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는 '사물놀이(김용배·전수덕·방승환·박은하)' DVD (지구레코드 제작, SKC 제조 JMDVD-001, 1DVD, 1985년 녹음 촬영, 2004년 1월 제작, 2004년 9월 말 발매) 해설서 1~3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사물놀이 명인 방승환 증언자료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방승환(본명)은 1958년 1월 20일(음력) 충청남도 온양읍 염치면 석두리 1구에서 태어났다. 방승환 집안에는 국악인이 거의 없는데 외할아버지가 꽹과리를 잘 쳤다고 한다. 방승환은 보지는 못했지만 그 외할아버지는 경기도 양평 창대리 사람이라 한다. 방승환 형제는 모두 비국악인이다. 방승환이 국악을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많았으나 집도 장만하고 성실하게 생활하고 있는 걸 보고 이제는 안심하고 있다 한다. 방승환은 어려서 석두리 마을에서 친구의 부친 김순봉의 꽹과리 연주를 많이 듣고 자랐는데 김순봉은 경상도에서 온 상쇠로서 경상도 가락을 쳤다고 한다. 방승환은 명절 같은 때 김순봉 등 동네 어른들의 풍물 가락을 많이 듣다 보니 그런 소리가 좋아져서 국악을 하게 되었다 한다. 방승환은 온양중학교 때 풍물 서클 활동시 상쇠를 했는데 이때 이 서클에서 초빙한 스승 조강자가 어느날 어린 여학생을 데리고 왔는데 그 학생이 바로 박은하였다. 방승환과 박은하는 이때 처음 만난 것이고 박은하는 방승환보다 한 살 연하로서 송순갑과 양도일 한테 풍물을 배운 사람이라 한다. 박은하는 서대전이 집인데 국악 세습 집안 출신은 아니지만 그 부친이 국악을 좋아해서 어려서 부터 풍물을 배운 것이라 한다. 김용배 역시 국악 세습 집안 출신은 아니라 한다. 방승환은 온양중학교를 마치고 국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강사준한테 해금산조와 정악을 사사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국립국악원에 3년간 해금 연주자로 있다가 해금이 적성에 맞지 않아 타악으로 변경하고 처음엔 무용 장고를, 나중엔 국립국악원 사물놀이패 창단 일원이 되어 김용배 작고 6개월 전까지 함께 사물놀이 연주 활동을 하였다. 국립국악원 사물놀이패 초기에 조금 하다가 다들 그만두려고 해서 김용배도 그만두려 했으나 방승환만은 늘 정확한 시간에 나와 연습하고 있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 보고 김용배가 “너 때문에 나도 이 단체를 계속한다”고 격려하고 고마워했다 한다. 국립국악원 사물놀이패 초기에 대부분 의욕을 가지지 못하고 많이 그만두려고 한 까닭은 월급이 너무 적어서였는데 당시 월 보수가 7~10만원이었다 한다. 국립국악원 사물놀이패는 1983년경에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창단 연주회를 가졌다 한다. 국립국악원 사물놀이패 첫 단원은 김용배(쇠), 남기문(장고), 남기수(북), 방승환(징)이고 그 다음에는 김용배(쇠), 전수덕(장고), 방승환(북), 박은하(징·짝쇠)가 이 단체에서 활동 하였으며 그후 방승환과 전수덕은 탈퇴, 김용배는 작고하고 지금의 국립국악원 사물놀이패로 이어졌다 한다. 지구레코드 사물놀이 음반(LP)에서 잠깐 최병삼이 참여하여 취입하였는데 방승환 생각으로는 방승환이 이 단체에서 탈퇴하면 김용배가 그 자리에 최병삼을 넣으려 했던 것 같다고 한다. 지구비디오에서 방승환이 김용배 등과 함께 사물놀이 비디오를 찍게 된 것은 김용배가 서한범 교수와 얘기가 돼서 성사된 것이라 한다. 이 비디오 촬영을 마치고 1년 정도 지나서 김용배가 세상을 떠났다 한다. 김용배는 이 사물놀이 비디오를 마음에 들어했지만 그건 그 이전에 서로 자주 호흡이 맞지 않았던 것에 비해서 잘 됐다는 것이지 그렇게 썩 연주가 잘 되지는 못했다 한다. 방승환은 이같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느끼고 그후로 이 비디오를 보지도 않았다 한다. 방승환의 기억에 의하면 이 사물놀이 비디오는 연습, 준비도 별로 없이 단 한번 촬영으로 연주를 마쳤다고 한다. 이 비디오를 찍고 약 6개월 후 방승환은 김용배 등과 함께 지구레코드에서 사물놀이 장시간 음반(LP)을 취입했는데 이 음반은 김용배의 꽹과리 연주가 매우 부각되어 녹음되었다 한다. 방승환은 김용배 등과 함께 지구레코드에서 이 사물놀이 장시간음반을 취입하고 난 직후 김용배와 크게 다투고 국립국악원 사물놀이패를 탈퇴하였다 한다. 지구비디오에서 김용배, 방승환, 박은하와 함께 사물놀이 연주를 영상으로 남긴 전수덕은 전사섭의 아들로서 김용배와 비슷한 나이인데 2000년에 과음으로 작고하였다 한다. 전수덕은 슬하에 아들 하나가 있고 김용배는 자손이 없다고 한다.
방승환이 김용배 등과 함께 지구레코드와 지구비디오에서 음반과 비디오를 낼 때 김용배가 지구 측과 계약을 했고 취입자들 모두 각자 사례금을 받았다 한다. 이 당시 방승환은 김용배 등과 함께 원일(쇠), 허윤정, 강은일(징·짝쇠), 김용우(장고), 권성택 (북), 강영숙(징)과 같은 후배들에게 타악을 가르쳤는데 이때 김용배와 전수덕은 별로 가르치지 못하고 방승환과 박은하가 주로 가르쳤다 한다. 지구비디오에서 사물놀이 비디오를 찍기 전인 1985년 11월 4일에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김용배, 전수덕, 방승환 등이 사물놀이 공연을 했는데 이때 김용배가 동해안 별신굿 쇠가락을 많이 넣어서 연주했고 이를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긴 전수덕과 김용배가 무대에서 다소 마찰이 있었다 한다. 이 공연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김용배가 농악과 동해안 별신굿 쇠가락을 접목시키는 점에 대해 그런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전수덕의 불만이 많았다 한다. 1985년에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열린 김용배, 전수덕, 방승환 등의 사물놀이 공연 실황 비디오 복사본 2종을 현재 방승환이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방승환으로부터 부탁받고 촬영한 조인환이 현재 원본을 지니고 있다 한다. 방승환은 이 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타계한 김용배가 당장이라도 화면 속에서 튀어 나올 것 같아 섬짓하여 한동안 이를 볼 수가 없었다 한다. 방승환은 김용배 꿈도 자주 꾸었는데 몇 년 전에 김용배 쇠가락 분석 논문을 발표하고 나서 신기하게도 그 무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다. 박은하 역시 과거에 김용배 꿈으로 종종 무서움을 느꼈다고 한다. 방승환이 소장하고 있는 그 공연 실황 비디오 2종 가운데 하나는 김용배의 연주를 공부하기 위해서 촬영자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김용배만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한다. 방승환의 기억에 따르면 김용배가 역대 연주자들 가운데 사물놀이를 가장 잘 연주한 명인이라 한다. 김용배는 최초로 농악과 별신굿 가락을 융합한 사람이고 김용배가 위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별신굿 가락을 도입했기 때문이라 한다. 김용배는 굿거리에다 자진모리 가락을 많이 넣어 서 연주했다 한다. 방승환의 생각에 김용배도 스스로 요절하기까지 완벽하지 못했고 그도 결함은 있었는데 푸너리 활용을 잘 못하고 태극 타법 등 별신굿 타악 기법 2~3가지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다. 방승환의 생각에 김용배가 자살한 까닭은 이성 스캔들 때문일 것이라 한다. 방승환은 지구비디오 사물놀이 영상이 재발매되는 것과 관련하여 필자가 인터뷰 요청을 하였을 때 그 비디오 찍은 사람이 하나, 둘-김용배, 전수덕이 세상을 떠났다며 무척 긴장을 하였고 그 일을 회고하니 자신도 웬지 불안해진다고까지 하였다. 방승환의 증언에 의하면 김용배가 평소 기가 막히게 연주를 잘했었는데 1985년 하루는 이상하게 주눅이 들어가지고 제대로 연주를 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한다. 왜 그런가 했더니 당시 부산에서 동해안 별신굿의 김정희가 찾아와 지켜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다. 그래서 김정희가 누구고 별신굿 가락이 어떠하길래 그럴까 추적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줄곧 방승환은 이 분야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한다. 김용배가 1970년대 후반 김덕수패 창단 직전 단원 모두 단체를 결성하기 전에 끝으로 전국의 풍물 명인들을 찾아가 배울 수 있는 기예는 모두 배워 가지고 다시 모이자고 제의하였는데 김덕수는 송순갑한테 가서 웃다리풍물을 익히고 김용배는 임실 필봉농악을 찾아갔으나 큰 학습을 얻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 별신굿 풍물이 특이하다는 소문을 듣고 부산으로 가서 김석출에게 6개월 동안 ‘자부라깽’(다드라 따따따) 등을 사사했다 한다. 김덕수는 김용배 작고 후 김석출에게 한달간 푸너리 장단을 사사했다 한다. 이 사연은 김용배 작고 후 방승환이 김석출한테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한다. 방승환은 김용배, 김덕수 등의 연주를 귀동냥으로 듣고 따라하며 풍물을 많이 익혔고 근년에는 송동숙, 김청만한테 장고, 쇠가락을 배웠다 한다. 김용배가 방승환한테 북가락을 많이 가르쳐 주었다 한다. 방승환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준 연주자를 꼽자면 김용배와 송동숙을 들 수 있다고 한다. 방승환은 현재 서울시 송파구 거여동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한다. 현재 풍물 계통에 동명이인의 방승환이 있다. 다른 방승환은 민속촌에 몸 담았다 청주대에 농악으로 들어갔다가 지금은 사물놀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한다. (1996.3.3.18:30~3.6.13:30,1997.3.1.17:00~3.2.10:00,2001.9.28.13:20~14:30.방승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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