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핑크돌핀스의 해양동물 이야기 15] 러시아의 바다 쉼터 '델파 센터' - 창고에 버려진 돌고래들을 기억하며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얼마 전 러시아에서 야생 돌고래 구조와 치료 및 방류를 목적으로 한 돌고래 야생방류센터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계획을 추진하는 곳은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세이브 돌핀스’라는 시민단체다.
이 단체 활동가들이 한국을 찾아온 것은 2017년 여름 제주에서 진행된 남방큰돌고래 금등과 대포의 야생방류 때문이었다. 러시아에서도 공연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을 추진하던 가운데 마침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총 일곱 마리의 수족관 돌고래를 야생으로 돌려보낸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보였고,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제주까지 날아와 함덕항 현지에 2주일간 머물면서 돌고래 야생방류의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이들은 호기심이 많았다. 돌고래 야생방류 장소를 왜 제주도 북쪽인 함덕으로 택했는지, 바다 가두리 자연적응 훈련 시작일은 왜 5월로 잡았는지, 왜 훈련은 두 달간 진행되는지, 방류를 위한 적응 기간 먹이는 어떻게 공급하고 어떤 물고기를 주는지, 야생 가두리의 규격은 왜 지름이 22미터이고 모양이 원형인지, 하루의 일과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마지막으로 방류적합성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등 모든 것이 러시아 팀의 관심거리였다. 금등과 대포의 방류위원회 소속으로 역시 현장에 머물던 핫핑크돌핀스가 러시아 팀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을 하면서 2013년과 2015년에 이어 세 번째로 진행되었던 돌고래 야생방류의 노하우를 나름대로 전수해주었다.
러시아에는 한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고 건물을 세워서 붙박이식으로 진행되는 고정식 돌고래 쇼장과,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적당한 장소에 서커스 시설을 설치하고 진행하는 이동식 돌고래 서커스 등 두 가지 형태의 돌고래 쇼가 진행되고 있다. 대규모 자본이 운영하는 고정식 돌고래 쇼장에 비해, 영세한 규모의 돌고래 서커스 유랑단이 각지에서 활개를 치며 바다에서 불법으로 돌고래를 포획해 쇼에 이용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러시아 역시 군사용과 교육 목적이 아닌 돌고래 포획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나 매년 불법으로 포획된 돌고래가 서커스에 이용되고 있어서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세이브 돌핀스다.
러시아에서 본격적인 돌고래 해방운동이 시작된 것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람이 불고 몹시 추웠던 11월 어느날 흑해 부근 농촌 마을 축사에 돌고래들이 갇혀 있다는 제보가 이 단체로 날아든 것이다.
활동가들과 수의사가 찾아가 발견한 돌고래들의 상태는 처참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서 야위었고, 움직이기도 힘든 좁은 웅덩이에서 돌고래들은 척추만곡증과 여러 감염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돌고래들은 개체수가 많지 않아 러시아에서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는 고유종 흑해 큰돌고래였다. 활동가들은 즉시 러시아 당국에 연락을 취해 이들을 몰수하도록 하였고, 돌고래 야생방류센터가 없던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가까운 돌고래 쇼장에 이들을 옮겨서 사육토록 하였다.
러시아 친구들은 이 돌고래들을 잘 살펴보았는데, 아무래도 악명 높은 돌고래 서커스 유랑단에서 사육하던 ‘제우스’와 ‘델파’로 보였다. 야생에서 포획된 제우스와 델파는 죽은 생선을 먹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조련사의 명령을 거부하고 쇼동작을 익히지 않으려고 했다고 유랑단 전직 직원이 세이브 돌핀스 측에 제보하였다. 이 돌고래들은 야생본능에 따라 순치되기를 거부하였던 것인데, 업체 측에서는 돌고래들의 성격이 너무 난폭해서 길들이기가 부적당하다고 판단해 시골마을 창고 수조에 돌고래들을 버리듯 방치해놓고는 다음 도시로 서커스를 하기 위해 떠나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돌고래가 천신만고 끝에 우연히 다시 발견되었지만 이미 건강을 회복하기에는 너무 늦었던 것일까. 쇼장으로 옮겨진지 한 달 만에 암컷 큰돌고래 델파가 폐사하였고 수컷 제우스도 5개월만에 폐사하였는데, 당시 수족관측 수의사도 돌고래에 대한 임상 경험이 없어서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델파는 발견당시 몸무게가 겨우 109kg에 지나지 않아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였기 때문에 회생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에서는 서커스에 동원된 돌고래들을 구조해 다시 바다로 돌려주자는 움직임이 본격화하였고, 세이브 돌핀스가 나서서 모금운동을 진행하며 흑해 연안에 돌고래 야생방류센터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머나먼 한국까지 와서 방류에 필요한 노하우를 배우기도 하였다.
이제 러시아 팀은 약 2년간의 준비 기간을 마치고 흑해 연안도시 소치 인근 앞바다에 돌고래 방류센터가 곧 세워질 것이라는 소식을 알려왔다. 그리고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준 돌고래의 이름을 따 이곳을 델파센터라고 부르기로 했다. 델파센터는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해상 가두리 임대비용만 몇 천만원에 이르고, 그것도 6개월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하는데, 러시아 팀에게 어떻게 이렇게 큰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냐고 물으니, 어느 독지가가 자신이 별장으로 소유한 바다 공간을 내주어서 가능했다고 답했다. 흑해 바다에서 불법으로 포획되어 러시아 전역을 좁은 수조에 갇혀 떠돌다가 그 가혹함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돌고래들의 고통에 러시아의 부호도 공감한 것이다.
지금 러시아 활동가들은 델파센터 개원을 위해 바쁘게 지낸다. 이곳에 핫핑크돌핀스도 초대받았다. 쇼장에서 구조된 돌고래들이 이곳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자연적응을 마치면 다시 바다로 방류되어 마음껏 흑해를 헤엄칠 것이다. 금등과 대포가 야생적응을 마치고 가두리 그물이 열리며 방류되던 날 자신이 자신이 해방되던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던 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러시아 팀은 ‘제돌이’ 방류 성공이 가져다 준 감동을 러시아에서도 이어가겠다고 굳게 약속하였는데, 정말로 이 약속을 지키고 있다. 러시아판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태산이, 복순이를 기대해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