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태(孕胎)와 출산(出産)에 대한 예화 모음
1.생명의 신비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양수에 감싸여 있는데 그것은 바깥에서 충격이 와도 물이 출렁출렁하기 때문에 태아를 보호하고 또 아이가 계속 성장을 하면서 운동을 해야 하는데 물속에 있어야 운동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 후 열달이 되면 양수가 터져서 아기가 나와야 할 길을 깨끗하게 청소해 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배곱을 통해서 먹고 배꼽을 통해서 배설하고 배곱을 통해서 숨을 쉬던 수중 동물이 어머니 배에서 나오는 순간에 대 수술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서 입으로 먹고 입으로 숨쉬고 밑으로 배설하는 지상 동물로 순시간에 변하는 것인가?
한 순간에 어떻게 해서 수중 동물이 공중에서 숨을 쉬는 지상 동물로 바뀌는지 그것은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138:13에서 이렇게 노래했나보다
[주게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2.부부 산고 동등권
변화하는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연구해 온 미국의 제임스 레바인 교수는, 대부분 미국 아버지들은 부인이 아기를 낳을 때 분만실에 들어가서 산고(産苦)를 더불어 한다는 조사결과를 밝히고 있다. 30 년 전만 해도 사나이가 분만실에 들어간다는 것은 엄두도 못 냈던 일인데, 20 년 전에 10 % 안팎이 드나들었고 90 년에 들어서는 90 %로 급증하고 있다. 산고 동등권(産苦 同等權)의 놀라운 신장이 아닐 수 없다.
조사된 자료는 없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분만실에 들어가 진통하는 아내의 손목을 꼭 쥐고 안도시키는 남편이 그러하지 않은 남편보다 많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부부가 산고를 더불어 나누는 것을 남녀평등이라는 현대 사상의 과실(果實)로 보기 쉬운데, 이미 옛날부터 쿠바드(Couvade)라 하여 동서 할것없이 널리 습속화돼 있었던 것이다.
옛날 우리 상민들은 아내가 진통한다는 전갈을 받으면 허리끈 바짝 졸라매고 달려가 아내의 두 팔을 등 뒤에서 껴안고는 두 다리를 감아 버티고서 힘을 쓰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안팎이 힘을 합쳐 낳아야 자랄 때 병치레를 하지 않을 뿐더러 돌림병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평안도 박천(博川)에는 `지붕지랄'이라는 쿠바드 습속이 채집되고 있다. 아내가 진통을 시작하면, 남편을 그 산실의 지붕 위에 올라가서 용마루를 붙들고 괴성 비명(怪聲悲鳴)을 지르며 아기 울음 소리가 날 때까지 나뒹굴었던 것이다.
산고를 나누는 색다른 습속으로, 남편의 상투를 쥐고 힘을 쓰기도 하였다. 우리 전승 민요에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습세라 우습세라 젊은 각시 아 낳는다고/제 남편 상투 쥐고 울콩불콩 낳는다네/마루 위에 앉아서는 상투 꽁지 길게 매고/문창구멍 한 구멍에 들이들이 밀었더니/각시각시 상투 쥐고 이잉이잉 힘쓰면서/애를 쓰며 당기더니 상투 꽁지 쑥 빠지자/당콩 같은 빨간 아기 말똥말똥 빠져나네.' 상투가 시원찮은 남편은 쿠바드용 상투를 빌리러 다니기도 했던 것 같다.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상투상투 빌려 주소/아 낳으면 천년 만년 잊지 않고 그 은공 갚겠다고/앞길 바빠 뒷길 바빠.'
붙들고 힘쓸 것 많은데 하필이면 문구멍에 밀어넣은 남편 상투를 쥐고 힘을 쓴다는 것은 산고를 나누려는 쿠바드의 한국적 존재 방식이랄 것이다.
미국 서해안의 인디언들은 아내가 진통하고 있는 동안 인근 바닷가에 가서 익사하는 시늉으로 고통을 공감하고, 인도에서는 산실에 들어가 산모와 더불어 나뒹굴고 비명도 더불어 지름으로써 공감을 한다. 유럽 피레네 산록에서는 한 달 동안 산모와 같이 누워 있는 것으로 산고를 나누기도 한다.
이처럼 고통을 둔 남녀동등권이 보장되었던 원시사회였으며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새로운 쿠바드 현상은 남녀 불평등이라는 문명의 죄업에 대한 레지스탕스랄 것이다.
3.유방은행(乳房銀行)
동물원의 원숭이가 갓낳은 새끼를 안을 때 반드시 왼쪽 가슴에 머리가 닿도록 안는다 한다. 뉴욕 센트럴 파크의 동물원에서 이것을 관찰한 코넬 대학의 소크 박사는 42회의 관찰 케이스 가운데서 40번이나 왼쪽으로 안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산부인과 병원의 분만실에서 산모 몰래 관찰한 결과는 83퍼센트가 갓난아이를 왼쪽으로 안고 있었다 한다. 소크 박사는 또 미술관에 전시된 모자(母子)를 테마로 한 역대 회화나 조각 4백 66점을 조사하고는 3백 73점 - 80퍼센트가 왼쪽으로 안고 있음을 알아냈다.
'운낭자상(雲娘子像)'을 비롯한 우리 나라 모자상들도 대체로 왼쪽으로 아이를 안고 있다. 우리 옛 어머니들 왼쪽 젓을 오른쪽 젖보다 대체로 커져 있어 짝젖이 상식이 돼 있었던 것도 아기를 왼쪽으로 안고 왼쪽 젖을 주로 먹였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왼쪽으로 아기를 안는다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이다.
태아(胎兒)는 자궁 속에서 어머니의 대동맥을 타고 양수(羊水)에 전도되는 심장의 맥박 소리를 듣고 자란다. 그래서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어머니의 심장 소리 이외의 것은 불협화음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본능적으로 왼쪽 가슴에 유아(乳兒)을 안고 또 본능적으로 왼쪽 젖을 먹이게 되는 것은 바로 왼쪽 가슴에 심장이 자리잡고 있어 태반 속에서 듣던 리듬을 지속시켜줌으로써 양수시대의 고향에 돌아간 듯한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모체에서 격리, 이 리듬의 연속을 단절시켜 기르면 자주 울거나 잠을 못 이루거나 하는 것으로 그치질 않고 자율신경 발달에 결정적인 결함을 준다고 한다. 자율신경이란 자신의 의사에 의해 조절되는 신경이 아니라 심장이나 위장, 혈관, 근육 등에 널리 분포돼 있는 신경계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생체 유지를 위해 자율적으로 활동해 주는 신경계다.
이것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약체 체질이 되고 말을 더디 익히며, 특히 운동 신경이 크게 둔화된다고 한다. 엄마의 왼쪽 젖을 먹고 자라지 않으면 올림픽 금메달 선수는 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13세기에 남 유럽을 지배했던 프레드릭 2세는 자기 혈손들을 기를 때 젖을 먹이지도 또 만지지도 못하게 격리시켜 기르게 했다. 혈통 따라 흘러 내려온 '신성(神聖)'이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그렇게 기른 아이는 모조리 죽고 있다. 모자(母子)간의 피부 접촉이 있고 없고는 자율 신경 둔화 뿐 아니라 심하면 생존 문제에 까지 직결되고 있다.
여자의 유방은 그렇게 값진 것인데 현대의 어머니들은 모유(母乳)를 기피, 모자간의 피부 접촉을 단절시키고 있다.
서울에 모유를 보관했다가 신생아에게 먹이는 모유은행(母乳銀行)이 생겼다는데 피부 접촉에 굶주려 약체화하는 그 많은 아이들을 위해 유방은행 같은 것도 생겼으면 한다.
4.태교
토마스 만의 `부텐브로그가의 사람들'에 보면 임신중의 독일 여인이 뱃속의 아이를 위해 바로크 음악을 듣는 대목이 나온다. 음악을 듣고 자란 태아는 태어나서 심성이 곱고 믿음이 깊어진다고 알았다.
지금도 구미(歐美)의 임신부들은 음악 태교(音樂 胎敎)를 많이 지키고 있다 한다. 이를테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음악을 계속 들으면 낙천적인 아이가 되고,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음악을 계속 들으면 신중한 아이가 된다던가-.
임신부가 지켜야 할 태교(胎敎)와 하지 말아야 할 금기(禁忌)는 그것이 심하고 덜 심하고의 차이는 있을망정 세상에 공통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임신부는 파장 무늬가 나 있는 쿠풀이라는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 태아의 심성이 곧지 않고 비뚤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임신부의 남편이 임신중 살생(殺生)을 하면 태아에게 그만한 상처를 낸다고도 알았다.
아랍의 임신부들은 낙타 젖을 먹는 관습이 있는데, 태어날 아이가 후에 대상(隊商)이 되어 몇만 리 사막길을 여행하게 됐을 때 그로서 인내심을 길러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임부(妊婦)로 하여금 개 밥을 주게 하는 관습이 있다던데 개처럼 다산(多産)하라는 염원이라기도 하고, 개처럼 충직하라는 태교로 해석되고 있기도 하다.
사내 아이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겼던 우리 나라였던지라, 임신 금기와 태교가 이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가 우리 나라가 아닌가 싶다. 바꿔 말하면 이 세상에서 한국의 어머니 처럼 철저하게 태아(胎兒)의 노예가 됐던 어떤 어머니도 없었을 것이다. 옛 아이 밴 어머니들이 지켜야 했던 `칠태도(七胎道)'만 보아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높은 마루나 걸상 위에 올라서도 안 되고, 험한 길이나 냇물을 건너서도 안 되고, 담을 넘거나 개구멍을 나다니지 말아야 한다(제1도). 임부가 말이 많거나 웃거나 놀라거나 겁을 먹거나 울어서도 안된다(제2도). 잠잘 때 가로 눕지 말고 서 있을 때 갸우뚱하지 말며, 부정한 것을 보지 말고, 음탕한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제3도). 닭살이 생기는 닭고기, 팔자 걸음 걷는 오리의 고기, 뼈가 물러지는 오징어 등 태아의 체질에 주술적으로 영향을 주는 음식은 먹어서는 안 된다(제4도). 성현의 글을 읽고 아름다운 시를 읊는다(제5도). 기품이 높은 거북이, 봉황, 주옥(珠玉), 명향(名香) 같은 노리개를 몸에 지니고 가까이 한다(제6도). 음욕을 비롯, 모든 욕심이나 투정이나 원한을 품어서는 안 된다(제7도).
이 가운데는 미신도 있고 또 과학적인 것도 없지 않으나 이 옛 우리 전통 사회의 임신 금기(禁忌)나 태교가 오늘날에도 부분적으로나마 거의 지켜지고 있다는 표본 조사 결과가 보도되고 있다. 현대화(現代化)의 바로 표면(表面)에 끈적끈적 붙어 내린 전통(傳統)의 집요함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5.함께 힘쓰는 남편
우리 옛 여인들 아이를 낳을 때 남편의 상투를 움켜쥐고 힘을 쓰는 습속이 있었다. 진통이 시작되면 남편은 산실 문밖에 버티고 앉아 창호지를 뚫고 상투를 밀어넣는다. `우습세라 우습세라 젊은 각시 아 날 때는 제 남편 상투 쥐고 잉잉 울콩불콩 쑥 빠진다네'(關東民謠). 경우에 따라 상투가 뽑히기까지 했다 하니 두피(頭皮)를 벗겨지는 듯한 아픔이었을 것이다. 옛날 서북(西北)의 박천 지방에서는 산모의 진통이 시작되면 남편은 지붕에 기어 올라가 진통을 더불어 하는 `지붕 지랄'이라는 습속도 있었다.
아이는 부부간의 공동 작품인데 아이 낳을 때 아내만이 진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불평등하다는 남녀평등 사상이 원시 시대부터 있었던 것 같다. 이 진통 공감의 습속을 쿠바드(Couvade)라 하는데, 지금 미국에서는 여권 향상의 새 풍조로 현대화 된 쿠바드가 부활되고 있다 한다.
6월 3일자 미국의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85년형(年型) 개량 남성상(改良 男性像)을 커버 스토리로 특집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미국 남편의 다섯 명 가운데 네 명 꼴이 산실에 들어가 아이 낳는 데 힘을 더불어 써주고 있다고 했다. 이 사실은 미국의 남성상(男性像)의 변모에 굉장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마초(macho)라는 말이 있다. 멕시코계 스페인말로 수(雄)컷이란 뜻으로, 남성 우위론(男性 優位論)을 뜻한다. 이것은 과격한 남성 우위론자인 작가 노만 메이러가 쓰기 시작한 말인데, 이 특집에서 마초는 갈기갈기 찢어진 군기라고 결론 짓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남성 우위 사회였다. 한국의 가계(家計)는 주부가 주로 쥐고 있지만 70년대만 해도 미국의 가계는 남편이 쥐고 아내는 필요할 때 얻어 쓰는 게 고작이었다. 한데 지금은 부부 공동 명의로 은행 구좌를 갖는 가계 혁명이 보편화 되고 있다 한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와이프 비팅이 사회 문제화 됐지만, 이제 허스밴 비팅이 역세를 몰아 중화시키고 있다고도 한다. 수입(收入)-지출(支出)을 비롯, 요리(料理)-육아(育兒)를 부부가 똑같이 분담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게 되고, 마이클 잭슨이나 보이 조지같은 중성 남자(中性 男子)가 우상화 되고, 귀걸이 하고 다니는 사나이가 부쩍 늘고 있는 것도 그것이다.
미국 사회가 지향(志向)하는 85년형(年型) 개량 남성(改良男性)이란 앞치마 입고 기저귀 갈이는 하지만 중성화 되지 않고 남성적이고 과단성을 지닌 그런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남성인 것이다. 사상(史上) 남자 살기 가장 어려운 세상이 돼가는 것 같다.
7.딸만 낳는 여인촌
중국 복건성(福健省)의 가오양이라는 마을에서는 지난 40 년 동안 태어난 1 백 47 명의 아기 가운데 1 백 36 명이 딸이요, 아들은 1 퍼센트도 못되는 0.7 퍼센드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15 년 전부터는 사내아이는 하나도 낳지 못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학자들은 그러할만한 별다른 과학적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전설적인 여인국은 많지만 실증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후한서(後漢書)'에 보면 동해안 함경도 지방에 있었던 고대 동옥저(東沃沮), 그 동쪽 바다 가운데 한 섬이 있는데 사내라고는 하나도 없이 여자만 산다 했다. 사내 없이도 아이를 밸수 있는데 , 섬 가운데 신정(神井)이 있어 그 신정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애를 밴다고도 적고 있다. 17 세기 중엽 한국에 표류했던 화란 선원 에이보켄의 견문기에도 조선에는 여인들만 사는 지방이 있는데, 여자가 욕정을 일으키면 가랑이를 쳐들고 남풍(南風)을 쐬기만 하면 아이를 밴다 했다.
신라 임금 석탈해(石脫解)는 적녀국(積女國)이라는 여인국에서 사내아이라 하여 상자에 넣어 바다에 버려진 기아(棄兒)다.
중국 문헌에도 아마(亞碼)란 여인국, 부상국(扶桑國), 타향곡, 여애국등 전설적인 여인국이 많다. 무정수정(無情受精)으로 아이를 배거나 어부를 잡아다가 수정을 하고 죽여버린다. 그리고 사내아이를 낳으면 없애 버리는 것으로 여인국을 유지하는 것으로 돼 있다.
희랍 신화에 나오는 아마존 여인국말고, 유럽에도 여인국 전설은 많다. 10 세기에 키예프를 지배한 것은 노르웨이의 바이킹 '붉은 처녀'로 불리는 여인족의 여왕이며, 아일랜드 최초의 원주민도 여인족이었다.
전설적인 여인국 말고도 여자를 압도적으로 많이 낳는 지역이 없지 않다. 이를테면 일본 동남해상에 있는 하치죠 섬(八丈島)은 제국시대 때만해도 인구가 3 백 명 가까운데 거의가 여자고, 사내는 서너명에 불과했다. 여자만을 낳는 유전질에 영향을 끼치는 어떤 지정학적 이유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내리쬐는 달의 정기(精氣)에 주파(周波)가 다른 것이 원인일 수 있다고 보기도 하고 , 그 지역의 특정 광물성이 용해된 식수가 오랜 시간을 두고 그 지역 사람들의 DNA에 돌연변이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조상들은 식수에도 암물, 수물을 가려 남자는 수물을 가려 마셔야 사내아이를 낳는다는 속전(俗傳)이 있었다. 물에 성(性)을 가리는 기준이 뭣인가는 알 길이 없으나, 물에 용해된 광물성이 성을 좌우한다는 체험방이 우리 조상들 사이에 전승돼 내려왔다는 것만은 알 수 가 있다.
중국 복건성 여인촌의 비밀이 식수에 있음이 판명된다면 암. 수물을 가려 마셨던 우리 조상의 슬기가 새삼스러워질 텐데 말이다.
8.사내아들 광(狂)
이산가족을 찾는 종이 피켓을 훑어보고 있으면 이산과는 관계없는 차원에서 따끔하게 서글퍼 오름을 이따금 느끼곤 한다. 찾는 할머니나 어머니, 고모, 누님의 이름에 서분(西粉), 필녀(畢女), 후남(后男), 막음이(莫音伊) 같은 딸을 낳고서 섭섭한 마음을 나타낸 이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분은 또 딸을 낳아 서운하다는 뜻이요, 필녀는 이로써 딸은 끝마무리라는 원망 표시요, 후남은 다음 차례는 아들이라는 소원을 나타낸 아명이다.
김새치라는 할머니 이름도 나오던데, 여아명으로 새치는 네번째 딸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양반 사회에서는 첫째 딸을 속칭할 때 하나쯤은 괜찮다는 자위로 `일가(一可)', 둘째 딸은 혹시 다음 번에는 아들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이혹(二或)', 셋째 딸은 자조의 뜻으로 `삼소(三笑)', 네째까지도 딸이면 남 보기 부끄럽다 하여 `사치(四恥)', 곧 새치로 속칭하였으며 이 보통명사를 그대로 아명으로 삼기도 했던 것이다. 원치 않는데 세상에 태어나 이름마저 서운하다느니 새치니 하여 소외받고 살다가 중년에 이산까지 하다니, 그 기구한 한국적인 생에 눈시울이 시큼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개화기 때 한국에 와 살았던 서양 사람들이 사내아들광(Boymania)이라 하여 한국인의 남아존중(男兒尊重)이 광적임을 갈파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런 `보이매니어'의 가치관일랑 이미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사라져간 옛날 이야기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데 한국인구보건연구원에서 최근 조사한 것을 보니 두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 두 사람 중 한 사람꼴로 아들을 낳을 때까지 `삼소'가 되건 `사치'가 되건 계속 출산하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보이고 있으니, 뿌리깊은 보이매니어란 고목은 독야청청하기만 하다.
씨의 보존을 위한 혈족 상속 체계, 재산의 보존을 위한 가산(家産) 상속 체계, 제사(祭祀)를 챙겨줄 제사 상속 체계의 계승자로서 아들의 위치는 한국인의 가치관 가운데 확고부동하다.
같은 남아존중의 전통을 갖고 있는 일본에서는 아들딸 기르는 재미가 다르기에 아들도 갖고 싶다는 남아 선호이지, 우리 한국처럼 죽은 후까지를 계산한 남아 선호는 아니라 한다. 가치관은 하루 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닐진대, 오늘로 인구 4천만 고개를 넘는 우리로서 마냥 우울하기만 하다.
9.전통 성별 감식법
이 세상에서 한국 사람처럼 사내아이를 선호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 선호가 얼마나 혹심했는가를 민속(民俗)으로 증명해보고자 한다.
이미 혼담이 오갈 때부터 신부는 아들을 잘 낳을 상(相)인가, 못 낳을 상인가로 선택의 시련을 받는다. '삼십무자상(三十無子相)'이라 하여 아들 못 낳을 30가지 상이 기피당했다.
한데 기피당했던 이 무자상이 어쩌면 그렇게도 요즈음 여인들이 애써 추구하는 미(美)의 조건과 꼭 맞아떨어지는지 흥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테면 가는 허리는 아이 들어설 스페이스가 좁다고 생각했음인지 무자상이다. 애써 염색까지 하는 금발도 노랑머리 또는 붉은 머리라 하여 무자상이고, 찡그리면 미간(眉間)에 생기는 차밍 마크, 곧 도장무늬도 무자상이다. 이렇게 선택받아 시집을 가서도 아들을 낳는 택일에 고등수학적인 제약을 받아야 했다.
이를테면 어머니 나이가 홀수일 때 홀수의 달에 씨를 받으면 아들을 낳고, 어머니 나이가 짝수일 때 짝수의 달에 씨를차받으면 딸이 된다든가-.
법도 있는 집안에서는 시집가기 전에 귀숙일(貴宿日) 셈하는 법을 구구셈 외듯이 외어 보냈던 것이다. 귀숙일이란 그날 씨를 받으면 아들이 된다는 날이다. 이를테면 정월달의 귀숙일은 "아육구장(1, 6, 9, 10), 아둘새(11, 12, 14), 아사구(21, 24, 29)..."였다. 이렇게 일년 열두 달 동안의 귀숙일을 줄줄이 외고 또 실천을 해야 했던 것이다. 또 자궁(子宮)에는 좌우로 두 구멍이 나 있는데, 좌혈(左穴)로 정(精)이 들어가면 아들이 되고 우혈(右穴)로 들어가면 딸이 된다 하여 한국여인은 일상적으로 왼쪽을 아래로 하여 눕고 자는 버릇을 들이게끔도 강요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수태하고서도 뱃속에 든 아이가 아들이기를 바라는 강력한 원망이 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이라는 야릇한 민속까지 있게 했다. 수탉의 깃 세 개를 뽑아 임부(妊婦)가 깔고 자는 요 속에 몰래 넣어두면 뱃속의 아이가 아들로 변하고, 활줄을 복부에 감고 석 달만 지내면 아들로 변하며, 원추리 열매를 왼쪽 허리춤에 차고 다니면 아들로 변한다든가....
이런 풍토인지라 태아의 성별(性別)감식법 또한 발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걸어가는 임부(妊婦)를 뒤에서 불러보아 왼쪽으로 돌아보면 아들로,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딸로 감식했다. 양태 중 왼쪽 유방에 딴딴한 응어리가 생기면 아들이요, 오른쪽 응어리가 생기면 딸이다. 아이 밴 지 석 달 만에 왼쪽 배가 아프면 아들이요, 오른쪽 배가 아프면 딸이다. 또한 임부의 왼손이 부어오르면 아들이요, 오른손이 부어오르면 딸이다. 좌남우녀(左男右女) 사상이 일맥상통하는 태아(胎兒)감식법이랄 수 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이 가공할 사내아이 선호의 전통 때문에 초음파(超音波)나 양수(羊水)검사에 의한 태아 성별감식을 엄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미구에 남녀의 성균형이 깨질 것이요, 그것이 다각도로 문명파괴로까지 연쇄돼 나가리란 것은 자명한 일인 것이다.
10.태아살인
우리 옛 선조들은 동해 먼 바다 건너에 여인국이 있다고 알았다. 이 나라에는 여인들만 산다. 섬 복판에 샘이 있어 그 샘만 들어다보면 아이를 배느니, 불어오는 남풍 앞에 가랑이를 벌리고만 있으면 아이를 배느니, 고기 잡는 어부를 잡아다가 아이를 배게 하고 없애버린다고도 한다. 이렇게 하여 딸을 낳으면 애지중지 기르고, 아들을 낳으면 궤짝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버린다. 후에 신라의 임금님이 되는 석탈해(石脫解)도 적녀국(積女國)이라는 여인국에서 궤짝 속에 담겨 버림받은 기아(棄兒)다. 남성상위 사회의 횡포가 너무 지긋지긋하여 우리 옛 여인들이 상상 속에 세운 반항적 이상향인 것이다.
우리 역사의 어느 한 시기, 어느 한 지방에 아들을 낳으면 거세하거나 생매장하는 여인국이 없지는 않았다.
두만강 유역의 변경(邊境)지역에선 아들을 낳으면 다 자라서 병역을 치르게 될 때까지 병역유예세랄 군보포(軍保布)를 바쳐야 했다. 그래서 아들을 낳으면 베 50필을 빼앗기고 딸을 낳으면 베 50필로 팔 수 있다 하여 딸을 낳으면 경사났다하고 아들을 낳으면 통곡을 하며 고추를 자르고 생매장하는 관례가 유계(兪棨)의 '시남집(市南集)' 등 관북지방에 유배당했던 분들의 문집들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환상 속의 여인국이건, 실제 있었던 여인국이건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비정사(非情史)가 아닐 수 없다. 한데 현대에 이 같은 비정사가 벌어지고 있다면 곧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남녀라는 성별이 바뀌었을 뿐이요, 그 비정행위가 태어난 후에 저질러지던 것이 태어나기 전에 저질러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 엄연히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양수검사(羊水檢査)나 초음파검사(超音波檢査)로 태아의 성별을 미리 감식, 사내아이만을 가려 낳는 태아살인이 그것인 것이다.
동남지나해상에 '파라'라는 섬이 있는데 이 섬의 추장은 무척 여성공포증의 컴플렉스를 가졌던지 주력(呪力)과 약을 써 여자들의 시기, 질투, 앙칼이며 희비애로(喜悲哀怒)의 감정, 애정, 정욕까지 모조리 증발시켜버렸다. 무성인간(無性人間)으로 만들어 남자가 그에 홀리지 않게 한 것이다. 그렇게 해놓자 남자들끼리 치고 패고 싸워 그 종족이 자멸해버렸다는 전설의 섬이다. 영국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이 전설을 바탕으로 '파라'라는 이상향소설을 지어 유명하다.
남녀가 1대 1의 비율로 태어나게끔 된 천기(天機)를 어기면 파멸의 화가 미친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우리 나라 산부인과 의사들이 태아 성별검사를 하지 않기로 자율규제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은 천기에 순응하는 일일 뿐 아니라 한국인간사에 도표(道標)를 세우는 장한 일이랄 수가 있다.
11. 태아 살인
어느 날 보스니아인 수녀 루치 베트루스는 세르비아인 병사에게 체포를 당한다. 그날 밤 이 수녀는 그 병사에게 강간을 당하였다. 그 금찍한 장면을 이 수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그날 밤 누군가가 저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저를 범했습니다.』
더 끔찍한 일은 이 수녀가 바로 그 강간범의 아이를 밴 것이었다. 수녀는 오랜 고민 끝에 비록 뱃속에 든 아이가 폭력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증인]이 될 것을 믿으며 낳기를 결심한다. 이 결심을 총장수녀에게 보낸 편지속에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수녀님, 저는 이 편지를 쓰는데 위안의 말씀을 청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다만 원하지 않는 임신을 강요당하고 또는 강간 당하는 수많은 동포들에게 제가 동참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 치욕을 통해서 그들과 일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수녀는 다음과 같은 맺음으로 편지를 끝내고 있다.
『이 아이는 제 것이지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설령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는 아이라 할지라도 이 아이에게는 엄마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오래 전에 소원했던 앞치마를 두루고 어머니와 함께 소나무 껍질에서 송진을 얻으려 나갈 것입니다. 또한 저는 아이에게 사랑만 가르칠 것입니다. 폭력으로 태어난 아기는 저와 더불어 [용서]야말로 인류에게 영광을 주는 위대한 것이라는 점을 증언할 것입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강간범의 아이를 낳기 위해서 수녀원을 떠나는 베트루스 수녀의 이러한 고백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다르면 60년대에는 10%에 머무르던 기혼 여성의 임신 중절이 70년대에는 40%에 육박하였으며 마침내 82년도에는 50%를 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90년대에는 60%를 넘어섰다는데 이러한 원하지 않는 임신의 해결은 우리나라 주부들 반 이상이 뱃속의 아이를 죽이는 임신 중절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혼외의 중절까지 고려한다면 중절건수는 정상적인 분만보다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비공식 집계에 의하면 해마다 태어나는 신생아의 수는 1백만명,하지만 두 배에 해당하는 2백만명의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2백만명이 넘는 아이들의 학살은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어떤 전쟁보다도 참혹하며 이 학살이 한마디 말로 저항하지 못하는 아기를 다름아니 그의 어머니에 의해서 자행된다는 사실이 우리 시대의 비극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대량 학살보다 더 야만적인 이 수술은 물론 원하지 않는 임신에 의해서 비롯된다. 원하지 않는 임신은 대충 세 가지로 구분될 것이다.
그 첫째는 ,성의 쾌락은 추구하되 아기는 싫다는 무책임,
두번째는, 성 감별을 통해 미리 아이의 성멸을 알아낸 뒤 원하지 않는 성일 때는 이를 사전에 제거하겠다는 부모로서의 의무 포기,
세번째는, 산모의 건강이나 강간과 같은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이를 수술로서 해결할 수 밖에 없는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극 소수의 세번째 경우를 빼놓으면 그 어떤 행위도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경시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인류 사상최악의 참극이다.
한 해에 태어나는 1백만명의 아이보다는 두 배가 넘는 2백만명의 신생아는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의 뱃속에서 인간의 생명존중을 최 우선으로 배워 온 히포크라테스의 후손인 의사들의 휘두르는 날카로운 칼과 창에 의해서 갈가리 찢기고 이다는 얘기다.
원하지 않는 강간범의 아이일지라도 엄마의 사랑이 필요하다면서 수녀원을 나온 베트루스 수녀의 마음이 엄마들의 마음속에 빛이 되어 스며들기를 바란다.
94년도에는 카이로에서 낙태를 인구 저절의 한 방법으로 채택할 것인가를 세계 각국 대표가 모여 토의하였을 때 인도의 마더 테레사는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보냈다.
『전 세게가 이처럼 무서운 파괴와 폭력과 정신의 황폐로 치닫고 있는 것은 어머니가 뱃속에 있는 아이를 살인하는 낙태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만일 키울 수 없는 아이라면 죽이지 말고 저를 주십시오, 제가 키우겟습니다.』
-1995년 2.26일자 동아일보-
12. 부끄러운 출산?
내가 경기도 용인 일대를 맡아 교구장으로 일하던 때이다.
한 나이 많은 집사님이 계셨는데 50이 다 돼서 딸아이를 하나 얻게 된 것이다.
심방을 갔는데 누구냐고 물으니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못하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권사님이 내 옆구리르 쿡쿡 찌르는 통에 더 이상 묻지 않았는데 예배를 다 드리고 나서 슬그머니 얘기를 꺼내는데 한참을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 저...이 아이는 제 딸이예요.... 아이가 안 생길 줄 알고 그만 맘을 놓았는데 몸이 이상해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니 배 속에 왠 큼직한 것이 들어있으니 산부인과에 가보라고 내과 의사가 ....... 그래서 이게 왠일인가 싶어 달려 갔는데 의사가 싱글벙글 하면서 하는 말이 “축하해요 손주 딸이예요” 그러는 바람에 창피해 죽는 줄 알았지만 죽일 순 없고 해서 낳았는데 요즘엔 밤에만 밖에 나간다]
고 하는 것이었다.
남들이 어쩌다가 “ 아이고 손주딸 이쁘게도 생겼네 ”하면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1년이 흐른 뒤에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자 부끄러움도 잊어버리고 얼마나 그 딸을 이뻐하시는지 나만 만나면 무슨 말을 했다느니, 무슨 행동을 했다느니하는 자랑을 한 10분은 잠자코 들어줘야만 내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13. 정자(精子) 구매(購買)
대만의 한 돈 많은 유부녀가 대를 잇기 위해 우리나라 돈으로 약 6천만원에 우수한 정자를 사겠다고 “ 우수 정자 6천만원에 파세요”라고 신문에 광고를 냈다고 한다.
첸이라는 29세의 이 여인은 3년 전 부유한 가문의 외아들과 결혼을 했으나 남편의 정자 부족증으로 임신에 실패했다. 대가 끊어질 형편에 놓이게 되자 우수 정자 구매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액의 댓가를 지불하는 만큼 정자의 주인은 고학력자로 고상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어야 하며 혈액형은 B형이어야 한다고 조건을 붙였다는 것이다.
- 95.3.30일자 동아일보 해외토픽 -
14. 대여문화
임대(賃貸) 사장(社長)
빌려서 쓰는 대여 문화(貸與 文化)가 우리 전통사회에서도 꽤 발달해 있었다. 이를테면 시집장가 갈 때 입는 사모-관대-족두리-나삼을 비롯, 목안(木雁)에 이르기까지 혼구 일체를 대여해 주는 족두리 도가(都家)가 그것이요, 제기(祭器) 도가, 상여 도가도 그것이다. 상여 도가에서는 초상난 집에 가서 울어주는 곡비(哭婢)도 빌려주었다. 그 울음의 비감도(悲感度)에 따라 시간당 임대료가 달라지는데, 듣고서 따라 울지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고감도의 곡비는 하루 임대료가 벼 한 섬이었다하니 대단하다.
주술적(呪術的)인 임대 풍습도 많았다. 이를테면 아들을 잘 낳고 아들을 많이 낳은 부인이 신었던 버선을 복(福)버선이라하여 임대 대상이 되었다. 아들을 못 낳았거나 또 아이를 배었더라도 그 아이가 아들이길 바라는 마님들은 이 복버선을 빌려 신고 다니면 아들 잘 낳는 주력(呪力)이 옮겨붙을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많은 결실(結實)이 요구되는 작물의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할 때면 이 다산부(多産婦) 의품을 비싸게 주고 대여하여 그 다산주력(多産呪力)을 결실주력(結實呪力)으로 유감(類感)시켰던 것이다.
대여 인간인 다산부는 그 주력을 대여해주는 것만으로 먹고 살 수가 있었다.
복전(福錢)이라는 것도 주술적 대여 문화의 일환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어느 특정 가문에서 돈을 빌려 장사를 하면 번창한다 하여 자기돈이 있더라도 그 집에서 나온 돈을 굳이 빌려 썼던 것이다. 이를 복전이라 했다.
아이 못 낳는 집에 팔려가 아이를 낳아주는 씨받이 부인은 대여 아내요, 또 명이 짧다는 예언을 받고 결연되는 수영(壽永) 어머니는 대여 어머니다.
근년에 기기(器機)류를 임대하는 리스 산업이 번창하더니 근간에는 일상생활속 깊이 대여문화가 스며들고 있어, 상실되고 있던 대여 문화의 전통을 되찾는 느낌이다.
사무기기나 가구-집기의 대여 뿐 아니라 비서-통역같은 인간 대여, 각종 도서 대여, 갈아가며 감상하는 미술품 대여, 화분 대여, 심지어는 대사 치르는 집이나 행사장에 빌려주는 화장실 대여업체까지 생겨나고 있다. 근착 `월스트리트 저널' 紙를 보니 대여 부부(貸與 夫婦)가 관습화 돼있다던 미국에서는 단기간 기업을 맡아 운영하는 대여 사장(貸與 社長)까지 등장, 호황을 이루고 있다 한다. 이렇게 빌려 나가다가 보면 빌려서 살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될 것 같다. 하기야 인생도 잠시 빌려 사는 것에 불과하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