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입니다. 신의왕후의 잘난 남편 이성계는 경처로 맞아들인 신덕왕후 강씨와 좋아 지내 그녀에게 한을 남겼습니다.
조선의 개국 시조 태조 이성계의 첫번째 아내였던 신의왕후 한씨는 안변의 호족이었던 안천부원군 한경의 딸로 1337년에 출생하였습니다. 이성계의 증조부 행리는 두만강변에 살던 여진족들에 의해 남방으로 쫓겨나 유랑하다가 안변의 호족이었던 최기열의 딸을 두번째 아내로 맞아들여 터전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안변의 재력가들과 이성계 집안은 두터운 신뢰 관계를 형성하였는데 한경의 집안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태조 이성계보다 2살이 어린 그녀는 당시 고려의 풍습대로 이성계에게 10대의 어린 나이로 시집와 고향에 두는 아내라는 뜻의 향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이후에 맞아들인 경처, 즉 수도 개경에 두는 아내를 두번째로 맞아들였는데 그녀가 바로 판삼사사를 지냈고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고려 조정의 실력자 강윤성의 딸 신덕왕후 강씨였습니다. 그녀는 이후로 이성계와 개국의 영광을 함께했고 아들 방석과 방번을 낳았는데 방석이 이성계의 총애를 입어 세자로 책봉되기까지 합니다. 이는 강씨에 대한 이성계의 총애가 없이는 불가능한 조처였습니다.
한씨는 진안대군 방우,영안대군 방과(2대 정종),익안대군 방의,회안대군 방간,정안대군 방원(3대 태종),덕안대군 방연,경신공주,경선공주 등 슬하에 6남 2녀를 두었습니다. 그녀는 이성계에게 이렇게 많은 자식을 낳아주었지만 이성계는 가문의 세가 막강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 줄 뒷배경을 가지고 있는 경처 강씨를 더 총애해 그녀와 함께 지내는 일이 잦아 그녀는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해야 했습니다.
한씨는 결국 조선의 개국을 1년 앞둔 시점에 남편이 세우는 나라 조선을 보지 못하고 1391년 9월 23일 신병인 위장병이 악화되어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혈기왕성한 아들들은 모후의 이런 죽음을 아버지와 계모 강씨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분개하였고 특히 훗날 태종이 되는 정안대군 방원은 1398년 제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왕좌에서 축출하고 형 방과를 임시로 왕위에 앉혀 조종하다가 마침내 1400년 조선왕조 제 3대 왕에 등극하여 이미 죽은 계모 강씨를 서모라 하여 왕비의 제례를 폐지하고 그녀의 능인 정릉의 정자각을 헐었으며 석물들을 다리 복구 작업에 썼고 도성 밖으로 능을 이장하여 250년 동안 민묘처럼 버려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적서의 차별을 엄하게 두어 왕비와 후궁과의 서열, 적자와 서자의 구별을 냉정하게 가리는 제도를 만들어 계모 강씨에 대한 분풀이를 했습니다.
신의왕후는 1년뒤에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고 태조로 등극하자 절비로 추존되었다가 둘째 아들 정종이 등극하자 신의왕후로 추존되고 문소전에 신위가 봉안되었습니다. 그리고 1897년에 대한제국이 성립되자 태조,신덕왕후와 함께 재추존되어 신의고황후가 되었습니다.
*신의왕후 한씨의 능은 경기도 개성시 판문군 상도리에 있는 제릉입니다. 북한에 있고 사진자료도 전하는 것이 없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아마 광나루 아저씨와 제가 가보지 못한 조선왕릉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참고로 북한에는 제릉을 비롯 정종과 정안왕후의 후릉, 그리고 태조 이성계의 추존 4대조의 능이 있습니다)
첫댓글여자에게 있어서는 알콩달콩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범하지만 큰 행복인데....신의왕후는 여인의 삶으로는 한이 많겠어요. 허지만 어쩌겠어요. 야심이랄까 꿈이랄까... 야심찬 남자의 아내가 되었으니 평범한 행복을 바란다면 이미 슬픔의 시작이겠지요. 정치와 사랑속에 어린 나이의 신부가 6남2녀의 자식을 낳고 기르
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두 여인 속에 벌어지는 가정사도 갈등이 많았겠지요. 두고두고 화근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만큼... 조선의 역사의 시작도 가정과 정치와 얼키면서 복잡한 사건과 연결되었음을 느끼게 되네요. 저도 한 남자의 아내로서 신의왕후에 대한 마음이 애틋해 지네요.
첫댓글 여자에게 있어서는 알콩달콩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범하지만 큰 행복인데....신의왕후는 여인의 삶으로는 한이 많겠어요. 허지만 어쩌겠어요. 야심이랄까 꿈이랄까... 야심찬 남자의 아내가 되었으니 평범한 행복을 바란다면 이미 슬픔의 시작이겠지요. 정치와 사랑속에 어린 나이의 신부가 6남2녀의 자식을 낳고 기르
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두 여인 속에 벌어지는 가정사도 갈등이 많았겠지요. 두고두고 화근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만큼... 조선의 역사의 시작도 가정과 정치와 얼키면서 복잡한 사건과 연결되었음을 느끼게 되네요. 저도 한 남자의 아내로서 신의왕후에 대한 마음이 애틋해 지네요.
긴 여정이 시작되었군요...시작이 반이라했으니..반은 완성된셈이네요...열심히 읽고 배우겠습니다...감사합니다...
청운당님과 함께 긴 여행을 떠나렵니다.
드디어 오늘 부터 출발 합니다. ^-^
쏘아진 화살을 타고 가는 느낌입니다. 청운당님의 행보글을 접하게 되어 행운입니다. 광나루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