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실수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자유가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 감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말합니다.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하나님을 영접 하십시오!
수많은 메시지를 전해주지만, 그러나,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순간적인, 일시적으로 주님을 찾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서면 그때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여러분!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살아 기적을 행하시고 계십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다 해야할 지 모릅니다. 진심으로 믿으시길 애원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둠속 사탄의 세력에 지배당해서
혼자만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마약사범으로만 감옥에서 살았기 때문에,
저와같은 마약사범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 옵니다.
수많은 마약사범들이 출소해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들은 또 다시 마약으로 그 수 많은 문제를 해결하려는데 그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갑니다. 저 또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저는 수많은 마약사범들에게 마약을 판매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역행한 사람이며 크나큰 죄인이며,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어둠의 영에 사로잡혀서 저 또한 마약투약과 판매를 병행하면서
사탄의 심부름꾼으로 그 최선봉에 섰던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주님앞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으로는 세상 죄를 다 때우고 나왔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는 문제는 없고,
이제 그렇게 갈망하던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온전하게 회개하여야 하는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저에게 남기어진 세월, 그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회개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마귀, 사탄의 실체인 마약에 한 번 빠지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깊숙히 수렁속으로 빠져들어 갔던 지난 시간들이었습니다.
제혼자만이 아니라 모든 마약사범들의 현실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만을 믿는 경향이 있어 감옥에 들어오면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마약을 하지않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손가락을 자르니,
성을 바꾸니 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믿고 큰소리를 치고 출소를 하지만,
몇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또다시 마약에 빠져 똑 같은 반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마약사범들의 현주소입니다.
딱, 한 가지 방법은 오직 하나님을 만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저의 경험뿐 아니라
실제로 신앙의 힘으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 하신분들이 극소수 이지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떠나 살다가 또다시 마약의 유혹에 빠져들어가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적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주님과 동행하는 것은 더욱더 힘이 든다는 것을
저는 이제사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마약사범들을 하나님께로 전도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전도한 마약사범이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저의 남은 생명을 불태울 것입니다.
그것이 단 한사람이 되더라도 예수님을 전도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보고 말합니다.
“그냥 당신 혼자만 구원받기도 어려울 것인데, 무슨 전도냐”고 말합니다.
틀림없는 말입니다.
저는 그동안 그들에게 마약을 팔았지만 이제는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모든 역경을 기도로 이겨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세상의 문제를 푸는 열쇠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야 말로 실패에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인 것을
저는 감옥의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감옥 속에는 실패하고, 거친 인생, 몸을 휘감고 있는 문신들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의 몸에도 문신으로 감기어져 있습니다. 칼 자욱도 있습니다.
그러나 험난한 사람일수록 주님을 만나면 순한 양으로 변화 하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실재로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으로 변화되어 거듭난 삶으로 살아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한결같은 말은 오직 기도뿐이라는 이야기들을 저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동감하고 있으며 지금, 체험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은 저의 목자이십니다. 저의 인생 좌우명은 이제 시편, 23장입니다.
이 좌우명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것입니다.
감옥 속에 방황하고 있는 마약사범들은 평균적으로 2만 명에 가깝습니다.
1년에 구속되는 마약사범들은 1만 명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의 좌우명이 시편,23장이 되는 그날까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전도하다가 죽을 것입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백색가루’라고 불리는 마약, 히로뽕(필로폰) 판매조직의 상당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7번의 구속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12년 3개월을 살았습니다.
마지막 마약판매 죄로 최고의 무거운 형량인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011년 4월 18일 출소했습니다.
이 앞전에는 20억대의 마약판매 죄로 징역3년을 살고 안양교도소 에서 2005년 8월 25일 출감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말 개차반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란, 말이 있듯이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형편없는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회개를 해도 용서받지 못할 만큼의 세상 죄를 지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감옥에서는 여러사람이 함께 공동으로 생활하는 공간에서는 신앙생활을 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각자의 종교가 다르기 때문이고, 또한 기도생활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도소장의 허가를 받아, 독방에서 독거생활을 했던,
마지막 4년의 형기가운데 1년은 독거사동의 또 하나의 작은 감옥이라 불리는 독방에서
기도에 전념하는 시간을 보내고 목숨을 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는 솔직히 지난날의 회개의 기도가 아니었고 단지,
다시는 마약을 손대지 않도록, 제발 도와 달라고 하나님에게 매달리는 기도이었습니다.
'마약'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사탄의 전유물’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험자인 저의 생각에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루 말할 수없는 수많은 마약경험을 통해서 얻은 결론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습니다.
마약은 ‘악마가 흘리는 눈물’이라는 말도 있고,
사탄이 지상에 뿌려놓은 가장 강력한 유혹의 함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수많은 마약사범들이 신앙을 잡았다가도 한순간에 또 다시,
사탄의 장난과 권모술수에 넘어가 다시, 실패하고 고통스럽게 지내다가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 전부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영역에 있다가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하나님의 영역으로 돌아서려고 하는 마약사범들
과연, 사탄이 그냥 놓아주기는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정말 생각지도 않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다시,
무너뜨리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는 것을 저는 경험자로서 체험했으며
솔직히 지금도 그 사탄이 조정하는 시험의 영역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만약, 어느 한순간에 하나님을 멀리한다면 저 역시, 그 순간에 모든것이 무너지고 말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 사람입니다.
솔직히 이러한 저의 현실이 힘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힘든 고난과 역경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약, <필로폰>은 처음, 순간에는 너무나 달콤하고 편안한 도취감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잠시 후 부터는 사탄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며,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합니다.
후회를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단 한번 의 투약으로 약기운이 떨어지는 3일간은 사탄에게 농락 당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약기운이 떨어지면, 온몸과 전신이 아프고, 무기력한 상태가 되고,
움직일 수가 없으니 또다시 마약을 투여하게 되는 것 입니다.
한번, 시작하면 잡혀가는 순간까지 하게 되는 것이 마약입니다.
마약으로 인한 천태만상의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마약사범들이 감옥 문을 나갈 때는, 다시는 들어오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나가지만,
자신의 굳은 신념과 각오들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저 역시 그랬으며, 담장 밖의 마약사범들이 그, 대기상태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약을 다시 손에 쥐면, 2달에서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구속되는 사례가 90%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요즘, 은 <폴리바게닝>제도 란 것이 있습니다.
마약사범 뿐만 아니라, 범죄자를 경찰이나, 수사기관에 신고하고, 정보를 제보하는 사람에게
‘공적’ 을 인정하여 죄를 지은사람이라도 정보 제공자로 기소를 하지 않거나, 형량을 감면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마약판매자가 검거되면, 그 윗선의 공급 책 을 잡게 해 준다든가,
더 큰 정보를 제공해 기관에서 큰 사건을 해결하게 되었을 때, 수사관의 진급문제까지도 걸려있기 때문에,
‘폴리바게닝’ 제도는, 양심적으로는 양면성이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필요한 수사기법일 수도 있습니다.
‘재판’ 에서도 얼마만큼의 수사에 협조 했느냐에 따라서 형량이 결정되고 있으니,
이 바닥이 비정한 세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마약사범의 재범률 보다는 체포, 검거의 가능성이 높아져 요즘은, 마약사범의 경우,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구속되는 사례가 태반인 실정입니다. 이것이 마약세계인 것입니다.
제 아무리, 마약세계의 ‘고수’라고 할지라도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사탄의 능력’을 견디어 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솔직히 이 비정한 세계 인 것을 다 깨우쳤다 할지라도,
마약의 달콤함을 잊어버리기는 하늘의 별따기 마냥, 어려우니 도저히 빠져 나오기가 불가능 한 것이 마약입니다.
단 한 가지 방법은, 하나님을 붙잡는 것 외에는,
그리고 평생을 기도로 매달리는 방법, 외에는 세상의 방법이 없습니다. [요약]
저에게는 하나님을 붙들지 않고서는 견딜 수없는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번의 신앙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서 오늘, 간증의 공간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경험한 “신비한 신앙체험”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는 분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살아 기적을 행하시고 계시는 분이란 것을,
도저히 믿지 않고서는 없는 경험을 하게 된, 몇 가지의 사건들을 형제님들 앞에
그리고,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서 숨김없이 거짓 없이 고백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증인의 한사람으로서, 제가 체험한 놀라운 경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요약]
제가, 6번째, 마약 판매 죄로[2002]년 구속되어 징역, 3년을 살고[2005]년 나와서 다시,
구속되어[2007]년 징역, 4년을 받기까지 담장밖에 있었던 기간은 20개월 정도 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어머님과 막내 동생은, 천국으로 떠나셨습니다.
만약, 제가 담장 안에 있는 기간에, 두 사람이 떠났다면, 저는 신비한 신앙의 체험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는 날, 저는 경기도 수원에 있었습니다.
마약을 판매하기 위해서 일주일정도를 대구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경기도 수원은 후배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후배는 제가 1999년 마약 판매 죄로 서울중앙지검 에서 체포되어 <서울구치소> 에 수감되어 있을 때,
같은 거실에서 함께 생활했던 사람입니다.
그 후배와의 친분은 간이라도 빼줄 수 있을 만큼, 인간적인 관계가 맺어진 후배 이었습니다.
후배는 당시, 마약전과 2범으로 수원의 조직폭력배
<남문파> <북문파>조직원들과 함께 <도박개장>을 운영 하면서 생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배가 수원지역의 마약사범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해서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날, 추운겨울 이었습니다. 저는 후배의 숙소인 모텔에서 일주일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을 함께 후배와 지내면서, 가지고 갔던 마약도 다 팔았고,
인계동에 있는 <안마휴계텔> 에서 직업여성들과 음란의 시간도 보냈습니다.
술도 많이 마셨고, 물론, 마약에도 취해 있었습니다.
몇 일째, 수면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의 몰골은 형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 원기가 회복 되는 것이 마약이기도 합니다.
다음날 대구로 내려오기 위해서 후배의 숙소에서 가까스로 잠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절해 있었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으로는 24시간 이상, 잠들었어야 하는 상태, 이었습니다.
왜냐하면 3일 동안,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약(필로폰)의 특성인 ‘각성제’ 효과 때문입니다.
제가 잠이 들자, 후배는, 마약판매를 위해서 제가 사용하는 휴대전화(대포폰) 8대의 휴대폰 밧데리를 해체하고,
제가 일반적으로 가족들과 통화하는 휴대전화기는 그냥 놓아두었습니다.
많은 전화기에서 혹시라도 벨이 울리면, 잠에서 깨어 날까봐,
후배가 저를 생각해서 취한 조치이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아서 햇볕에 눈이 부셔 또 잠이 깰까 싶어,
거실의 커탠, 까지 창문을 가린 체, 거실 방을 나갔습니다.
물론, 저는 잠이 들었으니까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잠이 들었을 때는 새벽, 3시경 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절해 잠이 들었던 제가 갑자기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불과 두 시간 정도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눈을 뜬것입니다.
24시간 이상을 잠들었어야 할 상황에서 잠이 뜬것은, 심한 갈증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기절해 있어야 했을 때에 눈을 떴겠습니까?
눈을 뜨니까, 온방이 깜깜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무엇인가 ‘푸른 빛’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휴대전화의 액정화면에서 새어나오는 ‘푸른 빛’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푸른 ‘빛’ 속에서 사람의 물체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태어나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둑이나, 강도가 들어온 줄 알았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헛것을 보았나 싶어서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리려고 온갖 발 부동 을 쳤습니다.
그러 나, 서서히 그 ‘푸른 빛’ 속의 사람의 물체는 사라졌습니다.
마약에 취했고, 술에 취했고, 몇 일째,
수면을 취하지 못한 가운데 일어 날 수 있는 현상으로는 충분한 요건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마약과 함께 살아왔던 저의 경험과 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비몽사몽간에 목이 말라, 냉장고에서 캔 커피를 두 개나 마셨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공포를 주었던 그 휴대 전화기에서 벨이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놀라웠던 순간이 가시기도 전에, 그 타이밍에 전화벨이 울리자, 저는 다시 또, 놀랐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저의 친형님 이었습니다.
/ “여보세요!../ 국이가... 니.. 어디고!.. / 예.. 서울쪽에 와 있습니다!...
/ 엄마가 지금 위독하다. 너를 찾고 있으니까... 지금 빨리 내려 온나!../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형님의 급한 전화이었습니다.
당시, 어머님께서는 병세가 좋지 않으셔서 울산, <언양병원> 에 입원 중 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무척이나 급한 상황임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대충 정리를 끝내고, 후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 형이다!... 지금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고 대구로 내려간다... 그렇게 알아라!...
/ 아니 형님!.. 뭐라고요!... 무슨 연락을 받았다는 것입니까?..
/ 아.. 그래..방금 친형님에게서 전화연락이 왔었다.!...
/ 전화요.. 제가 밧데리 다 꺼고 나갔는데 무슨 전화가 왔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지금 잠들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
후배는 저의 일반휴대전화기 까지도 꺼고 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님의 위독하다는 소식에 정신이 없었고, 그리고 대구를 향하여 자동차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신갈 인터체인지를 통과한 겨울의 경부고속도로 중부지방은 아직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전이 가까워지고 있을 때 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전을 막 통과할 때. 또 다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그때. 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아버님 이었습니다.
/ 승국아!.. 어디고... / 예.. 아버지!.. 대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 야야.. 천천히 내려 오너라 사고 난다... 너희 엄마는 갔다!...
방금 천국으로 갔으니까... 천천히 내려 오너라.. 달리지 말고.. /
어머님께서 설마, 그렇게 가실지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병세는 좋지 않았지만 그렇게 심하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청청벽력 같은 아버님의 소식이었지만, 순간적으로 묵묵했습니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기를 내려놓고, 앞을 보는 순간 갑자기.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시야가 어두워진 것입니다.
암흑,
분명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는데. 앞이 암흑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제가 눈을 감고 있나 싶어서 눈을 부비고 아무리 눈을 떠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없고, 캄캄한 ‘암흑’ 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또다시 얼마나, 놀랬는지 모릅니다.
분명히 저의 자동차는 시속, 180킬로 정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순간적인 생각으로 아... 나도 이렇게 죽는 모양이다.
곧, 쿵!.. 소리와 함께 죽겠지... 그러나 살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속력을 줄여보자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조금이라도 속력이 줄은 가운데 사고가 나면, 그래도 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아주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 갔습니다.
그리고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는 순간, 암흑의 어두움이 순식간에 물러가고, 너무나도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저의 자동차는 거짓말처럼 직진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 순간의 고속도로위의 길이 굽은 커브길 이었다면, 저는 이글을 쓸 수가 없을 것 입니다.
이것이 어머님의 운명하시던 날에 제가 경험한 체험입니다.
푸른빛이 휴대폰 불빛에 나타난 흔드리는 물체는
마지막 떠나시는 어머님의 모습인 것을 지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마약에 취한상태에서 일어난 그날의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요건을 다 갖춘 상태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형사고가 나서 중환자실에서 살아난 이야기도 아니고 체험의 이야기치고는
무미건조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27년간을 마약과 함께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약에 취해서 수많은 환상과 환각, 착각, 피해망상증, 편집증, 까지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교통사고를 경험하고 살아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날에 경험한 일들은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시각적인 상황 속에서 경험한 정신세계의 일들입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겪은 개인의 경험입니다.
그리고 그날의 일은 크게 타인의 관심을 끌수 없는 일이 될수 있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그 순간들이 저를 지금의 순간에 까지 오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 자신이 변화 했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순간도 기도의 손을 놓치 않고 있을 뿐입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이긴 하지만, 시간이 가면, 지날수록, 더 이해할 수 없는 지난날의 일들이기도 합니다.
그 어둠속의 푸른 불빛 속에서 움직였던, 물체는 저의 어머니 이었습니다.
그리 고, 고속도로 위의 암흑을 경험한 것도 어머님께서 주시고 간 ‘마지막 선물’ 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재주 가 없어서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너무나도 답답합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씀을 드리면, 고속도로 위에서 갑자기 암흑을 만났고,
그리고 또 그 순간에 광명을 만났는데,
갑자기 보여지는 도로 위의 시각적인 느낌은, 순간적이었지만,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매일 다니는 고속도로인데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처럼, 밝고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멀리서 밝아오는 산등성 위로 무지개가 걸려 있었고, 새벽안개로 덮혀 있었지만,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장례식장에 내려온 수원의 후배는 지속적으로 저에게 그날,
저의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고 나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 고, 기절해 있었어야 할 상황에서 어떻게 깨어날 수 있었냐고 말합니다.
자신도 마약사범으로, 마약상용자의 경험의 수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약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흥미진지한 이야기가 못됨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엄청난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암흑,
저는 암흑의 경험을 또 한번,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천국가시기 전, 제가 교도소에 수감생활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감옥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약에서 벗어나 보려고 신앙을 잡았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감옥 속에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장 열약한 환경과 절망적인 시간 속에서는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그때마다 성경책을 가까이 했고,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감옥 속에는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들 가운데 한사람 이었습니다.
2002년, 저는 대구에서 마약판매혐의로 구속이 되었는데, 대구에서는 가장 큰 사건이었습니다.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안양교도소로 이송을 가서 수감 생활을 할 때입니다.
그 때도 저는 마약세계에서 벗어나 보려고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저의 집안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집안이었기 때문에, 항상 어머님은 감옥 안에 있는 저를 위해 기도하셨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헤아릴수 없는 날들로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교도소 안에는 월요일마다 기독교집회가 열립니다.
담장바깥의 교회에서 목사님들께서 집회를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화요일에는 불교집회, 수요일에는 천주교집회, 가 열립니다.
어떤 재소자들은 각종 종교 집회에 다 나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집회 때 마다 떡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감옥에서 먹는 떡 맛은 바깥의 사람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약사범들은 마약사범들끼리 같은 거실에서 생활합니다.
마약사범들 속에는 조직폭력배들이 과반수입니다. 대충 그렇습니다.
마약사범들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재판이 끝나면 타 지역으로 이송을 보냅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같은 지방 사람들과 함께 수용하면 마약확산의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논리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이송을 가면 그곳에는, 전국의 마약사범들이 다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마약확산을 양산하는 현실입니다만, 법무부는 아직도 구시대적인 발상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마약사범은 가족 가까이에 있어야 합니다.
마약퇴치홍보에도 마약사범은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 하다고 합니다.
이송조치로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마약사범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이자 아픔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가까이 있으면, 자주 면회도 갈 수 있는데, 멀리 떨어져 있으니 본인도 가족도 힘이 듭니다.
그러한 이유로 가정이 파탄되고 정신적인 수많은 어려움들이 따릅니다.
출소해서도 가정이 깨어지고 없으니 다시 마약 속으로 빠지는 일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마산의 강병호 가 이송을 왔기 때문에, 먼저 있는 사람들이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공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복잡하고, 더운 날씨가 더욱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감옥 속의 사람체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4평도 안 되는 공간에 건장한 남자들이 8-10명씩 지내기란 생지옥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도행정의 지시에 불응하면 지시불응죄로 징벌조치를 당하기 때문에 어쩔 수 가 없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는 재소자들의 의견도 받아들입니다. 감옥이라고 해서 옛날 같지는 않습니다.
인권도 변하고 있고, 세상도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과 단절된 담장 안이 변해봐야 자유를 잃은 사람들의 심리는 한결같습니다.
이송을 오는 사람이나 이송자 를 맞이하는 사람이나 처음에는 서먹하고,
잠시의 딱딱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감옥 안 에는 이럴 때, 가장 긴장감이 흐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양육강식의 논리가 통하는 곳이 감옥이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는 강자에게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곳이 감옥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서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인간의 본능적인 내공의 순간이 흐르는
조금은 살벌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약자는 그만큼 손해를 보아야 하는 곳이 감옥이기도 합니다.
아주 가끔씩 이지만 강자가 양보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감옥이라고 해서 무조건 무지막지한 사람들만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감옥의 결론을 말하면 결국, 약자가 강자를 넘어뜨릴 수 있는 곳도 감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강병호 는 신입 인사를 해야 합니다. 처음 감옥의 거실에 들어오면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처음 거치는 관문이기도 합니다.
신입이 신입인사를 하는 짧은 순간에 그 사람을 파악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재소자들의 눈치는 정확합니다.
강병호 는 처음인사 할 때부터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님을 거실의 사람들이 눈치를 챘습니다.
같은 거실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자고 먹고 이야기하고 생활 하려면, 성격이 좋아야 함은 물론인데.
문제가 조금 발견되었습니다. 방 사람들은 저에게 다른 거실로 보내자고 눈치를 보내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강병호 는 자신이 가지고 온 징역보따리를 푸는데 그 안에서 성경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도 성경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고민을 했습니다.
강병호 를 다른 거실로 보내면 하나님에게 벌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저를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마약팔다가 잡혀 들어온 제가 무슨 양심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날은 그랬습니다.
결국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친 예민성과 집착성이 강해서
한방가족으로는 부적합한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감옥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강병호는 조금 특별한 케이스 이었습니다. 결국은 화살이 저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같은 거실에는 부산의 마약사범이자 조직폭력배출신이고
3살 위의 선배가 있었는데 항상 저와는 라이벌 관계이었습니다.
결국, 강병호의 문제로 부산의 그 사람과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강병호가 이송 온지 이틀째 이었습니다.
감옥에는 싸움을 한사람들은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징벌방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고 대부분 두 사람 모두 징벌조치가 떨어집니다.
조그만 독방으로 들어가 20일에 30일간을 살아야 합니다. 그 고통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일로 해서 저와 부산선배, 두 사람 모두 10일씩, 징벌방에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최소 20일간은 징벌방에 있어야 했지만 서로 화해도 했고 조사실에서 <경고>조치로 봐 준 것입니다.
그때, 징벌독방에서 경험한 이상한 경험을 말하려고 합니다.
서두가 길었지만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어쩔 수 가 없었습니다.
글재주가 있었다면, 간단명료하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저의 한계임을 용서해 주셨음 합니다.
징벌방에서 있던 마지막, 10일 째, 되던 날, 이었습니다
[요약]
그날, 아침부터 저는 기다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조사실에서의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10일째 되는 날, 징벌조치가 떨어지는지 아니면,
훈방조치로 풀려나가는 것인지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징벌방의 생활은 말로 다할 수 없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많은 재소자들은 싸우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가 징벌방이 무서워서 되도록 싸움을 피합니다.
그리고 오전, 내내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사동 복무담당 근무자 에게 조사실에 알아봐 달라고 했지만,
자신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기다리란 대답만이 돌아옵니다.
괜히 신입자이었던 강병호 가 원망스럽고, 부산선배가 원망 했습니다.
저 자신을 반성할 생각도 못한 체 말입니다. 점심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습니다.
제발 훈방조치로 징벌방을 나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징벌방에는 책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음식도 관에서 주는 ‘배식’ 음식 외에는 먹을 수가 없습니다.
신문도 볼 수가 없습니다. 누워 있지도 못합니다.
그냥 멍하니 생각 속에서는 잠길 수밖에 없습니다.
징역말로 ‘멍’ 때린 다고 표현 합니다.
하지만 감옥의 징벌방에 허락되는 책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책입니다. 종교의 자유 때문입니다.
허전할 때마다 보았지만, 갇혀있다 보면, 가슴에 와 닿지 않을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때, 순간적으로 번쩍, 생각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곧 소식이 올 텐데 하나님에게 기도를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에서 작은 징벌방구석에 있던,
성경책을 잡고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답답한마음에 다순한 생각이었습니다.
/ “하나님! 제발 징벌이 떨어지지 않고 이방을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정말, 하나님을 잘 믿겠습니다!..
대충 이러한 기도 이었습니다.
몇 마디의 기도를 하고나니까 다음 말이 생각나지도 않고 해서 그냥 눈을 감고만 있었습니다.
저의 손에는 성경책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주 순간적으로 누군가 저의 머리를 “꽝”하고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오하마 망치로 얻어맞는 것처럼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성경을 펴라!”고 하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너무나 무의식중에 일어났던 순간이라, 깜짝 놀라서 눈을 떴는데,
그러나, 저의 시야에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눈을 떠도 깜깜한 암흑이었습니다.
그래서 놀라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나 봅니다.
조금 있으니까 징벌사동복무자가 뛰어온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말 하는 당시 근무자의 목소리는 들려오는데, 그때,까지도 아무것도 안보이니까.
/ 담당자님! 눈이 보이질 않습니다!..
하니까... 웃음소리와 함께 하는 말이
빈혈이 있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차츰 서서히 시야가 밝아오는데, 어두운 방이 너무나 환하게 밝아왔습니다.
암흑에서 광명으로 바뀐것입니다.
징벌방에는 작은 형광등불이 켜져 있지만, 오래 된 것이라 침침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햇볕도 잘 들어오지 않는 곳입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까 본래의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무슨 빈혈인가 생각하다가
큰 망치로 맞은 충격과 천둥 같은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책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것은 “성경을 펴라!”소리에 놀라 저도 모르게 손에 쥐었던 성경책을 폈던 것입니다.
잠시 후, 펼쳐진 성경책을 가만히 보니까 정 가운데쯤. 펼쳐져 있었고 마태복음, 7장7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잠시후, 조금 전에 뛰어왔던 근무자가 와서, “6009번 이 승국!” “경고조치!” 하는 것이었습니다.
경고조치는 <훈방>보다는 한 차원 높은 것인데 그래도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풀려나서 본래 있었던 거실로 돌아왔습니다.
먼저 와 있던, 부산의 선배가 짐을 보따리에 넣고 있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자신은 다른 방으로 옮기기로 했다면서 짐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약, 3개월간을 함께 지냈는데 막상, 간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있었지만,
거실사람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요약]
취침, 시간이 되었고, 제 옆자리에 강병호 는 자도록 자리를 정했습니다.
자꾸만, 저를 편하게 생각하는 눈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 잠이 오지 않고 해서 강병호 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언제부터 하나님을 믿었느냐고 하니까, 자신은 본래 불교이며 자신의 어머니는 천리교를 믿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성경책을 가지고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망설이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은 이번, 감옥에서 하나님을 만났는데, 그 사연이 너무나도 충격적 이었습니다.
마약사범, 강병호 는 ‘마약투약과 판매 죄’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마산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리 고, 신입대기거실에 있을 때, 입니다.
누구나, 처음 교도소에 들어오면, 이틀간을 신입 대기 방 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틀이 지나면 자신들이 있어야 할 거실이 정해져 배방이 되는 것입니다.
강병호는 처음, 체포되어 경찰서 유치장에서 8일을 보내고, 교도소로 입감된 것입니다.
그리고 신입대기실 에서 이틀 동안 잠만 자고, 일어나지 않고,
배식시간에만 일어나 밥만 먹고 또 잠자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약사범들은 누구나 겪는 과정입니다.
약기운이 떨어질 때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마약에 취해 있을 땐, 음식을 잘 먹지 않습니다.
식욕억제의 효과 때문입니다.
수면도 못 취했기 때문에, 약기운이 떨어지자 그동안 잘 먹지 않았던 것에 대한 육체적 반응입니다.
그런데, 배식시간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깨우고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밥까지 챙겨서 강병호 에게 주었습니다.
배식시간 때 마다 그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고, 배방이 정해져서 함께 입감된 사람들이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강병호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배방을 기다리고 있는데,
자신에게 밥을 챙겨주던 그 사람이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 “마약... 끊기가 힘이 들지요?../
하고 물어왔습니다. 강병호 는 말도 하기 싫었지만 자신에게 친절하게 했던 것 때문에,
/ 그냥,,, 그렇지요,, 뭐.. / 했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 ”제가 기도한번 해도 될까요?“ /
하고 말했지만, 강병호 는
저는 불교인데 그만하지요.../ 하니까 불교라도 상관없으니 제가 기도한번 하겠습니다.
하면서 강병호의 손을 꼭, 잡고서 기도를 하는데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헤어 졌습니다.
강병호는 자신이 배방된 거실에서 일주일 정도를 지내고 있을 때,
처음보는 이름으로 자신을 접견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신입실 에서 강병호 에게 기도를 해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 “미안합니다!... 먼저 나와서... 저를 알겠습니까?... 저는 사실, 목사입니다./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어 구속이 되었는데 합위가 이루어져 보석으로 풀려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작은 개척교회를 목회하시다가 새벽기도에 나오는 성도들을 태우기 위해서
새벽운전을 했는데 그만, 사고를 냈던 것입니다.
제가, 징벌방에서 돌아온 그날, 강 병호 는 그러한 엄청난 이야기를 저에게 말 했습니다.
사람의 인연이란 알 수가 없습니다. 감옥 안에서는 여러 가지의 일들과 사연들과,
또 인연들을 만날 수 있지만, 마산의 마약사범이었던,
강 병호 의 사연을 들었던 그 이야기는 저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취침시간을 넘겼지만, 이야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강 병호 는 정영도 목사님께 서신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답장을 받기를 반복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하나님을 알았고, 예수님을 배워나갔다고 했습니다.
<불교>, 이었던 강 병호는 <천도교>를 믿던 자신의 어머니에게 목사님을 소개했습니다.
그리 고, 강병호의 어머니는 목사님의 작은 개척교회의 교인이 되셨습니다.
자식이 하나님을 만나서 마약만 끊을 수, 있다면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위해, 무엇인들, 못하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강 병호 를위해서 마산에서 부산으로 주거지까지 옮긴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병호의 ‘나와바리’인 마산에서 벗어나게 하기위한 마지막 조치이었습니다.
그리고 담장안의 강 병호에게 정영도 목사님의 뜨거운 전도의 신앙이 전달 된 것입니다.
그런 중, 마산에서 재판을 마치고 안양교도소로 이송을 오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강 병호 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월요일마다 열리는 기독집회에 함께 참석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친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강 병호 때문에 징벌방에서 10일을 보냈지만,
오히려 방안 식구 가운데 가장 친한 관계의 형 동생이 되어 지냈습니다.
어느 날, 강 병호는 부산의 정영도 목사님께 서신을 하면서 저와의 인연을 말했습니다.
그리 고, 그렇게 저와의 정영도 목사님의 인연도 시작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강 병호 에게 서신이 올 때마다, 저에게도 빠지지 않고 서신을 보내오셨습니다.
그리 고, 어느 날, 부산의 정영도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직접 접견을 오셨습니다.
사모님은 강 병호를 목사님께서는 저를 접견, 하셨습니다.
처음, 만나는 목사님은 구멍 난 프라스틱, 유리와 창살을 사이에 두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면회시간, 7분 가운데 반은 기도 시간으로 지나갔습니다.
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수가 없어서 그대로 강물 같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냥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연신 목사님께서는 ‘우리의 만남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합시다’ 의 말씀만을 계속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먼 거리의 접견 은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3번까지 이어졌습니다.
서신왕래는 수없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3번째, 접견은 안양교도소 담임목사님께 부탁을 드려서 직접 교도소 담장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불러, 교무과에서 직접 손을 잡고,
담임목사님과 함께 저의 머리에 두 목사님께서 손을 저의 머리위에 놓으시고,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감옥 안에서 일어날 수 있기는 절대로 쉽지 않은 그날, 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해서 우리는 세 사람의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리 고, 세 사람의 인연에서, 또 한사람의 인연이 늘어나는, 그 이야기를 저는 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껏, 감옥 안에서 보냈던 시간 속에서 가장, 특별한 체험, 이기 때문입니다.
[요약]
손원식 형제 형제는 당시, 마약판매사건으로 서울구치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1심 재판에서 2년6월의 중형을 선고받고 항소심계류 중이었습니다.
전국마약판매 조직들과 연루되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저는 손 원식 형제에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을 영접하고 이제 그만 마약세계에서 등을 돌리자고 간절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몇 일후, 답장이 왔습니다. 자신도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과거를 청산하는 중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당시 서울구치소의 교도관이었던 <정 범희> 교정직원의 권유로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하나님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을 영접했다는 소식에 저는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습니다.
그리 고, 지속적인 신앙서신이 왕래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손 S형제 는 서울구치소의 독거사동에서 혼자서 생활하는 독방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법무부에서 따로 관리하는 특별요시찰 대상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감옥에 들어오면, 독방에서 지냅니다.
자신은 독방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이 천국과 같다는 소식들을 전해왔습니다.
그런 중 저는 부산의 정영도 목사님에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가장 친한 선배님이 마약판매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있는데,
목사님의 보살핌이 필요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영도 목사님께서는 흔쾌히 저의 부탁을 고맙게 받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서울구치소에 목사님의 서신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저와 함께 지내고 있던, 강 병호 형제에게도 손 원식 형제를 소개 했습니다.
그렇게 저희들은 신앙적인 편지들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 고, 정영도 목사님께서 서울구치소의 손 원식 형제에게 까지도
먼 거리를 마다하시지 않으시고 발걸음을 하셨습니다.
정말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리 고, 목사님께서는 정열적인 정성으로 저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삶을 살자던 제가 오히려 손 S형제는 뜨거운 신앙으로 저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항소심재판도중, 손 원S 형제의 양아버지가 사망하자, 절차에 의해서 바깥으로 일시적,
7일간의 석방(특별귀휴)을 받고 사회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구파티마병원에서 장례식에 참석하는 자리에서
부산의 정영도 목사님과 손 원식 형제가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부산으로 내려가, <하나임교회> 에서 간증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담장 안에 갇혔던 사람이 7일간의 소중한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간증으로 보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일반 마약사범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있었던 일이라, 저는 목사님의 소식을 받고서야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병호 형제는 출소를 해서, 정영도 목사님과 만나 하나임 교회로 입성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 고, 강 병호 는 지금 까지도 마약세계를 청산하고 신앙인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기적과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3년형을 마치고, 안양교도소에서 2005년 8월, 25일 출소를 했습니다.
그때, 다시 서울구치소로 돌아온 손 S형제는 항소심에서 6개월이 감형되어 2년을 받고,
김해교도소로 이송을 가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다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을 만나서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맹세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강 병호 형제가 기다리고 있는 하나임교회, 정영도 목사님과의 만남을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믿음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출소해서 목사님께로 내려가겠다는 약속만 하는 전화통화만 했지
저는 어느새 다시 마약의 늪으로 빠져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목사님의 전화조차도 받지 않았습니다.
저의 방탕한 시간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다시 마약판매의 가장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 고, 여러 수사기관의 추적이 시작되었고, 수배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요약]
손 원식 형제의 새로운 시작은 거리에서 <국화빵>을 굽는 것이었습니다.
그리 고, 자신의 부인도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어렵고, 쉽지 않은 시간들이 이들에게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이들이 만난 역경과 고난을 만날 때 마다, 주님께서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눈이오나 비가 오나, 추운바람이 불어도, 이들은 길거리에서 국화빵 굽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일을 무엇보다 우선시 했습니다.
대구동신교회의 새 신자교육 6개월의 <크로스웨이> 프로그램도 마쳤습니다.
전국의 야시장행사장을 다니면서, 국화빵을 굽었습니다.
그리 고, 추운 날이면 오뎅이며, 수많은 품목의 행상으로 보냈습니다.
감사헌금과 십일조를 지키는 믿음으로 손 원식 형제의 믿음은 날로 커져만 갔습니다.
저는 그와는 반대로 마귀사탄의 영역으로 깊이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런 저를,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던 사람은 손 S형제 이었습니다.
그의 기도 속에는 항상 제가 있었습니다.
비웃기 시작했던 수많은 마약사범들이 조금씩 손 원식 형제의 새로운 신앙생활을 부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수사기관에서도 손 원식 형제의 길거리 행상에 찾아 와서 위로와 격려를 하기 시작했고,
그의 소문은 전국의 마약사범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그의 아름다운 행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마약사범의 롤 모델로 6년째, 그의 신앙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이제는 돌처럼 굳어져 하나님 없이는 잠시도 살아갈 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다시 2007년 4월 18일, 구속이 되어 4년형을 살고 나왔을 때,
가장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손 원식 형제 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범죄를 하든지 도둑질을 하든, 무엇을 하든지 돈만 있으면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모든 것이 부수어져 버린 저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돈도 없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좋지만, 능력이 없는 저를 쳐다볼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러 나, 한사람 손 원식 형제만이 제 곁에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정신적 도움과 경제적 도움에서 신앙적인 도움에 이르기 까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고마움을 말하면,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오히려 감사한 것은 저라고 합니다.
그 언제 보다도, 제가 하나님 곁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출소한지 4개월을 넘기고 있습니다.
기적 같은 일들이 저에게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저의 마음은 천국입니다.
마약을 팔았던 돈으로 자동차 트렁크를 채워도, 지금처럼 천국의 느낌을 받아 본적은 없습니다.
수많은 기적의 순간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제 출소한지 4개월, 넘기는 가운데 분수를 모르고 하나님의 기적을 운운할 수는 없습니다.
한마디만 하고 싶다면,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고 지금도 기적을 만들어 가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요약 ]
그리 고, 저의 마약판매의 행진은 계속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새벽기도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도망자 신세에서 새벽기도를 다니게 되었는데,
어머님께서 살아생전에 그토록 따라 가자시던 새벽기도를 한번 도 간적이 없던 새벽기도를 다니게 된,
신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새벽기도는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수배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또, 제가 경찰에 검거가 되었던 그날과 장소는 특별한날, 특별한 장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문화예술협회> 에서 주체한
독거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무료음식잔치가 열리는 현장에서 저는 밥을 퍼주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를 낚아채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구중부경찰서 마약반형사대> 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경찰에 체포가 되기 5개월 전부터
한번 도 다녀 본적이 없는 남의 교회에 새벽기도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 교회는 <대구칠곡교회>입니다.
그리고 ‘대구칠곡교회’의 <오세원> 목사님께서
제가 마지막 4년의 형기를 마치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셨고,
수 많은 기도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주신 너무나 감사한 목사님이시고,
또 잊을 수 없는 ‘대구칠곡교회’ 입니다.
그 이야기를 저는 또, 해야 합니다.
저는 2005년도에 출소해서 다시 2007년도에 구속되기 까지 18여개월동안 마약판매를 하면서 지냈고,
어머님과 막내 동생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저에게 마약을 구입했던 사람들이 수사기관에 전국각지에서 잡혀서
저를 마약판매책 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저는 6곳의 검찰청마약수사부에 기소중지 되었고,
저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의 나날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저를 체포하려는 수사기관의 추적은 시작되었고, 저는 도망 다니기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끈질긴 추격은 계속되었습니다.
제가 사용하던 8대의 휴대전화의 위치추적을 내사해서 날이 갈수록 수사망은 좁아져 오고 있었습니다.
타고 다니던 3대의 자동차를 번갈아 타고 다녔지만,
서서히 제가 숨어있는 비밀숙소 근처에 까지 다 달은 것을 알게 되면서,
저는 저의 자동차를 숙소근처에 주차를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비밀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미리 멀리서부터 전화기를 모두 전원을 내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수사기관의 위치추적시스템은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문제가 자동차를 숨기는 것 이었습니다.
수사기관에서는 이미, 제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비밀숙소는 대구시 북구 읍내동, 칠곡3지구에 있었습니다.
근처에서 가장 자동차를 숨기기 좋은 곳을 찾기 위해서 몇일 동안 물색을 하다가 발견한 장소가
‘대구칠곡교회’ 주차장이었습니다. 대구칠곡교회는 대형교회로서 주차장 또한 넓었습니다.
또한 도로가에서 골목안쪽에 위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를 숨기기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설마, 수사기관에서 교회주차장까지 찾으러 다니지는 않을 것이란 저의 생각은 적중했습니다.
무려 3개월 동안 남의 교회주차장에 도둑파킹을 했던 것입니다.
조금은 양심에 가책이 되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누구하나 말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주차장입구에는 예배시간 외에는 지역주민들의 주차를 허락한다는
‘안내표지판’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주차시키기를 3개월 정도가 지나던 어느, 추운겨울날 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왜 그리도 추운지 모릅니다. 추우니까 마음 또한 추웠습니다.
도망자의 신세 이었으니까 처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정신적인 무거움에 감당하기 힘든 새벽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주차를 시키고 나오는데, 교회버스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새벽4시 경이었으니까 새벽기도회가 시작되기 전 이었습니다.
대구칠곡교회 는 새벽기도회가 1.2부로 5시에는 2부가 열리는데, 그날은 1부가 시작되기 전 이었습니다.
교회버스가 들어와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고, 승용차 막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도 저 사람들과 함께 새벽기도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새 저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지하 제2 예배당 속에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주일예배를 드리는 본당, 지하건물에서 새벽기도회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정말, 순간적인 생각이었는데, 무엇인가가 저를 빨아 당기는 것처럼, 제 몸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그만큼, 정신적인 무게와 마약에 취한 육체는 힘들기가 이루어 말할 수가 없습니다.
지하 예배당은 정말, 따뜻했습니다.
바깥의 날씨가 너무나 추웠기 때문 일수도 있지만,
육체적인 느낌 보다도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안정감이 느껴졌습니다.
지하 예배당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생각 외로 많은 분들이 새벽기도를 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대구칠곡교회는 담임목사님과 5분의 부목사님께서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날은 담임목사님께서 새벽기도회1부를 인도 하셨습니다.
태어나 처음, 그렇게 남의교회에 새벽기도에 가게 된 것도 이상한 일이었지만,
설교말씀의 내용이 마치, 저를 보고 하는 설교 말씀이었습니다.
무엇이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마치,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벼루고 있다가, 막, 저를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렇게 부끄러움을 느껴 본적이 없었습니다.
마약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이 무슨, 양심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날 새벽은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고,
‘쥐구멍’이라는 속담을 처음 이해도 하게 되었습니다.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이미, 정돈된 예배분위기를 깨고 나간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습니다.
그러 나, 조금씩 시간이지나면서 마음이 안정이 되었고,
담임목사인 ‘오 세원’ 목사님의 설교말씀들이 저의 가슴을 쥐어 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왜 그렇게 편안했던지 모릅니다.
남의 교회에 도둑주차를 시킨 지 3개월째,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날 다른 것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분명히 기억에 남는 것은,
/ “아.. 도망자의 신세가 아닌 가운데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새벽기도는 두 달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몇일은 새벽에 일어나지 못해서 가지 못한 날, 빼고는 매일같이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어차피 잡혀 갈 것인데 갈 때 가더라도 겁내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불안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날이 갈수록 배짱도 생겼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맡기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도둑주차에 도둑 새벽기도까지 양심의 마음의 무게가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새해가 되고 2007년 1월 30일 정식으로 새신자 등록을 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편했던지 모릅니다.
정식으로 ‘새신자’ 등록을 마치니까, 모든 마음의 짐이 사라졌습니다.
몇일 후,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 당시,
이순옥전도사님께서 신방을 받겠느냐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저는 생각할 것도 없이 감사하게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심방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처와 아들이 있는 아파트가 있었지만, 저의 비밀숙소에서 심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왠지 혼자서 심방을 받으려니 무엇인가가 허전하고, 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해교도소에서 출소해서 대구동신교회에 등록해 뜨거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손 S형제와 함께 신방을 좀 받았으면 한다고 연락을 하니까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심방도중에 <오 세원> 목사님께서 갑자기 저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때, 옆에 있던 손 S형제 는 느닷없이
/ “저.. 저.. 이동생은 수... 수.. 수배잡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성격이 급한 손원식 형제는 말이 조금 더덥습니다.
갑자기 오세원 목사님의 시선이 저에게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의 돌출발언에 얼마나 제가 놀랬던지 모릅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르게 해서 무릅 을 꿇으니까 손 원식 형제도 함께 꿇어앉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노련하신 목사님께서
/ “그래, 종목이 뭐냐!../
하시고 물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말을 못하고 있는데 손 원식 형제가
/ ”저희들은 마.. 마.. 마약사범으로서... 저는 동신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동생은 수배가 되어서... /
그렇게 심방이 진행되었고, 결국, 조만간에 ‘자수’를 준비하자고 목사님과의 상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수할 때 까지 봉사와 기도를 많이 하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바쁘신 심방 일정이 길어졌지만, 목사님께서 깊은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다 털리고 나니까 얼마나, 마음이 후련한지 몰랐습니다.
다음 주일예배부터는 얼마나 마음이 가벼운지 몰랐습니다.
그때마다, 도망자의 신세만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저는 이번 4년의 감옥생활에서 정말 처절한 기도 생활을 했습니다.
단 한순간도 하나님을 떠나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하나님을 붙잡은 손을 놓게 된다면, 저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마약을 구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시 마약세계로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 어느 때, 보다도 사탄은 저를 부수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저를 시험의 도가니 로 몰아넣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옥 안에서의 주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훈련과 과정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저는 벌써 사탄의 심부름꾼으로 변했을 것이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해매이고 있을 것입니다.
저의 지금의 현실은, 일요일이면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과 수요예배에 참석하는 시간,
그리고 건강의 문제로 병원을 다니는 움직임을 빼면 바깥의 행동은 없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하는 시간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지난 저의 모든 과거를 발가벗고 올리는 간증의 공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부수어 질대로 다 부수어진 제가 무엇을 숨길 것 이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부끄러울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무엇이 겁낼 것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면 저와 같은 마약사범들도 새롭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저의 목적이 될 수 있으며,
처절한 절규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절대로 마약은 끊을 수 없다.
그럴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가능하다고
마약사범들 앞에서 소리치고 싶습니다.
수많은 세월을 마약으로 구속되어 감옥에서 보낸 잃어버린 세월들이 있고,
저와 같은 마약사범들이 얼마나 많이 감옥의 담장 안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의 아픔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버림받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멀어져야 하는 아픔을 소리 없이 신음하며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담장 안에 있고, 담장바깥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중단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지 않으면,
그들은 영원히 사탄의 노예로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곳입니다.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외면하고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다면 결국, 사회는 더욱 어지러울 것이고,
세상은 더욱 어둠속으로 빠져 들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악이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은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행동하지 않고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냉당한 반응을 보이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정의의 목소리가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짐바르도란 스탠퍼드대학 심리학교수가 한 말이 있습니다.
그가 쓴 책, <루시퍼 이백트>란 책속에는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란 물음을 던지며
인간본성의 어두운 면과 악의실체를 파악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짐바르도는
“악한 사람은 그 기질에 원인이 있다”라는 기존의 통념을 깨고
선과 악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모색 한다
“인간은 누구나 의지와 달리 순식간에 악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고
경종을 울립니다.
루시퍼처럼 악의 얼굴은 평범하며
“선과 악의 경계는 모든 사람의 마음 한 복판에 있다”고 갈파했던 알렉산드로 솔제니친과 상통합니다.
또 어느 교수는 “인간은 왜 악에 굴복 하는가” 악의 근원은 두려움에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란 책을 쓴
“앨퍼드”는 “악이란 자신의 두려움을 타자에게 전가 시키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규정했습니다.
앨퍼르가 보기엔 “인간 본연의 양상인 악은 결코 제거 될 수 없다”
그는 악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을 지닌 인류가
악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파괴적충동의 완충지대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
범죄자들의 가학증에 배설 통로를 열어 주는 것이라고 역설 했습니다.
오랜 마약상용자로써 마약판매자로 살아왔던 경험자인 저는 마약은 분명,
악의 실체라고 단정지울 수 있다고 정의 합니다.
그렇다면 마약사범들의 교화는 교회와 기독교단체에서
정면으로 부딪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개신교 교회와 단체에서
감옥의 높은 담장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는 정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 분들의 노력과 땀방울이 있었기에
저도 이렇게 하나님을 붙들고 과거를 청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마약사범들이 악의 나락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그 단체는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형식에 맞춘 전략보다는 참 진리를 전도하는 예수님의 사랑과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 전도자들이
많이 감옥의 담장 안으로 말씀을 전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약사범들은 전국적으로 조직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교도소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은 전국적이다 못해 국제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담장안의 현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마약사범들의 확산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논리적이고 형식적인 구시대적인 탁상공론의 마약정책은 이제 바뀌어져야 합니다.
지역의 마약확산을 방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가정을 분해하고
전국으로 확산 되어가게 하는 심각한 비 이상적인 현실은 이제 바뀌어져야 할 때입니다.
그 시작이, 늦었지만 이들의 이감조치부터 없애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마약사범들도 진정한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서 후회하는 것은 너무나 무의 미 한 것입니다.
신앙의 힘은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마약은 사탄의 전유물이자 악의 근원적인 모든 것을 비축하고 있습니다.
악과선의 대립에서 선도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십니다.
영혼과 육체가 병들어 죽음의 문턱에서 사탄의 먹이감이 되기 전에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요약>
[11]
(박 삼중) 이라는 스님이 있습니다.
그분은 “사형수”들만 교화 하시는 분으로 그의 유명한 저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내 아들아! 애미 젖 한번 먹고 가려므나”는 유명한 저서 입니다.
그의 책속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삶은 교도소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마치 높은 담장위에서 곡예를 하는 것과 같다.
모두가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발각되느냐 그러하지 않느냐에 따라 수감자가 결정 되는 것 일뿐,
감옥에 있는 사람과 그러하지 않는 사람을 흑백 논리로 갈라놓고 죄인이다,
아니다, 를 따지는 것은 옳치 못한 일이다.
일반인이 재소자들을 대할 때, 마치 자신들과는 다른 별천지의 사람들인 것처럼 선입견을 가지는 것이
늘 상 마음 아픈 것이었다”/(박 삼중 스님) 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러분! 추운 겨울이 되면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힘이 듭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형제여러분의 간절한 기도가 그들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오직 기도만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요약] <대구칠곡교회> 오세원 목사님과 <목요전도대> 에서
부족한 저를 위해 4년간 기도해 주신 능력으로 저 같은 못난 사람도 감옥의 담장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믿음의 형제들이 기도해 주신다면, 담장안의 수많은 마약사범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죄, 눈에 보이지 않는 죄,
주도면밀한 죄는 치밀한 계획이 동반되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죄질은 더욱 나쁠 수 있습니다.
마약만큼 눈에 보이는 죄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뛰었다는 것은 그만큼 순진성에 의해서 포장되어 숨기어 지지 않은 단순한 죄일 수 있습니다.
마약사범의 한사람으로써 단순한 피해의식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부정적인 시각의 표현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앞에서 우리가 죄인인 것을 시인하면
감옥속에 있는 자들에게 향했던 편견성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편견성과 차가운 시선이 아닌 진실 된 따뜻함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그마음이 전해질 때 그들도 변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같은 형제일 것입니다.
저는 정말, 마약판매로 죄를 많이 지었던 사람입니다.
정말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죄”라는 단어는 <하마르티아> “과녁”을 빚마추다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기준을 정해 주셨습니다.
“활”을 쏘았는데 과녁을 맞추지 못하고 벗어났을 때, 그때 ‘하마르티’아 라고 합니다.
정해진 곳을 향해서 날아가지 못하고 과녁을 벗어나면 죄가 된다고 하는 것과 같이
우리 신앙의 과녁이 말씀이라고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신앙의 죄인일 것입니다.
거런 의미에서 저는 완전히 과녁에서 멀어져 있었던 사람이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입니다.
신앙의 정조준을 과녁의 가장자리를 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주변의 가장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 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강하다고 자부하는 자를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독립자, 그는 하나님 눈에서 가장 약한 자 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의존자, 그는 세상의 강자 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의존자, 그는 세상의 강자입니다.
그것은 영적체험을 통해서 강해지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기도하는 사람을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존 번연>은 하나님은 우리가 덧셈을 할 때, 뺄셈을 하시고 우리가 뺄셈을 할 때, 덧셈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는 마치, 손해를 보는 것 같이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수학공식은 우리의 것과 다릅니다.
등을 돌린 사람에게 다시 한 번 관심과 배려와 기도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감옥안의 마약사범들 모두 믿음의 형제들이 전도해야 할 아주 특별한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영역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렇습니다.
저는 이번, 4년의 마지막 형기를 사는 동안, 정말 처절한 기도로 하나님께 메달리는 기도를 했습니다.
추운날, 교도소 담장안의 강당에서 열리는 기독교 집회 때 마다 수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감옥의 차가운 독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읽으면서 보낸 시간은 정말,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마음은 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의 뜨거운 기도의 순간들이 차츰, 무뎌져가고 있음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아직도 제 영혼이 허약한 탓이겠지요.
길었던 마지막 4년의 형기를 마치고, 저는 이제 담장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앞으로 하나님을 떠나 주님을 멀리하고 저의 기도 소리가 멈춘다면,
갈 곳은 분명, 감옥뿐일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을 하나님만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 앞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이현실이 솔직히 너무나도 무겁지만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의 어두웠던 지난 과거가 하나님과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기회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가브리엘존 신앙간증|작성자 가브리엘존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abrielzone&logNo=
첫댓글 “역사를 통해서 악이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은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행동하지 않고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냉당한 반응을 보이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정의의 목소리가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의지와 달리 순식간에 악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
“악이란 자신의 두려움을 타자에게 전가 시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