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칠백리 해안길
제1길 ‘역사의 향기가 묻어나는 장승포 둘레길’
거제도의 섬의 위치를 보면 동해남부 지역으로 부산권역(울산, 양산), 마산권역(창원, 진해), 통영권역(고성, 진주)으로 이어지는 트라이앵글지역이다. 올해까지만 해도 거제와 부산이 해상으로 이어져 교통에 어려운 점이 많았으나 올 12월14일 거가대교 개통으로 일대 전환이 요구된다. 우리나라 섬의 크기로 보면 1제주 2거제 3진도 4강화 5남해의 순이다. 우리 거제의 특성을 지닌 섬들과 통영을 단순 비교하여 보았다. 거제도는 여러 가지 지리적 요건과 관광자원이 풍부한데도 관광에 대한 기본 설계와 홍보의 부족으로 점점 쇠퇴해 가고 있다.
제주도가 관광쇠퇴의 길에서 ‘올레길’이라고 하는 관광 상품을 만들어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거제도 해금강, 외도, 포로수용소로 이어지는 관광 상품은 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거가대교도 개통되고 골프장도 개장되고 하면 거제관광은 제2의 도약을 맞이해야 한다. 그 대안 중의 하나가 거제도 칠백리(현 일천리)해안선을 따라 ‘해안길’을 개설하는 것이다.
그 제1코스로 장승포( 능포 마전동 포함)역사 문화의 길을 답사하고자 한다.
◉ 장승포 능포 역사 문화길 답사
♣ 일주 코스: 장승포 1구 바닷가-일본신사자리-장승포해안도로-능포양지암조각공원 (장미공원,늘푸른공원,해맞이공원,잔디공원)-능포체육공원-군부대-양지암등대-능포-능포봉수대-느태가는 길-옥수동시외버스터미널-일본인납골당-거제문화예술회관-애광원-5구방파제-여객선터미널-지심도 여객선 터미널-신부시장-장승포 2구 풍경(중국집, 냉면집, 우체국, 일본집 들)-장승포 수협과 바닷가 풍경- 장승포 1구 등대 ( 총 20km 50리, 4~5시간 )
♣ 장승포 능포 역사 문화길 답사
장승포 1구 바닷가에 주차를 하고 답사에 나선다. 주차를 한 이곳은 본래 갯마을이고 제주도 해녀가 입주한 곳으로 舊村이라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주차장 주변에 장승포 해녀식당이 보인다. 몇 발작 옮기니 가끔 들리는 장어구이 집이 보인다. 장승포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음식점이다. 그 옆에는 장승포비치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에 목욕하러 온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구조가 특이 하여 목욕탕 안에서 밖으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맨몸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니 장승포-부산으로 다니는 쾌속정이 보이질 않는가. 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시 200m 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곳으로 조금 걸어가니 장승포 항구가 한눈에 보이고 그 옆에 총명사라는 절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절은 조선말기에 총명사라는 절이 있어 포교활동을 했으나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1925년 폐절시키고 콘피라신사를 건립하였다. 현재는 콘피라 신사 자리는 축대만 있고 그 옆에 총명사라는 절이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장승포해안도로로 행했다. 잘 포장된 도로 옆에는 사람들이 산책할 수 있도록 정리가 잘되어 있다. 띄엄띄엄 산책하는 이와 도로변에는 이따금씩 주차한 차들이 보인다. 이곳에 낚시가 잘되는 모양이다. 한 1km쯤 걷노라니 능포 양지암조각공원이다. 이곳에서 매년 5월이면 장미 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 장미 상태가 좋지 못한 이유로 지금은 칸나와 튤립공원으로 변했다.
입구에는 자연보호헌장이 위엄스럽게 자리하며 지압코스 옆으로 초등학생들의 사생대회 우수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잔디밭 어귀에는 능포상징인 돌고래 조각이 보인다. 옛날에는 이곳에 돌고래 천지였다고 한다. 지금도 홍포 주변에는 돌고래를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여기서부터 약 300m 거리에 산책로가 있고 이어서 능포 조각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알 뜻 모를 뜻한 조각들이 즐비하고 바다와 잘 어우러져 있다. 그런데 올해 만들어졌는지는 몰라도 조각공원 중간에 공중화장실이 자리 잡고 있어 경관을 망치고 있다.
걸어가는 동안에 일출장면이 연출되었다. 요즘은 중국황사와 기타 여러 이유로 안개가 자주 발생하여 황홀한 일출 장면은 보기가 힘 든다.
조금 걸어가니 체육공원이 있고, 이어서 능포가는 길과 마주 친다. 양지암등대를 가기 위해 계속 직진한다. 거제에서 해송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 중의 한곳이다. 길섶에는 가끔 발풀고사리가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발풀고사리는 다른 고사리에 비해 잎새가 특이하고 뻑세며 크기가 1m 전후로 매우 크다. 계속 가는 길 주변에는 해송으로 어우러져 있다. 한 십 여분 걸어 가다보니 군막사가 나온다. 양지암등대가는 안내판을 따라 계속 가노라니 털머위와 구절초가 나를 반긴다. 12월 초순 이제 가을꽃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으나 여기에는 아직 그 싱싱함을 자랑하고 있다.
양지암등대 가기 직전에 상사암(想思岩)바위를 찾았다. 양지암 동쪽에 있는 이 바위는 옛날 吏部尙書의 딸 菊花라는 처녀가 있었는데 몸종 삼돌이가 짝사랑하다가 바다에 빠져 죽어 실뱀이 되어서 菊花를 괴롭게 하였다는 전설의 바위가 있다. 다시 올라와 양지암 등대에 도달했다. 거제도 최 동쪽 장승포반도의 땅 끝에 파도와 싸우면서 차곡차곡 고여 있는 암벽을 陽地岩이라 부르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함대 91척이 옥포만으로 들어오는 것을 왜수군 초병이 이 바위 끝에서 감시하고 있었는데 짙은 雲海 때문에 발견하지 못하여 소라고동의 나팔로 옥포성에서 분탕질을 하고 있던 왜군에게 알리지 않아 대패하고 말았다.
이곳 양지암 등대의 주변에는 해송이 울창하여 漁附林을 형성하고 한‧난류가 교차하는 곳으로 720여종의 바다 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이다. 망망대해 저 멀리 일본 대마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대마도 생각이 난다.
다시 돌아 나와 능포마을로 접어들었다. 능포라는 동네는 능포정치망 어장(菱浦定置網 漁場)은 국내 제일의 어장이다. 내가 1970년대 초 서울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이곳에서 미역양식을 했던 곳이라 인연이 깊은 곳이다. 능포 어촌으로 지금도 어장이 많이 있으며 바닷고기를 위주로 한 식당들이 즐비하다.
여기서 능포봉수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능포 해안 왼쪽 끝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능포가 거제에서 따뜻한 지역은 아니지마는 이곳은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고 아래에는 털머위가 자생하고 있다. 식물은 대부분 난대식물로 구성되어 있다. 약 200m에서 직진하지 말고 왼쪽으로 올라가면 10여분 거리의 산 정상에 능포 봉수대가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가다 아래쪽으로 하산하면 능포-느태 옛길이 나온다. 조금 가노라니 옛 느태마을이 나온다. 지금은 느태마을은 사라지고 대우조선의 장엄한 광경이 펼쳐진다.
느태방파제에는 지금도 낚시하는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10여분 걸어 올라오니 옥수동 시외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옥수동시외버스 정류장은 대우조선이 들어서면서 생겨난 신흥마을이다. 이곳은 대우조선이 들어서면서 아주 아양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1970년 초까지만 하여도 이곳에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대부분 밭이었다. 100m 걸어오다 ‘공곶이 가는 길’ 식당에서 산위로 일본인 납골당(무덤터)을 답사하기 위해 좁은 골목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납골당은 흔적도 없고 축대만 보인다. 10여년 전만하여도 그 흔적이 있었으나 새로운 집들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보이질 않는다. 이곳 납골당은 1907년 12월 20일 공동묘지 였으나 지금은 그 흔적이 없다. 산골짜기에는 화장장이 있어 그곳에서 화장을 하여 이곳에 납골당을 만들어 공동묘지를 하였으나 일부는 일본으로 이장해 가고 일부는 주인 잃은 묘지만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다시 조금 걷노라니 장승포 입구 두모 고개의 네거리 갈림길이다. 이 고개에는 옛날 長承이 있어 장승포라고 했다고 한다. 길옆에는 거제문화원이 있고, 산 아래에 해성중고등학교가 버티고 있다. 거제문화예술회관입구에 보니 호국영열합동묘지가 있다. 주로 6.25사변 대 전사한 분들이 모셔진 곳이다. 근래에 연평도 폭격사건으로 나라가 어수선 할 때 이곳에 오니 새로운 감회가 든다. 이곳 바로 앞에는 거제문화예술회관이 있다.
거제문화예술회관은 2003년 10월21일에 개관 하였는데, 장승포에 문화예술회관이 건립된 것은 거제시청이 고현으로 옮기면서 모든 관공서가 고현으로 이동함으로써 지역 안배 상 이곳 장승포에 설립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곳 거제문화예술회관옆에는 산비탈에 애광원과 애광학교가 있다. 이 내용은 거제도이야기 ‘거제관광명소’의 11번 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음으로 생략한다.
6.25와 전쟁고아 그리고 김임순여사!!! 그리고 애광원
애광원으로 발길을 돌려 온실에 가서 사진을 한 장 찍고 내려오니 애기동백(산다화)가 추위도 모른 채 희고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애광학교 주변에는 피라칸셔스와 참식나무가 많아 들판의 무법자 직박구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짹짹 거린다.
온실속의 카페, 애빈하우스에서는 계절도 모른 채 온갖 꽃들이 춤을 추고 있다. 크리스마스의 꽃 포인세티아, 계절을 모르는 제라늄, 꼭 인조 식물 같은 화려함을 자랑하는 호접란, 온실 덩굴식물의 왕자 클레마티스 그리고 몇 가지 꽃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다시 내려와 마전고개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거리는 5거리인데 거제대학으로 가서 가실바꾸미에서 돌아오는 방법도 있으나 오늘은 그냥 장승포 여객선터미널쪽으로 행했다. 5구 바닷가(삼밭)쪽으로 가니 방파제와 등대가 있다. 등대에서 해변쪽으로 200쯤 가면 작은 전망대가 있으며 장승포 전경이 보이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장승포 방파제와 등대 오고가는 연락선과 장승포항의 전경을 닮으면 멋진 사진을 얻을 수가 있다. 그리고 이곳은 外海이기 때문에 엄청난 파도가 있어 폭풍같은 파도를 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작은 바위섬을 배경삼아 장노출 하기에도 좋고~~~~.
다시 돌아 나와 장승포여객터미널로 행했다. 12월14일 이면 거가대교가 개통되어 장승포는 죽음의 항구가 될 공산이 크다. 지역 주민들이 단합하여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장승포여객선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니 승객이 한명도 없고 매표소의 아가씨는 한숨만 쉬고 있다. 터미널안의 상점은 2개는 문을 닫고 한 개만 영업을 하고 있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12월 한 달 동안은 배가 다닌다고 계획하고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카페리호 선착장에는 주인 잃은 갈매기만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낮잠을 자고 있다.
12월12일 순회했을 때는 해금강.외도가는 유람선과 지심도가는 여객선은 낮잠을 자고 있었으나 거가대교 개통이 된 후에 다시 가 보니(12월16일) 부산 손님들이 제법 몰려와 터미널이 붐빈다. 언제까지 이런 현상이 일어날지???
잊혀지지 않는 장승포 산사태
장승포유람선 터미널을 지나 거제문화예술회간을 지나 옛날 길인 승용차도로를 걷노라니 옛 거제중고등학교 건물이며 뒤에 장승포시청 자리에 발길을 멈쳤다. 이곳에는 대우조선에서 부지를 매입하여 지금은 장승포주변의 예술단체동아리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 한곳에 아름다운디카세상에 머물고 있는 서성원작가를 찾았다. 우리나라 쾌적사진의 대가이며 사진의 진짜고수이다. 별다른 직업이 없어 사진에만 전념하기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이 많다. 그나마 이곳도 내년에 대우조선에서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고 하니 둥지 잃은 갈매기 신세다. 거제도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안갖힘을 셨으나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거제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니 가슴이 아프다. 현재 거제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 중 전국적인 인물이며 우리나라의 보배이다. 자금만 따라주면 미국에서 전시를 하려고 계획도 했으나 모든 것은 하늘에 맡겨 놓고 때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거제예술단체나 거제시에서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하나 앞이 캄캄하다.
그리고 이곳은 장승포 산사태 일어났던 곳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피해를 준 1959년 9월17일 (음력8.15)사라호이어, 1963년 6월 25일 상오 8시 30분경, 장승포 3구 마을뒷산 약 70m 중턱이 무너져 도로아래 마을을 덮쳤다. 이 사고로 주택 6동 9세대를 완전 매몰시켰다. 주민 61명과 경찰관 9명이 순직했다. 사고 전날부터 하루 동안 500㎜의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24일에 장승포 뒷산이 균열이 가는 것을 발견하고, 인근 주민들이 대피하였다가 25일 아침에 비가 그치는 듯하여 그 틈을 타고 집에 돌아와서 아침밥을 해먹고 짐을 챙기는 찰라“쾅”,“ 와르르”뇌성벽력 같은 소리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무너져 집을 덮쳤다.
나하고 출사를 다니는 변청수씨는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거제중학교에 재학 중 그날은 당번이 되어 학교에 일찍 등교하여 뒷들에 올라가 균열이 된 곳을 보고 있노라니 쾅하는 소리와 함께 산사태가 일어났다. 엉겹 결에 풀뿌리를 잡고 스키타듯이 내려오다 보니 운동장 끝이었고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은 흔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한다. 산사태 현장에는 유족들의 통곡과 애태우는 사람들의 절망과 슬픔은 지옥처럼 음산하였다. 흙투성이에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시체는 알아 볼 수가 없었고, 유가족들은 떨어져 나간 사지를 찾아 흙 속을 파헤치며 확인을 했지만 흙 범벅이 된 시체와 잘려져 나간 팔, 다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가 없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 그 사연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고 한다. 이런 국가적인 위기를 맞아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씨가 ‘한만은 장승포’라는 노래를 남겼다.
한만은 장승포 ‘이미자’
거제도 장승포에 산사태 눈물사태
내 가족 내 부모가 생매장이 웬말이냐
동포여 형제여 통곡소리 듣나이까
한줌의 쌀이나마 수재민을 구합시다
물천지 눈물천지 한많은 영산강아
쓸어간 빈터전에 물새들은 왜 우느냐
언니여 오빠여 이 참사를 아시나요
겨레의 사랑으로 수재민을 도웁시다
빗줄기 눈물줄기 야속한 하늘이여
가난한 내 살림에 풍수해가 웬말이냐
일본인의 어업전진기지 장승포 이리사촌(入佐村)
장승포는 옛날 1구~5구까지 구분되어 있었다. 1구는 구촌이라 하며, 장승포 동편 등대에서 우체국까지, 2구 신부시장, 3구는 舊 장승포시청자리, 4구는 거제예술회관 주변, 5구는 장승포여객선터미널 주변(마전동)이다.
한일합방은 1910년에 조인되었지만 일본인들의 한국 침략은 그 이전부터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일본과 가까운 거제도는 더욱 그러했다. 장승포는 한.난류가 만나는 곳으로 예부터 황금어장이란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에 일본 어민들이 눈독을 들었다.
장승포 신부마을 (현 장승포 1구)에는 일본식 가옥들이 즐비하고 우체국부터 신부시장 주변으로는 일본인들이 설립한 우체국, 병원, 여관 등이 많아 주민들은 이곳을 “이리사무라” 동네라고 불렸다. 이리사무라(입좌촌)은 1876년 12월1일 일본인 오따슈지로와 이리사키요이시스루 두 사람이 거제도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참나무를 심어 목탄을 생산했고, 수산조합을 만들어 일본인들의 이주 기틀을 만들었다.
이리사무라 주변에는 일본인 흔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곳이 더러 있다. 장승포 중앙동 뒷산에는 납골당과 납골단지 30여기가 그대로 묻혀 있으며, 오따슈지로 공덕비, 오따 가족들의 묘지석 등이 있다. (현재는 그 흔적이 거의 없다)또한 일본인들의 가옥과 정원, 도로망 등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현재는 거의 없어지고 집들만 몇 채 남아 있다. 일본인들의 기생집 망월루와 명월루는 흔적이 없으나 일본인 신사 터는 아직도 그 흔적이이 약간 남아 있다.
1945년 제2차세계대전(태평양전쟁)이 끝나자 일본인들은 돌아가고 새로운 장승포항만이 변모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뼈아픈 역사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으나 그 흔적은 아직 남아 있다. 치욕스러운 과거를 묻어두는 것보다 복원이나 다른 방법을 통해 시민교육장으로 활용함이 좋을 상 싶다.
구촌 횟집과 아름다운 장승포 항구
한일합방은 1910년이나 일본은 그보다 50년 전 남해안 일대는 서서히 일본의 침략 야욕에 휘말리고 있었다. 1876년 12월1일 일본 후꾸오까현에 사는 이리사 키요이시스가 거제도로 오면서 장승포항을 둘러보고는 “ 장승포만은 수심이 깊고 일반선박이 드나들기에 좋다. 하지만 태풍이나 강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라고 생각하여 장승포 1구(구촌)와 5구(마전동)쪽에 연장 220m의 방파제를 축조했다. 그러나 자즌 태풍으로 방파제가 훼손되어 1933년 방파제공사를 착공하여 1939년10월5일 준공식을 개최하였다.
사라호 태풍과 매미태풍으로 큰 피해가 있었으나 지금은 보완을 하여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이곳은 外海와 접하기 때문에 물이 항상 깨끗하여 철마다 낚시가 잘된다.
두개의 방파제가 마주보고 있으며 바다를 향해 오른쪽이 5구방파제, 왼쪽이 1구방파제 입니다. 철따라 벵에돔.감성돔.숭어.노래미.볼락.우럭등이 잘 잡히며 내.외항 평균수심은 5~7m, 조류는 완만한 편입니다. 6월말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부터는 숭어가 청개비, 크릴을 물고 늘어져 엄청난 손맛에 많은 사람들이 방파제를 빽빽히 들어차게 되며, 7월~10월 중순까지 벵에돔의 입질과 함께 9월말부터 감성돔 낚시가 시작되지요. 차량을 이용한 진입이 쉽고 장승포항 의 야경이 일품이라서 겨울을 제외하고는 야간 가족나들이 낚시터로서 아주 제격인 곳입니다.
5구 방파제와 1구 방파제 주변에는 싱싱한 횟집이 즐비하다. 특히 1구(구촌) 방파제 주변에는 많은 횟집과 식당들이 많다. 전복전문집, 해녀집, 장어집, 항만식당 등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부산-거제 쾌속정이 다녀 아름다움을 더했으나 거가대교 개통으로 이제는 불꺼진 항구다. 그러나 아직도 외도. 해금강 유람선과 지심도가는 도선이 있으며, 멸치 잡는 철이 되면 항구는 만원이다. 특히 장승포 야경은 끝내준다. 오메가 형태로 생긴 항구에는 거제문화예술회관이 중앙에 위치하며, 양쪽 등대와 항구의 등불은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기가 아쉽다.
~장승포 둘레길을 산책하면서 꼭 둘러야 할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