈의 미끼를 절대 놓을 순 없다. 그 미끼의 미늘이 내 입천장을 뜯어내는 통증이 따른다 하더라도.
회장님, 간병인은 필요 없고 여자가 필요하세요? 자식들에게 얘기해드릴까요? 아버지에게 품을 여자가 필요하니 알아봐달라고 해드릴게요. 필요하시면 부르셔야지요. 아드님들이 정치인에 교수님들이라던데 뭔들 못해주시겠어요.
난 애써 부드러운 말투와 그러나 단호한 표정으로 노인의 눈을 똑 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리고 한손으로는 노인이 젖가슴을 쥐고 있는 왼손의 합곡을 지그시 눌렀다. 일시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때 쓰는 급소가격법이다. 순식간에 노인이 손에 힘을 풀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내 눈을 피했다. 뺨을 쳤으니 이젠 그를 얼러야했다.
괜찮아요. 회장님 잘못이 아니니 괜찮아요. 환자분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간혹 회장님 같은 분들이 계세요. 그건 본능적인 성욕구가 좀 남아있어서 그런 것인데 앞으로도 계속 그러시면 그건 큰 병입니다. 그땐 자제분들께 말씀드려야 해요. 고치셔야 하니까요.
내 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자식이라면 끔찍이 아는 노인들에겐 자신이 자식의 앞길에 장애가 된다는 건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그걸 알면서도 미안하지만 난 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비겁하다해도 그건 약자인 내가 가지고 있는 보잘 것 없는 무기이다.
그제야 노인은 슬그머니 손에 힘을 풀었다. 그리곤 용서를 받고 난 후의 어린아이같이 멋쩍은 듯 딴청을 피웠다. 어쩌면 한남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4층에서 노인과의 이런 씁쓸한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이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침상에서 눈이 마주치면 '하실만해요?' 란 인사 속에 묻어있던 안부가 그걸 염려했던 것이었을까.
이 곳에 적응하기까지는 서너 달이나 걸렸다. 고개가 꺾일 정도의 높은 담장 안에선 계절마다 갖가지 나무들이 순서대로 꽃을 피워내고 연못에 살고 있는 이름모를 관상어들이나 윤사장이 키우는 애완견들조차 소도시 공단의 쪽방민들의 삶보다 풍요롭고 여유롭다. 고급 차량만 지나가는 골목길엔 종일 가도 걷는 사람이나 리어카에 산더미만큼 폐지를 싣고 가는 노인들도 그리고 음식물찌꺼기를 뒤지는 살찐 도둑고양이 같은 것들도 찾아 볼 수 없는 동네.
난감하게 까탈을 부리던 노인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 눅진하고 한결 고분고분해졌다. 그렇게 나도 조금씩 노인의 균형 잃은 병적인 히스테리도 스펀지처럼 흡수해버릴 정도로 능구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서로를 물어버린 물고기와 미늘처럼 서로 찔러대는 괴롭고 아픈 씨름의 연장전만 만들 것이다. 노인이 내 수고로움을 빌어 남은 숨을 마저 쉬듯이 남편은 그 노인의 똥 수발을 참아내며 번 돈으로 병실 한 구석에서 산소 호흡기에 연명하며 느린 맥박을 유지해야한다.
누워있어도 씨오잉의 시간도 흐르는가 보구나. 글쎄 옆머리 쪽으로 몇 올씩 흰머리가 올라오지 않겠니.
보름 전 전화를 했을 때 시어머닌 그렇게 말했다.
그럼요. 왜 안 그렇겠어요. 결혼을 늦게 해 그렇지 그이가 올해 벌써 마흔둘이잖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신혼생활도 다 느껴보기도 전에 우리가 벌써 늙어가기 시작하다니. 어떻게든 돈을 벌어 그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눈앞에 보이는 등댓불만 보며 한 방향으로만 항핼 하고 있을 때 얄궂고 허무하게도 시간이 모래알처럼 우르르 빠져나가버렸구나.
저녁이 되자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노인이 잠든 사이 그에게서 벗겨낸 옷들을 쓰레기 봉지에 담았다. 그가 벗어놓은 묵은 허물 같다. 몇 번의 허물을 더 벗어야 그는 자유로워질까. 침대시트와 이불, 그리고 노인이 입고 있던 옷과 수건까지 대형 쓰레기봉투를 가득 채운다. 노인의 옷은 세탁하지 않고 버리라는 노인의 세 번째 부인 윤사장의 지시다. 그것은 노인의 청결을 위한 배려가 아닌 환자와의 격리라는 걸 난 안다. 한때 거물이었다 하더라도 이제 반송장이 되어버린 노인은 더 이상 윤사장에겐 양회장이 아닌 그저 매일 죽음을 향하여 한 발짝씩 다가가며 생을 마감하고 있는 거추장스런 존재일 뿐이다.
문득 어젯밤 꾼 꿈이 생각이 났다.
어두컴컴한 저녁이 다 되어 난 남편과 어딘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산사태가 난 건지 차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가파른 산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남편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남편은 내 앞에서 아슬아슬한 비탈길을 유유히 걸어가더니 갑자기 축지법을 쓰는 사람처럼 저만치 앞질러 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난 허겁지겁 남편이 간 쪽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며 따라갔지만 내리는 비 때문인지 눈앞에서 사라진 그의 모습은 그새 보이지 않았다. 더럭 겁이 났다. 뒤를 돌아보니 좀 전까지만 해도 내가 지나왔던 산길의 허리가 뚝 잘려나가 낭떠러지를 만들고 시뻘건 황토 흙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아! 이런…. 그때, 어디선가 사람들이 몰려와 웅성거리며 낭떠러지 아래 큰물을 이뤄 내려가는 곳을 보고 소릴 지르기 시작했다. 거기, 거기 남편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물 위를 떠돌고 있는 너겁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소용돌이가 지고 있는 벌건 물 한가운데서 그의 감청색 점퍼가 휘돌고 있다. 남편의 점퍼였다. 허우적거리는 그의 손이 보였다. 난 악을 쓰며 그를 불렀다. 잠시 그의 얼굴이 보였지만 이내 물 속으로 사라졌다.
꿈 속에서도 너무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며 난 울었다. 깨어보니 난 여전히 소릴 내며 흐느끼고 있었다. 꿈에서 본 그 광경이 너무도 생생해 잠에서 깨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참 동안을 넋 놓고 멍한 채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어머니 집으로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싶어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나 신호만 갈 뿐 받질 않는다. 몇 번이나 갔지만 집에 아무도 없는가보다. 안 그래도 비자가 만료되는 이번 국경절엔 들어갔다 올 참이었는데 막상 누운 채 늙어가고 있다는 어머니의 말에 갑자기 그런 그의 모습을 본다는 게 더럭 겁이 났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신호음이 집안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아다닌다. 다섯, 여섯… 일곱. 열 번을 울리도록 집안은 조용하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려 할 때 딸깍 하고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시누이 딸 초앵이다.
할머니랑 엄만 안 계시니? 외삼촌한테 가계신거니?
아니요. 할머니랑 엄만 미용실에 가셨어요. 저어…, 외숙모! 근데 외삼촌 거기에 계세요?
외삼촌이? 여길 왜?
외삼촌 이제 병원에 안계세요. 엄마랑 할머니가 외삼촌이 멀리 떠나셨다고 해서 거기 가셨는지 알았는데.
어,언…제?
저 여섯 살이었을 때요. 외숙모 저 벌써 여덟 살 되었어요. 학교도 다니는 걸요!
그가 갔다. 내게 어떤 통보나 기별도 없이 그는 이미 이전에 떠나고 없었다. 비록 움직이지도 못하고 자리에 누워 숨만 쉬고 있던 그였지만 그는 내 삶의 미늘이었다. 가슴 깊숙이 들어와 박혀 내가 힘들 때마다 뜨끔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던 미늘. 그래서 힘들고 아파도 그의 존재를 생각하면 다 참아내고 견딜 수 있게 해준. 그래서 애써 뱉어내지 않은 채 피고름을 삼켰더니 제 살처럼 단단하게 들어박혀 살았던 그 미늘이 맥없이 빠져버렸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는 수억만 촉광의 프리즘으로 고단한 내 삶을 지켜주던 등대 불이었는데.
이상하게 시원하기는커녕 통증이 더 해왔다. 미늘이 박혀있던 그 자리가 아닌 온 몸속의 모세혈관을 타고 예리한 바늘이 돌기 시작한건지 숨을 쉬고 울음을 토해낼 때마다 어딘가가 쿡쿡 쑤셔왔다. 온 몸의 센서가 뒤엉킨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질 않고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것들이 젖은 흙벽돌처럼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이었고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어떻게든 그를 일으켜 세워보려고 이곳까지 와 힘겹게 요동치는 게 안쓰러워 그는 '툭'하고 박혔던 자릴 빠져나갔구나. 등대불도 꺼진 망망대해에서 그저 바보처럼 일직선으로 가고 있는 내가 가여워 그는 어젯밤 내 꿈속을 다녀간 걸까. 정말 너겁인줄 알았는데 당신이었구나. 이제 그는 자유롭겠지. 사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저 기계에 연명한 채 숨만 쉬게 해주던 모든 줄들이 걷혔으니. 어쩌면 지금쯤 그토록 근사하다는 천갱의 시커먼 물 밑바닥으로 통하는 통로를 찾아내 다른 세계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떴을 땐 언제 그랬냐 싶게 비는 말끔하게 그쳤고 맑게 갠 하늘에선 투명한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왔다. '아침이 오면 모든 것이 제발 꿈이길' 하며 빌었지만 염원이 덜 해서 그런지 난 다시 비켜서지 않은 현실과 마주하고 앉았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내방에 놓여있는 에넘느레한 풍경들. 옷장, 옷걸이, 휴지통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새날의 먼지를 묻히고 있는 씨오잉의 사진액자. 얄궂다. 어떤 상황이든 관계없이 또 하루의 태양은 떠오르고 그 빛을 받아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숨쉬고 있다는 게. 떠난 사람은 언젠가 잊혀질 것이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또 잠에서 깨어나 먹고 깔깔거리며 커필 마시고 지루하면 어디론가 전활 걸어 싱그러운 수달 풀어낼 것이다.
비에 씻겨 내려서인지 맑은 햇살에 떠오르는 미세한 먼지가 사금(砂金)처럼 반짝인다. 그가 떠났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언제나 그래왔듯 물기를 머금고 있는 축축한 잔디 위로 미지근한 햇살이 스며들기도 전에 부지런한 미숙 씨가 돗자리를 좌르륵 펴 널고 정원을 가꾸는 서 씨 아저씨가 묵묵히 장마 동안 웃자란 잡풀을 뽑아내고 있다. 장마 동안 들어차고 있던 눅눅함에 어딘가부터 푸슬푸슬한 곰팡이를 피워냈을 돗자리. 햇살이 뜨거워지면 그것들을 털어내며 다시 챙챙하게 말라가겠지. 내 가슴속에 미늘이 들어차고 앉았던 그의 큰 자리에도 햇살이 들어차면 그렇게 꾸덕꾸덕 아물어갈까.
빗소리가 멎어 그런지 사방이 조용하다. 평소 같으면 지금 이 시간이면 내 쪽을 바라보며 밖에 날씨를 물으며 티브이를 켜달라고 할 노인은 아직까지도 깊은 잠에 빠져있다. 이제 보니 조용했던 건 빗소리가 멎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쌕쌕거리던 노인의 가래 끓는 소리도 '우웅' 거리며 보채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였나보다. 반쯤 열어놓은 노인의 방으로 고갤 돌려 노인을 바라본다. 새우등처럼 휘었던 등 때문에 늘 모로 누워있던 노인이 어느 틈에 뒤척인 것인지 반듯하고 길게 누워있다. 이불 밖으로 비죽이 나와 있는 하얀 면양말을 신은 노인의 발. 장마가 끝나고 나면 길섶으로 우뚝 웃자라있던 풀처럼 밤새내린 비에 노인의 키도 평소보다 훨씬 커진 것 같다. 순간, 아차 싶은 생각에 노인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노인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그가 벗어놓은 묵은 허물만이 길게 누어있다. 그의 얼굴위로 쏟아지는 젖니처럼 맑고 투명한 햇살. 한 차례 해일이 지나간 바다처럼 평온하다. 언제 떠난 것일까.
타다닥.
어디선가 젖은 날개를 털며 힘차게 날아오르는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