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O1b2a1a1a1(CTS713,K2)
47z의 가장 주요한 하위 클레이드인 CTS713을 살펴 보면, 23mofang과 Y-full에는 4개의 분지만 나오는 데, KPGP와 Ulsan 1K 프로젝트의 한국인 샘플들을 분석하면, 또 다른 5개의 하위 클레이드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9개의 하위 클레이드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모두 합해도 전체 한국인의 4.6% 정도로 상위 CTS713의 비율인 7.5%에 많이 못 미치는 것이고, 이것은 앞서, 47z에서와 마찬가지로, CTS713에도 아직 하플로 그룹 트리에 나타나지 않은 각각의 분지마다 적은 인구수만을 가진, 많은 새로운 하위 클레이드들이 발견을 기다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CTS713의 하위 클레이드를 보면,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각 하위 클레이드들의 분포비율은 많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CTS7805가 1.7% 정도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중국에서 하위 클레이드별 비율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23mofang에 나오는 샘플 수로 볼 때, CTS203이 가장 많은 것으로 보이고, 일본도 역시 하위 클레이드별 통계는 없지만, 1K genome project와 HGDP샘플들의 분포를 볼 때, CTS1875와 Z24599 에 많은 샘플들이 몰려 있다. 특히, CTS713의 하위 클레이드들은 일본열도로 건너 간 뒤, 확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K4-L682아래의 가장 대표적인 하위 클레이드인 CTS723과 47z아래 가장 대표적인 하위 클레이드인 CTS713의 비율을 비교해 볼 때, 한국과 중국에서 CTS723이 거의 2배가 넘게 많은 것으로 보이나, 일본에서는 반대로 CTS713이 CTS723에 비해 2배가 넘는 비율로 역전되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일본에서의 CTS713 하위 클레이드들의 놀라운 확장이 수렵채집과 일부 원시적인 조방적 농경만을 행하던 죠몽인(최근 여러 연구들에서 약 3,000년 전인 죠몽 말기부터 급격히 죠몽인들의 인구감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들만 있던 열도에 최초로 집약적인 수도작과 청동기 제조기술을 가지고, 대륙의 인구집단 중에서 열도에 가장 먼저 건너간 선점 효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CTS158 등 다른 하플로 O나 C2b 등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건너 갔지만, CTS713 집단이 가진 어떤 특정한 우위 때문인지는 앞으로 연구를 통해서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현재보다 많은 고인골들에서 부계 하플로그룹이 측정되어도, 과거 어떤 상황이었는 지 분명하게 밝혀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즉, CTS713이 열도에 다른 부계 하플로 그룹보다 시기적으로 많이 앞선 것이 아니라, 고인골 발굴로 판단하기 어려운 겨우 100~200년 시차로 앞서 건너 갔거나, 거의 같이 건너 갔어도 처음 도일한 집단에만 다른 부계하플로 그룹보다 CTS713이 많은 수로 있었고, 이후에는 별 차이가 없었을 수도 있다. 카오스이론에서 말하듯이 미세한 초기 조건의 차이가 이후 큰 차이로 증폭되었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시모모토야마이와카게(下本山岩陰)의 죠몽인과 여러 세대에 걸쳐 혼혈이 많이 된 47z샘플이 시사하듯이, CTS713이 일본 열도로 다른 부계하플로그룹들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어떤 특별한 기술적 신체적 우위가 없이 해협을 건너갔지만, 이미 열도에 오래 전에 선주민으로 자리잡았던 죠몽인 집단에 대해서, 반도에서 건너간 다른 부계 하플로 그룹이 아예 무시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는 데, CTS713은 우호적이고, 개방적으로 이들을 대해서, 이들과의 적극적인 혼혈 등으로, 이들이 열도의 환경에 적응한 어떤 유전적 특질을 흡수했다든지, 죠몽인과의 협력 하에, 열도에서 생존에 필요한 기술이나 ,좋은 지리적 조건을 획득하고, 죠몽인과 혼합된 집단들에서 수장을 맡아서, 보다 큰 확장의 기회를 가졌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여러 자료들을 세심히 조사하고, 정밀하게 여러 가설들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23mofang에서는 47z에서와 마찬가지로, CTS713이 특별히 많이 나타나는 중국의 몇 개 가문을 따로 적어 놓았는 데, 이들을 아래와 같이 검토해 본다.
● 중국 맹(孟)씨 가문 : 중국의 맹씨 들 중에, CTS713이 차지하는 비율은 0.97%로 중국인 전체 평균 0.07%보다 13.6배나 많이 나타난다. 중국의 맹씨는 중국 성씨들 중, 73번째로 많은 인구를 가지고, 약 330만명에 달한다. 이 맹씨들 대부분은 상왕조의 子씨에서 유래하거나, 서주의 姬씨에서 유래를 가진다고 말한다. 짐작할 수 있듯이,공자를 이어서, 二聖이라 불리는 전국 시대 孟子의 후손이라는 사람들도 꽤 있는 데, 맹자의 부계 하플로로 유력하게 추정할 수 있는 산동성의 맹씨들에게서는 주로 JST002611의 하위 클레이드가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CTS713이 양성인 0.97%의 맹씨들은 이들 주류 맹씨들과는 다른 연원을 가졌을 것이며, 주로 몽골족과 만주족, 다우얼족 등의 북방 민족들이 한족식 성으로 맹씨를 택해서, 내려온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몽골족이나 만주족들이 맹씨들 택한 사례도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데, 이것도 앞서, 47z의 염씨와 마찬가지로, 맹씨들 중 47z이 자신의 부계 하플로인 사람이 가계를 직접 조사한 자료가 나와야, 좀 더 확실한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도 약 22,000명의 맹씨들이 있는 데, 고려 충렬왕 때 맹자의 후손 맹의가 건너와서 신창을 본관으로 했다고한다. 아직 한국 맹씨들의 부계 하플로 자료를 본 적은 없는 데, 이들의 부계 하플로는 JST002611이 많을 지, CTS713이 많을 지, 궁금하다.
● 요령성 관(關)씨 가문 : 요령성의 관씨 남자들 중에 CTS713이 차지하는 비율은 8.82%로 요령성 평균 0.25%의 약 36배에 달한다. 짐작할 수 있듯이, 이 CTS713으로 나타나는 요령성의 관씨들은 전부 만주족이다. CTS713뿐만 아니라, M176의 여러 다른 하위 클레이드에서도 만주족 성씨들 중에 관씨들이 제법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관씨는 만주족들의 한족식 성 중 많은 동佟(佟佳氏), 관關(瓜尔佳氏), 마馬(马佳氏), 소素(索绰罗氏), 혁赫(赫舍里氏), 부富(富察氏), 나那(那拉氏), 랑郞(钮祜禄氏)의 8대성 중 하나로서, 괄호 안에 있는 성이 원래 만주족들의 성이므로, 대부분 관씨 만주족은 瓜尔佳氏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瓜尔佳氏(만주어 발음은 guwalgia hala)는 만주족이 성립되기 이전 여진족부터 존재한 오래된 가문(소부족)으로 누르하치가 속한 건주여진의 핵심세력 중 하나였고, 역대 만주족의 성씨를 종합하여 편찬한 <팔기만주씨족통보 八旗滿洲氏族通譜>에서 첫자리에 놓였고, 역대로 ‘만주제일씨족滿洲第一氏族’으로 불리웠다. 청왕조 최후의 황제인 선통제 부의(溥儀)의 생모(부의의 명목상 모친은 광서제의 황후였던 륭유태후隆裕太后였고, 그녀는 엽혁나랍葉赫那拉씨 출신 서태후의 질녀였다)이자, 섭정왕 애신각라 재풍(愛新覺羅 載灃)의 정비였던 순친왕비(醇親王妃) 유란(幼蘭)도 瓜尔佳氏 출신이었다.
瓜尔佳氏의 유래에 대한 여러 복잡한 논의를 여기서 다 펼치는 것은 부적합하기에, 여기서는 관씨의 부계하플로 CTS713이 나온 것과 관련해서, 가능성 있어 보이는 해석을 제시하겠다. 이것은 일종의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과 비슷한 것으로, 답을 먼저 알고, 풀이과정을 끼워 맞춰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이들 瓜尔佳氏 부계하플로 타입을 모르고 한, 여러 해석들보다 진실에 더 가까우리라 생각한다.
瓜尔佳氏에서 ‘佳’는 만주어 발음으로 한어의 성모가 구개음화되기 전의 giya 혹은 gia이 되는 데, 이 佳자의 의미나 역할을 놓고, 계속 논쟁이 있어 왔다. 위의 8대성 중에서 佟佳氏, 瓜尔佳氏, 馬佳氏에서 佳자가 붙은 것을 볼 수 있듯이 접미사로 佟, 瓜尔, 馬 등의 글자에 더해져서, 집안이나 가문을 나타내는 ‘家’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청왕조시기, 한족들에게 만주족 성을 하사할 때, 기존의 한 글자인 한족 성, 예를 들어, 李씨이면, ‘李佳’, 黃씨이면 ‘黃佳’ 이런 식으로 ‘佳’자만 덧붙인 예가 많기에,만주족 황제들도 한족 성에,’佳’를 접미사처럼 붙여 ‘李家’,’黃家’와 같은 의미로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瓜尔佳나 馬佳 등은 만주족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지명으로 존재했으므로, 만주어 ‘gia’와 한어 ‘家’를 연관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론이 계속 제기되고 있고, 중국의 백과사전 등에도 이러한 관점이 서술되어 있다.
그러면, 만주어의 많은 지명에 ‘gia’가 붙은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그냥 지명이므로, 더 이상의 소구없이 받아 들이라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데, 왜냐하면, 만주족 이전에 여진족 시절, 이들 瓜尔佳 등이 살던 곳에 사는 사람들을 ‘佳’자 없이, 불렀고, 이 사람들에게 ‘가’자를 덧붙인 것은 주로 명 중기 이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지명에 ‘佳’자를 덧붙인 것 역시, ‘이가네 마을’, ’박가네 마을’과 같이, 거기 사는 사람들의 성(姓)에 붙여 ‘집안(家)’를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은, 瓜尔佳의 두번째 글자 ‘尔’인 데, 이 글자의 한어 병음 ‘er’이다. 그런데, 瓜尔佳의 로마자 표기 ‘guwalgia’에는 ‘er’이 없다. 다른 만주어의 단어, 예를 들어, 흑룡강성의 성도이자 동북지방 최대의 도시인 ‘하얼빈Harbin’의 대응하는 한어 음역은 일반적으로 哈尔滨으로, 한어 병음 표기는 ha-er-bin이지만, 이에 대한 또 다른 음역으로 ‘哈勒滨’이 있고, 이것의 한어 병음은 ha-le-bin이 된다. 마찬가지로, 瓜尔佳 대신 瓜勒佳를 음역으로 사용한 예도 많이 발견된다. 즉, ‘guwalgia’라는 로마자표기는 어떤 만주어의 음운을 음사한 것이지만, 이것은 로마자로도, 중국 한자로도 정확히 음사하지 못한 것이기에, 사람에 따라서, ‘er’에 가깝다고 여기면, 尔을 사용하고, ‘le’에 가깝다고 여기면, 勒라는 글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어에서 외국어의 지명이나 인명을 표기할 때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인 데, 프랑스 수도 paris를 어떤 이는 ‘파리’로, 어떤 이는 ‘빠리’로 표기하곤 했다. 지금은 외래어표기 표준안에 따라서, 외국어의 한글표기를 하나로 통일하도록 강제하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은 해당 언어의 음운(여기서는 프랑스어 ‘p’)에 대응하는 정확한 한국어 음운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瓜尔佳에서 尔이 대표하는 만주어의 음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된 의견이 일종의 혀끝을 진동시켜 내는 ‘嘟噜音’(‘삐삐’,’뚜뚜’ 등과 같이 그 자체로 어떤 의미가 없이 다른 음을 모방해서 낸 소리 ) 이라는 것이다. 尔er과 勒le이 모두 대응할 수 있는 것을 볼 때, 尔이나 勒자체는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라, 앞의 瓜에 붙어, 유음(liquid) 인 ‘ r’이나’ㅣ’이 들어간 어떤 음을 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면, 첫글자 瓜와 尔이 합해진 瓜尔이 대표하려는 만주어는 무엇인가? 대다수는 만주어 ‘kor’이라는 단어를 후보로 제시한다. ‘kor’의 의미에 대해서, 어떤 공공장소로 쓰이는 건물의 의미인 ‘관館’ 혹은 ‘각閣’ 이라는 견해도 있고, 이러한 의미를 확대하여, ‘주소住所’ 즉 사는 곳, 살고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한국어 화자라면 ‘kor’이라는 단어를 한국어의 ‘골’과 연결시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방앗골’, ’싸리골’,’가마골’ 등, 한국의 옛지명들에는 골이 붙어서, 사는 곳, 살고 있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쓰인 것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瓜尔에 대한 또 다른 해석도 역시, 한국어와 연결되는 데, 러시아 인류학자Shirokogoroff는 이것이 ‘채소밭을 둘러싼 물구덩이 围绕菜园子的水沟’라는 뜻으로 만주어에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한국어 ‘골’이 가지는 의미중에 밭사이의 ‘고랑’이라는 의미와 유사하다. 또한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에서는 瓜尔佳씨가 옛 여진족 중 ‘협곡夾谷(골짜기 사이에 끼어 있는 곳이라는 의미)’씨에게서 나왔다고 하는 데, 한국어 ‘골’은 골짜기 사이의 끼어 곳이라는 의미이고, 이 골짜기 사이의 끼어 있는 곳에 주로 한국인의 선조들이 자리잡고 살았기에,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사는 곳’이라는 의미로 전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세가지의 만주어 瓜尔佳에 대한 유력한 해석이나 이 부족의 연원 모두, 한국어 ‘골’과 대응하거나, 한국인 선조들의 생활양식을 나타내는 말과 일치하므로, 瓜尔佳씨가 한국인과 연관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좀 더 나은 해석을 생각해 보면, 앞서의 만주어 ‘佳gia’처럼, 한국어에서도 ‘골’은 사는 장소의 어떤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 뒤에 연결되어, 그 지역을 표시하는 것인 데, ‘골’이라는 단어 자체가 앞에 나오면, 조금 부자연스럽다. kor은 고구려어의 ‘홀승골’에서와 같이, 만주어와 한국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어근으로 ‘사는 곳’ ‘골짜기 사이의 낀 곳’을 뜻하는 것이 맞지만, 이것만이 瓜尔로 대표하려는 의미는 아니고, 이러한 명칭이 고유명사로 쓰이기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유명사로 ‘瓜尔’이 나타내려는 것에 대해 더 적합한 해석은 북방의 중국인들이 한국인을 부를 때 사용하는 高丽棒子에서 高丽gao-li와 가까운 것이라는 것이다. ‘瓜尔’이 음사하려는 만주어도 kori혹은 gori에 더 가깝고, 瓜尔佳는 곧, 고려인 혹은 고구려인의 후예들이 사는 곳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라 볼 수 있고, 고려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곳을 ‘XX골gol’이라고 말하는 특징과도 연결해서, 이중으로 이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고려출신임을 강조한 것이다. 瓜尔佳씨의 원류가 되는 협곡(夾谷)씨가 <金史>에 이미 보이므로, 이들은 고려시대인이 북방으로 이주한 것이기 보다는 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원고구려인들 중 발해 멸망 후에도 계속 남은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해석이 瓜尔佳씨의 성씨 기원에 대해서 설득력있는 설명임을 물론, 瓜尔佳씨가 변한 관(關)씨에게서 한국인과 일본인에게서 많은 CTS713이나 혹은 다른 M176의 여러 하위 클레이드들이 다른 만주족 성씨들보다 빈번히 나타나는 지에 대해서도 유력한 설명이 될 것이다.
● 중국의 파(巴, 중국어 병음은 ba)씨 가문 : 중국의 파씨 남성들 중, CTS713이 차지하는 비중은 8.11%로 중국인 평균 0.09% 의 90.1배로 나타난다. 중국의 파(巴)씨는 서주의 희성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 그 보다는 춘추전국시기, 현재의 중경(重慶, 충칭)지역에 위치했던 파국(巴國)의 지배층 성씨였고, 이들의 후예가 현재 중국 파씨들이라는 것이 더 유력한 설이다. 또한 몽골과 만주족들은 Bayan(부자), Baturu(호걸, 용사) 와 같은 몽골어와 만주어에 공히 쓰이는 좋은 의미의 이름을 많이 사용했고, 원제국시기나 청왕조시기 중원에 온 이후, 이를 음역한 伯 혹은 巴는 역시 한족식 성을 취할 때, 많이 택한 성이기도 하다. 23mofang에 CTS713이 양성으로 나온 파씨들은 모두 한족인 데, 아마도, 원제국 시기 몽골인의 신분으로 진입해서, 남은 이들의 후손이 현재는 한족에 동화되어,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중국의 소(邵)씨 가문 : 중국의 소(邵)씨 남성 중 CTS713이 0.79% 나오는 데 ,이것은 중국인 CTS713 이 양성인 사람 평균 0.09%의 8.8배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이다. 한국인에는 거의 없는 성씨이지만, 중국의 邵씨는 성씨 인구 중에 83위에 해당하고, 인구가 300만에 달한다. 대다수의 중국 성씨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서주 희성에 그 연원이 있다고 하고, 만주팔기 중 오아烏雅씨가 소씨를 한족식 성으로 택해서 바꾸었다고 한다. 북송 시기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를 집필하는 등 역학을 깊이 연구하여, 후대 주희의 성리학으로 가는 기초를 놓은 소옹(邵雍)이 이 성씨중 이름난 이 중 하나이다. 소옹하면 다소 낯설지 모르겠지만, 역학책을 조금이나마 뒤적인 이라면, 강절(康節)이라는 그의 시호와 함께 쓴 소강절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CTS713에 속하는 202명이라는 비교적 많은 샘플이 나와 있다. 아래와 같이, 그 지역별/민족별 분포를 표와 지도로 나타내 보았다. 이 중에 적어도 10명이상의 중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으로 보이는 샘플들도 있는 데, 민족이나 지역을 미상으로 표기했는 데, 성씨도 영문으로 간단하게 알파벳 한 글자만 적은 사람들도 일본인으로 간주하였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이 2차 대전 당시, 중국에서 벌인 여러 죄과로 인해서, 중국 내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생활하고, 좀처럼 자신의 신분을 잘 드러내려 하지 않는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CTS713의 분포표를 앞서의 47z 분포표와 비교하면, 한족에 비해, 다른 민족들인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등의 비율이 현저히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족이 CTS713에 양성인 샘플의 비율이 높은 데, 이는 뒤에 나올 K4-L682-CTS723이 양성인 샘플이 23mofang 전체검사사 중, 469명으로 CTS713인 202명의 2배가 넘는 데 비해, 조선족 샘플로 CTS723이 양성인 샘플은 65명으로, 이번 CTS713의 53명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조선족 샘플의 부계하플로 구성이 전체적으로 한국인과 비슷하다고 여겨지지만, M176의 하위 클레이드들 분포만 볼 때는 이렇게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만주족은 CTS723이 양성인 샘플이 41명으로 CTS713의 약 2배가 되므로, 전체 샘플 수 차이와 비슷한 비율로 나오며, 몽골족은 그 수가 너무 적어서, 비교의 의의가 적지만, CTS723이 9명, CTS713이 5명으로 역시 약 2:1 정도의 비율을 보인다. 조선족만 왜 이러한 차이가 나는 지, 혹시 Unknown으로 적은 조선족 12명 중, 한국인 CTS713인 사람들이 많이 섞여 있어서 그러한 것일지 모르며, 이후의 분포가 어떻게 나오는 지를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23mofang 검사자 중에 53명이 CTS713에 속하는 것으로 나온 조선족 및 한국인 샘플들의 성씨별 분포를 살펴 보기로 하겠다. CTS713이라는 M176의 하위 클레이드에 대해서, 각 성씨별로 나온 숫자를 살펴 보면, 한국의 어떤 성씨에서 CTS713이 주요한 부계 하플로인지 파악하는 데도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위의 표에서 E)는 한국인 전체 인구에서 해당 성씨의 인구비율로 중국 조선족들의 성씨 비율도 한국인과 유사한 비율을 보일 것이라고 가정하고, D/E는이번 CTS713 샘플들에서 나타난 특정 성씨의 비율을 한국인 전체에서의 인구비율로 나눈 것이다. 한국인 전체 인구비율과 크게 차이가 나는 성씨가 노란색으로 표시한 심씨 이외에 마씨, 지씨, 채씨 등도 있지만, 이 성씨들은 이번 조사에서 1명밖에 나오지 않았기에, 이를 특별히 CTS713이 두드러진 증표로 보기에는, 우연히 적은 샘플 중에 한 명이 23mofang에 포함되었을 확률이 있으므로, 제외하였다. 원씨는 적은 인구수에서 이번에 2명이 나온 것도 좀 특별하다고 볼 수 있으나, 한국에서 한 조사에서 C2b만 2명 나온 것으로 기억하여, CTS713이 원씨의 주요한 부계 하플로인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심씨는 이전 한국의 한 논문(홍성희 2001)에서 2명 중 한 명이 O1b2(그 당시에는 O2b), 다른 한 명이 O2a로 조사되었는 데, 23mofang에서는 이렇게 인구수가 20배가 넘는 이씨와 비슷하게 53명 중 7명이나 CTS713이 양성인 것으로 나왔다. 한국의 심씨는 27만명의 인구에 16개 본관이 있지만, 그 중 거의 90%는 청송 심씨이므로, 중국 조선족에서 CTS713이 양성으로 나온 심씨들도 청송 심씨일 가능성이 크다. 청송 심씨는 고려 충렬왕 시기에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역임한 심홍부(沈洪孚)를 시조로 하는 데, 그러면, 인구수 24만 명 정도의 성씨 치고는 비교적 역사가 짧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CTS713 이라는 단일한 부계하플로 중심으로 비교적 결집되어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심씨들에게서도 더 많은 자료가 나와 이번 결과와 비교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위 CTS713의 두 분포와 비율지도를 보면, 앞서의 47z 분포 및 비율지도와 비교하면, 47z보다 약 2,500년 이후에 3,500년 전에
분화를 시작한 CTS713은 분포의 중심이 확실히 동북 방향으로 이동해 갔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두 가지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즉, 이러한 차이를 가져 온 원인으로, 47z이 초기 분화한 중심은 보다 남서쪽의 중원지역에 가까운 지역인 데, 2,500년의 시간이 흐른 후 CTS713은 거기에서 북상해서, 동북쪽에서 분화를 시작하고, 확장했기 때문이라는 초기 분화중심 자체가 이동했을 가능성과, 47z과 CTS713 모두 동북방에 치우친 지역이 분화중심이지만, 47z 은 CTS713보다 2,500년 전에 확장을 시작해서, 일반적인 중국 내 다른 부계 하플로의 확장 패턴과 같이, 계속적으로 남하를 오래 기간 지속했기 때문에, 분포가 중국 전역에 비교적 고르게 나온다는 확장 시기와 확장 패턴의 차이때문으로 보는 두 가지 가능성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이 문제는 47z의 초기 분화 분지인 고인골이 발견되면, 좀 더 확실한 것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비율지도에서 앞서 언급한 특징에 맞게, 조선족 인구가 많은 연변조선족자치현이 있는 길림성이 높은 비율을 보이고, 그를 이어서, 북경, 요령성, 흑룡강성 등에서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북경이 높은 비율로 나오는 것은 북경지역이 인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이유도 있지만, 그 인구에 비해 상당히 많은 15명의 샘플이 나왔다. 이들이 만일, 북경토박이라면, 한족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 중에도, 원래는 만주팔기 출신이었던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신해혁명이후, 북경 등 대도시에 살던 만주족들 중 상당히 많은 수가 해를 입을까 두려워서, 한족으로 신분을 변경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대도시에 사는 소수민족은 농촌의 소수민족과는 달리, 소수민족 우대정책에서 제외되는 사항이 많으므로, 특별히 소수민족으로 신분을 바꿀 유인이 적었다. 반대로, 현재의 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동북3성에서 나오는 만주족 중에는 실제로, 외할머니만 만주족이었던 사람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만주족과 관계가 약한 사람인데도,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받기 위해서 변경했다든지, 그 혹은 그녀가 사는 지역이 만주족 자치현으로 지정받으려면, 일정 정도 이상 비율의 만주족이 있어야 되는 데, 만주족 인구가 모자랄 경우, 강제적으로 할당해서, 한족에서 만주족으로 변경하는 일이 많았다.
만주족 샘플과 관련해서, 눈에 띄는 것은 하남성 중동부 주구(周口)시에서 나온 두 명의 만주족 샘플인 데, 둘 다 여진족 아골타가 세운 금나라 왕가인 완안(完顔)씨로 성씨가 나온다. 예전에 쓴 다른 글에서 완안씨들 중 가계가 비교적 확실한 완안씨들 중에 C2a(F1796)과 O2a(JST002611)가 나온다는 것을 인용한 적이 있는 데, 이들 하남성 주구시의 CTS713인 두 완안씨는 어떤 내력을 지니고 있는 지 궁금하다. 다른 M176의 하위 클레이드에서도 완안씨가 나오는 데, 이들 M176이 나오는 완안씨들에 대해서도 좀 더 종합적이고, 세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첫댓글 한국 맹씨 중에 23andme에 O1a1-CTS52로 검사된 분이 한분 계십니다.
어느 기관을 통해 검사된 분인지요? 이 카페에서는 맹씨분이 검사된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데...
@초재 23andme입니다. 카페회원은 아니시고 23andme검사자 자료에서 봤습니다.
관지림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관지림의 아빠가 만주족 출신 관씨입니다. 중화권에서 관지림은 대표적인 만주족 출신 미녀로 통합니다. 관지림 외에도,만주족이 그 인구수에 비해, 가수나 영화배우 등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사람의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그 만큼 미남미녀가 많다는 것인데, 그 원인으로, 중국 사람들은 만주족이 원래는 용모가 별로였는 데, 거의 3백년 동안, 중국을 지배계급으로 통치하는 동안, 권력과 돈이 있으므로, 미녀들을 계속해서, 처나 며느리로 들여서 그렇다고 합니다. 좀 속된 말로, 유전자개량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원에 본격적으로 들어 가서, 유전자개량이 되기 전에도, 만주족이 동북지방에 있을 때도, 여진족, 조선인, 몽골인, 중국 한족 등 각 민족들이 혼혈이 된 민족이다 보니, 용모가 꽤 괜찮았나 봅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만주족 마을과 한족 마을을 지나면서, 여자들의 용모를 비교한 부분이 있는 데, 만주족 마을의 여자들이 한족 여자들보다 예뻤다고 평합니다. 물론, 만주족이 조선인에 더 가깝기 때문에, 박지원의 주관적인 심미관에 더 맞아서 였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