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추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고 신효순 양의 영정 앞에 동료 학우들과 친지들이 통곡하며 조문을 하고 있다.
▲너희에게도 인간의 마음이 있는가? 조문을 온 미2사단 소속 미군들의 가증스런 얼굴들.
▲14일 오후 5시, 한미 합동으로 하기로 한 현장조사에는 미군은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의정부서 경찰들만 나왔다. 사람들이 서있는 곳이 두 여학생이 죽은 곳이다. 운전을 한 미군은 학생들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완연한 오르막길에서 학생들을 보지 못했다니, 거짓말이다. 은폐되어 있는 두 여학생의 죽음의 진상을 밝혀라!
▲14일 오후 5시, 현장조사- 김종일 사무처장이 사고현장을 실측하고 있다. 미군들은 친구의 생일잔치에 나선 두 여학생이 가고 있던 갓길 쪽으로 차량을 몰았다.
▲14일 오후 5시, 현장조사 - 최초로 현장에 도착한 주민 홍기식씨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14일 밤 8시, 미군들은 느닷없이 현장브리핑을 하겠다고 했다. 미2사단 소속 미군들이 사회단체 회원들의 현장브리핑 참관을 가로막고 유가족들만 빼돌려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군 25사단 소속 헌병들이 사회단체 회원들을 고착시켜 접근을 막았다.
▲15일, 유가족들은 처참하게 죽은 딸들을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장례식을 치를 수 밖에 없었다. 오전 9시, 신효순, 심미선 두 여학생이 다니던 조양중학교에서 치러진 노제. 영정 사진 속의 두 여학생이 교정을 바라보고 있다.
▲노제에는 전교생이 모였다. 친구들이 헌화, 분향한 후 흐느끼고 있다.
▲두 여학생의 영정을 앞세우고 벽제 화장터에 도착한 유가족들과 학교 친구들,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주한미군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화구에 들어가기 직전, 두 여학생의 외침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다.
▲두 여학생의 주검이 화구에 들어가는 모습. 유가족들이 두 여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고 있다.
▲화구에 들어가 불태워지는 친구들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는 동료 학우들. 두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학생들의 통곡소리에 벽제 화장터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한 줌 재로 남은 효순이와 미선이. 기막히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두 여학생의 원한을 기어이 풀어주자!
▲사고를 낸 미군이 속한 캠프 레드 클라우드 앞에서 연좌하고 있는 유가족들. 미군들은 유가족과 기자, 사회단체 대표들을 만나겠다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어겼다.
▲심미선 학생의 영정사진
▲신효순 학생의 영정사진
▲주한미군은 장례식장을 온통 화환으로 도배를 해 놓고 유족들을 기만했다
▲한국인을 앞세우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척하는 오만한 미군
▲고 심미선 양의 아버지
▲고 신효순 양의 아버지
▲방과 후 학교 친구들의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미선이의 영정 앞에서 흐느끼는 친구들
▲미선이의 신발.
▲학생들이 쓰러져 있던 자리 위로 궤도차량의 바퀴가 쓸고 간 자국이 선명하다.
▲흙으로 덮어 놓긴 했지만 처참했을 당시의 상황이 그려진다.
▲궤도차량이 갓길을 넘어 풀숲까지 침범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흙과 엉킨 혈흔들.
▲궤도차량이 올라오던 방향이다. 누가 봐도 학생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반대쪽에서 바라본 사고현장. 여기엔 넓은 공간이 있다.
▲미군이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려왔다는 도표 유족들은 사실과 전혀 다르게 그려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군이 그려온 현장 도표에는 3.67m인 궤도차량이 3.3m인 도로폭 안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기자를 포함한 사회단체 사람들을 밀어내고 유족들만 빼돌린 가운데 진행된 한밤의 브리핑. 도대체 가해자가 현장조사를 하는 법도 있는가!
▲이 어두운 밤에 무슨 현장조사를 한단 말인가!
▲고 신효순 양의 어머니가 딸이 다니던 학교에 도착하자 쓰러지며 오열하고 있다.
▲고 심미선 양의 언니와 어머니
▲우리 곁에서 너희를 떠나보내며.. 친구 허유림 양이 흐느끼며 애도의 편지를 읽고 있다.
▲고 신효순 양의 언니
▲친구들의 어이없는 죽음에 오열하는 동료 학우들
▲학생회장의 헌화를 시작으로 선생님과 학생들이 헌화를 하기 위해 줄지어 서있다.
▲주인 잃은 책상
▲그림을 잘 그렸다는 효순이의 화첩
▲이제 더 이상 올 수 없는 교정이여 안녕...
▲벽제 화장터에 도착. 딸의 관을 보자 오열하는 어머니
▲미2사단 공보실장 브라이언 메이카(Brian Maka) 소령은 면담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뻔뻔스럽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저희 기지에 들어오시거나 저희 군인들을 직접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저희들을 대하실 때 기자로서의 품위를 손상하지 않을 그런 professional manner를 요청합니다."
▲공보실장으로서 기자만 상대한다며 오만한 태도를 보인 메이카 소령
▲미군 측의 일방적인 약속파기에 분노한 신효순 양의 삼촌인 신현기 씨가 "나를 밟고 가라"며 정문 앞에 드러누웠다.
▲정문을 닫아버리는 미군
▲유가족들이 항의하는 뜻으로 제를 지내고 부대 안쪽에 술을 뿌리고 있다.
▲고 신효순, 심미선 두 여학생의 생명을 앗아간 가해차량 차량 앞쪽 흙으로 덮여 있는 곳이 아이들이 쓰러졌던 자리다. 궤도차량은 두 학생의 뒤쪽에서 오다가 우회전하여 갓길 옆의 풀섶을 쓸면서 앞서 가던 두 여학생을 덮쳐 살해했다.
▲사고현장엔 두 여학생이 살던 마을 주민들이 내건 플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미군탱크로 어린 여중생을 무참히 살해한 미국놈은 대국민에 사죄하고 이땅을 떠나라!"
▲미 2사단장 아너리(Honore)는 통역장교의 어깨를 짚고 오만방자한 태도로 '사과'(apologized)를 했다. 이것이 사과하는 자의 태도인가?
▲브리핑에 참석한 두 학생의 아버지와 동네 주민들. [사진 - 자통협 홍보국]
▲"이런 훈련시 동네 주민들에게 미리 통보하고 안전을 부탁하지 않는가?"라는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미군측은 "미리 알렸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이장님이 "들은 바 없다"고 반박하자 미군은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알리겠다"고 답함으로써 다시 한번 한국민을 우롱하는 기만적인 태도를 보였다.
▲유가족과 마을 주민들은 17일 저녁 9시 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 밤을 새워 처참하게 살해당한 어린 원혼들을 달래기 위한 '자리걷이'를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