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말씀이 중국에 달라 문자가 서로 사뭋지(통하지) 아니할새
어린(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 지어(싶어)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실어 펴지 못할 놈이 하니라(많으니라).
내 이를 위하여 어여삐(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 지어 할 따름이니라.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세종어제훈민정음》의 머리글이다.
어찌나 널리 알려졌는지,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 달아”라는 글줄을 놓고서 어떤 이는 “그때 중국이라는 나라는 없었다. 그러므로 중국은 중앙 조정을 뜻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작 훈민정음을 제 눈으로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훈민정음에는 상냥하게도 “중국은 황제 계신 나라이니, 우리나라의 흔한 말로 강남이라 하느니라”라고 잡이를 달아 놓고 있다.
그러니 여기서의 “중국”은 곧 명나라를 뜻하고, 한족(漢族)의 말을 나타내는 데 쓰는 한자(漢字)로는 우리말을 나타내기 어려워서, 새 글자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다만 그렇다고 우리의 한글이 한자의 그늘에서 오롯이 벗어난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한글”처럼 한 글자씩 묶어 쓰는 것을 ‘모아쓰기’라고 하고, “alphabet”처럼 흘러가듯 쓰는 것을 ‘풀어쓰기’라고 하는데
훈민정음은 한자의 모습을 따라 네모난 마디를 이루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ㄱ, ㄷ, ㅂ …”처럼 낱소리를 다루는 글자 가운데 모아쓰기를 하는 글자는 한글밖에 없다.
위 《청어노걸대》를 보자면 몽골 문자와 한글을 빌려 만주어를 적고 있는데, 한글과 달리 몽골 문자는 풀어쓰기를 하고 있다.
그럼 모아쓰기는 한자를 좇는 나쁜 버릇이냐 하면 숫제 그렇지 않다.
무릇 좋은 것이 있으면 굳이 버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 타자기에 알맞지 않아 한글도 풀어쓰기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오늘날에도 컴퓨터의 표준문자체계인 유니코드 안에서 한글이 한자 다음으로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모아쓰기는 낱말의 생김새가 우리 눈에 쉽게 들어오기에 읽기 좋다. 사람을 기계에 맞출 게 아니라 기계를 사람에 맞추는 게 맞다.
그러나 한글이 모든 소리를 나타낼 수 있다는 믿음 탓에, 이 “마디”를 놓고 작은 옥생각이 퍼져 있는 듯하므로 훈민정음을 보며 그 옥생각을 풀어 볼까 한다.
初中終三聲◦ 合而成字。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 셋이 어울려 글자를 이룬다.
初聲或在中聲之上◦ 或在中聲之左。如君字ㄱ在ㅜ上◦ 業字ㆁ在ㅓ左之類。
첫소리는 가운뎃소리의 위쪽에 있기도 하고, 가운뎃소리의 왼쪽에 있기도 한다. 君(군) 자에서 ‘ㄱ’이 ‘ㅜ’ 위쪽에 있고, 業(ᅌᅥᆸ) 자에서 ‘ㆁ’이 ‘ㅓ’ 왼쪽에 있는 따위와 같다.
中聲則圓者橫者在初聲之下◦ ㆍㅡㅗㅛㅜㅠ是也。縱者在初聲之右 ㅣㅏㅑㅓㅕ是也。如呑字ㆍ在ㅌ下◦ 卽字ㅡ在ㅈ下◦ 侵字ㅣ在ㅊ右之類。
가운뎃소리는 둥근 것과 가로 것은 첫소리의 아래쪽에 있으니 ㆍ, ㅡ, ㅗ, ㅛ, ㅜ, ㅠ가 그러하고, 세로 것은 첫소리의 오른쪽에 있으니 ㅣ, ㅏ , ㅑ, ㅓ ,ㅕ가 그러하다. 呑(ᄐᆞᆫ) 자에서 ‘ㆍ’가 ‘ㅌ’ 아래쪽에 있고, 卽(즉) 자에서 ‘ㅡ’가 ‘ㅈ’ 아래쪽에 있고, 侵(침) 자에서 ‘ㅣ’가 ‘ㅊ’ 오른쪽에 있는 따위와 같다.
終聲在初中之下。如君字ㄴ在구下◦ 業字ㅂ在ᅌᅥ下之類。
끝소리는 첫소리와 가운뎃소리의 아래쪽에 있다. 君(군) 자에서 ‘ㄴ’이 ‘구’ 아래쪽에 있고, 業(ᅌᅥᆸ) 자에서 ‘ㅂ’이 ‘ᅌᅥ’ 아래쪽에 있는 따위와 같다.
1. 소리마디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한글은 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를 모아서 한 글자로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한 글자를 우리는 ‘소리마디’라 일컬으며 흔히 음절(音節)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소리마디”란 무엇이관데 훈민정음은 이를 한데 묶은 것일까.
얽히고설킨 이야기지만 거칠게 살을 발라 뼈대만 남기자면
“소리마디”란 목청의 울림으로 말소리를 가름한 한 도막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목청의 울림은 가운뎃소리에서 가장 크므로, 가운뎃소리가 곧 소리마디의 몸통이 된다.
우리말에 「ㆁ, ㄴ, ㅁ, ㄹ」도 목청의 울림이 제법 되지만, 가운뎃소리에 견줄 바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가운뎃소리는 홀로서도 소리마디를 이룰 수 있으므로 홀소리(母音)라고 이르며, 첫소리와 끝소리는 목·입·혀 따위가 서로 닿거나 닿을락 말락 하여 나므로 닿소리(子音)라고 이른다.
이를테면 “한글”은 말할 나위 없이 두 마디 낱말이고, “alphabet”은 세 마디 낱말이다.
다시 힘주어 말하건대, 홀소리가 곧 소리마디의 몸통이다.
中聲凡十一字。
가운뎃소리는 무릇 열한 자이다.
ㆍ舌縮而聲深◦ 天開於子也。形之圓◦ 象乎天也。
ㆍ는 혀가 오그라져 소리가 깊으니, 하늘이 자시(子時)에 열린 것이다. 그 꼴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떴다.
ㅡ舌小縮而聲不深不淺◦ 地闢於丑也。形之平◦ 象乎地也。
ㅡ는 혀가 조금 오그라져 소리가 깊지도 얕지도 않으니, 땅이 축시(丑時)에 열린 것이다. 그 꼴이 고른 것은 땅을 본떴다.
ㅣ舌不縮而聲淺◦ 人生於寅也。形之立◦ 象乎人也。
ㅣ는 혀가 오그라지지 않아 소리가 얕으니, 사람이 인시(寅時)에 생긴 것이다. 그 꼴이 곧은 것은 사람을 본떴다.
ㅗㅏㅜㅓ始於天地◦ 為初出也。
ㅗ, ㅏ, ㅜ, ㅓ는 하늘과 땅에서 비롯하니, 처음으로 나온 것이 된다.
ㅛㅑㅠㅕ起於ㅣ而兼乎人◦ 為𠕅出也。
ㅛ, ㅑ, ㅠ, ㅕ는 사람(ㅣ)에서 일어나니, 다음으로 나온 것이 된다.
ㅗㅏㅜㅓ之一其圓者◦ 取其初生之義也。
ㅗ, ㅏ, ㅜ, ㅓ에서 ㆍ이 하나인 것은 첫째로 생긴 뜻을 가리킨다.
ㅛㅑㅠㅕ之二其圓者◦ 取其𠕅生之義也。
ㅛ, ㅑ, ㅠ, ㅕ에서 ㆍ이 둘인 것은 둘째로 생긴 뜻을 가리킨다.
(……)
ㆍ之貫於八聲者◦ 猶陽之統隂而周流萬物也。
ㆍ가 여덟 소리를 꿰뚫음은 마치 양이 음을 거느려 만물에 두루 흐름과 같다.
ㅛㅑㅠㅕ之皆兼乎人者◦ 以人為萬物之靈而能參兩儀也。
ㅛ, ㅑ, ㅠ, ㅕ가 모두 사람을 아우름은 사람이 만물의 으뜸으로서 하늘과 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까닭이다.
取象於天地人而三才之道備矣。
하늘과 땅과 사람을 본뜨므로 삼재(三才)의 도리를 갖추었도다!
然三才為萬物之先◦ 而天又為三才之始◦ 猶ㆍㅡㅣ三字為八聲之首◦ 而ㆍ又為三字之冠也。
삼재는 만물에 앞서고, 삼재는 또한 하늘에서 비롯하니, 마치 ㆍ, ㅡ, ㅣ 세 글자가 여덟 글자의 머리가 되고, ㆍ가 또한 세 글자의 갓(으뜸)이 되는 것과 같다.
ㆍㅡ起ㅣ聲◦ 於國語無用。
ㆍ, ㅡ가 ㅣ소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나라말에서 쓰이지 아니한다.
兒童之言◦ 𨘢野之語◦ 或有之◦ 當合二字而用◦ 如ᄀᆝᄀᆜ之類◦ 其先縱後橫◦ 與他不同。
아이의 말, 시골의 말에는 있기도 하니 마땅히 두 글자를 더하여 ‘ᄀᆝ’, ‘ᄀᆜ’ 따위로 쓰는데, 세로를 먼저 쓰고 가로를 다음에 씀은 다른 것과 같지 아니하다.
2. 겹홀소리
훈민정음은 홀소리(母音)의 낱자를 모두 열한 자로 밝힌다.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하늘·땅·사람 「ㆍ, ㅡ, ㅣ」 세 가지를 비롯해, 「ㅗ, ㅏ, ㅜ, ㅓ」 네 가지와 「ㅛ, ㅑ, ㅠ, ㅕ」 네 가지가 곧 그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이는 조금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가 있다.
소리를 내는 동안 입과 혀가 움직이지 않아 한 가지로 나는 소리를 홑홀소리라고 하며, 입이나 혀가 움직여 여러 가지로 나는 소리를 겹홀소리라고 하는데
홑홀소리인 「ㆍ, ㅡ, ㅣ, ㅗ, ㅏ, ㅜ, ㅓ」와 달리 「ㅛ, ㅑ, ㅠ, ㅕ」는 겹홀소리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ㅛ」는 「ㅣ + ㅗ」에서 「ㅣ」를 짧게 소리 내어 생기고, 「ㅑ」는 「ㅣ + ㅏ」에서 「ㅣ」를 짧게 소리 내어 생긴다.
「ㅛ, ㅑ, ㅠ, ㅕ」의 소리를 「ㆍ, ㅡ, ㅣ, ㅗ, ㅏ, ㅜ, ㅓ」와 나란히 견주기란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이러한 소리값을 잘 모르고 열한 자를 낱자로 만든 것일까?
아무러면 설마.
훈민정음을 다시 보자.
훈민정음은 “ㅛ, ㅑ, ㅠ, ㅕ는 ㅣ에서 일어나니”라며 똑똑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ㆍ, ㅡ가 ㅣ에서 일어나는 것은 두 글자를 더하여 ‘ᄀᆝ’, ‘ᄀᆜ’ 따위로 쓴다.”라고도 적고 있다.
훈민정음의 말마따나 서울말에 없으므로 「ᅟᆝ , ᅟᆜ」를 낱자로 만들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도 아이의 말이나 시골말에서 흔히 들린다.
“병신”이라 할 것을 “비응신”, 그러니까 “ᄇᆜᆼ신”으로 말한다거나, 경상도 사투리에서 “경상도”를 “ᄀᆜᆼ상도”로, “영감”을 “ᄋᆜᆼ감”으로 말하는 따위이다.
다시 말해, 세종대왕은 「ㅛ, ㅑ, ㅠ, ㅕ」가 「ㅣ」로 시작해서 「ㅗ, ㅏ, ㅜ, ㅓ」로 끝난다는 것을 알았고
「ㅣ」로 시작해서 「ㆍ, ㅡ」 끝나는 소리는 그대로 받아적어 「ᅟᆝ , ᅟᆜ」로 쓰면 그만이라고 한 것이다.
훈민정음은 낱자를 홑홀소리와 겹홀소리로 가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천지인(天地人)의 철학을 담고자 「ㅛ, ㅑ, ㅠ, ㅕ」를 낱자로 만들었을 뿐, 「ㅛ, ㅑ, ㅠ, ㅕ」를 홑홀소리라고 한 것이 아니다.
一字中聲之與ㅣ相合者十◦ ㆎㅢㅚㅐㅟㅔㆉㅒㆌㅖ是也。
가운뎃소리 한 자에 더불어 ㅣ가 더해지는 것은 열 가지이니, ㆎ, ㅢ, ㅚ, ㅐ, ㅟ, ㅔ, ㆉ, ㅒ, ㆌ, ㅖ이다.
二字中聲之與ㅣ相合者四◦ ㅙㅞㆈㆋ是也。
가운뎃소리 두 자에 더불어 ㅣ가 더해지는 것은 네 가지이니, ㅙ, ㅞ, ㆈ, ㆋ이다.
ㅣ於深淺闔闢之聲◦ 並能相隨者◦ 以其舌展聲淺而便於開口也。
l가 깊고 얕고 또 열리고 닫힌 소리에 두루 따르는 것은 혀가 펴지고 소리가 얕아 입을 벌리기 쉬운 까닭이다.
亦可見人之參贊開物而無所不通也。
또한 사람이 만물을 엶에 함께 도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 없음을 알 수 있다.
2-1. 「ㅣ」붙이 겹홀소리
훈민정음을 보자면 우리말에는 「ㅣ」붙이 겹홀소리가 참 많았다.
홑홀소리 「ㆍ, ㅡ, ㅗ, ㅏ, ㅜ, ㅓ」 앞쪽으로 「ㅣ」가 붙거든 「ᅟᆝ, ᅟᆜ, ㅛ, ㅑ, ㅠ, ㅕ」가 되었고
홑홀소리 「ㆍ, ㅡ, ㅗ, ㅏ, ㅜ, ㅓ」 뒤쪽으로 「ㅣ」가 붙거든 「ㆎ, ㅢ, ㅚ, ㅐ, ㅟ, ㅔ」가 되었다.
오늘날 이들에 이름을 붙이건대, 짧아진 「ㅣ」보다 홑홀소리 「ㆍ, ㅡ, ㅗ, ㅏ, ㅜ, ㅓ」의 울림이 더 세므로
「ᅟᆝ, ᅟᆜ, ㅛ, ㅑ, ㅠ, ㅕ」는 목청의 울림이 여리다가 세지는 소리로서 오름겹홀소리(上向二重母音, rising diphthong)이라 하고
「ㆎ, ㅢ, ㅚ, ㅐ, ㅟ, ㅔ」는 목청의 울림이 세다가 여려지는 소리로서 내림겹홀소리(下向二重母音, falling diphthong)이라 한다.
그리고 이때의 「ㅣ」 소리를 국제음성기호에서는 /j/로 적는데, 이로써 보기 좋게 늘어 놓자면 아래와 같다.
(이는 옛날의 소리를 가늠한 것이므로 다르게 보는 눈도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ㅣ붙이 오름겹홀소리 | ↔ | ㅣ붙이 내림겹홀소리 | ||||||||
반홀소리 | 홑홀소리 | 겹홀소리 | 홑홀소리 | 반홀소리 | 겹홀소리 | |||||
ㅣ/j/ | + | ㆍ/ʌ/ | = | ᆝ/jʌ/ | ㆍ/ʌ/ | + | ㅣ/j/ | = | ㆎ/ʌj/ | |
ㅣ/j/ | + | ㅡ/ɨ/ | = | ᆜ/jɨ/ | ㅡ/ɨ/ | + | ㅣ/j/ | = | ㅢ/ɨj/ | |
ㅣ/j/ | + | ㅗ/o/ | = | ㅛ/jo/ | ㅗ/o/ | + | ㅣ/j/ | = | ㅚ/oj/ | |
ㅣ/j/ | + | ㅏ/ɐ/ | = | ㅑ/jɐ/ | ㅏ/ɐ/ | + | ㅣ/j/ | = | ㅐ/ɐj/ | |
ㅣ/j/ | + | ㅜ/u/ | = | ㅠ/ju/ | ㅜ/u/ | + | ㅣ/j/ | = | ㅟ/uj/ | |
ㅣ/j/ | + | ㅓ/ə/ | = | ㅕ/jə/ | ㅓ/ə/ | + | ㅣ/j/ | = | ㅔ/əj/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ㅣ붙이 세겹홀소리 | ||||||
반홀소리 | 홑홀소리 | 반홀소리 | 겹홀소리 | |||
ㅣ/j/ | + | ㅗ/o/ | + | ㅣ/j/ | = | ㆉ/joj/ |
ㅣ/j/ | + | ㅏ/ɐ/ | + | ㅣ/j/ | = | ㅒ/jɐj/ |
ㅣ/j/ | + | ㅜ/u/ | + | ㅣ/j/ | = | ㆌ/juj/ |
ㅣ/j/ | + | ㅓ/ə/ | + | ㅣ/j/ | = | ㅖ/jəj/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한데 표를 보다 보면 오름겹홀소리 「ᅟᆝ, ᅟᆜ, ㅛ, ㅑ, ㅠ, ㅕ」야 어려움 없이 넘어가지만
내림겹홀소리 내림겹홀소리 「ㆎ, ㅢ, ㅚ, ㅐ, ㅟ, ㅔ」가 마음에 턱 걸린다.
한쪽으로는 아무렴 그렇지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쪽으로는 못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생김새로 보면 어떻게 읽을지를 대놓고 드러낸 듯하지만, 오늘날 그 소리를 보면 겹홀소리가 아니라 홑홀소리이기 때문이다.
홑소리가 된 「ㅐ, ㅔ」는 이미 가름되지 않은 지 오래고, 「ㅚ, ㅟ」는 때때로 홑소리(/ø/, /y/)로 소리 나지만, 흔히 「ㅜ」붙이 겹홀소리(/we/, /wi/)로 나며, 게다가 「ㅚ」는 아예 「ㅙ, ㅞ」와 똑같은 소리로 여겨지는 마당이다.
그나마 「ㅢ」가 내림겹홀소리의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ㅢ」로 미루어 「ㅚ, ㅐ, ㅟ, ㅔ」의 옛 소리값을 헤아려 볼 만하다.
“최 씨”를 “Choi”로 적는 것이나, “현대”를 “Hyundai”로 적는 것이 아예 난데없는 일은 아닌 셈이다.
그리고 훈민정음이 겹홀소리를 한 마디로 묶어 적는 데에서 알 수 있듯, 겹홀소리는 하나의 홀소리로서 하나의 소리마디를 이룬다.
이러한 겹홀소리는 우리말에만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에게 귀 익은 영어로 보기를 들면 아래와 같다.
겹홀소리 | 보기 | 한글로 적으면… | |
/eɪ/ | late /leɪt/ | 레이트 | |
gate /geɪt/ | 게이트 | ||
/ɪə/ | dear /dɪə/ | 디어 | |
fear /fɪə/ | 피어 | ||
/aɪ/ | time /taɪm/ | 타임 | |
rhyme /ɹaɪm/ | 라임 | ||
/eə/ | fair /feə/ | 페어 | |
care /keə/ | 케어 | ||
/ɔɪ/ | joy /ʤɔɪ/ | 조이 | |
coin /kɔɪn/ | 코인 |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모두 소리마디가 하나짜리인 낱말임에도 한글에서는 두세 마디로 적힌다.
한글에 알맞은 겹홀소리 글자가 없는 탓으로, “dear”·“fear”를 “뎌”·“펴”라고 적거나 “time”·“rhyme”을 “탬”·“램”으로 적기도 영 찜찜한 건 마찬가지인데, /ɪ/와 /j/는 또 다른 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글이 우리말을 적으려고 생긴 것이지, 다른 나라말을 적으려고 생긴 것이 아니므로 이는 조금도 허물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이만큼 말소리를 나타내는 게 어디냐고 생각해야 옳다.
그저 한글이 모든 말소리를 오롯이 적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만 알면 되겠다.
二字合用者◦
두 글자를 모아 쓰는 것으로 이야기하자면
ㅗ與ㅏ同出於ㆍ◦ 故合而為ㅘ。
ㅗ와ㅏ가 똑같이 ㆍ에서 나므로 모아서 ㅘ가 되고
ㅛ與ㅑ又同出於ㅣ◦ 故合而為ㆇ。
ㅛ와 ㅑ가 똑같이 ㅣ에서 나므로 모아서 ㆇ가 되고
ㅜ與ㅓ同出於ㅡ◦ 故合而為ㅝ。
ㅜ와 ㅓ가 똑같이 ㅡ에서 나므로 모아서 ㅝ가 되고
ㅠ與ㅕ又同出於ㅣ◦ 故合而為ㆊ。
ㅠ와 ㅕ가 똑같이 ㅣ에서 나므로 모아서 ㆊ가 된다.
以其同出而為類◦ 故相合而不悖也。
이들은 같은 데에서 나고 하나가 되니 서로 모아서 어긋나지 아니한다.
中聲二字三字合用◦ 如諺語과〮為琴柱,홰〮為炬之類。
가운뎃소리 두 자 또는 석 자를 모아 씀은 금주(琴柱)를 이르는 ‘과’, 횃불(炬)을 이르는 ‘홰’ 따위와 같다.
(……)
其合用並書◦ 自左而右◦ 初中終三聲皆同。
이처럼 모아서 나란히 적는 것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으며, 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 모두 마찬가지이다.
2-2. 「ㅜ」붙이 겹홀소리
훈민정음은 「ㅣ」붙이 겹홀소리에 앞서 「ㅜ」붙이 겹홀소리를 또한 다룬다.
「ㅗ, ㅜ」는 모두 입이 오므라져 나는 소리로서, 짧아져서는 /w/ 소리 한가지로 나는데
홀소리어울림(母音調和)에 따라 「ㅏ」에는 「ㅗ」가, 「ㅓ」에는 「ㅜ」가 붙는다.
아래는 「ㅜ」붙이 겹홀소리를 간추린 것이다.
ㅜ붙이 오름겹홀소리 | ||||
반홀소리 | 홑홀소리 | 겹홀소리 | ||
ㅗ/w/ | + | ㅏ/ɐ/ | = | ㅘ/wɐ/ |
ㅜ/w/ | + | ㅓ/ə/ | = | ㅝ/wə/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ㅜ붙이, ㅣ붙이 세겹홀소리 | ||||||
반홀소리 | 홑홀소리 | 반홀소리 | 겹홀소리 | |||
ㅗ/w/ | + | ㅏ/ɐ/ | + | ㅣ/j/ | = | ㅙ/wɐj/ |
ㅜ/w/ | + | ㅓ/ə/ | + | ㅣ/j/ | = | ㅞ/wəj/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ㅣ」붙이 겹홀소리와는 달리 내림겹홀소리가 없으며, 「ㆍ, ㅡ」와는 어울리지 않아 몇 가지 없는 것이 눈에 띈다.
그리고 이렇게 입술이 모아지는 둥근홀소리(圓脣母音)로써 겹홀소리를 만드는 일이 우리말에만 있는 것은 아니므로, 또한 영어를 보기로 들자면 아래와 같다.
겹홀소리 | 보기 | 한글로 적으면… | |
/ʊə/ | sure /ʃʊə/ | 슈어 | |
cure /kjʊə/ | 큐어 | ||
/əʊ/ | globe /gləʊb/ | 글로브 | |
show /ʃəʊ/ | 쇼 | ||
/aʊ/ | cow /kaʊ/ | 카우 | |
how /haʊ/ | 하우 |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마찬가지로 모두 한 마디짜리 낱말이지만, 알맞은 홀소리가 한글에 없어 소리마디가 아주 제멋대로다.
그나마 “cow”와 “how”는 들리는 대로 “ᄏᅶ”나 “ᄒᅶ”, 아니면 “ᄏᅷ”나 “ᄒᅷ”로 쓴다면 어쭙잖게나마 한 마디로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외국어를 우리글로 나타낸다는 건 예나 오늘이나 어려운 일이어서, 앞서 《청어노걸대》에서 “ᅟᅸ”와 같은 글자도 보이고 아래 《한청문감》에서도 “ᅟᆙ”, “ᅟᆉ” 따위의 글자를 만들어 쓴 것이 보인다.
2-3. 반홀소리
앞서 「ㅣ(/i/)」가 짧아져서 /j/가 되고, 「ㅜ(/u/)」가 짧아져서 /w/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소리를 그저 짧게 낸다고 해서, 길이가 반토막 났다고 해서 “반(半)홀소리”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소리의 됨됨이가 홀소리 같기도 하고, 닿소리 같기도 해서 “반홀소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닿소리”라고도 부른다.
아닌 게 아니라, 영어·독일어 같은 게르만어 갈래에서는 /j/와 /w/를 닿소리로 본다.
이를테면 영어에서는 어떤 이름이 닿소리로 비롯하느냐 홀소리로 비롯하느냐에 따라,
부정관사 a(/ə/) 또는 an(/ən/)이, 그리고 정관사 the(/ðə/) 또는 the(/ði/)가 그 이름을 이끄는데,
/j/와 /w/ 앞으로는 늘 a(/ə/)와 the(/ðə/)가 온다.
a(/ə/)와 the(/ðə/)가 이끄는 낱말 | ↔ | an(/ən/)과 the(/ði/)가 이끄는 낱말 | 한글로 쓰면… |
year /jɪə/ | ↔ | ear /ɪə/ | 이어 ↔ 이어 |
yeast /jiːst/ | ↔ | east /iːst/ | 이스트 ↔ 이스트 |
yoke /jəʊk/ | ↔ | oak /əʊk/ | 요크 ↔ 오크 |
wheel /wiːl/ | ↔ | eel /iːl/ | 윌 ↔ 일 |
winner /wɪnə/ | ↔ | inner /ɪnə/ | 위너 ↔ 이너 |
wonder /wʌndə/ | ↔ | under /ʌndə/ | 원더 ↔ 언더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영어에서 yeast(/jiːst/), wheel(/wiːl/)서껀의 홀소리는 겹홀소리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한편 우리말에서 반홀소리를 무엇으로 여기는지는 자못 뚜렷하다.
무엇보다 훈민정음부터 반홀소리를 홀소리 글자 안에 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부터 우리말에서는 어떤 이름이 닿소리로 마무르냐 홀소리로 마무르냐에 따라,
보조사 ‘ᄋᆞᆫ/은’ 또는 ‘ᄂᆞᆫ/는’이, 그리고 대격조사 ‘ᄋᆞᆯ/을’ 또는 ‘ᄅᆞᆯ/를’이 그 이름에 따랐는데,
「ㆎ, ㅢ, ㅚ, ㅐ, ㅟ, ㅔ, ㅙ, ㅒ, ㅞ, ㅖ」 뒤로는 늘 ‘ᄂᆞᆫ/는’과 ‘ᄅᆞᆯ/를’이 왔다.
우리말에서는 겹홀소리인 것이 영어에서는 죄 홑홀소리가 되는 셈이다.
二字中聲之與ㅣ相合者四◦ ㅙㅞㆈㆋ是也。
가운뎃소리 두 자에 더불어 ㅣ가 더해지는 것은 네 가지이니, ㅙ, ㅞ, ㆈ, ㆋ이다.
(……)
ㅛ與ㅑ又同出於ㅣ◦ 故合而為ㆇ。
ㅛ와 ㅑ가 똑같이 ㅣ에서 나므로 모아서 ㆇ가 되고
(……)
ㅠ與ㅕ又同出於ㅣ◦ 故合而為ㆊ。
ㅠ와 ㅕ가 똑같이 ㅣ에서 나므로 모아서 ㆊ가 된다.
2-4. 네겹홀소리, 다섯겹홀소리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짐짓 못 본 척 넘긴 글자들이 있다.
「ㆇ, ㆊ, ㆈ, ㆋ」가 곧 그것인데, 논리로 따지자면 네겹홀소리 또는 다섯겹홀소리가 되어야 하지만 그런 소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ㆇ」를 「ㅣ + ㅗ + ㅣ + ㅏ」로 소리 낸다손 쳐도 이는 결코 한 마디짜리 소리가 되지 못한다.
그냥 “요야(/jojɐ/)”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이를 두고, 훈민정음이 바탕한 하늘·땅·사람의 철학에서 만들어진 관념적인 글자로 보는 눈이 있고
아예 다른 소리값을 가리켰을 것이라고 보는 눈이 있다.
이제와 무엇이 맞는지 밝히기도 어려운 노릇인데, 다만 요즘 다른 소리값을 가졌을 것이라는 목소리에서 새로운 쓰임새를 엿보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ㅣ(/i/)」가 짧아져서 /j/가 되고, 「ㅜ(/u/)」가 짧아져서 /w/가 되듯이,
오늘날에는 「ㅟ(/y/)」가 짧아져서 /ɥ/로 나타나는 때가 잦으니, 「ㅟ + ㅓ = ㆊ(/ɥʌ/)」를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낱말 | 씨끝 | 끝바꿈꼴 | 줄이면…? | |||
사귀다 | + | -어 | = | 사귀어 | ⇒ | 사ᄀᆑ |
바뀌다 | + | -어 | = | 바뀌어 | ⇒ | 바ᄁᆑ |
나뉘다 | + | -어 | = | 나뉘어 | ⇒ | 나ᄂᆑ |
뒤다 | + | -어 | = | 뒤어 | ⇒ | ᄃᆑ |
뛰다 | + | -어 | = | 뛰어 | ⇒ | ᄄᆑ |
쉬다 | + | -어 | = | 쉬어 | ⇒ | ᄉᆑ |
야위다 | + | -어 | = | 야위어 | ⇒ | 야ᄋᆑ |
쥐다 | + | -어 | = | 쥐어 | ⇒ | ᄌᆑ |
튀다 | + | -어 | = | 튀어 | ⇒ | ᄐᆑ |
휘다 | + | -어 | = | 휘어 | ⇒ | ᄒᆑ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이미 뭇사람들은 “사귀어, 바뀌어, 나뉘어”서껀 세 마디로 적는 것이 영 마뜩지 않은지, “사겨, 바껴, 나녀”처럼 두 마디로 적는 일이 흔하다.
입이 오므라지는 소리값을 나타내지 못함에도 마디를 맞춰 쓰는 것이 실제 말소리와 더욱 비슷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더불어 사투리까지 쓰임새를 넓히면 충청도 말로 “되아”를 줄여서 “댜”로 적고 있는 것을 “ᄃᆄ”로도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어지러운 생김새는 둘째 치더라도, 새 글자를 들이자면 바꿔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지라 치러야 할 값이 너무 크다.
영어도 이런 까닭에서 맞춤법을 안 바꾸고 몇 백 년을 이어오다 보니, 오늘날 소리와 글씨가 서로 잘 안 맞는 거라더라.
初聲凡十七字。
첫소리는 무릇 열일곱 자이다.
牙音ㄱ◦ 象舌根閉喉之形。舌音ㄴ◦ 象舌附上腭之形。脣音ㅁ◦ 象口形。齒音ㅅ◦ 象齒形。喉音ㅇ◦ 象喉形。
어금닛소리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을 본뜨고, 혓소리 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습을 본뜨고, 입술소리 ㅁ은 입매를 본뜨고, 잇소리 ㅅ은 이를 본뜨고, 목구멍소리 ㅇ은 목구멍을 본떴다.
ㅋ比ㄱ◦ 聲出稍厲◦ 故加畫。ㄴ而ㄷ◦ ㄷ而ㅌ◦ ㅁ而ㅂ◦ ㅂ而ㅍ◦ ㅅ而ㅈ◦ ㅈ而ㅊ◦ ㅇ而ㆆ◦ ㆆ而ㅎ◦ 其因聲加畫之義皆同◦ 而唯ㆁ為異。
ㅋ은 ㄱ보다 소리가 세게 나므로 긋(畫)을 더했다. ㄴ에서 ㄷ, ㄷ에서 ㅌ, ㅁ에서 ㅂ, ㅂ에서 ㅍ, ㅅ에서 ㅈ, ㅈ에서 ㅊ, ㅇ에서 ㆆ, ㆆ에서 ㅎ 또한 그 소리로 말미암아 긋을 더한 뜻이 모두 같다. 오직 ㆁ만을 달리했다.
半舌音ㄹ◦ 半齒音ㅿ◦ 亦象舌齒之形而異其體◦ 無加畫之義焉。
반혓소리 ㄹ과 반잇소리 ㅿ도 혀와 이를 본뜨며 꼴을 달리했으나, 긋(畫)을 더한 뜻은 없다.
又以聲音清濁而言之。
또 소리의 청탁으로 말하자면
ㄱㄷㅂㅈㅅㆆ◦ 為全清。
ㄱ, ㄷ, ㅂ, ㅈ, ㅅ, ㆆ은 전청이 되고
ㅋㅌㅍㅊㅎ◦ 為次清。
ㅋ, ㅌ, ㅍ, ㅊ, ㅎ은 차청이 되고
ㄲㄸㅃㅉㅆㆅ◦ 為全濁。
ㄲ, ㄸ, ㅃ, ㅉ, ㅆ, ㆅ은 전탁이 되고
ㆁㄴㅁㅇㄹㅿ◦ 為不清不濁。
ㆁ, ㄴ, ㅁ, ㅇ, ㄹ, ㅿ은 불청불탁이 된다.
3. 겹닿소리
이제껏 홀소리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는 닿소리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
훈민정음에 이르길 닿소리의 낱자는 모두 열일곱 자이다.
예사소리 「ㄱ, ㄷ, ㅂ, ㅈ, ㅅ, ㆆ」 여섯 가지와 거센소리 「ㅋ, ㅌ, ㅍ, ㅊ, ㅎ」 다섯 가지와 울림소리 「ㆁ, ㄴ, ㅁ, ㅇ, ㄹ, ㅿ」 여섯 가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홀소리에서 보았듯, 훈민정음은 낱자를 홑소리와 겹소리로 나누어 만들지 않았는데, 닿소리도 마찬가지로 홑닿소리와 겹닿소리로 나누어 낱자를 만들지 않았다.
닿소리도 홑소리와 겹소리를 잣대로 다시 보자면, 거센소리 「ㅋ, ㅌ, ㅍ, ㅊ」은 홑닿소리가 아니다.
예사소리 「ㄱ, ㄷ, ㅂ, ㅈ」에 「ㅎ」이 더해져 생기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ㅎ이 앞에 와도 | 보기 | ㅎ이 뒤에 와도 | 보기 | |
ㅎ + ㄱ = ㅋ | • 앓- + -고 = 알코(⇒ 앓고[알코]) | ㄱ + ㅎ = ㅋ | • 막- + -히- = 마키다(⇒막히다[마키다]) | |
ㅎ + ㄷ = ㅌ | • 앓- + -다 = 알타(⇒ 앓다[알타]) | ㄷ + ㅎ = ㅌ | • 갇- + -히- = 가티다(⇒ 갇히다[가치다]) | |
ㅎ + ㅂ = ㅍ | • 앓- + -브- = 알프다(⇒ 아프다) | ㅂ + ㅎ = ㅍ | • 굽- + -히- = 구피다(⇒ 굽히다[구피다]) | |
ㅎ + ㅈ = ㅊ | • 앓- + -쟈 = *알챠(⇒ 앓자[알차]) | ㅈ + ㅎ = ㅊ | • 맞- + -히- = 마치다(⇔ 맞히다[마치다])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다만 소리가 섞여서 듣기에 둘로 똑 나뉘지도 않고, 「ㅎ」이 앞에 오든 뒤에 오든 똑같아지므로
“소리의 처음과 끝이 다르게 나는 소리”라는 뜻에서의 ‘겹소리’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初聲二字三字合用並書◦ 如諺語ᄯᅡ〮為地◦ ᄧᅡᆨ為雙◦ ᄢᅳᆷ〮為隙之類。
첫소리 두 자 또는 석 자를 모음으로써 나란히 적는 것은 땅(地)을 이르는 ‘ᄯᅡ〮’, 쌍(雙)을 이르는 ‘ᄧᅡᆨ’, 틈(隙)을 이르는 ‘ᄢᅳᆷ〮’ 따위와 같다.
(……)
其合用並書◦ 自左而右◦ 初中終三聲皆同。
이처럼 모아서 나란히 적는 것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으며, 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 모두 마찬가지이다.
3-1. 「ㅂ」붙이 겹닿소리
하지만 훈민정음을 살펴보다 보면, 웬 야릇한 글자들이 눈에 띈다.
쌍(雙)을 이르는 ‘ᄧᅡᆨ’, 틈(隙)을 이르는 ‘ᄢᅳᆷ〮’……
그야말로 “겹닿소리”의 모습인데, 이것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난감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ㅂ이면서 ㅈ인 소리가 있을까?
게다가 이렇게 ㅂ이 앞에 오는 낱말들은 옛글에서 적잖이 나타난다.
겹닿소리 | 보기 | 내려온 말 | |
ㅳ | • ᄠᅥ히다 | 떼다, 잡아떼다 | |
• ᄠᅳ다 | 뜨다, 달뜨다/들뜨다 | ||
ㅷ | • ᄠᅱ다/ᄩᅱ다 | 뛰다/튀다 | |
• ᄩᅳ다 | 트다, 터지다, 터뜨리다 | ||
ㅄ | • ᄡᆞ다 | 싸다, 감싸다, 둘러싸다 | |
• ᄡᅳᆯ다 | 쓸다, 휩쓸다, 쓰레받기 | ||
ㅶ | • ᄧᆞ다 | 짜다, 쥐어짜다 | |
• ᄧᅩᆾ다 | 쫓다, 내쫓다, 뒤쫓다 | ||
ㅴ | • ᄢᆞ다 | 까다, 불까다 | |
• ᄢᅦ다 | 꿰다, 꿰뚫다, 꿰매다 | ||
ㅵ | • ᄣᆞ리다 | 때리다 | |
• ᄣᅵ다 | 넘치다 |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실마리는 또한 훈민정음에 있다.
훈민정음은 “이처럼 모아서 나란히 적는 것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우리로서는 떠올리기 어렵지만, 입술소리 「ㅂ」소리 뒤로 혓소리 「ㄷ, ㅌ」, 잇소리 「ㅅ, ㅈ」 따위가 부드럽게 이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때의 「ㅂ」소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에 적잖이 남아 있다.
낱말 | 짜임 | 더 보기 | |
멥쌀 | = | 뫼(>메) + ᄡᆞᆯ(>쌀) | • 멧돼지, 멧미나리, 메밀, 멧비둘기, 멧새 |
좁쌀 | = | 좋(>조) + ᄡᆞᆯ(>쌀) | • 조알, 조짚, 좃겨 |
찹쌀 | = | ᄎᆞᆯ(>찰-) + ᄡᆞᆯ(>쌀) | • 찰떡, 찰벼, 찰옥수수, 찰흙 |
햅쌀 | = | ᄒᆡ(>해-) + ᄡᆞᆯ(>쌀) | • 해콩, 해팥, 햇감자, 햇양파 |
볍씨 | = | 벼(>벼) + ᄡᅵ(>씨) | • 볏낱, 볏단, 볏밥, 볏짚 |
입때 | = | 이(>이) + ᄣᅢ(>때) | • 이제, 이것, 이곳 |
접때 | = | 뎌(>저) + ᄣᅢ(>때) | • 저제, 저것, 저곳 |
몹시 | = | 몯(>못) + ᄡᅳ-(>쓰다) + -긔(>게) | • 못내, 못나다, 못되다, 못마땅하다, 못살다, 못생기다, 못하다 |
몹쓸 | = | 몯(>못) + ᄡᅳ-(>쓰다) + -ㄹ | |
솜씨 | = | 손(>손) + ᄡᅳ-(>쓰다) + -이 | • 손가락, 손바닥, 손뼉, 손아귀 |
냅뜨다 | = | 내-(>내다) + ᄠᅳ-(>뜨다) | • 내디디다, 내밀다, 내뱉다, 내세우다, 내쉬다 |
부릅뜨다 | = | 브르-(>부르-) + ᄠᅳ-(>뜨다) | • 부르걷다, 부르돋다, 부르쥐다, 부르짖다 |
지릅뜨다 | = | 디르-(>지르-) + ᄠᅳ-(>뜨다) | • 지르감다, 지르물다, 지르밟다, 지르보다 |
칩뜨다 | = | 치- + ᄠᅳ-(>뜨다) | • 치닫다, 치뜨다, 치밀다, 치받다, 치솟다 |
뒵쓰다 | = | 뒤- + ᄡᅳ-(>쓰다) | • 뒤덮다, 뒤섞다, 뒤엉키다, 뒤바꾸다, 뒤엎다 |
휩싸다 | = | 휘- + ᄡᆞ-(>싸다) | • 휘갈기다, 휘감다, 휘날리다, 휘두르다, 휘둥글다, 휘몰다, 휘젓다 |
휩쓸다 | = | 휘- + ᄡᅳᆯ-(>쓸다) |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더욱이 시간을 너머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 보자면
「ㅳ, ㅷ, ㅄ, ㅶ」 같은 겹닿소리가 우리말에만 있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뜻 | 고대 그리스어 | 한글로 쓰면… | 빌려 간 영어 | 한글로 쓰면… |
그리스 이름 | • Πτολεμαῖος (/ptolemâi̯os/) | 프톨레마이오스 | • Ptolemy (/tɒlɪmi/) | 털리미 |
날개 | • πτέρυξ (/ptéryks/) | 프테루크스 | • pteranodon (/təˈɹænədɒn/) | 테래너던 |
그리스 문자 | • ψι (/psi/) | 프시 | • psi (/saɪ/) | 사이 |
영혼, 넋 | • ψυχή (/psyːkʰɛ̌ː/) | 프수케 | • psyche (/saɪki/) | 사이키 |
거짓, 거짓말 | • ψεῦδος (/psêu̯dos/) | 프세우도스 | • pseudo (/suːdoʊ/) | 슈도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이에 「ㅂ」붙이 겹닿소리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느낌이 조금씩 오는데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그리스 여신 “프시케”와 익룡 “프테라노돈”은 그리스어식과 영어식을 얼추 섞어서 읽고 있던 셈이다.
아울러 입술소리 「ㅂ」 뒤로 반혓소리 「ㄹ」이 오는 것까지 눈을 넓혀 보자면, 영어에도 이러한 겹닿소리가 아주 많다.
낱말 | 한글로 쓰면… | 낱말 | 한글로 쓰면… |
place /pleɪs/ | 플레이스 | blame /bleɪm/ | 블레임 |
plant /plænt/ | 플랜트 | blonde /blɒnd/ | 블론드 |
price /pɹaɪs/ | 프라이스 | break /bɹeɪk/ | 브레이크 |
prime /pɹaɪ̯m/ | 프라임 | broad /bɹɔːd/ | 브로드 |
frog /fɹɑɡ/ | 프러그 | fly /flaɪ/ | 플라이 |
freeze /fɹiːz/ | 프리즈 | float /fləʊt/ | 플로트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아니, 이게 어떻게 모두 한 마디짜리 낱말이냐 싶겠지만, 글머리에서 밝혔듯 소리마디의 몸통은 홀소리이며
낱말에도 그렇고 발음 기호에도 그렇고 닿소리들 사이에서 홀소리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그저 소디마디 하나에 매인 겹닿소리일 뿐이라는 뜻이다.
물론 우리는 이제 「ㅳ, ㅷ, ㅄ, ㅶ」 같은 겹닿소리를 쓰지 않기에, 위 낱말의 첫소리를 두 마디로 나누어 적고 말할 따름인데
이 탓에,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 값을 치르려고 “프라이스”를 물었다가 못 알아듣길래 “프.라.이.스.”라고 또박또박 말해 주었더니 더 못 알아 먹더라는 촌극이 빚어진다.
3-2. 「ㅅ」붙이 겹닿소리
하면 훈민정음에서 말한 “땅(地)을 이르는 ‘ᄯᅡ〮’” 또한 마찬가지로 「ㅅ」소리와 「ㄷ」소리를 부드럽게 이어 내면 될까?
안타깝게도 여기에는 ① 「ㅅ」소리가 참으로 났을 것으로 여기는 목소리와 ② 「ㅺ, ㅼ, ㅽ, ㅾ」으로 나타나는 「ㅅ」붙이 겹닿소리를 된소리로 여기는 목소리로 나뉘어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ㅺ, ㅼ, ㅽ, ㅾ」 따위가 쓰였던 낱말들은 오늘날 거의가 된소리 「ㄲ, ㄸ, ㅃ, ㅉ」로 남아서 「ㅅ」소리의 자취를 찾기 어려운 탓이다.
겹닿소리 | 보기 | 내려온 말 | |
ㅺ | • ᄭᅮ다 | 꾸다, 꿈꾸다 | |
• ᄭᆞᆯ다 | 깔다, 깔리다, 깔보다, 까라지다 | ||
• ᄭᆡ다 | 깨다, 꿈 깨다, 깨우다, 일깨우다, 깨닫다 | ||
ㅼ | • ᄯᅳ다 | 뜨다, 뜸, 뜸을 뜨다 | |
• ᄯᅵᇂ다 | 찧다, 짓찧다, 내리찧다, 들이찧다 | ||
• ᄯᅴ다 | 띠다, 열띠다, 띠, 허리띠 | ||
ㅽ | • ᄲᆞᄅᆞ다 | 빠르다, 재빠르다 | |
• ᄲᆞᆯ다 | 빨다, 빨래하다 | ||
• ᄲᅡ다 | 빠지다, 빠뜨리다, 빼다 |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다만 훈민정음만 놓고 보자면 「ㅅ」소리가 났을 것이라고 생각함이 맞는 듯하다.
무엇보다 훈민정음이 “이처럼 모아서 나란히 적는 것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라고 밝히고 있을뿐더러
다른 새김이나 풀이 없이 「ㅂ」붙이 겹닿소리와 「ㅅ」붙이 겹닿소리를 함께 보여 주는데 이 둘을 다르게 읽어야 할 까닭이 없고
만일 둘을 다르게 읽는 것이라면 「ㅴ, ㅵ」 같은 세겹닿소리는 한 글자 안에서 서로 다른 논리를 가지게 된다.
앞의 「ㅂ」은 소리가 나는데 가운데의 「ㅅ」은 된소리를 나타낸다고 하는 것에 쉽사리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아울러 「ㅅ」소리가 섞여서 된소리를 나타낸다면, 「ㅎ」이 섞여서 나는 거센소리 「ㅋ, ㅌ, ㅍ, ㅊ」처럼 낱자를 따로 만들지 않은 것도 엉뚱한 일이다.
한글의 가치를 높이 매기는 까닭은 글자를 이루는 꼼꼼한 논리에도 있는데, 「ㅺ, ㅼ, ㅽ, ㅾ」을 된소리로 봄은 여러모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다른 나라를 둘러보자면 「ㅅ」이 맨 앞에 오는 겹닿소리가 그다지 흔한 건 아니라고 하나, 영어에서는 세겹닿소리까지 제법 널리 쓰이므로 영어로써 그 소리가 어땠을지 가늠해 볼 만하다.
낱말 | 한글로 쓰면… | 낱말 | 한글로 쓰면… |
score /skɔː/ | 스코어 | spy /spaɪ/ | 스파이 |
screen /skɹiːn/ | 스크린 | spot /spɒt/ | 스파트 |
skate /skeɪt/ | 스케이트 | split /splɪt/ | 스플리트 |
sky /skaɪ/ | 스카이 | spring /spɹɪŋ/ | 스프링 |
star /stɑː(ɹ)/ | 스타 | smoke /sməʊk/ | 스모크 |
strong /stɹɒŋ/ | 스트롱 | smell /smɛl/ | 스멜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위 낱말들도 죄 한 마디짜리인데, “sky”나 “storm” 같은 낱말을 옛날대로 쓴다면 “ᄸᅢ”나 “ᄹᅩᆷ”쯤으로 쓸 만하지 않을까.
然ㄱㆁㄷㄴㅂㅁㅅㄹ八字可足用也。
다만 (끝소리는) ㄱ, ㆁ, ㄷ, ㄴ, ㅂ, ㅁ, ㅅ, ㄹ 여덟 자로 충분히 쓸 수 있다.
如ᄇᆡᆺ곶為梨花◦ 여ᇫ의갗為狐皮◦ 而ㅅ字可以通用。故只用ㅅ字。
배꽃(梨花)을 이르는 ‘ᄇᆡᆺ곶’, 여우의 가죽(狐皮)을 이르는 ‘여ᇫ의갗’ 따위는 ㅅ을 써도 되므로, ㅅ 자로만 쓴다.
且ㅇ聲淡而虗◦ 不必用於終◦ 而中聲可得成音也。
ㅇ소리는 여리고 비어, 반드시 끝소리에 쓰지 않고 가운뎃소리만으로 소리를 이룰 수 있다.
ㄷ如볃為彆◦ ㄴ如군為君◦ ㅂ如ᅌᅥᆸ為業◦ ㅁ如땀為𫟛◦ ㅅ如諺語옷〮為衣◦ ㄹ如諺語실〯為絲之類。
ㄷ은 彆의 ‘볃’과 같고, ㄴ은 君의 ‘군’과 같고, ㅂ은 業의 ‘ᅌᅥᆸ’과 같고, ㅁ은 𫟛의 ‘땀’과 같고, ㅅ은 옷(衣)의 우리말 ‘옷〮’과 같고, ㄹ은 실(絲)의 우리말 ‘실〯’과 같다.
4. 겹받침
우리는 첫소리에서의 겹닿소리가 퍽 낯설더라도 받침에서의 겹닿소리는 썩 낯이 익다.
넋, 몫, 삯, 섟, 닭, 삵, 칡, 흙, 삶, 앎, 곬, 옰, 값 따위로
이러나저러나 날마다 마주치는 흔하디흔한 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소리값을 생각해 볼 때, 막상 꼴만 겹닿소리일 뿐 홑닿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넋[넉], 닭[닥], 삶[삼], 곬[골], 값[갑] 따위로 끝소리에서도 두 닿소리가 어울려 난다는 것을 쉬이 떠올지 못한다.
하면, 훈민정음은 무엇이라 이야기하고 있을까.
4-1. 여덟끝소리되기
먼저 훈민정음은 받침으로 여덟 자만을 쓰도록 새긴다.
울림소리 「ㆁ, ㄴ, ㄹ, ㅁ」 네 가지와 막힘소리 「ㄱ, ㄷ, ㅂ, ㅅ」 네 가지로,
이른바 팔종성법(八終聲法), 여덟끝소리되기를 글자에 드러낸 것이다.
이에 따르면 닿소리의 낱자는 모두 열일곱 자이지만
「ㄱ, ㅋ」은 받침에서 모두 「ㄱ」이 되고
「ㄷ, ㅌ, ㆆ, ㅎ」은 받침에서 모두 「ㄷ」이 되고
「ㅂ, ㅍ」은 받침에서 모두 「ㅂ」이 되고
「ㅅ, ㅿ, ㅈ, ㅊ」은 받침에서 모두 「ㅅ」이 되므로
끝소리로 올 수 있는 글자는 여덟 자가 된다.
(다만 여덟 끝소리 가운데 「ㅅ」만은 오늘날 더는 끝소리로 쓰지 않는 데다, 본래부터 숨을 터뜨려 내는 소리도 아니므로, 옛날의 「ㅅ」이 끝소리로서 어떠한 소리값을 가졌는지 알 길이 없다.)
이는 숨을 터뜨려 내야 할 닿소리를 숨이 터지지 못하도록 막음으로써 받침을 소리 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데
같은 글자를 쓰더라도, 첫소리의 「ㄱ, ㄷ, ㅂ, ㅅ」과 끝소리의 「ㄱ, ㄷ, ㅂ, ㅅ」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결은 우리말에서 남달리 나타나므로, 끝소리에서도 숨을 끝까지 터뜨리는 영어와 견주어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뚜렷해진다.
낱말 | 한글로 쓰면… | 낱말 | 한글로 쓰면… |
babe /beɪb/ | 베이브 | tape /teɪp/ | 테이프 |
vague /veɪg/ | 베이그 | cake /keɪk/ | 케이크 |
fade /feɪd/ | 페이드 | date /deɪt/ | 데이트 |
pave /peɪv/ | 페이브 | safe /seɪf/ | 세이프 |
gaze /geɪz/ | 게이즈 | base /beɪs/ | 베이스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위 모두 한 마디짜리 낱말이고 첫소리에서 내는 대로 똑같이 끝소리를 내는 것이지만,
우리는 숨을 터뜨리지 않는 받침 소리에만 귀 익은 나머지, “-그, -드, -브, -프…” 따위로 소리마디를 덧단다.
우리가 비웃어 마지않는 일본의 “마그도나르도”가 실은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겹닿소리도 여덟끝소리되기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숨을 터뜨리지 않고서 다음 닿소리로 잇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인지
「ㄹ」이 앞에 오거나 「ㅅ」이 뒤에 오는 것이 아니면 겹닿소리를 이루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옛적에 「ㅺ, ㅼ」을 받침으로 썼던 낱말들을 보자면,
닿소리 앞에서 「ㄱ, ㄷ」이 떨어지며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겹닿소리를 이루지 못했다.
낱말 | -아/어 | -ᄋᆞ니/으니 | -ᄋᆞᆫ/은 | -고 | -디(>-지) | -ᄂᆞᆫ(>는) |
가ᇧ다(>깎다) | 갓가 | 갓ᄀᆞ니 | 갓ᄀᆞᆫ | 갓고 | 갓디 | 갓ᄂᆞᆫ |
거ᇧ다(>꺾다) | 것거 | 것그니 | 것근 | 것고 | 것디 | 것ᄂᆞᆫ |
다ᇧ다(>닦다) | 닷가 | 닷ᄀᆞ니 | 닷ᄀᆞᆫ | 닷고 | 닷디 | 닷ᄂᆞᆫ |
무ᇧ다(>묶다) | 뭇거 | 뭇그니 | 뭇근 | 뭇고 | 뭇디 | 뭇ᄂᆞᆫ |
보ᇧ다(>볶다) | 봇가 | 봇ᄀᆞ니 | 봇ᄀᆞᆫ | 봇고 | 봇디 | 봇ᄂᆞᆫ |
서ᇧ다(>섞다) | 섯거 | 섯그니 | 섯근 | 섯고 | 섯디 | 섯ᄂᆞᆫ |
마ᇨ다(>맡다) | 맛다 | 맛ᄃᆞ니 | 맛ᄃᆞᆫ | 맛고 | 맛디 | 맛ᄂᆞᆫ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終聲二字三字合用◦ 如諺語ᄒᆞᆰ為𡈽,낛〮為釣,ᄃᆞᇌᄣᅢ〮為酉時之類。
끝소리 두 자 또는 석 자를 모음으로써 나란히 적는 것은 흙(土)을 이르는 ‘ᄒᆞᆰ’, 낚시(釣)를 이르는 ‘낛〮’, 유시(酉時)를 이르는 ‘ᄃᆞᇌᄣᅢ〮’ 따위와 같다.
其合用並書◦ 自左而右◦ 初中終三聲皆同。
이처럼 모아서 나란히 적는 것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으며, 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 모두 마찬가지이다.
4-2. 「ㄹ」붙이 겹받침
오늘날에도 「ㄹ」이 만드는 겹받침이 「ㄺ, ㄻ, ㄼ, ㄿ, ㄽ, ㄾ, ㅀ」으로 가장 많듯
옛날에도 「ㄹ」으로 비롯하는 겹받침은 「ㄺ ㄻ ㄼ ㄽ ㅀ」 따위로 무척 흔했다.
아마 「ㄹ」은 받침으로 써도 말소리가 끊기지 않아 다음 닿소리로 잇기 쉽고
혀가 닿는 곳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다른 닿소리로 옮기 쉬우니
다른 닿소리와 함께 겹받침을 이루기 좋았던 게 아닐까 싶다.
다만 예와 오늘에 다른 것이 있다면,
첫째로 「ㅀ」은 오늘날에는 낱말의 꼴바탕을 그대로 살려 적기에
“앓다[알타]-앓고[알코]-앓는[알른]”서껀 「ㅎ」을 드러내 적지만
옛날에는 소리가 나는 대로 옮겨 적으려 했으므로
“알타-알코-알ᄂᆞᆫ”서껀 「ㅎ」을 드러내지 않고 적었다는 것과
둘째로 그밖은 오늘날에 낱말의 꼴바탕을 그대로 살려 적기에
“긁다[극따]-긁고[글꼬]-긁지[극찌]”처럼 홑받침으로 소리를 내더라도 겹받침으로 적지만
옛날에는 소리가 나는 대로 옮겨 적으려 했으므로
“긁다-긁고-긁디”처럼 겹받침으로 적은 닿소리가 짜장 다 소리로 났으리라는 것이다.
훈민정음에는 “ᄒᆞᆰ”(>흙)이 그 보기로서 나온다.
낱말 | -아/어 | -ᄋᆞ니/으니 | -ᄋᆞᆫ/은 | -고 | -디(>-지) | -ᄂᆞᆫ(>는) |
긁다(>긁다) | 글거 | 글그니 | 글근 | 긁고 | 긁디 | 긁ᄂᆞᆫ |
늙다(>늙다) | 늙거 | 늘그니 | 늙근 | 늙고 | 늙디 | 늙ᄂᆞᆫ |
닑다(>읽다) | 닐거 | 닐그니 | 닐근 | 닑고 | 닑디 | 닑ᄂᆞᆫ |
얽다(>얽다) | 얼거 | 얼그니 | 얽근 | 얽고 | 얽디 | 얽ᄂᆞᆫ |
갊다(>감추다) | 갈마 | 갈ᄆᆞ니 | 갈ᄆᆞᆫ | 갊고 | 갊디 | 갊ᄂᆞᆫ |
곪다(>곪다) | 골마 | 골ᄆᆞ니 | 골ᄆᆞᆫ | 곪고 | 곪디 | 곪ᄂᆞᆫ |
ᄉᆞᆱ다(>삶다) | ᄉᆞᆯ마 | ᄉᆞᆯᄆᆞ니 | ᄉᆞᆯᄆᆞᆫ | ᄉᆞᆱ고 | ᄉᆞᆱ디 | ᄉᆞᆱᄂᆞᆫ |
옮다(>옮다) | 올마 | 올ᄆᆞ니 | 올ᄆᆞᆫ | 옮고 | 옮디 | 옮ᄂᆞᆫ |
ᄇᆞᆲ다(>밟다) | ᄇᆞᆯᄫᅡ | ᄇᆞᆯᄫᆞ니 | ᄇᆞᆯᄫᆞᆫ | ᄇᆞᆲ고 | ᄇᆞᆲ디 | ᄇᆞᆲᄂᆞᆫ |
엷다(>엷다) | 열ᄫᅥ | 열ᄫᅳ니 | 열ᄫᅳᆫ | 엷고 | 엷디 | -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그리하여 겹받침을 쓰는 동사와 형용사가 위 보기처럼 옛글에서 나타나고
동사 둘셋을 엮어 한 낱말로 만들 때에도 겹받침을 그대로 살려 적은 것이 또한 보인다.
낱말 | 짜임새 | |||||
긁싯다 (:긁어 씻다) | = | 긁다 (긁다) | + | 싯다 (>씻다) | ||
얽ᄆᆡ다 (>얽매다) | = | 얽다 (>얽다) | + | ᄆᆡ다 (>매다) | ||
옮ᄃᆞᆮ니다 (:옮아 다니다) | = | 옮다 (>옮다) | + | ᄃᆞᆮ다 (>닫다, 내닫다) | + | 니다 (:가다)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ㅀ」의 경우에도 이제보다 옛적이 겹받침 노릇을 더욱 톡톡히 했는데
「ㅎ」소리가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이제와 달리 그 소리를 더욱 똑똑히 냈던 것이다.
앓- | -아/어 | -ᄋᆞ니/으니 | -ᄋᆞᆫ/은 | -ᄇᆞ/브- | -이/히/기- | -이 |
옛날 | 알하 | 알ᄒᆞ니 | 알ᄒᆞᆫ | 알ᄑᆞ다 | 알히다 | 알히 |
오늘날 | 앓아 [아라] | 앓으니 [아르니] | 앓은 [아른] | 아프다 [아프다] | 아리다 [아리다] | 앓이 [아리]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그리고 이쯤하면 뻔한 흐름이지만 「ㄹ」소리 비슷한 것으로 겹닿소리를 이루는 말은 다른 나라말에도 많다.
낱말 | 한글로 쓰면… | 낱말 | 한글로 쓰면… |
bulk /bʌlk/ | 벌크 | bulb /bʌlb/ | 벌브 |
milk /mɪlk/ | 밀크 | volt /vəʊlt/ | 볼트 |
bold /bəʊld/ | 볼드 | help /hɛlp/ | 헬프 |
hold /həʊld/ | 홀드 | pulp /pʌlp/ | 펄프 |
film /fɪlm/ | 필름 | golf /ɡɒlf/ | 골프 |
realm /ɹɛlm/ | 렐름 | self /sɛlf/ | 셀프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모두 한 마디짜리이나 한글로 쓰자면 두 마디로 적히는 것은 지난 보기 때와 같다.
그나마 열에 아홉은 「ㅡ」소리를 되도록 죽여서 한 마디로 따라할 만한데, “필름”과 “렐름”은 어떻게 한 마디로 내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이에 “bulk(/bʌlk/)”, “milk(/mɪlk/),” “bold(/bəʊld/)”, “hold(/həʊld/)” 따위를 “버ᇘ”, “미ᇘ”, “ᄇᅻᇎ”, “ᄒᅻᇎ”이라고 쓰고
“film(/fɪlm/)”, “realm(/ɹɛlm/)”, “bulb(/bʌlb/)”, “volt(/vəʊlt/)” 따위를 “ᅗᅵᆱ”, “ᄛᅦᆱ”, “벏”, “ᄫᅻᆴ”이라고 쓰면
어쭙잖게라도 한 마디 안에 욱여넣을 만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 꼴이 눈이 돌아갈 만큼 어지럽다.
우리말에서 겹닿소리가 없어져서 망정일지도 모르겠다.
4-3. 「ㅅ」붙이 겹받침
한편 옛글에 가장 흔히 보이는 겹받침은 「ㅅ」붙이 겹받침이다.
영어의 소유격 접미사 ‘-s’처럼 우리말에도 관형격 조사 ‘ㅅ’이 있었으므로, 이름이면 아무 데나 갖다 붙어 온갖 「ㅅ」붙이 겹받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낱말 | 짜임 | |||||
먻빛(>먹빛) | = | 먹 | + | ㅅ | + | 빛 |
잆김(>입김) | = | 입 | + | ㅅ | + | 김 |
코ᇱᄀᆞᄅᆞ(>콩가루) | = | 코ᇰ | + | ㅅ | + | ᄀᆞᄅᆞ |
누ᇇ믈(>눈물) | = | 눈 | + | ㅅ | + | 믈 |
이틄날(>이튿날) | = | 이틀 | + | ㅅ | + | 날 |
ᄆᆞᅀᆞᇝᄀᆞ자ᇰ(>마음껏) | = | ᄆᆞᅀᆞᆷ | + | ㅅ | + | ᄀᆞ자ᇰ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ㅅ」붙이 겹받침은 낱만을 만드는 데에도 널리 쓰이는데
훈민정음은 “낛〮 ”(낚시)을 그 보기로 든다.
낱말 | -아/어 | -ᄋᆞ니/으니 | -ᄋᆞᆫ/은 | -고 | -디(>-지) | -ᄂᆞᆫ(>는) |
앉다(>앉다) | 안자 | 안ᄌᆞ니 | 안ᄌᆞᆫ | 아ᇇ고 | 아ᇇ디 | 아ᇇᄂᆞᆫ |
엱다(>얹다) | 연저 | 연즈니 | 연즌 | 여ᇇ고 | 여ᇇ디 | 여ᇇᄂᆞᆫ |
ᄉᆞᇝ기다(>삼키다) | ᄉᆞᇝ겨 | ᄉᆞᇝ기니 | ᄉᆞᇝ긴 | ᄉᆞᇝ기고 | ᄉᆞᇝ기디 | ᄉᆞᇝ기ᄂᆞᆫ |
닶기다(>답답-) | 닶겨 | 닶기니 | 닶긴 | 닶기고 | 닶기디 | 닶기ᄂᆞᆫ |
다만 겹받침에서 「ㅅ」이 어떤 소리로 났는지는 똑똑히 알 길이 없으며, 그저 소리값이 있었다는 것만 알 뿐이다.
아울러 마지막으로 훈민정음은 「ㄹ」붙이 겹받침과 「ㅅ」붙이 겹받침을 아우르는 엄청난 낱말을 보여 준다.
ᄃᆞᇌᄣᅢ〮
하루를 열둘로 나누어 시간을 나타내던 “십이시(十二時)” 가운데 유시(酉時)를 우리말로 고스란히 옮긴 것으로,
끝소리로 「ㄹ, ㄱ, ㅅ」이 오고, 뒤이어 첫소리로 「ㅂ, ㅅ, ㄷ」이 오며, 닿소리 여섯 낱이 쉼 없이 나타난다.
오늘날 듣는다면 [달윽스브스다이]라고 생각할까?
앞서 꾸준히 보았듯 영어에는 닿소리가 한 뭉텅이로 붙는 징그러운 낱말들이 무척이나 많다. 아래도 모두 한 마디짜리 낱말일 뿐이다.
낱말 | 한글로 쓰면… | 낱말 | 한글로 쓰면… |
strength /stɹɛŋkθ/ | 스트렝스 | trust /tɹʌst/ | 트러스트 |
stretch /stɹɛtʃ/ | 스트렏치 | sprint /spɹɪnt/ | 스프린트 |
strand /stɹænd/ | 스트랜드 | splint /splɪnt/ | 스플린트 |
strike /stɹaɪk/ | 스트라이크 | sprite /spɹaɪt/ | 스프라이트 |
(← 모바일 가로 스크롤 →) |
그러면 훈민정음의 뜻을 살려서 “strength /stɹɛŋkθ/”를 다음처럼 쓰자는 말이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한글은 우리말을 적기 좋으면 그만이고 읽기 좋은 것이 더 낫다.
그저 오늘날의 맞춤법에 갇혀서 쓸데없이 남을 나무라거나 스스로 너무 으스대지 않도록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님을 훈민정음에서 찾아보았을 따름이다.
첫댓글 훈민정음
와우! 재밌네요
쫑께랑 다른게 한두가지가 아님 수준 차이가 하늘과 지하실 쫑께는 인간인가 싶다
쫑께보다 못한 북조선 조같은 것들은 도대체 @@ 조선쓰레기들
좋은 자료네요.
세종대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 이상인 것 같습니다.
진짜 한민족 통틀어 천재
222222222222222...근데 그천재가 왕
와... 요거 고대로 퍼다가 블로그 같은데 올려놓고 시간 날 때마다 보고 또 보고 하면 좋겠다.. ㅎ
지금봐도 잘 모르겠는걸 몇백년 전에 마스터하신겁니까 세종대왕님..
훈민정음
감사합니다
훈민정음
훈민정음
천천히 공부하기
훈민정음의 원리.. 대단하군요
훈민정음
훈민정음
훈민정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