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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교회의 대화 노력
1. 다종교 사회 속 일본 가톨릭
가톨릭신문 창간 100주년 기획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은 일찍이 그리스도교가 전래하고 수많은 수도회와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찾았지만, 여전히 전체 인구 대비 0.34%(2016년 일본주교회의 교회 현황 통계 기준)의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소수자로 살아가는 땅, 일본을 찾았다. 이번 기획에서는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삼중대화 논의에 맞춰 다른 종교와 공존해 온 일본교회의 역사, 낯선 이들과 더불어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을 살펴본다. 더불어 소외당하고 가난한 이들과 더욱 적극적인 연대를 꿈꾸는 노력을 통해 진정한 복음화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모색하며 희망을 향해 걷는 일본교회의 새로운 모습을 소개한다.
- 일본 여러 종교들이 참가한 평화 네트워크는 ‘평화 헌법’이라 불리는 일본 헌법 제9조 무력화 반대를 위한 연대 투쟁에 나섰다. 올해 10월 6일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함께 한 평화 네트워크. 일본 예수회 사회사목센터 제공 .
타종교인들과 기도하며 정체성 더 깊이 확인”“일본인들은 태어날 때는 신사(神社)를 찾고, 결혼할 때는 교회를 찾고, 죽은 후에는 절로 간다”는 말이 있다. 일본 고유의 민족 신앙인 신도(神道)와 6세기 무렵 백제에서 전래한 불교는 일본인의 민간 생활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한다. 일본 사회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널리 전파되지 못한 이유를 신도와 불교가 융합돼 하나의 문화 현상처럼 자리잡은 일본인의 종교관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일본의 다른 종교들과 어떻게 공존하고 대화하고 있을까? 다종교 사회를 살아 온 일본 가톨릭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통해 일본 가톨릭 영성의 역사와 특수성을 알아보고자 일본 예수회가 운영하는 조치대학교를 방문했다. 예수회 전 일본관구장이자 현재는 일본 예수회 사회사목센터 센터장을 지내는 카지야마 요시오 신부와 일본 예수회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이자 조치대학교 교양학부에서 비교종교학을 강의하는 티에리 로보암 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2. ‘소수자’로서 일본교회의 정체성
일본교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정체성은 그리스도인은 ‘소수자’(minority)라는 것이다. 2016년 일본 주교회의가 발표한 교회 현황 통계에 따르면 3개 대교구를 포함한 16개 교구 전국 가톨릭 신자 수는 43만여 명에 불과해 전체 인구 1억2800만 명 대비 0.34%에 그친다.
인구의 11%, 개신교, 불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종교,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도는 어느 종교보다 앞선다는 한국교회의 자부심과 비교할 때 일본 신자들이 공유하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여전히 남는 의문은, ‘왜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은 소수자로 남게 됐을까 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 이유로 박해의 역사와 종교적 전통을 꼽는다.
1549년 예수회 선교사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가 가고시마에 상륙하며 일본 그리스도교의 역사도 함께 시작했다. 이승훈(베드로)이 세례를 받았던 1784년을 기준으로 우리 교회보다 235년 앞선 시작이었다. 신앙이 전래한 시기와 방법은 달랐지만, 한국과 일본 사회가 닮아 있듯, 한국과 일본교회 또한 여러 공통점을 갖는다. 역사적으로는 모진 박해가 있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제국주의와 국가주의 세력과 타협해야 했던 아픈 과거도 같다.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후에는 물질문명과 세속주의의 거센 도전을 받아 왔다. 한국 또한 무속신앙과 유교, 불교가 문화적 전통과 깊게 결부됐다는 점에서 일본과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1970년대 이후 급속한 성장을 이뤄낸 데 비해 일본교회는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됐던 1600년경 신자 수로 추정되는 40만 명에서 그 숫자가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고 인구대비로 보면 오히려 줄어든 것이 된다.
3, 다종교·다초점 사회를 살아가는 일본 그리스도인
- 카지야마 요시오 신부
카지야마 요시오 신부는 “일본 사회는 다(多)초점 사회”라고 설명한다. “그리스도교는 일본 사회에 공존하는 여러 초점 중 하나”라는 것이다. “신도와 불교의 영향력이 크지만, 그것은 문화적 영향력에 가깝습니다. 물질주의, 소비주의 문화도 큰 힘을 갖고 있고 여전히 사회주의 사상도 일정한 비중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초점은 항상 긴장 관계를 유발합니다.”
그리스·로마 문명이라는 공통된 바탕 위에 그리스도교가 하나의 초점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유럽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지야마 신부는 “유일한 초점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정신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한발 더 나아가 “교회의 예언자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주류(majority) 신앙이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모든 사람이 다 교회에 가야만 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물론 일본에도 이런 생각에 반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지배계급의 종교, 주류가 되면 가난한 사람, 억압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예언자들의 활동은 제한되고 맙니다.” 이어 카지야마 신부는 유일한 초점, 다수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예언자적 소명에 더 충실하기 위해 교육과 지원을 통해 여러 사회사목 운동을 전개하는 일본 가톨릭교회의 활동에 대해 들려줬다.
- 티에리 로보암 신부.
4. 종교 간 협력 통한 그리스도교 정신 실천
프랑스 출신으로 30년 전 일본으로 온 로보암 신부는 예수회 신부로는 최초로 일본 불교대학에서 학위 과정을 밟았다. 조치대학교 교수로 근무하는 지금도 방학이면 몇 개월을 절에 들어가 보낸다. ‘진정한 복음화’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은 로보암 신부도 카지야마 신부와 같다.
“어떤 사람들은 제 정체성이 불분명하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 복음화의 참뜻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나와 다른 이들과 어떻게 잘 어울려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교 정신이라고 믿습니다. 스님들과 어울려 살고, 함께 기도하면서 저는 하느님을 더 가까이에 느낍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깊이 확인합니다.”
로보암 신부는 일본 예수회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신도와 불교를 포함하는 종교간 대화위원회의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종교간대화위원회의 활동은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더욱 활발해졌다. 2011년의 재난은 일본 사회 전체를 뒤흔든 충격이었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치유와 영적 위로가 절실했다. 사고 현장의 피해자들과 사회 전반의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하고자 뜻을 모은 종교 지도자들은 이후에도 여러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각자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나 사회가 일본인들이 겪는 고통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있고, 고통받는 사람들 옆에 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는 것은 모든 종교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입니다.”
로보암 신부는 “왜 일본에는 그리스도인이 적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신도에 있는지, 불교에 있는지는 ‘복음화’나 ‘그리스도교 정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초점, 다종교 사회를 살아가는 일본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은 어떻게 다수가 될 것인지가 아니라, 소수로서 어떻게 더 그리스도교 정신에 충실할 것인가 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5. 이주민 · 난민과 살아가는 노력 - 마츠우라 고로 주교 인터뷰
일본인 신자보다 많은 외국인 신자들 어떻게 공동체로 환영할 것인지 고민
세계화 시대, 낯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징표다. 여전히 ‘단일민족국가’ 신화가 힘을 갖는 일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다양한 이유로 국경을 넘는 이주민과 난민은 매년 증가해 2018년 일본 거주 외국인 수는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2018년 6월 일본 법무성 통계 기준) 다문화의 물결은 교회 안에서 더욱 크게 굽이친다. 신자 수가 적은 일본에서 외국인 신자들은 일본교회의 소중한 구성원이다. 일본교회는 이주민·난민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본 주교회의 이주민·난민위원회 위원장 마츠우라 고로 주교(나고야교구장)를 만났다.
6. 시작된 변화, 획일주의에서 다문화주의로
“일본 사회는 오랫동안 획일적인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더는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외국인이 다양한 이유로 일본을 찾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문화가 어우러지면 생각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마츠우라 주교는 지금의 일본은 “외국인 그리고 다른 문화를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일본 법무성이 지난 9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8년 6월 기준 일본 거주 외국인 수는 263만여 명으로 1959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대 규모다. 특히 고령화로 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일본에 일자리를 찾아 이주한 청년층의 비율이 높다.
활기를 띤 이주는 일본교회에 반가운 소식이다. 일본을 찾은 외국인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국가는 중국, 한국, 베트남에 이어 필리핀과 브라질 순이다. 2017년 교황청 연감에 따르면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가톨릭 신자가 많은 나라고 필리핀은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마츠우라 주교는 통계적으로는 이미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신자 숫자가 일본인 신자 숫자를 뛰어넘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본교회의 일본인 신자는 43만여 명입니다. 그런데 2018년 6월 기준 일본에 거주하는 필리핀 사람은 27만여 명, 브라질 사람은 20만여 명입니다. (일본 법무성 통계 기준) 또한 가장 보수적인 통계를 기준으로 해도 필리핀 인구의 80%, 브라질 인구의 52%가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략 계산하면 약 32만여 명의 브라질과 필리핀 출신의 외국인 신자가 일본에 있는 것입니다. 베트남과 한국, 미국 출신의 신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모두 더하면 이미 일본인 신자보다 많은 외국인 신자들이 일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정확한 통계가 아닌 수치상 계산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로 오늘날 일본교회에는 피부로 느껴질 만한 변화들이 있다. 나고야교구만 해도 다양한 언어로 주일미사를 드리는 성당이 많다. 영어 미사는 물론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한국어, 베트남어, 프랑스어, 타갈로그어 미사를 드리는 성당도 있다. 마츠우라 주교는 나고야교구 내에는 일본인 신자의 2배에 해당하는 수의 외국인 신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더불어 “외국인 신자들을 어떻게 일본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환영할 것인가는, 일본의 모든 교구가 중요한 문제로 여기는 새로운 과제”라고 말했다.
7. 이방인을 환대하는 노력
일본에 진출한 여러 문화적 배경의 수도회·선교회와 다양한 국적의 선교사들은 일본교회가 이주민을 향해 문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선교사들은 외국인 신자들이 일본교회를 찾고 자국어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자국어 미사를 봉헌하도록 돕는 것이 일본인 신자와 외국인 신자를 하나의 교회로 일치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언어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교회가 모든 외국인을 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2016년 기준 나고야교구의 58개 본당 가운데 15개 본당이 영어 미사, 12개 본당이 포르투갈어 미사, 8개 본당이 스페인어 미사를 봉헌한다. 타갈로그어 미사를 봉헌하는 본당은 11개, 한국어 미사가 있는 본당은 2곳이다.
“나고야교구 난잔본당은 베트남 신자들이 많은 성당입니다. 저는 그 성당에 갈 때는 일본어로 미사를 집전해도 주님의 기도는 꼭 베트남어로도 바쳐요. 그러면 모든 베트남 신자들이 기뻐하면서 함께 기도를 드립니다. 서툴러도 영어로, 한국어로, 포르투갈어로 미사를 집전하기도 합니다.”
가톨릭교회에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선교사들이 있고, 외국인 신자들이 모인다는 것이 알려졌기에 지역의 시민사회에서 연대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불법 체류 문제로 억류된 외국인의 통역을 구하는 연락이 교구청이나 본당으로 오는 식이다.
마츠우라 주교는 일본 가톨릭교회는 사회적 영향력이 크지 않지만 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장점이 있고 이를 시민사회와 연대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신매매나 부당한 착취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교회는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의 전문성과 가톨릭교회의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결합해 억압받는 이들을 도운 사례가 실제로 많습니다.”
8. 배타와 혐오를 극복하는 열린 교회
일본 사회 내 이주민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수의 증가가 이방인을 환영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마츠우라 주교는 “특히 지금의 일본 보수 정권은 천황제 중심으로 유지되는 국가주의적 판타지를 부추기고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느 나라나 민족주의가 다시 강해지는 경향을 보이지만 특히 일본에서는 정권의 태도가 국수주의에 기반을 둔 혐오 발언(hate speech)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기능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 문제도 있다. 전통적으로 이민에 보수적이었던 일본 정권은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들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여전히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전제하고 있으며 가족을 데려올 수 없다. 임금체계도 턱없이 부당하다. 난민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일본에 난민 인정을 신청한 1만9628명 가운데 일본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한 수는 20명에 불과하다. 난민 인정률이 0.1% 수준인 것이다. 마츠우라 주교는 이를 “이미 이주민, 난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열렸음에도 일본 사회는 준비돼 있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속화되는 이주와 늘어나는 이민자와 난민, 그리고 이에 대한 배타적 태도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한국과 일본처럼 전통적으로 ‘다름’에 배타적이었던 국가에서 이 같은 흐름은 더욱 도드라진다. 사람들이 만나고 문화가 섞이고 있지만, 그 결과가 꼭 장밋빛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날로 우경화되는 일본 사회에서 일본교회는 다른 교파의 교회들, 다른 종교들 그리고 시민사회와 연대하며 혐오에 맞서 난민을 보호하고 이주민을 환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어두워 보이는 현실 앞에 일본교회는 어떤 희망을 보고 있는지 물었다. “저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의 고통을 보게 되면 자신의 삶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사회의 현실이 교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문을 열고 고통받는 이들 옆에서 함께 걸어야 합니다. 열려 있는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8년 12월 16일, 일본=정다빈 기자]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일본교회의 삼중대화 노력 (3 · 끝)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연대 -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 를 가다
재일 동포·외국인 노동자… 약자의 손을 잡아주다
- 연대의 십자가.
교회 테두리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만나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아시아 땅에서 구현한 삼중대화의 핵심일 것이다. 지난 50여 년간 종교와 국경을 넘어 차별없는 세상을 위해 연대해 온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소장 나카이 준 신부)는 약자와 더불어 사는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삶의 대화’를 실천해왔다. 강제징용 당한 조선인들과 열악한 환경에 맞서 투쟁해 온 노동자들의 아픔이 서린 도시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연대의 구심점,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를 찾았다.
9. 맞잡은 손으로 만든 연대의 십자가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이하 ‘센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연대의 십자가’다. 맞잡은 손과 손이 십자가 형상을 이룬 모습처럼 센터는 1969년 설립된 이래 시대에 따라 역할을 달리하며 인권 운동, 환경 운동, 평화 운동 등에 앞장섰다.
1970년부터 지난해까지 센터의 소장을 지낸 하야시 히사시 신부는 초창기 활동의 중심은 ‘노동 운동’이었다고 설명한다. 시모노세키는 현재 인구 26만여 명(2017년 기준)의 작은 도시지만, 1970년대 이후 일본의 중화학 공업이 발전하며 중요한 산업시설들이 유치됐다. 자연히 노동자들의 권리와 복지 문제가 지역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고 센터는 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입법 활동, 노동자 교육, 노조 조직화를 위한 다양한 자원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노동 분야를 넘어 환경, 안보, 정의, 외국인 이주자, 소수자 인권 옹호와 같은 분야로 지평을 확장했다. 센터가 추구하고 연대하는 수많은 주제의 공통점은 결국 ‘평화’다. 하야시 신부는 센터의 활동을 크게 세 분야로 정리한다.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환경평화’, 외국인 노동자 억압에 대항하는 ‘인권평화’, 제국주의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판하고 재일 동포 차별에 맞서는 ‘역사평화’다.
센터의 역할은 다양한 시민 활동이 서로를 지지하고 만날 수 있는 구심점이 돼 주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단체들이 센터의 공간과 자원을 활용해 강의, 연수, 회의 등을 진행한다. 센터는 동티모르 독립, 한국과 일본교회의 연대 등 국제적 연대의 거점으로도 활약한다. 하야시 신부는 “억압받는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사는 것,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 전진하는 것이 센터의 미션”이라고 말했다.
- 11월 27일 야마구치 조선학교 유치부 수업 중 아이들과 함께 한 나카이 준 신부(왼쪽에서 두번째).
10. 복음화, 함께 살아가는 것
지난 50여 년간 센터의 활동은 ‘가톨릭교회’ 내에 머물지 않았다. 물론 센터가 소속한 일본 예수회가 운영을 지원하고, 하야시 신부와 현재 소장인 나카이 준 신부는 지역 본당을 찾아 사회교리를 강의한다. 그러나 센터와 연대해 온 노동, 인권, 평화 활동가들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
일본교회 안에서도 가톨릭 사제가 교회 밖의 인권 운동에 앞장서는 일에 대한 비판과 우려는 항상 존재했다. 그러나 신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것이 복음화라고 믿는 센터의 정신은 지난 50년 세월 동안 변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새 소장으로 부임한 나카이 준 신부는 재일 동포들이 받는 차별과 배제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일제시대 재일 동포들의 민족 교육을 위해 세워진 조선학교는 해방 이래 수많은 핍박을 받았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 등 정치적 사건이 쟁점화될 때마다 공격의 대상이 돼 왔다. 시모노세키에도 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야마구치 조선학교가 있다. 학교가 위치한 재일 동포 거주 지역은 ‘변소’라는 모욕적인 별명이 있었던 곳이다. 시당국이 상하수도 시설을 이 지역에는 오랜 기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는 매달 야마구치현청 앞에서 열리는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제외 정책에 대한 항의 시위에 나선다. 올 가을 나카이 준 신부(가운데)와 시민 단체들의 시위 모습.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 제공.
국가주의의 물결이 거세진 일본 사회에서 조선학교는 부당한 혐오와 원칙 없는 배제의 상징이다. 일본 정권은 외국인 학교를 포함한 일본 내 모든 고등학교 교육을 지원하는 고교무상화 정책 대상에서 조선학교만을 제외했다. 나카이 신부는 매달 한 차례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제외 정책에 대한 반대 시위에 나서고 일본 내 조선학교의 존재를 한국에 알리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내년 2월에는 한국 예수회와 연대해 서강대학교 학생들과 야마구치 조선학교 학생들의 교류를 촉진하는 청년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열 예정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주 함께 있는 것’이다. 야마구치 조선학교에서 열리는 운동회, 학예회, 졸업식 등 각종 행사에 센터의 구성원들은 빠지지 않는 손님이다. 나카이 신부는 한 주에 두어 번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축구를 한다. 일본 사회의 복음화란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며, 이를 위한 첫걸음은 차별받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전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 소장 하야시 히사시 신부 - “일본교회, 정권의 부당함에 확실한 목소리 내”
“교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로 향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요.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이하 ‘센터’)의 미션은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공해로 쓰러진 노동자를 일으켜 세우는 가운데,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지 못해 도망간 불법체류자를 우리 집으로 오라고 말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1969년 사제품을 받고 지난해 은퇴하기까지 50여 년을 시모노세키에서 보낸 하야시 히사시 신부(일본 예수회)는 일본교회에 사회교리를 알리고 실천해 온 증인이자 현장에 깊이 투신하며 일본 사회가 지닌 역사의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진 존경받는 사회활동가다. 하야시 신부가 교회와 현장 사이에서 이웃의 손을 잡고 이웃을 품어내는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동안 일본 사회도 일본교회도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요즘의 일본교회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의 부당한 정책에는 확실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지요. 하지만 젊은이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 교회의 복음이 젊은이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야시 신부는 여전히 일본교회는 “너무 공부와 세미나에 열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복음은 가르치고 전달하는 게 아닙니다. 미사가 끝나면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외치고 성당을 나오면 모두 잊고 말죠. 하느님이 머무르시는 가난하고 고독한 사람들의 현실에 얼마나 깊이 함께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올해 여든다섯. 반세기를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 서서 더불어 살아 온 하야시 신부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스스로 지은 시 한 편을 들려줬다. “젊은이의 반란이 없는 곳에는 썩은 내가 진동하고, 늙은이의 반란이 없는 곳에는 체념의 사막이 펼쳐지고, 여자의 반란이 없는 곳에는 생명의 샘이 말라버린다네. 반란이란 해야 할 말을 하는 곳에 존재한다네.”
[가톨릭신문, 2018년 12월 25일, 일본=정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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