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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학계와 동국대 불교학과 : 시대적 고찰과 분석
김한상 93/동국대 강사
Ⅰ. 들어가는 말
Ⅱ. 근대 불교학에 대한 자각과 개척: 1906년~1944년
1. 시대적 지형
2. 순수불교학
3. 응용불교학
Ⅲ. 한국 불교학의 형성과 정착: 1945년~1980년
1. 시대적 지형
2. 순수불교학
3. 응용불교학
4. 불교문화연구원과 한국불교학회의 태동
IV. 한국 불교학의 발전과 전환: 1981년~현재
1. 시대적 지형
2. 순수불교학
3. 응용불교학
4. 불교관련 학회들의 다양화
VII.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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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는 말
붓다는 『담마빠다(Dhammapada)』에서 “법들은 마음이 먼저 가고 마음이 으뜸이며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manopubbaṅgamā dhammā manoseṭṭhā manomayā.)라고 선언한다. Dhp.1게.
더 나아가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Nikāya』에서는 “마음에 의해 세상은 인도되고 마음에 의해 끌려 다닌다. 마음 한 법에 의해 모든 것이 지배당한다.” (cittena nīyati loko. cittena parikissati. citassa ekadhammassa sabbeva vasam anvagūti)라고 말씀한다. SN.I, p.39.
불교의 인간관에 따르면, 사람은 5온(五蘊, pañcakkhanda)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서 정신(名, nāma)으로 분류되는 요소가 4개가 된다. 이와 같이 불교는 인간의 삶에서 정신이 으뜸이자 세상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모든 인류의 조직과 단체들에서도 적용된다. 가정에는 가훈이 있고 기업에는 사훈이 있고 왕조와 국가에는 건국이념이나 통치철학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인교육의 산실인 대학에도 건학이념이 있다. 동서의 유수한 대학들 가운데에는 종교단체에 의해서 세워진 대학들이 많다. 설사 종교단체에 의해서 세워지지 않았더라도 설립된 뒤부터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온 대학들이 많다. 고영섭, 『한국불교사탐구』(서울: 박문사, 2015), pp.727-729.
주지하듯이 동국대학교는 불교를 건학이념으로 한다. 이는 “본교는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학문과 인격을 연마하고 민족과 인류사회 및 자연에 이르기까지 지혜와 자비를 충만케 하여 서로 신뢰하고 공경하는 이상 세계의 구현을 건학이념으로 한다.” 라는 구절로 명시되어 있다.
명진학교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발한 동국대학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교명과 학제가 바뀌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학제 개편의 과정 속에서도 종립대 수석학과로서의 불교학과의 위상과 역할은 그대로 유지되어왔다. 이는 불교 특수대학원의 설립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일반대학원에 설치되어 있는 불교학과 석ㆍ박사 과정과는 별도로, 1991년에 설립된 서울캠퍼스의 불교대학원과 2000년에 설립된 경주캠퍼스의 불교문화대학원도 공통적으로 불교학과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는 야간으로 운영되는 특수대학원도 마찬가지이다. 학부ㆍ일반대학원 및 특수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불교학과는 그 학문과 역할 및 기능에 있어서 언제나 중심이 되어왔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종립 동국대에서 불교학과의 위상을 잘 말해준다.
한국 불교학에서도 동국대 불교학과는 그 시작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불교학은 현대적 학문으로서의 불교학이다. 한국 불교학은 통일신라 전성기 때에는 원효(元曉, 617∼686)와 의상(義湘, 625~702) 등의 활약에서 잘 드러나듯이 동아시아 불교학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었으나 그 뒤로는 교학보다 수행을 중시하는 선종(禪宗)의 득세와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崇儒抑佛政策) 등으로 날로 쇠퇴하여 왔다. 근대 불교학은 1906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명진학교의 개교와 1916년 불교중앙학림 때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1930년 중앙불교전문학교로 승격되면서부터는 주로 일본의 불교학 방법론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1945년 해방 후 동국대 불교학과를 중심으로 한 불교학은 1964년 불교문화연구소에서 『불교학보』를 창간하면서 본격화되었으며, 1973년 한국불교학회가 창립되면서 불교학자들도 전국 각 대학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연구영역도 전통적인 교학과 사학에서 종교학,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미술, 문학 등의 인접학문들과의 학제적 연구와 응용·실천학으로 광범위하게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국내의 각 대학과 연구소에서 불교학을 주도하고 있는 불교학자들 상당수가 불교학과 출신이라는 점은 한국 불교학에서 불교학과가 지니는 위상을 잘 말해준다. 이처럼 불교학과는 그 출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명실상부한 한국 불교학의 본산이자 산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왔으며 한국 불교학의 오늘이 있게 한 살아있는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점에서 동국대 불교학과 창립 11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불교학계와 동국대 불교학과에 대해서 고찰한다는 것은 사실상 한국 불교학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해보고 내일을 모색하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지난 110년 동안 불교학과가 배출한 불교학자들 본 논문에서 불교학과 동문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과 및 경주캠퍼스의 불교문화대학 불교학과를 졸업한 자, 그리고 같은 대학원 불교학과의 석·박사 과정을 수료한 자이다. (이는 2016년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동문회 회칙에 따른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 불교학자는 국내외의 전·현직 정규직 교수만을 리뷰의 대상으로 한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불교학자는 비정규직 교수나 학계 외에서 활동하는 불교학자들도 포함되겠지만 그렇게 하면 논문의 분량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그들은 제외하기로 한다. 그리고 지면 관계상 모든 동문 불교학자들을 다 거론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각 시대별과 분야별로 특히 영향력이 강한 인물들만을 선별하여 논하기로 한다. 논의의 대상에 오른 동문 불교학자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모든 저서와 논문들을 일일이 나열하는 방식은 지양하고 학풍과 학계에 미친 영향력을 중심으로 짤막하게 소개한다. 이들의 시대별 분류는 2016년 5월 현재 정년퇴임했거나 퇴임을 압둔 교수를 기준으로 하였다. 만약 교수재임시기가 각 시기에 걸쳐있는 경우에는 재임시기가 가장 많은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 논술의 편의를 위해서 동문들의 존칭이나 법명은 모두 생략한다. 단 스님일 경우 속명 뒤에 스님의 호칭을 붙이고 그 다음부터는 생략한다. 교수 임용일과 퇴임일은 기본적으로 한국연구자정보(Korean Research Information, KRI)에 의거하였고, 그 가운데 일부는 필자가 직접 소속 대학 교무과에 전화로 문의하여 확인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수임용일은 전임강사임용일로부터 계산하였다. 얼핏 번쇄하게 느껴질 만큼 동문 불교학자들의 임용일과 퇴임일을 꼼꼼하게 기록한 것은 향후의 연구에 도움을 주고자 함이다.
의 숫자는 실로 어마어마하며 그들이 이룩해온 연구업적도 양적인 면에서 방대할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이제까지 각 분야별 한국 불교학의 연구성과와 과제에 대해서는 (사) 한국불교학회 창립 40주년기념 학술대회의 자료집인 『결집, 한국불교학 40년: 그 연구성과와 과제』(서울: 한국불교학회, 2013) 참고. 여기에 실린 대부분의 논문들은 수정·보완되어 『한국불교학』제68집 (서울: 한국불교학회, 2013)에 실려 있다.
필자의 전공이 지닌 한계와 부족한 문장력으로 이러한 모든 것들을 제한된 원고 안에 다 담아낸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 방식은 이론적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거시적인 시각에서 한국 불교학계와 동국대 불교학의 과거와 현재를 개관하고 향후의 전망을 도출하려는 본 연구의 취지와는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동국대 불교학과 출신 불교학자들(앞으로는 논술의 편의를 위해서 ‘동문 불교학자들’이라고 약칭한다.)과 그들의 연구 성과들을 모두 망라하지 않는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 불교학의 시기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라는 점이 한 가지 문제로 대두된다. 한국 불교학의 시기 구분을 어렵게 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각 동문학자들의 활동 연대가 겹치는 경우가 많고 한국 불교학이 단절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일단 본 논문은 선행 연구들 이봉춘(2006)과 심재관(2000) 참조.
을 두루 참고하여 한국 불교학을 시기별로 ① 근대 불교학에 대한 자각과 개척(1906년~1944년), ② 한국 불교학의 형성과 정착(1945년~1980년), ③ 한국 불교학의 발전과 전환(1981년~현재)의 세 단계로 크게 구분하기로 한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내용적으로 한국 불교학을 어떻게 구분할 것이며, 여기에 동문 불교학자들의 학문적 정체성과 학풍을 어떻게 대입시킬 것인가?”라는 점이다. 2016년 4월 현재 한국연구재단(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NRF)은 근본불교, 천태학, 화엄학, 유식학, 정토학, 계율학, 중관학, 밀교, 선학, 불교윤리, 불교교육, 불교문헌학, 지역불교 및 불교사연구, 응용불교학, 기타불교학의 15개를 불교학의 분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문 불교학자들의 연구 성과와 활동을 실제로 살펴보면 그들의 학문적 정체성과 학풍이 이러한 분류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대부분은 여러 분야에서 중복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 불교학을 그 분야별로 ① 순수불교학 논술의 편의상 필자는 본 논문에서 순수불교학에 불교교학과 불교사학을 포함시켰다.
과 ② 응용불교학의 두 파트로 크게 나누는 『불교학보』, 『한국불교학』 등과 같은 불교학술지들의 분류법을 바탕으로, 여기에 앞서 언급한 한국연구재단의 불교학 분류법을 적용하여 동문 불교학자들의 학문적 활동을 거시적·미시적 관점 모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Ⅱ. 근대 불교학에 대한 자각과 개척: 1906년~1945년
1. 시대적 지형
서기 4세기 말엽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고구려에서는 승랑(僧朗, 450~530년 경)이 삼론학(三論學)을 집대성하면서 불교학의 기초를 다졌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신라에서는 원효(元曉, 617∼686), 의상(義湘, 625~702), 경흥(憬興, 생몰연대 미상), 태현(太賢, 생몰연대 미상)과 같은 학승들에 의해서 불교학이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신라시대만 해도 한국 불교학은 동아시아 불교학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었으나 그 뒤로는 수행을 중시하는 선종(禪宗)의 득세와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崇儒抑佛政策) 등으로 불교학의 전통은 날로 쇠퇴하여 왔다. 특히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은 불교를 대중과 철저히 유리되게 함으로써 불교학의 폐쇄성과 고립화를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붓다의 전도 선언 이는 빨리 『율장(律藏, Vinaya-piṭaka)』과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Nikāya)』에서 다음과 같은 붓다의 전도선언으로 잘 나타난다.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세상을 불쌍히 여겨 신들과 인간들의 이익과 안녕과 행복을 위해 길을 떠나라. 둘이서 같은 길로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한, 내용을 갖추고 형식이 완성된 가르침을 설하라. 지극히 원만하고 오로지 청정한 거룩한 삶을 실현하라.” (caratha bhikkhave cārik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Mā ekena dve agamittha. desetha bhikkhave dhammaṃ ādikalyāṇaṃ majjhe kalyāṇaṃ pariyosāṇa-kalyāṇaṃ sātthaṃ savyañjanaṃ kevala-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pakāsetha.) (Vin.I, p.21; SN.I, p.105) 그리고 『사분율(四分律)』과 『잡아함경(雜阿含經)』과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도 부분적으로 상응하는 내용들이 나타난다. 『四分律』卷32 (『大正藏』22, 793a7), “汝等人間遊行,勿二人共行”;『雜阿含』卷39 (『大正藏』2, 288b1-4), “我已解脫人天繩索,汝等亦復解脫人天繩索。汝等當行人間,多所過度,多所饒益,安樂人天,不須伴行,一一而去。”; 『佛本行集經』卷37 (『大正藏』3, 835c28-836a6) “汝諸比丘。若當知我已得解脫。應於一切諸天人中汝等行行。為令多人得利益故。為令多人得安樂故。為世間求當來利益及安樂故。若欲行至他方聚落。獨自得去不須二人。又復比丘。汝等若至他方聚落。為於多人生憐愍故。攝受彼故。當為說法初中後善。其義微妙。具足無缺。汝等比丘。當說梵行。”
에 담긴 중생구제와 자비(anukampati)의 사회적 실천이라는 불교의 본질과도 멀어지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1906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명진학교의 개교와 함께 처음으로 불교학과 신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능화 편,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조선불교통사역주편찬회 편찬, 『조선불교통사』6, 『범어일방임제종지』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2010), p.309. “불교의 오묘한 이치와 신학문, 다른 종교의 책 및 다른 나라 다른 풍속의 산수와 언어 등을 연구하고. 익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후 불교사범학교와 불교고등학숙을 거쳐서 1916년 불교중앙학림이 설립되어 현대적 학문방법에 의한 불교학에 눈뜨기 시작하였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회 편, 『한국불교학연구, 그 회고와 전망』(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94), p.150.
이는 종전까지 강원의 승려들에게만 열려 있던 불교학의 문호를 사중(四衆, cattāro purisā) 모두에게 개방함으로써 불교학의 대중화·현대화의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불교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와 같이 근대 불교학에 대한 자각과 개척의 시기는 공식적으로 명진학교가 설립된 1906년으로부터 혜화전문시대를 거의 마감하는 1945년 해방까지로 잡을 수 있다. 이 시기는 대체로 일제의 강점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불교학을 개척해간 사람들은 근대 불교학의 필요성을 자각한 전통적인 교학자들이었다. 이봉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100년사 재조명」, 『불교문화연구』 제7집 (경주: 동국대학교 불교사회문화연구원, 2006), p.44.
이들은 만해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박한영의 불교혁신운동, 그리고 조종현의 교육제도 개혁안 등에서 드러나듯이, 불교학자를 양성하고 민중의 불교화를 주창하며 한국 불교학의 근대화를 주도하였다. 이기운, 「근대기 승가의 교육체제 변혁과 자주화 운동」,『불교학보』 제48집 (서울: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2008), pp.193~197.
이들의 학문적 성과들은 주로 1912년에 발간된 『조선불교월보(朝鮮佛敎月報)』를 필두로 한 많은 잡지들에서 게재되었다. 한편 이들의 대부분이 가정을 두고 있던 승려들이었다는 점은 당시 한국 불교의 특징을 반영한다. 하지만 깨달음이라는 종교적 과제를 안고 있는 승려이자 학문적 과제를 추구해야 할 불교학자로서의 신분적 자각은 불교학의 기본적 배경이자 추진력이 되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봉춘, 「불교지성의 연구활동과 근대불교학 정립」, 「불교학보」 제48집 (서울: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08), p.92.
그러면 각 전공 분야별로 이들의 활동과 업적을 조망해보기로 한다.
2. 순수불교학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근대 불교학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이를 개척한 인물들은 전통적인 교학자들이었다. 이에 해당하는 불교학과 동문학자들로는 김경운, 진진응, 송종헌, 박한영, 권상로, 김영수를 들 수 있다. 비록 동문 불교학자는 아니지만 이능화(1869∼1943)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은 신교육 활동에 헌신하면서 많은 저술과 논문 등을 써서 근대 불교학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나 순수불교학은 이러한 전통 교학자들 보다도 유학하고 돌아온 신진학자들에 의해서 개척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신진학자들 가운데는 일군의 동문 불교학자들이 있었다. 먼저 서양 유학파로는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University of Würzburg)에서 유학한 백성욱(1897∼1981), 프랑스 파리 대학(University of Paris)에서 유학한 김법린(1899~1964), 일본 유학파로는 다이쇼 대학(大正大學)의 강유문(?~1941), 류고쿠 대학(龍谷大學)의 김잉석(1900~1965), 도요 대학(東洋大學)의 조명기(1905∼1988)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교학자들과는 차별되는 학문적 성향과 연구 방법론을 통해 근대 불교학을 진척시켰다.
근대 불교학에 기여한 불교학과 동문은 사회운동가들 가운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백용성 스님(1864~1940)과 동시대에 활동한 한용운 스님(1879~1944)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선사(禪師) 또는 사회운동가로서 면모가 뚜렷한 이들을 불교학자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는 문제가 있지만, 이들의 사회참여 및 활동 과정에서 나온 저술⋅논설 및 경전의 번역 등은 전문 학자들의 그것과 다름이 없으며, 오히려 양적인 풍부함이나 질적인 독창성이 돋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의 학문 활동도 한국 불교학의 근대화에 적지 않게 기여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 한국 불교사
근대적 의미의 불교학으로서 맨 먼저 모습을 드러낸 분야는 불교사학 특히 한국 불교사였다. 이봉춘, 「불교지성의 연구활동과 근대불교학 정립」, 『불교학보』 제48집 (서울: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08), p.97.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학자로는 권상로 스님(1870~1965)을 들 수 있다. 권상로는 1906년 명진학교(明進學校)에 입학하였으나 3개월 후 자퇴하였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그가 초대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비중 있는 인물인 점을 감안하여 동문 불교학자로 다루었다.
그는 명진학교 졸업생으로서 초대 동국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그의 조선불교약사(朝鮮佛敎略史) (발행처불명: 1917)는 불교연대기를 겸한 책으로서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로 된 한국 불교사라는 점에서 선구적인 책이지만 제목 그대로 너무나 개괄적인 소개에 그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한국 불교의 종파에 관한 몇 편의 글을 불교지를 통해 발표하였으며 조선불교사개설 (서울: 불교시보사, 1939)도 간행하였다. 특히 그가 1939년 일본의 불교학자인 에다 도시오(江田俊雄, 1893~1957)와 공동으로 이조실록불교초존(李朝實錄佛敎鈔存) 19권 (서울: 중앙불교전문학교, 1935-1937)을 출간한 것은 한국 불교학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왜냐하면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불교관련 기사들을 뽑아 모은 것으로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조실록』을 일일이 훑어보지 않아도 손쉽게 필요한 사항을 찾을 수가 있어 오늘날까지도 불교학자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3. 응용불교학
응용불교학은 불교 사상과 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불교라는 영역 이외의 다양한 분야를 해석하고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은 기존 불교학의 방법론에 대한 반성과 불교학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대안으로 정립되었다. 이재수, 「응용불교학의 성과와 과제」, 『불교평론』제41집 (서울: 만해사상연구회, 2009), p.73.
하지만 이 시기에 응용불교학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순수불교학은 양적ㆍ질적인 면에서 부족하였기 때문에 응용불교학의 태동도 시기상조였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강유문 스님(?~1941) 강유문은 고운사 출신으로 1931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다이쇼 대학(大正大學) 사학과에서 공부한 사학자이었다. 그에 대한 정보는 김광식(1999)의 「근대불교 인물 행적 조사록」 참조.
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포교학이라는 영역을 개척하려고 했다. 그는 중앙불교전문학교 1회 졸업생으로서 일본 다이쇼 대학(大正大學)의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그의 포교법개설 (서울: 해동역경원, 1938)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포교방법론에 관한 저술로서 선구자적인 업적이다. 비록 그의 저술은 일본 불교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불교학의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강유문과 근대적 포교방법론에 대해서는 김광식(2004) 참조.
이러한 점에서 그를 한국 불교학에서 응용불교의 시조라고 할 만하다
이상에서 대략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시기 동문 불교학자들에 의한 한국 불교학은 일본 불교학의 답습이라는 한계를 지녔으며 양적ㆍ질적인 면에서도 매우 부족하였다. 하지만 근대 불교학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한국 불교학의 이론적 기반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그 다음 시기의 도래를 알리는 서광탄 역할을 하였다.
Ⅲ. 한국 불교학의 형성과 정착: 1946년~1980년
1. 시대적 지형
불교학에 대한 자각과 개척의 단계에 이어 1946년으로부터 1980년까지를 한국 불교학의 형성과 정착의 단계로 상정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내용적으로 일본의 불교학 방법론의 답습을 거쳐 점차 그것을 탈피ㆍ청산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이루어진 전반기(1945~1960), 이 시기를 심재룡(2000, p.8)은 ‘계몽기’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제도적 조건 및 연구자 수의 확대로 양적·질적인 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룬 후반기(1960~1980) 이 시기를 심재룡(2000, p.8)은 ‘해석작업기’라고 부르고 있다.
로 나뉠 수 있다. 이봉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100년사 재조명」, 「불교문화연구」 제7집 (경주: 불교문화연구원, 2006), pp.48-49. 이러한 시기적 분류는 심재관의 그것과 같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이봉춘과 심재관의 시기적 분류법을 따르기로 한다.
후반기는 불교의 대중화와 국내 불교학계의 학제 간 연구의 서막을 여는 계기를 마련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또한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응용불교학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전반기와 후반기를 통틀어 이 시기는 그 전시기의 순수불교학 위주의 단조로웠던 불교학이 어느 정도 분명한 색깔을 띠면서 세분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주로 활동한 동문 불교학자들은 각 전공분야에서 후학들을 위해 터전을 닦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1세대 불교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학이 점차 세분화되는 만큼 동문 불교학자들의 활동도 여러 분야에서 중첩되고 있다. 그러면 각 전공 분야별로 이들의 활동과 업적을 조망해보자. 이들의 활동기간을 도식적으로 한정하는 것에 문제가 없지 않지만 일단 이들의 교수 임용일과 정년 퇴임일을 기준으로 하였다. 물론 이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 특정 시기로 분류한 동문 불교학자들이라도 그 시기가 전후로 겹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2. 순수불교학
1) 한국 불교사
조명기(1905~1988) 조명기에 대해서는 이병욱(2014) 참조.
는 한국 불교의 연구지평을 넓히고, ‘불교총화론’ 또는 ‘총화불교론’을 통해 새로운 불교관을 제시하고자 한 인물이다. 1931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 일본 도요 대학(東洋大學)에 입학하여 1937년 졸업하였으며, 귀국하여 경성제국대학 종교학연구실 전공과(專攻科)에 입학하였다. 1939년에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가 되었고, 1945년에 혜화전문학교(惠化專門學校)의 교수가 되어 불교학과장의 일을 맡았다. 1954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으로 취임하여 1960년까지 재임하였으며, 그 동안에 교무처장을 겸임하였고, 1960년 부총장을, 1962년 불교문화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각각 역임하였다. 1962년 3월 일본 도요 대학(東洋大學)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측(圓測)의 저서와 사상」 등 수십 편의 논문과,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서울: 新太陽社, 1962) 등의 많은 저서를 남겨 한국 불교사학의 정립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우정상 스님(1917~1966) 우정상에 대해서는 김용태(2015) 참조.
은 해방 후 한국 불교사 연구의 불모지를 개척한 1세대 학자이다. 그는 동국대의 전신인 혜화불전에 입학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해방 후 다시 동국대로 돌아왔다. 1950년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56년에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0년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으나 1966년에 학자로서 한창 때인 50세의 나이로 별세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방 후 최초의 한국 불교 통사로 김영태와 공동으로 집필한 『한국불교사』(서울: 신흥출판사, 1969)를 남겨 한국 불교의 전모를 새롭게 그렸고 이는 후속 연구가 촉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의 불교사 연구를 개척하여 일제의 식민지 시대에 고착된 조선시대의 불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한국 불교사 전체를 관찰하는 그의 역사인식과 조선시대 불교사를 새롭게 바라본 그의 안목은 학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2) 유식학·인명학
황성기 스님(1919~1979)은 1955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에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1976년에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하였다. 1960년부터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1979년에 정년퇴임하였다. 특히 유식학·인명학은 당시 한국 불교학에서는 황무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척박한 분야였는데, 한국 불교학계에서 그것이 연구되고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그의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황성기에 대해서는 하춘생(2012) 참조.
3) 천태학
홍정식(1918~1995)은 1945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중간의 공백기를 거쳐 1974년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1년부터 1983년까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법화경(法華經)』에 대한 연구에 천착했다. 당시 비구대처분쟁을 이념적으로 통합·해결하기 위해 『법화경』의 중심사상인 회삼귀일(會三歸一)에 눈을 돌린 것이 그 동기이다. 특히 그는 1973년에 한국불교학회 창립의 산파역을 담당하고 이후로도 학회의 안정적 정착과 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한국 불교학의 발전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홍정식에 대해서는 이봉춘(2015) 참조.
4) 중론학
중관학은 김동화와 김잉석에 의해 그 기초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수영, 「한국불교학 40년, 중관학의 연구성과와 과제」, 『한국불교학』 제68집 (서울: 한국불교학회, 2013), p.115.
김잉석(1900~1965)은 26세 때 동국대 전신인 서울 중앙불교학림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접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28년에 도쿄(東京)의 고마자와 대학(駒澤大學) 예과를 수료하고, 1931년 교토(京都)의 류코쿠 대학(龍谷大學) 문학부를 졸업했다. 일본에서 귀국하고서 1934년에 불교전수학교(佛敎專修學校)에서 승격·개편된 중앙불교전문학교(中央佛敎專門學校)의 교수가 되었으며 1961년에 정년퇴임하였다. 그는 화엄과 삼론연구를 통해 한국 불교학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 또한 한국 불교학계에서 처음으로 『화엄학개론』(서울: 동국대출판사, 1960)을 발표해 한국 화엄학을 현대화시켰으며 고구려 출신으로 중국 양나라에서 『화엄경(華嚴經)』과 『삼론(三論)』을 연구해 삼론종(三論宗)의 기초를 닦은 승랑(僧朗)을 세상에 알렸다.
5) 원효학
조명기(1905~1988)는 1931년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하고 일본의 도요 대학(東洋大學) 문학부 불교학과에서 공부하였다. 귀국 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종교학 연구실 전공과[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업을 계속하였다. 1939년 중앙불교전문학교의 강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다 경성제국대학 종교학 연구실로 돌아가 신라불교 연구에 전념하였다. 불교를 ‘한국 문화의 최고 정수’로 여겼으며, 불교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국의 민족 문화가 수립되었다고 파악하였다. 또한 원효(元曉)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전 10권의 『원효 전집』(서울: 東國大學敎佛敎史學硏究室, 1949-1950)을 발간하였으며, 그의 대표작 『신라 불교의 이념과 역사』(서울: 新太陽社, 1962)를 통해 원효의 저술과 사상을 소개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한국 불교학계에 원효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3. 응용불교학
학문은 순수학에서 응용학으로, 보편적 원리에서 특수 원리로 나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기운·조기룡·윤기엽, 「佛敎學報를 통해 본 한국불교연구의 동향 –불교문화연구원 50년의 회고와 전망-」, 『불교학보』 제63집 (서울: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2012), p.38.
그렇게 본다면, 전 시기에 비해서 순수불교학이 내용적으로 세분화되고 풍성하게 된 이 시기에 응용불교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응용불교학은 1973년 불교문화연구소 개설 10주년을 기념하여 ‘불교의 국가관 및 정치사상 연구’라는 특집으로 구성한 『불교학보』 제10집에서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생각된다. 앞의 논문, p.10.
이를 분기점으로 한국 불교학은 그 영역을 순수불교학 일변도에서 응용불교학으로 확장하였다. 해당 특집호에는 김동화의「불교의 국가관」, 홍정식의 「불교의 정치관」, 이재창의 「불교의 사회․경제관」, 김영태의 「불교적 治國의 史的實際」와 부록으로「治國關係經典要抄集」이 수록되어 있다. 특집호인 『불교학보』 제10집을 시발점으로 불교의 관점에서 사회를 분석하는 논문들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게재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응용불교학의 본격적 태동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4. 불교문화연구원과 한국불교학회의 태동
이 시기에 오늘날 한국 불교학계에서 불교학연구회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학회인 불교문화연구원과 한국불교학회의 탄생은 한국 불교학의 활성화와 다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다. 먼저 1963년에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원)의 전문학술지 『불교학보』가 간행되면서 연구논문들이 본격적으로 발표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불교학보』는 당시로서는 유일한 불교전문학술지였다. 초기에는 주로 불교학과를 필두로 한 불교대학 전임교원급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담아내는 주요 학술무대였으나 현재는 그 문호가 개방되어 있다.
뒤이어 1973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중심으로 한국불교학회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1975년에 한국불교학회에 의해 창간된 학술지 한국불교학도 또 다른 의미에서 불교학의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한국불교학 역시 그 창간 초기에는 주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전임교원급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학술지였다. 이는 그러나 점차 가입회원의 분포가 다양해지고 범위 또한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현재는 불교학자는 물론 불교와 관련한 외부학자의 연구논문까지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 (이 두 학회지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하게 언급한다.)
총평을 하자면, 이 시기 불교학은, 그 전시기의 순수불교학 위주의 단조로웠던 불교학이 어느 정도 분명한 색깔을 띠면서 세분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응용불교학도 그러한 과정 속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불교학은 전체적으로 거시적이고 거친 연구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그 다음 시기의 (상대적이긴 하지만) 미시적이고 섬세한 연구들로 나아가는 디딤돌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IV. 한국 불교학의 발전과 전환: 1981년~현재
1. 시대적 지형
이 시기의 한국 불교학은 전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도 고양되어갔다. 다른 종합대학들에서도 불교학 전공자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위덕대(1995년 설립)와 금강대(2002년 설립)와 같은 비(非)조계종 종립대학들, 그리고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2002년 설립), 능인불교대학원대학교(2014년 설립)와 같은 사립불교대학들도 속속 들어섰으며, 불교관련 학회지들도 점차 다양화·세분화되면서 한국 불교학은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물론 이는 그동안 동문 불교학자들이 각 분야에서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해온 결실이 나타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부언하자면, 심재룡과 김성철이 지적하였듯이, 이 시기의 한국 불교학은 전 분야에 걸쳐서 점차 일본의 불교학 방법론을 극복해 나가기 시작하였다는 점도 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심재룡, 「한국불교의 오늘과 내일: 한국불교학의 연구현황을 중심으로 – 한국불교전통에 대한 반성과 전망」,『철학사상』 제11집 (서울: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0), p.12.; 김성철, 「한국유식학연구사」, 불교학리뷰Ⅰ, (논산: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2006), p.13.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는 1990년대 후반부터라고 보아야 한다. 이점은 불교학술서의 동향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1990년 후반까지 불교학술서는 일본 불교학술서를 번역한 책들이 주류를 이루어왔으나 그 이후부터는 국내학자들의 저술들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한편 80년대부터 거세게 일어나기 시작한 경제성장과 정치민주화, 그리고 개혁ㆍ개방과 세계화 등과 같은 사회 각 분야의 광범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 불교학도 다학문ㆍ다문화적 접근과 개방을 시도하는 새로운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하면, 종래의 순수교학ㆍ역사ㆍ인물 등의 연구와 같은 제한된 테두리에서 벗어나 불교와 다른 학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불교학의 정신과 효율성을 더욱 높이고 불교학의 외연을 넓히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90년대 초부터 응용불교학(applied Buddhist Studies) 또는 실천불교학(practical Buddhist Studies)이라는 말이 쓰이면서 그 학문적 방법론이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이 시기의 동문 불교학자들의 활동과 업적을 각 분야별로 조망해기로 한다.
2. 순수불교학
1) 한국 불교사
김영태는 1959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62년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1988년 일본 교토(京都)의 북쿄 대학(佛敎大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0년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1998년에 정년퇴임할 때까지 불교사학의 발전에 혁혁한 공헌을 했다. 식민사관이 학계에 만연해 있을 때 불교학의 문을 두드렸던 그는 『신라불교연구』(서울: 민족문화사, 1987) 등 37권의 저서와 2백여 편의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주체적인 한국 불교사를 확립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의 학풍은 철저한 자료 분석과 엄정한 태도가 특징이다. 불교학계 뿐만 아니라 일반 사학계에서도 그의 학문적 업적이 높이 인정받고 있는 점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불교사학자인지를 잘 말해준다.
이봉춘은 1972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과 1991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92년부터 2012년까지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한국 불교 중에서도 특히 조선시대의 불교를 천착하였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노력이 집약된 저서가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서울: 민족사, 2015)이다.
고영섭은 1991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과 1998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 불교, 원효, 『삼국유사(三國遺事)』 등과 관련된 많은 저서와 논문들을 발표하면서 한국 불교의 저변화와 콘텐츠 재생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2005년 한국불교사연구소를 개소하고 인문학 반년간지 『한국불교사연구』와 인문학 계간지 『문학 사학 철학』을 발간함으로써 한국 불교와 한국학의 저변화와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2015년에는 한국 불교학을 세계불교학과 소통하고 공유하고 심화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내에 세계불교학연구소를 발족했다.
2) 인도학
인도학(Indology)은 동양학(Oriental Studies)의 한 분야로서, 인도 아대륙의 역사·문화·언어·문학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동국대학교에 인도철학과가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도철학과는 종래 한문 문헌을 바탕으로 한 불교학에 대한 반성, 그리고 산스끄리뜨어·빨리어·티베트어 문헌들을 통한 연구와 인도의 여러 사상체계들과의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는 자각에서 설립되었다. 이때의 인도철학과 교수진인 원의범, 정태혁, 서경수, 이기영은 한국 인도학의 1세대들이다.
원의범은 1943년 혜화전문학교 불교과를 졸업하고 1954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62년에 서울대 종교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인 최초의 인도국비장학생으로 인도의 베나레스 힌두대학(Banaras Hindu University, BHU) 대학원의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연구생으로서 산스끄리뜨어를 공부했다. 1969년부터 1988년까지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정태혁과 함께 한국 불교학계에서 산스끄리뜨어·빨리어·티베트어와 같은 인도원전어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일깨우고 그 보급에 앞장섰다.
3) 초기 불교
초기 불교는 모든 불교학의 근본임에도 불구하고 대승 불교와 선불교 전통이 지배적인 한국 불교계에서는 관심권 밖이었으며 미개척 분야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정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변화를 이끈 장본인이 바로 고익진(1934∼1988) 고익진에 대해서는 이봉춘(2014) 참조.
이다. 그는 1969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에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1980년부터 1988년까지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박사학위는 1986년에 받았다.) 그의 석사학위논문 『아함법상(阿含法相)의 체계성 연구』(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1971)에서 그는 한역 『아함경(阿含經)』에 기록된 붓다의 말씀(buddha-vacana)에 일관된 체계성이 있음을 논증하였다. 초기 불교 연구가 궤도에 오른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계가 없진 않지만 당시로서는 실로 혁명적인 논문이었다. 고익진에 의해 촉발된 초기 불교 연구는 이중표와 최봉수와 같은 직계 제자는 물론이고, 외국에서 초기 불교를 공부한 윤호진과 안양규와 같은 동문 불교학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한 면에서 고익진은 한국 불교학계에서 초기 불교에 대한 연구의 이정표를 세운 인물로 꼽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윤호진 스님은 1969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에 파리 소르본느 대학(Université Paris-Sorbonne)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 불교학부 교수로서 재직했다. 특히 100년 이상 축적된 서구의 불교학 성과가 집약된 에띠엔 라모뜨(Étienne Lamotte, 1903~1983)의 Histoire du bouddhisme indien: dès Origines à l'ère Śaka (Louvain: Publications Universitaires, Institut Orientaliste, 1958)를 8년간의 노력 끝에 한글로 번역·출판함으로써 에띠엔 라모뜨(Étienne Lamotte), 호진 옮김, 『인도불교사』(서울: 시공사, 2006)
우리나라의 초기 불교와 인도 불교 연구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안양규는 1989년에 서울대 종교학과를 학사로 졸업하고 동국대 불교학과 3학년에 편입하여 학사로 졸업한 뒤에 1993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의 동양학연구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1998년에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University of Oxford)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 불교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등과 같은 명상치유프로그램을 초기 불교의 시각에서 연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중표는 1980년에 전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과 1990년에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불교의 불모지인 호남 지역에서 초기 불교의 보급 및 불교학의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에는 니까야 번역에 힘을 기울이면서 초기 불교의 시각에서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金剛經)』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4) 아비다르마
인도 불교사에서 아비다르마 불교(Abhidharma Buddhism) 또는 부파 불교(Nikāya Buddhism)는 단연 주류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승(小乘, Hīnayāna)’이란 명칭은 말 그대로 ‘대승(大乘, Mahāyāna)’에 의해 만들어진 상대적인 개념일 뿐 서구학계에선 이미 아비다르마 불교를 ‘주류불교(Mainstream Buddhism)’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런 아비다르마 불교에 대한 평가나 의의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선 별다른 가치를 지니지 못해왔다. 고영섭의 말대로, 최치원에 의해 ‘비바사(毘婆娑/毘婆沙, Vaibhāṣika)’라고 일컬어지던 아비다르마 불교는 백제나 가야를 통해 우리 땅에 먼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승 불교와의 사상적 고투 속에 밀려나 대승불교 속으로 용해되어버리고 말았다. 고영섭, 「부파불교전래와 한국불교-테라와다 불교의 전래와 관련하여-」, 한국선학 24집 (서울: 한국선학회, 2009), p.331.
이와 같이 한국 불교학계에서 비주류와 마이너리티로 인식되던 아비다르마에 대한 연구의 물꼬를 튼 인물이 바로 권오민이다. 그는 1980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과 1991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경상대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아비다르마 관련 번역·저술만 40여 권 이상이며, 『순정리론(順正理論)』을 세계 처음으로 완역하기도 하였다. 그가 펴낸 『상좌 슈리라타와 경량부』(서울: 씨아이알, 2013)는 경량부(經量部, Sautrāntika)의 정체를 규명한 대작이다. 경량부의 기원과 흐름에 대한 문제를 비롯해 세계불교학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새로운 사실들을 수두룩하게 밝혀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 중관학
1950년부터 1980년까지 중관학에 대한 주요 연구성과는 김동화(1902∼1980)와 김잉석에 의한 중관학의 연구범위 형성, 정태혁에 의한 산스끄리뜨어 프라산나파다(Prasannapadā)』 제24장 우리말 역주, 그리고 황산덕에 의한 한문 중론(中論, Mādhyamika-śāstra)의 게송부분 우리말 번역이다. 1981년부터 1990년까지의 중관학의 주요 연구자는 김인덕과 김하우였다.
김인덕(1935~2004)은 1962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과 1980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76년부터 2002년에 별세할 때까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중론의 중요사상과 논리형식을 밝히고, 중론 여러 품의 주석적 연구 및 사상 내용의 검토, 그리고 중관학에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의 의미와 위치 등에 대해서 연구 성과를 발표함으로써, 김동화와 김잉석의 중관학을 계승하여 후학들에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남수영, 앞의 논문, p.99.
또한 고구려의 승랑 이래 거의 맥이 끊긴 삼론학을 현대에 되살려 내는 데에도 많은 힘을 쏟았다.
박인성은 1983년에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과 1997년에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주요 연구 분야는 짠드라키르티(Candrakīrti)의 사상 및 중관학과 유식학의 비교사상적 연구 등이다. 그는 유식학을 중관학의 비판적 계승 혹은 발전으로 간주하면서, 중관학과 유식학의 비교사상적인 연구 성과의 발표를 통해 중관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남수영, 앞의 논문, p.115.
6) 유식학
근대적 의미의 유식학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29년 혹은 1932년의 일이지만, 김성철, 앞의 논문, pp.15-16.
본격적으로는 현대 한국 불교학의 토대를 마련해준 김동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기운·조기룡·윤기엽, 앞의 논문, p.25.
그리고 오형근과 이만과 같은 동문학자들에 의해 계승 심화되어갔다.
오형근은 1964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과 1970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77년부터 2004년까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지금의 관점에서 볼 때 산스끄리뜨 문헌을 고려하지 않은 그의 학문적 방법에 한계가 없지는 않지만, 유식학의 대가 김동화의 학맥을 계승하면서 한국 불교학계에 유식학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연구자를 배출하여 유식학의 성장의 터전을 닦은 공로는 부인할 수 없다.
이만은 1974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과 1988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88년부터 2013년까지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유식학에서도 특히 신라의 유식사상을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이기운·조기룡·윤기엽, 앞의 논문, p.25.
우제선은 1991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에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전공은 유식학, 아비다르마 불교, 인명론(因明論, hetu-vidyā)으로서, 그 가운데서도 유식학을 심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7) 화엄학
한국 불교학에서 화엄학은 원효학과 더불어 비교적 많은 연구 성과를 축적한 분야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화엄학을 이끈 인물들로는 이기영, 김지견, 장원규 등을 들 수 있다. 석길암, 「한국에 있어서 화엄학 연구의 흐름과 전망」, 『한국불교학』 제68집 (서울: 한국불교학회, 2013), p.283.
그 가운데서 김지견(1931~2004)은 한국 화엄학의 세계화에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는 1960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고마자와 대학(駒澤大學)의 박사 과정을 거쳐 도쿄 대학(東京大學) 박사 과정에 입학, 1973년에 ‘신라화엄사상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강원대(1983~1989)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9~1996)에서 각각 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연구 활동은 주로 문헌학적 연구(philological studies)를 토대로 신라의 의상에서 고려의 균여와 지눌, 조선의 김시습 등에 이르는 한국 화엄의 독자성을 밝히는 작업이었다.
권탄준은 1979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과 1990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2003년부터 2015년까지 금강대 불교학부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명예교수이자 제21대 한국불교학회장이다. 평소 『화엄경(華嚴經)』은 실제 보살행을 통해 깨달음을 현실에 구현하는 사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화엄사상의 실천적 면과 화엄경 신행의 해명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해오고 있다. 앞의 논문, p.291.
한국불교학회와의 인연도 깊어 1982년부터 간사, 이사, 부회장을 차례로 역임하며 한국불교학회의 변화를 지켜보고 직접 참여해왔다.
그 외에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인 전호련 스님,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 불교학부 교수인 석길암 등과 같은 동문 불교학자들이 이 분야에서 연구업적을 꾸준히 쌓아나가고 있다.
8) 정토학
한보광 스님은 정토학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1975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1985년에 일본의 북쿄 대학(佛敎大學)에서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1990년에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선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현재는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정토학 뿐만 아니라 정토학 일반에 대한 연구에서 많은 학문적 업적을 쌓았다.
9) 여래장
이평래는 1968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에 일본의 고마자와 대학(駒澤大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부터 2007년까지 충남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한국 불교학계에 여래장(如來藏, tathāgata-garbha)의 중요성을 일깨웠으며, 특히 한국불교학회를 활성화시킨 장본인이다.
10) 밀교학
한국 불교학계에서 밀교학은 다른 분야에 비해 그 시작이 늦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김영덕, 「밀교/티베트불교 40년 연구성과와 과제」, 『한국불교학』 제68집, (서울: 한국불교학회, 2013), p.366.
정태혁(1922~2015) 정태혁에 대해서는 정승석(2012) 참조.
은 1955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63년에 일본 도쿄 대학(東京大學)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에 일본의 오타니 대학(大谷大學)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1977년에 타이완의 문화대학(文化大學) 중화학술원(中華學術院)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1년부터 1988년까지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국내 최초로 『표준 범어학』(서울: 불서출판사, 1968)과 『기초 서장어』(서울: 경서원, 1973)와 같은 문법서들을 출간함으로써 불교학에서 빨리어·산스끄리뜨어·티베트어와 같은 인도원전어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또한 국내의 인도철학 분야를 개척하면서 불교와 인도철학 비교 연구에 주력하고, 이러한 학풍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였다. 또한 요가를 비롯한 인도 문화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밀교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
서윤길도 제1세대 밀교학자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한 명이다. 1968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과 1987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77년부터 2006년까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한국 불교의 밀교사상 연구에 천착하면서 김영덕 등과 같은 차세대 밀교학 연구자들의 양성에 힘썼다. 한국 불교학계에서 밀교학이 저변화되고 한 장르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은 그의 공로이다.
그 외에도 위덕대학교의 불교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영덕, 장익, 권기현 등과 같은 동문 불교학자들이 이 분야에서 연구 업적을 꾸준히 쌓아나가고 있다.
11) 천태학
한국 불교학계에서 천태학은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아주 제한적으로 이루어졌고, 1980년대를 거쳐서 1990년대에 이르러 박사학위논문이 여러 편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이병욱, 「천태사상에 관한 연구성과와 과제」, 『한국불교학』 제68집 (서울: 한국불교학회, 2013), p.237.
이영자는 1963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에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1982년에 일본 다이쇼 대학(大正大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2001년까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불교학자로서 한국 천태학 연구에 매달려왔으며 불교여성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선구적 인물로도 평가된다.
그 외에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과 교수인 지창규, 동방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교수인 차차석, 금강대학교의 불교학부 불교학과 교수인 최기표 등과 같은 동문 불교학자들이 이 분야에서 연구업적을 꾸준히 쌓아나가고 있다.
12) 보조학
이법산 스님은 1971년에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1977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1985년 중국문화대학(CCU)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부터 2011년까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사람을 감싸고 포용하는 특유의 리더십으로 그동안 보조사상연구원을 비롯한 한국선학회, 한국정토학회, 인도철학회, 아태불교문화연구원 등에서 회장 및 원장을 맡아 불교학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크게 넓혔다. 특히 한국 불교 최초의 종합역사서이자 불교백과사전인 『조선불교통사』 역주팀을 8년간 이끌어 8권으로 펴낸 일과 함께, 보조 스님의 사상을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보조전서』 한글화를 주도한 일도 그의 큰 학문적 업적 중 하나로 손꼽힌다.
13) 지눌학
강건기는 1966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과 1979년에 미국 뉴욕 대학(New York University, NYU)에서 종교학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81년부터 2006년까지 전북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지눌학에 천착하면서 이의 대중화 및 호남지역의 포교에 힘써왔다.
14) 계율학
계율학은 불교의 기본이 되는 실천수행으로서의 의미도 크지만, 교단의 역사를 해명하고 인간의 삶의 다양한 문제들과 연결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인환·마성, 『계율 연구 논문집』 (서울: 정우서적, 2011), p.6.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계율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승가의 청정한 계율 북방의 대승 불교에서는 계(戒, sīla)와 율(律, vinaya)의 복합어인 계율(戒律)이라는 용어가 승가의 규칙을 가리키는 율과 혼용되어왔다. 그러나 이 말은 번역에 의하여 만들어진 말로, 원래 인도 불교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계율이란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이 문란해졌고 단박에 깨닫는 돈오(頓悟)를 곡해해 계율을 소홀히 여기는 풍조도 생겨났다. 1970년대에 계율학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이지관 스님과 목정배에 의해 계율학이 시작되었다. 신성현·하춘생, 「한국불교 계율학의 연구성과와 전망」, 『한국불교학』제68권 (서울: 한국불교학회, 2013), p.677.
이지관 스님(1932~2012)은 1963년에 경남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과 1976년에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75년부터 1998년까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이후 동국대학교 총장을 거쳐 대한불교조계종 제32대 총무원장을 지냈다. 그는 1975년에 발표한 南北傳六部律藏比較硏究-四分律比丘戒本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박사학위논문을 통하여 계율학 활성화의 실질적인 전기를 제공함으로써 계율학의 탄탄한 기반을 닦았다. 또한 1991년에 사단법인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설립하여 한국 불교의 교육·문화·출판 중흥에 힘쓰는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종합대백과사전인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의 편찬에 착수하여 2016년 5월 현재까지 모두 15권을 발간하였다.
목정배(1937~2014)는 재가불교운동에 헌신하면서 계율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는 1962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한 후 1964년과 1988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75년부터 2002년까지 동국대 불교대학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한국 불교학계에 ‘계율학’이라는 학문적 체계를 처음으로 수립하고 1977년에 동국대 불교학과 전임강사였던 목정배의 건의로 같은 해부터 동국대 불교학과에 처음으로 계율학 과목이 개설되었다.
이를 대중화하는데 공헌하였다.
신성현은 계율학을 전공하는 중진학자이다. 그는 1986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과 1995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계율학의 기반을 착실히 다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웰다잉(well-dying)과 같은 생사문제에도 관심을 돌리고 있다.
15) 불교윤리학
현대적 방법론에 입각한 불교학이 처음 시작된 서양에서도 불교윤리학(Buddhist Ethics)은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서양에서도 피터 하비(Peter Harvey)나 데미안 키온(Demian Keown) 정도를 전공자로 꼽을 수 있을 뿐이다. 조용길은 불교윤리학이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시기에 초기 불교에 기반을 둔 불교윤리학을 태동시켰다. 그는 1971년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과 1987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86년부터 2009년까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빨리 니까야보다는 한역 『아함경(阿含經)』에만 의존하였던 그의 불교학 방법론은 지금의 불교학 관점에서 한계가 없진 않지만 당시까지 생소하던 불교윤리학을 불교학계에 소개하고 그 물고를 튼 공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가 개척한 불교윤리학은 안옥선, 허남결, 신성현 등의 후학들로 이어지고 있다.
16) 중국 불교
한국 불교학에서 중국 불교는 초기 불교와 더불어 상당히 중요한 연구 분야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되기는 하였지만 한국 불교는 인도에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불교는 인도 불교의 수용이 아니라, 중국에 전해진 중국적 불교를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 불교는 인도 불교보다 중국 불교적 환경에 더 가까운 불교라고 볼 수 있으며, 한국 불교를 알기 위해서는 중국 불교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면에서 권기종은 중국 불교 연구를 개척한 1세대 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64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과 1987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77년부터 2006년까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중국 불교뿐만 아니라 정토학과 관련하여서도 수많은 연구 성과들을 남겼다.
17) 선학
선(禪)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신라시대이다. 그러나 선학이 독립적 학문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근래에 들어서이다. 즉 근대에 들어서 불교학에 현대적 학문의 방법론이 도입되면서 선도 ‘선학’이라는 독립된 학문으로 체계화되고 정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동국대학교에 선학과가 설치되면서 한국의 선학은 ‘말로써 말 없음의 세계를 규명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역사가 일천한 한국의 선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은 장본인은 최현각 스님이다. 그는 1977년에 동국대 승가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과 1987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의 석·박사 과정을 각각 마쳤다. 1987년부터 2002년까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당시까지 생소한 선학에 몰두하며 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국내 비구니 박사 1호’라는 타이틀을 지닌 강문선 즉 혜원스님은 중국의 선종(禪宗), 그중에서도 북종선(北宗禪)을 전공했다. 1974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과 1988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연구는 특히 남종선(南宗禪)과 쌍벽을 이루며 중국 선종사의 흐름을 이어갔던 북종선에 대해 새롭게 평가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선종사 연구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평가된다.
18) 사원경제학
이재창은 1955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과 1975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60년부터 1994년까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한국의 사원경제문제를 역사적인 배경은 물론 사회적, 사상적, 신앙적 측면 등에서 종합적으로 조명하고, 사원노비의 신분과 양상, 사원령의 확대, 사원의 상품생산과 판매, 사원의 화식업 등 사원의 경제활동과 팽창에 따른 사원 내·외적인 문제에 대해 천착했다.
3. 응용불교
앞서 언급했듯이, 1973년에 불교문화연구소 개설 10주년을 기념하여 ‘불교의 국가관 및 정치사상 연구’라는 특집으로 구성한 『불교학보』 제10집의 발간을 시작으로 이 시기에 이르러 응용불교학은 경제학, 비교종교학, 생태학 등 인접학문들과의 연계 속에서 본격적으로 만개하기 시작한다.
1) 비교종교학
“하나의 종교밖에 모르는 이는 종교를 모르는 사람이다.” (He who knows only one religion, knows none) Müller, F. Max, Lectures on the Science of Religion (New York: Charles Scribner and Company, 1872), p.11.
라는 막스 뮐러(Max Müller, 1823~1900)의 말처럼 자신의 종교를 바로 아는 길은 다른 문화와 사상과의 비교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비교종교학(Comparative religion) 비교종교학(Comparative religion)이라는 용어는 현재 종교학(Religious Studies)의 하위 연구 분야, 또는 종교학을 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사용되나 여기서는 종교학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다만 종교학에 대해 아직도 다소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불교학계에서는 비교종교학이 종교학이라는 용어보다 더 선명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제목에서 이 용어를 택했다.
은 주로 불교학 전공이 아닌 다른 종교 전공자들에 의해서 진행되어 왔었다. 하지만 한국 불교학계에서 본격적으로 비교종교학의 입지를 구축한 인물이 김용표이다. 그는 1978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한 뒤 1982년에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1992년에 미국의 템플 대학(Temple University)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2016년까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중관학에 대한 해석학적, 종교철학적인 연구를 통하여 중관사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남수영, 앞의 논문, pp.103-104.
다른 종교들에 대해 연구하고 다른 종교들과의 학문적인 대화를 시도해왔다. 그의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는 한국 불교학계 최초의 영문학술지인 『세계불교 사상문화저널(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Buddhist Thought and Culture, IABTC)』의 창간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서술한다.) 이를 통해서 그는 세계학계에서 중국 불교의 아류로만 인식되던 한국 불교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한국 불교를 세계화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최종석도 종교학과 응용불교학의 중진학자이다. 1979년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과 1995년에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Saarland University)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응용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비교종교학과 관련된 많은 업적들을 내고 있는 중이다.
문찬주 또는 성원 스님은 1989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에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2002년에 위스콘신 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 대학원 아시아언어문화학과에서 불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하와이 대학(University of Hawaii)에서 불교철학을 가르쳤으며, 2013년부터는 코스털 카롤리나 대학(Coastal carolina University)의 철학종교학과(Philosophy & Religious Studies)에서 세계 종교 개론, 아시아 종교 개론, 불교 개론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김환수 또는 일미 스님은 1996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에 미국 하버드신학대학원(Harvard Divinity School)에서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2007년에 하버드 대학(Harvard University)에서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애리조나 대학(University of Arizona) 동양종교학과의 조교수로 재직하였고, 2009년부터 현재까지 듀크 대학(Duke University)에서 종교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학문적 영역은 식민주의, 제국주의, 근대화의 콘텍스트에서 19세기말에서 20세기 중반의 한국 불교이지만, 동아시아 종교, 불교의 근대적 변용(Buddhist modernities), 국경을 초월한 불교(transnational Buddhism), 승원주의(monasticism), 성직자의 결혼, 의식, 윤리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3) 불교사회경제학
박경준은 응용불교학에서도 불교사회경제학이라는 또 다른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는 1977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과 1993년에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1995년부터 현재까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건의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응용불교 관련 과목들이 개설되었던 사실은 응용불교학에서의 그의 입지를 잘 말해준다. 그는 불교사회경제학 뿐만 아니라 불교생태학에서도 많은 연구 업적들을 남기고 있으며, 근세 서구에서 불교가 개인의 구제만을 위한 종교나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의 종교로 오해되었던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불교를 역사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가르침으로 구현하기 위한 학문적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재수, 「불교와 사회과학 연구 성과와 과제: 지난 40년 동안을 중심으로」, 『한국불교학』 제68집, (서울: 한국불교학회, 2013), p.766.
4) 불교생태학
한국 불교계에서 환경과 생태 및 생명에 관련된 연구는 1980년대 이후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불교생태학(Buddhist Ecology)’이라는 용어는 2000년 이후에야 쓰이기 시작하였으며 불교생태학의 연구는 2004년 10월 ‘에코포럼’이 창립되면서부터 본격화된다. 박경준, 「한국의 불교생태학 연구 동향」, 『철학사상』제41집 (서울: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1), p.154.
불교생태학은 박경준과 김종욱과 같은 동문 불교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으며 그 영역이 점차 확장되어가는 추세이다.
김종욱은 1987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과 1998년에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각각 졸업하였다. 이러한 이력이 말해주듯이 그는 불교와 서양철학에 두루 정통한 불교철학자이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불교사상을 서양철학과 접목시켜 불교의 현대적 의미를 밝히려는 작업을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으며, 불교생태학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5. 불교관련 학회들의 다양화
앞서 언급한 대로, 해방 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중심으로 한 불교학은 1964년 불교문화연구소에서 불교학보를 창간하면서 본격화되었으며, 1973년 한국불교학회가 창립되면서 불교학 관련 연구자도 전국 각 대학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현재 불교 관련 학술지를 발행하고 있는 학회는 대략 30여 곳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6년 5월 현재 필자가 한국연구재단 한국학술지인용색인(Korea Citation Index, KCI)을 분석한 결과 한국연구재단 등재 및 등재후보 학술지들 가운데 불교와 관련된 학술지는 모두 16종이다. 등재지는 불교문화연구원의 『불교학보』, 불교학연구회의 『불교학연구』, 한국불교학회의 『한국불교학』, 국제불교문화사상사학회의 『IJBTC』, 한국정토학회의 『정토학연구』,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의 『선문화연구』,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의 『동아시아불교문화』, 불교미술사학회의 『불교미술사학』, 한국선학회의 『한국선학』, 한국불교미술사학회의 『강좌미술사』, 동악미술사학회의 『동악미술사학』의 11종이다. 등재후보지는 한국불교연구원의 『불교연구』, 보조사상연구원의 『보조사상』, 인도철학회의 『인도철학』,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원의 『불교학 리뷰』, 대각사상연구원의 『대각사상』의 5종이다.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불교학과가 주도해온 불교문화연구원과 한국불교학회 뿐만 아니라 불교학연구회, 불교문화연구원, 보조사상연구원, 한국정토학회, 인도철학회, 대각사상연구원,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한국불교선리연구원, 한국선학회, 한국불교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회,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등과 같이 다양한 학회 및 연구소들이 설립되어 있다. 지면 관계상 이러한 학술단체들의 황동이나 학술지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도 불교학과의 영향이 가장 큰 대표적인 학회로는 한국불교학회, 불교문화연구원, 국제불교문화사상사학회가 있다. 이와 같은 불교관련 학회와 연구소들의 활성화는 그동안 양적으로 늘어나고 질적으로도 성장한 불교학자들에게 활동과 발표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면 이 세 학회들의 창립 배경 및 주요 활동을 대략적으로 살펴봄으로써 학회 내에서 차지하는 불교학과의 역할과 비중을 확인해보자.
1) 불교문화연구원
한국불교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62년 동국대학교에 불교문화연구소(현 불교문화연구원)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1994, p.5)에 따르면, 1983년 불교계를 비롯한 사회전반의 변화 추세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연구 활동을 펴나가기 위해 연구소 규정을 개정하여 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명칭도 불교문화연구원으로 격상·변경하였다고 한다.
가 설립되고, 1963년부터 불교전문학술지인 불교학보를 간행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불교학 관련 기초자료들이 수집·정리되기 시작하였으며, 불교학 각 분야의 연구 논문들이 불교학보에 게재되면서 연구 성과들이 분야별로 하나 둘 축적되기 시작한다.
불교학보는 제1집에 김법린 총장, 조명기 소장을 발행인으로 하였고, 장원규·김잉석·양주동·김동화·김포광·권상로·조좌호·황수영·황성기·이용범·이동림·한상련을 평의원으로, 우정상·안계현·홍정식·이재창·김기동을 편집위원으로 하고 있어서, 당대 학계의 최고 권위를 가진 학자들이 발간을 담당했다. 게다가『불교학보』에 논문을 발표했던 학자들은 불교사학·교학·문학·문화·예술 등 불교학 전반에서 최상의 권위를 가진 인물들이었다. 이들이『불교학보』에 발표한 논문들은 그대로 불교학계의 새로운 학설이 되고 역사가 됐다. 『불교학보』는 2004년 학술재단 등재후보지로 선정된 후 2009년에 등재지로 선정되었다. 불교학보는 2016년 5월 현재 통권 74집까지 발간됐다.
그동안 불교문화연구원을 거쳐 간 불교학자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불교문화연구원이 불교계에 끼친 영향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한국불교사학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조명기를 초대원장으로 김동화, 장관규, 홍정식, 김영태 등 불교학계의 거장들이 불교연구원을 거쳐 갔다. 현재 동국대를 비롯해 불교관련 대학들에서 재직하는 교수들도 불교문화연구원 연구원을 역임했다.
과거에는 연구진도 동국대 교수들로만 구성돼 한계가 있었지만 현재는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와 같은 다른 대학들에도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최근 한국불교학의 다변화와 다각화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불교 체계화를 주제로 연구부분의 인문한국(HK)사업, 집성부분의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ABC)사업, 교육 불교한문아카데미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대학원을 설치해 다른 사회분야와 불교의 융합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이밖에 불교문화연구원은 1973년부터 일본·중국 등 외국 불교연구기관과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국제적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불교학보』와 한국불교학의 연구동향에 대해서는, 이기운·조기룡·윤기엽(2012) 참조.
2) 한국불교학회
불교학이 어느 정도 본 궤도에 올라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불교학계에는 독립된 학회창립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었다. 그동안 동국대학교 내의 불교학과 교수ㆍ강사는 물론 불교학과에서 배출한 상당수의 불교학자들이 전국 각 대학을 비롯한 관련 연구단체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도 철학ㆍ역사ㆍ문학 등과 같은 다른 분야의 학회에 소속할 수밖에 없었던 실정을 감안할 때 더욱 그러하였다. 그리하여 1973년 7월 7일 동국대 본관 교수실에서 동국대 불교대학 교수ㆍ강사 및 불교학과 출신 스님ㆍ학자 등 1백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한국불교학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창립 이후 한국불교학회는 회원 수의 증가와 함께 활발한 학술활동을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학회로 성장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회장은 홍정식(1~6대), 이재창(7~9대), 김영태(10~12대), 김인덕(13대), 목정배(14대), 권기종(15대), 이평래(16~17대), 김선근(18대), 김용표(19~20대)를 거쳐 지금은 권탄준(21대)이 맡고 있다.
한편 한국의 대표적 불교학술지로 자리 잡은 한국불교학회의 학술지 한국불교학은 학회 창립 3년 후인 1975년에야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경제적 여건이 어려웠던 당시로서는 학회의 힘만으로는 학술지를 간행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학회지 발간은 회장을 비롯한 회원의 희사와 불교진흥원 등의 지원을 받으며 지속되던 시기를 거쳐 2016년 5월 현재 제77집까지 간행된 상태이다. 학회지 간행 초기에는 단일 컨텐츠로 구성되었으나 제 25집부터는 내용을 세분화하여 불교교학ㆍ불교사상ㆍ응용불교학으로 구분 편집되고 있다. 한국불교학은 2007년도에 학술진흥재단 등재지로 선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국불교학회의 창립은 불교학의 다변화와 다각화의 신호탄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왜냐하면 이를 기점으로 불교학 관련 연구자도 전국 각 대학으로 확대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3) 국제불교문화사상사학회
국제불교문화사상사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Buddhist Thought and Culture, IABTC)는 국제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여 한국불교학의 세계화를 목표로 2002년 7월에 창립되었다. 이 학회에서 발행하는 『International Journal of Buddhist Thought and Culture』는 최초·유일의 영문불교학술지이다. 2010년에는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학술지로 선정되었다. 지금까지 총 25권의 영문학술지를 발간했으며, 한국불교의 국제화와 불교학의 학제 간 연구의 장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잡지는 200쪽 분량으로 연 2회 발간되며, 해외학자들의 논문을 위시한 10여 편의 논문을 게재해 세계 각국의 중요 도서관과 학회에 발송하고 있다.
발간을 이끌고 있는 임원과 편집위원 역시 IJBTC의 위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발행인 송석구 회장과 김용표 편집장을 중심으로 영국 런던대(University of London)의 카렐 워너(Karel Werner) 교수, 미국 버클리대(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의 루이스 랭카스터(Lewis Lancaster) 교수, 인도 델리대(University of Delhi)의 바트(S.R. Bhatt) 교수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대륙권별로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UCLA)의 로버트 버스웰(Robert Buswell) 교수가 미주 부회장을, 카렐 워너 교수가 유럽 부회장을, 바트 교수가 아시아 부회장을, 권기종 동국대 명예교수가 한국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밖에 미국, 타일랜드, 스리랑카, 대만, 노르웨이, 덴마크 등에서 활동하는 외국학자 10여명과 국내학자 10여명이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세계 저명 학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6년 2월 2일에는 동국대학교의 불교학술원으로 이관되어 세계적인 학술지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ⅥI. 나가는 말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동국대 불교학과의 역사는 바로 한국 불교학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동국대 불교학과는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 등 정치적 격변을 거치면서도 한국 불교학을 리드해왔으며 한국 불교학의 산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동국대 불교학과는 ① 근대 불교학에 대한 자각과 개척(1906년~1944년)의 시기로부터, ② 한국 불교학의 형성과 정착(1945년~1980년)의 시기를 지나서, ③ 불교학의 발전과 전환(1981년~현재)의 현 시기에 이르기까지 불교학의 각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불교학자들을 무수히 배출해왔다. 그리고 현재도 이들은 후학양성과 연구에 몰두하면서 한국 불교학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다. 이들의 활약으로 한국 불교학의 영역이 전통적인 교학과 사학 중심에서 종교학,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미술, 문학 등의 인접학문과의 학제적 연구와 응용실천학 분야로 광범위하게 확장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불교학도 동국대를 벗어나 다른 대학들로 확산되면서 대중화·다변화하게 되었다. 이는 동문 불교학자들의 정진(viriya)과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불교학의 발전과 보급을 통하여 중생구제와 자비(anukampati)의 사회적 실천이라는 붓다의 전도 선언을 충실하게 실현하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동문 불교학자들의 불교학 방법론에 전혀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문제점을 크게 세 가지로 진단해 볼 수 있다.
첫째, 동문 불교학자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주로 맞춤형·통합형·거시적 연구를 해온 측면이 있다. 이는 많은 동문 불교학자들의 연구 영역들이 중첩되는데서 잘 드러난다. 이는 통합불교를 지향하는 한국 불교의 특수한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연구는 한국 불교를 그 콘텍스트로 하면서도 초기 불교, 인도 불교, 남방 불교, 티베트 불교 등과 같은 다른 지역의 불교에 대한 연구로도 관심을 확장하고 이러한 지역의 불교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심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꿔 말하면, 동국대 불교학과가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한국 불교학을 리드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환경에 순응하거나 끌려가는 피동적·맞춤형 연구보다는 객관적 환경을 거스르거나 바꾸려는 적극적·창조적 연구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각고의 노력의 수반되어야만 할 것이다.
둘째, 동문 불교학자들의 연구가 대체로 한문 불전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한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동문 불교학자들이 불교대학 내에서 인도철학과와의 역할 분담을 통해서 자신들은 한국 불교를 그 범위로 하고 그 텍스트로서 한역 문헌을 위주로 하려는 생각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전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에도 해외 유학의 경험이 없는 국내파가 많은 점, 한국 불교의 콘텍스트에서 피동형·맞춤형 연구를 지향한 점 등도 원인들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원초적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산스끄리뜨어·빨리어·티베트어 원전들에 의거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 불교학계의 연구 추세도 그렇지만 한국 불교의 외연을 확장하고 그 내포를 심화하는 측면에서도, 그리고 한문 불전의 의미를 보다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도 그것은 더욱 필요하다.
셋째, 동문 불교학자들이 정작 자신들의 홈그라운드인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안에서 그 학문적 구심을 구축하고 유지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다시 말하면, 동문 불교학자들이 정작 모교 내에서 학문후속세대의 양성과 자신의 학맥을 이어가는 노력에 소홀히 한 측면이 없지 않다. 물론 동문 불교학자들이 모교를 벗어나 전국 각 대학들로 진출함으로써 불교학의 대중화와 대변화에 커다란 공헌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학문의 세계에서도 구심이 없이 원심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원칙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동문 불교학자들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안에서의 학문후속세대의 양성과 자신의 학맥을 이어가는 데에도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 같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동국대 불교학과는 지금 기로(cross-road)에 서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비(非)동대·비(非)불교학과 출신 불교학자들의 성장과 약진, 한국 불교학의 양적인 팽창과 질적인 다변화는 동국대 불교학과에 일종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국대 불교학과는 내부적으로도 사회 전반의 출산율 저하와 인문학의 총체적 위기 속에서 양질의 입학생 감소, 졸업생들의 취업률의 저하, 만학도 대학원생의 증가, 갈 곳 없는 불교학 박사들의 양산 등과 같은 각종 문제들에도 봉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동국대학교가 불교학과 석·박사 과정에 대한 학사관리를 엄격히 함으로써 불교학 박사학위가 희소가치가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불교학과 내부적으로도 박사학위를 교계에서 소임을 맡거나 타이틀을 얻기 위한 수단처럼 인식하는 풍토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풍토가 고착화된다면 불교학과에서 배출된 학자들이 연구 양과 학문적 수준이 전체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끝으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학위 취득자들이 졸업과 동시에 곧바로 독립적인 연구자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동국대학교와 교계는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반드시 부정적이거나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동국대 불교학과가 재도약하는 호기로 삼아야 한다. 무한경쟁 또는 자유경쟁이라는 시대적 트렌드는 이제 한국 불교학계에서도 예외가 아닌 상황이 된지 오래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한국 불교학계에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가 누려오던 영광과 프리미엄에 더 이상 연연하거나 안주하지 말고 자기쇄신과 발전의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 즉 지난 110년의 역사 속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동국대 불교학과가 앞으로도 한국 불교학계에서 정신적 기반이자 영감의 원천이자 롤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불교학을 리드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제행무상(諸行無常, sabbe saṅkhārā aniccā)’이다. 실제 무상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방향에서 나쁜 방향으로 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나쁜 방향에서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도 가리킨다. 무상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불만족스러운 현상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가 있고 정진의 결의를 다지게 되는 것이다. 붓다가 반열반(般涅槃, parinibbāna)에 들기 직전 제자들에게 “형성된 것들은 사라지는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여라.”(vaya-dhammā saṃ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ā) DN.Ⅱ, p.156.
라고 당부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러한 여래의 유훈(Tathāgatassa pacchimā vācā)을 가슴 속 깊이 새기고 앞으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는 과거의 찬란한 전통과 역사를 계승하여 국내의 불교학계 뿐만 아니라 세계의 불교학계까지도 선도하는 학과로 도약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창설 110주년 기념제를 분수령으로 더욱 새로운 중흥과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하는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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