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오름>
점심메뉴 한정식을 주문했는데 계속 나오는 음식에 어디가 끝인지 의아해졌다. 단돈 15,000원에 이렇게 긴 음식의 행렬이, 그것도 맛이 빠지는 음식이 하나도 없는 상차림이 가능한 건지 믿어지지 않았다. 음식점 가득한 손님들, 그것도 품위있는 여자 손님들 중심, 그럴 만하다 싶었다. 맛과 분위기는 여자들이 더 많이 누린다.
1. 식당 얼개
한정식 <산오름>
031) 397-8856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로 91-1(산본동 1149)
2. 먹은 음식 : 점심 한정식 15,000원
먹은 날 : 2019.9.24.점심
3.맛보기
맛도 차림도 가짓수도 빠지지 않는다. 저렴한 점심 메뉴 한정식이 너무 호사스럽다. 거기다 접시차림 플레이팅은 어찌 그리 깔끔하고 여유로운지.
상차림은 시간형과 공간형을 혼합하여 요리라고 칠만한 음식은 순차적으로, 밥반찬이라고 할 것은 공간형으로 한꺼번에 나오면서 완성되었다. 적절한 차림과 서비스다.
서비스가 한식과 양식의 장점을 모두 따왔다. 양식의 장점은 시간형의 플레이팅이다. 모양새도 순차적인 차림도 음식 종류에 따라 적절하여, 적절한 대화와 음식 향유가 모두 가능하다.
1) 부드러운 쌀죽과 잡채와 야채 카나페가 나온다.
2) 본격음식이다. 돼지고기편육과 석이느타리초무침, 홍어무침이 나온다.
3)탕수육, 오징어볶음, 들깨버섯탕 등이다.
4) 밥반찬이 고루 나왔다. 조기찜, 해남고사리, 참나물무침 등등에 된장국이다. 땅끝마을 해남은 고사리로 유명한 동네다. 경기도 땅에서 해남 고사리를 먹어본다.
잡채는 이만한 맛 찾기 힘들다.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야채고명이 색깔도 산뜻하다. 맛은 너무 달지 않고 당면이 쫄깃한 맛을 그대로 품고 있다. 거섶은 으깨어지지 않고 제모양을 갖춰 보기도 먹기도 좋다.
소스를 곁들인 야채 카나페가 보기도 먹기도 소담스럽다. 야채쌈으로 하는 본식 전 야채 섭취가 귀족스럽다.
돼지고기 편육은 쫄깃거리고 냄새가 나지 않고 적절하게 익은 것이 제때를 잘 가늠한 맛이 좋다.
버섯무침. 초무침으로 해서 신선한 발상이 좋다. 초맛이 진하지 않아 결이 잘 살아 있는 버섯의 향취와 모양새를 그대로 살렸다.
홍어무침, 전라도 잔칫상에서 빠지지 않는 반찬이 홍어다. 특히 남도 음식에서는 주역에 해당된다. 음식의 품새가 하수상하여 사장님 고향을 여쭈니 고창이란다. 전라도 풍취가 상차림 전체에 묻어 있다.
버섯들깨탕, 들깨국물이 너무 걸죽하지 않으면서도 향취는 그대로 담겨 있다. 국으로도 혹은 묽은 죽 대용으로도 절반의 식사가 되는 듯한 기분이다.
오징어볶음. 오징어는 자칫 물이 나서 볶음이 걸죽해지고 모양새가 나지 않기 쉬운데, 맛도 모양도 다 잡았다. 아마도 먼저 삶아 살짝 볶아낸 듯하다. 쫄깃한 육질이 오징어볶음 최고의 맛이다.
탕수육도 튀김옷이 쫄깃거린다. 아마도 찹쌀탕수인 듯하다. 어쩌면 음식마다 다 제때와 제간을 이렇게 맞출 수 있는지, 그 전문성과 손님 응대의 성의가 존경스럽다.
된장국은 압권이다. 이런 된장국 맛을 낼 수 있는 집이라면 다른 음식 보지 않아도 될 듯하다. 본격적 주부 경력이 얼마라야 이런 맛을 낼 수 있을까.
어릴 때 먹던 엄마의 된장국이 딱 이랬었다. 추억의 맛을 도회의 한켠에서 맛본다. 맛에도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 시원하고 토속적인 된장 본연의 맛에 시래기 맛이 어우러진 최고의 된장국이 향수를 자극한다.
오미자차, 끝까지 서비스가 소홀하지 않다.
식당은 실내장식도 그만이다. 수준급의 그림도 벽을 돌아가며 빼곡히 붙어 있다. 도자기등 다른 장식품들도 한식당의 품위를 높인다. 자리도 널직널직하다.
이만한 식당이면 세계 어디 내놓아도 당당할 듯하다. 갑자기 핀란드 식당이 생각난다. 이런 식당이 거기 있었으면 아마 수많은 손님들에게 제대로 한국음식맛을 뵈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4. 먹은 후
1) 산책 녹지
이 식당의 좋은 점은 음식가 서빙만이 아니다. 문밖을 나서면 바로 수리산 발자락, 수리산에 바로 진입할 수 있고 앞으로는 넓은 산책 코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산본은 최고의 주거지역이다. 녹지공간이 넓고 수리산자락은 찻길과 함께 해도 차량 이동량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위한 도보 공간이 더 넓다. 게다가 이미 청장년이 된 울창한 가로수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며 울타리가 되어준다. 하늘로는 양산이, 차량에게는 울타리가 되면서 확실히 사람의 공간이 된다.
음식점 옆집은 커피집이다. 커피맛이 최고는 아니어도 최고로 저렴하기는 한다. 5천원이면 두 잔이 가능하다. 거기다 공기 좋고 시끄럽지 않은 산책길을 끼고 있어고 맞은편은 근린공원이라 유럽식 실외 커피가 가능하다. 어지간히 추운 날씨라도 햇빛만 있으면 오돌오돌 떨면서도 나와 앉아 간단 음식과 커피를 즐기는 테라스문화, 사실 우리는 햇빛이 궁하지 않아 그런 문화 필요없지만 그냥 분위기 내보고 싶으면 이집이 제격이다.
2) 경기 속의 전라음식
맛이 하수상해서 주인 사장님 고향을 물으니 고창이란다. 거기다 고사리를 내오며 특별히 해남거라니 어쩐지 이런 맛을 전라도 아니면 쉽게 내겠냐, 싶었던 것이 확증편향이 된다.
고창은 모양성 앞에 조양관이 유명하다. 본 카페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다. 서울에도 지점이 몇 개씩이나 있고 다 성업 중이다. 모양성 앞 신재효기념관을 끼고 있는 조양관은 건물 자체가 일제 때 것으로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오랜 건축물에 맛깔스럽고 품격있는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집도 비슷하다. 오히려 보급 차원의 음식으로는 여기가더 합리적 운영을 하는 거 같다.
산본의 가마솥백반을 주 메뉴로 하는 식당 <산너머남촌>도 먹을 만하다. 꾸준히 손님이 줄을 잇고 있고, 맛도 한결같아 신뢰가 가는 집이다. 역시 주인은 전라도 남원이다.
식사 때 가면 자리가 없는 식사 시작 전에 가야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산본역 앞의 식당 <남도연>은 아예 남도음식이라고 상호에 남도를 내걸었다. 전라남도 벌교 꼬막을 가져다 꼬막음식을 한다.
산본에는 유달리 먹을 만한 음식이 많다. 한꺼풀 벗겨보면 상당수가 전라도 음식이다. 전라도 사람의 이동이 많다는 거다. 전라도 사람이 많은 것은 음식 식중의 수준이 높다는 거다.
이태리 사람의 성악 수준이 높은 것은 청중 덕분이다. 일본 사람은 음악보다 미술이다. 미술관 특별전에는 줄을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미술관이 우리의 곱절도 더 된다. 판소리는 전라도에서 공연을 해야 제맛이 난다. 청중에 제 때 추임새를 넣고 호응을 하기 때문다.
경남 통영의 음식 수준이 높은 것은 일찍부터 시작된 전라도와의 교류 때문이라고들 한다. 전라좌수사이던 이순신이 통영 땅 한산도에 와서 한산대첩을 이룩했다. 이때 좌수영함대를 이끌고 오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전라도 군인들, 통영 음식은 이때부터 전라도 영향을 받아 맛의 고장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한산도에 경상, 전라, 충청 삼도의 수군을 데리고 한산도에서 전쟁 대비를 했으니 통영은 임진왜란에 전라도와 많은 인적 교류를 했던 것이 입맛의 수준을 높였다는 설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실제로 통영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산본 사람은 한번 들어오면 이동을 잘 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생활 여건이 조성된 때문이다. 맛을 아는 식중이 안정적인 소비층이 되면 음식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중 전라도 사람이 많다면 높은 음식 수준의 근거가 된다.
산본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가에는 특히 많은 맛집이 몰려 있다. 맛집도 생활 환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갈수록 집밥이 줄고 매식이 늘어나기 때문에 앗집이 주거환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질 것이다. 맛집의 증대는 거주 안정의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맛집은 단지 맛집이 아니고 경제와 생활의 중요 여건이 되고 있다. 산본이 그 증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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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본으로 이사가고 싶어집니다.
저도 이곳에 이렇게 맛있는 집이 많은 줄 몰랐어요. 집값도 물가도 싼 편이에요. 맛집은 너무 많아 탑재를 자제하고 있어요. 매력 있는 곳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