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백합 향기

[사무국장]

손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잠시 밖으로 푸성귀를 뜯으러 나간 아내가 소리를 질렀다.

"어머! 백합꽃이 피었어!"

나는 그 소리를 듣고 급하게 뛰어 나갔다. 해마다 내가 정성을 들여 돌보는 꽃이다. 몇 해 전에 갑자기 백합 한 그루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얼머나 성장 속도가 빠른지 신기해서 날마다 줄자를 가지고 나가서 키를 재었다. 거의 1미터가 자라니까 봉오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꽃이 필 것인지 무척 궁금했다. 나는 원래 꽃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었는데 아내가 하도 꽃을 좋아하다 보니 나도 차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 백합은 그 중에서 나의 관심을 인상깊게 끈 꽃이었다. 저렇게 쑥쑥 자라는데 과연 어떤 꽃을 피울까가 내게는 큰 관심거리였다. 그래서 날마다 키를 재는 즐거움과 무슨 꽃을 피울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설랬었다.

몇 년이 지나면서 새끼를 동반하며 자라기 시작했다. 그 또한 신기했다.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이 세계에서도 체험하는구나 하였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새끼까지 거느리고 대가족을 이루며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담뿍 안고 불과 며칠의 세상 나들이지만 참으로 값진 여정을 보내고 있다고 느꼈다. 일 미터 가까이만 가도 그 내뿜는 향기란! 어느 나비가 유혹당하지 않으리! 그런데 벌이 있어야 하는데 벌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요즘 벌을 보기가 쉽지 않다.

백합을 통해서 종족번식의 법칙은 만인류 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에서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한다. 아직도 세상에 오지 못하고 있는 실체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창조의 과정을 통해 세상이라는, 흙이, 땅이 존재하는 곳으로 와 바람과 태양과 달과 별을 비롯한 삼라만상을 체험하며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리라. 내년이 되면 더 많은 식구를 데리고 내 눈 앞에서 정숙한 교태를 부리며 향기를 풀풀 뿜어낼 것이다. 금년에도 혹시 큰 바람에 몸이 꺾일까봐 지주대를 받쳐 주었다. 꽃의 무게로 혹여 기절이라고 한다면 내겐 너무 슬픈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6.25일에 개화가 시작되었는데 언제 다 피고 언제부터 낙화가 시작될 것인지도 궁금하다. 사람도 나고 자라고 일가를 이루고 살다가 허망하게 아니 의미 있게 생의 피안으로 나아갈 것이다. 남겨진 후손들에 의해 유전자는 남아서 나의 영향력이 이어질 것이지만 그것도 몇 대를 지나면 다른 형질로 바뀌어서 무늬만 희미하게 존재할 뿐 결국 잊혀진 존재가 될 것이다. 이 백합은 아마 나보다 그 영향력이 길 것이지만 그 열쇠는 인간이 갖고 있다. 보기 싫다며 태양 아래 뿌리를 뽑아 버리면 그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일까 유독 이 백합에 대해서는 처음 발견부터 나의 온갖 관심을 끌고 있다. 심지어 땅이 꽁꽁 얼었을 때어도 그 흔적을 살펴보기도 한다. 늦봄이 되면 다시 줄기를 올리기 시작하여 종족번식을 시작한다. 나는 떠난 후라면 다시는 너를 볼 수 없겠지만 내 영혼에 각인된 너의 잔영은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의 되새김 목록에 살아 있을 것이다.

부지런히 꽃을 피워, 나를 아니 너를 보는 모든 이의 가슴에 아련한 추억의 꽃이 되려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