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장 삼위일체를 증언하다
30.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세 명의 신이 있으면 그들은 신성하다. 둘이나 하나가 있으면 내가 그 하나와 함께 있으리라."
도덕적 딜레마의 문제 한 문제가 있습니다.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했습니다. 의사는 난치병에 걸린 환자를 위해 그 신약을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약회사 사장은 아직 FDA 인준을 못 받았기에 통과되고 나면 제공할 수 있다고 답변합니다. 의사는 ‘사람 구하는 게 중요하지, FDA 통과가 중요하냐?’라면 억지를 부립니다. 제조사 사장은 만약 신약이 통과되면 수천명을 구할 건데 고작 한 명 때문에 심사를 망칠 수 없다고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제조사 사장의 입장에 공감하며 신약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그 환자가 당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의사의 입장에서 그 신약을 받아서 환자를 치료했는데 사형수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도 당신의 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람입니다. 이 도덕적 딜레마는 우리의 심층적인 도덕적 가치 기준을 인식하게 해줍니다.
MBTI 성격유형에서 감정형은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감정에 치우쳐 결정을 내립니다. 특히 외항과 내향의 차이가 있는데 외향형은 자신의 감정보다 사회의 정서에 의존하고, 내향형은 사회적인 정서보다는 개인의 내적 감정 반응에 따라 결정합니다. 외향형은 자신보다 사회가 분노한다면 사형을 내릴 것입니다. 내향형은 사형수가 가족이라면 살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의 결정은 사회나 개인의 감정과 정서에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사고형은 반대입니다. 외향형은 사회의 사고의 가치기준 즉 감정을 배제한 사회의 도덕적 가치 기준에 따를 것입니다. 내향적 사고형은 사회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객관적 도덕적 기준을 따를 것입니다. 그들의 기본 바탕에는 객관적 사실과 감정의 배제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균형과 안정의 기준을 도덕적 가치로 봅니다. 만약 사형수라도 인간존중의 높은 가치척도를 기준으로 한 내향형은 신약을 사용해서 살립니다.
하지만 내향 감정형은 자신의 가족을 해친 사람이 사형수라면 거기에 사회적 정서보다 개인의 감정이 개입됩니다. 결국 사형수는 신약을 제공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도덕을 판단하고 연구하는 분야인 윤리학은 지지 토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제껏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무염 수태’ 를 단지 神性의 강조구문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간과한 도덕적 판단 기준의 베이스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30.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세 명의 신이 있으면 그들은 신성하다. 둘이나 하나가 있으면 내가 그 하나와 함께 있으리라."
이 경구는 도덕적 판단과 윤리적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 전으로 돌아가 예수님의 처형 사건을 분석해 보겠습니다.성전 파괴 전 예루살렘성은 로마의 내정 간섭과 헤롯대왕의 아들 안티파스가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여 유대율법을 위반했습니다.사회의 지도자인 헤롯 안티파스가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상황은 도덕의 부재이며 유대백성들에게 정치적 불신을 주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는 기원전 1세기와 기원후 1세기에 걸쳐 살았던 유대의 테트라크(tetrarch,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 지역을 다스리는 지배자)입니다. 그는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의 아들 중 한 명으로, 헤롯 대왕의 사망 후 유산을 나눠 받아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헤롯 안티파스의 치적과 과실은 성경적 기록과 역사적 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습니다.
치적
티베리아스 건설: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 호수의 서쪽 가장자리에 티베리아스라는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이 도시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으며, 후에 유대교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티베리아스는 주요 상업 및 문화 중심지로 번영했습니다.
과실
세례 요한의 처형: 헤롯 안티파스는 자신의 형제 필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Herodias)와 결혼하는 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이 결혼은 유대 법에 위배되었으며,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이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고, 나중에 헤로디아의 딸의 요청에 따라 세례 요한을 처형했습니다. 이 사건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헤롯 안티파스의 명성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정치적 실패: 헤롯 안티파스의 통치는 여러 정치적 실패로 얼룩졌습니다. 그는 로마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로마 황제 칼리굴라에 의해 파면되었고, 기원후 39년에 부인 헤로디아와 함께 갈리아로 추방되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인물로도 언급됩니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헤롯 안티파스의 통치 기간 중에 활동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헤롯 안티파스 앞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에게 아무런 죄를 찾지 못하고 다시 본디오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과 처형 과정은 신약성경에서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반영합니다. 헤롯 안티파스와 본디오 빌라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살펴보면, 당시의 정세와 각 지도자의 입장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의 정치적 고려: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와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을 처형하는 것이 자신의 지지 기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많은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갈릴리와 유대 지역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를 처형하는 것은 헤롯의 지배에 대한 반감을 증가시킬 수 있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의 결정: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 지역의 로마 총독으로서, 지역의 안정과 로마 제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과의 긴장을 관리하는 것이 그의 주요 임무 중 하나였습니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빌라도는 예수에 대한 혐의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제사장들과 군중의 압력에 굴복하여 예수의 처형을 결정합니다. 빌라도가 손을 씻는 행위는 자신이 예수의 죽음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당시 유대 지역에서 로마 제국의 통치와 유대인 사이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종교적, 정치적 긴장이 어떻게 예수의 운명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줍니다. 헤롯과 빌라도 모두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권력 유지를 위한 결정을 내렸으며, 이는 당시 사회의 불안정성과 갈등을 반영하는 사례입니다.
세 명의 신이 있으면 그들은 신성하다.
전통적으로 도덕적 기반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면서 자신의 도덕적 근거를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기반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그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을 준 모세도 인간이었습니다.이집트인으로 자라고 살인까지 저지른 양치기 목동인 모세을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이지 그 분의 아들이라는 지위는 아닙니다.이것은 전통적인 모세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며, 이단에 해당합니다.
"이단"이라는 용어의 어원은 그리스어 단어 "αἵρεσις"(hairesis)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원래 선택, 취향 또는 학파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 문헌에서는 특정한 신앙적 또는 철학적 견해를 선택하는 행위나 그러한 견해를 가진 집단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αἵρεσις"(hairesis)의 의미는 점차 변화하여, 주류 또는 정통으로부터 벗어난 신념체계나 그런 신념을 따르는 집단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의미로 발전하였습니다. 기독교 맥락에서는 "이단"이라는 용어가 정통 교리에서 벗어난, 비판적으로 간주되는 신앙이나 교리를 가진 집단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이단"은 주로 정통 교리나 신앙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난 견해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을 비난하거나 지칭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로,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용어는 종교적 맥락에서 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에서도 자신들의 주장이나 신념이 주류 사회나 문화와 다를 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들어난 하나님의 인간성과 신성의 의미 예수님의 등장은 유대교 종교생활에 전혀 새로운 개념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성부)과 그의 아들(성자)입니다. 이것은 유일신에서 다른 신인 하나님의 아들이란 개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분열되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즉각 반발하였고 바리새인들은 아직 어리둥절한 상태였습니다. 비유하자면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중도성향의 당이 탄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이란 개념과 하나님의 아들이란 개념의 갈등이 아닙니다. 그 기원은 이미 바빌론 유수 후 만들어진 창세기에서 나타납니다. 창세기는 표면적으로는 연속적인 내용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경의 창조 이야기가 여러 전통과 출처에서 온 것을 편집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경 학자들은 창세기, 특히 초기 장들이 여러 서로 다른 전승과 문학적 전통을 결합하여 작성되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분석은 주로 문서 가설(Documentary Hypothesis)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문서 가설에 따르면, 창세기를 포함한 토라(모세오경)는 최소 네 가지 주요 출처에서 온 문서들의 편집 결과라고 합니다. 이 가설은 J(야훼), E(엘로힘), D(신명기), P(사제) 출처로 알려져 있으며, 각각 다른 시기와 전통, 관점을 반영합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3절까지의 창조 이야기는 주로 'P' (사제적 전통) 출처에서 온 것으로 보이며, 이는 구조적, 문체적 특성과 신학적 관심사를 통해 추론됩니다. P 출처는 하나님의 계획성과 질서 있는 창조 과정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반면, 창세기 2장 4절부터 시작하는 또 다른 창조 이야기는 'J' (야훼) 출처에 속한다고 여겨집니다. 이 부분은 더 인간적이고 친밀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묘사하며, 창조 과정도 다르게 접근합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 1절의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과 2절의 성령은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하지만 같은 'P' 출처에서 온 것입니다. 전체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다양한 전통과 출처를 통합한 결과물입니다. 이러한 통합 과정은 성경의 다양한 신학적 관점과 전통을 포괄하려는 편집자의 의도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성경의 처음에 나오는 창세기에서 알 수 있듯이 P(사제전승)에서는 천지를 창조하시는 모습에서 인간과는 거리가 있는 성스러운 靈(영)상징 한다면, J(야훼전승)에서의 하나님은 보다 인간적이고 인간과 대화하는 모습의 하나님을 그립니다.
결국 인간적인 하나님의 모습은 신약에서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으로 형상화됩니다.
세 명의 신이 있으면 그들은 신성하다
하나님의 인간화(성육신)구약에서 이미 형성된 하나님의 탈 인간적인 모습과 인간적인 모습 그리고 성령의 인격적인 특성은 이미 세사람의 상징성을 나타냅니다.
‘인간을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대로 만들자’
이 구절은 창세기 1장 26절에 나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인간 창조를 결정하시며 사용하신 말씀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이 구절은 기독교 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인간의 독특한 지위와 존엄성, 그리고 창조주와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우리"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복수형 사용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낳았으며, 이 중 하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체적 행동을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둘이나 하나가 있으면 내가 그 하나와 함께 있으리라.
유대교 율법 ‘할라카’에서는 공동체적 증인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증인의 수도 규정되어 있는데 2인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유대공동체안에서 율법의 인정을 받습니다.이 구절에서는 증인의 성립요건인 사람의 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둘이나’
이 구절에서는 증인의 수를 채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 될 게 없습니다.하지만 문제는 다음 구절입니다.
하나가 있으면 내가 그 하나와 함께 있으리라.
이 구절은 율법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한 명이 증인인 경우를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내가’라는 이가 증인으로 나선다고 합니다. 이 ‘내가’가 누구일까요? 먼저 예수님 일 경우 앞에서 ‘예수님께서’라고 말했기에 ‘예수님께서 함께 있으리라’와 ‘내가 함께 있으리라’일 경우 기록자는 후자의 경우 숨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증언하시는지, 도마나 또 다른 사람 기록자가 말하는지 명확치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삼위일체의 가르침을 말했다고는 보기 어려움으로 당시 여러 신학의 혼란속에서 도마공동체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구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과 비슷한 내용은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 구절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 문장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해석됩니다.
여기서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은 예수님의 이름을 끌어들이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함께 모여 예배하거나 교제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이 문구는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모이는 믿는 자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의 모임에 참여하심을 약속하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존재가 믿음을 통한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있는 것을 강조하는 문장입니다.
도마복음의 내용과 마태복음의 차이는 바리사이파와 사두개이파의 대립과도 같습니다. 도마복음에서는 이 구절이 삼위일체설의 증명에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강조한다면, 마태복음에서는 공동체의 예배 장소에 대한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강조함으로써, 두 복음서는 그 해석을 달리합니다. 특히 도마복음서는 ‘경전연구’ 에 더 강조를 두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도덕적 판단기준은 바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앞에서 우리는 신약을 둘러싼 제약회사와 의사간의 갈등의 원인을 MBTI성격유형의 개인의 성격 특질에서 찾아봤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도덕적 판단 기준을 세웁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도덕적 판단의 기준은 인간의 성격 특질이 아니라 바로 구약시대부터 내려온 ‘하나님은 누구이신 가?’라는 의문에 대한 성경의 답인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하나님과 그 아들이신 성자, 그리고 하나님의 인격을 가지신 성령님의 임재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약시대부터 내려 온 ‘엘로힘’과 ‘야훼’의 전승이며 하나님이 육신의 옷을 입으신 성육신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