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마을(月谷, 달아실) | |
●지명유래
달은 달월(月)자로 쓰고 실은 골곡(谷)자를 각각 써서 월곡리로 한것이다.
월곡리는 달아실(월곡) 마을과 벼루굴(성곡) 마을,
버드나무골(류곡) 마을,
양정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달아실마을은 마을의 형국이 달처럼 형성되어 있다고 이렇게 부른다고 전한다.
위치하는 곳을 「 달 」이라 하는 바 달아실은 「 산중턱의 마을 」이란 뜻이다.
당곡리(唐谷里)로 기록되어 있으며,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능주군(綾州郡) 대곡면(大谷面) 월곡(月谷)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3년에는 화순군(和順郡) 대곡면 월곡리, 1914년 행정구역개편때 화순군 오도면, 대곡면, 화남면을 합하여 도곡면으로 칭하면서 화순군 도곡면(道谷面) 월곡리(月谷里) (월곡리, 유곡리, 양정리)로 편입되었다. 현재 월곡리이며 3개 자연마을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해망산(海望山, 355.6m)의 지맥, 북쪽으로는 道谷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마을은 동쪽 또는 북쪽을 향하고 있다.
여흥민씨월곡3구(양정)가 주축을 이루고 살았다고 구전되고 있다. 대촌동.양과리. 니장동에서 입향하였다.
쌍옥마을 평리마을 남쪽으로는 춘양면, 북쪽으로는 효산리. 대곡리.지석천을 경계로 천암리.원화리.신덕리.미곡리. 죽청리. 신성리.덕곡리.가 있다.
(양팽손 향사지소, 1635년 사액),
梁渭南旌閭門 (1580년 진사, 병자호란. 정묘호란 의거, 나라에서 정려하사),
梁명구遺墟碑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로 빈민구휼),
양동호가옥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52호),
양승수가옥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54호),
장학공적비 (도곡중앙국민학교, 제주양시 칠공계에서 학교 건립함을 기념함), 대곡면사무소터(513번지, 옛장판각건물터),
월곡의숙(月谷義塾, 513번지, 면사무소이건후 사용),
양학포연지도(1550년, 양팽손작, 각건물터, 월곡의숙(月谷義塾, 513번지 면사무소이건후 사용),
양학포연지도(1550년, 양팽손작, 양성훈 소장),
양학포매죽도(양팽손작, 양성훈 소장),
양학포문집(2권, 양팽손작, 양재국 소장),
제협서율부(1권, 양팽손작, 양재국 소장),
조정암집(3권, 1520년, 편집위, 양회완 소장,
교지(30매, 양동호, 양복승, 양성훈 외 20명 소장),
기타고문헌집(500여권, 마을사람 각각 소장)
집을 짓고 정사를 논의했다고 하여 이렇게 부른다. (모산마을 전설과 비교됨)
달아실마을을 지켜주고 새벽이면 돌아가니 마을에 큰 해가 없다 하여 마을사람들이 먹이를 주곤 하였다고 전한다.
하는데 하루는 저녁에 잉굴까지 내려와 놀다가 새벽닭의 울음을 듣고 놀라서 도망갔다고 전한다. 동네가 구름에 뜬 달과 같다고 한다.
전하는데 이는 달은 점점 커져 보름달이 되고 다시 이즈러지므로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15대가 살면 가세가 기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건지산(하늘), 모산마을 뒷산은 곤지산(땅)을 의미한다고 한다.
⊙양담(梁湛, 1430~1495, 通訓大夫司僕寺正, 대학자),
⊙문상행(文尙行, 1460~1520, 龍潭縣令禮曹參議),
⊙양팽손(梁彭孫, 1488~1546, 資憲大夫吏曹判書, 기묘명현),
⊙양응정(梁應鼎, 1518~1580, 大提學大司成, 대학자), ⊙양인용(梁仁容, 1555~1613, 訓練院僉正),
⊙양우전(梁禹甸, 1595~1623, 의병),
⊙양우계(梁禹界, 1609~1666, 贈通訓大夫司僕寺正),
⊙양택하(梁宅夏, 1670~1752, 通訓大夫),
⊙양태하(梁泰夏, 1676~1757, 僉知中樞府事龍騈衛副護軍),
⊙양회인(梁會仁, 1911~1961, 道議員, 獨立運動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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