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다드의 서, 제27장 허구의 권위에 대하여
그림 - 칼릴 지브란...많은 사람들은 죽어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소수다. 그들은 삶의 기쁨을 춤 추고 있다.
축제가 하나의 추억거리가 될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일곱 사람은 독수리 둥지에서 스승 주변으로 모였다. 동행자들이 축제날의 인상 깊은 사건을 회고하고 있는 동안 스승은 침묵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스승의 말씀을 듣고 보내 주던 군중들의 열렬한 열광에 경탄했다. 다른 사람은 방주의 금고에서 수십 가지 부채 문서를 끄집어내 사람들의 눈앞에서 파기하고, 지하 저장고에서 수백 통의 술 항아리와 술통을 실어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수많은 값비싼 공물을 봉납한 자들에게 되돌려주는 동안 샤마담이 보여 준 이상한 행동에 대해 언급했다. 왜냐하면 그때 샤마담은 당연히 반사적으로 보여 주리라 생각했던 행동을 전혀 하지 않고, 말하거나 움직이지도 않고, 눈물만 펑펑 쏟으면서 모든 일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벤눈은 군중이 떠들썩한 환호로 환영한 것은 스승의 말씀이 아니라 면제받은 빚과 되돌려 받은 공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나게 먹고 마시는 것 이상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 군중에 대해 스승이 쓸데없이 정력을 낭비했다고 말하면서 은근히 스승을 비난하기도 했다. 진실은 만인에게 차별없이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소수에게만 말해야 한다는 것이 벤눈의 주장이었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바람에 실린 그대의 숨결이 누군가의 가슴에 깃드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누구의 가슴인지는 묻지 말라. 다만 숨결 자체가 순수한지 순수하지 않은지에만 주의하라.
그대의 언어가 누군가의 귀를 찾아내는 건 확실하지만, 누구의 귀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언어 자체가 ‘자유’의 참된 심부름꾼인지 아닌지에 주의하라.
그대가 말하지 않은 생각이 누군가의 혀를 타고 말해지는 건 확실하지만, 누구의 혀를 통해 말해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생각 자체가 사랑의 ‘이해’로 비춰지고 있는지 아닌지 주의하라.
어떤 노력이라도 쓸데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뿌려진 씨앗 중에는 땅 속에서 몇 년씩 묻혀 있는 것도 있지만, 적당한 시절이 찾아오면 바람이 한번 숨쉬기만 해도 재촉받아 재빨리 싹을 틔우는 것도 있다.
진실의 씨앗은 만인과 만물 속에 있다. 그대들이 할 일은 진실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싹 트는 데 가장 적절한 시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영원 속에서는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 그러니 인간에게 자유가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 오히려 모든 것에 대해 -바라는 자에게도 바라지 않는 자에게도 똑같이- 평등한 신념과 열정을 갖고 해방의 소식을 전하라. 왜냐하면 바라지 않는 자는 필경 바라게 마련이며, 날개가 생기지 않은 새끼는 언젠가는 태양 아래서 몸에 날개를 달게 마련이며, 그 날개로 하늘 끝까지 비상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미카스터가 물었다.
“오늘까지 몇 차례 여쭤 봅니다만, 포도제 전날 이상하게 실종되셨던 비밀을 분명히 밝혀 주시지 않으니 저희는 우울합니다. 저희들은 스승님의 신뢰를 받기에는 아직 부족한 걸까요?”
미르다드가 말했다.
“나의 사랑이 충분하니, 분명 나의 신뢰도 충분하다. 신뢰는 사랑 이상의 것일까, 미카스터? 나는 아낌없이 내 마음을 그대들에게 주고 있지 않은가?
내가 어떤 불쾌한 상황을 말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샤마담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고 싶어서였다. 왜냐하면 그날 밤 나를 이 독수리 둥지에서 억지로 끌어내 ‘검은 구덩이’에다 방치해 놓은 자는 두 명의 이방인에게 도움을 받은 샤마담이었으니까. 불행한 샤마담이여! 샤마담은 ‘검은 구덩이’조차 미르다드를 비단결 같은 손으로 받아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마법의 사다리를 마련해 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일을 듣고 우리 모두는 외경스런 생각이 들었으며, 경악한 나머지 말문이 막혔다. 어느 누구든 ‘검은 구덩이’에서는 완전히 끝장났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스승이 어떻게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올 수 있었는지 감히 묻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 모두는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다.
“어째서 샤마담은 스승님을 해치려 했을까요? 스승님은 샤마담을 사랑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샤마담이 해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샤마담이 해치고 있는 것은 샤마담이다.
장님에게 권위라는 옷을 입혀보라. 그러면 그들은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눈을 몽땅 도려내고 싶어할 것이다. 그들이 앞을 볼 수 있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한 자들의 눈까지도.
노예에게 단 하루라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주어보라. 그러면 그 노예는 이 세계를 노예의 세계로 바꿀 것이다. 그가 맨 처음 채찍질하고 멍에를 지우는 사람은 그의 해방을 위해 끊임없이 분골쇄신한 사람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권위는 그 기원이 어떻든 허구이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권위는 그 허구의 본질을 엿보지 못하도록 박차를 가하고, 칼을 휘두르고, 사치스럽게 행렬를 꾸미며, 눈부시게 화려한 의식을 거행한다. 권위는 흔들리는 왕좌에 총과 창을 가지고 올라간다. 타인의 눈에 자신의 비참한 빈곤을 보이지 않기 위해, 권위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부적과 흑마술(黑馬術)의 문장(紋章)을 가지고 허영에 가득 찬 영혼을 장식한다.
권위를 떨치고 싶은 자에게, 권위는 눈가리개이자 저주이다. 권위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스스로를 지키려 한다. 설령 그 희생이 권위를 지닌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권위를 수용한 자를 파괴하고, 나아가 그 권위를 거부한 자를 파괴하는 끔찍한 것일지라도.
권위에 대한 욕구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는 혼란 속에 있다. 권위를 가진 자는 권위를 지키기 위해 늘 싸우고 있다. 권위를 갖지 못한 자는 권위를 가진 자의 손에서 권위를 빼앗기 위해 늘 싸우고 있다. 그 한편에서 인간, 즉 배내옷에 싸인 신은 전쟁터에서 말과 발굽에 짓밟히고 무시당하고 있으며, 사랑도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그 싸움은 몹시 격렬하고, 싸움하는 이는 너무나 피에 미쳐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허구의 장식으로 꾸며진 권위의 얼굴, 즉 속이 보이지 않는 그 가면을 벗겨내 괴물 같은 추악함을 백일하에 드러내려는 자는 어쨌든 아무도 없다.
믿으라, 벗들이여.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성스러운 이해’의 권위를 제외하고는 어떤 권위도 눈 하나 깜박일 만한 가치가 없다. ‘성스러운 이해’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일단 ‘성스러운 이해’에 이르면, 그대들은 ‘시간’이 끝날 대까지 그것을 지니게 된다. 그 ‘성스로운 이해’는 세계안의 모든 군대를 합쳐도 미칠 수 없는 강대한 힘으로 그대의 언어를 채우고 있다. 그것은 세계 안의 권위를 모두 합쳐도 꿈조차 꿀 수 없는 멋진 은혜로 그대의 행위를 축복한다.
왜냐하면 ‘이해’ 가 그 자신의 방패요. ‘사랑’ 은 그의 힘센 팔뚝이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이해’ 는 박해하지 않으며 독재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성스러운 이해’ 는 이슬처럼 인간의 메마른 마음에 내린다. 또한 자신을 거부한 사람도 자신을 받아들인 사람과 똑같이 축복한다. 자기 내부의 힘을 완전히 확신하기 때문에 어떠한 외부의 힘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또한 전혀 두려움이 없으므로 어느 누구에게도 공포(恐怖)를 무기로 쓰지 않는다.
세계는 빈곤하다. 아아, ‘이해’에 너무나 빈곤하다. 그래서 세계는 그 빈곤을 허구의 권위가 드리워진 베일 뒤쪽에 숨길 곳을 찾고 있다. 그리고 허구의 권위는 허구의 권력과 공격 및 방어의 동맹을 맺는다. 이 두 가지는 공포를 사령관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공포는 이 두 가지를 파괴한다.
연약함을 지키기 위해 연합하려고 하는 자는 늘 약자가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세상의 권위와 피비린내 나는 권력은 공포의 채찍 아래서 손에 손잡고 무지(無知)에 대한 매일매일의 세금을 투쟁과 피와 눈물로 지불한다. 그리고 무지는 그것들 모두에게 다정히 웃음지으면서 ‘잘했다!’ 라고 말한다.
샤마담이 미르다드를 벼랑 밑으로 던졌을 때, 그는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러나 샤마담은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아닌 자기 자신을 벼랑에 던져 넣었다는 것을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왜냐하면 벼랑은 미르다드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샤마담은 어둡고 미끄러운 벼랑을 오르기 위해 길고도 괴로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의 모든 권위는 어린아이의 속임수이다. ‘이해’가 아직 어린아이의 수준인 자들은 제멋대로 놀도록 내버려 두라. 그러나 그대들는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을 강요하지 말라. 힘에 의해 강요된 것은 조만간 힘에 의해 박탈되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에 대한 어떤 권위도 찾지 말라. 그 같은 권위에 대해서는 ‘전능의 의지’가 주인이다. 또 인간의 소유물에 대한 어떤 권위도 찾지 말라. 인간은 자신의 생명과 똑같이 자신의 소유물에도 족쇄를 채우고 있으므로, 자신의 족쇄에 간섭하는 자를 신뢰하지 않고 미워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고 ‘사랑’과 ‘이해’로써 사람의 마음에 통하는 길을 찾아라. 그 길이 일단 마음에 자리 잡으면, 그대들은 인간의 족쇄를 풀기 위한 일을 더욱 잘 할 수 있다.
‘이해’ 가 등불을 들고 비춰주고, ‘사랑’ 이 그대의 손을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