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성령강림절 후 일곱째, 맥추감사주일 예배
성경: 마5:1~16절(신5)
제목: 행복자, 우리의 감사(나경수 목사)
성도 여러분,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절’은 구약에서는 유월절 후, 곡식을 대는 첫날부터 7주째의 추수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절기라고 해서 칠칠절(출34:22, 신16:10)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유월절 후 50일째를 맞아 지켰기에 오순절이라 합니다.
신16:9-12절입니다.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 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여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을 의미하며,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12)는 유월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것이 없었다면, 그들이 추수한 것은 애굽 주인의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맥추절은 단순한 농업축제만이 아니라, 모든 언약 백성이 유월절(출애굽)을 기억하면서 언약의 하나님이 주신 복들을 감사함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들을 다시 확인하면서 우리 주 하나님 앞에서 다 같이 감사하며 즐거워하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5:1-16)은 ‘산상 수훈’(5~7장)의 주제와 목적을 소개하는 서론입니다.
‘산상 수훈’의 문맥을 보면, ‘큰 빛’이신 예수님이 이사야의 예언(9:2)에 따라 흑암(사망)의 갈릴리(4:12-16)에서 천국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셨습니다(4:17). “회개하라, (왜냐하면)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여기서 ‘가까이 왔느니라’가 완료형입니다. 이것은 ‘천국이 이미 와있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천국의 왕(주인)이신 예수님이 기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는 우리가 우리 삶(왕국)의 주인(왕) 노릇을 한 ‘우상 숭배’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우리의 왕(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즉 옛 삶의 방식에서 새 삶의 방식으로 근본적인 변화(회심)를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통하여 회개한 자들을 “나를 따라오라. 내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4:19)고 부르시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3대 사역인 그의 가르치심, 천국 복음 전파, 그리고 치유 사역을 4:23절과 9:33절에서 요약함으로 ‘산상 수훈’(5-7장)과 ‘치유 사역’(8-9장)을 하나의 단락으로 구성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요? 이는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이 ‘사람을 낚은 어부’가 되도록 ‘산상 수훈’을 통해 가르치시며 8-9장에서 그의 치유들을 그들에게 보이신 후에, 10장에서 그의 치유의 권세(10:1)와 천국 복음 전파의 권세(10:7)를 그(사도)들에게 주시며 그들을 파송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산상 수훈의 문맥에서 우리는 그것의 서론인 본문(1-16)을 읽기를 원합니다.
1. 산상 수훈의 배경입니다(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여기서 ‘제자들이 나아온지라’(1)는 원문에서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가까이 왔다’입니다. 특히 ‘가까이 왔다’는 ‘가까이(프로스)‘와 ’왔다‘의 합성어로서,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가까이 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그의 제자들을 그의 치유 기적의 소문을 듣고 따르는(4:24~25) 수많은 ’무리’와 대조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는요? 그의 제자들은 천국 복음을 듣고 그들의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연합)가 된 자들(10:24-25)이지만, ‘무리’(1)는 그런 관계없이 그냥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요?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1) 그의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무리를 위해서’ 그들을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9:36), 목자 없는 그 무리에게 그의 제자들을 파송하기 위해서(10장)입니다.
특히 예수님이 ‘산에서’(1) 그의 제자들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출애굽 후에 처음으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율법 언약에 기초하여 그의 언약 백성으로 선포하신 것과 같습니다.
출19:5~6절입니다. “(왜냐하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 둘 사이에 거의 같은 내용과 구조이나 하나의 큰 차이는 하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을 세상을 위하여 율법 언약에 대한 그들의 순종에 근거하여 그의 소유, 제사장(선교의)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선포(약속)하셨지만,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세상을 위하여 천국 복음의 새 언약에 근거하여 그의 소유(종), 사람을 낚는 어부(세상의 소금과 빛), 거룩한 백성으로 일방적(은혜)으로 선포(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첫 가르침인 ‘산상 수훈’에서 그의 첫 마디가 ‘복이다(마카리오이)’라는 ‘일방적인 선포(약속)’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의 팔 복의 일방적인 선포(약속)입니다(3~12).
예수님이 선포(약속)하신 각각 복의 구조는 동일합니다. 먼저 복의 일방적 선포이며, 다음에 그 복 대상자들의 상황과 성품이 나오고, 마지막에 ‘왜냐하면(호티)’로 시작한 그 복의 내용과 이유가 나옵니다.
여덟째 복(10)을 부연 설명하는 11~12절도 복의 선포, 복의 대상자들, 그리고 두 개의 ‘왜냐하면(호티)’로 시작하는 복의 내용과 이유를 말하는 동일한 구조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복이다(복되다, 행복하여라)’라고 ‘일방적으로 선포(약속)하시는’ 이유는 그가 복의 대상자들을 위하여 율법 언약에 따라 그의 죽음(피)으로 세우신 새 언약에 근거하여 천국 복음을 그들에게 선포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복’의 반대는 율법 언약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인 ‘저주와 사망’입니다(눅6:25-26).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아홉 번이나 ‘복이다(행복하여라)’라고 일방적으로 선포(약속)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저주와 사망의 사람인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너는 복이 될지라(이다)”(창12:2)라는 그의 일방적인 말씀(약속)을 아브라함에게 그대로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재창조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한 번만 ‘복이다(행복하여라)’라고 선포하셔도 그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이것을 아홉 번이나 반복하여 선포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행복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가 복의 사람이 되는 것’이 너무너무 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이다’라는 그의 일방적인 선언은 우리는 이미 ‘복의 사람’이다는 출발선에 서게 하시고 ‘더욱 복의 사람’을 향하여 가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과 같은 질문도 하지 마세요. 어떤 실패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현재 좋지 않은 상황에도 염려하지 마세요. 우리의 모든 상황은 ‘복이다’라는 그의 선포를 향하여 가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롬8:28-30).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천지가 아무리 흔들려도 복음의 새 언약에 따라 우리는 이미 행복자이며, 앞으로 더욱 복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행복하여라’라고 일방적으로 선포(약속)하신 것입니다.
첫째로 앞의 네 개의 복의 선포입니다(3~6).
“복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이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다. 애통하는 자들은, 이는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다. 온유한 자들은, 이는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다. 이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이는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복의 대상자들’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3)은 현재 전인적으로 파산할 정도로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며(눅6:20), ‘애통하는 자들’(4)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과 타인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하여 애통하는 자들이며, ‘온유한 자들’(5)은 늑대와 같이 불의한 수단과 방법으로 땅이나 재물을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양과 같이 불의와 핍박에도 불평하거나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고 목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이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6)은 자신과 사회적인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의(구원, 나라)를 간절히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이처럼 그들의 상황은 모두 다 이 세상에서 무언가 부족하며 결핍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상황(실존)에도 불구하고, 행함의 조건이나 어떤 소유에 대하여 한마디 말씀도 없이 예수님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부족한 그들에게 ‘복이다’라고 일방적으로 선포(약속)하신 것입니다. 왜요?
그 이유와 복의 내용은 천국이 이미 그들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며(3),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며(4),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며(5), 하나님의 의(구원, 나라)로 만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6). 왜요? 언약적으로 그들을 대표하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사 그들을 위하여 모든 의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3:15).
둘째로 중간의 세 개의 복의 선포입니다(7~9).
“복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들은, 이는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긍휼(엘레오스)’(7)은 히브리어로 여인의 자궁(레헴)에서 나온 ‘라함’인데, 이것은 자식의 고통을 같이 어미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주님과 연합한 자들의 성품입니다. 복음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잘못을 긍휼로 용서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6:14). 그가 복음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는 자들은 그들도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6:15).
‘마음이 청결한 자들’(8)은 하나님에 대하여 두 마음이 아니라 한마음을 가지는 자들입니다. 즉 천국 복음을 통하여 회개하여 우상 숭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볼(경험)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9)도 천국 복음의 열매인 성품입니다. 복음은 화평의 복음이(엡1:10)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화평이신 그리스도의 성품(엡2:14)을 닮아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세상으로부터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것들은 천국 복음을 통해서 주님과 연합한 제자들에게 복음의 새 언약에 따라 나타나는 성품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행복)은 세상에서 우리 소유의 넉넉함이 아니라, 복음의 새 언약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의 성품(성화와 영화 구원)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기도)하시기 바랍니다(6:33).
셋째로 마지막의 여덟째 복과 그것을 부연한 복의 선포입니다(10~12).
“복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들은, 이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복이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왜냐하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왜냐하면,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에게 여덟 번째로 복을 선포하십니다(10). 이는 첫째 복(3)과 같이 천국이 이미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10). 그들은 이미 천국의 소유자로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들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삼인칭)’(10)에서 ‘너희(이인칭)’(11)로, 그리고 ‘의를 위하여’(10)를 ‘나(예수님)’(11)로 바뀌어 복의 선포를 하시며(11), 여덟째 복에서의 박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부연 설명하시고(11), ‘기뻐하고 즐거워하라’(12)라는 명령과 복의 내용과 두 가지 이유를 말씀하십니다(12). “왜냐하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왜냐하면,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성도 여러분, ‘의를 위하여’(10), 심지어 박해받는다 해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의를 위하여 사는 것’은 천국 소유자의 특징이며, 주님과 연합한 자의 특징이며, 특히 구약 선지자들 같은 오늘날 사역자(목사와 장로)들의 특징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천국 복음이 의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3. 세상을 위한 그의 제자들의 선교 소명 선언입니다(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지 못할 것이요. ... 16)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서도 ‘너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는 명령이 아니라 ‘너희가 이미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라는 일방적인 선언입니다. 이는 천국 복음의 선포와 회개를 통하여 ‘큰 빛이신 주님’(4:16)과 그의 제자들이 연합(천국 백성)되었고, 특히 이것을 선포하신 주님이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4:19)로 만드시면서, 그들을 통하여 그의 증거 사역을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15:19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기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통한 그의 ‘천상 사역’이며,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입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의 그들 존재의 결과(열매), 즉 ‘소금의 자연스러운 짠맛’(13)과 ‘빛의 비추는 빛’(14~15)은 그들의 자연스러운(부활 생명의 본능으로) ‘착한 행실’(16)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들로 자신이 완전하게 하신 율법(5:17)을 순종하게 하여 하나님의 온전함을 닮아가는(5:48) 그들의 거룩한 성품, 즉 성령을 통한 복음적인 열매입니다(요15장). 이것이 새 언약의 축복입니다.
이것이 어둠의 세상 사람들에게 그들을 통하여 그의 생명과 빛을 보여주는 원심적인 선교 방법(centripetal mission)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세상과 구별되는 우리의 윤리적인 거룩함이 없다면, 입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행위로 복음을 부인하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맥추감사주일에 주님이 일방적으로 선포하신 팔 복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복 받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라는 충고가 아니라, 복음으로 행복자가 이미 되었고 더욱 복의 사람이 될 것이니 감사하고 즐거워하며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하시며, 현재 주 안에서 행복자인 자기 자신에 대하여 축하하며 절대 긍정하시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님은 세상 사람을 위하여 우리에게 복을 일방적으로 선포(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복의 근원(통로)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복을 일방적으로 약속하신 것과 같습니다(창12:1~3). 그렇습니다. 우리는 천국 복음에 의하여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주님과 타인을 위하여 사는 자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이 주님과 타인을 위하여 사는 존재라는 것을 바로 알고 그렇게 살기로 결단하시면, 천국의 풍성한 복이 우리를 통해서 세상으로 강력하게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16). 성도 여러분, 이처럼 우리를 통한 전도의 열매는 새 언약에 근거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반드시 우리에게 천국의 풍성한 복으로 전도의 열매를 맺으실 것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에 주 안에서 ‘복의 사람’인 여러분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 429장과 성찬 후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