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위한 '블루존'을 만들자
“존재 자체로 싫어 오지마”…‘노 시니어 존’이 후려치는 연령차별 [펌]
한겨레신문/ 김 은 형 기자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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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시니어 존’(노인 금지구역)에는 ‘노 키즈 존’ 보다 석연치 않은 이유가 존재한다. ... 카페나 일부 헬스클럽이 ‘노 시니어 존’을 선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늙은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젊은 소비자들이 오지 않는다는 거다. 노인이 옆자리 젊은이에게 다리를 꼬고 앉지 말라고 훈계를 하거나 방해가 될 만큼 큰 소리로 떠드는 것도 아닌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싫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다.
노인들이 헬스클럽이나 수영장 시설을 비위생적으로 쓴다는 주장은 사실 이보다 더 나쁘다. 수영장에 샤워를 하지 않고 들어오거나 샤워하면서 소변을 보는 이용자 통계를 낸다면 젊은 층이 훨씬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할 것이라는 데 내 손가락을 걸겠다. 지저분한 행동을 하는 청년을 보면 ‘저거 돌아이네’로 개별화하지만, 같은 행동을 하는 노년을 보면 ‘노인들은 어쩔 수가 없다니까’로 묶음 후려치기를 하는, 노골적인 '연령 차별'인 셈이다.
어릴 때부터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라, 어른 말씀 잘 들으라고 경로우대 사상을 귀에 못이 박이게 가르치는 사회이건만, 노인 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뭘까.
얼마 전 노년의학 전문의인 정희원 교수(아산병원 노년내과)는 강의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이 비참한 '노년 빈곤의 상징'처럼 이해되곤 하는데, 관점을 바꿔 많은 나이에도 이런 활동이 가능할 정도로 인지력과 운동 능력, 그리고 경제활동 능력까지 갖춘 모습을 존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빈곤의 현실을 가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노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
싱가포르는 생애주기에 맞춰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 건강하게 살기 위한 운동과 생활 습관, 사회참여의 다양한 방식을 만들어 내는 정책으로 유명하다. 오지탐험가로 세계를 돌아다니다 건강장수마을 5군데를 찾아내 ‘블루존’이라 이름 짓고 이 지역들의 특징을 '건강수명 프로젝트'로 개발한 댄 뷰트너는 지난해 싱가포르를 6번째 블루존으로 선정했다.
다른 지역들이 전통문화에서 기인한 '자생적 건강장수마을'이라면, 싱가포르는 정부가 노인들을 운동하고, 잘 먹고, 일하게 하는 정책을 펴면서 자립을 도와, 돌봄과 의료비용을 줄이는 데 성공해 ‘설계된 블루존(Engineered Bluezone)’이라 부른다. 개호보험(일본의 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재정 고갈을 경험한 일본 역시 이러한 정책을 도입해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노인복지는 여전히 돌봄과 의료적 관점으로만 접근한다. 자립성 유지에는 관심이 없으니, 오로지 보험재정이나 세금을 쏟아부어 부양해야 하는 짐덩어리라는 사회적 혐오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노 시니어 존’의 차별과 배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보다 중요한 건, 차별과 혐오를 '시스템'으로 양산해내는 정책적 빈곤의 개선이다.
원글; 김 은 형 기자, <“존재 자체로 싫어 오지마”…‘노 시니어 존’이 후려치는 것> 중에서
출처;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446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