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악산 산행기
신현숙
모처럼 날씨가 좋았다. 며칠 전까지는 한파, 산행 다음날은 눈. 용케도 안 좋은 일기를 피해 삼악산을 다녀왔다.
동암역 오전 6시30분 집합. 겨울이라 아직 어두워 회원들이 늦다.
늦잠 잤다며 헐레벌떡 차에 오르는 순이 언니, 친구 준다며 보온병에 미역국까지 끓여 온 유정씨, 하나둘 회원들이 도착하는 사이로 회장님은 부회장 춘기씨에게 전화를 한다.
“뭐? 이제 일어났다구?
......
알았어, “
포기하고 출발하자며 혼자 내뱉는 한 마디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께~
집행부는 안 와도 회비는 내야제......"
우와, 무섭다! 이 사실을 알고도 춘기씨는 계속 잠을 잘 수 있었을까?
7시가 다 되어서야 18명으로 조촐하게 동암을 출발,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삼악산으로 향했다.
버스가 출발한지 얼마 후, 등반대장 영일씨가 준비한 유인물을 돌리며 간단한 산행코스에 대해 안내를 시작했다.주봉이 용화봉(645m), 청운봉(545m),등선봉(63m) 셋이라 해서 삼악산이라며, ‘악’자가 들어간 만큼 ‘제법’ 험하다는 친절한 설명을 잊지 않는다.
작년 이맘때쯤 겁 없이 따라나섰던 ‘운악산’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단 8명의 회원이 사투를 벌이며 넘었던 운‘악’산!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지 하며 가슴을 쓸어내려 본다.
국도를 들어서는 8시 반께 아침 식사를 위해 휴게소에 도착했다. 선택받은 유정씨 친구들은 유정씨가 손수 끊인 따뜻한 미역국으로, 아들과 정겹게 도시락을 싸 온 영곤씨 부자는 김밥으로, 그리고 나머지 여러분은 희멀건 설렁탕에 아침부터 쐬주 한 잔으로 속을 달래고, 다시 버스는 다시 경춘가도를 달린다.
곧 오른편으로 소양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야 , 강촌이다!”
강 건너로 별장(?), 민박 들이 보인다. 학창시절 누구나 강촌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은 있겠지.
10시 쯤 드디어 의암댐 입구 상원사 매표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영일씨 구령에 맞춰 간단한 준비운동을 한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산 아래서 이 약식 국민체조를 할 때면 왜 이리 마음이 비장해지는지......
체조 후 각자 소개가 있다. 오늘도 처음 보는 얼굴이 몇 있다. 유정씨의 야심찬 후보 신입회원 남성 두 분(김정학, 한태웅), 영곤씨는 초딩 5학년 아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오셨네. 그리고 보니 늘 빠지지 않던 헌규씨와 아이들이 안보이고. 어? 명숙씨는 남자친구 없이 오셨네. 현주씨와 그 일행(수주씨, 은영씨)도 반갑다.
삼악산 산행 기점은 세군데다. 등선폭포, 상원사, 강촌역에서 다리 건너 바로 시작하는 세 기점이 있다. 등반대장은 이번에 상원사 기점 산행을 택했다. 삼악산을 여러 번 왔었다는 회원들도 이 코스는 처음이란다. 영일씨의 탁월한(?) 선택을 믿어보기로 했다.
상원사까지는 그럭저럭 완만하고 상원사 지나고부터 한 40분 힘들다 했는데, 처음부터 영 만만치가 않다. 어느 산엘 가든지 산에 오르기 시작한 최초 30분은 왜 이리 힘이 드는지.
예상대로 명숙씨 일행이 뒤처지기 시작한다. 영일씨가 뒤쳐진 회원들을 이끌고 오다 재성씨와 신참 정학씨에게 바통을 넘긴다. 우리 산악회가 지난번 ‘온뫼’산악회와 달리 회원들을 너무 안 챙긴다는 명숙씨의 원성을 들은 터라 모두들 바짝 긴장하고 속도를 조절한다. 순이 언니는 명숙씨 덕에 쉬엄쉬엄 가서 오히려 좋단다.
상원사에서 모두들 상봉.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돼 상원사에 도착한 명숙씨 일행에게 재연씨가 잊지 않고 농을 던지고, 그것이 또 힘이 되어 눈 덮인 힘든 겨울 산행이 이어진다.
상원사에서 능선까지 가파른 길, 40분이면 도착한다 했는데, 계속 늦어진다. 앞선 이는 속도가 안 붙으니 춥다 하고 뒤에서 따라 가는 이는 힘에 부쳐 숨이 차다. 서로 기다려 주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니 한 발 더 디딜 힘이 생긴다.
우리네 살이도 이럴 때가 있다. 아무리 스스로에게 힘내 괜찮아 하며 외쳐도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군가 세상을 향해 한 발 디딜 수 있게 내 손을 잡아준다면, 내가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면, 세상을 향해 더 빨리 용기를 낼 수 있을 거다.
한참을 오르다 잠깐 쉬고, 또 오르고 쉬고. 몇 번을 반복해도 능선이 안 보인다 싶더니 드디어 산 아래 강이 보인다.
능선에 올라 바라보는 확 트인 전경! 아, 매서운 겨울바람도 오히려 훈훈하게 느껴지는 이 벅찬 감동. 산 아래 드문드문 눈에 쌓인 마을도 보이고, 강 중간에는 꽤 큰 섬도 하나 있다.
“저거 남이섬인가? “
“남이섬을 왜 여기서 찾냐?”
뜬금없는 대화도 바람결에 정겹다.
그러나 , 마음은 너무 일찍 내려놓았나 보다. 눈앞에 딱 버티고 서 있는 바위 능선, 정상까지는 일명 '깔딱 고개'란다. 숨이 깔딱깔딱 차도록 바위에 박아놓은 쇠받침대도 딛고, 밧줄도 잡으며 정상을 오른다.
“오호, 난 이런 바위 타기가 좋아. 딱 내 취향이야”
벌벌거리는 내 앞에서 유정씨가 실력 발휘를 하는군. 끝나는가 싶으면 또 있고 봉우리 사이의 주능선이 모두 바위다. 산자락마다 눈이 녹지 않아 참 풍경이 좋은데 힘이 들어 그것도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야, 춘기형이 왔으면 지금쯤 약주를 풀었을 텐데......”
하며 누군가 늘 매실 약주를 싸오던 춘기씨를 그리워한다.
그래, 이맘때쯤이면 한 잔 해야지. 회장님이 적당히 바람 막아주는 평평한 곳을 골라 술을 꺼낸다. 센스 있게 족발을 싸온 태훈씨 덕에 안주도 기가 막히고, 너도 나도 한 잔, 캬~~
.이제야 풍광이 눈에 좀 들어오는군. 산새는 작지만 산 곳곳에 갖가지 모양을 한 크고 작은 기이한 바위가 많아 아기자기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삼악산이다.
한 잔 술에 추위도 잊고 쫀득쫀득한 족발 맛에 혀가 즐겁다. 영곤씨 아들은 술도 없이 제법 안주를 즐긴다. 짜식, 초딩이 등산화도 안 신고 기특하게 잘도 따라오네. 아줌마 눈에 그저 귀엽고 예쁘고 듬직하다.
뒤늦게 도착한 명숙씨 일행에게 박수! 오늘 참 장하다. 늘 산 아래서 발 담그고 있든지(대야산), 일행의 하산 길에(등산은 반만 하고) 먼저 걸어가 일찌감치 도착해 있든지(민둥산) 하던 명숙씨 아닌가. 역시 남자친구가 없어야 오히려 자립(?)한다니까. 신참이면서도 마지막 일행을 잘 이끌고 온 정학씨는 큰 족발을 칼로 다듬어 늦게 온 회원을 배려하는 마음도 훌륭하다. 유정씨 말마따나 차기 우리 산악회 강력 추천 회원으로 손색이 없다.
다시 정상을 향한 길. 약간의 약주로 다리는 좀 떨리지만 속은 뜨뜻하다. 미끄러기도 하고 서로 손을 잡아주기도 하면서 산을 오른다. 언제나 초보인 나도 태훈씨도, 영식씨의 도움으로 겨우 비틀거리며 정상 탈환!
정상표지 바위(용화봉)를 안고 모두들 독사진 한 컷씩. 현주씨는 오르기 힘들어 하면서도 열심히 회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공식 찍사 유정씨도 열심히 디카의 셔터를 누르는 동안 회장님과 선발 일행은 벌써 저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점심 먹을 자리를 찾아, 찾아서......
정상 근처에서 먹는 즐거운 점심 식사.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영일씨가 통나무 두 개를 나란히 마주 보게 하여 근사한 식탁을 만들고 모두들 새벽부터 준비한 도시락을 내놓는다. 따끈따끈한 밥에 김치며 고추 장아찌, 돼지고지 볶음, 오이, 달걀, 라면에 샌드위치까지 없는 게 없다. 서로 내 것을 먹어보라 권한다.
수저만 들고 오다 모처럼 고기반찬에 나물까지 준비해 온 누구는 칭송의 대상이 되고, 맛있는 김구이를 추천해 준 딸 자랑을 잊지 않는 아빠도 있다.
소주병도 쌓이고, 이야기보따리, 추억도 쌓이고......
든든히 속을 채우고 나면 이제 하산길이다. 아이젠까지 챙겼으니 미끄러운 빙판길도 두려울 것이 없다. 층계가 꽤 많다.
“이 쪽으로 올라갔다면 꽤나 힘들었겠어요.”
하니 영일씨가 그래서 다소 바위 때문에 힘들긴 해도 이번 산행 코스를 이렇게 잡았단다. 좋은 선택이었지 싶다. 지루한 계단 길에 경치는 볼 수 없는 이 길이 하산 길로 적당하다.
선녀탕, 등선폭포를 지나오며 산중의 두부집에서 손수 만든 두부에 막걸리 한 잔 하고 오니 어느새 강촌에 도착했다. 소양강의 명물 빙어튀김, 빙어회, 잡어매운탕까지 우리 산악회의 뒤풀이는 언제나 화려하다.
술은 안 먹지만 나물을 참 맛나게 먹고 있는 혜숙씨에게 재연씨는 또 농 한 마디.
“그거 다 중국산 이예요”
까짓거 그러면 어떠하리. 산에서 맛있으면 그만이지. 수제비가 둥둥 떠 있는 칼칼한 매운탕에 잣막걸리가 술술 넘어간다. 그 와중에도 명숙씨는 소주, 그것도 꼭 ‘처음처럼'을 찾고.
“야, 명숙아, 너 이제 제 정신 돌아왔나 보다. 소주도 취향대로 찾을 줄 알고“
재연씨의 농에 명숙씨는 결코 자신은 재연씨와는 친하지 않은, 그냥 조금 ‘아는 남자’일 뿐이라며 받아쳐서 좌중 폭소가 터진다.
유정씨는 난로가 뜨거워 옆으로 자리를 옮긴 순이씨, 영식씨, 영곤씨에게 까지 멀리 술병을 들고 가서 채워주는 수고를 하며 분위기를 돋운다. 알고 보니 유정씨가 데려온 정학씨, 태웅씨도 유정씨 못지않은 분위기 메이커네. 살아 팔딱거리는 빙어회는 용기있는 이들의 몫(회장님, 재성씨, 영일씨). 태훈씨에게서 기어이 감자 부침개를 뜯어 먹고서야 모두를 자리를 정리한다.
돌아오는 경춘가도는 언제나처럼 밀린다. 바깥은 벌써 어둑어둑하고 피곤한 몸과 한 잔 술로 졸음이 쏟아지는 가운데 ‘아는 여자’라는 애매한 영화도 한 편 감상하며 버스는 인천으로 달렸다.
그래, 올 때가 있으면 갈 때도 있는 거지 지루하고 힘들지만 고마운 나의 일상으로 몸을 맡긴다.
첫댓글 올 한 해 산과 같이 하면서 지낸 것 부러워요. 좋고 맑은 공기를 마셔서 그렇게 여유로움과 힘이 있었나봅니다.
신현숙씨 혹시 산악회? ㅋㅋㅋㅋㅋ 멋집니다. 나는 엄두도 못내고 있는데... 원체 산을 싫어도 하지만 ㅋㅋ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현숙씨 만큼 재밌네요
모두들 신현숙씨가 재밋다고들 하시는데 전 아쉽게도 그 재미난 모습을 못 뵈었어요.. 쓰신 글을 읽어보니 참 간결한 유머를 잘 하시는것같은데 언제 한번 기대해 봐도 되겠지요?ㅋㅋ
올핸 현숙씨 따라 다닐까?
자, 저를 따르십시오!!! 왕초보도 가능한 노년 산악회입니다.(평균 연령 40대~50대, 그치만 영계도 가끔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는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