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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교육과 논리 교육 -
박영관
동쪽은 해가 먼저 뜨니 우리가 옳다/ 서쪽은 지는 해 잡으니 우리 공이 크다/ 남북은 갈라져 부라리며 바라보는 데/ 사방으로 갈기진 상처 언제 다스려질까? 단합해도 어려운 시기인데 국민의 마음이 분열되어 아픈 마음으로 시대의 기린아를 기다리며 읊조린다. 동서 화합이 우선인데, 그 중심에는 문화예술인들이 앞장서 승화시켜가야 하지 않을까?
제22대 총선은 끝났다. 이번 선거는 정책 선거로 영혼을 울리는 말은 볼 수 없었고 반사회적 표현이나 막말이 난무하는 말싸움 판이었다. 결과는 야대여소로 끝났다. 지금은 잠시겠지만 태풍 전야처럼 조용한 편이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물밑에서는 국가나 국민보다는 자신들을 위한 수 싸움이 한창일 것이다. 정치가는 국민을 마음 편하게 하고 국가의 미래를 그려야 하는데, 반대로 국민이 이들의 앞날을 걱정하게 하고 있다. 아이러니(irony)하다. 법치는 무너진 지 오래고 파렴치범들이 오히려 큰소리친다. 이런 나라가 지구상에 몇 나라나 될까?
우리나라에도 정치교육과 논리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이성적인 판단은 뒷전이고 붕당의 이념에 몰입되어 판단이 매몰되어 간다. 아쉽다.
스웨덴은 북유럽의 국가다. 수도는 스톡홀름이다. 북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면적은 5,288만 6,072㏊로 세계 49위(2021 국토교통부, FAO기준)이다. 인구는 1,067만 3,669명이며, 세계 87위(2024 통계청, UN, 대만통계청기준)이다. GDP는 5,859억 3,917만 달러로 세계 24위(2022 한국은행, The World Bank, 대만통계청기준)이다. 1인당 GDP는 5만 5,873.22달러로 세계 11위의 복지국가이다. 또한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국민 행복 지수와 반부패지수(국가청렴도 지수)가 최상의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약 80여 년 전만 해도 스웨덴은 가난, 실업, 빈부 격차, 좌우 갈등, 극심한 노사 분쟁 등으로 그야말로 절망의 나라였다. 지금은 모두가 꿈꾸는 최상의 복지국가로 일신(一新)되었다. 이처럼 스웨덴을 일구어낸 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타게 엘란데르(스웨덴어:Tage Fritjof Erlander, 1901∼1985)’라는 정치가이다.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군지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같다. 1946년 45세부터 23년간 총리를 지내며 재임 중, 11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마지막 선거에서는 스웨덴 선거 사상 처음으로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재집권한 후, 후계자 스벤 올로프 요아킴 팔메(스웨덴어:Sven Olof Joachim Palme, 1927∼1986)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떠난다. 드라마틱(dramatic)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20년이 넘도록 장기집권이 가능하도록 스웨덴 국민이 신뢰한 이유가 무엇일까?
변택주(1953∼서울)의 『세상을 아우른 따스한 울림』에 나오는 이야기에 소개된 내용 중 몇 토막이다.
첫째, 대화와 타협이다. 타게 엘란데르는 청년 시절 급진주의 활동을 한 좌파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총리로 선출되었을 때 왕과 국민은 많은 걱정을 했다. 그러나 야당 인사를 내각에 입각하고, 경영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화한 후 노조 대표와 함께 3자 회의로 노사 문제를 해결했다. 그의 대화정치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목요회의’였다. 매주 목요일 보여주기식의 대화가 아닌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 때문에 신뢰하고 성공했다.
둘째, 검소한 삶이다. 그의 아들은 대학 총장을 역임한 후 아버지가 살아온 길을 책으로 발간했다. 그 책 내용에 ‘엘란데르’는 최고 권력자였지만 검소하게 살았다. 총리 시절에도 이십 년이 넘은 외투를 입고 구두도 밑창을 갈아가며 오래도록 신었다. 검소함은 부인도 똑같았다.
셋째, 특권 없는 삶이다. 총리 시절에도 관저 대신 임대 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살았다. 출퇴근도 관용차 대신 부인이 직접 운전하는 차를 이용했다. 1968년 ‘타게 엘란데르’가 총리를 그만둔 후 거처할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당원들이 급히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해 주었다.
넷째, 정직한 삶이다. 아들 부부가 또 다른 일화를 소개했다. 어머니 ‘아이나 안데르손(Aina Andersson, 1902∼1990)’은 고등학교 화학 교사로 남편이 총리를 하고 있던 시절에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엘란데르’가 퇴임한 후 어느 날, 부인은 정부 부처 장관을 찾아가 총리 시절 쓰던 볼펜을 정부에 돌려주었다. 청렴한 공직자의 표상이다. 국민을 위한 그의 헌신은 스웨덴 정치의 교과서로 자리 잡았고 세계 최고의 행복한 나라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이들 부부는 최고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누리지 않았고, 국민만 바라보고 경청(傾聽), 겸손(謙遜), 공감(共感), 봉사(奉仕)의 삶을 천직으로 삼았다. 이것이 원칙(原則)과 상식(常識)의 사회를 만드는 비결이다. 오롯하게 국민만을 생각하고 국민만을 위해 헌신적 삶을 사는 지도자가 우리 곁에 혜성처럼 나타나길 기다린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입법, 사법, 행정은 물론 권력의 4부라고 하는 언론까지 국민만을 위해 봉사하라는 명령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지도자가 반드시 출현해서 G-2로 가는 ‘길잡이’가 되고, ‘국민의 자존감’을 살려야 하는데 그때가 언제쯤일까?
박영관 칼럼-국민만 바라보는 지도자 - 예향진도신문 (yhjin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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