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좁은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
▶ 구멍가게의 문화적 특성
(우리는 지난 화[ 이 글의 제 3편 ]에서 이 동화, 그러니까 『 한 그릇 메밀 국수 』 를 살펴보면서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 도시코시 소바(‘해넘이 메밀국수’라는 뜻. 여기서 ‘해’는 ‘태양’이 아니라 ‘한 해’의 ‘해’를 일컫는 말이다 – 옮긴이)를 먹으며 섣달 그믐을 보내는 그 시간적 배경 없이는 『 한 그릇 메밀 국수 』 의 드라마는 일어날 수도 없고, 또 그 같은 감동을 자아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만약 그 이야기가 펼쳐진 – 옮긴이) 공간적 무대가 북해정이라는 소바집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 역시 시간적 배경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 동화는 섣달 그믐의 시간 축과 북해정의 공간 축의 교점(交點. 둘 이상의 선이 서로 만나는 점. 그러니까 ‘교차점’ - 옮긴이) 위에서만 존재할(있을 – 옮긴이) 수 있는 이야기이다. 모든 상황 설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
(만약 – 옮긴이) 그것(북해정 – 옮긴이)이 보통 종업원이 대여섯만 되는 식당이었다고 하더라도, 문 닫는 순간에 찾아온 손님을 받아들였겠는가. 세 사람이 한 그릇을 시키는 주문에 응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식당을 꾸려나가는 – 옮긴이) 사람들은 일 년(한 해 – 옮긴이) 뒤에 그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마음을 기울일 수 있었겠는가.
(북해정이 – 옮긴이) 작은 가게이기에, 부부가 경영하는(꾸려나가는 – 옮긴이) 자기 집 안방 같은 소바집(메밀국수집 – 옮긴이)이었기에 이 모든 드라마는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 마디로 좁은 공간만이 연출해 낼 수 있는 드라마이다. 손님들이 귓속말로 내밀한 이야기를 해도 카운터에서 들을 수 있을 만큼 좁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소바집 주인과 손님 사이에 따뜻한 암묵(暗默. ‘어둡고[暗] 조용함[黙]’ → 자기 뜻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 : 옮긴이)과 온정과 신뢰가 오갈 수 있다. 근본적으로 이 이야기는 (미국의 서부영화와는 달리 – 옮긴이) ‘벌판의 드라마’가 아닌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이 좁은 공간을 ‘후레아이노 바(觸れ合いの場[촉레합이노장. “닿고[觸] 합쳐지는[合] 곳[場]” → “접촉하는 곳” → “[서로] 맞닿는 곳”이라는 뜻이다 – 옮긴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잇사곤류(一座建立[일좌건립. “한 자리(一座)에 (앉는 일을) 만들다(建立).” → “사람들의 모임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 옮긴이])’ 또는 그냥 ‘좌(座. “자리”, 여기서는 “앉을 자리”라는 뜻 - 옮긴이)’라고도 한다. 손님이 오면 4조 반의 좁은 다실로 들어가 서로 무릎을 맞대고 차(여기서는 녹차나 [가루녹차인] 말차 – 옮긴이)를 마시는 다도(茶道)야말로 좁은 공간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후레아이( 맞닿기 / 서로 닿기 – 옮긴이 )요 잇사곤류인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어떤 단체나 모임의 명칭에 ‘좌’라는 글자를 잘 붙인다. 별이 한자리에 뭉쳐 있는 것을 우리는 ‘성좌(星座. 순수한 배달말로는 “별자리” - 옮긴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사람이 별자리처럼 함께 모여 있는 ‘인좌(人座. “사람 자리”? - 옮긴이)’를 ‘좌’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부르는 것이다 – 옮긴이).
한자를 차근차근 뜯어보면 알 수 있듯이, 그 글자는 천장과 벽의 모양을 나타내는 广(‘집 엄’ - 옮긴이)자 밑에 사람 둘이 땅바닥(土[땅 토 – 옮긴이])에 앉아 마주보고 있는(마주보는 – 옮긴이) 형상을 나타낸 것이다. 작고 동그란 메밀 국수 한 그릇을 가운데다 놓고 동그랗게 모여 앉아 있는 세 모자의 모습. 그것이 바로 일본인이 가장 큰 생활 원리로 삼고 있는 ‘좌’의 세계이다.
우리는 북해정의 4조 반 다실처럼 아늑한 공간 속에 앉아 메밀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무엇을 연상하는가. 그것은 추운 겨울날 따뜻한 고타쓰(일본의 난방기구 – 옮긴이)를 한가운데 놓고 고양이들처럼 등을 웅숭그리고(춥거나 두려워서 궁상맞게 등을 웅그리고[움츠러들이고] – 옮긴이) 동그랗게 모여 있는 전통적인 일본의 지노마(안방) 광경이다. 그리고 그것을 조금 확대한(넓힌 – 옮긴이) 것이, 넓은 벌판에 가도 서로 수레바퀴처럼 둥글게 모여 앉아 오순도순 속삭이고 있는(속삭이는 – 옮긴이) 일본 특유의 집회 형식인 구루마자(車座. [수레(車)의 바퀴처럼] 빙 둘러앉음 – 옮긴이)이다.
쇼토쿠 태자(聖德太子) 때부터(그러니까, 서기 604년부터 – 옮긴이) 국시(國是. ‘나라[國]에서 옳다고 하는[是] 것’ → 나라의 이념이나 국가 정책의 기본 방침 : 옮긴이)로 삼아 왔던 화(和. 일본어로는 ‘와[わ]’ - 옮긴이)의 이상,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인 후레아이(서로 모여 일체[一體. 한 몸/한 덩어리 – 옮긴이]가 되는 것)의 신조를 원고지 50매 분량밖에 안 되는 이야기로 옮겨 놓은 것이 이 동화요, 일본 전 열도를 십여 평으로 축소해 놓은 것이 북해정 소바집이다. 거기에서는 손님이나 주인이나 모두가 한 식구처럼 그려진다.
처음엔 세 모자, 다음엔 세 모자와 북해정 부부, 마지막에는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온 동네 사람들도 그 후레아이는 커져 간다. 점점 확대되어 이 작은 북해정이라는 공간은 북해도(北海道. 올바른 이름은 ‘인간의 땅’이라는 뜻인 ‘아이누 모시르[모시리]’ - 옮긴이) → (온 - 옮긴이) 일본이라는 공간, 그리고 (온 - 옮긴이) 세계의(라는 - 옮긴이) 공간이 된다. 그러나 그것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중심축은 여전히 북해전 2번 테이블 위의 메밀 국수 한 그릇이다.
그러므로 일본이란 사회는 아무리 도시화하여 그 공간이 크고 복잡해져도, 화(和)의 축을 이루는 메밀 국수 한 그릇의 이 작은 공간을 살려 나가려고 한다. 이 공간을 갖지 못하면, 일본에서는 살아가기 힘들다(그것을 일본인들은 ‘무라하치부’나 ‘잇피키오카미’라고 부른다).
▶ 고니시키는 왜 요코즈나(橫綱[횡강. 천하장사 – 옮긴이])가 되지 못했나
일본의 전통 씨름인 스모를 보면 안다. (만약 스모 선수가 스모 경기장에서 – 옮긴이) 서양 레슬링처럼 (행동 – 옮긴이) 했다가는 곧 씨름판 밖으로 밀려나고 말 것이다.
그 살아 있는 표본이 하와이 출신 씨름꾼인 ‘고니시키(小錦[소금 – 옮긴이])’이다.
미국 국적을 가진 그가 일본에서 씨름을 하기 위해서는 몸에 훈도시만 걸쳐 될 일이 아니라, 몸무게 300킬로가 나가는 스모계 최대의 거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은 비단’이라는 뜻의 ‘고니시키’로 개명을 해야 한다.
그러고서도 몇 번이나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씨름꾼의 최고 자리인 요코즈나(한국 씨름으로 치면 ‘천하장사’ - 옮긴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던 것은, 일본의 순혈주의보다는 (고니시키가 – 옮긴이) 화(和)의 사상이 무엇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일본의 씨름계(스모계 – 옮긴이)가 고니시키에게 요코즈나 자격을 주지 않았던 것은, 그의 핏줄보다도 (그의 – 옮긴이) 매너(manner. 의역하자면, ‘자세’ - 옮긴이)에 대해 더 많은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고니시키는 씨름(일본 씨름인 ‘스모’ - 옮긴이)의 정신(화의 사상)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이다.
일본의 씨름은 경기 자체보다 경기를 치르는 과정의 여러 가지 의식(儀式)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무엇보다도 경기장에 입장하는 (것을 일컫는 – 옮긴이) ‘바쇼이리’는 단순한 입장이라기보다 관객들과 씨름꾼이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되는 ‘화’의 의식이기도 한 것이다.
씨름꾼들이 씨름판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객석 통로로 들어오도록 되어 있고, 또 관객들은 입장하는 씨름꾼들의 벌거벗은 그 우람한 몸을 직접 손으로 만져 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씨름의 바쇼이리의 매너(manner. 여기서는 ‘방법’/‘방식’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 옮긴이)는 바로 관객석 사이에 나 있는 가부키의 ‘하나미치’라는 특수한 무대와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연기자의 몸과 관객의 몸이 서로 와 닿는 것 같은 관계를 일본인들은 ‘후레아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 어디에 가나 후레아이라는 말을 듣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딱하게도, 하와이 시민인 이 역사(力士. 뛰어나게 힘이 센 사람 – 옮긴이)[그러니까, 고니시키 씨 – 옮긴이]는 일본의 그러한 후레아이 문화, 화의 문화에 대해서 둔감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바쇼이리에서 고니시키의 거구를 직접 만져 보려는 팬들을 밀쳐 내기도 하고, 화를 내면서 욕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양의 프로 레슬링에서는 관객들에게 어필(appeal. 매력 – 옮긴이)하기(매력을 드러내기 – 옮긴이) 위해 (일부러 – 옮긴이) 반칙도 하고, 야수와 같은 잔인성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것은 – 옮긴이) 바르트의 말대로 ‘철저하게 자기를 드러내 보이는 스포츠’이다. 그러나 스모는 (그와는 – 옮긴이) 정반대이다. 이겨도 져도 자기 감정을 노출해서는(드러내서는 – 옮긴이) 안 된다. 그러므로 (스모에서는 – 옮긴이) 상대가 넘어져 승부가 끝나면, (이긴 선수가 – 옮긴이) 일어서려는 (상대 – 옮긴이) 선수를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것이 불문율(不文律. 글[文]로 쓰이지 않은[不] 법[律]. → 문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았으나, 관례상 인정되는 법/어떤 무리에서 암묵적으로 지키는 약속 – 옮긴이)로 되어 있다. 그러나 고니시키는 상대가 도효(씨름판) 밖으로 나간 뒤인데도 계속 공격적 자세를 보였다.
씨름의 기량만이 아니라 일본 씨름이 갖고 있는 이러한 정신적인 면, 매너(예의 – 옮긴이)를 존중하는 것이 일본 문화의 특성이다.
이를테면, 스포츠는 도(道 : 가르침/이치/인의[仁義] – 옮긴이)이다. 비록 구멍가게 같은 작은 메밀국수집이라고 해도, 손님을 소중히 여기는 화의 사상 후레아이의 문화를 밑바닥에 깐 상도(商道)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상인, 요코즈나
상점 문을 닫으려고 할 때 찾아온 헙수룩한(옷차림이 허름한 – 옮긴이) 손님, 그것도 세 사람이 한 그릇의 메밀 국수를 시켜 먹으려는 골치 아픈 손님을 싫은 기색 없이 따뜻하게 대해 준 이 북해정 주인 부부는 바로 ‘상인으로서의 요코즈나’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 대국이라는 일본에는 북해정같이 한 가족이 꾸려 나가는 작은 가게가 많다. 다방(찻집/커피숍 – 옮긴이)/음식점/잡화점(雜貨店. 여러 가지[雜] 일용품[貨]을 파는 상점[店] - 옮긴이) 등 어디에서고 북해정 같은 가게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로 물리적으로 작고 좁은 공간이 아니라, 설령 그것이 현대적인 대형 백화점이라고 해도 그것을 경영하는 방법이나 정신은 북해정 같은 가게를 그 원형으로 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미국의 컨비니언스(편의점 – 옮긴이)가 일본에 와서 경영 방식을 바꾸게 되고, 그 결과로 대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까닭 – 옮긴이)도 거기에 있다.
미국의 편의점 ‘세븐 일레븐’은 알다시피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밤 11시에 문을 닫는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에 들어오면, 그 이름과는 달리 24시간 영업 체제로 바뀌고 만다.
(구멍가게나 편의점 같은 – 옮긴이) 작은 상점은 규모가 큰 백화점과 달라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말이나 글/몸짓으로 하는] 의사 소통 – 옮긴이)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가정의 연장’이며, ‘동네의 한 구석’이라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일본의 세븐 일레븐 같은 편의점은 영업 시간만 24시간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한 지역의 정보 매체 구실을 하게 된다.
미국에서와는 달리 서류 복사, 사진 현상, 탁배(택배? - 옮긴이), 그리고 ‘로손’ 같은 편의점에서는 전기/가스/전화 요금 등 공공 요금 수납을 대행하는 서비스까지 맡고 있다. 가게가 동리(洞里. 마을 – 옮긴이)의 미디어(media. 매체 – 옮긴이)로 바뀐다. 스토어(store. 가게 – 옮긴이)에서 스테이션(station. 정류장/정거장/역 – 옮긴이)으로.
그래서 새로 생겨나는 편의점(컨비니언스 스토어)을 그들(일본인들 – 옮긴이)은 ‘마을 냉장고’라 부르기도 한다. 24시간 문이 열린 집 근처의 편의점은 바로 자기 집 냉장고와 다를 게 없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네 부엌일 수도 있다. 일일이(하나씩 하나씩 – 옮긴이) 장을 보아 자기 부엌에 넣어 두지 않아도, 필요할 때 필요한 물건만큼 언제나 갖다 쓸 수 있는 것이 슈퍼마켓(오늘날로 치면 ‘대형 할인 매장’, 그러니까 ‘대형 마트’ - 옮긴이)과 다른 작은 가게의 힘이다.
섣달 그믐마다 사람들이 모여 도시코시 소바를 먹는 북해정이야말로, 일본의 작은 가게들이 지니고 있는 정보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한 그릇 메밀 국수 』 의 마지막 대목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어 보자.
“그로부터 또 수년(몇 해 – 옮긴이)의 세월이 흐른 12월 31일 밤이었다. 같은 동의 상점회 멤버로 한 가족(식구 – 옮긴이)처럼 지내고 있는(지내는 – 옮긴이) 이웃들이 가게 문을 닫고 북해정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북해정의 도시코시 소바를 먹은 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친구(親舊. 순수한 배달말로는 “동무” – 옮긴이)와 가족들이 한데 어울려 가까이 있는 신사(神社)로 첫 참배(하쓰모)를 하러 가는 것이 최근 5, 6년 전부터 있어 왔던 관례였다. 그 날 밤에도 9시 반 지나 생선 가게 부부가 사시미(생선회 – 옮긴이) 모듬접시를 양손(두 손 – 옮긴이)에 들고 들어오자, 신호라도 한 듯 30명 넘는 친구들이 술과 안주 따위를 손에 들고 차례차례 모여들어, 가게 안의 분위기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갔다.”
북해정은 소바집(메밀국수 집 – 옮긴이)이라고 하기보다 그 타운(town. 거리 – 옮긴이)의 미디어로 변신되어(변신해 – 옮긴이) 있었던 것이다. ‘최근 5, 6년 전부터’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이 같은 가족적 분위기는 ‘추억처럼 사라져 가는 옛날의 유물’이 아니라 ‘새로 생겨난 풍습’으로 그려진다.
세 모자가 비록 시간이 (많이 – 옮긴이) 지난 뒤지만, 북해정 소바집을 찾아온 이유(까닭 – 옮긴이)도, (그들이 – 옮긴이) 북해정 소바집을 ‘삶의 한 미디어’로서 의식했기 때문이다.
( → 5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