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 강숙려 시인의 9번째 시집>
바람 속에 귀를 열면
추정/강 숙 려 시집
<시인의 말>
봄을 봄이라 부르지 못한 채
봄 가고 가을 가는 시간 속에서 인간의 속성이 앓는다.
별일 없어도 항상 바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평상의 그 날들을 모두들 그리워하는 오늘이다.
미물이라 말하던 바이러스 한 종이 불현듯 다가와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을 위협하고 죽음에까지
몰고 가고 있는 2020년의 반나절을 우리는
거리 두기로 집콕 하면서 숨을 죽이고 살고 있다.
나 또한 그런 이유가 이유가 되어 그동안 신문상으로
청탁원고로 문예지 등으로 게재되었던 서재 속 묵은
시들을 펼쳐 칠월 뜨거운 햇살에 거풍擧風을 시키고 보니
내친김에 정리 작업을 하며 욕심을 부려 본다
시인이란 이름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시를 만들고
즐겁고 충만한 기쁨도 슬픔도 회한의 날도 있었기에
또 하나의 내가 시가 된 지나간 날들이 주마등처럼 교차한다.
그래서 나의 시는 늘 그리움 뒤에 반짝 빛나는 햇살이다.
어떤 찰나의 순간 감정의 서정들이 불같이 일어
하나의 풍경이 그려지면 나의 시는 탄생의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들이 발표된 후 하나둘 쌓이게 되면
시집을 가겠다고 때를 쓴다.
이제 연로한 부모가 되어 더 이상 출가시킬 자녀를 두기엔
역부족이 아닌가 싶어진다.
어느 날 나를 돌아보니 참 예전 같지가 않구나! 를 느낀다.
행동반경도 좁아지고 시야도 좁아진 것을 알아 갈 때
나를 잘 챙기는 연습이 필요함을 알아야 할 게다.
9번째 시집을 엮으며 더 이상 또 이런 날이 있으려나 여기면서도
여든 고개쯤에서 인생수첩이나 하나 더 만들까 여김은 또 무슨 욕심인가?
양지바른 햇살 아래 옛 얘기로 도란거리며 꺼내 읽어도 좋을
그런 서책 한 권 더 쯤은...
아픔 뒤에 얻는 기쁨을 우리는 참 행복이라 말해도 되리라 여긴다.
자연과 더불어 콩 심고 호박 심고 건강하게 한 곳을 바라보며 둘이
손 맞잡고 걸을 수 있다면 참 행복이 아니겠는가!
언제 보아도 신기한 나비새 허밍버드가 붕붕거리며 꽃 속에 잠수한다.
그대 더불어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정겹다.
행복이 활짝 피는 순간이다.
이천이십년 칠월 라임라이즈 활짝 핀
그린에이커 츄리 팜에서 저자 추정 강숙려
차례
시인의 말
시해설 / 권갑하(시인,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부 나는 꽃처녀
*꽃 닢 지네요
*봄(春)
*나는 꽃처녀
*봄날의 반란
*봄날의 오수 (午睡)
*춘몽(春夢)에 젖어
*풀꽃
*속절없이
*목이 말라요
*매화(梅花)
*Amazing !
*피어나다
*추억을 털다
*파도
*머무는 곳
2부 우리가 가령
*첫눈
*꽃 속에 나비가 있듯이
*동행
*사랑愛과 정情
*마음의 들창 밑
*저만치서
*창(窓)
*아 가을
*과거로 가는 길목
*뒤돌아보지 마라
*물비늘 뜨다
*우리가 가령
*왜요
*잠자코
*지금은 공사 중
*타는 가을
*평정심의 나
*흔들려야 가을이다
*혼란(混亂)
3부 버릴 수 없는 것이 눈물겹다
*기억의 창가
*세월이 말하다
*이민(移民)의 땅에서
*조국의 한 뼘 지적도
*봄은
*가슴의 새
*가을이 가는 길목
*올해 몇인고
*부부란 2
*그리하지 아니할지라도
*사랑놀이 그 짓은
*맘과 맘 사이에
*바람 앞에 서면
*먼저 놓는 사랑의 다리
*돌이켜 보면
*버릴 수 없는 것이 눈물겹다
*나는 어미라
*저무는 갑신년(甲申年)
4부 바람 속에 귀를 열면
*가물가물 한 세상
*길 위에서 길을 가다
*장미의 유월
*부메랑의 법칙
*그림자
*편두통
*바람결에 스치듯
*천년 바람으로
*해탈입문(解脫入門)
*빈손(空手)
*들꽃 핀 간이역
*바람 속에 귀를 열면
*마음의 문으로 들어온 풍경소리
*제 혼자 겨워
*가을의 전설이 되어
*늙어가는 미물(微物)
*내가 사는 세상
*기다림의 詩
*그대여 우리
5부 그러라고 했지만
*날아오르다
*그러라고 했지만
*그곳에 가면(축시)
*고드름
*후회의 끝날
*우리 그렇게 살아요
*저문 밤
*잠들지 못하는 섬 하나
*차茶가 끓는 밤
*세월이 가면
*자아(自我) 만들기
*뒤 돌아 서보면
*돌아오지 않는 것은
*그는 백야(白夜)에서
*남편의 여인
*정지된 시간의 헌책방
*아, 삼월의 하늘이여!
*개명천지(開明天地)
6부 인생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든가
*아, 고마워요 감사해요
*그대, 곁에 있는 그대 참 고맙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꽃이 된 가치관
*말씀하시네
*복 있는 자의 할 일
*오늘의 기도
*꽃으로 퉁칠 생각 마라
*당연한 것에 대하여
*내 사랑하는 이여
*길을 가다 서다
*인생 그 나이
*관계關係
*낙조, 그 빛나는 소묘에 대하여
*흔들리며 크는 나무
*인생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든가
*해는 기울어 서산에 지고
*오월의 가슴
*세월의 뒤 안
*시인이여, 시인이여!
7부 늘 그리했던 것처럼
*모하비 사막
*놀금, 뒤에서 웃다
*세상 모든 존재는 소리가 있다
*돌아가다
*백세세대(百世世代)
*늙어 간다는 것은
*빈 둥지 증후군 탈출기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에게
*영원한 생명이신 어머니
*구구팔팔 이삼사(九九八八 二三四)
*어머니
*침묵의 언어
*태평양 넘어 눈부처
*눈물 속 어머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
*늘 그러했던 것처럼
*2020 삼월 COVID 19 PANDEMIC
*소중한 그리움이 되는 기억들
*거리두기
*이 보시게
1부 나는 꽃처녀
(각 부마다 제가 그린 삽화를 넣어주세요 함께 보냅니다)
꽃 닢 지네요
붉은 꽃 닢 지네요
바람에 흔들려요
떨어져도 고운 꽃 닢
차마 밟을 수 없는
눈물 같은 아린 자태
붉게 물든 야속함이 지고야 마는
까스라기 같은 한 세상
보시어요
바람이 불어요
떨어져도 고와라
붉은 꽃 닢 지네요.
(2010)
봄春
못내 속을 열어
못다 핀 그리움들 살포시
색으로 펼쳐놓는
저 꽃 대궁들
뜨거운 열기로 활활 피어나
아득히 수줍은 발돋음
첫사랑
첫 사람
단 한 번의 고백으로
화달작 피어내는
저 연정.
(2007)
나는 꽃 처녀
4월은
내 처녀가 화알짝 피어나던 계절
붉디붉은 첫사랑이 피어나고
눈물도 아름답던 스무 살 꽃시절
자운영 꽃밭에 나비인 냥
봄바람 가득 벌렁이던 시절
내게도 있었던 봄날의 향기
아직도 가슴은 그 시절 꽃물이 들고
노랑노랑 물들어 설레는 4월인데
머리에 찬 이슬이 소복히 쌓이네
빠알갛게 부끄럼 타는 나는
아직 꽃처녀
마알간 하늘이 다가와 입맞춤하는
사알작 이는 봄바람.
(2012)
*한올문학 2013 *한국문협 한국시인 사랑 시(한국명시 100인 선)
봄날의 반란
파랑 내음이 물씬 봄이란 이름으로
지천으로 피어난 민들레가 간지러움으로
빗물을 털어 꽃잎을 열어요
말할 수 없는 간절함이 하염없이 비로 내릴까
하늘도 애틋이 차오르는 아픔으로
저렇게 비를 내릴까
잠들었던 안의 것들이 쏟아져 나와
소리를 질러요
내 안에 있었던 노도의 소리 같은 것
흙 속에 묻었다 꼭꼭 묻었다 내밀어 솟는
절규 같은 것
내게도 있었던 내 안의 소리가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소리가
봄이란 이름으로 소리를 내고 싶은 것
저 봐라
강물이 되어 내 안의 것들
툭툭 꽃술을 열어요
봄비란 이름으로 흐드러지게 내려요
소리가 되어 그것들 출렁출렁 흘러서 가요.
(2009)
봄날의 오수(午睡)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
안개 속으로 걸어 나오면
아 나는 한 아름 안개꽃이여라
저리도 화창한 날에 환장하게 햇빛도
찰랑거리는데 비록 나 장자가 아니더라도
나는 나비가 되어 이리로 저리로
꽃들 만발한 화창함 속에서
내가 나빈가 나비가 나인가 꽃술을 핥으며
나비 꿈이 펄럭이더라
굴러가는 소똥만 보고도 허리를 잡던
단발머리 소녀에서
긴 머리 펄럭이며 수줍음 타던 스물 더불어
연애 삼매경의 내 젊음이 펄펄 끓던 그 시절로
꿈은 펄럭이고 펄럭이고 펄펄 철럭이더라
오라
그 푸른 청무우 같이 싱싱하던 내 젊음의 날이여
땅속 깊이 겨우내 키운 꿈 확 지피어 올리듯이
수선화 옥잠화 튜립 쑤욱 솟아오르듯 그렇게
햇살 깔고 오시려므나
분홍빛 봄이 치마폭 넓게 따사히 따사히
스며드는 사월의 오수.
(2007)
*캐 중앙일보 ‘07.3.31 *집필문학 ’17. 3월호 게재
춘몽春夢에 젖어
막무가내로 달려와서
목마른 내 목울대를 꿀꺽 넘어갔어요
단지 나는 그냥 바라만 보았을 뿐인데
봄은 나를 두근두근한 바람으로 만들었어요
아련하고 따끈하여 단내나는 봄이 된 나
꿈꾸고 싶어요
노랑노랑 파릇파릇 봄이 되어
열아홉 팔랑이던 꽃길에 서서
노스탈지어에 잠기고 싶어요
허벅지 버얼겋게 꽃이 피던 미니스카트에 날렵한 긴 부츠
신고 뽀득뽀득 걷고도 싶고요 긴 생머리 펄럭이며 엄청
도도해져 보고도 싶고요 밤새워 쓰고 지운 애틋한 사랑 편지도
받고 싶고요 눈물겨운 구애도 튕기던 그 시절 한없이 값나가던
그 시절로 딱 한 번만 가 보고 싶은 봄이 노랑노랑 익고 있어요
저 아래 희수의 언덕이 누워
껌벅껍벅 쳐다보는 한나절
그래도 나는 아직 봄이길 고집하고 싶은 청춘의 열정은
어제나 거제나 가슴에 있는 것
빠알갛게 꽃이 되어 춘몽春夢에 젖는 어여쁜 나는
아직 봄이고 싶어요.
(2018.03)
풀꽃
너는
마음을 두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니라
너는
오오래 보아야 참으로 사랑스러우니라
그것이
너를 사랑하게 하는 까닭이느니
멀리 가을이 발돋음 할 즈음 시냇가 한 모롱이에
보랏빛 향기를 뿌리며 피어나든 가
천지 가득 엎드려 너 세상이든 가
가날픈 그대야
너에게 취한지 오랜 나
어느 날
내 무덤가에 와서도 피어줄 그때까지도
이름 없을 너는
그냥
풀꽃이어라
(200203)
*‘06 상황문학 제4집. *’06. 8. 월간 시와 글사랑 게재
속절없이
설한풍 엄동에도
저 매화 다시 피건만
한번 간 내님은 길을 잃었나
매화꽃 피는 날
시름없이 따라 핀 마음
매화꽃 지는 날
속절없이 절로 지는
이 서러움.
(2007)
목이 말라요
뜨거워 뜨거워
팔랑이는 작은 잎새 앞에서도
몸을 떠는 나는
오늘도 꺼지지 않는 화염에 데이고 데여요
돌아올 수 없는 것은
모두 그리움으로 남아 가슴을 적시지만
먼먼 침묵들 빗물 되어 흐르다가
아득한 섬 하나 띄워 나를 가둬요
돌아올 수 없어 서러운 것들
돌아오지 않아 목메이는 것들
모두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올라요
목말라 시린 가슴
오늘도
차가워 차가워 얼음이 얼어요.
(2010)
메화梅花
춥다
눈보라 아득한
찬비 내리는 겨우내
속으로만 키워 온 그리움
더는 견딜 수 없는 앓이
툭,
기어이 들어내고 만 속내
감히 만지지 마라
천년 바람으로 견뎌낸
꽃잎의 열기다
만 년 후에라도 기억해 주오
저 하얀 눈밭 위에서도
그윽이 빛났던
그대 행한 이 향기를.
(2016. 12)
*집필문학 2017.3
Amazing
신천지다
황홀하여 눈부신 이 거룩함이여!
그 누가 이름 지을 수 있으랴
이 찬란히 빛나는
희디흰 푸르름의 나라
가만히 견딜 수 없어
참을 수 없음은
훌훌 벗고, 벗어 던지고
희디흰 저 푸르름 속에
첨벙 눕고 싶음을
새하얀 저 나무들 취하여 간들간들
흔들흔들 몸 섞는 소리
경이로운 한나절
내 혼백의 일탈이여!
(200701)
*‘07. 01.31 캐 중앙일보 게재
피어나다
피어나다
이제 막
겨우내 잠들었던 흙더미를 헤치고
활짝
햇살 따라 나오다
까만 씨알 속에서 영근
파랑 빨강 샛노란
예쁘게 어여쁘게 필 게다
꺽질 마라 따질 마라
씨알의 꿈이 익어 간다.
(202003)
추억을 털다
빗소리 개인 오후
참깨를 털 듯
추억을 털어 내다
사랑하던 그 사람
마냥 그리운 저녁
하얀 찔레가 진다
꽃비가 내린다
다시 흔들리며 비가 내리고
천지엔 빗소리로
얼룩이 진다.
(201106)
파도
옥양목 한 필 후루룩 풀어 던진 듯
출렁이는 물보라 연초록 주렴이 된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아픈 연가의 뒤 안
칠흑 어둠 속에서도
울어야 사는 그는
아파야 달래어지는
생의 귀로.
머무는 곳
나는 잠들고 잠들어
깊이 일어남 없는 잠 속에서
하염없는 꿈으로 살리
아픈 마음 하나 없어도 열매가 되는
내 사랑 익어서 꽃이 되는 날이여
하나둘 꺾이어 바람이 되고
다섯 여섯 슬픔으로 남는 오늘이 우네
돌아갈 수 없는 먼 강물은 흘러가
어디에서 모이나
숨죽여 울음 우는 가슴은
마른 대궁처럼 서걱거리네
보듬어 포개어지는 날은
정녕 꽃이 될까
아픈 것들 많아 버얼겋게 물드는 산
산.
(20121120)
2부 우리가 가령
첫 눈
순백의 신천지다
붉기 위하여 더욱 희여진
열정의 꽃이다
순결한 내 처녀의 무인지대
한 방울 잉혈을 뿌려
황홀히 눕고 싶다
푸르디푸른
저 흰 순결 속으로.
(2006)
문예운동 ’06. 8월호 게재 알버타저널 ‘06.11월23 게재
꽃 속에 나비가 있듯이
꽃 속에 나비가 있듯이
빛 속에 무지개가 들었듯이
내 속엔 당신이 들었어요
떨어져도 고운 꽃잎 눈물처럼 아린 밤
나는 눈을 뜨고도 꿈을 꾸어요
씨알 속에 꽃이 있듯이
꽃 속에 향기가 있듯이
향기 속에 당신이 있어요
그 향기에 취하여
나는 눈을 감고도 당신을 보아요.
(201812)
동행
내 어깨에 앉아,
내 어깨에 앉아 함께 걷는 그대야
유월의 향기를 장미라 말하던 그대야
사랑이 무어라 별빛 같이 말하던 그대야
영원을 꿈꾸던 발길은 춤 길이었다
아지랑이 아롱아롱 물안개 필 때
아무도 알 수 없는 모롱이 갓길에
너와 나의 숨결로 꽃들이 피었다
아가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점점 가늘어 가는 너와 나의 등 너머
먼 안개길 걷는 우리는 동행
긴 밀월의 동산에 선
영원한 동행.
(201505)
사랑愛과 정情
사랑은 짧은 눈 맞춤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정이란 오래 묵혀 곰삭여진 것이니
무게로 굳이 따진다면
사랑보다는 정이 더 무거우리니
사랑이여 그 얕은 농도로
우리의 사이를 비집고 들지 말지니
사랑 너는 미워지면 돌아서 남이 되지만
미움으로 돌아 선 우리는 그 무서운 정 때문에
아픈 상처도 아물게 할 수 있다네
사랑은 눈 멀어서 하고
눈뜨면 때때로 아픔으로 남지만
정 그것은 더러워서도 뗄 수 없으니
오 사랑이여,
정 앞에서 고갤 숙여다오.
(2012)
마음의 들창 밑
이끼 속 풀꽃 한송이와도
눈을 마주치고 싶다
어두워진 들녘에 서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가만히 듣고 싶다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영혼으로
뜨겁게 느끼고 싶다
꽃들은 여기저기 유정하게 피어있고
이슬 받아 맺은 열매 탐스러운 결과인 것을
아 들리어 온다
그대의 먼 발자국 소리
사랑이란 이름으로 불리어질
꽃보다 아름다운 순간을
향기보다 감미로운 느낌을
나는 갖고 싶다.
내 영혼이 혼절하는 사랑이 내게 와서
내 영혼이 불타올라 소지燒紙 되는
사랑을 하고 싶다
용서가 된다면 그렇게 소멸 되어 반짝이는
먼 별이 되고 싶다
나는.
(2012)
저만치서
세월은 꼭 기나긴 기찻길 같지만
때론 잠깐 스쳐 간 안개 같기도 하고
또랑물 하나 첨벙 건너온 것 같기도 하니
내게도 노랑 파랑 무지개 떴던 날도 있었던 일
이제 고희에 앉아서 꽃동네 꿈쯤은 꾸어도 되리
누가와 말하면
나는 꽃처녀라 향기라 사월의 푸른 잎새라 하리
누가와 책責하면
용서하라 나도 참 너 같았느니라 하리
저만치서 앞서가는 노을에
촘촘히 꽃 편지 띄운다.
(202002)
창窓
안과 밖의 투명한 길
열린 공간
허물어지는 빛의 얼룩
부딪치는 것들 흘러내린다
때때로 허공의 시간
얼비치는 모습들 흔들다 가고
투명하여 더욱 보이지 않는 어둠
안과 밖의 교차점
사람과 사람 사이
빛의 끝으로 맺어지는 그림자
노을이 물든 풍경
그냥 곱다.
(202001)
아, 가을
담쟁이 떨리는 잎새
가을빛으로 물들다
카페라떼 향기 속 가을이 들어가
흔들거리다
달빛 올 속에서도 가을의 현이 울리다
점점 짙어가는 풍경 내음
내 살 속 깊이 흘러 더 붉고 짙어라
개울 물소리 가랑잎 소리 모두
짚은 다갈색이다.
(2018)
과거로 가는 길목
그림자 뒤로 바람처럼 지나가는
먼 날에 그리울 풍경들
단풍 든 오리나무 떡깔나무들 사이
꿈을 찾는 연인들의 화려한 웃음 뒤로
희미한 그림으로 걸리는
과거로 가는 길목엔
뽀오얗게 돋아나던 쑥 논길 너머
하얀 니 들어내고 환히 웃고 서 있는
까만 머리의 젊은 내 어머니
한없이 그리운 오후.
(201705)
뒤돌아보지 마라
바람이 분다고 뒤돌아보지 마라
어제가 달려와 발목을 잡을라
가울 창이 쓸쓸하다 말하지 마라
외로움이 듣고 어서 몰려올라
못난이 꽃도 향기를 낸다
뒤돌아보지 마라
어제는 영영 가고 오늘이 왔나니
내일이 정녕 없다 하더라도 꿈을 꾸어라
시냇물 도란도란 흘러가는 냇가에 앉아
팔랑이는 저 창공의 꿈을 꾸어라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이 되느니.
(202002)
물비늘 뜨다
머리에 꽃 달고 눕고 싶다
멀리 아득한 그대 더불어
흔들림 하나 없는 고요
그리운 이의 단아한 이마
한없이 그립다
하늘은 저토록 맑아
잔잔한 바람 멀리
한 뜸 한 뜸 색실을 넣어
수면 가득 수를 놓는다.
(201606)
*지필문학 2017.5 게재
우리가 가령
우리가 가령 무엇이었다면
우리가 가령 무엇이 되었었다면
우리가 가령,
가령......
우리가 가령 무엇이 아니고 여기 이렇게
한 영혼을 가진 작은 존재에 감사할 일이다
정직한 영혼으로 생각하고
의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일이다
우리가 가령 무엇이 되었다면이 아니고 여기 이렇게
내가 사랑할 수 있어 바라볼 수 있는 그대 있음에 감사하자
봄 꽃 나비 천지에 사랑 있음에 감사하자
내가 가령 나비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어도
나는 나비도 바람도 나무도 피어나는 꽃과 더불어
하늘만큼 자라나는 행복을 열어 훗뿌리는
동산의 아침에 만발하는 웃음으로 피자
새벽 별 지는 동녘에 햇살로 솟자
우리가 가령 무엇이 정녕 아니더라도.
(201502)
*2015. 문예감성 봄 여름호 *2015 9 19 캐 조선일보 게재
왜요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겨 먹는 이 세상이 싫어요
정의가 말라가는 이 세상이 정말 싫어요
누구는 권력 앞에 돈 앞에 목소리가 커서 강한 사람
저렇게 당당히 휘돌아다니는데
부정 앞에 부패 앞에서도 큰 소리만이 강한 것이 되는
세상의 무질서 앞에
정의는 말라 다 말라 눈이 먼 세상 앞에
강한 것이 옳은 것이 되고 마는
죽은 참 진리 앞에
드디어 견딜 수 없는 세상이 싫어 너무 싫어
정의로운 님들 떠나 갔네요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진리라 말하는 세상에
죽어서도 살아나와 님들 또 한번 자폭하겠소 그려
왜 강한 것이
옳은 것이 되는 것일까요?
왜요?
(201909)
잠자코
저무는 가을의 문턱에서
잠자코 웃는 것으로 대답하기로 했다
옳고 그럼이 반듯함을 좋아했었으나
피면 져야만 하는 꽃의 이치를 깨달으며
남은 삶을 위한 기특한 생각이다
방긋방긋 웃는 꽃으로만 살고 싶지만
너무 아름다운 꽃은 손을 타기 마련이고
못난이 꽃은 귀함을 받지 못함이고 보면
있는 듯 없는 듯
미세한 바람으로 살아야 함이고
옳고 그름은
그냥 웃으며 바라보는 일이어야 함이다
오늘도 나는 웃는 연습으로 하루를 연다.
(202001)
2020. 10. 30 중앙일보 게재
지금은 공사 중
불편을 드려서
많이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공사 중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인
머리에서 가슴의 길이 아직
정리되지 못하여 아픔 중입니다.
도무지 권리 포기가 안 되어
가슴을 붙들고 떨고 있는 중입니다.
죽을 만큼 아파하고 있으니
이해하여주시고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아름다운 길이 되겠습니다.
세찬 바람이 골목으로 밀려드는 시간입니다.
곧 새 아침이 오리라 믿기에
아름다운 꽃도 피는 게 아닐런지요.
(20121212)
타는 가을
오랜 바람이 지나간 자리
찻잔에 날아든 가을 내음
적막의 눈으로 후루룩 노을을 마시는
타는 가을
아직은 젊다
노을이라 말하지 말기
바람은 언제나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모두 희미한 등불 같은 것
마음은 늘 하나이지 못하고
기다림으로 아픈 것
젊은 엄마 손 잡고 아장아장
마냥 그리움이고만 싶은
타는 가을.
(20191020)
평정심의 나
사는 일 더러는 서러운 일이지만
한송이 꽃잎을 피우는 일도 있어
아름다운 여정이다
만길 솟은 절벽에 매달려 천 길 낭떠러지로
굴러 본 뒷날에 깨닫는 인생의 진리 하나
붙들지도 붙잡지도 말지니 세상 모든 것은
지나가는 여정일진데
흘러가는 물처럼 흘려보낸 후
그렇게 고요한 물이 되어 오늘을 바라보라
지나간 것은 다 무無이리니
평정심의 내가 되어 구름처럼 흐르다가
아름다운 길을 만나 들꽃 하나 피워올리는 일
가물가물 기억 없는 길을 걷다가
풋풋히 웃어보는 일이다.
(201410)
*2014 인간과 문학 가을호 *2017 호주문학 게재
흔들려야 가을이다
한들한들 살랑살랑
흔들려야 가을이다
세상의 잎새 더는 견딜 수 없어
가슴의 것들 색으로 말할 때
내 가슴 자락에 와 매달리는
침묵 속 그대
나도 한 번쯤 노오랗게 살랑이고픈
샛노란 가을, 가을
확 불탄다 천지가
멀리 아득히.
(201911)
혼란 混亂
비는 비가 좋아 비가 되었나요
나는 무엇이 되어 무엇을 좋아할까요
하루는 그냥 가고 나의 문지방은 쓸쓸해요
밀물처럼 왔다 간 그 무엇도 그립고 아파요
내일은 나를 그냥 둘까요
벌새 한 마리 꿀물을 달라고 조르고 있어요
나는 꿀이 없어요
비늘처럼 흘러내리는 별의 어둠이 나를 감싸요
오늘은 가고 내일은 오겠지만 나는 이 밤을 놓지 못해요
때때로 거울 속에서 나를 봐요
내가 아닌 내가 나를 보기도 해요
그래도 밤이 가면 해는 뜨겠지요
소리를 내는 시간이 흔들리며 뒤뚱거려요.
(201403)
3부 버릴 수 없는 것이 눈물겹다
기억의 창가
가물가물 기억의 창가
펄럭이는 초록 별 하나
첫사랑
문득 그리운 오후
눈물처럼 아린 풍경 곁에
활짝 여는 모란
피어나는 꽃이다
오늘 나는.
(2008)
2020 3 6 중앙일보 게재
세월이 말하다
내 나이가 어때서
당당하게 말할 수 없어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스무 살 꽃띠엔
빠알간 장미처럼 예쁘고 만 싶었습니다
서른은
세상 모두가 내 것이었던 교만이었습니다
마흔엔
세상 모두를 내 손에 갖고 싶었던
싱싱했던 욕심이었었지요
쉰 되고 예슨 되면서
무너지는 산들을 보았습니다
내 것이라 말했던 것들 하나 둘 떠나
빈 껍데기 빈집이었습니다
이제 일흔의 언덕을 넘어서야
비워야 편하다는 이치를 깨닫는 일은
세월만이 가르쳐주는 일이었습니다
남은 세월은
바람처럼 훌훌 떠날 수 있는
나를 가르치는 일에 오늘을 가지라 합니다.
(201903)
이민移民의 땅에서
언뜻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밀 듯
스쳐 지나가는 달빛 같다 꼭 서울은
태평양 시퍼런 물결을 건너 어언 십 년
아직도 향수에 젖게 하는
내 젊음의 칠월이 석류 알처럼 익던 곳
그 곱든 단풍들 낙엽 되어 떨어져 호젓하던 덕수궁 돌담길은
무고한지 곧 어디론가 긴 칼을 찬 채 떠나야 할 것만 같았던
장군님은 여전히 광화문을 잘 사수하고 계신지, 늘 안부가
궁금한 나는 서울을 사랑하는 탓인가
멀리 서 보라 국력이 얼마나 이민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지를
강력한 국력이 있어야 빛나지는 이민의 자리
아름다운 내 나라 무궁한 횃불을 기도하는 동토의 땅 여기
뜨거운 눈물이 있다 애착과 사무침이 있다
분투 사랑하라 붉은 정열의 그대들이여
햇살 따스한 가을이 오면 가 보리라
내 청춘이 남겨 둔 거리를 걸으며 추억을 주워 보리라
아직도 선운사 동백꽃은 온 몸을 던져 붉게붉게 지고 있는지도
눈물 없이도 바라 볼 수 있는 곳들을 찾을 수 있을 진
알 순 없지만 나는 가서 보리라
그것들 비록 사랑을 잃었다 하더라도
두고 온 내 사랑의 힘으로 힘껏 보듬어 보리라.
(200612)
*한국현대시인협회 “서울사랑 2006년 앤솔리지” *2007 3 캐 중앙일보
*2014 문예감성 봄호 *토론토한국일보 *2019. 당진문협 시화집 게재.
조국의 한 뼘 지적도
가방 밑바닥에 용케 깔아온 한 줄기 고국 내음
세월의 줄을 이어 갑니다
미나리 쑥 내음이 가득하고
두릅까지 한가득 밥상에 오르고 보니
어머니 밥상이 되어 이웃과 정도 나누고 살만해요
어머니 이제 맘 놓으세요
여기도 거기 못지않게 봄도 왔어요
철 되면 민들레 진달래 개나리도 피고요
태평양 시퍼런 물길을 건너 불모의 땅
이 동토의 땅에 뿌리 내린 지도 오랜 이웃들
떠나 보면 무언가 잡힐 것 있으리란 믿음으로 허둥지둥
달려 온 세월 앞에 아이들은 자라서 이방의 짝들과 떠나고
둘씩만 남아 헬로 오케이 아직도 서툰 발음에 매여서
등짝이 오소소 춥기만 하지만
앞뒤로 내달리는 내 조국 차들이 이민의 외로운 가슴에 불을 지펴요
아직도 우리는 대한의 자손이라 말하고 있음에 목이 매여요
이방의 땅에서도 새싹은 돋네요
눈물 없이 살 수 없었던 세월은 실뿌리를 내리고
여기 조국의 내음 가득한 미나리 쑥들이 자라올라
조국의 지적도 한 뼘 그려 갑니다.
(202003)
봄은
저만치서 소리 내지 않는 걸음으로
만물을 일으켜 세우는 힘을 품어내며
모든 감추어진 것들을 들어나게 하고
솟구쳐 오르게 하는 봄은
죽을 수 있는 것을 용서치 못한다
꽃이 지는 것을 두려워 않음같이
바람이 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가을날 익을 열매를 탐하지 않음같이
봄은 그렇게 온다
내 속의 것이 내 것이라 해도
꺼내지 않는 마음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며
솟구쳐 품어내게 한다
그게 봄이다.
(202003)
가슴의 새
밤비처럼 차가운 입술
안개 속에 잠기는 밤
까치발로 다가와 적시는 어둠에
그대 아직도 내 곁에 있는 가
세상의 다리 어디든 그대 곁으로 지나지만
나는 기다림의 물결로 흘러만 간다
잠기듯 사라지던 자리
어둠은 그렇게 내리고
차가운 입술
밤비가 되어 흐른다
멀리 기적이 울리고
가까운 듯 멀어져 가는 흔들림으로
가슴의 새 날아 나간다
비 속으로 비 속으로.
(2006 03)
*세계크리스천문협 창간호 *상황문학 4집 *한올문학 명시 100인선
*계간한글문학 19호 청탁원고
가을이 가는 길목
별이 되는 그리움 하나 보낸다
건드리면 눈물이 될
가슴 하나 보낸다
그리 곱던 단풍
떨어져 낙엽이 되는
차가운 비에 젖어 앓는
가을이 가는
길목
외로운 것들 끼리끼리 모여
눈물이라 이름하고
슬픈 사랑 하나 가슴에 묻는
노을
저 멀리
가을이 가는 길목
젖은 단풍이 아리다.
(200410)
*캐 중앙일보 가을 특집 2004. 11. 13.게재
올해 몇인고
부끄러버라
나이는 왜 물어예!
꺼꺼러우면 답 되신 되묻는 대답
내게도 지학지년地學之年의 소녀기도 있었고
꿈꾸던 이팔청춘二八靑春도 있었느니
이립而立 전에 낳은 너희가 자라 어른이 되었거늘
나를 어찌 늙는다 하느냐
당연한 순리를 가지고
내 지천명地天命엔 그래도 어여뻤느니
이순인들 내가 무릎을 굵을까 보냐
아직도 창창한 꿈이 있고
마음은 꽃띠에 팔랑이는데
저 봐라 저 봐라
얼마나 아름다우냐
눈가에 잔주름 자글거려도 가슴이 맑아
활짝 웃는 저 웃음을
세월을 포개어 이고도 무거워 않는
저 웃음을
아직도 갈매기의 꿈을 꾸는 저 눈빛을
아이야 기억해 다오
기억해 다오.
(200601)
.
*캐 중앙일보 2006. 1. *캐 조선일보 2016 12 게재
부부란 2
놓지 못하는 끈이다
그렇게 좋던 날엔 입의 것도 나누고는
알량한 말본새로 시작하여
플리지 않는 매듭으로 싸늘하다
누군들 어여뻐라 고와라 탐하지 않았으랴 마는
오늘 멀리 서서 바라보는 저 눈빛 사나운 마음이라니
천리나 만리 쯤 더 멀리 서고 싶음은
보아라
간밤에 봄바람이 불었던 가
엄동설한 얼어붙은 골짜기 어느새
만발하는구나
치마 끝 살랑살랑 흔들고 지나가면
괜스레 큰기침해 보이는 뿌듯한 가슴
잡아보는 손길이 따스하여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아웅다웅 세월을 엮어가는 길
화롯불 불씨 같은 아낌으로 걷는 길
하염없이 붙들고 가는 그대와 나
놓을 수 없는 끈이다.
(20060608)
*캐 중앙일보 2006. 7.7 게재
그리하지 아니할지니
처음처럼
첫 마음으로 시작하고자 하는 순수다
첫 사람을 만나고
첫 경험을 나눌 때 빛났던 태양
흠 하나 없이 하얀 날은 순수의 첫날이었다
영원을 꿈꾸던 순수는 말간 물거품으로 날아갔다 해도
그늘을 두지 말거라 그늘이 없는 하늘은 어지럽다
봄날은 늘 그러했듯이 바람 부는 곳으로 가고
가고 보면 오는 것이 쓰다 할지라도
그리하지 아니할지니
사람은 원래 외로운 것이다
별은 왜 눈물을 흘릴까
첫눈 내리는 강변에서 피리를 불자
순수를 말하던 입술이 그리하지 아니할지라도
나는 눈물을 흘리는 별이 되리
첫눈 내리는 강변에서
첫 사람 못내 버리지 못해
필릴리 필릴리 피리를 불리라.
(201905)
*캐 조선일보 2019 9 28 게재
사랑놀이 그 짓은
눈으로 본 당신을
오늘 내 가슴이 이리도 아린 것은
멈출 수 없어 잊을 수도 없는
눈물이 되는 까닭입니다
눈을 감아도 가슴에 젖는 당신은
속으로 파고드는 아픔인 까닭입니다
눈으로 보았는데 아픈 것은 가슴이라니요
그것은 죽기 살기로 잊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사랑놀이 그 짓은
언제나 이유 없었노라 멀리서는
이율배반의 꽃그늘입니다.
(200502)
*세계작가연합 청탁원고 2006.4 *캐중앙일보 2006 4.14 게재
맘과 맘 사이에
맘과 맘 사이에 깊은 강이 흐르게 하라
푸르고 맑은 아득한 강이 흐르게 하라
강물이 고요하고 깊게 흘러가게 하려면
말과 말 사이에 쉼이 흐르게 하라
한 박자 쉼을 갖고 보면 보인다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가만히 들여다보자
무의식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는 일은
초월의 계단에 맘을 올리는 일이다
마음을 다스리려 하지 말라
그냥 가만히 바라보자
쉼이 잠시 나를 잠재우면
세상도 쉬고 나도 쉼을 알리라
맘과 맘 사이에
깊고 푸른 아득한 강이 흐르게 하라
(20181220)
*캐 조선일보 2019 5 25 게재
바람 앞에 서면
바람 앞에 서며 모두가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이 어디 갈대 뿐이랴
너도 흔들리고 나도 흔들리는 세상의 흔들림에
우리가 울던 그 어느 가을날 아침처럼
오랜 세월의 그리움이 꽃으로 피던
약이 되는 시간 앞에서
세월도 꽃으로 핀다
하나둘 우리 곁을 바람처럼 떠나도
아린 시간을 우리는 견디어야 할 일이다
그것이 길이기에 우리는 이겨 내어야 하는 일이다
그 먼 이별이 우리를 흔든다 해도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자
하늘에 별 하나 달아 놓고 그리움 새는 마음으로
흔를려나 보자
바람 앞에 서면 우리는 흔들려야 한다
흔들려야 사는 일이다.
(201807)
*캐조선일보 2018 게재
먼저 놓는 사랑의 다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짧고도 긴 다리가 있었습니다.
때론 건널 수 없는 끊어진 다리로
때론 험하고 가파른 언덕길로 이어진 다리
멀고 멀어 한 마리 새가 되어도 닿지 못할
먼 길의 다리
가슴에 먹구름 일어 천둥이 일어나는 다리
꽃이 피지 않는 그런 다리를 이제
우리는 아주 멀리 보내어야겠습니다
용서의 다리
화해의 다리 내가 먼저 놓으면
사랑의 다리가 됩니다
향기롭고 따사로워 사철 꽃이 피는 다리
작은 새소리 더불어 둥지를 터는 다리
마음 깊이 옹달샘이 솟아나는 푸른 다리
그런 다리 하나 새해엔 만들어야겠습니다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도 풀리는
내가 용서해야 용서받을 수 있는 답을
알아가는 새해가 되어야겠습니다.
기축년 삼백육십오 일은 태양 빛 꽃이 피어
황금 물결이 넘치는 날을 만들어 가야겠습니다
(기축년 새해 아침 청탁 시)
* 캐 중앙일보 1월 첫 주 *시와 글사랑 게재
돌이켜 보면
돌이켜보면 언제나 꽃띠에 머물지만
금방 쉰 되고 예슨 되는 것을
그래도 붉은 장미라 외치는 일은
아직도 가슴에 불타는 열정이 남은 탓일세
세월은 길고도 긴 기찻길 같지만
또랑물 하나 첨벙 건너온 것만 같으니
내게도 은구슬 같은 추억들
그리워 잠잠이 가슴에 어린다
발자국이 짧던 유년의 날엔
높게만 보이던 고향 언덕이나
앵두 빛 꿈이 익던 사춘思春의 가슴이나
첫사랑 꽃잎 같던 부끄러움도
내게도 있었던 그림 같은 일
안개 속에 젖은 나는 불이 되어
세월도 꿈도 태워 가는 오늘
등 뜨거운 햇살이 마냥 곱기만 하다.
(20051020)
*월간문학저널 2006. 3월호 *현대문예 2014 4월호 *문예감성 2014 봄호 게재
버릴 수 없는 것이 눈물겹다
안개 바다다.
버릴 수 없어 더 다가서지는
풀었다 다시 매는 옷고름 같은 것인가
골패인 언저리 한숨 같은 것인가
서로를 바라보는 강
거울처럼 환하여 눈부셔라
그대와 나
순간도 놓지 못하는 염원으로 붙들고
소리 없는 소리로 긴 여운을 보낸다
무언의 소리는 노래가 되어 돌아오고
노래는 불타는 노을이 된다
우리 노을이 되어 타 볼까
떨칠 수 없는 세월의 주름 속 끼여있는
아픈 정들의 편린들
두고 갈 수 없는
가슴의 것들
버릴 수 없는 것들이
눈물겹다.
(2004)
*남가람지 ‘04 *토론토한국일보 ‘06 *캐나다문학 ’09. 3
나는 어미라
풀잎만 흔들려도 가슴이 저려오는
그 앙증맞던 손가락 발가락 내 눈에 있는데
언제 자라 어미 말은 모두 잔소리가 되는 오늘
자식이란 품 안의 그 시절이나
어른 된 오늘이나 마찬가지 애물이라
가슴에 묻고 사는 애물단지라
ㅡ어머니 당신의 가슴에도
이 자식은 아픈 가시로 박혀 있겠지요—
먼발치에서 기적이 울리고
후우여 후우여 작별은 언제나
뜨거운 눈물이 되는
우리는 천륜
가슴에 부여안고 놓지 못하는
피의 사연이다
나비처럼 날으며 꽃처럼 향기로운 삶을 살거라
행복의 시내가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어 출렁이거라
두 손 모아 너희들의 새벽을 연다
나의 능금들에게 어미의 진(津)을 전한다.
(20060520)
노트 :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멀리 있어 더 그리운 나의 어머니,
그리고 나의 아이들. 그립다는 말이 오히려 아쉬움이 되는 오늘.
가슴이 저리도록 그리운 것은 천륜인 탓이리라. 내 그리움의 동산
어머니의 가슴만큼이나 할까 몰라. 이 불효를 어머니 용서하소서.
*중앙일보 ’06. 5. 27 게재
저무는 갑신년甲申年을 뒤돌아보며
찬란히 다가오는 을유년을 바라보며
저물어 가는 송년의 밤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또다시 아쉬움의 가슴으로 서야 한다
더러는 웃음으로
더러는 깊은 안타까움으로 보내야 하는
갑신년 잔나비여
달큰한 흥분으로 걸었던 달력은
열두 장 365일이 가득찬 하늘이었다
하루하루를 보내며 우리는 다짐했었다
좀 더 희망적인 내일이 되자고
좀 더 지향적인 우리가 되자고
꽃을 피우듯 그렇게 기도했었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시간은 세월이 되어 우리 곁을 하염없이 날아가지만
찰나의 순간을 위하여 인생은 길고
시간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은 세월이 알아서 한다는 것을
우리가 조금씩 알아갈 때 멀리 종소리는 울리고
몸도 마음도 아직은 추운 송년의 밤은 이렇게 온다
오늘 우리가 어제의 나를 알 수만 있다면
우리는 희망의 사람일 것이다
결코 어둠이 아닌 미래지향의 꽃으로 활짝 피울 수 있는
태양 빛 꽃다발일 것이다
환히 불을 밝히자
우리의 내일을 위하여 첫 훼를 치는
을유년 닭소리를 상기하며 깃발을 흔들자
보라,
붉은 해는 내일도 힘차게 솟아오르는 것을.
(2004년 갑신년甲申年 송년에.)
*중앙일보 송년시 게재. * 라디오 서울 송년 시 낭송
4부 바람 속에 귀를 열면
가물가물 한 세상
내가 마냥 한그루 코스모스로 핀다면
하양 빨강 누리 피어
한들한들 간들간들 흔들리겠소
내가 마냥 한송이 해바라기로 핀다면
하늘 돌아 바라보기로 휘어지리오
가을은 맑아서 좋고 높아서 좋고
깊어져서 이토록 숙연한 가
내 안에 고인 속내를 퍼내고 퍼내어 보내오니
그대여 이 가을엔 와서 꽃으로 피어주오
나만의 색으로 생겨 나와
핏빛 붉디붉은 꽃으로 피어주오
가물가물 한세상 꽃으로 남아
섞고 섞이어
드디어 꽃물이 되어 죽으리오.
(20190708)
* 2019. 7.19 중앙일보 게재
길 위에서 길을 가다
북풍한설에도 자기 몸을 불살라서
향기를 모아 피워내는 꽃이 있다
사는 일은 인내하며 삶의 고뇌를 익혀내는
길 위에서의 시간이다
때때로 모롱이를 만날 때 우린
좌절 혹은 절망의 끝에서 이어 나타날
희망을 꿈꾸며 길 위에서 길을 간다
발목을 잡혀 보았는가
결코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내려다보지 말 일이다
총총히 떠 있는 별을 볼 일이다
내 안에 별을 심고 노래를 심고
향기로 적실 일이다
인생은 묵묵히
길을 가는 일이다.
(201808)
장미의 유월
장미의 향기가 아름다운 것은
자기만의 색을 가진 까닭이다.
피어나는 장미의 유월
사람들은 모두 장미가 되어 활짝 피어나고
먼데 그곳에도 장미가 피고 있을지
마냥 궁금한 유월은 향기를 보낸다
장미에 가시가 있는 까닭은
하나쯤 지키고 싶은 이유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까닭이다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신 신에게 감사 못하고
내 손에 쥐고 싶은 욕망에 일침을 가하는 까닭이다
피어나는 꽃들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된 꽃들이 향기로운 계절
유월은 사람이
향기가 되게 하는 계절이다.
(2019627)
부메랑의 법칙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길이다
딱 정도로 살거라
정수리에 이고 있는 그 만큼이다
멀리 던지지만 제 자리에 돌아와야 한다
상상을 초월하게 갔더라도 되돌아와야 하는 것
던진 자리에서 그대로 받아야 한다는 것
뿌린 대로 거두는 법칙이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풍문으로라도 들려줄 까
고뇌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많이 생각하는 자가 이기는 자이다
내 몫을 기억하자.
(20190727)
그 림 자
나는 결코 찬란히 웃지 않으며
화려한 깃발을 들지 않는다
어둠 속을 다니지 않으며
빗속을 헤매지도 않는다
때때로 그가 허망이 걸을 때
그의 허리를 길게 펴 주며
함께 걸어주며
옷깃을 여미게 해 준다
내가 어두움과 타협하지 못함은
가슴이 맑아 청아한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찬란히 웃지 않으며
화려한 깃발을 펄럭이지 않음은
세상을 다 품고 가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만나는 날은
금방 별들이 쏟아지나 싶은 달 밝은 밤이거나
죄 하나 없어 반짝이는 햇살이 눈부신 날이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운명이라 불리는 소리 없는 분신이다.
(20050405)
*캐 중앙일보 *토론토한인뉴스지 *현대문예 게재
편두통偏頭痛
어디에서 연유해 오는지
오래전부터 내게 기생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목이 마르다
때론 짙은 향수의 끝에서 혹은
가로질러 내달음치는 먼발치의 하얀
그리움 묻은 화살처럼 타오르는
증후군이다
물속을 걷듯
안개 내음이 밀려오면
아득한 소리로 찾아 드는 그는
내 속에 꼭꼭 숨어 사는 시뻘건
학질이다
햇빛 좋아 하늘 푸른 날에
멀리 아주 멀리 두고 오고 싶다면
눈치 빠른 그는 한발 먼저 와
내 속에 파고 든다.
(2012)
바람결에 스치듯
꼭 지나가는 구름 같다
흔들흔들 가물가물 흘러가는 구름 같다
오늘은.
그리운 것들 많아 울어본 날 있던 가
억울한 것들 많아 서리쳐 본 날 있던 가
다 부질없어 바람결에 스치듯 훅 날려 보낸다
못내 안타까운 마음
누군들 모르랴 혓바늘 돋는 사연을
내가 네가 하나 되어 우리 얼싸안았어도
오늘 이렇게 서러워 우는 까닭엔 정답이 없어
그것이 서러운 그 까닭이다
건들건들 한들한들 바람결에 스치듯
그렇게 보낼 일만이 오늘의 할 일인 것을
비우고 지우는 것만이 살아가는 힘이라 말하고
우리들 풋풋하게 헛웃음 웃는 일.
(201507)
*지필문학 2017 게재
천년 바람으로
슬픔이 잠시 던져지는 찰나
멀어진 시간을 당겨 놓을 것인가
천년 바람으로 우는 진동음의 카톡소리
만년 별들이 함께 울린다
어디서부터 열어 볼까
너와 나의 이 평행의 문을
우린 밀어내는 지남철의 극처럼 멀어졌지만
결코 자장磁場 밖으로 나가지 못한 체
들풀을 뜯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우수수 떨어지던 낙엽 밑에서
비로소 사랑의 빛깔을 찾아내고 울었던 날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던 날
그때 바라본 하늘빛 그립다면
천년 바람으로 우는 이 진동이
우리의 잠든 사랑을 진정 깨울 수 있으려는지
시새움 많은 봄바람은 열쇠를 가졌을까
이 작은 문은 진정 열어지는 것인 가
아득히 울려 퍼지는 저 진동음.
(201509)
*2015. 10. 계간문예 *2017. 봄 문예운동
해탈 입문(解脫入門)
예전에
들고 올 것도
들고 갈 것도 없었던 이 몸이더라
오늘 잠잠히
고요한 평정심으로 나를 버렸더라
고요로운 마음의 풍경 위에
동그라미 빙글 돌더니
꽃잎 한 닢
뚝
떨어진다
오, 바로 그것
내 안의 나를 듣는 귀
누더기 속의 진주알 하나
반짝 빛남이 보인다
해탈의 미소란 빛깔로
마알갛게
(2004)
*동아라이프 *캐 한인문협 12집 *문학마을 가을호 *문예운동청탁원고
빈손(空手)
잡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한때는 빈손이라는 것이 자유로웠다
무엇이든 잡을 수 있고 가질 수 있어 좋았다
그런 빈손을 나는 사랑했었다
더 어른이 되었는가 이제
가득한 손이고 싶다
채워줄 수 있는 큰 손이고 싶다
가난한 눈빛을 채우고
슬픈 가슴을 채워 줄 수 있는
가득한 손이고 싶다
때때로 나는 하늘 가득 소리 내어 운다
그립고 보고픈 것들 많아서 울고
넘치도록 가득한 빈손에 운다
허허로운 세월 앞에 서서.
(20050820)
*’06. 상황문학 제 4호 * ‘07 중앙일보 게재
들꽃 핀 간이역
이별의 격정이 묻어있는
들꽃 흔들리는 저문 간이역
시간은 계절 되어 흐르고
그리움 쌓여 울리는 기적소리
간이역 등불 홀로 외롭다
떨리는 그리움들
꽃잎이 되어 피어났다 지는 슬픈 계절
파아랗게 비가 내린다
떠나간 새들 다시 오지 않아도
나무들 기다림으로 커 가고
등불 홀로 외로운
들꽃 하얗게 핀 간이역
슬픈 기적이 연정처럼 흔들린다.
(20140930)
*2015 문예감성 봄 여름호 게재
바람 속에 귀를 열면
흔들리는 달빛 속에 마음을 열어 씻는다
그리움 하나 아픔 하나
부질없이 붙들고 있음이 허虛인 것을
눈 감으면 다 영空이 되는 무無의 것들을
바람 속에 귀를 열면
들린다
무無의 소리가
내 것이라 탐했던 그것들
모두 보내고
내 것이라 붙들던 그것들
모두 버리고
가부좌하고 들어라
바람 속에 귀를 열면 들린다
무無의 소리가.
(2008)
*2010.시와 글사랑 청탁원고
마음의 문으로 들어 온 풍경소리
창밖에 풍경 하나 달고 싶다
마음이 움직일 때마다 뎅그랑 거리게.
내 가슴은 탔느니,
열정에 타고 그리움에 타고 모든 환희에 타고
노을보다 더 붉게 암흑보다 더 짙게 타고 탔느니,
이제는 재가 되어 아침 이슬에 지노라
안개에 젖고 이슬로 묻노라.
타다 남은 한 자락 연민이 있다면
오, 그대여 울어다오
붙들지 못해 놓지도 못했노라
목 놓아 울어다오.
시간은 세월이 되어
우리 곁을 유유히 흘러갔지만
놓지 못해 아린 가슴으로 하얗게 꽃이 피던 우리
여기 작은 묘비 하나 세우자.
ㅡ 붙들 수 없어 놓지 못한
서러운 들꽃 여기 지다. ㅡ
등 굽은 나무 그늘 아래 기대어
마음의 문으로 들어 온 풍경소리
가만히 듣고 싶다.
(20051010)
*사이버문학 작은 별 창간호 *월간문학저널2006 *시와 글 사랑 청탁원고
동아라이프 ’07. 9. 28 게재
제 혼자 겨워
하늘을 담은 강물이
제 혼자 겨워 흐르다가
이리도 고운 단풍 물들었다
산비알 마다 비쳐대는 그리움
그저 불붙는 사랑에 젖고 마네
구절초 향기로워 가을을 노래하던
억새풀 마저 하얗게 가슴이 저려 우는
시월 상달 보름밤
사위어 가는 풀벌레 소리
우리 그리움 하나둘
보듬어 비벼대는 억새 사이로
모락모락 흔들리다 피어오르는
황금 노을빛 사랑 같은 것
제 혼자 서러움에 겨운 세월
떠간다 둥둥
가을 서신 하나 들고.
(2007)
*양천문협2015 가을호 *한인뉴스지 2013 게재
*2017. 봄 한올문학 명시선 100인
가을의 전설이 되어
바다라 말했던 호수가 있었네
북미의 5대호 줄기가 흘러가다 쎙로렌스 강이 되었네
은빛 물결이 모여 천 개의 섬을 띄웠네
전설 같은 아름답고 가슴 여미는 이야기가 있었으니
죠지 볼트의 순애보라네
주방장이었던 그는 호텔 주인의 외동딸을 흠모했었네
어렵게 사랑을 이룬 그는 천 섬 중 하나인 하트 섬에
사랑하는 부인을 위하여 아름다운 성을 짓기 시작했다네
시새움 많은 불행이 찾아온 노을 진 저녁
부인은 백혈병에 붙잡히고
입맛을 잃어가는 부인을 위하여 눈물로 만든
저 싸우젼아일랜드라는 이름의 드레싱이라네
미완의 성을 남겨 놓고 부인이 세상을 떠나니
슬픔에 젖은 그는 바람이 되어 흘러가고
성은 폐허가 되어 울었다네
전설 같은 전설 속 이야기 있는 쎙로렌스 강에
유유히 떠 있는 아름다운 하트 섬의 볼트성엔
사계절 고운 노래가 흐르고
꿈인가 싶은 아름다운 부인의 웃음소리
볼트씨 귓전에 지금도 들리리
가을의 전설이 되어.
(200611)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속한 세인트로렌스 강에는 1864개 섬이 떠 있어 천섬이라 불린다. 그 강의 중간지점에 세계에서 가장 짧은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선다리가 놓여 있고, 세계 각국의 백만장자들이 사들여 각각 자기나라 국기를 꼽고 있다. 천섬의 하나인 볼트성의 사연은 아직도 만인의 가슴을 울리며 캐나다 관광의 필수 관광코스 중에 있다.
*토론토 한인지2008 게재
늙어가는 미물微物
배가 고파야 처량한 소리를 내며 찾아오는 그녀가
얄미워 미워하려 해도 오늘도 나는 그녀를 거절 못했다
절대 자기 몸을 내주질 않는 그녀의 도도함에 나 혼자 토라지고
도도한 년이라 욕도 해 보지만 언제나 한결 같다
사냥에 제대로 실패한 날이면 겨우 자기 몸을 살짝 부벼
쬐끔 아양을 떨며 빤히 쳐다보는 것은 배가 고프다는 얘기다
그런 날이라도 얼시구나 좋아 속없이 헤퍼지는 나다
그런 그녀가 어느 해부터 봄이면 새 옷을 가라입기 위하여
가죽을 송두리 채 벗어 내고 있다
어떻게 도와주질 못해 안달이 난 나는 안타까움에 목이 마르고
그녀는 떨어지지 않는 가죽을 매달고도 누구의 손도 거절한다
수려한 이목구비로 귀부인 태를 주루룩 흘리고 다니던 그녀가
봄이 오면 이런 누추한 모양새가 되는 이유가 도대체 어쩐 일인지
털만 바꾸는 것 만으론 안 되는 무거운 죄를 진 것인지
스스로 고단한 단죄를 하는 중인지
그냥 늙어버리기엔 너무도 억울한 하소일까
장미가 지는 칠월에 그녀가 떠나면
도도해서 마냥 얄미운 그녀를 나는 어찌 잊으려나
한 번만 만져보고파 안달하던 나를
그녀는 정녕 잊고 가려나
오면 가야 하는 이치 앞에 서러움이 쌓인다.
(2020)
캐 중앙일보 ‘20. 6 게재
내가 사는 세상
샛강 따라 내려가면
숨은 섬 삼각주가 하나 있어
그 섬엔 들풀들이 나풀나풀 풀꽃들을 피우고 있지요.
간간이 지나가다 들려주는 작은 새소리엔
풀피리 같은 흔들림으로 춤사위를 내려놓는데요,
한 세상 아름다워 꽃이고 푼 마음이 들꽃 함께 춤 한 바퀴 빙글 돌아 나오면
은방울 꽃잎들의 소근거림이 옛 얘기처럼 다정한 정오의 한때가 되어요.
누구를 닮아야 하는 이유 없이 그저 한가로운 그곳
낮은 낮이라 풍요하고 밤은 밤이라 더 없이 고요로운 작은 섬나라 거기
한낮을 햇빛으로 풍요했던 마을에 고요가 내리면
간지러운 이슬이 찾아와 별빛 더불어 영롱한 구슬을 엮는 달빛
부지런한 비단 줄거미 함께 연주하는 여치와 귀뚜라미
그때쯤 지구의 자전 소리 스르르 들려오지요.
잠을 잃은 그녀의 미간 속에 그려지는 수채화 한 폭.
가슴에 사는 이것들 내려놓을 수 없는 한 세상
늘 나는 또 다른 한 세상에서
빠알갛고 파아란 꿈을 꾸어요.
(20060728)
동아라이프 ’07. 2.2 게재
기다림의 詩
후두둑 갈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낯익은 설레임이다
기다리면 돌아올 것인가
눈물로 시를 빚는 시간
언젠가 우리 모두 떠나야 하고
다시 돌아올 기약 없는
오직 실루엣으로 각인 될 시간들에
우리는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아린 것들 슬픈 것들 모여
시가 되는 가슴에
호올로 와서 울어주는 빗소리
나비가 되어
젖은 내 영혼이 날고 있다.
고운 단풍 떨어져 고엽枯葉이 되는
노을 져 어스름 열리는 길목에 서서.
(20101108)
집필문학 2012. 겨울 호.
한글문학 제19호 봄 여름 호 청탁원고
그대여 우리
사랑이라 말하던 그대
곁에 두지 못했던 이 서러움일랑
이제 단풍이라 말하고
낙엽 되어 떨어져 삭히어지는
겨울로 가자
눈보라 앙상한 겨울 나목 사이로
바람이 되어 흐르다가
어느 양지바른 언덕 아래
소꿉 같은 집을 만들까
바람에 날려 온 씨알 하나
창가에 떨어져 싹이 나면
그대여 가슴으로 받아 훨훨 나비랑 날게
우리 어여삐 키워 볼까
들리는 소리마다 웃음이게
서러운 날들의 아픔일랑 그대여
삭히어 싹이 되는 우리 봄이라 이름하고
봄 꿈을 키워 볼까.
(2009)
지필문학 ‘12년 12월호 게재
5부 그러라고 했지만
날아오르다
이제 막,
푸른 물이 들 것 다
툭,
하고 터질 때까지
바라만 보기다
하나둘 둥근 원으로
기웃거림
날아오르다
가파른 신비 소리.
(2019)
그러라고 했지만
물같이 살라 하고
구름 같이 살라 했지만
욕심이랄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심심한 나는
날마다 용빼는 재주를 찾아 기웃거린다.
길은 멀어 언제나 아득하고
마음은 자욱한 안개 바다다
버릴 것도 없는 주제에
버릴 것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
몸은 채워져 무겁고
맘은 허공에 있다면 누가 들을라
약삭빠른 바람결에
그래도 작은 기도를 띄운다
그러라고 했지만,
약한 나의 오감은 빗속에 서서
하염없이 젖고 있다.
(20200403)
그곳에 가면 (축시)
소중한 추억 하나
우리의 가슴이 되는 이곳 Anvely (앤블리)에 가면
자기 일과 사람을 사랑하는 그녀를 만난다.
익어 가는 가을
그 결실이 당신인 까닭에
향기란 자기표현의 생명임을 말하고 싶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늘 새로움을 만들어 가는
그녀에겐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인생의 향기가 감사의 정신에서 나온다면
사람과의 인격적 관계를 조화 있게 꾸며가는 그녀는
주위를 늘 동화시켜 언제나 은은한 향기로 채운다.
우린 그런 사람을 사랑한다.
가을 햇살 따라 숲속으로 난 길을
휘파람 불며 걷듯
향기 풍기는 이곳으로 발길이 와 머문다면
사람 냄새 풍겨주는 한 다발 꽃이 핀 까닭이다.
그곳에 가면 꽃들이 만발하고 있다.
그녀는 꽃이다.
(20190921)
**** Anvely 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2019년 9월 21일.
고드름
슬픈 전설이 있었던 가
하늘을 바로 볼 수 없었던 그는
거꾸로 만 자라야 했었느니
처마 끝 눈물을 마시며 아래로 아래로 자라가야 하는 가슴엔
불덩이 하나 키울만 하였으리라
그래도 봄볕 더불어 몸을 불사를 수 있는 열정으로
누구에게는 생명수로 남아지는 어여쁜 일도 있기 마련이니
보아라 한송이 작은 풀꽃이 내 분신으로 저렇게 타오르는 것을
거꾸로 거꾸로 하늘을 보아도 알몸 하나
순간의 열정으로도 꽃을 피우는 너
너 이름을 누가 고드름이라 불렀을까
세상엔 뜻밖에도 이름을 만드는 이도 있어
나에게도 이름이 있다오
고드름, 고드름.
(2012)
2015. 현대문예원고.
후회의 끝날
사랑은 가네
겨울바람 사이로 흘러내리는 햇살같이
붙들리지 않고 가네
오래 두려 움켜쥐니
물속의 모래알처럼 흘러나가네
살프시 안아지는 그리움으로 곁에 머물걸
상긋이 웃음 하는 안타까움으로 바라만 볼걸
오늘 내 그대 그리워 어쩌나
내 속에 가두어
내 가득한 불붙는 사랑이
내 사랑이라 여겼던 것을
오, 사랑이여 떠나나
눈먼 내 사랑에 숨 몰아쉬며 떠나나
겨울바람 사이로 사랑은 가네
붙들리지 않고 바람 함께 떠나네
나를 묻고 떠났네.
(20060311)
*토론토한국일보 '06 *캐한인뉴스 2013.8 *양천문협 2015 가을호 게재
우리 그렇게 살아요
은 바늘 하나로 숨통을 찔러
지구의 자전을 멎게 하는 재능이 있는가
아니면 겸손하여 입안에 말이 적고
겸허하여 마음에 생각을 적게 두어
고요하여 평온함으로
아름다움을 보는 가.
거시적巨視的으로도 아직 서툰
나의 존재 언제 철이 들려나
언제 어른이 되려나
늘 염려하는 그대가 있으니
그래도 나는 웃어요.
은류隱流의 맘으로
맥랑麥浪 의 모습으로
히히히 살아도 나는 좋은데
그래라 말해 주셔요.
늘 바람은 풍경만 흔들어요.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는 없데요.
우리 조금은 흔들리며 살아요.
(20060310)
*중앙일보 ’06. 3. 4 게재
저문 밤
겨울바람 사이로 오동나무
비 비비
천고불후千古不朽의 소리
천년 비가를 울음 우는 가야금
서러운 것들 많아 목이 쉬는 거문고
소리소리 어울려 떨리는 현이다
오동나무 비어가는 속살에
떨리는 현으로 우는 세월
가물가물 흐르는 결속으로
나무들 흔들리며 자라 가고
우리들 겨운 눈썹 위로 긴 시간이
뽀오얗게 떠 간다
인연의 고리 걸리는 저문 밤
뚜벅뚜벅 들리는 세월의 발자국
먼데 기적이 흔들거린다.
잠들지 못하는 섬 하나
호 올로
잠들지 못하는 섬 하나 있어
노을 진 들녘에 나와 휘파람 불구나
기다리면 오려나
첫사랑 연분홍 꽃물 들던 시절
하그리 부끄럼 타던 그 시절
오늘 내 그대 그리워
잠들지 못한다면
흔들흔들 한세상 섬으로 뜨겠네
온몸 바쳐 부끄럼 타는 나는
가물가물 흐려지는 세상에 자맥질 하는
한 마리 작은 새 이련가
후르르 세월은 흐르고
우리들 아쉬움 자라 부풀어 지는 나이테
어둠이 내리는 들녘 여기
잠들지 못하는 섬 하나 있어
사랑 짐 하나 무겁게 지고 섰다네.
(2009)
2016. 현대문예청탁원고 2020 2월 월간문학 게재 시
차(茶)가 끓는 밤
묵은 다기에 물이 끓는다
당신의 영혼에 부딪혀 떨어지는
내 고뇌의 핏빛처럼
이 밤에 뜨거운 언어들로
물이 끓는다
솔잎차 푸른 봉지를 열고
가슴을 털어
다기에 붓는 밤
오늘의 나
어제의 너
고왔던 내 유년의 봄도 와
함께 끓는다
뛰어 다니던 언어들
솔 향으로 피어나고
우려낸 가슴엔 솔꽃이 핀다
오랜 세월을 우려내듯
다(茶)향에 취한 밤
가난한 영혼들 하나둘 모여 온다.
세월이 가면
저무는 명동의 막걸리 집 ‘경상도’에선
박인환 이진섭, 젊은 라애심이 모여
왁자지끌 한시름을 토하더라
박인환 즉흥시에 이진섭이 즉흥곡을 붙여
꼬부라진 소리로 라애심이 노랠 부른다
취하여야 사는 세상에 태어나서
취하여야 시가 되고 노래가 되던 세월
김수영과 시나브로 아웅 거리다가
목마를 타고 온 숙녀를 따라
술병을 불며 박인환도 가고 모두들도 가고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아 그렇게 태어난
‘세월이 가면’은
오늘 밤 내가 부르고 내일은 또 네가 부러르니
인생의 쎈티멘탈이 그 숱한 밤을 적시고 지나간다
그들은 이상을 그리워하고
우리들 남아 성급히 요절하고 만 그대,
그대를 그리워하노니
여기 Port Coquitlam의 Costco 뒤편
Carnoustie Golf장 7번 홀
화려한 내 작은 뜰에도 어둠이 캄캄히 내리면
그리워 못 잊는 얼굴 둥실 달이 되어 돋아나는
밤들이 있어 나는 목마른 밤을 갖고
붉디붉은 청머루주 한 잔을
기꺼이 마셔야 숨을 쉬겠네
보라 우주여
죽어서 가는 곳이 허공이라면
허공 그곳에 모두 들 안녕들 하신가요
그립고 보고프다 허기져 울면
무엇이 되어 보이시려는지요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내 싸늘한 가슴에 불을 지피는 꽃들이여
불타던 그 사랑 지금도 내 가슴에
불꽃이 되어 날아오르네
황금 노을이 되어
꺼이꺼이 울음도 울 것 네.
(20080620)
토론토한국일보;08.11. 문예감성 2014. 봄호
자아(自我) 만들기
이것저것 정리되지 않는 마음이
앉도서도 못하게 서성 되는 날은 길을 떠나자
그리운 것을 그리워하며 바람이 되어 흘러보자
훨훨 원초적인 마음 그대로 두어보자
예쁜 꽃 미운 꽃 모두를 우리는 꽃이라 부른다
우리도 모두 꽃이라 이름하자
무無로 왔다가 무無로 갈 우리
한 세상 꿈으로 살다가 잠 깨는 날
기지개 한번 크게 하고 그냥 떠날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어보면
서성 될 것도 없는 내가 되어보면
편안한 내 자리가 보이어 온다.
(20131003)
한인뉴스 2013.10 *2014. 문예감성 봄호
뒤돌아서 보면
와르르 쏟아보면 어떨까.
헝컬어진 생각들 오래 묵은 메모들 혹은
열리지 않아 폐기되었던,때론 버리고픈 기억들
꼭꼭 숨겨져 모두 잠들어 있던 것들을
어지러워서 아파서 괴로워서 도저히 싫은 그것들
언젠가 내 안에서 걸어 나와야 할 것들이라면
가난한 정오 햇볕 함께 앉아 쏟아 볼 일이다
하얗게 슬픈 오늘 그것들 걸어 나오고 싶어 한다
소멸되어 떠나고 싶어 하는 그것들 모두 보내자
고요한 바람
휴, 날아 나간다.
(20050923)
*때때로 나는 운다. 골 깊게 파고드는 여명의 소리들에. 그것들 언제나
내 곁에서 목놓아 울고 나도 덩달아 운다. 보내야 한다. 휴, 바람처럼.
’06. 상황문학 제 4집 ‘14. 04. 현대문예 게재
돌아오지 않는 것은
돌아오지 않는 것은 모두 그리움이다
마주 선 눈빛으로도 웃음이 되던 그날들
이제 먼 바다가 되어 떠가고 비껴선 가슴은
자욱한 안개 내음의 빈 골짜기다
저 능선 너머 연보라 구절초가 지천으로 필 때면
눈물처럼 아린 그리움 새가 되어 하얗게 날은다
깃털처럼 하나 둘,
돌아올 수 없는 것은
모두 가슴 저미는 아득한
그리움이다.
(20050219)
### 돌아올 수 없는 것은 모두 그리움으로 남아 가슴을 적신다.
먼먼 그리움은 시가 되고 사랑이 되어 빗물처럼 흘러간다.
아득한 섬 하나 띄워두고 나는 그 섬에 홀로 앉는다.
팔랑이는 잎새에도 나는 몸을 떤다.
오늘도 나는 꺼지지 않는 내 가슴의 뜨거운 화염에 데이고 있다
토론토 한국일보 ’05. 10. 19 게재
동아라이프 ;06. 6. 16 게재
그는 백야(白夜)에서
토스토에프스키는 백야에서 살았고
나는 들 익은 꿈속에서
그것들 익히며 빠알갛게 산다
잘 영근 것들은 제풀에 잘도 가슴을 열어
해방을 보더만
나의 꿈길은 하얗게 어둔 밤길이어서
언제나 허우적거리며 부딪혀 아프다
별빛들 쓰러져 눕는 시간을 새들이 알아 울면
나는 그제야 까맣게 쏟아지는 잠을 겨웁게 붙들고
새우등이 되어 함께 눕는다
시를 달라 시를 달라
시를 만들라고 잠을 재우지 않는 그가
푸줏간 칼날처럼 날을 세우고 섰다
겨운 졸음이 무겁게 덮은 눈까풀은 떨지만
꿈 밖의 그는 내 자유를 가져가지 못한 체
파아랗게 깃발을 흔들어 대고
이미 꿈길에 선 나는 빠알간 꿈을 꾼다
백야의 그가 흰 깃발을 세차게 흔들 때까지
나는 그의 시 속의 하얀 여인이 되어
나풀나풀 춤을 춘다.
(20060208)
‘06 서울문학. '06 중앙일보 게재
남편의 여인
그녀는 남편의 여인이었을까
겨울비 내리는 새벽 2시 반
꿈을 꾼 것도 아닌데 꽁뜨를 쓰는 가
꽃 한송이 바라보듯 사랑주던 내 당신의 가슴에
정영 그 여인이 들기나 했던 가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소리 없이 울다간
남편의 병상에서
알 수 없는 침묵으로 나는 자리를 지켰었다
어쩐지 그 자리를 비켜서는 안 될 것 같은
지독한 에고 같은 시간이 지나고
한마디 말도 못한 채 그녀는 떠났고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채 그녀를 보냈다면
그에게 나는 원망이었을까
20년도 더 전의 영상이 이 새벽 나를 뜨겁게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비켜줄 걸 그랬나 그 자리를,
지금이라면 어쨌을까 만감이 교차해도
답은 아닌 것 같다
참 잘했어. 대견히 지켜낸 거야.
침묵의 언어는 무섭게 그 시간을 붙들었다
님이 남이 되는 시간은 인내의 부재일까
그도 가고 없는 오랜 시간이 지난 이 시간
아직도 나는 여자인가 보다.
(2016)
2017. 7. 남도삼천리 게재
정지된 시간의 헌책방
희미한 그림자가 후르르 지나가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온 흔적 같다 꼭
그곳은.
지나간 시간에 집착하고
그 흔적을 열망하는 그곳엔 간간이
누군가의 추억이 담겨진 연필로 쓴
희미한 고백이 그려져 있기도 한다
때론 노스탤지어의 아득한 독백이
연기처럼 흘러나온다.
옛 시간의 흔적이 엉켜붙은 나만의 추억을 찾고자
외로운 시간의 정점에서 만난
읽다 만 책갈피에 꽂힌 꽃잎의 애잔함 같이
금방이라도 가다만 여행길을 찾으러 들어올 것 같은
기다림의 시간으로 세월을 죽이는 곳이다
기억 멀리 잊혀진 책
이미 절판되어 애태우든 책
그림 같이 서가의 한 모퉁이를 장식하든 책들이
흘러나와 쌓여있는
거미 함께 시간의 줄을 치는 곳이다
겹겹이 쌓인 먼지만큼이나 무심함이 풀풀 묻어나는
종이시간의 세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충만해지는 공간이기에
오늘 내 영혼을 깜짝 빛나게 할 등불을 찾게 된다면
벗이여 황홀한 이 기분을 나누고 싶네 그려
비도 오시어 날도 궂은데
우리 묵어 쾌쾌한 옛 시간 여행이나
떠나 보지 않으시려나?
문예감성 2015. 봄 여름호 * 제 15회 문학메카 원고 (현대문예)
아, 3월의 하늘이여!
3월엔 온통 천지에 붉은 꽃이 피어난다.
뚝뚝 핏빛으로 떨어지는 열기로 펄펄 피어난다
슬프도록 눈부신 햇살 아래 아오내 골을 적시며
유관순열사의 만세소리 쩌렁쩌렁 울린다
정의의 불이 된 열여섯 꽃다운 청춘의
붉은 얼이 타올라 꽃으로 피는 한(恨)의 3월!
3월은 훨훨 목마른 불꽃으로 진 님들의
못다 핀 꽃들로 온통 붉어라
자주독립을 외치든 애국의 깃발이 하늘 가득하구나
36년의 먼 날을 짓밟히고 짓눌리던 동토(凍土)의 대한(大韓)
겨레의 한 줄기 푸른빛으로 온몸을 던졌던
열사들의 붉은 피가 흔들며 3월의 꽃은
온통 핏빛이어라
한 송이 들꽃으로 오늘도 우리의 가슴에 뜨겁게 피어나는
일제강점(日帝强占) 울분의 애국선열들이여,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투쟁한 우리의 붉은 순국의
기라성 같은 애국지사들이여,
불러도 불러도 어찌 다 부를 수 없는 안타까운 열사들이여,
자주독립을 위하여 기꺼이 불이 된 겨레의 햇불들이여!
3월의 하늘 문이 열리고
우리의 님들은 빼앗긴 들을 되찾기 위한 투쟁의 불로
탔느니 나라가 없는 국민은 한갓 슬픈 짐승이라
우리는 결코 선진들의 뜨거운 발자취를 잊을 수 없는
분노의 칼을 갈아야 하나니
젊은이들이여 분발하여 그날을 상기하라
지금도 틈틈이 노리는 야욕에 찬 침략자의 모략을
결코 잊지 말지라
국력은 힘이라 우리의 국력이 이제 날로 발전하니
두 주먹 불끈 쥐어라
역사는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을 예측하는 눈이거늘
아직도 자만에 빠져있는 바다 건너 오만불손을
우리는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시퍼렇게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야 하느니
세계 속 질타의 눈을 외면하는 그들을
우리는 젊은 두 눈으로 지켜볼 일이다
우리의 타오르는 기상이, 대한의 얼이 결코
지켜 내리라 내 조국의 영원한 안식을!
이제 고이 잠드시라 거룩한 독립투사들이여!
3월의 하늘엔
붉게붉게 우리의 가슴에 피맺혀
하나가 되게 하는 뜨거운 열기의 꽃이
활활 피어난다
아, 3월의 하늘엔
님들의 영전에 반짝이며 펄럭이는 대한의 기상
태극기를 높이높이 더 높이 흔들 일이다
우리는!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光復)까지.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겨 통치당하던 암울했던 시대.
*1919년 기미년 3월 1일은 손병희 이하 33인들이 우리 대한은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한 날.
유관순열사는 만세를 부르다가 일본인들의 창칼에 죽임 당함.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연합군에 의하여 참패하게 됨.
. 2014. 3.1 밴조선게
개명천지(開明天地)
변소가 깨끗해졌다고,
변소가 이렇게 달라졌다고 세계 제일이라 입에 침이 마르게
달라진 고국의 모습을 대견해하는 아직도 ‘변소’라고 말하는
남편 더불어 야경이 휘황한 청계천을 가고 광화문 거리를 걷다.
‘새벽종이 울리네. 새 아침이 밝았네.’ 새벽잠을 깨우던
새마을운동가가 울려 퍼지고 과연 고속도로가 건설되는가 설레던
50년도 전에 신천지를 찾아 떠났든 남편의 머리엔
아직도 그 시절의 고국만 남은 게다.
얼마나 발전한 모습인지 별이 반짝거리듯 아름다운 내 조국의
발전에 우리모두는 놀라야 한다.
세종대왕의 인자한 모습이 자리한 광화문 거리엔
자랑스러운 한글이 걸려있었고
이순신장군의 푸른 검(劍)은 정의를 지키고자 서설이 푸르렀건만
광화문 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데모대들의 함성과 바리게이트가 된
경찰버스는 설레든 마음을 우울한 구름으로 덮기도 했다.
우리가 지켜가야 할 국민의 도리와 정의의 방향은 무엇일까?
자유라 외치는 것이 정말 자유일까?
서양기자가 찍었다는 그 시절의 사진들이 우리를 슬프게도 아프게도 한다.
동남아 어느 빈민촌이 우리의 옛 그 시절이 아니고 무엇인가.
끼니도 찾지 못했던 그 시절에 공장이 지어지고 우리의 누이들은
줄줄이 공장으로 가 동생들을 키워냈던 일. 쪽방에서 연탄가스로
죽어가기도 했던 일. 그 시절엔 화장실 휴지도 없었던 일.
검은 인쇄물이 남은 신문지도 감히 귀하던 일.
하늘을 보며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낄 수밖에.
돌이켜보면
왜구의 침입으로 나라를 되찾기까지의 그 통한이여,
동족상쟁의 피로 물들었던 가엾은 내 나라 내 조국 대한민국
한을 풀려 흰옷으로 몸을 감싸고 몸부림쳤던 내 조국
아직도 임진강 푸른 물을 사이에 두고 부모 형제를 그리워해야 하는
이 불모의 아침이 우리의 숙제로 둥 떠 있는 시대기에
감히 종북사상이라니...
정신을 가다듬고 너의 얼(魂)을 점검할지니
눈을 뜨라 젊은이여 조국의 청년이여
너의 뿌리를 밟지 말거라 일어서라 분발하라
더욱 발전하라 눈부시게 더 눈부시게 그리하여
21세기의 주인이 되어 대한을 자유케 하거라.
옳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이 어려운 오늘의 세태
옳은 것을 옳다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옳은 것을 옳다 말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
나는 부끄럽다. 너무 부끄럽다.
말하노니 우리는 일어서라
어떤 나라의 작은 섬에 불가한 우리의 국토지만
세계를 재패하는 우리의 좋은 머리를 하나가 되어 일어서서
나라를 사랑하고 사랑하여 빛나는 국민이 되거라.
나라를 떠나 보아라 모두가 애국자가 되느니
국력이 우리 이민자들의 크고 큰 힘이니
너는 대한민국의 붉은 혈(血)이니라.
너는 대한민국의 붉은 얼(魂)이니라.
(201705)
2017. 5월 조국의 광화문을 다녀와서.
6부 인생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든가
아 고마워요 감사해요
너무 기뻐도 너무 감사해도 눈물부터 나게 됨은
인생이 익어 가는 징조든가
저 찬란한 햇살 눈부신 창공
코끝을 간질이는 상큼한 솔바람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낄 수 있는 이 감사
내 부모 형제 자녀들로 맺어진 혈연의 감사
이웃들과 나누는 소소한 사랑 감사
오늘도 무사한 하루 주신 것에 감사
꽃피는 봄날 열매 키우는 여름날의 감사
결실의 가을 눈꽃 피는 겨울에 감사
아름다운 사철 주심에 감사
외로운 날 그대 내 곁에 주심에 감사
때때로 너무 감사해서 울고 수시로 웃어진다
시나브로 우는 속울음은 지난 아픔으로 이어져도
다독여 주시는 은혜 앞에 한없는 사랑으로 덮여진다
어제의 아픔도
좋은 오늘 주시고자 필요악必要惡이였든 날들
감사하자 내 힘으로 되는 일 아무것도 없나니
선 그 자리가 너에게 가장 선한 선택의 자리가 되어
양심을 주신 이가 아름답게 바라보시는 곳이
너의 자리가 되어 많이 감사하자
아, 고마워요 감사해요.
(2016)
*2019 조선일보 * 2019 한인회 낭송시
그대,
곁에 있는 그대 참 고맙다.
호롱불 홀홀 타는 저녁
둘이, 쓰다듬고 바라보는
이 고즈넉한 노을
산 갈피마다 어둠이 젖어 들고
휘돌아 흐르는 개울 물소리
한없이 그리운 시간
우리 그리운 우리
하루가 천 날인 우리
살날이 한 뼘이나 남았든가
등 맞대고 누우면 지척도 그리운 얘기
도란도란 먼 얘기 끌어오면 부끄럼타던 그 시절
그립다 누구도 만져보지 못할 물새알 같은
그대 나 우리 얘기
아이들 자라 훌훌 떠나 빈껍데기 빈집에
누덕누덕 기운 자리 주름진 손마디
눈물 없이도 서러운 시간 들
이 순간 내 눈앞에 있는 그대
바라볼 수 있는 그대 있음에
따뜻한 체온 서로가 고맙다
참 고맙다
내 사랑.
(2015)
*2015. 계간문예 *2019. 시와 늪 게재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내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나의 주님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이미
나는 당신께 사로잡힌 몸이었습니다.
수많은 별 들 공중에 훗날리는 바람
흘러가는 저 강 물결
흔들리는 만물의 소리마저도
어느 것 하나
당신의 뜻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리아니 하실지라도
나는 당신의 은혜 속에 이미
파묻힌 몸이었습니다.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께 올립니다.
마라나타 나의 주님
할렐루야 아멘!
(2019)
꽃이 된 가치관
당신을 아주 몰랐던 그날엔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나는 모래알 속 작은 알겡이었을 뿐입니다.
당신을 알고 무릎 굵고
간절한 부끄러움을 토하기 전에는
나는 그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골고다 언덕 넘어지며 지고 가신 그 십자가
내 가슴에 철철 흐르는 피를 십자가에 걸고서야
이제야 보입니다.
주여 정녕 당신은 나를 위해 죽으시고
약속대로 나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 증표로
눈부신 부활의 사자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아바 아버지 늦게 찾아와 많이 부끄럽습니다.
늦은 것이 결코 늦은 것이 아니 되도록
맡기신 책임에 힘을 내겠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 부끄러운 모습을 벗어던지고
값없이 받은 이 은혜를 소리쳐 전하며
남은 시간 당신께 영광되는 삶이 되게
할렐루야를 높이 부르짖겠습니다.
당신의 비밀이 열리고
어린양과 함께 눈물 없는 그곳에서 영원히 살리니
내가 당신을 알고부턴 내 삶의 가치가 바뀌고
자유 함이 내게 와서 나는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2019)
크리스천 매거진
말씀하시네.
처음 세상이 열렸을 때
신은 인간에게 행복을 미리 주셨었다네
욕망과 타락으로 주어진 행복을 회수당한 인간에게
언젠간 깊은 회개로 다시 찾을 수 있는 길도 주셨으니
그의 사랑 가운데 거할 일이라
어찌 감사치 않으랴
머리는 비상하고 정신은 자기도전으로 번쩍이므로
인간에게서 행복을 숨겨놓을 곳을 찾든 신은 마침내
인간 마음속 깊은 곳에 두기로 했으니
결국은 찾는 자에게 다시 주시려함이라
물질만능주의에서 높은 곳을 향하여 도전하는 인간은
오늘도 그 행복을 찾으려 길을 떠난다
행복은 사랑 가운데 나눔 가운데 평강 가운데
자기 욕망과 아집에서 스스로 해방될 때
가장 가까운 내 안에 있는 것을
높게 어딘가에 있으려니 막연한 충동으로
무거운 자기 짐을 지고 길을 떠난다
인간 너는 만드신 전능자의 손안에 있느니
더 늦기 전에 나를 찾으라 나를 기억하라
너를 만드신 이가 애타게 말씀하시네.
(2019)
복 있는 자의 할 일
그래서,
아픈 가슴이라면
말할 수 없는 슬픔이라면 훌훌
그냥 떠날 일이다.
예전에 인간은 미련한 동물이라 들었거든
하물며 환갑 진갑을 넘겼다고
콩이 팥이 될까
언감생심 하늘의 별을 따지
내가 먼저 변할 일이다.
남 탓 말거라
오래 그리고 영원히 너 입에 재물통을 채우거라
말로서 말 많을까 염려한 앞서간 선진들도 있잖은가
변명이라니 당치도 않구나
핑계 없는 무덤 없고 억울하지 않은 죽음 없는 일
너가 누구더냐
하나님의 자녀 아니더냐 용서하고 용서하여
일곱 번에 일흔 번씩이라도 용서하고 마음을 비우거라
그것이 복 있는 자의 할 일이니라.
하여,
유유창천悠悠蒼川 속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 할 일이니라.
(20070627)
*중앙앙일보 ’07. 10. 6 게재
오늘의 기도
하루를 천년같이 아껴야 할
우리 살날이 오늘인 것을
오늘만이 내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고
만약 내일이 주어진다면 두 손 모아 감사하게 하소서
내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음을 알아가게 하시고
조급하지 말아야 하고 인색하지 않도록
가슴을 치게 하소서
매사 집착하지 않도록 눈을 들어
하늘을 많이 보게 하시고
마음으로 듣기를 많이 하고 내 입술로
말은 적게 하게 하소서
세상 것 조금만 보게 하시고 더 많이 웃게 하소서
존재가치를 귀히 여기고
사람을 얻는 것이 재산을 얻는 것임을 알게 하시고
환히 웃음으로 바라보며 많이 칭찬하게 하소서
누구도 막을 수도 대신 할 수도 함께할 수도 없는
그 길 앞에 나누고 나누어서
새털같이 가볍게 떠날 수 있게 하소서
황망해지는 날이 있다면 주여,
지혜와 훈계를 알아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지혜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을 알게 하소서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흐르나 바다를 채우지 못함 같이
인간의 욕심은 채울 길이 없으니 주여 부디 용서하소서
오늘도 부끄러워 숨는 이브가 되게 마시고
세상 속 어둠을 쫓지 아니하고 빛 가운데 거하게
주의 뜨거운 오른손으로 꼭 붙들어 주소서.
마라나타 내 그리스도 예수여!
아멘!
“꽃으로 퉁 칠 생각 마라”
“엄마도 그런 것 먹을 줄 알아?”
뼛속까지 다 발라 주던 날도 멀리
무겁다 못해 빈 껍질이 된 현실의 부모
이기적으로 변하여야만 사는 세상인 가
꽃으로 뭉갤 생각 말라고 엄마는 미리 못을 박은 게다
인내의 한계가 온 게다
한껏 분이 난 게다
공경(恭敬)의 시절은 캄캄히 멀어진
고국의 지하철 안에서 놀란 풍경이 된 나
아득하여 욱 멀미가 일고 천둥이 쳤다
더 무슨 말을 하랴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했던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목에 걸라고 했던
먼 날을 한 눈으로 보시는 이의 말씀
어찌하랴!
우리 사랑의 매를 아끼지 맙시다
가슴으로 뜨겁게 안으며 아프게 때려요
슬픈 오늘
오감(五感)의 아픔이여!
(2016)
* 2016. 3. 문예감성 * 2018. 4월 조선일보 캐
당연한 것에 대하여
내 주머니 속 같은 내 안의 것들이
하나둘 내 곁을 떠난다면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하나둘 내 곁을 떠나간다면
그 행복을 주던 것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일이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갈 때
내가 자라야 한다
세상엔 당연한 것은 없다
나의 겸손이 미덕이 낮춤이 주어오는 대가
그것이 아름다운 당연으로 다가올 뿐이다
바람이 분다
오늘도 서산에 해가 지는 찰나의 순간에
떠오른 지혜 하나
날마다 주어진 오늘을 잘 살아드리는 일
그것이 내일을 기쁘게 맞이할 나의 날이다.
(2019)
내 사랑하는 이여!
거칠고 우울했던
길고 긴 얘기는 이제 끝이 났다오.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던 내 사랑하는 이들이여!
별들도 눈물짓든
남루한 묵은 얘기도 이제 끝이 났나니
눈먼 행복에서 달려 나온 젖은 옷을 훌훌 말리네.
덧없었던 것에서 풀려난 축배를 들겠네.
슬픈 눈물의 노래 속 나의 일탈(逸脫)을 자축하네.
하늘의 새들도
지상의 꽃들도 덩달아 축배를 들어주네.
아프면 아프다 말해야 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알아갈 때
철들어진 나를 보았네. 철철 흐르는 피도 보았네.
노라는 왜 집을 떠나야했는지도 결코 알아진 오후
내일 또다시 해는 동녘에서 떠오른다는 것도.
새로운 지성의 날개를 타고 성스러운 곳으로
나의 수호자(守護者)에게로 가는
큰 바퀴의 열차를 나는 타겠네.
안개 자욱한 골짜기에서 더욱 어여쁘고
사랑스런 꽃으로 피어 나의 수호자에게로 가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려니
하늘의 새들도 지상의 풀꽃도 춤을 추네 그려.
행복하게 사는 일이 이러 할진데
사랑하며 사는 일이 이러 할진데
꽃들이 벙그는 일이 이러 할진데,
사랑하는 이여, 내 사랑하는 이여!
따스한 숨소리 곁에 있어
문득 잠든 그대 얼굴 보노니
내 천년을 함께 업고 누운 그리운 이여
이 한세상 마지막을 불태우려 우린 만났는가
그대 볼에 뜨거운 눈물 섞어 부비노니 우리
서로 작은 허물일랑 덮어주고 안아주며
하늘의 서신 오는 그날까지 한 그림자 되어
사랑하는 자들 더불어 향기로 피려네.
나 이제 꽃 피는 지상의 오랜 전설이 되려네.
(2013)
*캐)밴조선 2013. 1.게재
길을 가다 서다
한오백년 더 걸으면 길을 찾으려나
희망으로 펄럭이던 무술년 365일이 바람처럼 가고
기해년 돼지가 또한 푸른 들판으로 깔린다
길은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가는 가
아이는 어서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고
마음은 어릴수록 아름다운 가
구겨진 휴지처럼 가다 서고 보면
주마등 같은 회오리가 휘몰아치는 길섶
어쩔거나 아픈 가슴은 핏빛으로 물든다
길을 가다가 길 위에 서서 보라
허물어지는 강가에서 노을을 볼까
우리가 닮아서는 안 되는 것들 멀리 서서
안경 너머 바라보자.
(2019)
인생, 그 나이
제 나이를 기어이 분수(分數)로 계산하던
7살 반 어린아이 때도 있었소.
아무도 못 말리든
꿈꾸든 열일곱 초록빛 소녀 시절도 있었지요.
축제의 스물한 살 온통 세상은 분홍빛 꽃가마였네요.
만발한 꽃으로 찾아든 나비 떼...
서른 중반의 나는 네 아이의 엄마가 되어
콩 튀듯 바쁜 일과 속에 나는 없어지고 오직
올망졸망 피어나는 아이들 웃음소리만 있었네요.
물새알 같든 아이들 자라 사랑을 시작하고
하나 둘 새 둥지를 틀고 떠나간 자리
덩그러니 둘만 남아 자꾸자꾸 옛 얘기 하네요.
저희들 나이를 다투어 분수로 계산하던
어느 날 심었던 등나무 늘어진 아래 앉아
이제 또다시 예순여덟 반이라고
제 나이를 분수로 계산하고 있네요.
피어나던 그 곱든 꽃들도 속절없이 지고
길 떠난 기러기들 제집으로 찾아 날아드는 노을
등 구부러진 고목 아래 백세시대(百歲時代)
캄캄한 날이 불 밝혀 오네요.
(2015)
2015. 제2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청탁원고
관계關係
사람과 사람 사이엔 깊은 강이 흘러요
우리는 그 흐르는 강을 종종
건너지 못할 때가 있지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밀어내는 오류를 범하죠
이치는 같으나 생각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인데요
때때로 사람들은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말해요
틀린 것과 다른 것은 생각 차이일 뿐이거든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하나 될 수 있는 우리가 될 거예요
인생이 어차피 극과 극의 도박이라면
물과 같이 유유히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아름다운 관계로 살아야 해요
이 아침 바람이 불어오나 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절대자의 순리이기 때문이지요.
(2020)
낙조,
그 빛나는 소묘에 대하여
빛나다.
빛났다. 아니,
빛났었지.
그런 날도 있었었지 참.
좋은 것 예쁜 것 이제
다 너 해라.
입어도 좋고 벗어도 좋은
가을 햇볕 쨍한 날
날 찾아오실 이는
구름을 타셨으리.
훌훌 털털 모두 버리고 그냥,
웃으리.
언덕에 올라 바라보는 바다
낙조,
그 빛나는 소묘에 대하여
아름다웠었지!
참 아름다웠었니라.
(202008)
흔들리며 크는 나무(대나무)
하늘을 우러러
바람에 맞서지 않으려 흔들린다.
꺾이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흔들린다.
대쪽같이 곧게는
한세상 살기 너무 벅찬 세상에
순응은 곧 생존임을 가르치는
가난한 삶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 터득한 지혜다
칸칸이 나누어 담은 가슴으로
마디마다 하늘을 담고 흔들리며 자라간다.
더불어 소리 내는 대나무밭의 함성
선비는 죽고 귀가 아린 자가 와서 가슴을 풀던 곳
키만큼이나 뿌리를 내리고 한의 소리 모두 보듬으며
악에 섞이지 않으려 꺾이지 않으려
텅텅 속을 비우며 비워야 사는 세상을
스스로 흔들며 살아가는 대나무
오죽의 역사도 흔들거리며 오늘을 바라본다.
(2015)
*2015. 10.계간문예
인생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든가
슬픔도 고통도
좌절 또한 인생의 일부인 것을
내일을 배우기 위한 필요순서 일진데
잊으며 지우며 버리며
딛고 일어서며 나아가는 길
결코 자신을 구속하지 말지라.
자신을 사랑하고
고맙다 수고했다 괜찮아 스스로 격려하며
하루를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라 그리하면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나를 보게 되리라.
그리움의 동산에 올라
하염없는 퍼즐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안개 자락의 끝이 닿는 그곳에
새 안식의 꽃이 피어나리니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는 진리 앞에서
행복해져 있는 나를 보게 되리니
인생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든가요.
나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는 일
사랑하고 사랑할지니
사랑하노라 내 안에 사는 그대여!
(2018)
해는 기울어 서산에 지고
오랜 사진첩 속의 얼굴처럼
희미해져 멀리 있다 말해도
가슴 안자락에 붙어 떠나지 못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지 못해도 바라보지 못해도
흐르는 세월만큼 겹겹이 쌓여진 나이테처럼
문득문득 눈물겨운 사람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은 왠지 그런 당신의 젖은 목소리
들려올 듯 가슴이 저려옵니다.
보고 싶다고 보고 싶었다고
금방이라도 말해 올 것만 같습니다.
그리운 만큼 자라나는 해도
기다림 만큼 웃자라다
서산으로 집니다.
(2018)
오월의 가슴
아까시아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오월
막 입덧을 마친 붕어들이
퍼드득 퍼드덕 수초를 찾아 산란을 시작하고
덩달아 바쁜 숫컷들 더불어 울컥울컥
눈물을 삼켰던 오월
무엇이 그리 바빴든지
자기가 아니면 안되기라도 하듯이
속절없이 떠나간 당신
꿈으로도 와 보지 못하는 당신
용납하고 싶지 않은 서러운 시간 속에 갇혀서
남은 자의 서러움은 봄 가고 가을 가고
세월은 시간을 먹고 아이들을 키우고
벙그는 꽃들은 영원을 꿈꾸며
인간은 망각이란 향기로 내일을 간다
아프고 아픈 시간 들
세월의 수레바퀴 속에서 덜컹 되며
굴러가는 오후
오늘 여기 서러운 노래 부르며
터지도록 부푼 오월을 낚는다.
(나의 사람 소천 27주기를 맞으며 20200512)
세월의 뒤 안
바람마저도 숨 쉬지 않던
그날
시간은 정지되고
소리마저 사라진 하얀 날 숲길 아득히
그는 구름이 되었네
더 무엇 나눌 수 없어 미쳐 훨훨
그 뒤를 나는 따랐네
하얀 국화 꽃닢 속에 잠기던 얼굴
더는 잡히지 않았네
흙 속에 그를 묻고
나도 묻고 웃음도 묻고 눈물도 묻고
이별의 긴 터널에 기대서서 보았네
찰나의 순간을 위하여 인생은 길고
시간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다 세월이 알아서 한다는 것을
누누한 강물 곁으로 세월은 가고
오늘 여기 그 말 하며
아름다웠던 추억 한 토막
시처럼 옮길 수 있네.
시인이 되어.
(2019 10)
*중앙일보 2019. 10. 4.일 게재
시인이여, 시인이여!
바람들 모아 향기들 모아
그리움이라 이름하고 가슴자락에 매달리는
애달픈 것들 휘저어 맑히는 너는
이 땅의 시인이다
이파리 끝에 잠시 머문 이슬의 찰나에
출렁이는 일몰의 타는 어지러움에
백억 광연에서 울려오는 미세한 한 조각
소리를 붙들어 노오란 빛으로 조각하는
너는 시인이다.
은바늘 하나로 지구의 자전을 멈추게 하고
황홀히 서서 출렁이는 바다를 건너고
어둠의 골짝에서 별들의 밀어를 줍는
너는 시인이다.
어지러운 세상에 서서
뜨겁고 무거운 역사의 조각들을 교차(較差)하고
전설 같은 애잔한 사랑을 노래하는
이 땅의 아픈 시인들이여!
더 무엇이 되어 우리는 세상의 희망인가
흙으로 아담을 빚으신 손으로 작파(斫破)하고픈
이 땅의 슬픔들
부디 용서하시길 기도하는 타는 가슴으로
추하고 버려진 것들 모아모아
거듭남의 향기로 피워볼까
쓰리고 아픈 편린(片鱗)들 모아
영롱한 한 알의 진주로 엮어나 볼까
시인은 자지 않는다
시인은 눈을 뜨고도 시가 되는 꿈을 꾸고
시와 더불어 시 속에서 영원을 비단실로 엮으며
하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오른다.
(201403)
*2014. 8. 2. 밴조선 게재
7부 늘 그러했던 것처럼
모하비 사막
향기라 말하자
그리움이라 말하자
처절한 싸움이라 말하자
몸부림치는 아픔이라 말하자
살아남기 위하여 사막거북은
서걱서걱 말라버린 소금을 핥는다
세상이 그리워 먼 태고에 바다에서 솟아 나와
소금을 덮어쓰고 아직도 세상을 그리워하는 땅
모하비 사막
푸른 것 하나 가져보지 못한 서러움이
민둥숭이 산으로 울고
덤불링 회색빛 풀덩이로 한을 푸는
가시 달린 선인장의 위로를 받는 땅
모하비 사막
서걱서걱 모래바람 이빨 사이로 스며들고
그래도 모진 생명들 있어 살아남고자
다리를 길게 진화시킨 바다거북이 어딘가에
살고 있겠다
살아남고자 갈망하는 것들은 모두
소금을 먹는다
귀 기우려 들어보라
아득한 먼 그날 이 땅을 누볐을 인디언들의
우렁찬 말발굽 소리를
그날들 그리워 숨을 죽인다
오늘도 모하비 사막은.
(2007. 미서부여행 후)
놀금, 뒤에서 웃다
못 가지면 그만둘 생각으로 확 한번
후려쳐 불러 보는 값이다
또한 본전이라고 애달프게 말해보는 최저 가격이다
옥신각신 승강이를 부려야 제맛 인 냥 밀고 댕기고 한바탕
진을 다 빼고는 승리한 줄 알고 웃고 가는 사람이 꼭 있다
이러나저러나 승자는 결국 뒤에서 바라보는 자인 게다
뛰는 토끼 위엔 나는 솔개가 있는 법이니까
아이들 고만고만 키울 때 남대문 새벽시장 한번
안 가본이 있든가
열심히 잠 설쳐가며 새벽 도매 왔다고
거짓말하는 빤한 눈치
이미 그들은 다 알아 놀금 하던 것
인생은 늘 그렇다
열심히 살아서 한정 없이 아껴 놓아도
앉아서 그냥 가져가는 자 있기 마련인 것을
나는 안다 세상은 쳇바퀴 돌 듯 설겅설겅 얽혀 산다는 것도
선한 내 어머니는 그래서 늘 뒷전에 계셨고
앞서가던 그들 결국
먼저 저세상으로 갔다는 것도.
(2015)
*놀금: 물건을 살 때나 팔 때 맞지 않으면
그만 둘 생각으로 서로 겨루며 당겨보는 가격.
*2015 문예감성 *문협 바다건너 글 동네 제 4호 *2019. 화서문학지
세상 모든 존재는 소리가 있다
세상 모든 존재는 소리가 있다
흔들리는 마음소리 눈까풀 떨리는 소리
네 속에 흘러가는 순환의 소리
머릿속 달그닥 거리는 공장소리
휘날리는 명주 스카프 고운 결 소리 꽃잎 여는 소리
세상은 한바탕 살아 볼 만한 것인가
지저귀는 새소리 바람 소리 휘돌아 돌아가는
하도 잘난 사람들의 소리 개소리 개구리 소린가
한동안 잠잠했던 기억의 골짜기에서 쇠소리가 몰아 나오고
빛내 볼 내일을 위하여 거룩한 침묵을 하는 무언의 소리
어떤 이는 더 큰 소리를 위하여 침묵 한다
작은 내 가슴도 소리를 내고 싶은 것 하물며
세상 모든 존재들 어찌 소리를 내고 싶지 않겠는 가
하찮은 것들마저도 소리가 있음을 귀기우려 들어 볼지라
그럴진대 그대여
우리가 살아있어 숨소리 한번 크게 내어 보는 것 쯤이야
용서가 되는 일이지 않겠는 가.
(2012)
*한올문학 2012. 6월게재 *문예감성 2015 가을 겨울 호
*한국지역문학인협회 문학메카 책자 원고
돌아가다
바람처럼 왔다가 뜬구름처럼 가다 저 사람
울며 오더니 울며 갔구나.
오늘 타계(他界)한 그 사람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무성히 자라든 풀도 자람을 멈춘다는 처서(處暑)
임금님은 승하(昇遐)하시고 열사는 순국(殉國)하고
목숨 바친 군인은 산화(散華)했고 승려는 입적(入寂)했고
신부는 선종(善終)하고 크리스천 나는 소천(所天)할 것이나
올 때는 그냥 왔지만 갈 때는 한세상 산 결과가 따르는 일
모두들 무슨 색깔로 모일까
고해의 인생 바다에서 헤엄치다
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바람처럼
쳇바퀴 속의 인생 너
찬란한 오늘도 눈보라 치던 어제도
슬픔은 슬픔끼리 기쁨은 기쁨끼리
눈 감아지면 까맣게 돌아가야 하는 길
멀리 향기로운 꽃이고 파 웃든 그대
오늘 돌아가다.
(20170620)
*2017. 7. 27. 중앙일보 게재
백세세대(百世世代)
쪼그리고 앉아 앙증맞은 고 작은 손으로 인형 옷을 오려내던
가위질 손을 잠시 놓곤 “엄마, 밥이 이제 발까지 다 내려갔어.”
어여뻐라! 배가 고파졌다고 꼭 제처럼 말하는 것 좀 봐.
그러던 막내는 자라 디자이너가 되고 아장아장 외손녀가 말한다.
“함미, 밥이 이제 발까지 다 내려갔어.” 대를 이어 나는 그
예쁜 말을 듣는다. 아이들은 바람처럼 자라서 어른이 되고
그 모든 것이 내 것이었던 꽃 같던 시절도 지나
어둠이 내리는 텃밭에 앉아 상추를 뜯는다.
우리들 백세세대(百世世代) 라지만
어언 칠십 고개를 넘는 서글픈 노래 목젖을 적신다.
아니, 벌써?
내려놓아야지 욕심일랑.
어찌 살꼬.
아직도 캄캄히 남은 백 살이나.
(201205)
*2012. 토론토문학 *2018. 현대문예 *2019 시와 늪 가을호
늙어 간다는 것은
서러울 것 하나 없는
아름다운 일이다
편안해졌다는 것은 자유 해졌다는 일
붙들고 놓지 못하던 내 것에의 애착도
율법같이 무겁던 젊은 날의 고뇌도
펄펄 끓었던 내 젊은 날의 연가도
다소곳이 물러난 오늘
찬 서리 한두 잎 나비처럼 날아들어
하얗게 서리꽃이 피는 오후
서러울 일인 가
보라 저 고공의 연줄에 매달려
흔들리는 푸른 깃발을
서릿발 돋는 투쟁의 뜨거웠던 열기를
이제 놓아도 좋을 오후의 그늘에서
가물가물 옛 얘기 나눌 수 있음을
얼마나 편안한 가
늙어 간다는 것은 이렇게 홀가분해지는 일
내려놓고 헐렁한 마음으로 하늘을 보는 일
도란도란 들려오는 자녀들의 웃음소리
참 아름다운 그림이다.
(2017)
빈 둥지 증후군 탈출기
태초에 에덴동산을 탈출한 인간은 찾고 찾는 놀이에 빠져든다.
인간의 내면에는 새것을 추구하는 안달 난 꾸러기가 들어있나니
혹자는 인간의 내면에 다섯 가지 욕구가 있다는데,
생존(survival) 사랑(love, belonging) 힘(power) 자유(freedom)
즐거움(fun) 의 욕구이기에,
생존의 욕구가 강한 남성존재와 소속의 욕구가 강한
여성존재의 귀결점은 드디어 행복과 즐거움의 욕구로 정착한다.
결혼과 동시에 자기만 바라봐달라는 아기가 되는 남성 본능과,
울타리가 되기를 바라는 아내의 기대를 그대는 정녕 몰랐던 일
슬픔은 그로부터 시작이네요.
아기가 태어나고 서로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는 눈앞의 일들에 아빠는
새로운 놀이를 찾아 든다는 것이 문젠데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되네요.
방황하던 가정은 아내의 인내로 극복 되지만 아이들 자라 훌훌 떠난 빈 둥지에
달랑 둘이 남아 헐렁한 날들이 아롱아롱 그늘을 드리우네요.
마침내 가두어두었던 것들이 폭동을 일으키며 토네이도 기세로 솟아오르는 격정을
아내는 어떻게 다룰 것인 가엔 솔로몬의 큰 지혜를 구하여야 되겠네요.
그늘이 짙어지면 어둠이 되는 것을
아내들이여 마침내 탈출하라.
내 깊은 곳에 잠재했던 내 안에서 나를 꺼내시오.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나온 번데기처럼 훨훨 스스로도 깜짝 놀랄 일에 몰두하라.
두 손 들고 훌훌 선입견을 내려놓고 자존심은 멀리 개에게나 휙 던져주고
노년에 그대 더불어 한 곳을 바라볼 취미를 찾으라. 행복을 찾으라.
백발이 되어도 남편들은 아내의 온기(溫氣)를 갈구한다는 사실을 알아가자.
모성 강한 여성들이여 노년에 늙은 아기 하나 더 키워내자.
사랑으로 키워내어 오순도순 백년회로(百年回路) 하얀 파 뿌리가 되도록
덩더궁 덩더궁 살아 볼 일은 참 가치 있는 일이라요. (2018)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에게.
천연바람처럼 산뜻하고 이슬 속 무지개처럼 아름답구나
분주히 오가는 네 모습이 네 마음이
오늘 엄마는 떠나가지만 언제나 네 곁에 있음을 느끼며 살거라
머잖아 영원히 떠난다 하더라도 그때도 마찬가지니라
엄마는, 비록 변변찮은 엄마라 하더라도 우리들의 어머니는
영원한 엄마기에, 네 마음에 네 가슴에 있는 것이다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네 살 속 깊이 있는 것이다
주안에서 늘 느끼며 나누며 얘기하며
삶의 어려운 날이 있다면 언제라도 안겨 오거라
때때로 세상의 엄마들은
가슴에서 우는 자녀들로 안으로 삼키는 피눈물을 알거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으로 인하여 아프고 슬프고 기쁘니라
젊음은 모든 것을 부정하나 모든 것을 긍정하고 강하지만
늙음은 모든 것을 수용하나 약하니라
약함은 모든 사물을 흘러가게 두고 유유자적(悠悠自適)의 고요로만
바라보게 되는 이치니 이 어미도 이제 늙어 가구나
젊은 내 모습을 반추하며 너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엄마는 울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형제우애로서 자식으로서의 너는
활짝 핀 아름다운 꽃이구나
세월 속에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이거라
네 자녀들이 바라볼 아름답게 벙그는 꽃이 되거라
영원히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세상 끝날까지 지키리라 너는 다시 피어나는 나 이거든
내 사랑 내 노래 내 자랑아.
(2015)
*2015년 토론토문학
영원永遠한 생명生命이신 어머니
어머니,
당신의 섬에는
언제나 눈물꽃 보다 더 짙은
가슴꽃 향기가 납니다.
멀리 돌아돌아 언제 와 서더라도
그 향기 가슴으로 젖어와
오늘도 당신의 섬에 엎드립니다.
지치고 힘들어 넘어지는 날에도
말없이 싸매고 덮어주시는 어머니의 사랑
고희(古稀) 앞에서야 철(喆)이 드는 이 못난 여식을
오늘도 품에 안고 놓지 못하시는 지순지고(至純至高)의
어머니 사랑 갚지 못하니 한없는 불효(不孝)입니다.
다 퍼내고 퍼 주시고 이제
마른가지처럼 말라 한 줌이나 될까 우리 어머니
오직 희생(犧牲)의 세월 올해 아흔 하고도 넷이신 어머니
이제 하나님 불러주시면 언제고 편히 눈 감겠다
기도하시는 고요한 어머니 모습
그런 어머니 가신 후엔
이 불효의 눈물 어디에 둘까요.
영원한 생명이시고 나의 근본(根本)이신 어머니
당신의 가슴꽃 피는 어머니 섬에
당신의 향기 닮은 라일락 한 아름 올리옵니다.
오월의 신록 아래 조용히
성경 읽으시고 기도하실 어머니 모습
한없이 그리운 오늘입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
(2013)
*2015. 5. 9일 밴조선게재.
구구 팔팔 이삼사(九九 八八 二 三四)
달랑 한 장
파리한 모습으로 달려있는
2017년 12월 저녁,
한 줌이나 될까 몰라 마른 꽃잎 같은
아흔 여섯의 내 어머니
고관절이 부서져 응급실에 드셨다.
‘우리주님은 내 기도를 잊으신 것일까
왜 나를 안 불러 가시는지’
꺼질 듯 가물거리는 가슴 말에
내 사지가 말라가는 듯 아프다.
오래 사는 일이 그토록 미안해할 일인가!
너무 오래 살아있다 늘 미안해하시던 어머니
그 모습 안타까워 함께 우는 12월의 어둔 저녁
아무도 모르는 죽음의 문턱을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아쉬운 듯 이삼일만 앓은 후 가고 싶다는
인간들의 바람은 참 아프다.
너무 아프다.
(20180416)
*캐 조선일보 12월 게재
내 어머니
가물가물 어지럼 타는 눈빛으로
“너거 아부지는 언제 오니?
오늘도 창밖으로 던진 시선이 아물거린다.
40년도 전에 먼저 가신 아버지가
새삼 그리워지신 겐가
좋은 것 다 잊으시고 뭐 그리 좋았다고
씨앗 보아 속 섞이시던 그 어른이 남은 겐가
한 줌이나 될까 몰라 우리 어머니
그 곱던 모습은 한여름 낮의 무지개처럼 사라지고
허공에 머문 눈이 눈물처럼 아련하다
“우리 하나님은 내 기도를 잊으신 겔까?”
간간이 정신이 바르시면 독백처럼 외신다.
자는 듯이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시던 어머니
자식들 걱정될까 죽음마저도 염려하시던 어머니
당신이 그리 가시면 생전에 못다한
이 불효를 어쩝니까
비는 내리고, 창밖에 후두둑 후두둑 비가 내립니다.
(2019 어머니 병석에서)
**5월은 어버이날이 있어 더욱 아련하다.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이 아쉽다. 부모의 은혜는 하해지택河海之澤)이니.
*중앙일보 2019. 5. 3일 게재
침묵의 언어
“세상에 눈보다 게으르고 손보다 빠른 것은 없단다.
아이구 내 손이 내 딸이구나.”
젊은 엄마 목소리 귀에 쟁쟁한 한나절
한 소쿠리 깔 양파를 들여놓고
저걸 언제 다 까나 마음이 한 짐이더니
눈물을 한 종지 흘리고는 엄마 그리워
눈물인지 아픔인지 가슴 가득 아려온다
창밖만 응시하고 계신 아흔일곱의 내 엄마
아파야 가는 저승길
나풀나풀 댕기머리 시절 그리워신가
오래전 먼저 가신 아버지 그리워신가
말 없는 먼 길이 아득만 하다
나에게도 엄마가 있었단다
아름다운 소녀의 꿈도 있었지
너희들이 내 행복이기도 했지만 더러는
서럽기도 했던 일
이제 나도 그리운 것들을 찾으러
훨훨 자유가 되련다
엄마도 여자였다는 것을 말하고 계신 가
어둠이 내리는 창밖엔 하나둘 별이 뜨고 있다.
(2019 9/23)
*2020. 3. 7일 캐 조선일보 게재
태평양 넘어 눈부처
사는 일
그리 만만한 일 아니기에 숨죽여 울던 날도 있었니라
들국화 아름 피어 시냇물에 얼비치던 날
가을비 촉촉이 내려 등성이가 오소소 추워져
햇살 한 줌이 그리 그리운 날도 있었니라
일찍 떠나 아무 기억도 사라진 아버지 잊은지 오랜
등꽃 피던 날 아침처럼 휭 하던 기억도 이제
세월을 이고 한 줌이나 될까 모를 울 엄니
가는 허리에서 후루루 흘러내린다.
자식들 자라 줄줄이 떠난 자리엔 하얀 모란이 피어도
꿈으로도 잊으면 안 되는 새끼들의 모습 붙들고
그것만이 생의전부로 남은 아흔일곱의 어머니
자는 듯이 가야 할 터인데 기도 제목으로
일 번을 두시지만 그래도
자식들 곁에 머물고 싶은 정이야.
개명세상(開明世上)에 좋은 것 보고하고 싶은 것이야
사람의 욕망이니 너거 아부지 색(色) 보는 일은
당연한 일이니 못 본 척하거라
산들산들 기생첩 앞세우고 헛기침하시던
세상 활량이시던 아버지 가신지도 옛 얘기처럼 아득고
그런 엄니 오늘도 내 가슴에 별처럼 자리하신다.
한밤중엔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
시퍼런 태평양 물길을 넘어 마음이 먼저 달려감은
그곳에 연로하신 내 엄니가 헐떡이는 숨가품으로도
눈을 감지 못하실 것이기에,
“널 보고 가려면 나흘은 견뎌야 할 터인데,
비행기가 더 빨리는 못 오재?“
아흔일곱의 어머니
고관절을 다치신 채 침상에 뉘이셨다
생전에 널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으려나
늙어가는 딸자식을 눈에라도 넣으시려는지
태평양을 날아 엄니의 눈부처가 되어
훨훨 나비춤이라도 추어드릴 수만 있다면
이 불효가 조금은 감해지려는지요.
(2019)
*2019년 10월 7일 향년 97세로 어머니 소천하시다.
눈물 속 어머니
한송이 국화가 되신 어머니가
환히 웃고 계신다
열일곱의 고운 새색씨로 정씨 가문을 떠나
진양 강씨 집안의 맏며느리로
만석지기 무거운 살림을 정갈히 해 내시고
슬하에 삼 남매를 두시었다
세상 한량이시든
아버지 씨앗 보아 헛기침하시던 날도
지혜로 견디어 내신 어머니
삼종지의(三從之義)를 종용히 따르셨던 고운 여인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자유함을 얻어 떠나시었다
천만년 곁에 계시리라 믿어왔던 어리석음은
막심한 불효로 남는다
불현듯 보고 싶음은 눈물이다
불현듯 안기고 싶음도 눈물이다
다시는 볼 수도 들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아득한 마음은 그냥 눈물이다
엄마!
대답 없는 소리가 메아리 되어 오늘도
내 맘을 때린다.
(20200607)
**살아선 다시는 못 보는 이 세상을 비우신 어머니 보고 싶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렇게 살고 싶다
엄마처럼
나도 엄만데
그러기엔 아직도 너무 부족다
햇살 눈 부신 신작로를 걷노라면
그냥 눈물이 난다
엄마가 걸어간 길을 걷는다
엄마는 혼자 걸으며 슬픔도 참으신 걸까
별들도 함께 울어 준 엄마의 길
충만한 듯 외롭고 무거웠던 길
흔들리는 나무는 외롭지 않다고
언제나 말해주는 엄마의 나무
그렇게 살아야 한다
엄마처럼.
(2020315)
* 엄마를 닮기엔 아직도 부족한 여식은 오늘도 웁니다.
늘 그러했던 것처럼
비가와요 엄니
후박나무 잎 위에서 굴러 내리나 봐요
어둠 속에서도 비는 소리를 내어요
자유 한가 봐요
때때로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
빛과 소리들이 세상을 꾸미어 가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어요
앞도 뒤도 아닌 것들이 빛과 소리로 가득 찼어요
무서워 말아요 엄니 그래도 우리는 살아갈 거예요
먼 데서 반짝이는 별이 다가온다잖아요
그날까지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해요
엄니는 빛이잖아요 늘 그러했던 것처럼요.
(2020)
2020 삼월 COVID 19 PANDEMIC
기가 막히고 얄궂다 세상이 참,
한갓 작은 바이러스 한 종種에
서로가 두려움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일상의 그 작은 것들을 그리워하면서
온통 경계의 눈빛으로 선을 그어야 한다
지척에 핏줄을 두고도 안아본 지도 오랜
오직 카톡 하나만이 세상의 연결 고리다
어디에서 본 안타깝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꼭
하늘에 닿을 듯 물질만능주의의 무감각이
인간의 한계를 넘은 바벨의 성이 된 것인가
의료진들의 순구한 히포크라테스의 신념이
붉게 타는 밤
살아온 일생을 허무히 땅에 묻는
오열을 보는 아침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나
소리 없는 흑과 백의 전쟁은 시작되었고
자연을 거슬리던 인간의 저 허둥지둥
검은 그림자가 스물스물 들이미는
창을 꼭 닫고 앉은 이 무능 앞에
행여
먼 날 우리는 이기며 살았노라 말할 것인가
두려움에 떨다 이슬처럼 갔다 적힐 것인지
저만치 오다 만 삼월이
봄비에 젖어 화달작 피어나길
간절히 두 손을 모은다.
(20200310)
*2020. 03.02 캐 중앙일보 * 2020 코로나?코리아! 수록(한국문협)
소중한 그리움이 되는 기억들
왔으나 왔다고 할 수 없었던
억울한 3월이 저만치서 가고 있다
꽃들이 다투어 만발하였으나 상춘객 하나 없이
흔들리는 쓸쓸한 2020년의 봄은 한없이 억울하다
찌는 윤유월의 삼복더위라도 되듯 거리두기를 하여야
살아남는 오늘의 현실 앞에 모두가
평상의 그 평범했던 것들이 하나둘 그리움으로 솟는다
오순도순 오가며 나누던 일상들이 그리움으로 주눅이 들고
혼자 핀 꽃들은 혼자 지고 씨알들 눈물로 자라는 아침
소리 한번 내 보지 못한 억울한 주검들
갈 곳이 없어 방치되는 오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삶은 거리두기 뿐이라니
오랜 역사 후 오늘은 어떻게 기억 될까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얼마나 그리움의 뿌리가 되는지를.
(202003)
거리 두기
삼월의 꽃바람이 혼자 왔다가도
누구도 흔들리지 못했다
너와 내가 거리를 두면
그리움의 꽃이 피고
그림자 없이 시들었다
아무도 울어주지 못하는 삼월은
혼자 가고
거리엔 식은 바람이 지나갔다
흙 속에 묻힌 씨알 하나 잎을 내구나
네가 희망이다
오월은 어디쯤 오고 있는가
싸늘한 시간은 하염없이
너와 나를
먼 그리움으로 꽃이 피게 하구나. (2020325)
이 보시게
여기 미스 김 라일락 연보라 꽃잎이
봄비에 젖어 돌아눕는다
말 없는 초목이라고 어디 아프지 않으랴
이민의 땅 바람 흙 이슬인들 어디 내 땅만하랴
아픈 가슴 달래며 아버지 깃발 펄럭이길 엿듣는다
이름마저 뺏기고 국적 잃은 제파니스카멜리아
제파니스레드파인 제판이스채리 제판이스메풀 제판이스
블라블라 라 불리어지는 내 나라 동백 내 나라 해송
내 나라 벚꽃 내 조국 단풍 등 그 무엇 무엇...
아픈 가슴 달래며 허기진 꽃술을 열어 숨을 쉰다.
이보시게!
우리의 것을 뺏기고 있는 분통 나는 이 일을 기억하게
나라를 훔치고 우리의 혼을 말살하려 들던 그들의 만행을
어린 소녀들의 꿈을 짓밟고 멀쩡한 우리의 영토를
자기들 것이라 말하는 그 뻔뻔한 모습을,
이제 우리의 산천에 푸르게 퍼져 살든 내 나라 나무마저
가져다가 자기들 이름으로 세상에서 살게 하는
이 억울함을!
IT산업이, 한류가 물결치면 무엇 하랴!
우리의 자동차가 거리를 자리하여 얼마나 기뻤든가
그것이 다 무엇이랴 나라 밖을 나와 보라
국력이 얼마나 이민의 가슴을 울고 웃게 하는지를
위정자들은 오로지 각성할 일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건축가의 초석이 되어야 하는 일인 것을
아직도 초심을 잃은 위정자들의 우왕좌왕
그들을 보면 멀미가 인다
만능 안일주의에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할 일이라
국민 각자가 회계하고 반성하여야 할 일이라
이제 일어나자 고국이여
말이 없다고 입도 없는 것이 아니다
꽃 이름도 찾아오고 우리의 혼을 불러오자
이민의 땅 이 불모지에서도 우리의 얼을 잊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이 몸부림에 맞는 네가 되어다오
아버지 깃발 펄럭이는 푸른 하늘이 되어다오.
(2019)
***대한의 하늘은 분노의 하늘이다. 저 검붉게 타는 노을 앞에 우리의 각성은
피를 토해야 한다. 여기 나는 이민의 땅 밴쿠버의 한 모퉁이에서 초록 나무를 키우며 살아간다.
때때로 내 조국의 이산 저산에서 자생하던 토종 꽃들을 대하며 깜짝깜짝 놀란다.
그리고 억울하다. 왜 그 이름이 다 일본 이름인가에 대하여서....
너무나 먼 태고에서 울음 우는 조국의 선진 들에게 혹은 자신들에게 호소한다.
지키며 아끼며 찾아내어야 한다고...
나라의 자존심도 자신의 자존감도 스스로 지켜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자.
스스로 팔지 말고 서로 사랑하여야 하는 일 명심하자.
<시 해설>
생의 유한성, 그 눈물겨움의 절절한 내면
-강숙려 시집 『바람 속에 귀를 열면』
권갑하
(시인,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삶은 유한한 시간 열차를 타고 가는 길 위의 여정이다. 열리고 닫음을 반복하는 빛과 어둠의 시간 열차는 잠시도 쉬지 않고 달리며 순간순간 새로운 시간 속에 우리네 삶을 존재시킨다. 인간의 존재를 시간적이라고 한 하이데거의 일갈은 삶이 시간 속에 존재함을 전제한 것이다. 자연 속의 시간은 영원하지만 인간은 죽음을 통해 시간이란 존재에 직면하게 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이 말한 ‘사회적 시간’은 바로 그러한 생의 유한성을 상기시킨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시간 열차 위에서 종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은 삶을 눈물로 버무리고 가슴을 아프게 헤집는다.
강숙려 시인의 시를 읽으며 가장 먼저 ‘시간’의 의미를 떠올린 것은 시인의 시에 내재해 있는 눈물의 뿌리가 우리네 생의 유한한 시간성에 기인한다는 생각에서다. 거세되지 않은 카이로스 시간의 노정 속에서 수없이 일었다 지는 갖가지 그리움의 상념들이 눈물겨운 사랑으로, 때로는 빛나는 깨달음으로 시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거울과 같아 시인 자신은 물론 타인의 모습까지 비춰낸다. 떼려야 뗄 수 없고,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시와 삶의 처절한 관계성이다. 짧은 한 구절, 상징하는 하나의 이미지 파편을 통해 시는 천개의 손과 눈을 지닌 거울이 되어 시인의 내면을 여지없이 들춰 보인다.
강숙려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꽃처녀”처럼 “춘몽에 젖”는 푸른 “오월의 가슴”도 있지만, “버릴 수 없는 것이 눈물”겨운 “타는 가을”도 함께 공존한다. “꽃처녀”는 오월이 진한 향을 내뿜는가 하면 여름의 다짐은 여전히 뜨겁고 노을 앞의 겸허는 서늘함을 드리운다. 그만큼 이번 시집은 작품 간의 긴 시간적 상거(相距)가 자리하고 그만큼 스펙트럼도 넓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집 읽기는 시인의 긴 생의 시간 열차에 올라 일었다 스러지는 삶의 순간들을 완상하며 가끔은 애틋함에 눈물을 적시고 또 가끔은 번뜩이는 지혜와 깨달음을 얻어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겠다. 허망한 과거 회상이 아닌 살아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 진정한 삶의 순간들을 만나는 시간이다.
시는 관찰의 묘사와 관조의 진술의 조화를 통해 그 어떤 이미지와 메시지를 형상화한다. 시인의 이번 시집은 특히 내성적 자각의 발화라 할 수 있는 고백적 진술이 돋보이는데, 그것이 시적 의미를 생생하게 재구하며 깨달음과 함께 정서적으로 높은 호소력을 견인한다. 무엇보다 시적 언술로 표출되는 생의 편린들이 너무나 절절하여 강열한 간접적인 심미적 체험을 경험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오래 익힌 시적 승화는 경화된 정신을 풀어주는 치유의 힘도 지녔다. 그러면서도 진솔한 신앙의 자세를 잔잔히 드리워 시의 격조 또한 잃지 않고 있다.
2
유한한 생의 여정 속에서 떠나보낸 한순간의 봄은 오래 마음의 발목을 잡으며 아린 추억을 소구한다.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어 봄이 다시 돌아온다면야 그 아림이 덜 하겠지만, 인간의 삶에서 봄은 단 한 번뿐인 숙명을 지녔다. “세월은 길고도 긴 기찻길 같지만/ 또랑물 하나 첨벙 건너온 것만 같으니/ 내게도 있었던 은구슬 같은 추억들/ 그리워 잠잠이 가슴에 어”「돌이켜 보면」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것이다. 그러기에 한순간 떠나보낸 봄, 다시 맞을 수 없는 봄을 일생에 걸쳐 추억하지 않을 수 없으며 아린 그리움으로 긴 밤을 견딜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인간에게는 물리적인 시간의 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신은 생의 단 한 번뿐인 물리적 봄 외에 정신과 마음으로 누릴 수 있는 봄을 선사하고 있다. 그러니 생각하고 마음먹기에 따라 푸르고 아름다운 봄의 시간을 언제든지 마음껏 누릴 수 있다.
4월은
내 처녀가 화알짝 피어나던 계절
붉디붉은 첫사랑이 피어나고
눈물도 아름답던 스무 살 꽃시절
자운영 꽃밭에 나비인 냥
봄바람 가득 벌렁이던 시절
내게도 있었던 봄날의 향기
아직도 가슴은 그 시절 꽃물이 들고
노랑노랑 물들어 설레는 4월인데
머리에 찬 이슬이 소복히 쌓이네
빠알갛게 부끄럼 타는 나는
아직 꽃처녀
마알간 하늘이 다가와 입맞춤하는
사알작 이는 봄바람.
-「나는 꽃처녀」 전문
계절의 봄을 상징하는 ‘꽃’과 인생의 봄을 상징하는 ‘처녀’의 합성어가 “꽃처녀”다. 어쩌면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핵심 이미지일 수도 있겠는데, 생각해보면, 시인의 내면을 잘 드러내는 상징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아직도 가슴은” “꽃물이 들고” “빠알갛게 부끄럼”을 타고 “마알간 하늘이 다가와 입맞춤하”며 향기로운 “봄바람”으로 살랑대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이니 어찌 “꽃처녀”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인의 ‘감성세계’는 이처럼 오월의 아름다운 생의 꽃밭을 거닐고 있다. 그러니까 시인 내면의 정신적 사유와 이에 따른 감성적 관념이 심미적으로 봄의 계절을 거닐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또한 시의 의미와 시인의 생각이 직결되는 삶에 대한 시인의 관념과 사유를 함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유와 관념은 “나는 꽃처녀라 향기라”(「저만치서」)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시인의 삶과 시적 감성을 견인하는 항산화 에너지로 추동한다. 이는 단순한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반추가 아니다. 이를 뛰어넘는 정신세계를 가시화한 것으로 신이 내린 정신과 마음의 봄을 마음껏 누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만큼 시인의 시 세계는 푸르고 생기발랄하며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로 넘쳐난다. 그러한 시 세계는 또한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소리가/ 봄이란 이름으로 소리를 내고 싶은” “절규 같은”(「봄날의 반란」) 뜨거움의 지향이며 “오라/ 그 푸른 청무우 같이 싱싱하던 내 젊음의 날이여/ 땅 속 깊이 겨우내 키운 꿈 확 지피어 올리듯이” “솟아오르”(「봄날의 오수」)는 상승 관념의 정서 표출이다. 그런 세계가 때론 “노랑노랑 파릇파릇 봄이 되어/ 열아홉 팔랑이던 꽃길에 서서/ 노스탈지어에 잠기고 싶”은 “춘몽에 젖”기도 하지만, 그러나 “아직 봄이길 고집하고 싶은 청춘의 열정”이 “가슴에 있”(「춘몽에 젖어」)기에 조금도 깨고 나면 사라지는 봄 꿈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쨌든 ‘꽃처녀’로 상징되는 꽃과 봄에 대한 이러한 시의식은 시인의 시세계 전반을 싱그럽고 향기롭게 물들이면서 가끔은 눈물 적시는 아림으로 때론 슬픔을 닦아주는 온기 어린 깨달음이 되기도 한다.
3
하지만 유한한 생의 시간 열차는 야속하게도 영원히 ‘꽃처녀’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첫사랑/ 문득 그리운 오후// 눈물처럼 아린 풍경 곁에/활짝 여는 모란// 피어나는 꽃이다/ 오늘 나는.”(「기억의 창가」) 흘러간 시간을 응시하는 “가물가물 기억의 창가에서” 자신을 여전히 한 송이 “피어나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는 화자의 마음과 정신이야 고결하지만, 그러나 현실은 이내 그 아름다운 순간을 벗어나 애잔하게 지난날을 추억하는 그리움의 시간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
돌아올 수 없는 것은
모두 가슴 저미는 아득한
그리움이다.
-「돌아오지 않는 것은」 부분
흘러간 봄이 아름다울수록, 청춘의 내상(內傷)이 깊을수록 그리움은 더욱 짙은 향기를 드리우며 긴 밤을 지새우게 한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과거로 향한 그리움의 길목 가장 앞자리엔 늘 어머니가 서 계신다. “뽀오얗게 돋아나던 쑥 논길 너머/ 하얀 니 들어내고 환히 웃고 서 있는/ 까만 머리의 젊은 내 어머니”(「과거로 가는 길목」)가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세상에 눈보다 게으르고, 손보다 빠른 것은 없단다./ 아이구 내 손이 내 딸이구나.” 하시던 젊은 엄마의 살아 푸른 목소리가 귀에 쟁쟁 울린다. 하지만 어머니는 유한한 시간의 길 위에서 이제 “한 줌이나 될까 몰라 우리 어머니/ 그 곱던 모습은 한여름 낮의 무지개처럼 사라지고/ 허공에 머문 눈이 눈물처럼 아련”(「내 어머니」)해지는 죽음을 목전에 둔 90대 노년의 어머니가 되셨다. 생의 시간성은 “그 곱던” 어머니를 “한 줌이나 될”지 모르는 안타까운 아픔과 그리움의 대상으로 산화시켰다. 그러니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해온 행복했던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절절하겠는가. 더구나 먼 이국땅에서 그리워해야 하는 처지임에랴.
한밤중엔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
시퍼런 태평양 물길을 넘어 마음이 먼저 달려감은
그곳에 연로하신 내 엄니가 헐떡이는 숨가품으로도
눈을 감지 못하실 것이기에,
“널 보고 가려면 나흘은 견뎌야 할 터인데,
비행기가 더 빨리는 못 오재?“
아흔일곱의 어머니
고관절을 다치신 채 침상에 뉘이셨다
생전에 널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으려나
늙어가는 딸자식을 눈에라도 넣으시려는지
태평양을 날아 엄니의 눈부처가 되어
훨훨 나비춤이라도 추어드릴 수만 있다면
-「태평양 넘어 눈부처」 부분
시인은 일찍이 해외로 이주해 지금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살고 있다. 해외에 살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일 중 하나는 피를 나눈 부모 형제 등과 자주 만나지 못해 생기는 애틋한 정이요 그리움일 것이다. 그런데 시인에게는 90대 후반의 노모까지 고국에 계시니 그 타는 그리움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그러니 “태평양을 날아 엄니의 눈부처가 되어/ 훨훨 나비춤이라도 추어드릴 수만 있다면”이라는 절규는 간절하고 더없이 진솔한 고백이 아닐 수 없으며 어머니에 대한 곡진한 사랑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시인의 어머니는 자식들을 생각해 “너무 오래” 산 것을 스스로 “늘 미안해 하”신 헌신적 사랑의 화신(化身)이셨으니 그 절절함을 더한다. “자는 듯이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며 “자식들 걱정될까 죽음마저도 염려하”(「내 어머니」)시던 어머니께서는 지난 2019년 10월 조용히 이승의 삶을 마감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렇듯 일생을 희생과 헌신으로 믿음의 삶을 살다 가신 어머니셨으니 시인에게 남은 애절함과 그리움이 어떠하겠는가.
4
그리움의 동의어는 사랑이다. 그리움으로 숨을 쉬는 게 사랑이라니 그리움과 사랑은 한 몸이다. 살면서 사랑만큼 소중하고 숭고한 일이 있을까. 플라톤이 말한 사랑의 단계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살면서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사랑의 대상과 형태는 실로 다양하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랑보다도 소중한 것이 자식에 대한 천륜적인 내리사랑, 그리고 부부지간의 인연과 사랑 아니겠는가.
풀잎만 흔들려도 가슴이 저려오는
그 앙증맞던 손가락 발가락 내 눈에 있는데
언제 자라 어미 말은 모두 잔소리가 되는 오늘
자식이란 품 안의 그 시절이나
어른 된 오늘이나 마찬가지 애물이라
가슴에 묻고 사는 애물단지라
ㅡ어머니 당신의 가슴에도
이 자식은 아픈 가시로 박혀 있겠지요—
먼발치에서 기적이 울리고
후우여 후우여 작별은 언제나
뜨거운 눈물이 되는
우리는 천륜
가슴에 부여안고 놓지 못하는
피의 사연이다
나비처럼 날으며 꽃처럼 향기로운 삶을 살거라
행복의 시내가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어 출렁이거라
두 손 모아 너희들의 새벽을 연다
나의 능금들에게 어미의 진(津)을 전한다.
-「나는 어미라」 전문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유전되는 모녀지간의 사랑이 애틋하다 못해 절절하다. 애물단지는 죽은 자식을 단지무덤에 넣어 묻는 데서 유래하는데, “자식이란 품 안의 그 시절이나/ 어른 된 오늘이나 마찬가지 애물이라/ 가슴에 묻고 사는 애물단지라”는 진술은 자식에 대한 사랑의 극점을 표현한 것이다. 자식을 ‘애물단지’로 생각하는 그 이상의 사랑 표현이 또 있겠는가. 화자 자신이 “어머니 당신의 가슴”에 “아픈 가시로 박혀 있”듯이 자신의 딸도 어미인 자신의 가슴에 가시로 박혀 있음이다. “우리는 천륜/ 가슴에 부여안고 놓지 못하는/ 피의 사연” 구절도 자식과의 관계와 사랑을 이보다 더 절절하게 그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내면 드러내기’의 높은 경지를 만나게 된다. 사실, 사랑한다거나 그리워한다는 말은 지극히 상투적이어서 읽는 이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한다. 독자가 읽기를 통해 사랑을 느끼고, 그리움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 참 글쓰기인데, 말이 쉽지 여간해선 이뤄내기 어려운 경지다. 시든 산문이든 사실 이러한 진솔한 ‘내면 드러내기’가 감동을 주고 높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한편으로는 글을 쓰는 사람의 내면을 치유하고 자아를 단단하게 하는 힘을 갖는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본심과 마음의 상처를 숨기고 포장해서는 내적 치유도 되지 않을뿐더러 읽는 이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강숙려 시인의 진술적 고백 시편은 돋보인다. 절절한 내면의 생각을 뭉뚱그리지 않고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마디 한 구절은 보편적 의미로 승화되어 모두에게 마치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치유와 감동의 효과를 발휘한다.
천연바람처럼 산뜻하고 이슬 속 무지개처럼 아름답구나
분주히 오가는 네 모습이 네 마음이
오늘 엄마는 떠나가지만 언제나 네 곁에 있음을 느끼며 살거라
머잖아 영원히 떠난다 하더라도 그때도 마찬가지니라
엄마는, 비록 변변찮은 엄마라 하더라도 우리들의 어머니는
영원한 엄마기에, 네 마음에 네 가슴에 있는 것이다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네 살 속 깊이 있는 것이다
주안에서 늘 느끼며 나누며 얘기하며
삶의 어려운 날이 있다면 언제라도 안겨 오거라
때때로 세상의 엄마들은
가슴에서 우는 자녀들로 안으로 삼키는 피눈물을 알거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으로 인하여 아프고 슬프고 기쁘니라
젊음은 모든 것을 부정하나 모든 것을 긍정하고 강하지만
늙음은 모든 것을 수용하나 약하니라
약함은 모든 사물을 흘러가게 두고 유유자적(悠悠自適)의 고요로만
바라보게 되는 이치니 이 어미도 이제 늙어 가구나
젊은 내 모습을 반추하며 너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엄마는 울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형제우애로서 자식으로서의 너는
활짝 핀 아름다운 꽃이구나
세월 속에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이거라
네 자녀들이 바라볼 아름답게 벙그는 꽃이 되거라
영원히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세상 끝날까지 지키리라 너는 다시 피어나는 나 이거든
내 사랑 내 노래 내 자랑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에게」 전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게 자식이라고 한다. 딸을 향한 어미의 간절한 이 기도문은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의 마음을 대변하는 명시가 아닐 수 없다. 시의 앞부분은 성인이 되어 따로 살고 있는 자식에게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영원히 함께 살 수 없는 숙명과 떠나보내야 하는 이별을 상기시키며, 그러나 그 어디에 있든 또 언제든지 힘이 들 때는 엄니의 품으로 안겨오라는 진술로 시작된다. “어머니의 ‘품’과 아버지의 ‘등’”이란 문장도 있지만, “품에 안은 자식”이란 표현만큼 마음을 짠하게 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언제라도 달려가 안길 어머니의 ‘품’이 사라진 시간을…. 그때의 아픔과 회한을 글로 표현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한 애틋한 정서가 이 시의 중간 부분을 흐른다. 하지만 어머니는 역시 위대한 어머니시다. 자신의 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임을, 또 영원히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는 간절한 기도로 시를 마무리한다. “너는 다시 피어나는 나”임을 명료하게 선언하는 꽃의 유전이 위대함을 넘어 숭고하게 느껴진다. ‘나’란 존재가 ‘어머니, 아버지’라는 그루터기에서 다시 피어난 꽃임을 인식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과 효의 원천이요, 깨달음 아닐까.
아이들 자라 훌훌 떠나 빈껍데기 빈집에
누덕누덕 기운 자리 주름진 손마디
눈물 없이도 서러운 시간들
이 순간 내 눈앞에 있는 그대
바라볼 수 있는 그대 있음에
따뜻한 체온 서로가 고맙다
참 고맙다
내 사랑.
-「그대, 곁에 있는 그대 참 고맙다」 부분
자식은 성장하면 부모의 품을 떠난다. 떠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결국 둥지에 남는 것은 부부다. 한자의 의미와 별개로 우리말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을 나는 이 ‘부부’라는 단어에서 만난다. 지아비 ‘부(夫)’와 아내 ‘부(婦)’의 결합! 이 얼마나 동일체적이고 수평적인 세계다. 글자만으로도 부부는 하나이고 한 몸이며 온전히 평등하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지를 ‘부부’란 우리말과 단어가 잘 표현해주고 있다. 부부가 되어 서로 사랑하며 함께 늙어가는 것을 백년해로(百年偕老)라고 한다. 결혼 주례말씀에서 빠지지 않는 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란 말인데 이 말이 바로 백년해로를 상징하는 간절한 기원이다. “혼자라서 즐겁다고요? 함께하면 더 행복합니다!”란 광고 카피도 있지만 부부의 인연으로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이지만 그러나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며 그만큼 깊은 울림을 준다. 은근하면서도 지고지순한 사랑의 모습이 바로 그런 백년해로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곁에 있는 그대 참 고맙다”는 시적 진술은 울림이 크다. 어쩌면 부부지간에 최상의 사랑 고백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거칠고 우울했던
길고 긴 얘기는 이제 끝이 났다오.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던 내 사랑하는 이들이여!
별들도 눈물짓든 남루한 묵은 얘기도 이제 끝이 났나니
눈먼 행복에서 달려 나온 젖은 옷을 훌훌 말리네.
덧없었던 것에서 풀려난 축배를 들겠네.
슬픈 눈물의 노래 속 나의 일탈(逸脫)을 자축하네.
하늘의 새들도 지상의 꽃들도 덩달아 축배를 들어주네.
아프면 아프다 말해야 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알아갈 때
철들어진 나를 보았네. 철철 흐르는 피도 보았네.
노라는 왜 집을 떠나야했는지도 결코 알아진 오후
내일 또다시 해는 동녘에서 떠오른다는 것도.
새로운 지성의 날개를 타고 성스러운 곳으로
나의 수호자(守護者)에게로 가는 큰 바퀴의 열차를 나는 타겠네.
안개 자욱한 골짜기에서 더욱 어여쁘고 사랑스런 꽃으로 피어
나의 수호자에게로 가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려니
하늘의 새들도 지상의 풀꽃도 춤을 추네 그려.
행복하게 사는 일이 이러 할진데
사랑하며 사는 일이 이러 할진데
꽃들이 벙그는 일이 이러 할진데,
사랑하는 이여, 내 사랑하는 이여!
따스한 숨소리 곁에 있어 문득 잠든 그대 얼굴 보노니
내 천년을 함께 업고 누운 그리운 이여
이 한세상 마지막을 불태우려 우린 만났는가
그대 볼에 뜨거운 눈물 섞어 부비노니 우리
서로 작은 허물일랑 덮어주고 안아주며
하늘의 서신 오는 그날까지 한 그림자 되어
사랑하는 자들 더불어 향기로 피려네.
나 이제 꽃 피는 지상의 오랜 전설이 되려네.
- 「내 사랑하는 이여!」 전문
건강하고 행복하게 함께 늙어가는 사랑! 그러한 사랑에 대한 다짐이요 헌사인 위 시편은 부부간의 사랑과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경전처럼 읽힌다. 저 깊은 마음의 심연, 첩첩 산속에 울려 퍼지는 메아리와도 같은 길게 여운지는 울림이 큰 사랑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서로 작은 허물일랑 덮어주고 안아주며/ 하늘의 서신 오는 그날까지 한 그림자 되어/ 사랑하는 자들 더불어 향기로 피”겠다는 다짐이야 말로 백년해로를 기약하는 사랑의 요체일 것이다. 그렇다. 부부의 삶이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지만, 그러나 “아웅다웅 세월을 엮어가는 길/ 화롯불 불씨 같은 아낌으로 걷는 길” 그런 길이기에 “하염없이 붙들고 가는 그대와 나/ 놓을 수 없는 끈”(「부부란 2」)인 것이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운명이라 불리는 소리 없는 분신”이 부부이며 “때때로 그가 허망이 걸을 때/ 그의 허리를 길게 펴 주며/ 함께 걸어주며/ 옷깃을 여미게 해”(「그림자」)주는 사랑이 진정한 부부의 사랑인 것이다.
강숙려 시인의 이러한 사랑의식은 그러나 부부지간, 육친 간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 곱든 단풍들 낙엽 되어 떨어져 호젓하던 덕수궁 돌담길은/ 무고한지 곧 어디론가 긴 칼을 찬 채 떠나야 할 것만 같았던/ 장군님은 여전히 광화문을 잘 사수하고 계신지, 늘 안부가/ 궁금”(「이민(移民)의 땅에서」)하고 “앞뒤로 내달리는 내 조국 차들이 이민의 외로운 가슴에 불을 지펴요/ 아직도 우리는 대한의 자손이라 말하고 있음에 목이 메”(「조국의 한 뼘 지적도」)이는 조국 사랑도 뜨겁다. 2017년 5월 조국의 광화문을 다녀와서 “나라를 떠나 보아라 모두가 애국자가 되느니/ 국력이 우리 이민자들의 크고 큰 힘이니/ 너는 대한민국의 붉은 혈(血)이니라./ 너는 대한민국의 붉은 얼(魂)이니라.”(「개명천지(開明天地」) 절규한 시편에서도 절절한 조국애를 만날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어보면/ 서성 될 것도 없는 내가 되어보면/ 편안한 내 자리가 보이어”(자아(自我) 만들기) 오는 자애(自愛)도 단단하다. “나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는 일/ 사랑하고 사랑할지니/ 사랑하노라 내 안에 사는 그대여!”(「인생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에서도 만날 수 있듯 시인은 자타(自他)의 사랑과 행복을 함께 아우르는 넉넉한 시의 품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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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려시인은 독실한 믿음의 삶을 살고 있다. 사실 종교적 믿음의 생활만큼 삶에 위안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믿음의 생활은 또한 겸손한 삶을 살게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소중하다. 우리시대의 지성으로 무신론자였던 이어령 선생도 노년에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아마도 딸의 지병에서 깨달은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숙명과 그 어떤 근원적 고독이 믿음을 갖게 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누구나 노년에 이르면 젊은 시절의 치기는 수그러들고 생과 사, 삶의 의미 등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이는 이 글의 도입부에서 전제한 생의 유한한 시간성과 직결되는 주제인데, 그러한 유한성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의 극복 과정에서 찾게 되는 것이 믿음의 생활을 통한 마음의 평화요, 구원의식이다. 어쨌든 믿음이 주는 삶에 대한 겸손과 위안, 마음의 평화는 소중한 것이다. 이번 시집에는 이러한 믿음의 정서가 전편에 흐르고 있는데 아마도 시인 자신이 독실한 믿음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나의 주님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이미
나는 당신께 사로잡힌 몸이었습니다.
수 많은 별들 공중의 훗날리는 바람
흘러가는 저 물결
어느 것 하나
주님의 뜻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나는 당신의 은혜 속에 이미
파묻힌 몸이었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은혜 속에서 말씀으로 살겠습니다
천지에 충만하시며 보이지 않아 더욱 가득하신
영광의 마라나타 나의 주여!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전문
기도문처럼 읽히는 위 시는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라는 제목에 의미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라는 우리말에는 굳은 믿음과 진실한 사랑이 진하게 배어 있다. 성경의 다니엘 세 친구의 이야기 부분에도 나오는 이 구절(단 3:16~18)은 설령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풀무질 가운데서 건져주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비장한 믿음의 고백을 표출하고 있다. 어떤 조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또 조금의 원망이나 불평도 하지 않는 독실한 신앙의 자세다. “이미/ 나는 당신께 사로잡힌 몸”이요, “당신의 은혜 속에 이미/ 파묻힌 몸”이라는 거침없는 고백은 “죽든지 살든지”로 비장함을 드러내면서 더욱 “그리 아니 하”셔도 하느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믿음을 강조한다. 어쩌면 이러한 굳건한 믿음이야말로 ‘기적’을 만들어 내는 신앙의 핵심적인 바탕이라 할 것이다. 사람 간의 관계, 세상살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인의 이러한 믿음 의식은 「꽃이 된 가치관」, 「말씀하시네」, 「복 있는 자의 할 일」 등의 시편에서도 같은 톤으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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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려의 시세계가 봄의 에너지로 사랑과 그리움, 신앙적 믿음의 세계를 폭넓게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특징적 요소들을 하나로 아우르며 구름 속의 햇살처럼 언뜻언뜻 비추는 희망의 코드를 뽑는다면 깨달음과 지혜가 아닐까 싶다. 시가 반드시 그 어떤 깨달음과 지혜를 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감동과 지혜, 깨달음은 분명 시의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셰익스피어는 “간결한 말은 지혜의 산물”이라 했는데, 이를 “시는 지혜의 산물”이라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연암 박지원이 “오묘한 깨달음이 있으면 메모를 했다가 훗날 다시 생각하고 점검해서 조리가 일관된 글로 남긴다.”고 한 것도 깨달음의 글쓰기와 연결된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 강숙려 시인의 시편들이 주는 지혜와 깨달음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내 주머니 속 같은 내 안의 것들이
하나둘 내 곁을 떠난다면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하나둘 내 곁을 떠나간다면
그 행복을 주던 것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일이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갈 때 내가 자라야 한다
세상엔 당연한 것은 없다
나의 겸손이 미덕이 낮춤이 주어오는 대가
그것이 아름다운 당연으로 다가올 뿐이다
바람이 분다
오늘도 서산에 해가 지는 찰나의 순간에
떠오른 지혜 하나
날마다 주어진 오늘을 잘 살아드리는 일
그것이 내일을 기쁘게 맞이할 나의 날이다.
-「당연한 것에 대하여」 전문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가는 것이 깨달음이며 그 깨달음이 지혜의 곳간을 채운다. “세상엔 당연한 것은 없다./ 나의 겸손이 미덕이 낮춤이 주어오는 대가”임을 깨닫는, 그것이 참 지혜 아니겠는가. “날마다 주어진 오늘을 잘 살아드리는 일/ 그것이 내일을 기쁘게 맞이할 나의 날”임을 깨닫는 것도 “서산에 해가 지는 찰나의 순간에/ 떠오른 지혜”인 것이다. “멀리 던지지만 제 자리에 돌아와야 한다/ 상상을 초월하게 갔더라도 되돌아와야 하는 것/ 던진 자리에서 그대로 받아야 한다는 것”에서도 “뿌린 대로 거두는” 깨달음을 얻고 “많이 생각하는 자가 이기는 자”(「부메랑의 법칙」)라는 지혜를 누리게 된다. “만길 솟은 절벽에 매달려 천 길 낭떠러지로/ 굴러 본 뒷날에 깨닫는 인생의 진리 하나/ 붙들지도 붙잡지도 말지니 세상 모든 것은/ 지나가는 여정일진데/ 흘러가는 물처럼 흘려보낸 후/ 그렇게 고요한 물이 되어 오늘을 바라보라”(「평정심의 나」)는 진술도 유한한 시간 열차 위에서 얻게 되는 참 깨달음인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바람에 맞서지 않으려 흔들린다.
꺾이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흔들린다.
-「흔들리며 크는 나무」 부분
삶 속에서 많이 부딪히고 흔들리고 서로 교감할수록 지혜와 깨달음은 깊어진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감각도 고도화되고 정서도 품이 넓어진다. “대쪽같이 곧게는/ 한세상 살기 너무 벅찬 세상”이기에 “칸칸이 나누어 담은 가슴으로/ 마디마다 하늘을 담고 흔들리며 자라간다”는 대나무에 대한 시적 은유는 깨달음과 지혜를 서늘하게 드리운다. 그런 깨달음의 과정 속에서 “그리움의 동산에 올라/ 하염없는 퍼즐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안개 자락의 끝이 닿는 그곳에/ 새 안식의 꽃이 피어나리니//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는 진리 앞에서/ 행복해져 있는 나를 보게”(「인생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든가요」)된다는 인식은 소중하고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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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강숙려 시인의 시세계를 살펴보았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시간적으로나 내용상으로 스펙트럼이 꽤 넓은 편이다. 아마도 시집의 엮음 주기가 긴 탓일 것이다. 이를 경우 통시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선집처럼 시인의 시세계를 폭넓게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시평에서 특별히 언급할 것은 디아스포라적 접근을 하지 않은 점이다. 이는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생각에서였다. 무엇보다 강 시인의 시세계가 국내 여느 시인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디아스포라적인 특징을 지녔다고 보기 어렵고, 또 비록 해외에 거주하고는 있지만 대표적인 국내 문인들과 유사한 문학적 수준과 감각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였다. 디아스포라적 접근은 자칫 재외국민문학을 한국문학사의 변방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재외국민이라 하여 그에 따른 삶의 어려움이나 문화 충돌, 한국에서의 정서와 다른 그 어떤 것을 반드시 시적 소재로 보여줘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강숙려 시인의 이번 시집은 생의 유한한 시간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각과 정서를 표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긍정과 희망의 봄 의식이 전편을 관통하고 있다. 늙음에 대한 거부보다는 수용과 극복을 통한 정신적 청춘의 재생과 누림을 노래하고 있다. 이는 시가 어떤 식으로든 시인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시인의 정신세계가 여전히 푸르고 뜨거움을 반증한다. 그러한 푸름과 뜨거움 위에서 그리움을 녹여내고 사랑을 꽃 피우고 있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정신과 마음의 봄을 시를 통해 마음껏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정서는 이번 시집의 많은 시편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믿음의 고백적 시편 또한 시적 공감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인의 시가 격조 있게 읽히는 것은 시에서 발현되는 지혜와 깨달음의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강숙려 시의 특징을 하나 더 꼽는다면 낭송용 명시들이 많다는 점이다. 시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며 사유가 깊고 지혜와 깨달음을 주는 구절이 많아 낭송하는 사람이나 듣는 이 모두 시에 깊이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간절한 기도문 같은 신앙시편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의 문으로 들어 온 풍경소리」, 「모하비 사막」,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에게」, 「영원한 생명이신 어머니」 등 다수의 시편들은 특히 낭송에 적합한 감동을 주는 시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할 수 있다.
시평을 쓰기 위해 시집의 작품들을 여러 번 정독하면서 근래 접한 다른 시인의 시집에서 느껴보지 못한 애잔한 감성과 정서에 젖었다. 몇 번이고 눈을 감고 솟구치는 격정을 가라앉히면서 한 사람의 독자로서 시적 상황과 메시지를 간접체험하려 애썼다. 무엇보다 유한한 생의 시간성을 절절하게 생각하게 하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했다. 이제는 독자들께서 강숙려 시인의 그런 시세계를 완상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