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여행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된다
나의 바깥은 내 안의 경계일 뿐이라는
선문답 같은 시귀절을 화두삼아 비장하게 동안거에 들어가는 나목들의 숲은
또 다른 나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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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가 2010년 12월에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한 네곳 중 하나인 충북 옥천은
일제때 경부선 철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거센 반대로
철도역에서 비켜나면서 발전의 뒤안길에 서 있었던 곳이다
최근 정지용의 시 ' 향수'가 가사로 씌어진 대중가요가 인기를 얻으면서
정시인의 출생지인 이곳이 관광지로 부각되고 있다
여행의 첫머리에서 만나는 옥천성당은
초겨울의 하늘빛을 닮아 신비스럽게 하늘속에 서 있었다
옥천지역은 1880년경부터 천주교가 전래되었고, 현재의 성당은 제 8대 메리놀외방 선교회 소속의
페티프렌 재임시 1956년 4월 신축 준공되었다
지방에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산이라는 희소가치와 함께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 종교건축 변화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건축사적 의의를 지니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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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지용은 1902년 5월 15일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옥천읍 하계리 이곳 초가에서 태어났다
원래 생가는 1974년에 허물어졌지만 월북시인이라는 해금이 풀리면서 1988년 현재와 같은 집으로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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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바로 옆에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 불리는 정시인의 생전 업적과 문학세계를 재조명하고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문학관이 있다
정시인은 1950년 사망할 때까지 일제시대에는 친일시인으로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월북시인이라는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납북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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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으로 들어서자 입구에는 실물크기와 같은 시인의 밀랍인형이 앉아있다
정시인은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고 대상을 감각적으로 선명히 묘사하여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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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로 들어서니 귀에 익숙한 음악이 실내를 감미롭게 어루만지고 있다
정지용의 시에 김희갑이 작곡하고 테너 김인수와 대중가수인 이동원이 듀엣으로 불러 힛트한 노래
'향수'는 시인의 감성과 토속어가 녹아있는 구절들로 인하여
대중들의 뇌리에 아름다운 국민가요로 각인되어 있다
.................................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실내에는 정시인의 시를 연대별로 분류한 문학전시실과,체험을 할수있는 시 낭송실
정지용문학상 수상작들이 전시되어 있어
시인의 시 정신과 짧지만 파란만장했던 삶의 편린들을 들여다 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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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문학관에서 지척인 곳에 충북 유형문화재 제157호인 옥주 사마소가 있었다
사마소(司馬所)는 조선 중기 이후 지방의 고을마다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친목과 학문,정치 및 지방행정 등의 자문을 논하던 곳으로
옥주 사마소는 효종 5년(1654년)에 곡식비축 창고였던 '의창'을 재정비하여 사마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소박한 옛날 기와집 같은 이곳에는 지방 문인들의 활동상을 알려주는 고문서들이 여러편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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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는 삶이 초겨울 햇살처럼 따스한 것인 줄 알았었다
그래서 하고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수 있을것 같은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었다
막상 어른이 되고나니 이젠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다
옥주 사마소 툇마루에 걸터앉아 소녀같이 해맑게 웃는 여인네의 미소에서 천진스런 동심을 본다
잠시 쉬어가는 그네들의 여유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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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1월 29일에 태어나 박정희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옥천지역의 명문가가 있었던 육영수 여사의 생가를 들러보았다
1600년부터 세 정승이 살았다는 곳을 1918년 육여사의 아버지 종관씨가 매입 개축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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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국모로 추앙받고 있는 육여사의 생가는
오랫동안 방치하여 퇴락하였던 것을1999년 철거하고 2004년부터 안채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2010년 5월에 안채,사랑채,위채,아래채,사당 등 건물 13동과 부대시설의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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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다 심은 종려나무 밑에
비뚜로 선 장명등
카페프란스에 가자
이 놈은 루바쉬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넥타이
비쩍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 흐느끼는 불빛
카페프란스에 가자
모더니즘이 번떡이는 정지용의 시 제목 '카페프란스'를 상호로 내건 커피숖이
청풍호가 바라보이는 장계유원지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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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1980년대에 세운 놀이공원인 장계유원지가 인기도 없이 방치되자 옥천군청에서는
2005년부터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있는 구읍에서 육영수 생가를 지나 대청호를 끼고있는 장계관광지까지
문학적인 서정세계를 공간적으로 재해석 연출한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세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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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여평의 퇴락한 공원을 시인의 감각적 시 작품과 금강을 주제로
건축가,디자이너,문학인,아티스트 등 100여명이 2년여의 시간과 29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작년에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완성하였다
"향수 30리,멋진 신세계"라는 브랜드가 바로 그것이다
이 브랜드로 옥천은 2009년 국토디자인대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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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벤치마다 이렇게 싯구가 새겨져있어 우리의 시심을 자극한다
벤치에 앉아 억새풀이 우거진 호수를 바라보노라면 누구라도 시인이 될 것만 같다
명상에 잠겨 나자신과 대화를 할수 있을 것도 같다
어디 벤치 뿐이랴
아트밸트라는 공공 프로젝트의 일환인지 옥천은 온 마을이 시어로 넘쳐나고 있었다
우편취급소,식당,구멍가게 등 간판이 걸린 담벼락에는 어김없이 시어로 물결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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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호수가 바라보이는 시인의 시비 옆에서 물끄러미 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소리쳐 불러도 불러도 가지 않았다
무슨 생각에 젖었을까,아이는...
문득 문학관에서 보았던 정지용의 시 '호수'가 떠올랐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으로 포옥 가릴 수 있지만
보고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두눈을 꼬옥 감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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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공방,쪽방공방 등이 있어 주말에는 가족 단위로 예술체험을 할수있는 모단스쿨이
공원 한쪽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다
누구라도 친환경재료를 사용하여 북아트,나무연필 등을 만들어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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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와 어우러진 이곳에는 시어가 있는 벤치,시비를 비롯하여
원고지를 형상화한 조형물인 모단광장,시인의 삶의 여정을 별자리로 형상화한 '향수별자리'
꽃이 지지않는 꽃밭,멋진 조각품 등 30여개의 조형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반짝이고 있었다
오른쪽 조각품 밑에는 정지용의 유명한 시 '고향'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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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정시인의 시비뿐만 아니라 정지용문학상 수상작들의 시비도 있었다
한개의 커다란 바위를 칼로 자른듯한 노란색 네개의 시비는
딴곳에서는 본적이 없는 독특한 조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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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에는 무인우체국이 있었다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부칠 수있는 우체국
소중한 사람에게,연락이 닿지않는 친구에게,과거의 나에게,미래의 나에게....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과거의 나에게 나는 어떤 편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인가
10대였던 나에게,20대였던 나에게,30대였던 나에게,40대였던 나에게....
삶이 참으로 지난(至難)하였으므로 여기까지 살아오느라고 참 욕봤다고 할것인가
아마 난 편지를 제대로 쓰지도 못한 채 펑펑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아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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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새겨진 바위위에서 줄지어 펄럭이는 노란 깃발을 바라보며 걷는다
정시인의 작품 '일곱걸음'에서 따온 1.5킬로미터의 일곱걸음 산책로가 끝나려고 한다
140여편의 시를 남기고 아프게 살다간 한 시인의 꿈과 숨결과 시혼(詩魂)이 배어있는
옥천에서의 여정도 이제 마무리해야 되겠지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옥천에 올 기회가 다음에 또 있다면 그때는
안남면에 있는 둔주봉에 올라 영월 선암마을과는 다르게 동서가 뒤바뀐 한국지형마을을 조망하고 싶다
정지용이라는 문화적 자산을 가지고 힘찬 날갯짓을 하는
시향(詩香)에 젖어있는 지방의 작은 마을 시향(詩鄕) 옥천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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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성큼 내 앞에 다가섰다
지금 외로운 사람은 더 외로울 것이고,지금 추운 사람은 더 추워질 것이다
길 위에서 만난 작은 쉼표,
내 가슴속에 영글어가는 붉은 감 하나 있다면,
까치들만 알아차리는 달디단 홍시를 골라 따주는 친구하나 있다면
이 겨울이 춥지만은 않으리라
내 바깥은 황량하여도 내 안은 내밀한 기쁨으로 풍성하리라
첫댓글 옥천에서 대청호까지 이어지는 향수길 30리는 벚곷이 만개한 봄에가면 참 좋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먹기와 구경 위주의 여행문화를 읽고 보고 듣고 그리고 느끼는 여행문화로 정착시키면서 더불어 역사와 문화유적을 함께하는 한차원 높은 패턴(pattern)을 정착시키고 있는 박물관을 찾는사람들이 달해님을 만난건 작은 행운이라고 봅니다. 달해님 달디단 홍시를 골라따주는 친구분이 이글을 읽고 맛있는 점심먹자고 전화할꺼예요. 세월이 바람타고 잘도 갑니다. 붙들어 매도 가는 놈을 미리 당길필요는 없고 그렇다고 가는놈을 잡으려 애쓸 필요 또한 없는 듯 하지만 또 한해를 보내려니 아쉬워지네요. 달해님 내년에는 꼭단행본 출판하시죠
달해님~~ 내일 답사를 가시는지?? 오랫동안 보지 못해 너무 보고싶어요....글과 사진 보면서 숨을 죽이면서 마른침을 꼴깍~ 삼켜봅니다.달해님의 가슴에는 이미 영글대로 영글은 붉은 감이 가득 담겨있음을 압니다.
오디님,정말 고맙습니다.이렇게 과찬을 해주시니....내일 저도 답사 갑니다.안그래도 오디님 신청하신 것 보고 내일 만날수 있겠구나 생각했었답니다.내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