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축구와 나의 산행>
- 금북15회차(백화산 구간)
산행일 : 2018.6.24
(사진출처 : 청노루 앨범)
이번에도 ‘경우의 수’ 놀음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대한민국 월드컵축구 말이다. 사실 사형수가 형장에 묶여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한양에서 주마가편으로 말 달려온 임금의 신하가 “어명이오 멈추시오!” 정도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16강 탈락은 확정적이다. 2002년 히딩크라는 영웅이 대한민국 축구를 4강까지 끌어올려 놓은 이후 전 국민은 우리의 축구 실력이 월드클래스라고 자만하면서 기대치는 절로 높아져왔다. 이제는 냉정하게 우리 축구의 현실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고깃집 불판 갈듯 밑바닥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고 국민들도 10년은 느긋이 기다려주는 인내심을 보여야 한다. 언론이나 각종 미디어에서도 요행을 바라는 경우의 수를 가지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걸 요즘 신조어로 ‘근자감’이라던데~)만 불어넣지 말고 ‘우리
축구는 실패했습니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해야 합니다’라는 통찰과 반성의 기사는 왜 못 올리나. 정 많고 금방 잊어버리는
우리들을 언제까지 희망고문으로 괴롭힐 건가. 솔직히 말해서 욕할는지 모르겠지만 난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 왜? 이 판국에 만약 16강에
오르는 잭팟이 터지게 되면 우리는 광란의 도가니에 휩싸여 고질병에 대한 처방은 묻히게 되니까. 혹시라도
기적이 일어나면 이 글의 의미가 퇴색될까 봐 지금 글을 써보는데 약간 격해지는 느낌이라 지난 산행에 대해 얘기하면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싶다.
열흘 전에 ‘정맥길’ 대원들과 금북정맥 태안 지역 백화산을 그리고 지난 일요일엔 ‘제2산악클럽’ 멤버들과 단양 도락산을 걷고 왔다. 나에게 있어 이 두 등산클럽은 서로 보완성이 있으면서 각자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어 모두 애착이 간다. 먼저 ‘정맥길’클럽 얘기를 해보겠다. 무더운 날씨에 백화산 구간 24km를 걷다가 지쳐 막판 4km 정도
남기고 8시간 산행으로 매듭지었다. 남은 거리는 마을을 지나는 평지라 별 의미가 없다는 현명한(?) 판단을 내린 대장이 고맙기도 하지만 겉으로는 아쉬움을 드러내는 ‘나’라는 놈은 언제쯤 그 가면을 벗을지 모르겠다 ㅋㅋㅋ.
소위 말하는 9정맥을 완성한다는 과제를 안고 산행을 한 지 어언 4년이 넘었다. 그동안 25명 내외 고정 멤버가 유지되어오다 보니 간혹 들어오는 분들이 스스로 이방인처럼 느낄 때도 있겠지만 대원들의 역지사지 심정과 관심으로 이내 한 팀으로 녹아든다(아닌가?ㅎㅎ). 그리고 항상 28인승 리무진으로 쾌적하게 이동하며 차 안에서는 극장처럼 조용한 상태를 유지한다. 철저하게 닉네임+님으로 호칭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다소 거리감은 있으나 나이에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존중하고 매너를 유지하게 된다( 나는 좀 아니지만 ㅋㅋㅋ). 그러다 보니 아직 본명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산행은 구간 전체
계획에 따라 기상 상황에 무관하게 진행하는 편인데 사실 단체산행에 관해 내 개인적인 생각은 사전에 예지한 위험요소는 피해가는 게 옳다고 본다(작년 7월 집중폭우 때 청주 지역에서 제가 험한 꼴 당했었죠 ㅋㅋ)
다들 산행 전에 공부를 하고 와서 그런지 산행에 대한 브리핑도 없고 준비운동도 안전에 대한 요구도 없다. 그냥 들머리고개와 날머리고개 정보가 전부이고 어쩌다 친절하게 탈출 가능지점 알려주는 정도로 끝이다. 한마디로 각자 알아서 가라는 식이다. 물론 잘하는 게 아니다. 고수라도 원칙과 기본은 몸에 배여 있어야 하고 행동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 팀은 대장과 총무 외에는 조직이 없다. 뒤에 거론하는 제2산악클럽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장기집권하고 있는 총무가 실질적으로 모든 기획을 도맡아 하며 살림 능력이 뛰어나 대원들은 조금 비싼 회비를 내기만 하면 전혀 신경 쓸 일이 없다(28인승 리무진에 하산 후 식사의 질이 고급이라 회비는 그에 준하는 금액임~~) 지각을 하면 벌이 있는데 귀경길에 아이스크림 사야 한다(특히 이 글 쓰는 사람 아이스크림 무지하게 쐈슴다~ㅋㅋㅋ).
산행 스타일은 아무래도 장기 레이스로 진행하는 목적산행이고 산행거리와 진행시간도 길어 체력적 부담에선지 말이 적어지고 각자 침묵모드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오만 잡생각 다 하면서 걷다가 머리가 맑아지는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사람의 뇌는 오히려 조용히 걸을 때 더 활발하게 기능을 발휘한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다. 후미의 다소 풍류스런(그냥 음주라 하면 되는데 왜 이리도 힘들게
표현해야 하나ㅋㅋㅋ) 산행이 전체 산행시간에 영향을 주는 경향이 있어 선두와 간격을 좁히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글쓴이 앨범_도락산 자락 음식점에서)
제2산악클럽에서는 매주 넷째 주말 산행을 진행하는데 이번 도락산 산행은 더운 여름 땡볕에 힘든 여정이었다. 목적산행 하는 팀이 아니기 때문에 산행지는 그때 그때 정하는 경우가
많다. 7월에 내린천 래프팅, 8월에 양평에 계곡 물놀이
식으로 계절에 따라 대원들 입맛에 맞춰 정한다. 무미건조한 정맥산행보다 얼마나 다양하고 즐거운가. 정맥에서는 산행 능력들이 비슷하지만 여기서는 입문에서부터 고급수준까지 망라되어 후미대장이 고생을 많이 하는
팀이다. 이날은 뜨거운 햇빛에 산세가 험하여 선두에서도 천천히 보조를 맞추어 큰 무리 없이 10km 정도 길을 원만하게 마쳤다. 얼마 전 정맥산행은 장거리였지만 고도가 낮고 산세도 부드러워 할 만했었다면 이번 도락산은 험준한 지형이었지만 거리가 짧아 할 만했다. 세상일이 만만한 게 없는 기라. 이것 있으면 저게 없고 저게 있으면 이게 없고 ㅋㅋㅋ.
제2산악클럽 팀은 산을 오르면서도 왁자지껄해서 마냥 즐겁다. 여성들도 많아서 분위기도 더 밝고 산행 속도도 여유가 있어 몸과 마음이 편하게 느껴진다. 정맥길에서는 각자 스스로 체력안배 신경 쓰면서 먹는 거 마시는 거 챙기면서 체력 한계를 감내하며 완주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끼지만 여기서는 산의 풍경과 조망도 즐기면서 제2의 인생을 향유하는 시간이고 공간이다. 회장이 수호지에 등장하는 노지심 스타일이라 풍채만큼이나 말술에 의협심이 강하여 세세하게 대원들을 챙겨준다. 1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회원 수가 많이 늘어나 갈 때마다 버스는 만선이다. 또한 몇몇 산악회끼리 교류하면서 함께 산행을 즐기기도 한다. .
정맥길에서 부족한 부분을 제2산악클럽에서 느끼고 제2클럽에서 못 느끼던 점을 정맥길에서 찾으니 난 행복한 산악인이다. 사실 월드컵 축구는 남이 하는 경기를 보면서 애를 태우지만 내가 좋아 가는 산길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움직이고 내 육신이 고통과 희열을 느낀다. 집에서 축구를 시청할 때는 소파에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하면서 옆 탁자에 준비된 캔맥주 마셔가며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하다가 이기든 지든 내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먼데 이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내 마음을 주고 싶지 않다. 사람인 이상 외부의 일에 감정이 없을 순 없지만
그 파도를 이겨낼 만한 바위덩어리가 내 마음 속에 자리하도록 내공을 갖추고 싶다. 둘레길을 걷든 에베레스트 꼭대기를 오르든 내가 저지른 일에만 내 마음이 요동쳤으면 한다.
2018. 6. 27
虎山
첫댓글 정맥길에 익숙해져서 다른맛은 잘 모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9정맥 마치면 진짜 소풍같은 산행 다니면 좋을거 같아요
그나저나 한국 축구가 독일을 이겼어요 16강은 못가지만 기분은 좋네요 ㅎ
ㅋㅋ 가디님도 축구 보셨구나^^
제2산악클럽에 한번 오셔서 다른 맛을 느껴보세요^^
2,4주에도 열심히 산을 다니시나 봅니다.
호산님 따라서 가보고 싶네요..
여성분들이 많아서 그런건 아닙니다...절대~
절대 아니라 하니까 더 이상하네~ ㅋㅋ
어제 축구 땜에 올리느라 실수가 좀 있네요 제2는 넷째 주말에 갑니다~
조만간 제2산악클럽에 초대할게요^^
강한 부정은 긍정? ㅎㅎ
형님 오래간만에 작품하나
내노으셨구만뮤
자주 조은착품. 출고 하시기 바래요.
이놈의 월드컵이 뭔지 사람 잡아요~
열 받을 때 글 쓰면 좀 가라앉으니까^^
마지막 부분에 "파도를 이겨 낼 만한 바위덩어리..."
잘 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6^
아, 바이킹님 그 귀절은 얼마 전에 틱낫한 스님이 쓴 <붓다처럼>에서 비슷한 표현을 본 적이 있어 튀어나왔네요~^^
목적산행과 여유로움을 즐기는 산행...둘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데 그걸 잘표현해 주셨네요.. 저도 타산악회에서는 룰루랄라~~~나름 재미 있어요..ㅎㅎ
제2산악회에는 이쁜 언니들만 많고 영~~한 남자분들은 없나봐요..ㅋ
남자들이 다 신찮아요 나 빼고~ㅋㅋ
7월 넷째 일요일 래프팅 간대요 오실래요?
@虎山 남자들이 신찮으니 패스...ㅋ
제가 물을 안 좋아해요. 왠지 쳐다보고 있음 무서워요...담 멋진 산행있음 초대해 주세요.
전북 최강희 감독이 냉철한 진단을 내렸다고 생각되어 기사 링크해봅니다^^
[이영미 人터뷰] 최강희 감독의 작심 발언, “언제까지 선수들 투혼에만 의지할 것인가!” http://naver.me/GIsLOHn2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않는 작품 눈을 지그시 감으며 미소를 지으며 감상잘했어요 호산 아우님! 홧팅!!
고마워요 태정 형님~
부끄러운 글 애독해주시니 그나마 힘을 내어 가끔 이렇게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