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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검약 정신과 사치
▶ 300엔의 검약과 150엔의 사치
이 이야기를 몇 마디 말로 다시 줄여 보라고 하면 누구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세 식구가 10여 년 걸려서 비로소 메밀 국수 세 그릇을 함께 시켜 먹게 된 이야기’. 그래서 일본의 평론가들도 이 이야기를 ‘빈보 모노가타리(가난 이야기)’ 유형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감동 역시 ‘아와레(애처로운)’에 두고 있다.
이 동화에 반론을 가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이 이야기(의 주제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를 가난에 두고 있다는(가난으로 여긴다는 – 옮긴이) 점에서는 일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보인다 – 옮긴이).
한 식구가 150엔의 소바 한 그릇밖에 먹을 수 없었다면 대체 그들은 평소에는 무엇을 먹고 살았겠느냐라는 주장이 바로 그렇다.
그리고 제법 합리주의적 사고를 자랑하는 평자(評者. [현실이나 세태나 현상이나 작품을] 비평하는 사람 – 옮긴이)들 가운데는, 그 돈으로 라면을 사서 끓여 먹으면 더 배부르게 먹을 수도 있고 남에게도 창피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텐데 무엇하러 그 궁상(窮狀. 어렵고 궁한 상태 – 옮긴이)을 [드러내는 짓을 – 옮긴이] 사서 하느냐는 의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머리를 기울여 보면, 이 이야기가 노리고 있는(노리는 – 옮긴이) 초점은 결코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 감동도 단순한 동정이나 애처로운 마음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밤 10시까지 굶주리다가 150엔이 생겨서 메밀국수집으로 요기하려고 찾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단순한 배고픔의 문제를 다룬 것이라면, 반론자들의 의문대로 그 돈으로 왜 라면을 사서 집에서 끓여 먹지 않았는지, 무엇 때문에 남의 눈치를 봐 가며 세 식구가 일 인분만 주문을 하는 창피한 짓을 해야 되었는지 답변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살펴본 대로, 이들 세 모자가 소바집에 나타나는 것은 매년 섣달 그믐날 밤 10시경으로 되어 있다. 북해정을 찾아오는 다른 손님과 똑같이 도시코시 소바를 먹으며 한 해를 청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모르면 몰라도 섣달 그믐 막판에야 겨우 빚을 갚고 나오는 중이었을 것이다(실제로 ‘오늘로 빚을 다 갚고’라고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즉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 푼이라도 절약하여 빨리 남에게 진 빚을 갚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 한 그릇 메밀 국수 』 의 이야기는 단순히 가난의 비참성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일본인들이 에도 시대 때부터 수백 년(실제로는 300여 년. 에도 시대는 서기 17세기 초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 옮긴이) 동안 생활 철학으로 삼아 온 ‘겐야쿠(儉約[검약. 돈/물건/자원 따위를 아껴 씀 – 옮긴이])’의 정신을 현대적 신화로 옮긴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세상을 살아가면서 – 옮긴이) 가장 기본적인 생활 신조의 하나로 삼고 있는(삼는 – 옮긴이) 것이 있다면 바로 ‘겐야쿠’란 말이다. 동시에 가장 꺼려하는 금기어가 ‘제이타쿠(낭비)’요 ‘오고리(사치)’라는 말이다.
한 푼이라도 아껴 쓰고 물건을 절약하는 사람은 ‘겐야쿠가(節約家[절약가. 아껴 쓰는 사람 – 옮긴이])’라 하여 존경을 받았고, 있다고 해서 돈을 함부로 쓰며 자기 과시를 하려는 사람은 ‘제이타쿠야(낭비하는 사람 – 옮긴이)’라 하여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풍조는 무로마치 시대나 전국시대나 모모야마 시대의 일본에는 없었고, 그 세 시대에는 오히려 사치를 뽐내고 화려함을 경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자 ‘미덕’이었다. – 옮긴이)
그러므로 가장 값싼 음식인 메밀 국수를 놓고서도 세 식구가 한 그릇을 시켜 먹는 이야기는 검약의 극한을 보여 준다.
메밀 국수는 제일 값싼 음식이다. 식구 수대로 두 그릇을 더 시켜 봤자 300엔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나라 돈(한국의 통화인 ‘원’ - 옮긴이)으로 쳐도 2, 3천 원에 지나지 않는다(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서른두 해 전인 서기 1992년에 쓰였으므로, 지은이는 그 때의 환율을 바탕으로 값을 환산했음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기 바란다 – 옮긴이).
다달이 5만 엔씩 보상금을 갚아 나가는 그녀이다. 아무리 빚에 쪼들리고 생활이 각박하다 해도 마음만 먹으면 그래 300엔을 쓸 수 없었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그 돈을 아끼기 위해서 한 그릇만 시킨 것이다. 그리고 빚을 갚고 나서도 한 그릇을 더해 두 그릇만 시켰을 뿐이다.
이 같은 검약은 누가 보아도 이미 산술적 문제를 떠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적 가치로 따지기 이전의 문제이다. 결국 『 한 그릇 메밀국수 』 는 일본의 검약 정신을 극한적으로 신화화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제이타쿠비
그러나 정말 이 이야기는 검약 정신에 대한 이야기인가. 10여 년 걸려 겨우 한 사람 앞에 한 그릇의 메밀 국수를 시켜 먹게 된 구두쇠 이야기인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결코 – 옮긴이) 그렇지 않다. (그것은 – 옮긴이) 10여 년 만에 다시 찾아온 이들의 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청년은 그 동안 지내 온 이야기를 하면서, 취직이 되어 이제는 살 만하게 되었다는 말 끝에 이런 말을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가운데 최고의 제이타쿠(사치)를 계획하기로 했습니다. …… 그것은 섣달 그믐날에 어머니와 셋이서 삿포로의 북해정을 찾아가 삼 인분의 메밀국수를 시켜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의 입에서 흘러 나온 말은 최고의 ‘제이타쿠’란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섣달 그믐날 셋이서 한 그릇의 메밀 국수를 시켜 먹은 것은 최소한의 제이타쿠, 두 그릇을 시켜 먹은 것은 중간쯤 되는 제이타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사람이 세 그릇을 시켜 먹은 것은 최고의 제이타쿠가 되는 셈이다.
원래 외식을 한다는 것은 제이타쿠에 속하는 행위이다. 집에서 먹으면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일부러 밖에 나와 소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가족이 함께 나와 도락(道樂. 색다른 것을 좋아하는 일 – 옮긴이)으로 외식을 하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거듭 말하지만 이 일가족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남들처럼 섣달 그믐날의 도시코시 소바를 먹으러 온 것이다. 설날을 앞두고 도시코시 소바를 먹는 풍습은 한 해 동안의 노고를 달래며 새해를 맞이하는 일종의 휴식(쉼 – 옮긴이)이요, 일 년(한 해 – 옮긴이) 내내 고생한 것을 풀며 고삐를 푸는 잔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실용적인 물질주의의 입장(‘관점’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 옮긴이)에서 볼 때 잔치는 제이타쿠에 속한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너희들에게 호강을 시켜 주겠다. 제이타쿠를 시켜 주겠다. 일 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고 고생했으니,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날 우리도 남들처럼 북해정에 가서 메밀 국수를 먹어 보자.’ 이것이 두 아이를 데리고 북해정을 찾아온 가난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제이타쿠의 이야기’인가. 그것 역시 아니다. 제이타쿠를 하면서도 300엔을 아끼는 검약의 이야기인 것이다. 검약이며 동시에 제이타쿠의 이야기, 제이타쿠이며 동시에 검약의 이야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50엔의 제이타쿠와 300엔의 검약을 나타낸 이야기인 것이다.
결국 『 한 그릇 메밀 국수 』 는 겐야쿠와 제이타쿠에 대한 극한적 미학을 하나로 묶어 버린 이야기라는 것이다. 북해정의 마지막 손님인 그 여인은 일본의 제이타쿠의 문화인 오마쓰리 문화의 원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경세제민(經世濟民[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 “경제”라는 말은 이 말을 줄인 것이다 – 옮긴이])’을 ‘검약제민(儉約濟民[아껴 씀으로써 백성을 구제함 – 옮긴이])’으로 바꾼 ‘바이간(梅岩[매암 – 옮긴이])’ 사상의 텍스트, 그리고 ‘니노미야 손토쿠’의 부활(되살아남 – 옮긴이)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대립어였던 검약과 사치라는 말이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맞붙게 된다. 그것을 일본말로는 ‘제이타쿠비(사치해 보는 날, 호강해 보는 날)’라고 부른다.
일 년(한 해 – 옮긴이) 내내 절약을 해 왔기 때문에(아껴 썼기 때문에 – 옮긴이), 오늘 하루만은 제이타쿠를 해 보자는 것 ―― 말은 사치이지만 실은 절약 문화, 인고(忍苦. 괴로움[苦]을 참음[忍] - 옮긴이)의 문화에서 돋아난 역설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미소카(섣달 그믐)는 그들에게 있어서(그들에게는 – 옮긴이) 그러한 제이타쿠를 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 상인(商人)의 철학
이 ‘150엔의 사치’가 만들어 낸 절약의 미학과 눈물,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바로 일본적 자본주의의 특징이며, 그 신화(神話. 옛 배달말로는 ‘본향[本鄕]풀이’ - 옮긴이)이다.
단순히 천장에 조기를 매달고 (그것을 먹는 대신 – 옮긴이) 보는 것으로 반찬을 삼는 자린고비의 구두쇠 이야기라면, 눈물보다는 웃음이 앞섰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절약이라면 소비를 부정하는 ‘반(反)자본주의’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한 마디로 그런 손님만 있다가는 북해정은 일찍이 문을 닫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 옮긴이) 이 인색과 ( 『 한 그릇 메밀 국수 』 가 강조하는 – 옮긴이) 검약은 어떻게 다른가.
구두쇠 이야기나 절약의 생활 신조라면 우리(배달민족 – 옮긴이)라고 지어 낼 이야기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가훈(家訓. 집안[家]의 가르침[訓] → 집안 어른들이 자손들에게 주는 가르침/가정교훈 : 옮긴이)을 보면, “빨래는 흘러가는 물에 해서는 안 된다.”는 것까지 있다고 한다. (화학약품이나 세제나 비누를 쓰지 않는 전근대사회에서 – 옮긴이) 빨래하고 남은 물은 곡식의 거름이 되므로, (만약 빨래를 한 물이 시내나 가람[‘강’]처럼 흘러가는 물이 아니라, 대야에 있는 물처럼 큰 ‘그릇’에 담긴 물이라면 – 옮긴이) (그 물을 – 옮긴이) 두엄(구덩이를 파고 풀/낙엽/짐승의 똥오줌 따위를 넣어 썩힌 거름. 한자로는 ‘퇴비[堆肥]’ - 옮긴이)이나 텃밭(집터에 딸리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 – 옮긴이)에 버리면 좋기 때문이다. (이런 가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 시민을 비롯한 배달민족은 – 옮긴이) 메밀 국수가 아니라 국물 한 방울도 거저 내버리려고 하지 않은 민족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동화 『 한 그릇 메밀 국수 』 - 옮긴이)의 그 검약은, 그리고 그 배경을 이루고 있는 바이간의 검약 사상은 (자린고비 같은 – 옮긴이) 구두쇠의 그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일본 자본주의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바이간의 검약론을 살펴보면, 이 이야기와 너무도 유사하다는(비슷하다는 – 옮긴이)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자본주의 정신의 둥지’라고 할 수 있는 바이간은 이렇게 말한다.
“검약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나를 위해서 인색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 (원래는 내가 – 옮긴이) 세 개 쓸 것을 두 개만으로 족하게 하는 것(그래야 나머지 한 개는 다른 사람이 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옮긴이)을 검약이라고 한다.”
세 그릇 시켜야 할 메밀 국수를 한 그릇만 시키고, 그것으로 충분히 족했던 이 이야기는 바이간의 정의 그대로 검약의 완벽한 모형이다.
만약 세 식구가 한 그릇의 메밀 국수를 먹고 앉아 있는 것이 단순한 가난 때문이었다면, 그것은 비평가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잘못 풀이한 것처럼 – 옮긴이) ‘빈보 모노가타리(가난 이야기)’나 ‘아와레 모노가타리(애처로운 이야기)’에 흔히 등장하는(나오는 – 옮긴이) 그런 장면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를 위해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한낱 구두쇠의 추한 광경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은 남의 빚을 갚기 위해서, (자신의 – 옮긴이) 남편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가 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세 그릇의 메밀 국수를 한 그릇의 메밀 국수로 줄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한 푼이라도 헛되게 돈을 쓸 수 없다는 부채자(負債者. 빚[債]을 진[負] 사람[者] → 빚진 이 : 옮긴이)의 양심 때문이다.
바이간은 검약에 대한 자기 체험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장이 약한 탓도 있었지만, 그는 검약을 위해서 하루 이식(二食. [밥을] 두[二] 번 먹음[食] - 옮긴이)주의를 택해 왔다. 자기가 검약한 한 끼의 양식은 세상에 돌아 결국은 남이 먹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 옮긴이) 45세가 되는 해에, “끼니를 거르는 것은 목숨을 깎는 것과 같다.”는 단명설(短命說. 목숨[命]이 짧아진다[短]는 학설[說] - 옮긴이)을 듣고는 곧 삼식(三食. [밥을] 세[三] 번 먹음[食] - 옮긴이)주의로 돌아간다.
바이간의 검약은 (다른 사람들을 비롯한 – 옮긴이) 모든 것을 살리기 위한 것이지, (자신의 건강을 – 옮긴이) 죽이고 (욕망을 – 옮긴이)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바이간이 말하는 검약은 종교적인 금욕주의도 아니며, 맹목적인 사리(私利. 사사로운[私] 이익[利] - 옮긴이)를 위한 인색도 아니라는 데 그 특성이 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상도(商道. ‘상도덕[商道德]’을 줄인 말. 장사를 할 때 지켜야 하는 도덕이나, 상인들 사이에서 지켜야 하는 도리를 일컫는다 : 옮긴이)와도 통하는 합리주의적 검약이며, 일본적 자본주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윤리관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일본의 자본주의가 서기 19세기 말 ~ 1950년대까지 노동력 착취나 노동자 탄압이나 인종주의나 산업 재해나 환경 오염이나 극단적인 빈부격차나 침략 전쟁에 이바지하는 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과연 바이간의 검약 정신은 일본에서 제대로 실천되었는가? 실제 일본 자본주의는 – 못해도 서기 1950년대까지는 – 서기 19세기 ~ 서기 20세기 초 서양의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전통 사회 파괴와 착취와 제국주의에 바탕을 두고 자라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서기 1990년 이후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불황이 시작되자, 일본의 기업들이 ‘블랙 기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원들을 끝 간 데까지 쥐어짜고 내다 버리는 경영 형태를 들여온 사실은, 냉전 이후의 일본 자본주의 사회는 바이간의 검약이 아니라 영/미가 고른 이념인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사회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게 한다 – 옮긴이)
세 모자가 어느 날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 북해정을 찾아와 그와 같은 일을 벌였다면, 비록 그것이 빚을 갚기 위한 절약이었다 하더라도 바이간의 검약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필요 없는 군살을 빼는 검약이어야지, 생살을 배어 내는 비합리적 절약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섣달 그믐날의 도시코시 소바이기 때문에 비로소 세 그릇을 한 그릇으로 줄이는 것이 ‘검약의 표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끼니를 때우는 급식’이 아니라 ‘(즐거운 – 옮긴이) 기분을 위한 외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분 내기의 제이타쿠를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것이 바로 검약의 기본이고, 상업 국가 일본이 지향하고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제이타쿠와 검약의 두 모순을 교묘하게 조화시키고 결합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바이간과 『 한 그릇 메밀 국수 』 의 텍스트(Text. 주제 – 옮긴이)적 특성이다.
▶ CMOS와 액정 기술은 왜 일본에서 꽃피었는가
일본이 오늘날(지금으로부터 서른두 해 전인 서기 1992년. 이때는 도이칠란트와 일본의 전자제품이 ‘가장 품질이 좋은 제품’으로 인정받았다 – 옮긴이) 전자 분야에서 세계(世界. 순수한 배달말로는 ‘누리’ - 옮긴이) 시장을 독점하게 된 그 중요한 원인(까닭 – 옮긴이)도 알고 보면 이러한 검약, 한 그릇을 셋이 나눠 먹는 상상을 초월한 초 근검 절약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전자업계가 전후(2차 대전 이후 – 옮긴이)에 처음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소비 전력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분야였다. 그래서 오늘날 반도체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CMOS에 전력투구를 하게 된 이유(까닭 – 옮긴이)도 거기에 있다.
CMOS형의 반도체는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는 카드형 전자 계산기와 손목에 차는 시계에 많이 이용되는 것으로, 그 크기/무게, 그리고 소비 전력을 절약하는 축소지향적 대중 상품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 무렵 – 옮긴이) 미국에서는 전력 소비에 신경을 쓰지 않는 컴퓨터용이 중심이어서, 속된 말로 ‘자잘하고 쩨쩨한’ CMOS에 손을 대는 메이커는 거의 없었다.
남들이 쳐다보지 않은 자잘한 시계나 휴대용 전자 계산기 분야에서 근면하게 갈고 닦은 CMOS는 컴퓨터의 메모리 경쟁에서 승리의 발판이 된다.
액정(液晶. 액체 같은 유동성을 지니는 유기 화합물. ‘액상 결정’이라고도 한다. 디지털 시계나 컴퓨터에 글자를 나타낼 때 쓴다 – 옮긴이) 분야도 마찬가지다. 액정은 액체가 되기도 하고, 결정되면 고체가 되기도 하는 이상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지닌 – 옮긴이) 물질이다.
처음 이것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명된 (서기 – 옮긴이) 1888년 당시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응용면에서는 1963년 (액정에 – 옮긴이) 전압을 주면 분자의 정렬이 바뀌어 동시에 빛을 투과시키는 것이 달라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을 이용하여 미국의 RCA사의 ‘윌리엄즈’ 씨가 편광판과 (액정을 – 옮긴이) 합쳐 (액정이 – 옮긴이) ‘빛의 스위치’로서 사용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액정을 사용한 표시 장치를 (만들려고 – 옮긴이) 시도했지만, 이용도가 없어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다.
이 기술 역시(또한 – 옮긴이) 일본인들이 앞서 말한 시계나 휴대용 전자 계산기와 작은 전자 제품에 응용하게 됨으로써 꽃피우게 된 것이다(1973년 [그 때는 일본 기업이었던 – 옮긴이] ‘샤프’가 최초로 액정을 실용화하여 휴대용 전자 계산기를 만들어 냈다).
텔레비전 같은 비교적 커다란 전자 제품의 표시 장치는 모두 브라운관으로 되어 있지만(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서른두 해 전에 쓰인 글이고, 그때는 텔레비전 수상기의 화면이 오늘날과는 달리 유리로 씌워진 “브라운관”이었다 – 옮긴이),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거나 손목에 차고 다니는 전자 시계 같은 데에는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
말하자면 축소지향적 전자 개발 방식에서만 브라운관을 대치할 수 있는 액정이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액정이야말로 일본인의 축소지향적 성격과 여러모로 궁합이 잘 맞았던 환상의 물질이었던 것이다.
CMOS와 마찬가지로 액정 역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정도의 잔재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으나, 그 기술을 갈고 닦아 이제 액정의 TFT(薄膜[박막. ‘얇은[薄] 꺼풀[膜]’ → ‘얇은 막’ : 옮긴이] 트랜지스터)는 고화질의 컬러 텔레비전은 물론(勿論. 말할[論] 것도 없고[勿], - 옮긴이) 노트북 컴퓨터나 작은 부피와 가벼운 무게를 생명으로 삼고 있는 항공 기기 등의 모든 전자 제품의 디스플레이(display. 표시 – 옮긴이) 장치로 이용되고 있다.
(서기 – 옮긴이) 20세기를 ‘브라운관의 시대’라 한다면, (서기 – 옮긴이) 21세기는 ‘액정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서기 1992년 현재 – 옮긴이) 이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일본인들은 연 1조 엔에서 2조 엔의 세계 시장을 독차지, 자기네끼리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오늘날에는 LG와 SK와 삼성이 이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에 참여하며, 유럽이나 미국 기업들도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 옮긴이).
이렇게 에너지와 공간을 절약하는 핵심적 기술이 일본에서 개발되고 또 산업화(‘공업화’라는 말을 써야 한다 – 옮긴이)에 성공하게 된 것은 바로 『 한 그릇 메밀 국수 』 의 일본적 풍토의 산물이라고 풀이될 수 있다(그러나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일본 기업들 대신 한국의 중소기업들이나 LG나 삼성이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기술”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새 제품을 내놓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국 기업들이 서기 1990년대부터 이 교수가 설명하는 “일본적 풍토”를 배우고 따라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일본에 비해 디지털에 쉽게 익숙해지는 기질을 지닌 한국인들이 그것을 “일본적 풍토”와 접붙여서 발전을 위해 쓰는 동안, 아날로그에 익숙하고 활력과 창의성을 잃은 일본 기업들이 뒤처지기 시작했기 때문인가? - 옮긴이).
▶ JAL의 페인트 벗기기
근검 절약의 정신은 현재(서기 1992년 – 옮긴이)에도 일본 기업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다. 가령(假令. 이를테면 – 옮긴이) 비교하기(견주기 – 옮긴이) 좋은 국제 항공 회사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JAL은 (서기 1990년 – 옮긴이) 버블 경제의 여파로 불황이 몰아치자, 전 노선의 점보 화물기의 도료(塗料. ‘칠한[塗] 재료[料]’ → 물체의 겉에 발라 그것을 썩지 않게 하거나, 아름답게 꾸미는 재료. 페인트도 도료의 일종이다 : 옮긴이)를 벗겨 냈다. 비행기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이다. 동체 부분에서 페인트를 벗겨 내면 기체의 무게는 150킬로쯤 가벼워진다. (그 비행기가 – 옮긴이) 하루 10시간을 난다고 하면 대당 연간 드럼통 200개의 기름이 절약되는 셈이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동체를 칠하는 수고와 경비도 절약된다.
그러나 동체에 칠한 페인트 무게가 줄면 얼마나 줄겠는가. 전체 기름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새발의 피 정도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절약은 실용적 가치 이전에 기름 한 방울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JAL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름 한 방울은 피 한 방울’이라고 했던 일제 말(서기 1940년대 초 ~ 중반. 그러니까 대일[對日] 항전기 말기 : 옮긴이) 전시(戰時. 전쟁[戰]이 벌어진 때[時] - 옮긴이) 구호와 똑같은 발상의 산물이다. 그것은 일종의 절약 정신의 상징적 전략이며, JAL 전체 사원들의 마음에 긴장감을 일으키는 자극제였던 것이다.
아무리 절박한 사정이라도, 150엔밖에 하지 않은 메밀 국수다. 한 그릇을 시키나, 세 그릇을 시키나, 돈으로 치면 300엔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 JAL이 비행기의 칠을 벗기는 행위는 바로 그 300엔을 아끼려는 『 한 그릇 메밀 국수 』 의 원형과 통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절약 행위는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라, 문화적 시각에서만이 이해될 수 있는 행위다. (서기 1990년대 초 현재 – 옮긴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책 – 옮긴이) 『 청빈의 정신 』 이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JAL의 이같은 절약 운동은 경제성보다도 정신적인 것,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게 협심(協心.여러 사람이 마음[心]을 합함 – 옮긴이)하는 공동체의 ‘화(和)’ 의식이다(일본어로는 ‘화’가 ‘와[わ]’이며, 이 ‘와’의 정신은 ‘일본 고유의 정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옮긴이).
150엔짜리 한 그릇 메밀 국수를 세 식구가 나눠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 옮긴이) 가난이나 검약의 뜻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질적인 레벨에서가 아니라 정신의 차원에서 보면, (일본인들이 – 옮긴이) ‘쇼토쿠 태자(聖德太子)’[서기 6세기에 살았다는, ‘일본의 기틀을 세운 사람’. 그러나 열세 해 전부터는 실존 여부를 의심받고 있다 – 옮긴이] 때부터 금과옥조(金科玉條. 금[金]이나 옥[玉]처럼 귀중히 여기어, 꼭 지켜야 하는 법칙이나 규정 – 옮긴이)로 삼고 있는 일본인의 화(和) 사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한자(화할/합칠 화[和] - 옮긴이)의 자원(字源. 글자[字]가 이루어진 근원[源] : 옮긴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 옮긴이) 이론(異論. 다른[異] 의견이나 의논 – 옮긴이)이 많지만, ‘화’라는 것은 곡식을 뜻하는 禾(화 – 옮긴이)에 입 口(구 – 옮긴이)자를 합친 글자로, ‘먹을 것을 서로 공평하게 나눠 먹는 뜻’이라고 알려져 왔다.
한 그릇의 검약 정신보다도, 셋이서 한 그릇을 놓고도 화기애애하게 서로 권하고 양보하면서 맛있게 먹는 정황이 보는 사람의 감동을 더욱 자아내게 하는 요소이다.
흔히 들어 온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나타낸 일화 한 편을 다시 생각해 보면, ( 『 한 그릇 메밀 국수 』에 나오는 – 옮긴이 ) 이 장면이 지니고 있는 뜻을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 일화에 따르면 – 옮긴이) 천국과 지옥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두 곳은 – 옮긴이) 똑같은 식탁에 똑같은 음식, 그리고 같은 길이의 긴 젓가락이 놓여 있다. 그런데도 식사 때의 광경을 보면 지옥은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는데(이루는데 – 옮긴이), 천국은 평화롭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지옥에서는 서로 다투어 음식을 독차지해서 먹으려고 하지만, 젓가락이 (너무 – 옮긴이) 길어서 (음식이 – 옮긴이) 입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 옮긴이) 남의 젓가락을 막으랴, (음식을 자신의 젓가락으로 – 옮긴이) 집어서 먹으랴 갖은 짓들을 다 하지만, 그들은 눈앞에 음식을 놓고서도 배를 채우지 못하고 처절한 싸움만 벌인다.
그러나 천국은 같은 조건인데도 화기애애하다.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자기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 옮긴이) 상대방 입에 서로 넣어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 옮긴이) 아무리 젓가락이 길어도 상대방 입에 넣어 주기 때문에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
그래서 같은 음식, 같은 젓가락인데도 지옥에서 사는 사람들은 늘 싸우고 늘 배가 고프지만, 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늘 정겹고 늘 배가 부른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에 나오는 메밀국수가 – 옮긴이) 한 그릇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나눠 먹는 – 옮긴이) 이 세 모자의 ‘화’가 생기고 굳어진다.
( → 7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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