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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선착장~백호산 1봉] 구간 등산로에서 바라본
일출 직전의 백야 선착장과
바다 건너 보이는 돌산도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이성수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바라본
일출 광경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바라본
일출 광경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일출 광경을 배경으로
이성수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바라본
일출 광경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백호산 최고봉인 2봉(286m)과
그 뒤로 보이는 백호산 3봉(283m)을 배경으로
이성수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바라본
돌산도 상공의 일출 광경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바라본
돌산도(좌)와 금오도(우)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바라본
백호산 최고봉인 2봉(286m)과
그 뒤로 보이는 백호산 3봉(283m)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바라본
하화도(좌)와 상화도(우)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상화도, 낭도, 고흥의 팔영산, 둔병도,
조발도, 여수시 화양면의 남서단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고흥의 팔영산, 둔병도, 조발도, 여수시 화양면
백호산 최고봉인 2봉(286m) 정상에서
이성수
백호산 최고봉인 2봉(286m) 정상에서 바라본
일출 광경
백호산 최고봉인 2봉(286m) 정상에서
줌으로 확대촬영한
일출 광경
백호산 최고봉인 2봉(286m) 정상에서 바라본
백야 선착장
백호산 최고봉인 2봉(286m) 정상에서 바라본
돌산도 상공의 일출 광경
백호산 최고봉인 2봉(286m) 정상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돌산도, 백야 등대, 금오도
[백호산 2봉~백호산 3봉] 구간 산행로 도중의
사유지 표지
백호산 3봉(283m) 정상에서
이성수
백호산 3봉(283m) 정상 표지
되돌아온
백호산 최고봉인 2봉(286m)에서 바라본
백호산 1봉(281m)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줌으로 확대촬영한
고흥의 팔영산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바라본
백호산 최고봉인 2봉(286m)과
그 뒤로 보이는 백호산 3봉(283m)
[백호산 1봉~백야 선착장] 구간 하산로 도중의
편백나무 숲
[백호산 1봉~백야 선착장] 구간 하산로 도중의
백호산 안내도
[백호산 1봉~백야 선착장] 구간 하산로 도중의
샛터 경로당
[백호산 1봉~백야 선착장] 구간 하산로 도중에서 올려다본
백호산
백야 선착장의 매표소 건물에 있는
[백야도~금오도] 운항 여객선 항로도
백야도(白也島)
화정면의 중심, 모든 것이 통하는 연륙된 섬
백야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에 위치한 섬으로 동경 127°39′, 북위 34°36′,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18.5km 떨어져 있으며 면적 4.04km2,
해안선 길이 11.3km이다.
인구는 192가구 385명(2010년)이다.
백야도에서 제일 높은 산은 백야 마을 뒤편의 백야산(286m)이며,
백야도와 화양반도를 잇는 백야 대교는 2005년에 건설되었다.
지명 유래
백야산(백호산, 286m) 정상이 모두 백석으로 둘러 있고 멀리서 보면 투구처럼
둥실둥실한데, 산 정상에 석문이 있는 석보가 있어 ‘백야도’라는 지명을 얻었다.
마을 뒷산에 범(虎) 모양의 돌들이 모두 흰(白)색을 띠고 있어 범이 새끼를 품고 있는 것 같다 하여 ‘백호도’로도
불린다.
서남해안에는
뭍에 있는 사람이 보일 정도로 지척인 섬들이 많이 있다. 그중의 하나인 여수의 백야도(白也島) 역시 그 대표적인 섬이다.
남도 여수 화양면 끝자락의 아름다운 섬 백야도. 화정면의 중심지인 백야도는 면소재지가 위치해
있어 제도·개도·월호도·낭도·사도·추도·상화도·하화도 등 인근 섬을 연결하는 연락선 역할을 하는 섬이다.
백야도는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18.5km 떨어져 있다. 호랑이
같이 사나운 사람이 산다 하여 ‘백호도’라 불렀다고도 하고, 섬의 주봉인 백호산 정상의 바위들이 흰색으로
섬이 하얗게 보여 ‘백호도’라 불렀다고도 하나 1897년 ‘백야도’로 개칭되었다.
백야도에 최초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400년 전으로, 임진왜란 당시 난을 피하기 위하여 창원 황씨가 들어왔다고 하나 그 유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없다.
백야도는 기후가 온난하여 동백나무가 무성하고, 남국적 경관을 이룬다.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고구마·쌀이고
수산물은 멸치·붕장어 등이 잡힌다. 특산물로는 향기 좋은 유자와 최근에 개발한 녹차와 전복이다.
이러한 백야도에 면사무소를 두고 있는 화정면은 유인도 15개, 무인도 56개 등 71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960년대 1만 2천여 명에 달했던 인구가 지금은 4천여 명에 불과하다. 백야도의 인구 또한 192가구
385명(2010년 현재)에 불과하다.
바다에서 보는 백야리와 백야 대교
백야도는 뭍까지
배로 3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며, 여수시 화양면
세포리와 화정면 백야도를 잇는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이 다리는 장차 여수와 고흥을 연결할 열한 개의
다리 가운데 첫 번째로 완공된 다리로 지난 2000년 6월에
착공되어 5년 만인 2005년 4월에 완공되었다. 길이 325m,
너비 12m 규모로 건립되었고 강재 2,400t, 케이블 30개(26t), 철근 콘크리트
9,500m3 376.35억 원이 투입되었다. 주변의 크고 작은 섬과
푸른 바다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 미관도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백야 대교는 최대 경간장 183m에
이르는 주전자 모양의 닐센아치교로 멋을 낸데다, 백야도 백호산에서 내려다볼 때 나타나는 섬들과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백야도는 다리가 놓인 이후 주민들의 생활을 많이 바꿔 놓았다. 예전에는 도선이 끊기면 일상생활이
멈추기 예사였지만 지금은 시내버스가 들어오고 택시도 바로 들어온다. 거기에다 외지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 특히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와서 낚시도 즐기고 음식도 해 먹는다. 또한 개도와 상·하화도, 사도, 낭도, 둔병도 등으로 가는 데 시간과 배삯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전에는 여객선이 여수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백야도에서 출발하였기에 시간과 요금이 절반으로 인하되는 효과를 발휘하여
모세의 기적이 나타나는 사도·추도가 더욱 각광받게 되었다. 하루에 세 번씩 백야 선착장에서 이들 섬으로
차를 싣는 배가 고동 소리를 울리면서 오고 간다.
백야 대교를 타고 넘어 백야도로 향한다. 백야 대교 밑 왼쪽으로 포구가 보인다. 이곳이 ‘와달 마을’이다. 백야 마을보다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그래서 배도 그다지 많지 않다. 포구 내항의 크기는 고만고만하다. 물론 작은 항구라 정착한 배들도 작다. 조업용은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이 어장 관리용뿐이다. 포구 한쪽 끝자락에 조그마한 철선이 정박해 있다. 포구 방파제 끝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오른쪽으로 마을이 산자락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쪽 포구 입구에 편의점이 있다. 그리고 서쪽 포구 입구에도 백야 선박 출입항 대행 신고소가
붙은 가게가 있다. 본 포구(백야 포구)에는 파출소가 있고 여기에는 대행소가 있는 셈이다. 그 옆으로 전복
직판장이 있고 공사를 위한 도구가 늘어져 있다. 그 아래로 해안 도로가 바다를 끼고 계속 이어진다. 가게 옆으로 오르막길이 있는데 이 길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자 백야 대교로 향하는 길이다.
가게 옆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버스 회차장이 나온다. 시내버스(28번 노선)가 여기까지 와서는 회차한다. 오른쪽으로 마을로 들어서는 골목길이 있다. 그 입구에 기와지붕의
정자가 있는데 마을 쉼터로 ‘삼락정(三樂亭)’이다. 이 앞의 도로를 따라 오르막길을 가면 길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오른쪽은
교회 가는 길이다. 이곳에 화정 중앙 교회가 있다. 이 갈림길에
화백리사무소가 있는데 이 주위에서는 깔끔한 새로운 건물이다.
화백리사무소를 지나면 길은 오른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길이다. 승용차 한 대는 거뜬히
지나다닐 수 있는 도로다. 그러나 다분히 구불구불한 급커브길. 이
길 아래쪽에 마을이 있고 왼쪽은 경사진 밭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신기 마을이 나타난다. 예전에는 이 길로 해서 다녔지만 지금은 해안 도로가 생겨 이제 이 길은 보행 통로로만 이용한다. 이 길을 조금 더 가면 갈림길이 나타는데 길이 좁기 때문에 일방통행으로 승용차의 경우 아래쪽(오른쪽)은 들어가는 길이고 위쪽은 나오는 길이다.
이 길은 일종의 산길로 상당히 길게 이어진다. 원래는 밭길이었는데 시멘트로 포장해 도로가
되었다. 이 주변의 집들은 제법 고지대에 속해서인지 폐가가 많다. 밭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묘를 많이 조성해 두었다. 이 길의 왼쪽 봉우리가 백호산(286m)이다.
길을 따라 제법 들어가면 그동안 잘 안 보이던 집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갈림길에서
직진해서 밭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몇 분 지나지 않은 곳에 납골당이 보인다. 동쪽에 산이 위치한
관계로 길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마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내리막길을 이용해야 한다.
마을로 내려가면 포구가 나타난다. 이곳이 ‘신기 마을’이다. 해안과 윗길 중간 지대에 위치한 마을이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고만고만한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신기 마을에도 경로당이 있다. 현대식 집들도 제법 보인다.
백야 포구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규모의 사각형 신기 포구에는 10여 척의 배들이 정박해
있다. 어장 관리선부터 조업용 소형 어선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재정비된
지 오래지 않아서인지 포구는 깔끔하다. 방파제 옆으로 해서 백야 대교까지 이어지는 해안에는 도로가 만들어져
있다.
77번 국도를 걸으며 아래 백야 포구를 바라보면 아담하게 보인다. 포구 끝자락에 톡 튀어나온
부분이 개구석이다. 백야 마을 앞 동남쪽 해안에 있는 포구로 개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끝자락이 동고지끝(동머리끝)이다.
오른쪽에 백호산 등산 안내도는 이정표와 함께 잘 정비되어 있다. 백호산은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산세를 멀리서 바라보면 흰 봉우리의 모습이 호랑이가 새끼를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해돋이와 해넘이 광경이 멋지다. 백호산 정상에는 백야곶 봉수대가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고흥 팔영산 봉화대에서 신호를 받아 돌산 봉화대로 연결해 주던 곳이다. 정상의 ‘백야산성터’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성을 쌓아 감시하던 곳으로 현재 성곽 원형은
보존되지 않고 성곽 흔적만 남아 있다.
백호산 정상에서 바라본 다도해 모습은 절경이 훌륭하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가운데 건너
양식장 전경이 평화로워 보인다. 여자만을 에워싼 화양면 튀어나온 돌출부를 ‘당머리’ 또는 ‘당두’라
부르는 마을이 보인다. 당머리는 원래 닭의 머리 형상을 일컫는 말이 변한 게 아닐는지. 늘어진 소나무 가지 건너엔 하화도와 상화도가 보이고 멀리 나로도 우주 발사대도 아스라이 보인다.
백호산에서 내려와 다시 섬을 둘러본다. 백야 대교 덕분에 해안길은 잘 닦여 있다. 국도를 따라 걸어가면 백야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 주변에 전망대를
만들어 두었다. 이곳은 수준점에 의하면 해발이 30m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백야 포구로 이어지고, 직진하면
지금은 아직 연결되지 않았지만 제도와 개도로 이어지는 곳이다. 그리고 오른쪽 즉 서북쪽 해안으로 해안가에
몽돌밭이 있다. 일명 ‘솔고지’라고 하는데 솔개의 목처럼 쭉 뻗어 있는 형상이라고 하며 부근에 몽돌로
형성된 포구가 남쪽으로 향하여 있어 항시 파도가 많아 돌이 몽글몽글하다. 수심이 깊어 조심스럽지만 연인들이
조용하게 즐기기에는 좋다.
논농사는 몽돌 해변과 화백리 주변 그리고 백야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작은 다랑이 논들이 전부다. 큰
산과 작은 산 일대 개간할 수 있는 곳이면 모두 개간해 밭작물을 심고 있다. 그런 탓에 섬치고는 경지
면적이 많은 편이다.
국도를 따라 조금 더 가면 아래쪽 해변가에 포구가 하나 있다. 이곳이 개맛터이다. 조그마한 포구인데 개인 사유지라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내려가는
길이 아주 급경사다. 그리고 몇 마리의 개가 요란스럽게 짖는다. 이곳으로
들어가는 입구 맞은편에 동두 마을 가는 입구가 있다. 동두 마을은 폐가가 많은 곳인데 대동 마을에서
약 2.5km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옛날 백야 마을에서
당제를 모실 때 제주와 사내들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제를 올려야 마을에 액운이 오지 않는다 하여 임산부들을 모두 이곳으로 피신케 했던 곳이며,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으로 ‘동두(東頭, 동머리)’라 부르고 있다.
마을 입구에 담수화 시설이 있고 그 아래 목조로 된 집 한 채가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좁은 시멘트 길이다. 좌우로 몇 채의 집이 있지만 대부분이 빈집이라 삭막함을 느끼게 한다. 내리막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포구에 전복 양식장이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전복집이 있다. 방송에 나왔다는 그 ‘두진 전복집’이다.
포구는 아주 낡은 시설이다. 역시 정박한 배가 별로 없다.
물결도 매우 잔잔하다. 포구 방파제 끝자락에 가서 마을을 한눈에 본다. 조금은, 아니 아주 침체된 마을이다. 가게 역시 아침이라 조용하다.
방파제를 나와 다시 국도변으로 가다 보면 중간 지점 오른쪽 언덕에 묘 한 기가 새롭게 단장되어 있다.
납골당이다. 국도변에 닿으면 국도는 멈춘다. 아직
제도로 이어지는 다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왼쪽으로 길이 계속 이어진다. 이 길은 등대 가는 길이다.
등대 가는 길 입구에 가게인 허름한 등대 휴게소가 있다. 그 맞은편 쪽으로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곳을 내려가면 늘 낚시꾼들로 붐비는 낚시터 명당이 있다.
이곳 암초 해안은 최고의 낚시 포인트로 각광받고 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백야 등대
등대는 계속
걸어 들어가야 한다. 백야도 남쪽 끝단에 위치한 백야도 등대는 지난
1928년 12월 10일 처음으로 불을 밝힌
이래 80년 이상을 한결같이 여수-나로도-거문도를 오고가는 선박의 안전 길잡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백야 등대 부근에는 바다와 어우러지는 해양 문화 공간으로 주차장, 퍼걸러, 벤치, 조경 등 편의 시설과 휴게 시설 및 바다 조망 공간이 조성되었다. 등대가 있는 높이는 수준점에 의하면 해발 39m이며 등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역시 낚시터 명당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백야 대교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백야리 백야 마을이다. 그곳 바닷가에 백야 포구가 있다. 면소재지라는 프리미엄이 붙은 백야 포구에는 그러나 큰 배들이 별로 없다. 고기잡이배들도
주변에서 통발을 할 정도의 작은 배들이 대부분이다.
마을 앞 갯벌은 마을 공동 어장이다. 마을에 주민들이 많이 살고 갯가에서 바지락, 톳 등이 많이 날 때는 바닥을 10개(10개 반)로 나누어 채취했었다고 한다. 멸치 낭장 서너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산중에 밭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해변 산중’이라는 말도 생겼다.
백야 마을의 중심지에 화정면사무소가 있다. 면사무소는
1988년에 세워졌다. 바로 옆에 위치한 백야 교회는
1947년 처음 설립된 역사가 깊은 교회로 그동안 신자들이 늘고 건물이 협소해 지난 1979년에
현재의 위치에 신축 이전하였다.
백야 교회에서 나오면 왼쪽으로 길을 꺾어 골목길을 들어가면 분교가 나타난다. 바로 안일초등학교
백야분교이다. 백야분교는 원래 일제 시대인 1938년 옥정심상소학교로
개교되었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학교. 면소재지답게 제법
넓은 붉은 황토의 운동장에 깔끔한 느낌의 분교이지만, 학생 수는 너무 적다. 교사 두 명에 학생 다섯 명(남자 네 명, 여자 한 명)이 전부다. 그리고
이곳 뒤쪽에도 학교 건물이 있는데 바로 화양중학교 화정분교다. 그러나
1969년에 설립되었다가 30년 만인 지난 1999년에
폐교되었다.
우체국 가는 길에 파출소가 있다. 지난 1964년
신축하였으나 협소해 1994년에 다시 벽돌 슬라브 35평
신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화정우체국은 1962년에
별정우체국으로 개국했다. 면 소재지에 위치한 덕분에 관공서가 문을 열 때쯤 아침이면 인근 섬에서 배를
타고 백야도를 찾는 집배원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여수 우체국에서 백야도 화정 우체국으로 오는 우편물을
받아 각 섬으로 나른다. 그러나 마을 이장들이 대부분으로 비정규직 우체부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보통 집배원이 아닌 섬사람들의 발로 통한다. 우편물과
택배 이외에도 할머니들이 부식을 주문하기도 하고, 공과금 등 금융 일도 봐 준다. 바깥소식도 전하며, 농사철에는 비료, 농약, 면사무소 서류 전달도 한다.
우체국 앞에 ‘김해 김씨 모자열효비’가 있고 거기서 조금만 내려오면 백야도 고샅길의 손두부집이다. 가게
앞마당에는 콩이 가득 담긴 커다란 통이 놓여 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 예스런 분위기의 가게는
왠지 모를 정겨움이 묻어난다. 미닫이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아주머니 김정엽(68세) 씨가 구부정한 허리로 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곳은 여객선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지나가는 배들이 정박할 때 이 집을 꼭 찾아 옛날 향수를 느끼며 식당이 없는 이곳에서 허기진 배를
손두부로 채운다. 옛날, 먼 옛날의 우리 조상들이 해 먹었던
그 방법 그대로 두부를 만들기 때문이다. 백야도를 찾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맛봐야 할 곳이다.
손두부를 먹고 유명하지만 시끄럽지 않은 섬 백야도를 떠난다. 연륙교로 제법 볼거리가 많아
긴 여운이 남는다.
관광 명소
백호산
백호산의 공식
명칭은 옥정산이다. 주민들은 산의 형태가 호랑이 모양이고, 돌의
색이 흰 이끼 같다 하여 백호산이라 부른다. 정상 아래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1km의 산성터(안에는 밤나무가 심어져 있다)와 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수대가 있다.
백호산은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남해의 다도해를 한눈에 관망할 수 있다. 특히 해돋이·해넘이가 장관이다. 길을 따라가면 산마을 끝에 작은
샘이 있다. 산에 오르기 전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거나 물통을 채울 필요가 있다. 지역민들은 이 샘물이 여수에서 제일이라고 자랑한다.
저자 : 이재언 | 섬 탐험 전문가
섬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우리나라의 섬 탐험 전문가이다. 대학에서 복지학을 전공했고,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0년-1996년까지 바나바선교회 섬 선교사로 파송되어 선교선 등대호를 타고 선교활동을 하던중 섬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국의 446개 섬을 3번이나 순회하였다. 저자는 많은 섬을 찾아다니며 섬의 기본 현황과 역사, 문화, 민속, 주업, 삶의 애환 등 수많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사진을 촬영하여 기록을 남겼다. 2009년부터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에 재직중이며 전남일보 섬전문 시민 기자이다.
백야 선착장의 매표소 건물에 있는
사도 관광 안내도
백야 선착장의 매표소 건물에 있는
하화도 관광 안내도
백야 선착장의 매표소 건물에 있는
낭도 안내도
백야 선착장의 매표소 건물에 있는
개도 관광 안내도
백야 선착장의 매표소 건물에 있는
개도 관광 안내문
백야 선착장의 매표소 건물에 있는
대형 카페리 3호 운항로 안내도
백야 선착장 옆의
백야 휴게소 식당에서
아침식사로 먹은
서대구이 정식
백야 선착장 옆의
여수시 수산자원 보호 구역도
백야 선착장 옆의
여수시 화정면 안내도
여수시 백야도 백호산(286m) 산행기
산행코스 : [ 백야 선착장 - 백호산 1봉 - 백호산 2봉 - 백호산 3봉 - 백호산 2봉 - 백호산 1봉 - 백야 선착장 ]
일시 : 2017년 05월 27일(토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1시간40분 소요)
04:50~05:25 전남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에 있는 백야 선착장에서 산행출발하여 백야도 백호산 1봉(281m) 정상으로 이동
05:25~05:30 백호산 1봉(281m) 정상에서 일출 광경을 감상 [5월27일 일출시각 : 5시19분]
05:30~05:35 백호산 최고봉인 2봉(286m) 정상으로 이동
05:35~05:40 사진촬영
05:40~05:45 백호산 3봉(283m) 정상으로 이동
05:45~06:30 왔던 길을 다시 밟아서 전남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에 있는 백야 선착장으로 회귀하여 산행 완료
백야도 백호산 산행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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