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뒷담화
잠깐 제주도 여행 다녀왔습니다. 원래는 짧게 짬을내어 2박3일 일정(주위에 티안내고 몰래 다녀 오려고함)이었으나 폭설로 발이 묶여 4박5일이 되어 버렸네요.
<<12월 20일 수요일>>
오전 10시반 제주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도착하니 바람이 세지만 날씨는 따뜻합니다. 육지는 수도가 얼어터질 정도로 춥지만 제주는 영상 3도. 역시 따뜻합니다.
짧은 일정이라 다른곳은 들르지 않고 공항에서 바로 숙소행 급행 버스를 탔습니다.
단골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보니 문은 열려있지만 사람이 아무도 없네요. 사장님께 전화해보니 게스트랑 낚시중이니 조금만 기다리랍니다.
저녁을 잘 먹고 술한잔 기울이며 이런 저런 예기를 나누어 봅니다. 비수기라 손님은 저포함 딱 2명이네요. 사장님이 잡아온 벵에돔 회와 매운탕을 안주 삼아 저녁을 맛있고 즐겁게 먹었습니다. 벵에돔은 꽤 귀한 고기인데 16마리나 잡아오셨네요.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제주에서는 보기 힘든 눈이 펑펑내리고 아주 기분이 푸근하고 낭만적입니다.
아침에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눈 때문에 제대로 운행할지 걱정이었지만 제주 토박이 사장님께서 “버스는 왠만하면 문제없이 시간맞춰 잘 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네요. 그말을 믿고 한잔 더합니다.
29살 청년은 며칠 전에 왔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기 때문에 먼저 작별인사를 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29살 청년은 도미토리에서 자고 저는 1인 큐빅룸을 잡았습니다. 코골이가 심해서 다른 여행자에게 폐끼치지 않으려 좀 비싸지만 1인실에서 잡니다.
<<12월 21일 목요일>>
피곤함과 술기운 덕에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었고, 새벽 3시에 눈을 떴습니다. 문밖은 여전히 눈이 펑펑내립니다. 좀더 잠을 청해봅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깜깜한 방에서 찡그린 눈으로 휴대폰을 보니 7시. 일단 일어나서 게스트하우스 카페로 내려가서 무얼할까 생각하다가 혼자서 라면을 하나 끓여 먹고 귤도 하나 까먹고 어젯밤 사장님이 구워주신 꿀고구마 반쪽도 먹고 따뜻한 얼그레이차도 한잔 마셔줍니다. 속이 따뜻하고 움직일 기운이 솟아납니다.
눈 쌓인 동네길과 항구를 어슬렁 거려봅니다. 1년 만에 찾아온 곳이라 새로 생긴 가게들이 보입니다. 등교하는 학생들도 보이고 체인을 치고 다니는 차량들도 심심지 않게 돌아다닙니다. 빙판길위 착 착 착 착 체인소리가 크리스마스 캐롤송처럼 들립니다. 조금 멀리 돌아서 해안길도 좀 걸었는데 아침이라 한산하고 해안가 검은 바위위에 덮힌 휜눈이 이채롭습니다. 열대식물위에 덮힌 눈도 신기한 광경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공항가는 급행버스시간을 확인하려고 버스 정류장에 들렸는데 어제 29살 청년이 버스정류장에 서있습니다.
“어! 왜 아직 안갔어요?”
“새벽에 항공사에서 문자가 왔어요. 눈 때문에 결항되었다고”
“어 그럼 어떡해요?”
“전주공항에 눈이 쌓여서 예약한 항공편은 결항되었고 대신 오후 비행기로 군산공항으로 대체해 준데요”
“공짜로요? 아 제주공항이 문제가 아니고 도착지 공항에 문제가 생겨도 그렇게 되네요”
“아 무튼 조심해서 잘 귀가 하세요”
그렇게 훗날 또 만날 것을 악수로 기약하고 청년을 떠나 보냈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문방구에 들렸는데 아주머니 사장님이 문앞에서 눈구경 하고계십니다. 너무 좋다고 하십니다. 눈은 좋은데 내일 비행기가 뜰지 걱정이라고 했더니 예전에 자기 딸래미도 눈이 많이 와서 못갈 뻔 했는데 아세아항공사 비행기는 잘 뜬다고 작은 비행기 말고 큰 비행기를 타라고 권해주십니다. 생각해 보니 그럴 것도 같습니다.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다시 누웠습니다.
비-->햇빛쨍쨍-->광풍-->싸래기 눈-->비-->펑펑눈 날씨가 아주 변화무쌍합니다.
문 밖을 나서기가 망설여집니다.
올레길? == 춥고 눈비 때문에 곤란.
낚시? == 파도치고 물때도 안좋아.
버스투어? == 이 날씨에 갈곳 없음.
전화기만 만지작거리다가 점심이나 먹기로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사실 혼자 여행하면 마땅히 갈 식당 찾기가 힘듭니다. 해장국은 지겹고, 이번에는 안가본 식당을 가보려고 이곳저곳 탐색해보다가 흔지 않은 메뉴를 하는 식당을 골랐습니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식당문을 나서니 다시 햇빛쨍쨍 봄날입니다. “좋았어 GO“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올레 4코스인데 저는 이길이 참 좋습니다. 걷는 중간 중간에 올레꾼 4~5 팀 정도를 마주치고 간단히 인사도 나눕니다. 혼자 걷는 이도 있고 꼬맹이를 데리고 걷는 부부도 보입니다. 정말 훌륭한 부모님인 것 같습니다.
걷는 중간에 또또또 눈빨이 심해집니다. 바다풍경도 전혀 보이지 않고 온통 휜색입니다. 눈바람도 심하고 옷이 다 젖어서 태흥2리 포구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안경에 눈비가 달라붙어 앞을 보기도 힘든 지경이라 열걸음 마다 한번씩 문질러 닦습니다. 중간에 앉아서 쉴곳도 없고 지쳐갑니다. 군데군데 눈길이라 보폭도 짧습니다. 그냥 밥만 먹고 숙소로 갈걸 왜? 이 고생인지.....
그런데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발견했는데 신기합니다. 20대로 보이는 남1, 여2명의 무리인데 한손에는 막대기 모양 카메라를 들고 남자는 소매없는 반팔을 입은채 연신 뭐라 뭐라 큰 소리로 악을 쓰며 걸어갑니다. ”XX님 별풍선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당~~~“
아마도 라이브 방송중인거 같은데 눈보라속 방송이라 관심을 끌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참 열심히들 사는구나...
숙소에 다다를 때 쯤 다시 하늘이 맑아졌습니다. 신기한 식물 사진도 한방 찍어보고...
어느덧 기진맥진 숙소로 와서 대충 온수샤워하고 몸져 누웠습니다. 누워있다 보니 깜깜해 졌습니다. 이제 뭐하지?? 저녁 먹기도 귀찮고요.
일단 일어나서 아래 카페에 갑니다. (잠자는 방과 까페는 5미터 거리임) 불도 꺼져있고 아무도 없습니다. 그사이 눈이 더 수북히 쌓여서 일단 계단과 통로만 대충 눈을 쓸고 있는데 사장님이 나타났습니다.
”저 아래 해장국이나 먹으러 갑세“ ”저는 그냥 뭐 포장해서 막걸리나 먹을까 하는데요“
바로 앞 분식점에서 순대와 오뎅을 사와서 카페에서 사장님과 어제 사다놓은 막걸리 n병 Clear. 손님이 나 1인이라 저녁메뉴는 이걸로 끝.
요즘 세태가 바뀌어서 올레꾼들도 거의 없고 깔끔한 숙소들만 찾아가는 추세이라서 손님들이 많이 줄었답니다. 낚시이야기도 쬐끔하다가 술자리를 일찍 접었습니다.
숙소에서 제주공항까지는 급행버스로 1시간 20분 소요. 내일 아침 10시반 비행기라 7시반 버스를 타기로 하고 일찍 취침.
<<12월 22일 금요일>>
6시반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습니다. 세수도 안하고 짐을 챙겨서 숙소를 나섰습니다. 아직 컴컴하고 길에는 눈이 수북합니다. 온도는 영상 1도이지만 길은 얼어있습니다. 걸음 걸음 마다 파드득 파드득 새우깡 먹는 소리가 납니다. 과연 이 눈길에 버스가 다닐까 걱정이 됩니다. 밤사이 한라산을 넘는 도로가 통제 된다고 안전문자가 여러건 와있었습니다. 제가 탈 버스가 다니는 길은 어떨지 걱정됩니다.
버스 승강장에 가보니 십여명이 와있습니다. 7시반 버스를 타야 하는데 제가 타야할 버스는 언제 오는지 안내화면에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명이 수근대기 시작합니다.
어느 분은 제주공항행 6시 첫차를 타야하는데 시간이 지나도 오지않아 호텔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왔는데 그 사이에 버스가 예정시간 30분이 늦게 통과해서 버스를 놓쳤다고 합니다. 대부분 제주공항에 가야하는 사람 들인데 버스가 올지 안올지 걱정입니다.
이곳에서 제주공항을 가는 버스편은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한라산 중턱을 넘어 1시간 20분만에 도착하는 급행버스와, 제주동쪽 해안선을 주욱 돌아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일주버스가 있습니다. 제주주민이신 어르신이 민원실에 전화해서 버스 운행여부를 물어보니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고 대신 버스회사 전화번호를 알려줍니다. 버스회사에 전화를 해보니 버스앱에 나타나지 않아서 해당 버스가 어디 있는지 모른답니다. 시간은 점점 지나가고 한라산을 넘어가는 버스를 기다릴것인지 일주도로로 가는 버스를 탈것인지를 결정해야합니다. 어떤 분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 꼭 비행기를 타야한다고 택시를 타고 가는 분도 생겼습니다.
급행버스는 결국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습니다. 길건너편 정거장에 들어오는 버스를 보고 뛰어가 간신히 일주도로버스를 탔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오지 않는 급행 버스를 기다리기로 하고 남아있었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주도로 역시 빙판길이고 늦지 않게 제주공항에 도착할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버스는 하얀 빙판길을 체인도 감지않고 잘~ 달립니다. 제주 버스기사님들은 눈길운전이 드믈텐데도 잘 운행해주십니다, 차장밖을 보니 야자수나무가 눈바람에 휘날리고 있네요.
언제올지 모르는 급행버스를 추운날씨에 무작정 기다리는 것 보다는 느리지만 따뜻한 버스를 탄 것이 정말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침을 안먹어서 배가 고픕니다. 숙소에서 챙겨온 귤을 까먹습니다. 이제 안심이라 생각했습니다.
버스가 제주시에 들어섰을 무렵 항공사에서 문자가 왔습니다. 예약한 비행기가 <<탑승 수속중단>>이라고...... 잠시 후 또 한통의 문자 <<결항>>이라고, 아니 출발 한시간 전에 결항한다고 하면 어쩌라고? 이미 숙소를 떠나 공항에 다 도착할 때쯤인데....
급하게 모바일로 예약한 항공사에 들어가 보니 오늘은 모두 결항, 내일은 모두 매진, 모레는 표가 조금 남아있어서 모레(12.24) 항공권을 예약할려고 했는데 로그인-편명선택 까지는 했는데 결제단계에서 넘어가지 못합니다. 여러번 해도 안됩니다.
제주공항에 내려보니 공항은 완전 아수라장입니다. 수천명?이 공항2층에 꽉 들어찼고
항공사 안내데스크 마다 수백여명의 대기줄이 생겼고 안내화면에는 거의 모든 항공편이 결항을 알리고 있습니다.
일단 저도 예약항공사 데스크 앞에 줄을 섰습니다.
뒷사람이 제게 물어봅니다 ”여기가 J항공사 줄인가요?“ ”저두 몰라요“ ㅎㅎㅎ
첫댓글 제주 이번에 80센티 눈왔고 비행기 대란 났다고하던데 뉴스인줄로만 알았더니 이베리코 님이 직접 재난상황 겪으셨네요 ㅎ
엄청 고생하셨겠습니다
그래도 생존전문가 답게 미리 잘 준비해 가셨고 잘 대처해서 잘 돌아오셨을거라 믿습니다 ㅎ
자주 가시는 게스트하우스도 괜찮으면 몇개 알려주세요
너무 과찬이십니다. 별 내용 없이 이틀 더 머물다가 왔습니다. 게하소개는 개인의 취향이 너무 다양하고 선전 같아서 공개적인 소개는 좋지않을것 같습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성탄전야 되세요.
저희도 22일날 제주 예약해뒀었는데 비행기 결항으로 취소했거든요.
예기치 못하게 발묶이고 고생이셨겠지만 이것도 추억으로 남겠지요.
고생많으셧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