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암각화박물관(彦陽九日有懷次柳宗元韻(圃隱集))
울산암각화박물관에 따르면 언양의 한문학은 고려 말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1337~1392)가 언양에 유배됨으로써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정몽주는 언양에 유배되었을 당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나라 걱정과 임금에 대한 충성을 담은 '언양에서 중양절에 감회가 있어 유종원 시의 운을 따라 짓다(彦陽九日有懁 次柳宗元韻)'라는 칠언율시를 남겼다.
이 시는 유배 시절에 지은 것이지만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 후기 영조 때부터이다.
특히, 정몽주가 유배 시절 자주 찾았던 반구대(울주군 언양읍 대곡리)는 절벽 주위의 산세가 마치 거북이가 엎드린 모양과 같다 하여 ‘반구(盤龜)'라고 불렸는데, 정몽주가 자주 찾았다 하여 ‘포은대(圃隱臺)’로 불리기도 하였다.
또, 조선 후기의 문신인 권해(權瑎, 1639~1704)는 반구대와 작괘천을 읊은 시를 남겼는데, 이 작품은 경승지인 반구대와 작괘천의 아름다움을 대외에 알리게 된 최초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으로 인해 반구대의 경승은 널리 회자되었고, 이른바 반구대 한시문학이 형성됐다.
수오 서석린(徐錫麟, 1710~1765)은 반구대, 반구서원, 작괘천, 석남사, 언양향교, 집청정, 언양읍성 문루 등 여러 경승을 읊어 수오문집을 남겼다.
이와 함께 언양현학기, 간월사기 등은 오늘날까지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이밖에도 언양과 반구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읊은 시가 많이 남아 있다.
彦陽九日有懷次柳宗元韻(圃隱集)
客心今日轉凄然 (객심금일전처연) 나그네 마음 오늘따라 너무 처량하여
臨水登山瘴海邊 (임수등산장해변) 물 가까운 산에 올라 해변을 바라보네
腹裏有書還誤國 (복리유서환오국) 지식 있어도 나랏일 오히려 그르쳤고
囊中無藥可延年 (낭중무약가연년) 주머니엔 약도 없는데 목숨만 늘이고 있네
龍愁歲暮藏深壑 (용수세모장심학) 용은 세모를 걱정하며 깊은 골짜기에 숨었고
鶴喜秋晴上碧天 (학희추청상벽천) 학은 맑은 가을 기뻐하며 푸른 하늘로 올라가네
手折黃花聊一醉 (수절황화료일취) 손으로 국화 꺾어 다시 한번 취하니
美人如玉隔雲烟 (미인여옥격운연) 우리 임금 옥 같은 모습 구름 너머 떠오르네
정몽주(1337~1392)
고려 말 문신이자 학자인 포은(圃隱)정몽주가 울산 언양 유배 때 당나라 유종원(773~819)의시에 차운하여 읊은 ‘彦陽九日有懷次柳宗元韻(언양구일유회차유종원운·포은집 권2)’이다. 그가 유배된 것은 1375년으로 39세 때이다.
[출처] 유배문화,절망 속에 핀 유배의 꽃, 유배문학의 본 고장|작성자 참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