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나문희·신구 등
관록 묻어나는 연기에
‘토지’의 이종한 PD 연출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
소박하고 애틋하게 담은
노부부의 따뜻한 이야기
인생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하지만 황금빛 연못처럼 아름다운 순간 또한 많다. 더욱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소소한 일상들도 반짝반짝 윤이 난다. 연극 ‘황금연못(9월 19일~11월 23일,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은 한 가족의 소박한 이야기다. 여느 작품들처럼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다루고 있지만, 잔잔해서 더 오래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황금연못’은 꽤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 극작가 어니스트 톰슨이 1978년 발표한 처녀작이자 출세작으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후 큰 인기를 끌었고 30여 개 언어로 번역, 40여 개국 무대에 올랐다.
또 1981년에는 영화로 제작돼 제54회 아카데미상 남·여우주연상, 각색상 등을 비롯 각종 영화제 17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만큼 대중성과 작품성을 검증받은 작품이다. 그러니 이번 국내 초연이 자연스레 기대를 모을 수밖에 없다. 이번 공연이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드라마 ‘토지’의 PD였던 이종한의 연출 아래 이순재, 신구, 나문희, 성병숙을 앞세운 탄탄한 캐스팅! 노년 연기의 노련한 하모니를 느낄 수 있어 더 반가운 무대다.
가족 간에 한 번쯤은 겪었던, 혹은 언젠가 경험하게 될 수 있는 이야기. ‘황금연못’은 노부부 노만과 에셀이 황금연못이 있는 별장에 도착하며 시작된다. 여름을 보내기 위해 이곳에 도착한 이들은 아옹다옹하며 잘 지내는 듯하지만 때때로 노만은 치매 증상을 보이며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인식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의 불화로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외동딸 첼시가 노만의 80세 생일을 앞두고 별장에 나타난다. 새 남자친구인 빌과 그의 아들 빌리와 함께 말이다. 노만은 여전히 딸에게 까칠하지만, 13살 빌리와의 만남은 그를 변화시킨다. 여름 내내 빌리를 돌보게 된 노만은 그와 특별한 우정을 나눈다. 그리고 어느새 가족에 대한 사랑을 짙게 느끼게 된다. 결국 가족의 힘은 그들 모두를 하나로 엮어준다.
무대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별장의 모습이지만 그곳을 채우고 있는 공기는 남다르다. 큰 창문 너머 어딘가에 황금 연못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까? 등장인물들이 황금연못을 바라보고 그곳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을 때마다, 관객들은 실제로 무대에선 보이지 않은 황금연못을 상상하게 된다. 그럴수록 무대의 빈 공간들이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늘 곁에 있는 가족이란 이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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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공연을 장식한 신구, 성병숙 커플은 노년의 일상들을 화려한 꾸밈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신구는 특유의 화법으로 극이 담고 있는 인생의 결을 자연스럽게 살려준다. 그래서 노만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표할 때 더욱 실제와 같이 와 닿는다. 그만큼 톡 쏘지만 절대 미워할 수 없는 노만 역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13살 빌리의 말투를 따라 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에서도 그간 브라운관을 통해 마주한 신구의 매력이 여실히 느껴진다.
성병숙 또한 늘 밝은 모습으로 가족의 중심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에셀을 인상적으로 연기한다. 에셀이 없는 노만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말이다. 물론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 8년 만에 재회한 이순재, 나문희 커플의 호흡 또한 이들과는 또 다른 색깔로 극의 매력을 더해줄 것이라 기대된다.
제목처럼 잔잔하게 반짝이는 연극 ‘황금연못’. 천천히 스며드는 한 가족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잠시 잊고 살았던 가족이란 이름의 애틋한 정을 찬찬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소박해서 더 강한 감동, 그것이 바로 가족의 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