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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이야기)
대성리 테마소풍
염지선
2학기는 1학기 때의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사라져서일까?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때문에 시간이 더욱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10월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테마소풍. 말 그대로 테마가 있어야 하는 소풍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안전상의 여러 가지 이유로 그저 적당한 데 한 곳을 정해 모든 반들이 한꺼번에 소풍을 다녀오고 만다.
올해도 어김없이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장소가 정해졌지만, 유난히 말 많고 탈 많은 학년인데도 다른 반에 비해 담임 말을 나름 따르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예뻐 보여 큰 맘 먹고 우리 반만의 테마소풍을 가볼까 마음을 먹기에 이르렀다. 38명의 장성한 남자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그리고 무엇보다 요구사항도 많은 아이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과정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반만의 테마소풍을 생각한 이후에도 하루에 열 번씩은 마음이 바뀌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가온 중간고사와 추석연휴. 결국 추석연휴에 마땅한 곳을 물색해 보겠다는 다짐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채점과 독서 평가에 쫓기며 어느새 ‘에휴, 내가 무슨 영화를 누리려 고생고생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노. 그냥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편안히 즐겁게 가자.’ 하는 생각으로 기울게 되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테마소풍까지는 딱 5일의 시간이 남았다. 그 주 월요일 점심시간, 갈피를 잡았다가도 아이들을 보면 또 이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결국 나는 핑계 댈 구실을 찾거나 아니면 모종의 결단을 내리고자 회장, 부회장을 호출했다.
“어떻게 할래? 우리 반만 갈래? 아니면 그냥 다른 반이랑 갈까?”
“우리 반만 가요.”
헉, 내가 예상했던 답이 아니었다.
“음……. 우리 반만 가면 아이들이 재미없어 하지 않을까?”
“저희가 재미있게 할게요.”
역시나, 무턱대고 자신감부터 부리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특기다.
“진짜? 음……. 근데 그러면 어디로 가?”
“정동진이요!”
갈수록 태산이다.
“우리 반만 가서 애들이 말 안 들으면?”
늘 회장, 부회장에게 가장 큰 짐으로 다가오는 반 관리. 반 아이들 통제가 안 될 때 가장 먼저 책임을 묻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것은 어쩌면 나의 마지막 배팅이었다.
“잘 할 거예요.”
그렇다. 나중에 조금은 후회했던 대로, 바로 이 말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학창 시절의 ‘추억’이 훗날 아이들의 삶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가끔씩 떠오르고 그 그리움이 때로는 삶에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에게 원동력이 되어 결국 도전하기로 했다.
이어진 학급회의. 내 의도는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오이도였다. 그러나 늘 옵션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장소들을 제시하고 말았다. 오이도, 대성리, 정동진, 그리고 학교 전체가 다 함께 가는 서울숲.
“얘들아, 잘 생각해 봐. 오이도에 가서 바다도 보고(사실 갯벌만 실컷 보게 될 거지만), 칼국수도 먹고,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니? 자, 그럼 투표를 해 보자.”
이것이 웬걸. 투표 결과는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먼저 의견이 분분했다.
“쌤, 대성리에 가면 뭐 해요?”
“음, 자전거 타고 고기 먹고.”
이런 대답을 했던 건 내가 대학교 때 엠티를 가서 자전거를 신나게 탔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 그곳은……강촌이었다. ㅠㅠ
그 중에는 3학년 전체 학급이 가기로 한 서울숲을 그냥 가자는 아이들도 몇 있었다. 사실 교사가 무얼 추진하려면 여러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데, 아직 넓은 아량을 갖지 못한 초보 선생인 탓에 거기에 손을 드는 몇몇 아이들이 순간 괘씸해졌다. ‘아니, 큰 맘 먹고 좋은 추억을 만들자는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다들 가기 싫은가 보다. 그냥 서울숲 가자. 쌤은 서울숲 가는 것도 좋아.”
가끔 아이들이 더 어른스러울 때가 있는데, 민망스럽게도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 싶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가요, 가요! 대성리 가요 가!”
결국 목소리 큰 아이들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내가 예상했던 장소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테마소풍을 4일 남겨 놓고 우리의 소풍 장소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그때 왜 몰랐을까? 다시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우리의 테마소풍은 나의 무모한 열정+아이들의 순수함+하늘의 도움이었던 것을.
중간고사가 끝나고 조금은 여유(?)로운 2학기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바로 ‘집단상담’이다. 수준별 수업을 맡고 있는 나에게는 ‘집단상담’도 중요하기에 테마소풍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그나마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과감한 단축 수업으로 한 주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테마소풍 전날을 제외하고는 방과후 수업이 매일 있었고, 테마소풍 전날에는 새로 오시는 원어민 선생님을 마중 나가야 하는 일까지 겹치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테마소풍 장소를 결정하고 교무실에 내려와서 우리 반은 대성리로 따로 가겠다고 말씀드린 후에는 초짜의 무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학년 부장님 말씀,
“그래? 답사 가야 하는 것은 알죠?”
“네?”
“그럼. 40명이나 데려가는데 답사도 가야지. 물론 잘 아는 장소면 상관없지만.”
사실 대학교 때 갔고(이것도 나중에 나의 착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름 밖에 모르는 곳이다.
“그리고 계획서는 따로 주세요.”
“네? 계획서요?”
이것은 또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오늘까지 주세요.”
“네?!!”
집단상담과 방과후 수업이 끝나니 어느덧 여섯 시였다. 계획서를 기다리시는 부장님의 재촉에 다시금 흔들리는 내 얄팍한 마음. 역시나 무모했구나. 진작 추석 때 답사를 갔다 올 것을. 그러나 뒤늦게 후회하면 무엇하리.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해보는 데까지는 해볼 수밖에 없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는 옆 선생님의 격려(?)에 두 번째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일단은 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들어가 대성리 세 글자를 쳤다. 나의 기대 사항은 강 옆을 달리는 자전거 코스였다. 자전거를 타기 위해 대성리를 선택한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찾고 찾고 또 찾아도, 자전거 코스의 연관 검색어는 강.촌. 아뿔사! 그렇다. 내가 대학교 때 달렸던 곳은 강촌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테마소풍의 목적마저 흐려지고 있었다. 대성리역에 전화를 해보고, 도청에 전화해 봐도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은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저녁 9시. 일단은 자전거가 있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믿음으로 계획서를 내고 퇴근을 했다.
테마소풍 D-3일. 집단상담으로 인한 단축 수업과 5교시로 끝마칠 수 있는 화요일 수업 시간표, 그리고 그날 하루만 7시 40분에 시작하기로 한 방과후 수업. 이 모든 상황들의 도움으로 나는 조퇴를 결심하고 대성리에 직접 답사를 가기로 했다. 12시 40분. 종이 치자마자 쪼르르 달려 나가 청량리역으로 갔다. 7시간 안에 모든 것을 끝내고 다시 학교로 무사히 돌아와 수업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나는 열심히 달렸다. 모든 것이 급박하고 내가 원하는 장소도 정해지지 않은 채 그냥 내 몸을 무궁화호에 실었다. 무모한 열정이 불러일으킨 암담한 현실과는 다르게 9월의 따뜻한 햇살과 기차의 리드미컬한 덜컹거림이 오랜만에 나에게 휴가 같은 느낌까지 들면서 대성리역에 가까워질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한적한 대성리역. 일단 나는 대학생들이 엠티를 많이 간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얕은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평상도 있고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었지만, 농구대 밑의 자갈들도 마음에 걸리고 서늘한 가을볕에 물놀이는 썩 내키지 않았다. 여러 가지를 꼼꼼히 따져 보는 내 모습에 ‘어느새 내가 교사처럼 생각하는구나. 초짜를 벗어났어. 장하다.’ 하는 뿌듯한 마음까지 들고, 주인아저씨의 명함을 기분 좋게 받아들고 두 번째 장소를 찾았다.
두 번째 장소는 어젯밤 눈에 불을 켜고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 찾아낸 곳이었다. 국민관광지에 도착하니 밤에 본 사진과 비슷한 곳들이 나타났다. 넓은 강을 바라보고 있는 평상과 족구장 및 농구대. 그리고 만나 본 주인아저씨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북한강을 따라서 자전거를 탈 수 있고, 보트도 탈 수 있고,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고, 공놀이도 할 수 있는 최상의 곳이었다. 보통 10월에는 여러 학교에서 소풍을 많이 오는데, 우리가 정한 10월 1일은 다른 학교들 중간고사 기간이라 마침 예약이 없다는 것이었다. (속으로 ‘야호!’ 소리가 절로 났다.) 다른 학교와 달리 개학하자마자 중간고사를 일찍 보느라 힘들었던 걸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총예산을 짜고, 아이들과 협의 후 내일 아침에 바로 예약하겠다는 말씀을 드린 후 나는 다시 대성리역으로 돌아왔다. 흔히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득템’을 한 순간처럼 기쁘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이 정도면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다시 학교에 돌아가 수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어느새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D-3일은 무사히 끝나갔다.
테마소풍 D-2일. 아침 시간에 기차표값과 자전거 또는 보트 비용, 그리고 점심값을 정하느라 회의를 했다. 정육점을 하는 삼촌이 있는 아이의 도움으로 저렴한 가격에 고기를 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조별로 나누어 밥과 채소 당번을 정하느라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종례 시간에는 학부모님 동의를 받아낼 편지를 나누어 주었다.
“애들아, 이번에 시간이 없어서 이 편지와 소풍 경비는 반드시 내일까지 가지고 와야 해. 아니면 알지?”
“네에!”
늘 대답은 잘하는 우리 9반.
테마소풍 D-1일. 짧은 담임 생활 동안 이런 날을 몇 번이나 맞을 수 있을까. 사실 소풍 경비가 하루 만에 걷히리라고는 예상을 못했고, 그러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학부모님 동의서만은 100% 들어왔다. 지난 1년간 정말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가르쳐준 아이들이었다. 소풍 경비도 96% 들어왔고, 다음 날 비만 안 온다면 최고의 테마소풍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던 것 같다. 이제 마지막 작업의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바로 부담임 선생님의 섭외였다. 사실 며칠 전부터 계속 공을 들여왔던 터라 신임 체육 선생님 마음은 99% 우리 반으로 기울어진 터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도움을 안 준다.
“쌤, 그냥 우리 반만 가요. 체육 선생님 데려가지 마요.”
“맞아, 맞아. 혹시 우리 고기 먹으러 오시는 거 아니에요?”
우리 반만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기도 하고 고기 이야기에 피식 웃음이 났지만, ‘설마 너희 개구쟁이 38명을 나 혼자?’ 절대 안 될 말이었다.
“얘들아. 교장 선생님도 우리 반 소풍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셔. 어쩌면 고기 드시러 오실 거야.”
장난기가 발동했다.
“오오오!!! 말도 안 돼!!! 왜 다들 우리 고기를 탐내는 거야?”
역시나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혹시 오시면 맛있게 구워 드리자. 내일 청량리까지 몇 시지?”
“8시요!”
“그래. 절대로 늦지 마세요. 늦으면 그냥 두고 갈 수밖에 없어.”
이 말을 마치고 서둘러 원어민 교사를 맞으러 공항으로 나갔다. 사실 그 주는 단축 수업이 도움은 됐지만, 살인적인 스케줄로 이미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약간은 기대를 해주는 아이들 표정이 나에게는 로열젤리보다 더 효과 있는 피로회복제였다.
드디어 테마소풍 당일!
원어민 교사의 무거운 짐을 같이 옮기느라 힘들었던지 그만 늦잠을 잤다. ‘기차가 9시 반차니깐 8시 반 정도면 다 모이겠지?’ 사실 8시 반까지 오라고 하려다가 혹시라도 늦게 오는 아이들이 절대로 생기면 안 되기에 출석체크 시간을 8시로 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지각생들이 생길 것이라는 나의 몹쓸 불신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소풍 동의서가 하루 만에 다 걷혔던 사실을 잠깐 잊고 있었다.
7시 10분부터 울리는 전화벨.
“쌤, 어디세요?”
“쌤, 청량리역에 도착했는데 광장이 안 보여요!”
헉, 평상시에는 그렇게도 열심히 지각하던 녀석들이 벌써 먼저 가 있었던 것이다.
“어? 어. 쌤 지금 가고 있지. 광장에서 기다려.”
여유로웠던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부리나케 달려 나가 버스를 탔는데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
“쌤, 어디세요?”
“응? 어……. 곧 도착.”
어지간히 기대가 되기는 했나 보다. 담임인 내가 지각을 하게 생겼다. 청량리역에 있는 광장으로 달려가니 이미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며 뛰어놀고 있었다. 그때 나타난 회장. 조용히 24분이라고 적혀 있는 핸드폰을 보여 준다.
“이게 모야?”
“쌤 지각 시간 애들이 체크하래요. 저희는 전원 8시 전에 왔습니다.”
늘 지각 체크를 했던 회장.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늦었다고 난리치는 아이들을 앉히고 출석을 부른 뒤, 늦은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음……. 쌤이 선글라스를 찾다가 살짝 늦었네.”
“이런, 우리가 선글라스에 밀리다니.”
전원 8시 전에 왔다는 말이 왜 그렇게 감동이던지.
“추운 곳에서 기다렸으니 쌤이 핫 초코 쏠게. 자, 일단 여기서 아침 먹으면서 기다리자.”
기차 안에서 오랜만에 게임도 하고, 사진도 찍고(고래고래 소리 질러야 겨우 찍는 단체 사진), 그리고 이어진 자전거 타기, 보트 타기, 고기 먹기, 단체 게임…….
대성리 테마소풍하면 즐거운 영상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그런데도 소풍 이상으로 험난한 준비 여정이 더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할 수 없고 쉬울 수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기도 했다. 힘들더라도, 교사는 그 맛이다. 그 맛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맛인 것 같다. 초임일 때는 뭘 모르고 도전한다고 한다. 그래, 조금은 무모했던 부분들도 있다. 선배 선생님들께서 우려하신 부분들까지 고려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 맛을 미처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던 나의 초창기 교직 생활에 한 획을 그어준 그 시간들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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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지선
교육학과 졸업 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으로 다시 공부해 현재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험난하고 고달픈 일상이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을 느끼는 새내기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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