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3일 화요일
고향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노인 아니 늙은 아저씨 한 사람을 만났다
이러 저런 이야기 하다가
내가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물으니
나보고 나이가 얼마나 되느냐 묻기에 64 살이라 하자
자기는 나보다 20 살 많다고 하였다
그럼면서 나 보고는 청춘이라 하였다
하기사 84살인 분인 64 살 보기는 청춘 같이 보였을 것이다
어디 가느냐 물으니
곰내기 간다고 하여서
그럼 개령 서부 학교 졸업 했습니까
하니까
자기는 원래 부터 모암동이 고향 이라고 하여서
그럼 어느 국민학교 다녔냐고
물으니
김천 중앙 국민학교 다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중앙 국민하교 4 회 졸업생이라 하였다
중앙 국민 학교는
일본인들만 다니던 학교 였다고 한다
해방 되고서
한국인들이 다녔나 보다
그래서 내가 알기로 김천 초등도 꽤나 역사가 있어서
내 나름 대로 두 학교를 비교해 보았다
김천 중앙 국민학교
1907년 3월 김천 심상소학교(일본인)
1945년 10월 김천 공립 국민학교( 개교일)
1948년 4월 김천 중앙국민학교
김천 초등학교
1907년 1 월 사립 광흥학교
1911년 5월 금산 공립 보통학교 로 교명 변경
1937년 김천 남산정
공립 소학교로 교명 변경
1945년 4월 김천 동부 국민학교
1947년 4월 김천국민학교로 교명 변경
그 사람이 국민 학교 다닐 때는
곰내기나 모광도 걸어서
중앙 국민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신발은 무슨 신발 신고 다녔냐고 물으니
고무신 신고 다녔다 하였다
나무로 만든 게다도 여름에 신고 다녔다 하였다
게다는 신고 다니다
물가에 가서는
발로 뱅그르르 돌려서 날리기도 하였다 한다
왜 내가 물었는가 하면
1920년 아버지 살아 있을 때
일본이 싱가폴 점령 기념으로
고무신 한 컬레를 돌렸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가 중앙국민 학교 다닐 때는
김천 역전에는 집이 별로 없었대요
우리 아버지도 김천약 근처는 집이 별로 없었다 하였다
김천 국민 학교를
김천 동부 학교라고 하였는데
해방 후
잠시 김천 국민 학교를
김천 동부 국민 학교로 불러서 그런 가 봅니다
해방 후 일본 사람들이 김천역ㅇ에서 기차타고 부산으로 갈
때에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돌 팔매질을 하여싸다는 것이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애들만 공부시키려고
김천 중앙 국민 학교의
전신 심상 소학교를 만들어서 그랬군요
그리고 곰내기에서
자옥 포도 나무 캐내고
청포도를 심었다나요
청포도는 상주 모서 지방이 흙이 맞아서 당도가 좋은데
그 것도 얼마 못갈 것이라고
돈만 된다면 너도 나도 하니까
그리고 하는ㅁ 말이
전라도 지방이 포도를 한다고
테레비에 나왔다나
전라도는 땅이 엄청 넓으닜까
돈ㄴ도 안되는 벼 농사 하는 곳에 포도를 심으면
3-4 년 이 지난 다음에는 엄청 날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농산물 가공 연구를 많이 하여서
농산물을 가공 하는 연구 기관우ㅡㄹ 만들어서
대한 민국의 품질 좋은 농산물 가공품이 온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