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89/ 어떻게 출애굽 시대에 사울 시대의 왕을 언급할 수 있는가?
그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씨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 그의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의 나라가 흥왕하리로다(민 24:7)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발람을 초청한 모압 왕 발락은 발람과 함께 이스라엘 진영이 내려다보이는 산에 올랐다. 일곱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리며 발람이 저주를 하도록 준비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진영을 본 발람은 감동을 받으며 축복을 선포한다(민 23:7~10). 화가 난 발락은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오히려 축복하였도다"(11절)고 부르짖는다. 발락은 두 번째 시도를 한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진영의 끝만 보이는 비스가산에 데리고 가서 다시 일곱 제단을 쌓고 저주를 부탁한다(14절). 그러나 다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발람은 이번에도 축복의 말만 한다(18~25절). 이에 발락은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 (25절)고 부르짖는다. 그리고 세 번째 시도를 한다. 발람을 바알신 사당이 있는 브올산 꼭대기로 데려간다(28절). 거기서도 전과 같이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린다. 발람은 다시 하나님의 영에 감동이 되어 이스라엘을 축복한다(민 24:1~9).
여기 24장 7절은 발람이 이스라엘을 향해 선포한 세 번째 축복에 포함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에 대한 찬양 중에 “그의 왕이 아각보다 높다”는 표현이 포함된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아각은 이때로부터 거의 400년이 지난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 시대의 아말렉의 왕이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15장 7~8절은 "사울아…아말렉 사람을 치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니 출애굽 시대의 발람이 사울 시대의 아각을 언급하였다는 것은 도저히 연대가 맞지 않는다. 이렇게 어떤 사건에 대한 묘사가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경우를 '시대착오'라고 하며, 흔히 영어발음 그대로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이라고 한다. 이런 사례는 성경의 신뢰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럴 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출애굽기가 사울 시대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은 조선 시대 기사에 '한양'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그건 한양이 서울로 바뀐 다음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출애굽기를 그렇게 보면 모세가 오경을 기록하였다는 전제는 무너지고 만다. 그러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몇 가지 해답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본문이 언급하고 있는 이름이 사실 다른 사람의 이름인데 사본 보존의 과정에서 아각으로 잘못 기재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가능성이 매우 낮은 추측이다. 만일 그렇게 가정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다른 인명이나 지명도 바르게 기록되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둘째는 출애굽 시대에도 아각이란 이름의 아말렉 왕이 있었고 사울시대에도 같은 이름의 왕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가능한 추측이다. 왜냐하면 후대의 왕들이 이전의 왕들처럼 같은 이름을 가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북방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도 초대 왕이 여로보암이었고 13대 왕도 여로보암이었다. 이런 경우는 다른 고대 근동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애굽의 12왕조에서는 아메네헷(Amenennhet)이라는 왕이 네 명이나 있었다.
셋째는 발람의 축복을 실제로 있을 사울 왕의 승리에 대한 예언으로 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위대하신 왕이신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이기실 것을 내다보는 구원사적 예언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이해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첫째는 아말렉은 여호와께서 직접 언급하신 여호와의 적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출애굽 노정에서 아말렉과의 전쟁 이후에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출 17:16)고 선언하셨다. 둘째는 발람이 그 축복의 끝에 "아말렉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민 24:20)고 하였기 때문이다. 발람 자신이 아말렉의 멸망에 대해 예언하였다고 본문이 말하고 있다.
넷째는 '아각'을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왕조에 대한 이름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블레셋 왕들을 아비멜렉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이삭 당시의 그랄 왕도 아비멜렉으로 불렸고(창 26:8), 다윗 시대 가드 왕 아기스 역시 그렇게 불렸다(삼상 21:10). 또 애굽의 왕들이 모두 '바로'라고 불린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네 가지 해석 중 엘렌 G. 화잇은 마지막 두 가지 해석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발람은 이스라엘 왕이 아각보다 위대하고 강대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아각이란 그 당시에 매우 강대한 민족인 아말렉인의 왕들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한 그의 모든 원수를 정복할 것이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그 보좌는 장차 이 세상에 세워지고 그 권세는 세상 모든 나라 위에 뛰어날 것이다.” (부조, 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