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용식의 시 세계
존재 인식과 애증(愛憎)의 진실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
1. 자아 애증에서 그려진 초상화
현대시의 표현방법과 주제의 창출은 대체로 주관적(主觀的-subject)이거나 객관성(客觀性)에서 현현(顯現)되는 것이 보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작품의 발상에서부터 주제의 투영까지 그 시인의 주관된 체험의 단계를 정서의 중심축에 설정하고 표현하는 언어의 융합도 주관적인 취향이 다양하게 적시되고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현용식 시집『남자가 임신을 한다면』을 일별하면서 우선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것은 현용식 시인의 주관적 사유(思惟)의 지향점이 존재 인식의 문제와 직결된 주관적 발현(發現)에 쉽게 감동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그는 작품의 구상이나 완성의 구도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상성과 현실적 애증이 복합적으로 표현됨으로써 그가 탐색하는 시적 진실을 적나라(赤裸裸)하게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있어서 공감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미 이 시집 ‘서문’에서 명시했듯이 ‘당신 앞에 있는 / 나를 해체하면 / 한 마리의 개미의 분해처럼 / 먼지마저 사라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라는 그의 어조(語調)는 ‘나’의 ‘해체’라는 근원적인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고차원의 지적 심상(心象)의 한 축을 형상하려는 그의 내면의식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그는 존재, 즉 ‘삶’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진행하고 있다. ‘삶이란. / 존재의 갈등과 사랑이라는 애증의 모럴에서 / 물체처럼 잴 수 있는 저울이 있다면 / 한 생애의 삶은 더욱 진지하고 깊어질 것입니다.’라고 그가 인생철학으로 소유한 ‘존재의 갈등과 사랑이라는 애증’이 바로 ‘삶’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의 근저에는 깊게 잠재한 현용식 시인의 지향적인 지적사고의 결실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나’라는 화자(話者)를 통해서 그가 체험한 인생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서 획득한 자아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현용식 시인의 체험도 이와 같은 시간성과 공간적 조합에 의해서 생성한 인생론으로서의 의미를 추적하는 삶의 궤적(軌跡)이 일상적인 정서생활과의 밀접한 상관성을 가지게 된다. 일찍이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하이데거(M. Heidegger-그의 주저서인『존재와 시간』에서는 훗설(E. Husserl)의 현상학에서처럼 ‘존재의 의미’를 중시함)의 말대로 우리들이 너무나 익숙해서 믿고 있다든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명백한 현실이 과거의 궤적으로 재생하는 상황을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꿈같은 느낌을 일키는 것이 시라고 한다. 시인이 말하고 시인이 이렇다고 긍정한 것은 이미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현용식 시인이 이러한 존재(‘나’에 대한 성찰)의 의미를 다음 작품「거울 앞에서」와 같이 시간성과 상호 밀접한 연관을 중시하고 있다. 그것이 그가 추출해낸 존재 혹은 자아에 대한 진솔한 성찰의 진실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올씩
희어져가는 네 영혼의 세치는
누가 만든 시간들의 변질된 젊음이냐
바람이 불지 않아도
길은 구부러지고
한 번도 펴지 못하고 걸어온 그 길
곧고 빠른 고속도로를 두고서
신작로를
덜커덩거리며
숨 가쁘게 달려온 길
네 정의의 길은
얼마나 깊 길래
골처럼 마른 주름이 거울에 박혀 있느냐
바람이 뽑아버린 정수리언덕에
편안히 드러누워 늙어가는 햇살
늙지 않는 거울 속에서
나는 늙어가고.
그렇다. 그는 ‘거울 앞에서’ 반추한 자신의 모습에서 형상화하는 시적 상황(Situation)은 바로 그가 자아에 대한 인식에서 성찰의 단계를 음미하고 있다. ‘시간들의 변질된 젊음’과 ‘골처럼 마른 주름이’ 내포(內包)하는 이미지의 승화는 그가 간직한 인생관과 가치관의 정립을 위한 자화상의 감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늙어가는 햇살’과 함께 ‘늙지 않는 거울 속에서 / 나는 늙어가고’라는 독백 같은 단정으로 시간과 인생이 융합을 이루는 어조로 분사(噴射)하고 있다. 다른 작품「거울」에서도 ‘죽어버린 젊음을 / 꺼낼 수 없는 거울이 // 늙어가는 내 얼굴에 / 주름살을 그리고 있다.’라고 동일한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어서 그가 자아에 대한 현실적(혹은 시적) 집념이 명징(明澄)하게 현시되고 있다.
당신이
빛이 되어
나오지 않는 한
영원히 나를
만나지 못하리라.
--「그림자의 추상」중에서
명함을 정리하다가 사라진 이름을 본다
수첩을 정리하다가 지워야 할 이름을 본다
핸드폰을 체크하다가 통화할 수 없는 이름을 본다
사진 속에
앨범 속에 얼굴은 있는데
명함 속에
수첩 속에 이름은 있는데
이 세상 일찍 떠난 그대들의 계절은......
나도 언젠가 그대들의 계절에 들어가면
남은 자가 내 이름을 서서히 잊으리라
남은 자가 내 이름을 지워버리리라
--「어느 겨울날」전문
여기에서도 그가 천착(穿鑿)하려는 인생의 애증이 어떤 형태의 갈등으로 분화하고 있다. 결국 인간의 생명성에 대한 회의(懷疑)라는 어쩔 수 없는 인식의 수용이 그의 체험적인 사유와 융화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유의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인생론적 메시지는 ‘당신이 / 빛이 되어 / 나오지 않는 한 / 영원히 나를 / 만나지 못’한다는 단적인 어조와 ‘나도 언젠가 그대들의 계절에 들어가면 / 남은 자가 내 이름을 서서히 잊으리라’는 예감의 언어들이 현용식 시인의 애증으로의 심리적 작용이 궁극적으로 창조적(혹은 성찰)인 가치관의 정립과 더불어 확고한 철학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 밖에도 ‘수많은 잎사귀 무리에서 / 나는 언제나 혼자이고 / 외로운 피리처럼 / 한 밤을 지새우는 / 바람소리로 / 문풍지 너머 잠든 네 영혼을 깨우려했다(「두뇌 세탁기」중에서)’거나 ‘오늘 떠나온 여행은 집으로 /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고 / 내가 태어나 사는 것은 /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곳으로 / 가기 위한 여행이다(「지귀도가 보이는 창가에서」중에서)’라는 어조로 자아와의 동화(同化)를 구현하려 하고 있다.
2. 현실 접근에서 현현된 진실
현용식 시인은 다시 현실적 삶과의 접근을 통해서 인생관에 대한 시적 진실을 구가하려는 의식이 현현되고 있다. 삶이란 현존과 밀접한 상관성에서 형성함으로 결국 자아와의 범주(範疇)가 동일한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나’라는 단일 개체가 영위하는 삶이라는 현실을 포괄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은 지적인 사유와 혜안(慧眼)이 필요하게 되며 이것이 작품으로 승화하기 까지는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체험에 대한 상당한 창조가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삶의 전개에는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라는 시간성이 중요한 상상의 중심축을 형성하게 되는데 대체로 살펴보면 회상을 통한 자아의 체험과 현재의 인식이 갈등이나 고뇌를 동반하게 된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하는 지적인 사유가 필요하게 되고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ciousness)은 성찰로 자아를 돌아보게 한다.
현용식 시인은 다음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삶은 / 절반의 추억 / 어둠 저 멀리 /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갈등이 현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문은 현생(現生)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시되는 심성 내면의 조화나 화해를 위해서 절대 필요성을 지닌 심리적인 발원일 것이다.
그는 ‘절반의 상실’이나 ‘흔들리는 / 갈대의 꿈’이라는 절박한 시적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삶에 관한 진지하면서도 간절한 지향적 메시지의 창조에 갈등하고 있음으로 보아진다.
그대 절반의 상실
어디다 두고
아득한 하늘
유유히 떠가는가
산 넘고
물 건너
구름의 길
바람 불어
달빛 일렁이면
흔들리는
갈대의 꿈
삶은
절반의 추억
어둠 저 멀리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반달」전문
자신이 죽은 후 자신이 안식할 영원한 묘를 만들고
살아가는 이,
참으로 죄를 짓고는 그 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맑고 정의롭게 산다는 것의 정의를
몸으로 보여주는 그 할아버지
묘 속에서 금시 나온 살아 있는 유령처럼
이승과 저승의 길을 자유자재로
당신의 마음속에서 사는가 싶다.
--「산자의 묘」중에서
역시 ‘산자’들이 지향하는 현세나 내세에 관해서는 ‘이승과 저승의 길을 자유자재로 / 당신의 마음속에서 사는가 싶다.’와 같은 어조로 인식을 단정하는 사유로 변전하고 있다. 이는 ‘맑고 정의롭게 산다는 정의’에 대한 현실적 고뇌가 투영되어 우리 인간들이 ‘살아있는 유령’이라는 허무로 변질되지 않도록 처방하는 사유의 일단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삶에 대한 실제와 이상(시인의 상상) 사이에는 현용식 시인이 갈구하는 화해의 의식이 존재한다. 그는 ‘억겁의 윤회가 오늘의 인연이라 / 비로소 지금 당신을 만납니다(「석공-금능석물공원 명장 장공익 선생」중에서)’는 ‘윤회’와 ‘인연’이 ‘억겁’이라는 시간성과 동질로 분화할 때 공감대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독일의 최대 문호 괴테(J.W. Goethe)가 말한 바와 같이 삶의 기쁨은 크지만, 자각이 있는 삶의 기쁨은 더욱 크다는 명언이 무색할 정도로 작금(昨今)의 현실은 불확실성시대에서 방황하거나 미지의 또는 미확인의 불안과 갈등요인들이 상존하기 때문에 시인들의 자각은 인간의 삶에서 지적인 자양(滋養)의 충전을 위한 탐색을 지속적으로 생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심리적 현상으로 현시(現示)되는 것이 기원의 의식이다. ‘고래상어 따개비귀상어 바다이구아나를 초대하고 / 바다 팽귄과 노래 잘하는 군함새를 불러서 / 시원의 파라다이스를 노래하고 싶어라 / 저녁놀에 물든 파도가 칠 때 / 한 잔의 황혼을 술잔에 담아 / 말없이 당신에게 건네고 싶어라.(「갈라파고스를 그리다」중에서)’거나 ‘보름달이 뜨면 / 천국의 사다리를 타고 / 달에 오르고 싶다 /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 사랑을 주고 / 악마가 전쟁을 끝내고 / 춤을 추도록 / 천공의 북소리 울리고 싶다(「북치는 소년의 꿈」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싶다’는 어휘로 자신의 진정한 내면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심저(心底)에 내재된 시적 진실의 구현을 위해서 실재(實在)의 사물과 관념적 이미지를 통해서 지향성 의지를 분사하고 있다. ‘파라다이스’ 꿈꾸나 ‘천국의 사다리’를 희구하는 것은 단순히 이상향(理想鄕)의 동경이 아니다. 더욱 원대하게 그리고 관활하게 전개되는 현대인들의 고뇌와 번민을 화해하려는 시인의 창조정신이 용해(溶解)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용식 시인은 이처럼 삶의 의식에서 추출한 다변적인 현상들을 융합하고 조화하기 위해서 자주 시사성이 짙은 사회문제들을 제기하여 그 현장에서 탐색하는 진실을 삶과 결부하는 시법도 현현되고 있는데 작품「임진각의 새」「청주여자교도소」「빛의 살인」「신종플루라는 복사기」「쓸개없는 말」「안개낀 공항에서」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그의 생활현장인 ‘제주’에 관한 소재와 주제를 투영하여 역시 공감의 영역을 확산하는데「꿈꾸는 섬-이어도」「이마 넉들라 이마 넉들라」등에서 시혼을 이해할 수 있다.
3. 서정적 사색을 통한 자연관
현용식 시인은 어쩔 수 없는 서정 시인이다. 그가 취하는 소재에서부터 주제의 창출은 그가 순정적 이미지의 투영으로 우리 인간들과 접맥시키는 휴머니즘적 정서를 배제하지 못한다.
우선 그는 자연에 관한 응시(凝視)를 통해서 인간의 생명이 영위되는 시간성 혹은 공간의 개념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프랑스의 사상가 몽떼뉴(M.E. Montaigne)의 언지대로 인간의 모든 일에 있어서 자연이 좀 거들어 주지 않으면 인간이 영위하는 기술이나 기교는 조금도 진전을 보지 못한다는 자연관을 현용식 시인도 그의 시적 진실의 탐구에서 중요한 사유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봄이 고프다는 이유로
이 봄에 태어나는
생명을 꺾을 과분한 자유가
우리에게 있는가
봄 하나 꺾을 때마다
한번 씩 허리를 숙여
대지에 절하는
고사리 꺾는 군상들
긴 겨울지나
봄이 고프다는 이유로.
--「고사리 꺾는 군상들」전문
새들은 몇 그람의 영혼으로
얼음처럼 시린 겨울하늘을 날까
하얗게 배를 갈라 창자를 들어낸 겨울바다
그 위를 나는 괭이갈매기
골공(骨空)의 새들이 날아가는 허공
영혼의 날개로 비행을 하네.
--「영혼의 날개」전문
그렇다. 그는 생명과 영혼을 시공(時空)의 시적 설정으로 서정의 원류를 구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봄=생명’이며 ‘허공=영혼’이라는 등식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처럼 서정시(Lyric)는 서사시와 극시와 함께 예부터 중시하는 대목이지만, 우리의 고전이나 현대적 감응(感應)에서도 서정적 이미지를 근원으로 하는 경향을 많이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정서의 자연적인 흐름이며 사회의 복잡화 따른 비합리적성에 대한 순화의 요소가 많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용식 시인은 자연 속에 동화(同化-Assimilation)해서 그가 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를 시도하고 있다. ‘가을날 / 나무들이 바람에 쓰는 시 / 곱게 물들이며 / 엽서에 쓰는 시 / 사랑하는 사람아 / 먼 산에 노을처럼 / 단풍들거든 / 그대를 위해 쓴 시라고 / 읽어주게나(「단풍」전문)’라는 ‘단풍’과 ‘시’가 조화를 이루는 서정적 이미지가 충만되어 있다.
그는 다시 ‘눈처럼 녹아버리는 / 생의 한순간 / 사랑한다고 절규하는 / 그리움의 노래를 / 허공에 부르다 가는 / 바람 같은 삶(「바람개비의 노래」중에서)’이라거나 ‘그대 손잡고 있으니 / 섬을 넘어온 바람에게서 / 바다 냄새가 난다 / 파도 소리가 들린다.(「손을 마주 잡은 풍경」중에서)’, 또는 ‘솔가지를 자르는 / 엄동설한의 칼바람 / 그 혹한에서 / 쓰러지지 않는 너는 / 타오르는 가뭄에도 절규하지 않았다(「월령리 선인장」중에서)’는 등의 어조에서 화자인 ‘나(혹은 ‘너’)’는 시적 상황에서 자연 속에 시인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투사(投射-Project)의 시법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을 인간화하거나 인격화 하는 것을 우리는 감상적 오류(誤謬)라고 한다. 우리 시인들은 일반적으로 자연에 관해서는 동화와 투사를 적용해서 자연시 혹은 서정시의 창조를 구현하고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4. 해학(諧謔) 혹은 반어적 시법
현용식 시인에게서 특이하게 발견되는 시법에는 해학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 작품「남자가 임신을 한다면」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의 해학은 넘쳐나고 있다.
해마처럼 남자가 임신을 한다면
이 세상에
죄는 적어지리라
해마처럼 남자가 아이를 낳는다면
자궁이 아니고
뱃속의 새끼주머니에서
캥거루마냥 나오리라
해마처럼 남자가 아이를 양육한다면
이 세상은 더욱 평화롭고
전쟁은 적어지리라.
이 세상에 여자는 멸종하고
남자들만 있다면 어랭이처럼 10여분내로
그 수의 반은 여자로 변할지도 몰라
해마처럼 남자가 임신하는 별이 있다면
그 별의 여자들의 자궁엔 푸른 이끼 같은
곰팡이들이 살지도 몰라
해마처럼 남자가 임신하는 별에는
초록색 인간들이 살지도 몰라
슬플 땐 파란눈물 흘릴지도 몰라.
그에게서는 ‘해마처럼’이라는 직유법으로 반어적 시법으로 현실을 비꼬는 아이러니(Irony)를 접할 수 있다. 그가 굳이 이 작품을 시집 제목으로 명명한데는 절실한 연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선 그가 구사하는 언어나 전하려는 메시지가 통쾌하다는 점을 간과하지 못한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에서도 ‘죄’나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도 그러하려니와 그가 작품에서 주(註)를 붙여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해마’는 암컷의 알이 수컷에 수정되고 ‘어랭이’는 암컷의 개체수가 적어지면 바로 수컷이 암컷으로 변하는 형상에 착안하고 풍자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시의 멋을 살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다음과 같은 어조에서도 진지하게 살필 수 있어서 그가 현대시에서 한 시법으로 적시하여 시적진실의 구현에 기여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적인 모순성이나 그 인물들에 대해서 보편적인 일상과(혹은 그의 정서와)반대되게 표현해서 내면에 잠재해 있는 조소(嘲笑), 야유(揶揄), 우롱(愚弄) 등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구실잣밤나무는 참 이상해요 / 바람이 가지를 붙들고 흔들 때 마다 / 살아 있는 정충들 이 꽃잎처럼 날려요 / 아이를 낳지 않는 불임의 시대에 / 정충보국(情蟲保國)의 신념이라 나요 / 플레이보이 표지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 한꺼번에 수많은 여자들을 녹여버려요. (「구실잣밤나무」중에서)’
- 바람에 / 하늘거리는 / 꽃잎처럼 / 언제나 향기로운 여자라면 // 오로지 / 목을 세우고 / 한평생 님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라면 // 밤이면 / 하얀 드레스 입고 / 임만을 기다리는 / 달맞이꽃이라면 // 그런 여자가 끓여주는 라면이라면 / 그런 라면을 먹을 수 있는 남자 라면. (「라면을 먹던 중」전문)’
- 아무리 용한 무당이라도 자신의 / 생명은 구할 수 없나 봐요 / 깨끗함도 나의 욕심이란 걸 / 그 욕심이 한 생명을 죽인다는 걸 / 왁스 같은 세제는 쓰지 말라는 걸 / 무당벌레는 내게 가르쳐 주었지요 / 참으로 용한 무당벌레였어요. (「무당벌레가 나에게」중에서)’
- 삶은 / 그 죽어버린 삶은 / 너의 뱃속에 침입하기 위해서 / 태어난 알이다 / 비명도 없이 죽어버린/ 임신중절의 태아다 / 백주에 / 마취되어 거세당한 / 사자의 불알이다 / 삶은 / 외롭게 사라져가는 /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삶은 계란의 언어」전문)’
보라. 현용식 시인은 이렇게 잡다한 일상적인 사회적 모순과 갈등들에 대해서 풍자하거나 역설적, 반어적으로 묘사하여 시적의미를 더욱 상승시키거나 고양된 그의 사유가 더욱 승화하도록 유로(流露)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언어의 변용에도 익숙해서 음식의 ‘라면’을 우리 문법에서 말하는 문장의 연결어미 ‘.....라면’으로 풍자하여 ‘그런 여자가 끓여주는 라면이라면 / 그런 라면을 먹을 수 있는 남자라면.’이라든지 ‘삶은 계란’을 ‘삶은 / 그 죽어버린 삶은’이라고 역설적으로 묘사하여 시적 묘미를 돋보이게 형상화하고 있다.
“나는 <말>이다” 앞으로는 절대로 <말>띠들하고는 <말>고기 먹으러 가지 않는다고,
근데 왜 나는 말도 아니면서 “나는 <말>이다”라고 말했는지 <말> 같지 않는 말을 해서
나는 참 우스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말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말 밖에 없으므로>
사람들의 말은 <말 같은 말>이 아님을
말이 하는 말밖에는 말이 아니었다
나의 말은 슬퍼서 울었다 나는 슬퍼서 우는 말이 되어 버렸다
쓸개 없이도 살아가는 그 슬픈 말.
--「쓸개 없는 말」중에서
여기에서도 ‘말’을 놓고 정서의 분쟁이 야기된다. 일상적 언어와 동물의 ‘말’이라는 동음어(同音語)에서 분사하는 역설은 과히 초월적인 의미로 우리들에게 충동하고 있다. ‘ <말> 같지 않는 말을 해서 / 나는 참 우스운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어조는 바로 사회와 인간을 동시에 비평하는 그의 지적인 사유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형용식 시인은 대체로 이 시집 『남자가 임신을 한다면』에서는 자아의 애증을 정서 중심에 축을 형성하여 현실적 접근을 통해서 ‘나’의 삶이라는 근원을 탐색하고 다시 그의 서정적인 자연관을 중시하면서 그가 인식하는 근본적인 인생의 가치관 창조에 시적인 염원을 현현하고 있다.
이러한 대현실관이 고뇌와 갈등의 요인들과 상충(相衝)함으로써 재발견하는 진실 그 진솔한 인본주의(Humanism)의 탐구에 그의 열정이 작품으로 분사할 때 그는 다양한 시법으로 우리들을 매료(魅了)시키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반어적 시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해학이나 역설을 통해서 그가 현시하는 진실은 현대시가 간직한 그 위의(威儀)에 부합하는 인생 비평적 메시지이며 새롭고 지향적인 인간의 정서를 환기하는 그의 노력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현용식 시인의 철학에는 ‘허공, / 영혼 희망 사랑 따위 추상명사가 / 그 허공에서
당신을 부르는 / 미완의 언어로 돌아다닙니다.(‘서문’에서)’ 라는 ‘미완의 언어’를 완성하기 위해서 오늘도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시에서 유추하는 주관과 객관의 상호 융합과 화해를 위한 조화의 주제와 언어가 합일할 때 좋은 작품이 창조된다는 만고의 진리를 절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란 인간의 감정의 해방이 아니고 감정으로 부터 탈출이며 인격의 표현이 아니고 인격으로부터 탈출이라는 T.S. 엘리엇의 교훈을 다시 새겨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리하여 시인과 독자들이 함께 감응하는 사물과 관념의 이미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형이상시(形而上詩-Metaphysical Poetry)의 개념을 실현하는 원대한 연구와 노력이 우리 현대시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숙명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