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제와 도급제에 관한 경제신문기사
[아유경제=정훈 기자]
시공자가 분양 책임을 떠안되 분양 수익도 가져가는 ‘지분제’는 건설 경기가 좋을 때는 말 그대로 ‘꿀단지’다. 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이나 조합원, 시공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가 꺾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해관계인 간 갈등을 부르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미분양 리스크를 우려한 시공자가 사업 방식 변경이나 일반분양가 인하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 경우 조합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고, 조합원들도 ‘지분제 관철’을 주장하며 혼란에 휩싸인다. 이에 시공자는 사업비 지원을 끊거나 공사를 중단하는 등의 방식으로 맞불을 놓는다.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처럼 지분제가 만들어 놓은 ‘악의 고리’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최근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지분제’가 재조명을 받으면서 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형국이다.
분양시장 침체기엔 ‘지분제’ 택한 강남도 ‘휘청’
따라 했더니 시공자 선정은 ‘요원’, 사업은 ‘답보’
지금은 분양시장 침체로 사업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강남 지역을 제외하면 사실상 ‘도급제’의 시대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말 그대로 시공자가 시공 후 공사비만 받고 빠지는 게 ‘대세’라는 얘기다.
실제로 ‘지분제’ 방식으로 시공자 선정에 나섰다가 죽을 쑨 경우는 여기저기서 목격됐다. 가장 비근한 예가 최근 시공자 선정을 마친 서울 서초구 방배5구역이다. 이곳은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곧 시장에 나올 강남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면서 대형 건설사 간 치열한 수주 경쟁이 예고됐던 구역이었다. 하지만 방배5구역 조합이 작년 8월 사업 방식을 ‘지분제’로 결정하면서부터 사업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오래전부터 이곳 시공권에 관심을 보였던 대형 건설사들이 공문을 통해 ‘지분제’ 방식하에서는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합 대의원회에서 ‘시공자 선정 계획(안)’이 부결됨에 따라 연내 시공자 선정은 물 건너갔다.
이와 관련해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지분제’에서 ‘도급제’로 대세 전환이 이뤄진 시점에서 방배5구역이 거의 유일하게 ‘지분제’ 방식을 고수해 업계의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으나 건설사들의 사업 참여 의지를 불태우는 데는 실패했다”면서 “해를 넘겨 진행된 방배5구역 시공자 선정 과정은 지난 2월 유찰 사태를 겪으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다행스럽게도 지난달 28일 시공자선정총회에서 GS건설-포스코건설-롯데건설 컨소시엄을 시공자를 뽑았지만, ‘지분제’의 고수로 얻게 될 이익이 이 방식을 관철하면서 잃게 된 시간과 비용에 비해 얼마나 클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분제’를 선택하면서 발생했던 사업 지연과 그에 따른 불필요한 비용 발생 등의 실(失)이 이를 선택해 얻게 될 득(得)보다 클지 미지수인 만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지분제’ 방식으로 시공자를 선정했다가 시공자의 변심(?)으로 갈등을 벌이는 경우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부산광역시의 A아파트다. 이곳은 조합과 시공자가 사업 방식을 놓고 엇갈린 주장을 펼치며 대립, 입주가 지연돼 조합원들의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원들은 시공자 선정 당시 ‘확정지분제’로 알고 H건설 등을 시공자로 뽑았는데 미분양 사태가 발생하자 건설사가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반면 H건설 등은 ‘도급제’ 사업장으로서 조합 측이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아 유치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 부천시 B아파트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도 과거 시공자 선정 당시에는 ‘지분제’ 방식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자 시공자가 공사비 인상과 사업 방식 변경 등을 요구해 오면서 양측의 갈등이 시작됐다. 이후 이곳은 착공에 들어갔지만 미분양 사태에 따른 추가부담금 문제가 발생, 이를 놓고 내분에 휩싸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상황이 이러하자 아예 처음부터 ‘지분제’를 포기하거나 ‘지분제’였던 방식을 ‘도급제’로 바꾸는 단지도 증가 추세에 있다. 오는 12일 관리처분총회를 앞두고 있는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2단지가 대표적인 예다. 공공관리제도 적용을 받는 이곳은 작년 3월 시공자 선정을 위한 입찰공고를 내면서 사업 방식을 기존의 ‘지분제’에서 ‘도급제’로 바꿨다. 당시 고덕주공2단지 조합(원)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이미 2차례나 겪은 유찰 사태와 그에 따른 사업 지연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업계 다수 의견이다. 사업 방식을 바꾼 고덕주공2단지는 지난해 7월 대우건설-현대건설-SK건설 컨소시엄을 시공자로 맞이하게 됐고, 이후 약 1년 만에 재건축사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관리처분총회 개최를 눈앞에 두게 됐다.
다음 주자는 고덕주공2단지로부터 바통(bâton)을 이어 받은 경기 과천시 주공7-2단지였다. 이곳 조합은 작년 8월 대의원회를 열고 사업 방식을 ‘도급제’로 결정했다. 이에 힘입어 과천 주공7-2단지는 건설사 간 경쟁 구도를 ‘3파전’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그해 10월 삼성물산을 시공자로 선정하기까지 일사천리로 사업을 진행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도급제’ 시대의 서막을 연 두 단지의 성공 사례를 목도한 기타 단지들도 서서히 ‘도급제’ 바람에 편승하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3단지와 경기 광명시 철산주공4단지다.
특히 고덕주공3단지는 기존 ‘도급제’에서 ‘지분제’로 사업 방식을 바꿨다가 다시 ‘도급제’로 회귀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 같은 고덕주공3단지 조합의 행보는 2010년 10월 사업 방식을 ‘도급제’에서 ‘지분제’로 바꾼 후 3년 가까이 사업이 지지부진한 데 따른 고육책으로 평가받았다.
사업 방식을 ‘도급제’로 정한 철산주공4단지도 작년 10월 대우건설을 시공자로 낙점하며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시공자 선정을 마쳤다.
‘지분제’를 선택했다가 파행을 겪은 방배5구역과 ‘도급제’를 선택해 잘나가는 다수 구역들의 사례가 대조를 이루면서 ‘도급제’는 시장의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그 여파는 강남 지역에까지 미쳤다. 올 들어 시공자를 선정했거나 현재 선정 절차를 밟고 있는 강남 재건축 구역들도 ‘도급제’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다.
지난 3월 SK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한 강남구 대치동 국제아파트, 다음 달 12일 입찰마감 예정인 서초구 방배3구역 등이 그 주인공이다. 또한 지난 5월 대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한 서초구 삼호가든4차의 경우 ‘지분제’ 방식을 취했으나, 업계 한편에서는 고밀도아파트인 탓에 저밀도아파트에 비해 무상지분율이 높지 않아 ‘무늬만 지분제’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강남 지역조차 ‘지분제’가 아닌 ‘도급제’를 선택함에 따라 기타 지역도 이를 따르는 모양새다. ‘도급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 셈이다. 지난 7일 현장설명회를 개최한 경기 광명시 철산주공7단지가 이에 해당한다.
이와 반대로 이러한 시장 흐름에 역행한 사업장은 ‘역풍’을 맞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C아파트가 대표적인 예다.이곳은 지난 5월 조합 대의원회에서 ‘확정지분제’ 방식이 의결되면서 이전까지 단지를 중심으로 전개됐던 건설사 간 각축전이 사실상 끝났다. ‘도급제’로 갈 줄 알았던 사업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면서 건설사들이 부담을 느꼈고, 이에 홍보를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유찰 사태와 더불어 사업이 장기간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흘러나왔다. 최근에는 이 같은 우려가 현실이 돼 조합장 사퇴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고덕주공6단지발(發) ‘지분제’ 시대는 끝~
업계 “현장에 맞는 방식 소신 있게 택하라”
‘지분제’ 방식을 택한 현장 곳곳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은 ‘지분제’의 시대가 사실상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시공자 선정에 애를 먹고, 이미 선정한 시공자와도 사업 방식 변경 등의 문제로 분쟁을 벌이는 모습은 ‘지분제’가 당분간 옛 영광을 재현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분제’ 시대의 포문을 연 것은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6단지다. 2010년 5월 D건설을 시공자로 뽑은 이곳에서는 D사가 무상지분율 174%를 제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174%’라는 숫자는 달콤했고, 그 유혹에 많은 조합들이 쉽게 빠져들었다. 경기 과천시 주공6단지와 주공1단지, 주공2단지와 주공7-1단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등에서 ‘지분제’에 바탕을 두고 건설사에 높은 무상지분율을 요구해 이를 받아 냈다.
하지만 경기 침체와 맞물려 분양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건설사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과거 약속했던 무상지분율을 지킬 수 없다며 사업 방식의 변경을 요구하는 일이 늘었다. 조합이 이를 거부할 경우 본계약 체결이나 착공을 미룬다. 공사를 중단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심지어 말을 바꿔 애초부터 ‘도급제’였다고 주장하며 사업에서 발을 빼기까지 한다. 가장 중요한 협력 업체인 시공자와의 갈등은 필연적으로 사업을 수렁으로 밀어 넣는다.
이에 업계는 일선 조합(원)에 생존을 위한 다양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요즘 같은 시장 침체기에는 건설사들이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만큼 강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사실상 ‘지분제’ 사업이 설 자리가 없다”면서 “비전문가로 구성된 대다수 조합이 시공자의 힘을 빌려 사업도 시행하고, 분양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다 약속된 지분율에 따라 무상으로 새집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지분제’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이제는 그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관계자는 “더욱이 과거에 비해 전문성을 갖춘 조합이 늘기 시작했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재건축 관련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만큼 보다 자신감을 갖고 사업에 임할 필요가 있다”며 “시공자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자립심과 함께 개별 단지의 사업성에 기반을 둔 자부심이 결합할 경우 사업 방식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너도나도 ‘지분제’를 추구하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다시 ‘도급제’가 정답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면서 “단지 시공자를 뽑기 위해 ‘도급제’를 선택하기보다는 각 현장에 적합한 사업 방식을 충분한 내부 논의를 거친 뒤 결정하고, 다시 이를 해당 사업에 관심을 표명한 건설사와 시공자 선정 혹은 계약 체결 전에 심도 있게 협의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