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콤시티는 잘 소통되는가?
Is Welcomm-City Communicated Well?
- 비평의 누적작업 곧 메타비평을 요청하며 - 이종건/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들어가기 전에
이 글의 성격부터 먼저 밝혀두자. 승효상의 웰콤시티에 대한 나의 글은 여러 가지 점에서 좀 새롭다. 무엇보다 웰콤시티에 대해 글을 쓸 열정이(그래서 의도가) 여러 가지 이유로 애초 눈꼽만큼도 없었음에도, 결국 이를 앞에 둔 채 입을 열게된 데에는 다소 복잡한 사연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여기서 중요하지도 않거니와 굳이 일일이 나열할 만한 것이 되지 않아 생략하겠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웰콤시티에 가볼 수 있도록 요청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아예 포기했다. 한마디로, 이 글은 건물을 직접 보지 않은 채 쓴 것이라는 점에서 새로울 수 있다. 이럴 때 어떤 이는 당장 물을 것이다. 어찌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채 쓸 수 있느 냐고. 맞는 항변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진과 실제 건물은 현격하게 다르다. 예를 들 자면, 스케일에 대한 감각은 도무지 사진으로는 종잡을 수 없다. 주변의 물리적 상황에 대 한 이해도 그렇지만, 도면 읽기 또한 현장에 가보지 않고 제대로 간파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나는 이번 글쓰기에서는 웰콤시티라는 건물에 대해 비평하지 않기로 했다. 또 하나의 새로움은 거기서 발원한다. 벌써부터 고민하고 또 거듭 생각해 왔지만, 우리 에게는 지금 비평에 대한 비평 곧 비평의 누적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비평문화를 바로 세우 기 위해서는, 비평 내부에도 비평이 자리잡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러한 유의 작업이 거 의 전무했다. 비평 없는 비평, 그러니까 되울림이 없는 일회성 비평은 문화에 생산적인 방 식으로 이바지할 수 없다. 문화란 근본적으로 누적을 통해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 라, 홀로 선 비평은 진화하기 힘들다. 자기 이야기만 해대는 자는 내성이 불가능하고, 그래 서 결국 자폐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비평작업을 하나의 자율문화로 세우기를 원한 다면, 비평과 비평간의 충돌과 간섭을 통해 비평의 근간을 직조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현장에 대한 경험을 건너뛴 채 내가 이 글에서 무엇에 대해 비판한다면, 바로 그러 한 의도, 다시 말해서 우리 건축사회에서 그 동안 진행해 온 일회성 비평작업의 한계를 지 적하며,소위 메타비평을 요청하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니, 그 맥락 안에서 읽어주기를 바 란다.
승효상의 불만과 언설
웰콤시티 건축가 승효상은, 자신이 겨냥하고 있는 건축의 목표에 대해 이상건축 6월 호에 적지 않은 분량으로 비교적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거기서 그는 자신의 작년 작품 수백당 에 대한 비평에 대한 불만으로 입을 열고 있다.요지는 한 마디로, 자신이 기대한 바(공간 구성 방식 제고)와 달리 비평이 엉뚱한 데로 흘러가 버려, 도움은커녕 실망까지 했다는 것 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의도를 거듭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수백당은 다(多)시점과 다 (多)중심이라는 개념으로 공간의 위계성을 파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쉽게 말해서, "어느 공간은 중요하고 어느 공간은 덜 중요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공간 이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그로서는, 아마 위계적 공간구성이 우리의 삶을 위계 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공간과 삶간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판단 이 단지 생각에만 머물고 있는 공허한 억측이 아니라, 실제의 역사적 현실 에서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 그는 이집트와 모로코 도시에 대한 자신의 여행관찰을 일종의 증거물로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는 복잡한 신앙체계와 계급구 조로 인해 무언가 강력하고 효율적인 통치가 필요하여, 강력한 위계를 구성하는 중심 축을 긴요하게 동원했는데, 그렇게 해서 발생한, 소위 칸이 말하는 "봉사 받는 공간(Served Space)"과 "봉사하는 공간(Servant Space)"이라는 위계적 공간체계가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전해지고 이후 기독교 문명을 바탕으로 하는 서양의 건축과 도시를 이루는 중심사상으로 발 전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함에 반해, 또 다시 그의 견해에 따르면, 모로코의 도시 는 그곳에 사는 이슬람교도들이 피차간 뿐 아니라 심지어 신과 그들 사이에서까지 일대일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서, 말하자면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신 사이에 어떤 위계도 없기 때문에 중심 축이라든가 위계적 공간이 도시에 없다는 것이다. 믿기 힘든 말이다. 그야말로 하늘을 붕붕 나는 지독하게 묽은 억측이요, 일반화요, 그래서 역사적 사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말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그리스와 로마는 정치, 사회, 종교 등의 차이로 인해 공간구성 방식에서 확연히 다른 체계를 나타낸다. 물론, 그 이후도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다르고, 따라서 이집트의 공간구성 체계를 "서양의 건축 과 도시"에까지 확장하여 일반화하는 것은, 분명히 어처구니없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도 시들이 그러하듯, 어떤 이슬람교 도시도 본질적으로 위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가 두 다른 문화에서 두 다른 공간체계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것은 문화적 차이의 고유성에 따른 결과 가 아니라,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두 다른 공간 구성방식을 그가 거꾸로 문화의 차이에 마치 아전 인수격으로 억지 대응시켰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백 보 양보해서 설령 그렇다 손치더라도, 공간이 다른 양상을 띠는 것은 삶의 형식이 다르기 때문이지(이것은 너무나 당 연해서 말할 필요조차 없는 진술이다), 그가 믿듯, 바로 그것 때문에 공간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논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승효상이 제기하는 비(非)위계적 공간구조를 원론적으로 한 번 생각해 보자. 유사 이래 그리고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사회는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다. 인간 이 무리를 이루어 형성하는 인간사회에는 근본적으로 힘의 차이가 존재하고, 그래서 그러한 공간구조는 오로지 상상계에만 존립할 수 있을 뿐이다. 사회가 본질적으로 비(非)균질적이 듯, 우리 몸 또한 대칭적이지 않다. 좌우의 지각방식이 다르고, 움직임에 따라 공간의 성질 (예컨대 깊이)이 달라진다. 비(非) 위계적 공간은 오로지 데카르트의 기하학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물론, 거기서도 벡터가 개입되면 각 장소들이 저마다 특이성을 형성하겠지만, 적어 도 개념적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실재에서는 모든 시간과 공간이 등질적이지 않고, 따라서 어떤 차원에 따라 위계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수백당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순서나 방향은 뺀 채, 다만 매스들을 나란하게 배치했다는 사실 만으로, 자신의 비(非)- 혹은 반(反)- 위계적 공간구성 방식을 읽어주기를 기대하고 또 요 청한다. 혹 나란한 매스들을 마치 산적 꿰듯 하나의 좁고 긴 복도로 잇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서 마치 바닷물이 손가락 사이를 일거에 파고드는 형국으로 진입하게 만들었다면, 어느 정도는 능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집에 들고나는, 그래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공간의 깊이를 생각한다면, 그러한 요구가 얼마나 억지스러운지 본인도 아마 가늠할 것이다.
위계적이지 않은 공간형식을 창출하기 위해 그가 거론하고 있는 다(多)시점과 다 (多)중심이라는 개념을 훑어보자.다(多)시점이란, 시점이 여러 개라는 말로, 그렇기 때문 에 당연히 소점(消點)이 여럿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육면체 덩어리들을 나란하게 놓은 수백당은, 어느 시점에서나 하나의 소점을 생산할 수밖에 없고 , 따라서 거기서 우리는 다시점이라는 개념을 동원할 수 없게 된다. 다(多)중심 또한, 중심이 여럿이라는 말이 다. 하나의 중심이라는 개념은, 모든 것을 하나로 수렴할 수 있다는, 그래서 결국 하나의 힘 혹은 차원이 존재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무엇인 다중심적이라는 말은 그래서, 각기 어떤 고유성을 지닌 집합들 곧 다원성을 일컫는다. 그런데, 기계 생산품이 아닌 한, 그리고 우리 의 활동이 등질적이지 아닌 한,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데카르트의 기하학을 떠나 실재하는 동질적인 공간은 어디에도 없는 셈이다. 내가 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가 어떤 공간을 다중심적이라 한다면,그러한 연유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이고 활동적인 차이들 때문이 아니라, 건축을 이루는 기하학에서의 차이, 곧 건축의 내재적 질서에서 발생 하는 차이에 주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건대, 수백당은 단적으로 다중 심적 이지 않다. 승효상이 자신의 이야기 뒤에 부연하는 여러 사람들의 말들 곧 전체주의적 인 세계관에 반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은, 60년 대 벤츄리가 들고 나왔던 것에 연원하며, 또 한 포스트모던 조건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들로서, 우리가 근대화 과정에 매몰되어 있던 당시에는 전혀 떠오르지 않은 관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버렸던 것들을, 오히려 저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금과옥조로 여긴다는 그의 말은, 도무지 역사적 맥락에 들어오지 않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다중심이나 다시점(들뢰즈의 smooth space개념은 그것을 넘어 있다)은, 오늘날의 포스트모던 상황에서 흔하디 흔한, 그 래서 벌써 지루하고 고루해진 언어에 지나지 않다.
그가 웰콤시티를 앞에 둔 채 수백당을 다시 재론한 것은, 자신이 볼 때 자신의 생 각과 어긋나버린 비평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웰콤시티는, 이미 오래 전에 로시가 설파한 '도시로서의 건축 혹은 건축으로서의 도시'라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꼬르뷰제 이후 적지 않은 서구 건축가들이 그 개념을 건축적으로 다양하게 쓴 적이 있지만, 승효상은 거기서 한 발짝도 더 넘어서지 않은 채 거기에 보이드(void)와 반기능이 라는 개념을 삽입한다. 그에 따르면, 보이드는 웰콤 시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원래는 포디엄(podium)의 선이 그대로 올라간것을 지우개로 지우듯 만든, 소위 "불특정적 공간 (베이겔의 용어)"이다. 결과적으로 형성된 네 개의 매스는, 크기와 모양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오히려 유사성이 더 강한데, 이것은 "풍경을 담는 틀일 뿐"(민현식 선생이 신도리코에서 한 말과 꼭 같다) 더 이상 어떤 것을 연출하는 광경일 수 없다. 그래서 웰콤시 티의 파사드는 건물이 아 니라 "변하는 풍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건물은 모순적으로 얼 마나 자기를 강하게 주장하고 또 나타내 보이는가? 한 마디로, 얼마나 도드라진가?
반기능이라는 말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기능에 거스른다는 뜻이 된 다. 그런데 그가 쓴 글에 따르면,그는 애초 사용자의 업무특성을 파악하여 그것을 공간으 로 조직하여 건축화 하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에 잘 부응하지 못해 회사의 조직 일부를 바꾸는 수고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능을 건축화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나 혹은 능력의 흠이 곧 반기능이라는 말인가? 그는 말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종래의 언어로 보아 기능적이라는 말을 이 건축에서 할 수가 없다. 오히려 반기능적인 요소가 너무 도 많다." 기능의 반대방향으로 기능하는 반기능적 요소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기능에 잘 부합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기능'을 반기능과 등가적으로 놓는 그의 사변은 이렇게 무디 기 짝이 없다. 불편이 주는 다른 측면의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누가 모르겠는가?(이일훈은 이 분야의 대가다. 그래서 불편한 건축에 대해 말하는 모든 이는 감히 그의 아류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불편이 곧바로 가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심층적으로, 그러니까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능에 대립할 것이 아니라 기능을 확장 하거나 변경함으로써 기능 이상의 무엇을 현전시켜야 할 것이다. 어떤 문제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것에 일차적으로 대립하는 무엇이 아니라 그 둘을 포섭하는 더 높은 차원에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기능주의는 절대 반기능주의로 해결할 수 없 다. 그가 코르텐을 마감재로 선택한 것은, 시간에 따른 변화 혹은 적층을 재료에서 얻고 싶었기 때문이라 한다. 건축학도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가 세라의 조 각의 무게감이 주는 전율적 긴장을 '마감'재만으로 연출하겠다는 비실재적 발상은 무척 아이 러니하다. 그리고 창의 모습을 마치 철판 면에 프린트된 듯 한 느낌을 창출하기 위해 애썼 다는 점에 이르면, 그의 형식에 대한 집착이 미스의 경우에서처럼 얼마나 큰지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나는 그래서 그의 수백당이나 웰콤시티를 보며, 그가 건물을 개념에 복속 시키지 않나 깊이 의심하고 있다.
정만영의 어긋남
웰콤시티를 놓고 정만영 교수가 승효상 선생과 대담(이상건축 6월 호)하면서 어긋나기 시작 한 것도, 바로 그 형식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다. 정만영이 줄곧 형태의 확정성에 대해 말을 이어가는 반면, 승효상은 거꾸로 공간적으로 거듭 거듭 대꾸해 가는 것은 매우 낯선 풍경이 다. 승효상은 자신이 런던에 가서야 비로소 "보이드(void)라고 하는 용어의 정체"를 알게 되 었다고 고백하는데, 그에 따르면 그것은, "인간의 선한 의지에 믿고 맡겨진 부분"이다. 쉽 게 말해서, 계획하지 않은 채 그냥 팽개쳐 두면 인간들이 선용(善用)할 것이라는 가정 하 에, 특정한 용도를 부여하지 않고 남겨 두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서구에 가서야 깨달았다는 것치고는, 그 뜻이 무척 빈(貧)하다. "인간의 선한 의지"라는 부분이 그렇고, 대책 없이 시 간에 내맡긴다는 생각이 그러하다. "계획의 허망함, "그러니까 작의(作意)를 넘어서고자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무위(無爲)의 개념에 맞닿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의 주장과 달리 정만영은 오히려, 승효상의 건축이 나타내는 강한 작의성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있다.
정만영에 따르면, 승효상의 건물은 돋보이거나 규정적이어서 다른 것을 압도하는 느낌을 준다. 승효상이 비록 자신의건축에서 형태는 부산물이라 강변해도, 정만영은 "단정 적이고 한정적이고 확정되어 있는 형태"에서 도리어 그의 이론과 실천간의 괴리를 꼬집는다. 이 문제에 대해, 둘은 시종일관 소통하지 못한다. 말미에 가서, "자기를 안 보이게 하는 것이 빈자의 미학의 요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건축적으로 나타내려고 하 는 것"(딱히 빈자의 미학이라 할 수 없는, 지극히 보편적인 견해)이라며, 논점을 전혀 엉뚱 한 쪽으로 돌려 방어하는 방식은, 건축가와 비평가간에 결국 소통이 완전히 두절되었음을 나타낼 뿐이다. 소통의 부재는 그것뿐 아니다. 불확정성이라는 개념의 토대의미나, 도시성에 대한 건축적 번역의 문제나, 바닥의 새로운 중요성 에 대한 해석이나, 물성과 구축성의 역사적 배 경 등과 관련한 일체의 의견들이 피차간에 온통 미끄러진다. 대담을 마친 후 쓴 글에서 정 만영은 여전히, 그의 건축에서 새롭게 부상한 바닥의 의미와 "단일체적 볼륨효과를 강조하 는 확정적 형태"에 대해 거론하며, 엄밀하지 않은 말로 인해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시사한다. 한 프로젝트를 앞에 둔 채 둘이 만났 지만, 두 사람의 생각은 한 점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
또 어긋난 구영민
정만영이 승효상과 얼굴을 맞댄 채, 그래서 좀 불편한 방식으로 어긋났다면, 구영민(플러스 6월 호)은 홀로, 따라서 아주편안한 어긋남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는 듯 하다. 그의 글 어 디에도, 위계적 공간, 보이드, 반기능 등과 같은 승효상 식언설은 찾아 볼 수 없다. 한 가 지 공유점을 발견한다면, 건축가와 비평가 모두 이 프로젝트에서 장소에 대해 주목한다는 것뿐이다. 건축가의 글을 미리 접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구영민이 조망하는 장소는, 도시와 건축, 그리고 도시와 자연 사이에 발생하는 경계에 주목하여 그 의미를 현대의 상황 안에서 추적한다는 점에서, 승효상의 시각과 크게 다르다. 건축을 시대성과 대질시키고자 하는 그러한 태도는 정만영과 흡사하지만, 정만영과 달리 그는 포스트모던의 조건 혹은 상 황을 형태나 공간의 (불)확정성과 연관짓기 보다 건축의 언어와 감수성의 문제에 더 치중하 여 해석하는 듯 하다. 웰콤시티에서 구영민이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측면은, 건축 행위를 통해 도시의 장 소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의지'인데, 그것은 "프로그램과 형태" (아마 내가 해석하기 로 이 문제는 , 구체적으로 웰콤시티에서 나타나는 그 둘간의 부조화 혹은 유기성의 상실을 지적하는 듯 하다), "내부와 외부"(이것은, 한 편으로는 각각의 매스를 이루는 공간들이 "내부지향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을 띰과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 서울이라는 도시의 모호성으로 파고드는 개방적 성격을 드러내는 이중성으로 인해 야기하는 문제를 말하는 듯 하다) 등 이 끊임없이 서로를 방해하는 탓에, "결코 완성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 운명"에 속박된 다. 이런 얄궂은 운명 속에서, 건축가는 급기야 도시의 언어들을 내부화 시켜 그것들을 드러내어 굳이 연출하고자 하는 "자기 집착증"과, 도시의 리얼리티를 유추적으로 반복하면서 종국적으로 그것들을 왜곡된 프레 임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쪽으로 몰아가면서 마치 우리 로 하여금 홍보영화를 보게 하는 듯한 "교훈주의"를 드러내어, 씁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상투적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구영민은 "그[승효상]의 건축 물이 너무 경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재료나 공간의 형식에서도
고질적인 매너리즘을 벗 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건축가가 자신의 건축에서 가장 중요하리라 발언하고, 그래서 자신의 작업을 통해 그리도 안타깝게 표현하고자 한, 비위계적 공간이나 보이나 반 기능 등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더 흥미로운 점은, 건축가가 심지어 수천 년 의 역사 읽어내기를 통해 그 진실성을 증명하려고 애쓰면서까지 자신의 신념(공간을 통한 삶의 변혁)에 기초하여 만들고자 한 공간(위계성을 파기하는, 말하자면 소위 다중심과 다시 점 공간)에서, 정작 비평가가 읽어내는 것이 "일시성의 위기"라는 개념이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비평가는 "전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어떤 집착 같은 무엇마저 탐지한다. 건축가와 비평가간의 어긋남은 재료에 대한 해석에서도 여실하다. 건축가는 내후성 강판에서 무게감 이나 시간의 누적을 말하고 있지만, 비평가는 거기서 벗어나 순환적 시간, 미래에 대한 두 려움, 불안정, 숭고의 미 등을 언급한다. 한 마디로, 건축가의 말(언어로든 혹은 사물로든 표현한 것들)이 아예 절단나고 있다.
소통하기와 어긋나기
도대체 무엇이 문젠가? 따져볼라치면, 일차적으로 문제를 건축가 혹은 비평가의 무능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건축가쪽으로 화살을 돌려, 그가 비평가로 하여금 자신의 건축적 의 도를, 언어로든 혹은 실제의 작업을 통해서든,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도록 해 주지 못했 다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비평가 쪽으로 돌리면, 비평가의 안목(깊이나 넓이 혹은 섬세함)을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의 근원을 어떤 사람을 향해 파헤쳐 들어가면, 종국에 가서 각자의 자의식이나 자긍심등의 심리의 벽에 부닥쳐 더 이상 돌진할 수도 없거니와, 설령 이 그 벽을 넘어선다손 치더라도, 그러한 방식으로는 문제를 보편적인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려 조망하기 어려워 생산적이지 못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거나 혹은 문제를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방편을 생각해 보자. 첫 번째 가능성은 이것 이다. 건축가와 비평가의 언설을 공격(혹은 비판)이나 방어(혹은 변호)의 입장이라는, 서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다. 건축가가 자 신의 작업의 결과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는 순간, 그는 이미 작업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평가의 입장에 서 있다는 논리(N. Frye)에 따르면, 해석의 구도는, 건축가와 비평가라고 하는 대립이 아니라, 비평가와 비평가라고 하는 상호 대등한 관계로 변경되기 때문이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건축가의 발언을 자신의 작업으로부터 전적으로 떼어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언어를 통한 그의 모든 발언은 그의 작업을 해석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자료로 등장 한다는 점 에서 여타의 비평가와 현격히 다를 것이다) 이 경우, 누가 더 가치 있는 발언을 하고 있는지, 그러니까 순전히 비평의 수준에 대한 판단이 남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건축 가와 비평가간에 발생하는 대립이나 소통불능 등이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드러내는 언어세 계에서의 객관성의 정도와 이론적 체계의 수준과 사유의 깊이 등을 헤아리되, 그 총체성이 한 마디로 어떤 지평(은 세계)을 열어주는 틀로 등장하는지에 대해 따지는 작업이 우리 앞 에 기다린다는 말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우리 건축사회에서 나타나는 결과는 대개 기우뚱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거꾸로, 어떤 건축가는 비평가에 비해 더 지적이고 더 섬세하고 더 상상의 에너지로 차 있어서, 우리의 눈을 가리는 벽을 순간 허물면서 그 너머 새로운 지대를 흘깃 보게 하는 섬광을 비추기도 한다), 우리 건축가들은 아무래도 작업 에 관계되는 일에 쏟는 에너지가 비평가에 비해 턱없이 많기 때문에, 독서가 부족하고 그렇 기 때문에 그다지 다양하거나 깊은 사고를, 게다가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표 현해내기 힘들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들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승효상의 글은 지적으로나 상상력의 차원에서 나에게 어떠한 자극도 주지 못한다. 웬만하면 누구라도 느끼겠지 만, 다 아는 식상한 말일뿐만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나 체험의 내용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에 비해 정만영이나 구영민은 다르다. 그들의 말은 조직적 이면서 아이디어가 반짝이고, 게다가 어떤 영감의 그림자마저 스며있다. 한마디로, 그들의 언설은 승효상에 비 해 어떤 파워가 있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열등한가? 비평의 차원에서 보자면, 그렇다. 그 러나, 이것으로 문제를 봉합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못한 것 같다. 건축가의 발언은 종국적 으로 작업에서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해석의 구도를 다시 설정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건축가와 비평가 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으면서, 또한 등가적으로도 보지 않는 방도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 니까, 건축가와 비평가의 발언을 두 개의 비평적 언설이라는 동일한 차원이 아니라, 두 개의 상이한 세계로 보면서, 그 둘이 상호 침투하거나 대립하거나 빗겨나가거나 부딪히면서 제 삼의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건축가는 사고와 육체의 노동과 정을 거쳐 생산한 두텁고 단단한 물체(건물)를 손에 쥐고 있다. 비평가는 그 현전하는 물체와 그가 그 동안 읽었던 사유들간의 쟁투를 벌려가며 애써 발견한 언어들을 배열한 구조적 인 지형도를 들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늘 해왔듯이 이 지점에서 사태를 종료 시키지 않 고, 더 나아가 그 둘을 결구(혹은 직조 혹은 재배열)하여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만 된다 면, 건축가도 비평가도, 또 그들을 읽는 독자들도 불평이나 단순한 심판에서 끝나는 씁쓰레 함을 맛보지 않고, 도리어 피차 무엇을 찾고 배우고 상상하는 즐거움을, 그래서 참으로 생 산적인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비평 이후의 비평 곧 메타비평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 지점 을 향해 여럿이 파 들어가는 문화의 힘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오히려 어긋 나기 작업은, 그것이 철저하기만 하다면,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 생각한다(물론, 감정의 어긋남은 서로 자제해야 하겠지만). 건축가와 비평가, 혹은 건축가 끼리나 비평가끼리 간의 근사함과 다름이 생산하는 의미와 가치는, 그곳을 기점으로 여러 층이 쌓여 그 단면을 짜를 때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그 지점은 건축가의 작업일 수도, 비평가의 사유의 형상일 수도, 혹은 그야말로 그 둘을 아우르거나 넘어서는 우리시대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더 이상 대립과 경쟁을 넘어 그야말로 우리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발견하고 창진할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건축가와 비평가간의 일회성의 어긋남을 거듭거듭 생산하며 창진적인 에너지들을 수도 없이 소모해 왔다(각 매체의 편집인들이여, 부디 이 점에 주목하시기를!). 각자의 영역에서 무엇 하나 누적시킨 것이 있는지(문화란, 바로 그 누적을 관통하는 형상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현장에서 심각하게 물을 일이다. 어떤 문제 하나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대신, 유행이라는 차에 무작정 동승한 채 반짝거리는 일회성 이벤트를 벌이며 귀중한 삶을 소모해버린 우리의 역사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가. 그리고 왜 도대체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