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의궤에 나타난 현밀의 배경
인도 대승불교의 중관과 유식, 여래장사상 등의 교리적 발전은 논리학의 탄생으로 이어졌지만. 실천수행에 있어서는 밀교가 성립되었다. 3, 4세기경에 시작된 대승불교의 밀교화는 제재초복(除災招福)의 현실적 이익을 위한 주술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으나. 7세기 중엽 이후 성립된 『대일경』과 『금강정경』 등의 경궤에는 아자관(阿字觀), 오자엄신관(五字嚴身觀)이나, 오상성신관(五相成身觀)을 통해 성불을 목적으로 한 유가행의 수행이 설해졌다. 밀교를 구성하고 있는 진언과 수인, 불형 등에는 현교에서 발전해 온 중관과 유식, 여래장사상을 기반으로 붓다의 깨달음과 중생구호의 내면세계를 세밀하게 표현하였고, 불신관(佛身觀)과 열반사상에는 중생구호를 위한 대승적 이념들이 확대, 전개되었다.
1.불신사상의 의궤화
1)오대설의 성립배경
밀교에는 아자관을 비롯해 오자엄신관, 오상성신관 등의 관법을 비롯해 밀교경전에 근거해 태장계만다라나 금강계만다라 등의 독자적인 만다라가 설해져 있다. 아자관의 경우 법신에 대한 '본불생(本不生)'사상이 반영되어 있으며, 오자엄신관은 오대설에 근거한 법계체대설과, 그리고 오상성신관에는 유가유식사상이 밀교적으로 수용되어 종자설이나, 진언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중기밀교경전 가운데 중관이나 유식을 비롯한 대승사상들이 밀교경전 가운데 수법체계로 편입되고, 구체적인 수인이나 진언, 혹은 유가관법으로 표현된 것을 松長有慶은 '대승사상의 의궤화'라고 이름하였다. 여기에는 현교의 법신을 포함한 불신, 법계, 여래장 등의 사상이 형식화되어 표현될 수 있다는 중관, 유식 등의 교리적 배경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먼저 아자관은 '아자(阿字)'를 관하면서 본불생(本不生)의 법계의 근원을 관하는 것이며, 오자엄신관은 수행자의 몸에 불탑을 상징하는 아‧바‧라‧하‧카(a‧va‧ra‧ha‧kha)의 다섯 종자를 배열하여, 육신이 곧 법계임을 체증하는 관법이며, 오상성신관은 수행자의 심식인 9식(九識)에 대해 불지인 5지(五智)로 전변케 하는 수행이다.
역사적으로 연원이 가장 먼 것으로 오자엄신관과 관계된 것으로 불탑을 상징하는 다섯 종자 대신 지대‧수대‧화대‧풍대‧공대의 5대로서 법계를 정의한 예를 볼 수 있는데, 5대의 연원은 멀리 근본불교시대의 『아함경』에서 그 단초가 발견된다.
『중아함경』에는 5대를 대신해 식계(識界)를 포함한 6계(六界)가 설해져 있는데, 『중아함경』에는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다.
무엇이 육계법인가? 내가 알고, 깨달은 바를 그대에게 말하겠다. 이른바 지계‧수계‧화계‧풍계‧공계‧식계가 육계법이다. 내가 알고, 깨달은 바를 그대에게 말한다. 6계가 합하여 모태에 들며, 6계로 인해 6처가 성립되고, 6처로 인해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으로 인해 자각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처럼 6계는 중생의 현실세계를 형성하는 요소로 설해져 있는데, 『중아함경』에는 육계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다.
현자여 세존께서는 지계와 수계와 화계와 공계와 풍계와 공계와 식계를 설하셨다. 현자여! 이 6계를 알아야 하고, 어떻게 보아야 받아들이는 바가 없음을 알고, 누진의 심해탈을 얻는가? 누진을 얻은 비구가 범행을 이미 세웠다면 진리[法]에 대해 이처럼 답해야 한다.
제현(諸賢)들이여!나는 지계(地界)가 아소(我所)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지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지계는 의식[神]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3수(三受)[苦‧樂‧不苦不樂]는 지계에 의지하여 존재[住]한다. 의식에 집착함이 있더라도, 이것이다 하여 욕심이 없고, 멸하고, 쉬고[息], 그치고[止], 수용되는 바가 없게 된다면 누진(漏盡)의 심해탈을 얻은 것이다.
위의 내용을 요약하면 중생은 진아(眞我)가 6계의 모든 요소에 감수(感受)치 않음을 알게 됨으로써 감수작용에 연연하여 파악된 자신을 버림으로써 누진의 해탈을 얻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붓다는 5계나 식계로 인해 파악된 자아는 참된 자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무아설에 입각해 육계설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같은 『중아함경』에서 붓다가 6계에 대해, 도살자가 소를 죽일 때 껍질을 벗겨 땅 위에 펴놓고, 분해해 여섯 조각을 내는 것과 같다[猶如屠兒殺牛 剝皮布於地上分作六段]'라고 하여 오온설과 같이 진아는 임시적인 구성요소의 쌓임[蘊]으로 파악될 수 없음을 설한 장면에서 오온설이 제기한 무아설과 연기설의 교설과의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6계에 대해 육신이 존재하는 근간인 점과 중생의 육신은 진아가 아닌 가아(假我)라는 해석은 근본불교뿐만 아니라 부파불교시대 이후에도 계속 견지된 내용이었다. 『아비달마비바사론』 권39에는 육계에 대해 육체적인 영역과 기세간의 구성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사실을 설하고 있으며, 같은 논 권75에도 같은 논지를 전개시키고 있다.
대승불교시대에 들어 성립된 『대반야경』에는 무자성(無自性)의 논리에서 육계설이 포함된 내용을 볼 수 있다. 즉 육계설에 대한 『반야경』의 주장은 반야의 지혜인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입장에서 유위법에 대한 공성의 묘유로써 설해진다.
『반야경』의 주석인『대지도론』에는 다음과 같이 설해지고 있다.
묻기를, 만약 반야바라밀다가 심오하지 않음이 없다고 한다면 어째서 때로는 더욱 심오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답하길, 반야바라밀다 가운데에도 때로는 제법이 공성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얕은 법이다. 어떤 때는 세간법이 곧 열반과 같다고 말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심오한 법이다.
위의 내용은 5계, 또는 6계 자체도 반야지를 통해 볼 때 유위법인 동시에 진리의 실상이라는 점이 설해진 것인데, 그러나 이러한 제법도 현상을 공성으로 볼 수 있는 지혜에 입각했을 때 비로소 실상이 전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중생이 지닌 번뇌나 생사의 윤회 자체를 열반의 세계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2)아자관과 본초사상
『대일경』에서 설해진 교주 비로자나여래는 종교적 교주이자 진리의 실현자로서 그 보편성을 나타내려는 과정에서 탄생했으며, 여기에는 직‧간접적으로 인도종교의 영향도 지속적으로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일경』에 설해진 비로자나여래는 현교의 법신불사상을 확대시켜 우주법계의 근원으로 그려졌으며, 이러한 불성의 실체에 대한 수행법은 곧 아자관(阿字觀)으로 구체화되었다.
『대일경』의 「입만다라구연진언품」에는 "무엇을 진언교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아자문은 일체제법의 본불생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본불생(本不生, anutupada)의 의미는 일체가 존재하기 이전의 근원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대일경』의 「전자륜만다라품」에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선남자여!이 아자(阿字)는 일체여래의 가지한 바이다. 진언문을 실천하는 보살들은 불사를 지으며 색신(色身)을 나타내는데, 이 아자문에서 일체의 법을 굴린다. 이 때문에 비밀주여! 진언문의 모든 보살들은 붓다를 보거나 공양을 하거나, 보리심을 발하여 증득하거나, 보살과 더불어 모이거나, 중생을 이익케 하거나, 실지를 구하거나, 일체지지(一切智智)를 구하려한다면 이 모든 불심(佛心)에서 마땅히 노력하고 수습해야 한다.
여기서 아자관의 수행은 비로자나여래에 대해「입진언문주심품」에서 설해진 것처럼 일체지지의 구현을 통해 중생구호를 위한 색신의 신변(神變)을 나타내려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실천하는 것이며, 한편으로 비로자나여래의 본심에 대한 사유와 관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아자관에서 보이는 본불생의 원리는 제법의 근원에 대한 사유이며, 진언문의 수행은 아자관을 통해 우주의 불변인 절대적 존재로서의 붓다와 동화되려는 관법을 시도하는 것이다. 아자관의 배경에는 힌두교의 브라흐만에 대한 사유와도 필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힌두교의 영향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일경』의 「입만다라구연진언품」에는 "내가 과거에 도량에 앉아 4마(四魔)를 항복하고 대근용의 소리로 중생들의 두려움을 물리쳤다. 이때 범천 등이 마음으로 크게 기뻐 한소리로 말하였기 때문에 이 때문에 세간에서 대근용이라 이름한다."라고 한 장면이 보인다. 경전의 '나'는 곧 석가모니불에 비유된 것으로 『대일경』에는 아자관을 통해 4마를 정복한 것이기 때문에 아자관의 수행은 현교의 불교수행과 목적면에서는 동일한 것이며, 이것은 불교수행으로서 아자관 수행의 정통성을 보이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3)오자엄신관의 오대설
오자엄신관에 대해 『대일경』에는 "아자를 수행함으로써 대일여래를 성취할 것이니 법력을 지닌 것으로 자신과 다르지 않다. 본존의 유가에 머물러 다섯 글자로 가지하니 하체로부터 배꼽에 이르고, 가슴, 정수리와 미간에 의식을 옮겨 안립한다. 이와 같은 법에 의지해 곧 성인인 본존과 같게 된다."라고 설해져 있다. 여기서 5대는 법계를 상징하는 는 아래의 도표와 같이 경전의 각 품마다 다르다.
『대일경』의 아자관과 오자엄신관은 비로자나여래의 세계를 수행자와 동일시하려는 관법에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자엄신관은 그 출발점에 있어 석가모니 붓다의 입멸 후 시작되었던 불탑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오자엄신관은 비로자나여래의 해석에 기인한 것과 달리 불탑신앙과 관련한 다른 배경에서 성립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자관과 비교할 때 오자엄신관은 현상세계를 법계로서 긍정하려는 수행이념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다섯 종자를 신체에 배치하여 관함으로써 육체적인 실상을 법계의 실체와 더욱 긴밀하게 동일화하려는 사유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일경』에서 "지혜자는 자신의 몸을 여래의 몸과 동등하게 본다. 마음이 달과 같이 둥글고 밝을 때 음성과 머리칼도 똑같이 상응한다. 각 종자마다 끊임이 없음이 마치 방울의 소리와 같으니, 정등각자의 진언을 취해 수지함으로써 마땅히 이 방편에 의해 속히 실지를 성취한다."라고 하여 육체적으로 현실화된 세계에서 불신을 성취하려는 이념이 돋보이고 있다.
한편 오자엄신관은 불신으로 구현하려는 것 이상으로 육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시각적, 생리적 현상을 수행의 과정으로서 도입한 내력도 『대일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자는 금색으로 금강륜을 지으며, 하체에 가지하니, 유가좌라 이름한다. '바'자는 흰색달빛이니 안개무리와 같으며 단전(배꼽)에 가지하니 대비수라 이름한다. '라'자는 태양이 처음 뜰 때의 빛이니 붉은 삼각형빛이며 심장의 위치에 가지하니, 지화의 빛이라 이름한다. '하'자는 겁재의 불꽃이니 흑색으로 풍륜에 위치하며 백호의 위치에 가지하며 자재력이라 이름한다. '카'자에 공점을 붙인 [캄]은 모든 색을 담았으며[무지개색], 정수리에 가지하고 때문에 대공(大空)라 이름한다.
또한 5자의 종자를 관함에 있어 『대일경』에는 각 종자의 관상을 통해 번뇌를 단절할 뿐만 아니라 육체를 비롯해 현상세간 및 일체중생과 대지조차도 정화하는 관상(觀想)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것은 번뇌라는 출세간의 측면뿐만 아니라 세간마저 정화의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5자 가운데 'Va'자의 관상을 예를 들어 소개하면 『대일경소』에는
다음으로 '바'의 자문을 해설한다. 만약 ('바'자와) 상응하여 이 법칙에 통달하면(이것은 진언의 차제법을 말한다). 곧 일체중생을 위해 큰 이익을 줄 수 있는 불사를 할 수 있다. 먼저 이 종자를 관하되 마치 눈과 우유같은 것이 심장에 흘러 들어감을 관상한다. 만약 흘러 들어가 몸에 가득하면 몸의 안팍이 모두 깨끗해질 것이니 이를 터득한 모든 이는 불신과 같아지게 된다. 또한 그 몸을 따라 흘러나오게 되면 일체중생의 몸에 가득하여 깨끗이 가득 채울 것이며, 또한 대지를 가득 채울 것이다. 이것은 비밀한 해설에 따르면 '대자비수(大慈悲水)'라고 한다. 세간이 번뇌에 들끓음을 보기 때문에 이를 돕기 위해 능히 마시거나, 만질 수 있으며, 혹은 중생의 병을 고치거나, 반드시 무상보리를 얻게 한다. 이 대비수를 감로와 같이 나타나게 하며, 또는 두 가지 주석에 설명하거나, 감추길 모두 세간과 출세간에 이익되는 것으로 의심없이 결정코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한다.
위에서 오자엄신관의 '바'자에 대한 관상법은 백색의 '대비수'를 관상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중생세간마저도 정화하는 것으로 세간적 이익뿐만 아니라 출세간의 깨달음에도 도움이 되어 번뇌의 열뇌를 식혀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설해져 있다. 이처럼 아자관이 정적인 관법인데 비해 '바'자를 비롯한 오자엄신관의 수법은 동적인 것이며, 수행자의 내면뿐만 아니라 외형마저 법계전체와 동일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제법의 공성이 곧 현상적 영역에서 법계의 실상이자, 진리의 당체로 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 연기법 이후 반야‧중관의 논리를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인도밀교의 성립 배경 연구/ 배관성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