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내리는 벌판 한 가운데를 걸을때라는 뜻으로, 조국의 운명이 눈보라 몰아치는 위기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후손들에게 모범을 보일 것을 강조한 명언이다.
踏 : 밟을 답(足/8)
雪 : 눈 설(雨/3)
野 : 들 야(里/4)
中 : 가운데 중(丨/3)
去 : 갈 거(厶/3)
따뜻한 초겨울이 지나고 추위가 다가온다. 눈에다 서리까지 설상가상(雪上加霜)이 아니면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눈이라 글을 하는 문사들은 예부터 좋은 글을 많이 남겼다.
백설부(白雪賦)/김진섭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시는 백설(白雪), 이것이 정숙히 읊조리는 것이니..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제히 고요한 환호성을 소리 높이 지르는 듯한 느낌,
설야(雪夜)/김광균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현대의 문장가들 작품 말고 앞선 한시도 많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애송되는 것이 눈 밟으며 들판을 걸을 때로 첫 구가 시작되는 이 시다.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시라 하고, 1948년 남북협상 길에 38선을 넘으며 읊었다는 일화로 더욱 유명해졌다. 간단하니 전문을 보자.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엔, 걸음걸이 어지럽게 걸어서는 아니 되리, 오늘 걸어간 나의 발자취가, 뒤에 오는 사람의 길잡이가 되리니.
큰 눈이 내렸을 때 앞서 간 사람이 똑바로 길을 잡지 않고 어지러이 걸어가면 뒤따르는 사람은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기에 그만큼 이끄는 사람의 책임감이 중하다고 깨우친다.
이 시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승병장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한문학 교수들이 조사한 결과 조선(朝鮮) 순조 때 활동한 시인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의 저작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서산대사로 나온 곳이 많고 시의 제목도 야설(野雪)이나 천설(穿雪) 등으로 각기 나와 전문가들의 정리가 있어야 할 듯하다.
개성서 열렸던 남북당국회담에서 남측의 황부기 통일부 차관이 김구 선생의 이 애송시를 인용해 다시 유명해졌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갈 之(지)자로 걷지 말고 온전하게 걷는 것이 중요하다며 통일로 가는 큰길을 열자고 의욕을 보였지만 아무 성과 없이 결렬됐었다.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 따라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된다네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눈을 뚫고 들판 길을 걸어갈 적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어지럽게 함부로 갈 일 아니네.
今朝我行跡(금조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이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 따라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된다네.
위 시는 조선 후기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의 시 '야설(野雪: 들판에 내리는 눈)'로, 그의 문집인 '임연당집(臨淵堂集)'에 실려 있다. 참으로 무서운 내용을 담은 시다. 바쁜 일상에서 언제나 타의 모범만 되는 언행을 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시인이 들판에 내린 눈을 보고 읊은 것이지만, 그 속에 만고의 진리가 될 경구를 품었다.
시인은 아마도 눈밭을 밟고 간 사람의 발자국을 보았을 것이다. 그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이리저리 걸어 어지럽게 발자국을 남긴 모양이다. 그러면서 뒤 이어 걸어올 사람을 위해 반듯하게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세상 사람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면서, 자신에게 던지는 죽비 소리다.
시인은 세종의 다섯 째 아들인 광평대군 이여(李璵)의 후손으로, 공조참의, 동지중추부사, 호조참판, 동지돈녕부사 겸 부총관 등을 지냈다. 그는 평생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을 스승으로 삼았다. '심경'은 심성 수양에 관한 격언을 모은 책이고, '근사록'은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등 네 학자의 글에서 뽑은, 선비로서 삶의 방향을 제시한 책이다.
또한 그는 늙어서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고, 많은 저서를 남긴 학자이기도 했다. 그러니 수양을 바탕으로 선비로서 처신을 함부로 하지 않는 문인이어서, 위 시와 같은 깊은 철학적 작품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1948년 4월 19일 김구 선생이 해방된 조국의 분단을 막기 위해 38선을 넘으면서 위 시를 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삶은 눈 덮힌 들판을 걷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이 요즈음은 어른이 사라진 세상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며 주변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요즈음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그다지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느낀다.
국민연금을 두고도 논란이 많다. 어떤 이들은 국민연금 논란이 신구 세대의 세대 갈등을 부채질한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국민연금이 문제 되기는 하지만 지금 논의처럼 더 내고 덜 받는 것을 공식화하는 해법은 어쩌면 맞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기초 노령연금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며 노인들이 노동하지 않고는 기본 생활을 하기 힘든 시대가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른들은 더욱 불필요한 존재로 인식되기 쉽다. 그것은 또 다른 사회 불안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사회 현상과 인식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노인은 늘어나는데 어른은 줄어든다는 생각이다. 노인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다. 어른은 나이만 많은 것이 아니라 인격과 덕망을 갖춘 존경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어른을 존경과 공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옛날에도 어른으로 섬긴 사람은 꼭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학식과 덕망과 지혜를 갖추어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어른은 생물학적으로는 성년이후의 사람을 지칭하지만, 문화적으로는 학식과 덕망과 지혜가 있어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요즈음은 노인은 많은데 어른이 사라진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문화적인 측면의 어른을 말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어른으로부터 세상의 온갖 지식과 경험과 지혜와 덕망을 배우고 안내받으며 성장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인터넷 등 각종 매체가 발달한 지식산업사회에서 어른은 오히려 지식적인 면에서 젊은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불편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까지 늙은 선생은 인기가 없다. 그것은 생물학적 어른들이 지식도 부족할 뿐 아니라 삶의 참된 안내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짜 어른이 되려면 사람들에게 자기의 발자취를 따라오라고 할 만큼의 학식과 덕망과 지혜를 닦으며 발휘해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공주 마곡사에 자주 간다. 그 고즈넉한 풍경도 좋고 물소리도 좋다. 특히 그곳은 김구 선생의 흔적이 있어 더욱 좋다. 마곡사는 백범 김구 선생이 피신하여 한참 동안 수행을 하며 구국의 마음을 다지던 곳이다. 그래서 마곡사에는 백범당이 있으며, 승려가 되기 위해 머리를 깎았던 바위인 삭발터가 있고, 김구 선생이 산책을 하였다는 곳을 김구 산책로가 있다.
백범당에 들면 눈에 확 들어오는 액자가 있다. 백범 선생이 평생좌우명으로 삼았다는 친필 휘호이다. 그것은 원래 서산대사의 선시(禪詩)인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인데 백범 선생이 그것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고 한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밝고 갈 적에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어지러이 걸어선 아니 된다.
금일아행적(今日我行蹟)
오늘 내가 걸었던 이 길을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뒷사람이 그대로 따를 것이니라
인생길을 비유하자면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즉 눈 덮힌 들판을 가는 것이다. 눈 덮힌 들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세상만 아니라 정신적인 세상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언행 즉 삶의 총체적인 모습이다. 삶은 누구의 삶이든 흔적이 남는다.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흔적을 거울삼아 따르게 되어 있다. 특히 미개척의 세상을 살아갈 때 앞서간 사람의 삶의 흔적은 중요한 좌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세상과 후세에 책임이 강한 사람이라면 그 삶의 흔적을 함부로 남기지 않으려 한다. 그런 사람에게 삶은 눈 덮힌 들판을 가는 것과 같다. 눈 덮은 들판을 가면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발자국을 보고 길을 안내받아 따르게 되어 있다. 눈덮힌 발자국은 단순한 발자국이 아니라 삶의 좌표이다.
따라서 조심스럽고 모범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즉 어지러이 걸어선 안 된다. 왜냐하면 금일아행적(今日我行蹟 ; 오늘 내가 걸었던 이 길을)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뒷사람이 그대로 따를 것이니라)하기 때문이다. 어지러이 걸어선 안 된다는 것은 물리적인 현상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것 모두를 포함한다. 특히 물리적인 걸음걸이보다는 그가 사는 삶의 총체적인 현상, 언행을 지칭한다. 물리적인 발자국은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겠지만 삶의 행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세상과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까지 한다.
어지러이 걸어선 안 된다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는 바른 생각과 바른 행동을 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살아간 삶의 행적이 도덕적으로 옳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둘째, 정체성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저 함부로 다른 사람의 삶을 모방하며 사는 삶도 아니고 자기의 철학과 가치를 세우며 살아간 삶이다. 셋째, 삶의 일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삶은 초지일관 자기의 덕성과 사상을 지키며 지조 있는 삶을 살아갈 때 가치를 발휘한다. 여기서 어지러이 걸어선 안 된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에 악을 자행하고 간 사람들만 아니다. 육당 최남선은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할 만큼 학식이 뛰어나고 독립정신이 있었지만, 친일을 하였기에 삶의 정체성과 일관성을 지니지 못했다. 소설 <흙>과 <유정> 등으로 유명한 춘원 이광수는 특출난 문장가였으나 뒷날 친일을 하였기에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되는 등 삶의 오욕을 남겼다. 그래서 그들의 삶의 발자국은 욕된 것이 되었다. 여기서 어지러이 걸어선 안 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죄악에서부터 육당이나 춘원 같은 삶까지를 포함한다.
세상은 삶을 어지러이 걸어간 사람들로 인해 혼탁해지고 심지어는 나라가 망하고 사람들을 고난의 늪으로 빠지게도 했다. 진나라 말기 ‘환관 조고’는 스스로 왕이 될 욕심으로 국정을 농단하여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나라를 망하게 했다. 이완용은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고 나라를 팔아먹는 오적(五賊)이 되어 수많은 조선 민중을 노예의 수렁에 빠지게 하는데 앞장섰다. 그래서 역사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이들의 삶을 어지럽게 한 것은 잘못되고 절제되지 못한 욕망이다.
그러면 어찌하면 삶을 살아가면서 어지럽게 살지 않고 뒤따르는 사람들이 내가 살았던 삶의 흔적을 따라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수 있을까? 첫째는 끊임없는 자기 연찬의 노력이다. 그 연찬은 학문의 연찬과 함께 지속적인 자기 성찰이다. 그 연찬을 통해 학식과 인격을 더욱 연마하고 자신을 다스림으로 사람들이 나의 삶의 자취를 따르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할 수 있다. 그 길은 공자가 대학(大學)에서 말한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이며, 백성(사람들)을 새롭게 교화하는 것이며, 지극한 선의 경지에 머무는 것(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고 在新(親)民하고 在止於至善)과 같은 경지이다.
그러나 학식과 덕망을 연찬하는 그 밝은 덕을 밝힌다(明明德)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다짐했음에도 내일 잊어버리고, 오늘 실천했다가도 내일 다른 욕망이 방해하면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다, 그래서 공자는 하나라의 폭군 걸왕(桀王)을 몰아내고 상나라를 세운 탕왕(湯王)의 탕지반명(湯之盤銘)의 사례를 들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탕지반명(湯之盤銘)이란 탕 임금이 매일 아침 세수하는 세숫대야에 문구를 새겨 넣고 그것을 보면서 마음과 행동을 바로 잡았다는 것이다. 탕 임금의 세숫대야에는 어떤 글귀가 새겨졌을까? 그것은 바로 오늘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란 말의 원래 말인 <苟日新이어든 日日新하고 又日新(진실로 날마다 예전의 나쁜 습관을 버리고 나를 새롭게 변화시킴이 있으면 나는 나날이 새롭게 변화되고 또 날마다 변화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이다. 이는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향하여 노력하라는 의미이다.
둘째, 욕망에 대한 절제와 관리이다. 사람은 욕망하는 존재이다. 여기서 욕망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지만 욕망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발휘되느냐에 따라 가치를 달리한다. 특히 본능적인 욕망, 권력과 재물에 대한 욕망 등은 지나칠 수 있으며 가만히 두어도 한없이 발휘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바람직하지 않은 욕망은 절제하고 관리할 줄 알아야 하며 바람직한 욕망은 이성으로 다스리며 올곧게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곧 욕망을 추구하되 선을 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자는 그것을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즐기되 음탕하지 않으며 슬퍼면서도 마음은 상하지 않는다.)이라고 하였다.
중국 고대 성왕(聖王)의 시대, 주의 수장 계력(季歴)의 아내 태임(太任)은 서주 문왕의 어머니였다. 계력(季歴)이 상나라의 문정에게 감금되어 굶어 죽자, 태임(太任)은 홀몸으로 문왕을 잘 보육하였다. 태임은 매사에 경계하며 솔선하는 자세로 자신을 연마하며 자식을 가르쳤다고 한다.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은 그 태임을 존경하였기에 태임과 같은 삶을 살고자 하여 호를 사임당(師任堂- 태임을 스승으로 모신다)으로 삼았다고 한다. 눈 덮힌 들판과 같은 삶의 길을 올곧고 열심히 살아간 사람들은 누군가 따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삶 자체는 나의 삶이지만 나의 삶만은 아니며 삶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전주 한옥 마을에 있는 최명희 문학관 입구에 이런 글이 있다. “사람은 누구라도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실해야 한다. 살고 난 뒷자리도 마찬가지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평생좌우명으로 삼은 서산대사의 선시와 같은 내용이리라. 사람을 존경하고 따르는 이유는 학식만이 아니라, 그의 인격과 향기 나는 삶의 자취 때문이다. 점점 어른이 실종되어 가는 세상에서 특히 어른들이 새겼으면 하는 말들이다.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연찬하고 성찰하는 사람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분명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이기 때문이다.
▶️ 踏(밟을 답)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발 족(足; 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겹친다는 뜻을 보이는 沓(답)으로 이루어졌다. 발로 거듭 밟는다는 뜻이 전(轉)하여 밟는다는 뜻이 되었다. 그래서 踏(답)은 ①밟다, 디디다 ②밟아 누르다 ③걷다, 밟고 가다 ④(발로)장단 맞추다 ⑤조사하다, 살피다 ⑥신발 ⑦발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밟을 리(履), 밟을 태(跆), 밟을 천(踐), 밟을 유(蹂), 밟을 척(蹠)'이 있다. 용례로는 제자리에 서서 하는 걸음을 답보(踏步), 그곳에 실지로 가서 보고 자세히 조사한다는 답사(踏査), 선인의 행적을 그대로 따라 행하는 답습(踏襲), 험한 길이나 먼길을 끝까지 걸어 나감을 답파(踏破), 발로 땅을 구르며 장단을 맞추어 노래함을 답가(踏歌), 봄에 파랗게 난 풀을 밟고 거닒이나 들을 산책함을 답청(踏靑), 논밭에 가서 농작의 상황을 실지로 답사함을 답험(踏驗), 짓밟아서 죽임을 답살(踏殺), 낙엽을 밟으며 거닒 또는 그 걸음을 답엽(踏葉), 실제로 현장에 가서 살펴 봄을 답심(踏審), 말이 통증을 못 이겨 발로 땅을 박차는 일을 답지(踏地), 달밤에 거닒 또는 그 걸음을 답월(踏月), 짓밟음을 이르는 말을 천답(踐踏), 널리 돌아다님을 편답(遍踏), 발로 밟고 참을 각답(脚踏), 지위나 명리를 바라지 않고 속세를 초연함을 고답(高踏), 실제로 돌아다니며 조사함을 검답(檢踏), 아직 아무의 발길도 미치지 아니함을 미답(未踏), 오가는 사람이 많아서 와글와글 혼잡함을 분답(紛踏), 캄캄한 밤길을 갈 때에 하얗게 보이는 것은 흔히 물이므로 조심해서 밟지 않도록 걸으라는 말을 야불답백(夜不踏白), 복철을 밟지 말라는 뜻으로 선인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말라는 말을 부답복철(不踏覆轍), 이전 사람이 아직 밟지 않았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아무도 손을 대거나 발을 디딘 일이 없다는 말을 전인미답(前人未踏), 상전의 빨래에 종의 발꿈치가 희게 된다는 뜻으로 남을 위하여 한일이 자신에게도 이롭게 된다는 말을 세답족백(洗踏足白), 소가 밟아도 안 깨어진다는 뜻으로 사물의 견고함의 비유한 말을 우답불파(牛踏不破) 등에 쓰인다.
▶️ 雪(눈 설)은 ❶회의문자로 비(雨)가 하늘에서 얼어 내리는 하얀 눈을 빗자루(부수를 제외한 글자)로 쓴다는 뜻을 합(合)한 글자로 눈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雪자는 '눈'이나 '흰색', '고결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雪자는 雨(비 우)자와 彗(비 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彗자는 손에 빗자루를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빗자루'나 '쓸다'는 뜻이 있다. 雪자의 금문을 보면 雨자 아래로 彗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린 눈을 빗자루로 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눈을 표현하기 위해 재미있는 방법이 적용되었다. 그래서 본래 彗자가 적용된 䨮(눈 설)자가 쓰여야 하지만 편의상 획을 줄인 雪자가 '눈'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외에도 雪자는 하얀 눈에서 착안 된 '고결하다'나 '씻어 버리다'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雪(눈)은 ①눈(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 ②흰색 ③흰것의 비유 ④눈이 내리다 ⑤희다 ⑥고결하다 ⑦씻다 ⑧표명하다(의사나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눈이 내리는 경치 또는 눈이 쌓인 경치를 설경(雪景), 눈이 쌓인 산을 설산(雪山), 눈이 내리는 밤을 설야(雪夜), 눈이 뒤덮여 있는 벌판을 설원(雪原), 눈이 많이 내림으로 인하여서 받는 피해를 설해(雪害), 굵게 엉겨 꽃송이 같이 보이는 눈을 설화(雪花), 상대를 이김으로써 지난번 패배의 부끄러움을 씻고 명예를 되찾는 것을 설욕(雪辱), 부끄러움을 씻음을 설치(雪恥), 맛이 달고 물에 잘 녹는 무색의 결정을 설탕(雪糖), 세차게 내리는 눈을 강설(强雪), 많이 오는 눈을 대설(大雪), 적게 오는 눈을 소설(小雪), 많이 오는 눈을 장설(壯雪), 갑자기 많이 내리는 눈을 폭설(暴雪), 고생하면서도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학문을 닦음을 가리키는 말을 형설(螢雪), 얼음과 눈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본디부터 타고난 마음씨가 결백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빙설(氷雪), 봄철에 오는 눈을 춘설(春雪), 부끄러움 따위를 씻어 버림을 세설(洗雪), 눈 위에 또 서리가 내린다는 뜻으로 어려운 일이 겹침을 이름 또는 환난이 거듭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설상가상(雪上加霜), 눈처럼 흰 살결과 꽃처럼 고운 얼굴이란 뜻으로 미인의 용모를 일컫는 말을 설부화용(雪膚花容), 기러기가 눈이 녹은 진창 위에 남긴 발톱 자국이라는 뜻으로 얼마 안 가서 그 자국이 지워지고 또 기러기가 날아간 방향을 알 수 없다는 데서 흔적이 남지 않거나 간 곳을 모른다는 말을 설니홍조(雪泥鴻爪), 매화를 달리 이르는 말을 설중군자(雪中君子), 눈 속의 송백이라는 뜻으로 소나무와 잣나무는 눈 속에서도 그 색이 변치 않는다 하여 절조가 굳은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설중송백(雪中松柏), 눈 속에 있는 사람에게 땔감을 보내준다는 뜻으로 급히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줌을 이르는 말을 설중송탄(雪中送炭),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눈 빛에 비쳐 책을 읽는다는 뜻으로 가난을 무릅쓰고 학문함을 이르는 말을 영설독서(映雪讀書), 얼음이 얼고 찬 눈이 내린다는 뜻으로 심한 추위를 이르는 말을 동빙한설(凍氷寒雪), 정씨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는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을 이르는 말을 정문입설(程門立雪) 등에 쓰인다.
▶️ 野(들 야, 변두리 여, 농막 서)는 ❶형성문자로 埜(야)는 고자(古字), 墅(야)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마을 리(里; 마을)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予(여, 야)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予(여, 야)는 물건과 물건을 강제로 떼어놓는 일이나 침착하여 초조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里(리)는 사람이 사는 곳, 野(야)는 마을에서 떨어진 곳, 넓고 넓은 곳을 나타낸다. 도시의 언저리를 郊(교)라고 하고 郊(교)의 언저리를 野(야)라 한다. 옛 글자체는 숲(林)과 흙(土)을 합(合)한 것(埜)이며 나무가 난 곳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野자는 ‘들판’이나 ‘교외’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野자는 里(마을 리)자와 予(나 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予자는 실을 감는 ‘실패’를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여→야’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런데 野자의 갑골문을 보면 土(흙 토)자와 林(수풀 림)자가 결합한 埜(들 야)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흙과 나무가 많은 곳을 표현한 것으로 숲이 우거져 있는 ‘들판’이나 ‘교외’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소전에서부터는 里자가 교외 지역의 의미를 대신하게 되었고 予자는 발음역할을 하게 되면서 지금의 野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野(야, 여, 서)는 먼저 들 야의 경우는 ①들, 들판(야) ②민간(民間: 일반 백성들 사이)(야) ③문밖, 마을, 시골(야) ④성(城) 밖, 교외(郊外)(야) ⑤구역(區域), 범위(範圍)(야) ⑥별자리(야) ⑦야생(野生)의(야) ⑧질박하다(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야) ⑨촌스럽다, 꾸밈새가 없다(야) ⑩길들지 않다(야) ⑪서투르다, 익숙하지 못하다(야) ⑫거칠다(야) ⑬등한하다(무엇에 관심이 없거나 소홀하다), 사리에 어둡다(야) ⑭비천하다(야) ⑮미개하다(야) ⑯방종하다, 자유분방하다(야) 그리고 변두리 여의 경우는 ⓐ변두리, 교외(郊外)(여) 그리고 농막 서의 경우는 ㉠농막(農幕: 농사짓는 데 편리하도록 논밭 근처에 간단하게 지은 집)(서)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침 조(朝), 더불 여(與)이다. 용례로는 지능이 미개하고 문화가 극히 뒤떨어진 상태를 야만(野蠻), 들에서 나는 나물을 야채(野菜), 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을 야망(野望), 산이나 들에 저절로 나서 자람을 야생(野生), 마을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들을 야외(野外), 들 가까이에 있는 나지막한 산을 야산(野山), 야망을 이루려는 마음을 야심(野心), 농사를 짓는 사람을 야민(野民), 야심을 품은 욕심을 야욕(野慾), 들에서 하는 싸움을 야전(野戰), 성질이나 행동이 야하고 비루함을 야비(野卑), 좋지 못한 목적 밑에 서로 어울림을 야합(野合), 들에 친 진영 또는 거기서 하는 생활을 야영(野營), 교양이 없고 거친 사람을 야인(野人), 어떤 갈래에 달린 범위나 부문을 분야(分野), 여당과 야당을 여야(與野), 눈의 보는 힘이 미치는 범위를 시야(視野), 지표면이 평평한 넓은 들을 평야(平野), 아득하게 너른 벌판을 광야(廣野), 나무가 무성한 들을 임야(林野), 초야에 파묻혀 있음을 재야(在野), 현명한 사람이 모두 등용되어 민간에 인물이 없음을 야무유현(野無遺賢), 기름진 들판이 천 리에 달한다는 뜻으로 끝없이 넓은 기름진 들판을 옥야천리(沃野千里), 산과 들에 가득히 뒤덮임을 만산편야(滿山遍野), 끝이 없이 넓은 들을 무변대야(無邊大野), 두 다리의 여우라는 뜻으로 마음이 음흉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양각야호(兩脚野狐), 이리 새끼는 사람이 길들이려고 해도 본래의 야성 때문에 좀체로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낭자야심(狼子野心) 등에 쓰인다.
▶️ 中(가운데 중)은 ❶지사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물의 한가운데를 상하로 통하는 세로 금으로 중심, 중앙을 뜻함과 형제를 위로부터 차례로 伯(백), 仲(중), 叔(숙), 季(계)라고 일컬을 때의 仲(중)으로서 쓰인 것이다. 또는 깃대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상형문자로 中자는 ‘가운데’나 ‘속’, ‘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전에는 中자가 무언가를 꿰뚫는 모습을 그렸던 것으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갑골문이 발견된 이후에는 이것이 군 진영에 깃발을 꽂아놓은 모습을 그려졌던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中자는 진지 중앙에 펄럭이는 깃발을 그린 것으로 ‘가운데’나 ‘중앙’을 뜻하고 있다. 中자가 ‘중앙’이라는 뜻으로 쓰이다 보니 때로는 ‘속’이나 ‘안’, ‘마음’과 같은 사물의 중심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中(중)은 (1)일부 한자로 된 명사(名詞)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의 뜻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과정임을 나타냄 (2)등급 같은 것을 上中下(大中小)로 구분할 경우 그 가운데 등급 중등(中等) (3)중국 (4)장기판에서 끝으로부터 둘째의 가로줄을 이르는 말 (5)마음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가운데 ②안, 속 ③사이 ④진행(進行) ⑤마음, 심중(心中) ⑥몸, 신체(身體) ⑦내장(內臟) ⑧중도(中途) ⑨절반(折半) ⑩장정(壯丁) ⑪관아의 장부, 안건(案件) ⑫가운데 등급 ⑬중매(仲媒), 중개(仲介) ⑭중국(中國) ⑮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둘째, 다음 ⑯가운데에 있다 ⑰부합하다, 일치하다 ⑱맞다, 맞히다, 적중시키다 ⑲급제하다, 합격하다 ⑳해당하다, 응하다 ㉑뚫다 ㉒바르다, 곧다 ㉓가득 차다 ㉔이루다, 이루어지다 ㉕고르다, 고르게 하다 ㉖간격을 두다 ㉗해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깥 외(外)이다. 용례로는 중도에서 끊어짐을 중단(中斷), 한가운데를 중심(中心), 사방의 중심이 되는 곳을 중앙(中央),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 중추(中樞), 일이 되어 가는 동안 중도(中途), 치우침이나 과부족이 없이 떳떳하며 알맞은 상태나 정도를 중용(中庸),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를 중추(中樞), 두 사물의 사이를 중간(中間),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둠을 중지(中止), 중간에서 이어줌을 중계(中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중립(中立), 길을 가고 있는 동안 도중(途中), 하늘이나 하늘 가운데를 공중(空中), 마음 속을 심중(心中), 도시의 안을 시중(市中), 정신을 집중시킴을 열중(熱中), 눈의 안이나 마음속을 안중(眼中), 코의 밑과 윗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을 인중(人中), 돌에 박힌 화살촉이라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다는 중석몰촉(中石沒鏃), 터무니없는 말로 헐뜯거나 남을 해치려고 속임수를 써서 일을 꾸밈을 중상모략(中傷謀略), 일을 하다가 끝을 맺지 않고 중간에서 그만 둠을 중도이폐(中途而廢), 마음속의 욕망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외부의 사악을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함을 중경외폐(中扃外閉), 중립을 취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중립불의(中立不倚), 보통 사람은 감당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중인불승(中人弗勝), 마음속에 일정한 줏대가 없음을 중무소주(中無所主), 덕성이 발라서 과불급이 없는 화평한 기상을 중화지기(中和之氣), 시작한 일을 완전히 끝내지 아니하고 중간에 흐지부지 한다는 중도반단(中途半斷) 등에 쓰인다.
▶️ 去(갈 거)는 ❶상형문자로 厺(거)는 본자(本字)이다. 본디 마늘 모(厶; 나, 사사롭다, 마늘 모양)部라 쓰고 밥을 담는 우묵한 그릇이나, 안에 틀어 박혀 나오지 않다의 뜻이다. 글자 윗부분의 土(토)는 흙이 아니고 吉(길)의 윗부분 같이 뚜껑을 나타낸다. 우묵하다, 틀어 박히다의 뜻에서 전진(前進)에 대하여 퇴거(退去)를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❷회의문자로 去자는 ‘가다’나 ‘지나다’, ‘내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去자는 土(흙 토)자와 厶(사사 사)자가 함께 결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去자는 大(큰 대)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것이었다. 去자의 갑골문을 보면 팔을 벌린 사람 아래로 口자가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口자는 ‘입’이 아닌 ‘문’을 뜻한다. 갑골문에서의 去자는 사람이 문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떠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는 모양이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去(거)는 지난의 뜻으로 ①가다 ②버리다, 돌보지 아니하다 ③내몰다, 내쫓다 ④물리치다 ⑤덜다, 덜어 버리다, 덜어 없애다 ⑥거두어 들이다 ⑦매었던 것을 풀다 ⑧피하다 ⑨죽이다 ⑩지나간 세월(歲月), 과거(過去) ⑪거성(四聲)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갈 왕(往), 갈 서(逝),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올 래/내(來), 머무를 류/유(留)이다. 용례로는 금전을 서로 대차하거나 물건을 매매하는 일을 거래(去來), 물러감과 나아감을 거취(去就), 지난해를 거년(去年) 또는 거세(去歲), 지난번을 거번(去番) 또는 거반(去般), 제거함을 거세(去勢), 떠남과 머묾을 거류(去留), 뿌리를 없앰을 거근(去根), 버림과 취함을 거취(去取), 가는 길을 거로(去路), 지나간 뒤에 그 사람을 사모함을 거사(去思), 머리와 꼬리를 잘라 버린다는 거두절미(去頭截尾), 헤어진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는 거자필반(去者必返), 가지와 잎을 제거한다는 거기지엽(去其枝葉), 갈수록 더 심함을 거거익심(去去益甚), 연한이 차서 퇴직할 차례라는 거관당차(去官當次), 갈수록 태산이라는 거익태산(去益泰山), 떠나간 사람은 날로 소원해 진다는 거자일소(去者日疎)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