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준희와 변영주 감독이 함께 한 이터널 메모리 상영과 GV에 저도 갔었습니다. 지인과 함께요. 둘 다 쑥쓰러워서 사진은 겨우 한 장 찍고 말았지만, 영화의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 몇 글자 끼적입니당.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내용을 다 알아도 나중에 영화로 보시는 데 크게 지장은 없을 듯도 해서 일단 질러봅니다. 그래도 스포 경고?는 따로 하겠습니다. ^^;;
초반에는 그냥 잘 만들어진, 갬성 노부부 다큐인 줄 알았어요. 남편은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고, 10살 넘게 어린 아내는 매일 기억을 잃어가는 남편의 기억을 어떻게든 오래 붙잡게 하려고 끊임없이 말을 걸죠. 카메라 촬영도 아내가 주로 합니다.
현재를 담담하게 보여주던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두 부부의 과거를 보여줍니다. 남편은 칠레 공영방송의 유명 저널리스트였고, 부인은 칠레 문화부 장관이었죠. 20년을 결혼하지 않은 채 파트너 관계로 지내옵니다.
딱 여기까지만 보면, 어느 잘 나갔던 부부의 알츠하이머 분투기 정도일 텐데...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칠레 버전 정도일 텐데...
여기서 이야기는 그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진짜 스포>
영화가 진행될수록 남주(아우구스토 공고라)가 칠레 민주화를 위해 피노체트 군부 정권과 맞섰던 인물이란 점이 드러납니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 공영방송 저널리스트로서 어떻게 독재 에 저항했었는지가 그가 했던 방송 리포트, 인터뷰 했던 인물과의 영상으로 관객에게 보여집니다. 물론, 빛나고 아름다웠던 젊음의 모습도 함께 말이죠.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는 남주는 많은 기억을 잃어가지만, 유독 독재 정권과 용감하게 맞섰던 기억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군부 정권에 끌려간 뒤 목이 잘려나간 채 발견된 지인에 대한 기억도 잊지 못하고, 떠올리며 엉엉 서럽게 울죠. 책...자신이 썼던 칠레 민주화에 대한 책도 틈이 날 때마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읽고, 냄새를 맡고...그럽니다.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주로 지내죠. 자신의 젊은 날의 모든 것...용기, 헌신, 지식 등등을 다 털어넣은, 분투 그 자체이기에 결코 잊지 못 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울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는 과연 저 상황에 처한다면 무엇을, 어떤 기억을 붙잡고, 잊지 못할까.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일까?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눈물을 닦는 와중에 아주 잠깐, 제 일(저의 현재)에 좀 더 맘을 다 해야겠구나...하는 생각도 짧게, 아주 짧게!! 해봤습니다.
그리고...마음이 노력과, 시간과 함께 들어간 모든 일은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한다는 거?...이거 좀 맘 아픈 일 같이 느껴졌어요. 밥벌이 혹은 어떤 일...이란 것은 내 몸에 나도 모르는 채 각인돼 떨치려야 떨칠 수 없는 평생의 족쇄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여튼, 이렇게 남주의 칠레 민주화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이터널 메모리는 ‘개인 일상의 기록’에서 ‘칠레 민주화를 기록했던 자에 대한 기록’으로 도약합니다. 개인의 기억 혹은 일기가 역사와 만나게 되는 거죠. 남주의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마치 칠레 민주화가 잊혀지는 듯한 느낌이 들고...그래서 결국 올해 초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영화 마지막에 알았을 때는 ‘내가 당신을 기억할게요!’ 하는 말을 저도 모르게 하고 있더라고요. 남주 아우구스토 공고라는 올해 초에 세상을 등졌지만, 그 기억은 2023년 9월 포비에게 #이식 #성공 했습니다.
이 영화는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 기억을 기록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였어요.
어떻게 보면 개인의 메모리는, 사적이지만, 누구나가 이 사회 안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고 있기에, 100% 사적인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요. 그 기억을 기록으로 잘 남기면 2023년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기록물이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모든 기록물에 대한 찬사로 읽히기도 했습니다.
제 일상도, 횐님들의 일상도 그 어떤 공적인 것에 대한 기억인 것이고요. 우리 팬카페도 어떤 한 인물에 대한 기록이고, 해시티비는 독재까진 아니지만 어떤 권력자 집단!에 대한 기록, 그들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의 기억에 대한 기록이고요.
기록이 넘쳐나는 시대이긴 하지만, 진짜 기록은 가짜를 무찌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힘을 갖게 하는 것은 그 기억을 끊임없이 기록하는, 그걸 다시 기억하는 자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겠나...이런 거창한 생각도 잠깐 해봤습니다.
이 영화는 당분간 제 인생 영화가 될 거 같습니다. 또 어떤 좋은 영화가 제 맘을 훔쳐 갈지 모르니 일단 ‘당분간’. ^^ 우리 카페에도 책이나 지식, 앎에 대한 호기심이나 열정 갖고 계신 횐님들이 많으신데, 보시면 그냥 엉엉 울면서 일기에 기록해 둘 영화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
제가 두서 없이 얘기를 했는데,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
남은 연휴 잘 보내세요, 횐님들.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964410
첫댓글 멋지고 감동적인 후기 잘 읽었습니다.
뒤에 더 멋진 글을 쓰고 싶은데 ㅜㅜ
그냥 여기 같이 여러 회원님들과 기억하고 기록하고 지켜나감에 감사해요^^
음...저도 많이 감삽니다,j사랑님. 할 수 있는 걸 한다는 맴으로...헤헤. 연휴 잘 보내소서!
감동적인 후기 잘 읽었습니다 ^^ gv 가신 거 부러워요~~ 나중에 꼭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준이님. 연휴 잘 보내세요
이터널 메모리는 정말 좋은 영화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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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스포를 제가 좀 했쥬...^^;;잘 읽어주셔서 감삽니다,여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