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5강>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고린도교회가 오해한 십자가에 대해서 1장, 2장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지난 캠프에서 했던 성령론을 들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교회에 성령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시기 위함 입니다.
(고전 2장)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바꾸어서 말하면 세상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안다? 모른다? 모릅니다. 절대 받은 바가 없다,
거부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게 뭡니까? 생명이죠. 영원한 생명입니다. 다른 건 주실 수도 있고 안 주실 수도 있어요. 주셔도 되고 안 주셔도 되는데, 이것만큼은 꼭 주셔야 하는 것, 이게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세상의 영을 받은 자들은 성령이 하시는 일을 반드시 오해하고 반발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2장 6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혜는 온전한 자들에게만 들리는 지혜라는 말이지요. 만세로부터 감추어진 비밀한 것을 성령으로만 깨달아 알게 되고, 성령으로만 전해지는 지혜다..
바울은 그렇게 성령 안에 있는 자들을 ‘온전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온전한 자들에게만 이 말씀이 들리고 깨달아진다는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온전하지 않은 자들은 듣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는 세상 영을 받은 자들, 쉽게 말해서 세상 말을 하고 세상 정신에 가두어진 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다, 철저하게 감추어져 있다, 비밀이다, 그게 만대로부터의 비밀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우리를 위하여 만세 전에, 영원 전에 이미 정하셨다고 합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오래전에 죽임당한 어린양’이 그 말이거든요. 우리가 개입할 수 없는, 창세 전에 죽임당하신 어린양의 피 뿌림을 얻은 자들에게만 열려 있고 계시 된 비밀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피를 남기고 가신,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신 그분이 보내신 영, 그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교회에만 주어지는 선물이 바로 성령의 은사인데, 그 은사들이 가리키는 것, 모든 은사가 가리키는 것은 하나, 바로 그리스도의 주되심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교회만 교회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의 몸으로의 교회입니다. 그래서 모든 지체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것으로 존재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자기 팔 자기가 흔드는 교회는 없단 말이에요. 머리 되신 그리스도로부터 온몸으로 주어지는 생명력, 그리고 모든 좋은 것들.. 그것들을 우리는 그냥 누리면 됩니다. 거기에 우리가 열심을 보탤 건 없습니다. 내가 주를 위해서 이 한 몸 헌신해야지.. 그런 건 없어요.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은사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은사를 주실 수도 있고 또 거두어가실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 모든 은사는 말씀으로 요약되는 선물이에요.
이 그리스도의 주되심,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고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게 바로 칠판에 적어둔 이것들입니다.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우리에게는 본래 지혜도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선물이에요. 이게 신령한 거예요.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영원한 생명, 우리에게는 없는 그 영생을 설명하기 위해서 동원된 것들입니다. 이런 개념들을 만물을 통해 동원하셨다는 말입니다. 심지어는 죄와 사망까지도...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은 예수 안에 있고 예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값없는 무상의 선물이에요,. 그런데 은사를 받겠다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면서 나무뿌리 뽑는... 참.. 이 세상 교회가 하는 짓들이 그 수준이에요. 선물이 뭐예요? 내가 주세요.. 해서 주는 겁니까?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에요. 자기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하고 좋은 것들로 주시는 것을 은사, 선물이라고 해요.
초대교회 때는 방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 등이 실제로 주어졌어요. 그건 성경이 완성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항상 방언을 할 때는 통역을 하라고 했어요. 그런 것들이 백 년, 이백 년을 거치면서 정경(캐논)으로 정리됐단 말이에요, 그래서 성경 안에 있는 은사들은 모두 성경 말씀으로 집중이 됩니다. 이것 외에 다른 은사는 없어요. 병 고치는 행사, 예언하는 은사, 점치는 은사.. 기독교가 어떻게 이렇게 무당 잡교가 되어버렸는지, 이제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를 모를 정도로 부패해버렸습니다. 정경이 완성된 후에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방언도 예언도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맡은 자들, 말씀을 담은 자들은 모든 은사를 다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욕심 내지 마시라고요. 이게 1장 17절부터 2장 16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좀 길지만 한번 읽어봅시다.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니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느끼셨겠지만, 고린도에 보낸 편지는 사도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작정하고 쓴 편지에요. 그래서 편지 시작부터 아주 부정적인 언어로 점철되어 있는 편지예요. 왜 그럴까요? 바울의 의도가 뭐라고 했죠? 바울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십자가 지신 예수가 우리의 주님이시다.. 성경에서 ‘주(아도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 십자가 지신 예수가 이 땅에 피를 남기고 가셨다..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다.. 다른 하나님은 없다.. 다른 하나님은 모두가 인간들이 조작한 하나님이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인간의 존재, 인간의 모든 가능성과 가치를 부정하는 십자기이기 때문에 세상이 받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냥 대충 목에 걸고 다니는 액세서리 정도로는 받아들이는데, 진짜 십자가를 이야기하는 순간 세상 어느 인간도 안색이 변하고 거부하게 된단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이 싫어.” 이게 세상의 반응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고린도전서 전체에서 은사와 사랑과 성찬과 부활을 이야기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1장에서 말하는 십자가, 인간들의 모든 지혜와 가능성과 종교 행위를 부정하는 그 십자가를 모르면 다 헛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1장 전체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1장이 고린도전서 전체의 핵심입니다. 이미 1장에서 고린도전서가 이야기하는 모든 내용을 다 들어 있어요. 그래서 1장을 모르면 사도의 편지가 어떤 은혜이며 사랑인지를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고린도전서를 읽을 때 제목을 따로 붙이죠? 12장은 은사장, 13장은 사랑장, 15장은 부활장.. 이게 다 뭐예요? 우리에게 솔깃한 이야기죠. 알고 싶고 궁금한 이야기들.. 그런데 1장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별로 없단 말이에요.
이 1장이 어떻게 끝이 납니까?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너희들이 관심을 가지는 지혜와 의와 거룩과 구원은 그리스도 예수를 모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안다고 하고 가졌다고 하는 것을 자랑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기 칠판에 적힌 것 중에서 우리가 노력하거나 선택해서 얻은 게 하나라도 있습니까? 없잖아요. 그런데도 왜 그런 짓을 자꾸 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십자가로 죄 사람을 받았는데, 그 십자가의 구원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성화 되고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헌신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상급도 달라진다.. 이게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라는 데서 가르치는 거예요. 제가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칠판에 적힌 것 중에서 우리가 내 것으로 챙겨가질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한번 보세요.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났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게 우리의 선택이었습니까? 영원 전에 우리는 아예 없었어요. 그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건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게 우리가 노력해서 된 일입니까?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어떻게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분이 누구신지도 몰랐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눈을 떠보니, 그분이 눈을 열게 해주시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더라는 말입니다. 이런 걸 선물이라고 합니다. 은사..
그럼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이 누구 거예요? 누구를 위한 거예요? 전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거예요. 그래서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 하는 겁니다. 누구의 공로? 누구의 희생?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바울은 2장 2절에서 이런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누가 성도이며 누가 거룩한 교회인지를 다시 한번 따져보고자 하는 거예요. 그들의 믿음 없음을 고발하고 있단 말이에요 1장 전체를 통해서...
(고전 2장)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지신 십자가만을 알기 원하는데,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이것 빼고 다 안다는 말입니다.
이게 바울의 문법이에요.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처럼 바울 서신들은 대충 들어서 될 게 아니라는 겁니다. 고린도교회가 모르는 게 예수와 십자가라는 것이에요. 그러니 한마디로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이 말입니다. 바울이 보는 고린도교회는 모두가 육신에 속한 자요 젖이나 먹어야 할 자다..
(고전 3장)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고린도 교인들을 보고 너희들은 신령한 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겁니다. 다들 육이라는 거에요 아주 무서운 말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육신에 속한 자, 젖이나 먹는 어린아이라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와 관계 없이, 그리스도 밖에 있다는 뜻이에요. 심판입니다. 만약 고린도 교인들이 편지를 받았을 때 바울이 말한 뜻을 제대로 알았다면 편지를 박박 찢어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예언도 하고 방언도 하고 우리에게 온갖 은사도 나타나고 하는데 우리더러 육신에 속한 자라니.. 젖이나 먹어야 할 자라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말은 한 마디로 종교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인 그리스도 예수와 십자가로 시작하지 않는 어떤 것도 다 가짜다..
이렇게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편지 시작부터 ‘예수와 십자가’라는 대못을 꽉 박아놓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바울이 이야기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알고 있을까요? 그냥 목사에게 줄 세우기, 교회라는 종교 놀이, 내가 원하는 교회 목사 쇼핑하러 다니기.. 안 그렇습니까? 우리 교회나 우리 교단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입니다.. 라고 쇼윈도우 앞에 줄 세우는 그런 종교행사 ,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우상 아이돌, 결국 돈만 밝히는 교회..그런 곳은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하루 빨리 나와야 해요
이렇게 사도가 정의한 신령한 자, 온전한 자는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아는 자입니다. 성경은 행실이 착하고 성품이 훌륭하고 인격적 수양이 잘 된 자를 온전한 자라고 하지 않아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아는 자, 그리고 십자가의 영에 의해서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가 온전한 자입니다. 머리로, 신학으로 십자가를 연구하고 분석해서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지식으로 십자가가 아니고 십자가 복음을 현실로 살아내는 자들을 성령이 충만한 자라고 합니다. 그들을 소망의 부르심을 받은 자요, 약속 안에 있는 자요, 십자가에서 육적 몸을 벗고 진리로 여기심을 받은 그의 몸 된 교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 세례가 가능한 근거가 뭔가 하면 바로 예수님의 그 세례란 말입니다. 예수님이 그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 같이 자격이 안 되고 부정하고 거짓되고 더러운 자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일방적으로 주어졌단 말입니다.
우리가 만세 전에 하나님께 아신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영원 전에, 창세 전에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이름을 다 아셨다니까요. 이런 놀라움, 경이로움, 환희, 기쁨, 감사가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세상 종교인들보다도 복음을 안다는 사람들에게 이런 게 더 없어요. 전부가 하늘의 왕자들이요 공주들인데 꼭 거지같이 살고, 자기 생존에만 집착해서 세상에 손 벌리고 구걸하는 앵벌이 같이.. 그게 아니에요. 좀 당당하게 사세요. 뭐가 걱정이에요? 우울증 좀 있으면 어때? 공황장애 좀 있으면 어떠냐고? 돈 좀 못 벌면 어때? 남편이 애 좀 먹이고 자식이 애 좀 먹이면 어떠냐고? 온 우주를 줘도 바꿀 수 없는 그 선물을 이미 받았으면서 왜 맨날 얼굴 찌푸리고 인상 찡그리고 다 죽어가는 병자 같이 사시냐고요?
이렇게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에서 함께 육적 몸을 벗고 주님의 부활에, 영원한 생명에 참여된 자입니다. 에베소서는 여러분들을 함께 하늘로 옮겨진 자라고 합니다. 우리 몸은 여기에 있지만, 이미 하늘에 완성되어 있단 말입니다. 군대를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제대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에도 몸조심합니다. 군복 벗고 빨리 나가려는 생각 빡에 없어요. 그런데 인생은 제대할 생각 안 하고 세상에 자꾸 말뚝 박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이 비루한 몸 빨리 벗고 하늘에 속한 새형상을 입는 그날이 기다려지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건 우리에게 어떤 조건이나 자격이나 근거가 있는 게 아니에요. 오직 선물입니다. 말 그대로 선물이에요. 하나님이 정하신 세례,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과 같이 되는 그 세례가 먼저 있었고, 그 세례에 우리가 참여되는 게 흔히 교회에서 말하는 물 뿌리는 세례입니다. 그런데 물 아무리 뿌려도 십자가의 세례를 모르면 말짱 헛것입니다. 십자가의 세례를 받은 자가 성령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부인이, 그 세례가 우리에게 연결되었을 때 그때 우리가 비로소 자기 목숨을 미워하게 되고 아, 이게 생명 아니구나. 진짜 생명을 사모하게 되는 거에요. 이 몸 가지고는 도저히 그 나라를 갈 수 없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 생명을 바라는.. 쉽게 말해서 빨리 이 몸 좀 바꿔주세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늘에 속한 그 형상의 몸으로 빨리 바꿔주세요. 이 몸으로는 주님을 사랑할 수가 없어요. 나밖에 몰라요. 나만 사랑하는 죄인입니다. 이런 고백이 날마다 터져나와야 하는 거예요. 그게 성도란 말입니다. 그게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성도예요.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구원은 떼어놓은 당상이고 남은 건 상급의 차이다.. 이따위 소리로 가르치는 삯꾼 목사들.. 참.. 답이 없습니다 대한 예수교...
사도가 1장 13절~17절까지에서 세례에 대한 오해를 지적하면서 바로 들이대는 게 십자가잖아요. 바로 그 때문이에요.
본래 우리나라는 세례와 상관없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종교에 어떤 게 있습니까? 장독간에 물 떠 놓고 비는 것, 부엌 신한테 비는 것, 성황당에 비는 것, 무당 불러서 굿하는 그런 거 조상 섬기는 것 그게 이땅의 종교였단 말이에요. 아예 우리는 세례를 몰랐어요. 그런데 기독교가 들어오면서부터 세례를 받기 시작했어요. 천주교에서는 영세라고 하죠? 그런데 이 세례를 제대로 전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렇게 기독교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어떻게 오해를 했는가 하면 내가 구원받고 천당 가려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았어요. 그것도 아무한테나 받으면 안 되고 신부나 목사에게 받아야 한다고...
여러분, 성경에 세례는 목사에게 받아야 한다는 구절이 있습디까? 사도행전에는 집사도 세례 줬어요. 빌립이 세례 주었잖아요. 그럼 빌립 집사가 신학교 나오고 무슨 자격이 있어서 세례를 준 겁니까? 아니란 말이에요. 성령께서 빌립 집사를 광야로 데리고 가셨고, 그때 마침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하시고, 그 내시가 이사야서를 읽는 것을 보고 그 이사야서에서 증거 하는 인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자 내시가 세례를 받고 싶다고 했지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세례를 줬어요.
왜 자꾸 성경을 교리화, 신학화, 종교화 해버리는지 모르겠어요. 누가 그렇게 한 거예요? 사단의 종들, 신학 한다는 그들이 성경말씀을 형식화 해버린 거예요.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복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르쳐놓다 보니 하나님의 대리자인 신부나 목사에게 세례를 받아야 천국이 보장된다고 다들 알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세례가 하나의 종교, 문화화 되어버리니까 오전에 이야기했듯이 군대 가면 빵 얻어먹으려고 교회 가서 세례받고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세례를 받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무 데도 없습니다. 구원받는 자의 성령 세례는 있어요. 다시 말하면 어느 누구도 세례를 받아서 구원의 표식, 구원의 확신으로 소유할 수 없다는 게 우리가 읽은 고린도서 1장의 세례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인간이 주는 세례라는 형식을 부정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세례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정하신 십자가라는 구원방식을 가리키는 하나의 표지, 즉 가리킴일 뿐이에요. 그 표지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원 전에 정하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창조, 그리스도 안에서의 재통일에 내가 참여되었다는 것을 알고, 모형이 아닌 실체로서 세례, 십자가의 그 세례를 받으신 주님께 감사하는 것이에요. 그거 하라고 교회 처음 가면 세례도 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죄인이 일순간에 새 사람으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도 다 받아보셨잖아요. 세례받았더니 사람이 바뀝디까? 어느 날 갑자기 머리 뒤에 후광이 보인다든지 하는 일 없었잖아요. 그죠? 신자답게 살려고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인간본질이 바뀌는 않는단 말입니다.
베드로전서에 보면 세례란 ’육체의 더러움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이게 세례예요.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 하면 우리 육이 본질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새 사람을 지으셨음을 알고 기념하는 거예요. 그거 알라고 세례받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와 세상에 고정된 우리 시선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하나의 표식이 세례입니다.
(마 20장)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여기서 ‘내가 마시려는 잔’이 고대 사본에는 ‘세례’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받은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는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세례는 하나밖에 없어요. 주님이 받으시는 그 세례만 세례예요. 그 세례 안에서 우리가 육적 몸을 벗는 세례를 같이 받았다는 이야기예요. 바꾸어 말하면 주님께서 영단번의 제사로 유일한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졌는데, 그분이 우리를 함께 안고 가신 거예요. 그 세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례 받았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약속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세례 안에서 우리의 육적 몸을 벗는 그 세례를 날마다의 현실로 살아내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에요. 그들이 교회란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예수를 주로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내가 믿는 게 아니라 믿음 안이에요. 본의 아니게 그리스도라는 믿음 안에 있게 된 자들을 성도라고 하는 거예요.
그 믿음의 세계, 영적 현실에 눈을 뜨게 해 주신 게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빈틈없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고 세상에 묶여 있는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을 눈을 그분께로 돌리는 일을 끊임없이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모인 것도 그 성령의 역사입니다.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닙니다. 오고 싶어도 못 온 사람 많아요.
그래서 성령의 함께 하심은 지금부터 영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영원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는 거예요. 그냥 일반적인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수평적 시간이죠. 그런데 여러분들의 시간은 그렇게 과거로부터 미래로 가는 시간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오는 시간입니다. 영원이라는 미래로부터 오는 시간, 수직적 시간을 살고 있단 말입니다. 해발 550미터의 가야산 위에서 여러분들에게는 지금 질이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어요. 영원이라는 시간입니다. 무시간적인 그 나라가 덮쳐온 거에요
그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절대 안 떠나십니다. 구약의 성령은 내밖에 있는 성령, 에피 성령이라 해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서 성신이 주어질 수도 있고 떠나갈 수도 있었어요. 그 대표적인 사람이 사울왕이죠. 사울도 예언하고 다 했다니까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성신을 주셔서 일을 시켰어요. 그런데 구원받지 못했잖아요. 성신이 떠나버렸단 말이에요. 성신이 떠나고 악신이 와서 다윗을 죽이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교회에 오신 성령은 그런 성령이 아니에요. 왜 그럴까요? 왜 지금 오시는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는 성령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이죠.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언약의 피를 흘리셨잖아요.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해서 그 언약의 성취로 오신 성령이기 때문에 다시는 여러분을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는 모르지만, 그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인생을 사는 동안에 반드시 부족함이 없는, 오늘 본문에 나오듯이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내실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고 여러분에게 생명의 말슴을 살게 하시는 성령이이시니까요
온전함의 의미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자꾸 인격적, 도덕적, 윤리적인 완전함을 생각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예수를 알고 그 믿음 안에 있는 것이 곧 온전입니다. 예수의 주되심을 아는 것이에요. 우리는 이것 하나 알고 가면 됩니다. 지금도 그 일을 쉬지 않고 하고 계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이렇게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주로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자들, 그 믿음의 세계, 영적 현실에 눈을 뜨게 해 주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입니다.
바울은 1장에서 2장에 이르기까지 고린도교회가 오해하고 있는 세례와 성령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빈틈없이 설명하면서 왜 십자가인가, 왜 하나님은 아들의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기를 기뻐하셨는가에 대해서 조목조목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람의 언어로 설명될 수 없고 오히려 미련하고 거리끼는 것이지만, 성령 세례로 영의 세계에 눈이 열린 자는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들의 탐심에서 비롯된 모든 종교 행위나 종교 현상, 어떤 신비한 현상, 심지어 그런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까지도 바울은 지금 일거에 부정해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그거 아니야.. 성찬? 그것도 아니야.. 성령의 은사?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지식? 그런 것은 너희의 영생과 관계없는 것들이야.. 너희를 구원한 것은 한 단어로 ‘피’, 언약의 피야.. 창세 전에 약속하신 그 언약의 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란다..
이와 같이 너희가 약속 안에 있는 성도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너희를 한 시도 떠난 적이 없는데, 왜 다른 것을 찾고 엉뚱한 것을 붙들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진 교회,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교회에서 왜 교회가 아닌 교회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고린도교회 뿐만이 아니잖아요. 오늘날 세상 교회가 다 그러니까. 하나님 아들의 죽음인 십자가에서 출발하지 않는 것들은 다 가짜입니다. 우리 존재의 시작과 완성이 다 어디에 있다고요? 십자가입니다. 이것을 지금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교회에도 동일한 사건, 동일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 고린도교회가 하나의 샘플로 시범조교로 불려나온 것입니다.
예전에 장 권사님이 사람 몇 안 모이는 왕십리 교회에서도 일어날 일은 다 일어난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이게 세상교회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말씀대로 일하는, 바로 그런 말씀의 사건으로 발생되는 교회예요. 그런 부정적인 사건들이 있을 때 ‘아 진짜 교회는 저 하늘에 있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때 잠시 하늘이 열리는 거에요
저에게 하는 가장 많은 질문과 상담이 어디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없냐는 건데, 그럴 때 제가 하는 대답은 “당신이 교회가 되면 됩니다.”예요.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도 자신이거든요. 그러니까 딴 데서 찾지 마세요. 세상 어디에도 그런 교회는 없습니다. 어떤 분은 평생 교회 쇼핑 다니는 사람도 있어요. 이 교회 저 교회 이 목사 저 목사.. 그런데 말씀 복음의 진리가 들어가면 그때부터 어떻게 됩니까? 히브리서에서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되면 자기 일을 쉬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겠다고 하던 그 모든 열심과 노력을 다 내려놓고 ‘저는 안 되네요. 주께서 저를 찾으시고 주께서 저를 새롭게 지어주셔야 합니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되고, 이것이 안식입니다. 다른 말로 평강이고 복음의 자유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말씀의 사건으로서 교회입니다. 말씀으로 말미암는 말씀의 사건들로 인해서 충돌과 균열이 생길 때 비로소 우리의 밑바탕이 드러나고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바닥이 무너짐을 경험하게 됩니다.교회의 기초가 무엇인가, 그 바탕이 무엇인가를 그때 깨닫게 되는 거예요. 교회의 기초가 뭐예요? 교회의 바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 인간은 인간의 노력으로 교회를 할 수 없는 거구나. 인간이 어떤 노력을 한다 해도 교회는 세워지거나 유지 하고 발전할 수가 없는 거구나.’.. 이걸 알라고 그렇게 교회 안에 사건들이 발생하는 거에요 그런 말슴의 충돌이 없으면 그건 주께서 내어버려 두신 자들입니다.
교회에 있어 일단 사람은 빠져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텐데, 우리 젊었을 때는 동네에 약장수들이 많이 왔어요. 약 장수 오면 뭐합니까? 뱀 꺼내서 쉬익 ~애들은 가라... ㅎ 하나님의 일에 사람은 빠져야 해요. 하나님의 일에 자꾸 사람 손때 묻히려고 하면 안 된단 말입니다. 어떤 신학 어떤 전통과 역사 어떤 열심과 헌신도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의 기초가 될 수는 없습니다.
(고전 3장)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헤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는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무슨 뜻이에요? 참 헷갈리게 써놨죠?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바울은 당시 지식인들처럼 논리적이면서 한두 번씩 말을 꼬는 버릇이 있어요. 얼핏 들으면 우리가 은이나 금 같은 공적을 가지고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나 그게 아니고 인간들의 어떤 공적도 다 불타버린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세운 것들은 다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이 마치 불 가운데서 받는 구원이라고 하는 겁니다.
성도는 이런 말씀을 평생 동안 경험하면서 사는 사람이에요. 15절의 말씀처럼 내 공로 내 수고 다 불 태워지고 불 가운데서 오직 은혜로 받는 구원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들이 교회란 말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불쌍히 여기심밖에는 없네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제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제가 말씀을 혼탁하게 하고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자가 맞습니다..이런 은혜의 절대성을 체감하라고 세상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받아내기 위해서 고린도교회와 같은 사건들이 우리 일생 동안 수시로 발생하는 거예요. 주님의 다스리심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하나님을 섬긴다는 교회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에게서 저런 일들이 벌어질 수가 있는가 하겠지만, 바울이 쓴 편지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가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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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꾸 우리의 구원이나 우리 교회의 부흥과 발전, 건강하고 민주적인 교회 되기나 예수 믿는 우리 가정의 행복이 하나님의 뜻인 줄 오해하는데, 하나님의 뜻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성자 예수의 주되심,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만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빠져야 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세요 신인협력설이 온통 세상교회를 오염시켰지만 그런 세상 속에서도 주님은 자기 사람들을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단 말입니다. 그것을 아는 게 우리 구원의 확신이에요.
우리를 왜 지으셨느냐? 우리 존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지으셨지요. 우리가 그 찬송이란 말입니다.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우리의 구원도 아니요 교회의 하나 됨도 아니에요. 바울 사도는 그의 모든 서신에서 그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 영광에 대해 조금도 인간들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는 거에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천 년 교회 역사에서 갈등이나 파벌 없이 하나 된 적이 있습니까? 아, 한 번 있었죠? 지금도 있어요. 중세 암흑시대에 교황을 머리로 한 천주교.. 그들은 지금도 이천 년 역사를 자랑하잖아요. 가톨릭교회... 그들은 이천 년간 성경 진리는 없었지만, 세상 권력을 가진 하나의 교회로 유지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는 그 자체가 저주입니다. 계시록에서 말하는 사단의 회당이에요. 말씀이 왜곡 된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중세 시대엔 교황청에서 내려주는 라틴어로 된 설교를 신부가 그냥 읽었어요. 그럼 밑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아멘한단 말입니다. 그때는 성경도 없었으니까. 아무도 성경 함부로 읽지 못해요. 이렇게 말 그대로 기독교 아닌 기독교,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그리스도교, 십자가를 모욕하는 십자가..오늘날의 교회들도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원수된 교회가 아닌지...
교회는 성령의 다스리심이 있는 말씀의 사건으로 모일 때마다 새롭게 발생 되는 교회입니다. 어제의 교회가 오늘의 교회가 아닌 거에요. 오늘 모인 교회는 어제의 그 교회가 아닙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에요.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우리의 옛사람은 날마다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그게 교회의 현실이란 말입니다. 똑같은 말씀이라도 어제 들은 말씀을 오늘 들으면 또 새로운 거예요.그렇게 그리스도의 몸으로 장성한 분량에까지 날마다 온전하게 지어져 가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가톨릭과 같은 그런 자기 역사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밖에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가톨릭이 자랑하는 이천 년 역사, 초대교회 베드로부터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이어진 교회를 역사적 교회라고 하는데,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참된 교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교회 아님을 자기들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거예요. 사람에 의한 사람의 교회 성경말슴의 권위 위에 군림하는 교회가 가톨릭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구원은 교회가 결정하고 그 교회에 소속됨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게 가톨릭의 교리입니다.
성령의 다스리심과 진리의 말씀이 있는 교회라면 그런 형식화되고 고정화된 교리로 가시적인 자기 역사를 만들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 대신 사람의 신학과 교리가 만든 교회의 역사를 부수면서 나타나는 게 진짜 교회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세상 교회에는 말슴에 의한 균열 충돌이 발생해야 정산이예요. 말씀이 없고 생명이 없는 불임의 교회,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불임의 교회는 그 자체로 부정한 존재입니다. 씨가 심기지 않은 그런 척박한 토양에도 말씀의 씨를 받은, 약속이 작동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나타나게 되면 그 세상과 반드시 충돌과 분리가 생깁니다. 오백 년 전에 있었던 종교개혁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오해하곤 하는데, 종교개혁은 교회 아닌 교회를 진짜 교회 되게 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그럼 성경적 종교개혁은 뭐냐? 한 마디로 ‘말씀으로 돌아가자’입니다. 사람이 만든 교리나 신학, 사람이 세운 교회 말고 성경의 진리로 돌아가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한 게 종교개혁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해해서 복음 아는 우리가 우리가 힘써 참된 교회, 건강한 교회로 개혁하자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금도 이 땅에는 참된 교회가 하나도 없어요. 그걸 인정하는 사람들이 진짜교회란 말입니다. 루터나 쯔빙글리나 캘빈 같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했어요. 말씀으로 돌아가자.. 사람의 종교가 아닌 십자가 복음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지만, 말씀이 메말라버린 이 세상에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의 신이 아닌, 말씀하시는 하나님에게로 눈을 돌리게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예요. 종교개혁을 한 지 백 년도 안 가서 종교인들이 다시 세상 교회를 점령해버렸습니다. 소위 개혁주의라고 하는 교회들이 다시 인간중심의 교리와 신학으로 다시 사람의 교회 만들기를 해버린 겁니다.
제가 어제 그랬죠? 이천 년 교회 역사는 무엇과 무엇의 싸움이다? 교회와 십자가의 싸움이에요. 종교로부터 분리해 나왔다는 개신교가 가톨릭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인본의 신학에 다시 오염되어서 교회 만들기를 시작한 거예요. 목사라는 성경에도 없는 직분이 생기고 교회 안에 계급이 형성되고 율법지키기 은혜 더하기 인간의 열심으로 구원이 완성되고 하늘 상급의 달라지고 ...이렇게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가리는 세상 신의 역사가 십자가 걸린 교회라고 해서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아닌 겁니다. 오히려 십자가 걸린 교회만 미혹하는 게 사단의 본무란 말입니다. 다른데는 그냥 내버려 둬도 되니까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1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는 그런 사람의 교회와의 충돌을 통해서, 즉 다른 복음과의 충돌과 분리를 통해서 나타나는 교회입니다. 한 마디로 교단과 신학의 이름으로 하나가 된, 목사의 이름과 교회의 이름으로 하나가 된 그런 교회는 없단 말입니다.
수천, 수만의 교인이 있는 교회에 하나님의 씨, 하나님의 약속이 작동하는 성도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교회는 한마음 한뜻으로 그 성도를 자기들의 영역 밖으로 쫓아냄으로 해서 자기들이 쌓아온 바벨성의 평화를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세상 끝날까지 세상 교회에서 일어날 거에요. 그런 일에 가장 앞장서서 그런 말슴의 충돌 분열을 덮어버리는 사람들이 교회 지도자라고 하는 목사와 장로들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이유로 해서 교회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다수 있습니다. 교회를 조직화해서 그물망처럼 쳐놓고 행여나 복음 전하는 자가 나타나면 바로 목사에게 보고하도록 합니다. 대형교회일수록 이런 조직이 아주 잘 되어 있어요. 철없는 강도사가 배운 대로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합시다. 오전에 이야기하면 오후에 바로 불려갑니다. 조용히 불러서 너 앞으로 그런 짓 하지 말라고 경고하죠. 그런 일이 두세 번 반복되면 바로 그 교회에서 잘립니다. 이게 세상이예요.
인천에서 유명하다는 ㅇㅇ교회에 다니는 분이 있는데 주기철목사의 아들인가 손자가 목사로 왔다던데, 그 교회 권사 한 분이 저에게 자주 전화합니다. 본인이 구역장인데, 구역 식구들에게 복음 이야기만 하면 바로 연락온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그 교회를 나오면 되지 왜 있느냐고.. 아니면 순교할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시든지...교회 아닌데를 맨날 비판만 하고 있으면 그것도 버릇된단 말입니다. 개꼬리 삼년 묻어놔도 황모 안된다니까요
그들은 교회를 지킨다는 사명감, 이단들이 침투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명감에서 그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자신들이 이단이란 걸 몰라요 제가 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아니 왜 교회 입구에 ‘신천지 출입 금지’를 붙이느냐고요. 진짜 말씀이 있는 교회라면 신천지 환영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들에게도 생명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줘야 해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야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는 거잖아요 저 같으면 그러겠어요. '신천지 출입 환영!'. 아니 그들 신천지하고 복음으로, 진리로 논쟁할 자신도 없는 인간들이 무슨 목사를 하고 장로를 합니까?
사람들이 신천지에 왜 모이는지 아세요? 평생 교회를 다녀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복음 비슷한 소리를 하고 비유를 새롭게 풀어내니까 솔깃해서 넘어가는 거예요. 하지만 그들은 십자가라는 진리를 몰라요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적이 없으니까 진리의 영이 오시지 않는 거에요 결국 그들도 복음의 진리에 관심 있는 게 아니라 신천지라는 자기 교회하기에만 열심하는 겁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 복음으로 인한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조그만 균열도 생기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는 게 목사의 능력입니다. 그러니까 대형교회는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을 복음 듣지 못하게 교회 안에 가두어두는 능력입니다.
그런 세상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성도가 그들로부터 분리됨이라는 거룩을 보여주게 되는 거에요.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은 간에 말씀이, 복음의 능력이 그로 하여금 그 교회라는 세상을 향해서 “아니오”를 외치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무덤이입니다. 성도를 죽어서 살게 하는 게 바로 세상 교회의 역할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욕하거나 미워할 필요가 없고 그 사람들과 쓸데없는 논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육의 싸움에서 이겨서 뭐할 건데? 어차피 못 알아듣는 이야기인 데. 다만 그것이 아니라 이것입니다 라고 증거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결과는 주께서 하실 일이에요
(마 10장)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여기서 말하는 집안 식구는 물론 자기 집안 식구도 해당하겠지만, 자기가 신앙생활 하는 교회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내 원수가 교회 안에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맞아 죽으라고 그 교회 안에 밀어 넣으신 거예요. 교회는 여러분의 무덤입니다. 예수 복음 십자가복음 증거하다가 킅성 길가로 쫒겨나 객사하는 게 성도의 운명이에요
누구나 세상과 교회와 그렇게 척지고 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굳이 원수 만들기 싫단 말이에요. 오랜 세월 같이 신앙생활을 해온 교회 사람들과 진리문제로 굳이 싸움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교회 떠나서 좋을 게 없잖아요 그동안 투자한 게 얼만데...그런데 본의 아니게 말씀이 임하면,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어쨌든 입을 열게 되는 거예요. 주의 영이 임하면 갑자기 내가 사랑하던 담임 목사의 설교가 다른 복음으로 들리고 비 진리로 들린단 말이에요. 내가 다니던 교회가 예수라는 터 위에 세워진 게 아니라는 것이 보기 시작하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길로 등 떠밀려 가게 됩니다. 그게 주님이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를 지게 된단 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목숨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자는 없습니다. 맞습니까? 내 목숨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시는 분 있으면 손 들어보세요.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로 자기 목숨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로 새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새창조가 우리를 그 없음의 자리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나와 세상으로부터 가끔씩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예수를 바라 보게 하시잖아요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주께서 그런 우리를 반드시 주를 사랑하는 자로 그런 교회로 세우시겠다는 게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약속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가 이런 말씀으로 끝나는 거예요.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하나님의 피로 사신 여러분은 교회는 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예수의 피뿌림이라는 사랑으로 인해 세상에 흩어진 나그네들입니다. 주께서 모으시기도 하고 흩으시기도 하는 교회란 말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의 교회이기 때문에 세상 어디에 흩어져 있어도 한몸의 교회에요. 그래서 그들은 한국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고, 북한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고, 아프리카에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환경이나 조건과 상관없이 주님과의 수직적인 관계, 한 몸 된 유기적 지체로서 주님이 눈동자처럼 보살피시고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주님이 세상을 다녀가신 후로 그 교회는 한 번도 타락하거나 변질된 적이 없는 거룩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무슨 인간들이 개혁을 하겠다고 나대냐 말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갱신한다거나 개혁한다는 말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알아야 하는 거예요. 어디 인간이 감히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개혁합니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이 땅에 세워진 후로 한 번도 타락하거나 변질된 적이 없는 교회인데 머리가 그리스도이신데 어떻게 몸이 병들고 타락합니까? 아니란 말이에요. 건강한 교회, 좋은 교회 찾는 사람들 자신부터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교회가 거룩한 무리들이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우주가, 모든 별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예요.
요즈음은 대기 오염으로 하늘에 별도 잘 안 보이는데, 그래도 내일 아침에도 해는 뜰거에요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별이 뜨는 게 모두 성도 여러분들 때문이라니까요. 진짜예요. 이 땅에서 마지막 성도 한 사람의 목이 베어지면 바로 그길로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이 세상 물질이 풀어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이 우주가, 별들이 제자리에 있다는 건, 그것도 정확하게 우주의 질서대로 지켜지고 있다는 건 이 땅에 성도가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피가 그 모든 것들을 붙들고 계신 거에요 그것을 우주적 성찬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권사님 꼬리뼈 좀 아프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좀 있으면 우리 몸도 바뀔테니까
성도들은 세상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는 교회이고 그들에게만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귀신들과 세상의 미움을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가 성도인지 잘 몰라요. 그러나 귀신은 귀신같이 압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귀신이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고 하죠? 귀신은 귀신같이 알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충돌이 발생하고 갈라짐이 생깁니다. 이게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말씀의 능력, 복음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에서 잠시 파송된 하나님 나라의 메신저들이에요
여러분, 세상 교회에 싸움이 나고 갈라지고 하는 게 다 무엇 때문입니까? 진리 때문에 싸움하는 교회 본 적 있습니까? 돈 아니면 교회 헤게모니 싸움 그거 아니면 목사 비리 때문이잖아요. 진짜 진리 때문에 싸움하는 교회를 한 번 봤으면 좋겠어요. 아, 한 번 한 적 있다. 내가 옛날 있던 데서.. 결국 아니요 하다 쫓겨났지만... 그런 일들은 극히 드물어요. 교회가 싸우는 건 돈 때문이고 목사 욕심때문이지 진리 문제로 싸움하는 건 거의 없습니다. 십자가라는 진리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사람만 쫓아내면 교회가 갈라질 일이 없어요. 빨리 처리해버리면 되니까. 그리고 다시 찾아온 평화... 목사비리 문제나 돈 문제도 노회나 교단이 나서서 정리하고 묻고 가는 걸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하지요.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없었던 일로 되는데 하나님은 절대 잊지 않으신다는 걸 그들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교회의 평화를 위해서 은혜롭게? 처리될 수 없는 게 있는데, 그게 뭔가 하면 진리의 문제란 말입니다. 진리의 문제는 인간들이 어떻게 손을 볼수가 없는 겁니다. 왜? 진리가 스스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진리, 복음은 인간들이 타협하고 양보해서 정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은, 십자가는 인간이 있기 전인 창세 전 약속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손을 댈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걸 아는 사람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은 성도들이에요. 그래서 그들은 다른 복음, 비 진리와 결코 타협할 수가 없습니다. 그 복음을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니까
(골 1장)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이 진리의 말씀이 우리의 능력이 되고 우리의 평안이며 우리의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하잖아요. 그 아들 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다시 통일되게 하셨고, 또 그 통일되게 하시는 일을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르치고 보여주시는 곳이 세상 속에 있는 예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입니다. 그냥 교회가 아니고 약속이 작동하는 산 자들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또 감추어져 있는 거에요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넘겨주신 고린도교회에 보낸 사도의 편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 열심과 자기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섬기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십자가의 도인가? 왜 그 십자가의 그 말씀인가? 그 말씀은 무엇인가? 인간들의 손때가 묻을 수 없는 미련하고 거리끼는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하심을 이천 년이라는 시공간을 넘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모인 여러분들은 주를 사랑하는 성도들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는 그 바울의 음성이 들리는 거예요.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신학과 교리로, 어떤 전도 훈련으로도 전해질 수 없는 십자가의 도.. 예전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랬죠? 사자 밥이 되고,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불에 타 죽을 때도 하나님은 어떤 도움도 어떤 기적도 일으키시지 않았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성실하신 돌보심이었단 말입니다. 그게 성도들이 가는 십자가의 길입니다.오늘날도 여러분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그렇게 외롭고 힘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끝까지의 사랑이인 것입니다. 나만 바라 보라는 하나님의 질투에요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뭐라고 했습니까? 당신이 메시아라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보라고 했어요. 이게 사단의 유혹이었지요. 그전에도 표적을 보여달라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내가 보일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삼일간 땅속에 있게 되는 그 표적밖에 없다고 하셨단 말입니다. 예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처참한 죽음을 당하고 세상에 흩어져 유리방황하는 그들의 고난과 죽음으로 인해서 이 세상이 심판의 근거를 쌓고 있음을 세상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도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게 곧 세상의 위기인 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만 사단은 알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자 귀신이 말하길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왜 이러십니까?.. 사람만 모르지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을 지키는 천사도 있고 사단, 귀신, 악한 영들도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들도 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있는 겁니다. 그 귀신들도 여러분들을 섬기기 위해서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정하신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가리는 게 사단의 본무이다 보니 그들은 끝까지 십자가 복음 대신에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복음, 사람을 좋게하는 복음으로 변개하는 일을 쉬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악한 영이라고 해서 여러분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게 아니에요. 사람을 좋게 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복음으로 바꿔버리는 일을 하는 게 사단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미혹의 영이라고 하는 거예요. 본문 19절~31절 말씀이 모두 그런 뜻입니다.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한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 이사야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 29장)
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이 예언이 실행된 거란 말입니다.
(사 29장)
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누가 보내셨다고요? 여호와께서...
음녀의 섞은 술에 취한 세상 교회들.. 바울이 그렇게 질책했던 다른 복음을 좇아간 초대교회들.. 그래서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마지막으로 쓴 편지에 보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허망하겠어요? 그렇게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동족의 위험 목마름, 헐벗음과 강도의 위협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광야를 걷고 또 배를 타면 풍랑 만나고 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랬음에도 복음을 전했던 아시아의 사람들이 다 자기를 떠났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자기를 괴롭혔던 사람들의 실명까지 기록했어요.바울도 사람이니까 때론 절망도 하고 그들이 밉기도 했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힘들게 전했던 복음이 마치 헛수고를 한 것 같았던 그 복음이 오늘날의 성경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놀라운 거예요. 바울은 오늘 우리들을 향해 십자가지신 예수를 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음녀의 섞은 술에 취한 세상 교회, 바울이 그렇게 질타한 다른 복음을 좇아간 초대교회들, 바울을 떠난 아시아의 모든 사람들.. 그런 미혹의 현상들이 오늘날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죠? 그게 뭡니까? 현대 기독교를 대표하는 종교다원주의, 혼합주의 자유주의 신학이 모든 신학교와 교회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파묻는 것으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으로 바꾸어서 제공하는 맘몬 종교 이게 하나님이 폐하고 멸하셨다고 하는 인간들의 총명이고 지혜인 겁니다. 주의 이름을 더럽히는 종교인들의 열심..
그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미련하게도 십자가의 도만 전합니다. 그것만은 절대 양보하지 못합니다.. 왜? 나의 시작과 완성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나의 생명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주시라는 것, 이 땅을 다녀가신 하나님인 것을 우리는 절대로 양보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문벌 좋고 똑똑하고 많이 배운 자라도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어리석고 미련하고 약하며 천한 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인 십자가인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인간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무전도체를 만들었다고 광고하고 전 세계가 난리났잖아요. 그만큼 인간은 하늘에 이름을 낼만큼 위대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여기서 지혜란 하나님을 아는 지혜,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 십자가를 아는 지혜를 말하는 그 지혜가 인간에게는 없단 말이에요.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 새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지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주님으로, 하나님으로 알고 있잖아요. 여러분은 세상 똑똑한 사람들이에요. IQ 200 이상도 알지 못하는 것 아는 사람들이에요.
신천지, 장길자 하나님의 교회, 여호와의 증인 통일교 그런 이단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닙니다. 대학교수들, 의사 국회의원 머리 좋고 독똑한 사람들 많이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뭐가 없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없단 말이에요. 미혹의 영이 역사하여 거짓 것을 믿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거예요. 데살로니가후서에 보면 하나님이 직접 미혹의 영을 보내셨다고 하잖아요. 왜? 그들은 심판받아야 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제가 말씀드렸죠? 두 가지의 길이 있는데, 두 길 모두 진공청소기처럼 본의 아니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하나는 천국으로, 하나는 지옥으로... 우리가 그 길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그 길을 바꿀 수도 없는 거예요. 아무리 발버둥 치면서 이족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려고 해도 불가능해요. 하나님께서 그들이 거짓 것을 믿도록, 미혹의 영이 역사하도록 내버려 두셨단 말입니다. 왜? 하나님이 미워하기로 작정하신 자들이기 때문이에요. 로마서에 나오잖아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런 하나님이 어디에 있냐고.. 우리가 잘못하기도 전에 천국 갈사람 지옥 갈사람 미리 정해두면 안 되잖아.. 그런 불공평한 하나님이 어딨냐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그러는데 바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토기장이가 하나는 귀히 쓸 그릇으로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었는데, 토기가 토기장이를 보고 뭐라고 할 거냐?..이 하나님을 아는 게 구원이에요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처음 자리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이 부으신 생명력으로 즐거워하고 누리고 찬송하는 자리인데, 그 처음 자리를 이탈한 게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이에요. 왜 당신만 하나님인데?.. 뱀이 와서 뭐라고 합니까? 너희들도 이것 먹으면 하나님처럼 선악을 판단하고 눈이 밝아지게 된다.. 그 뱀에게 속아서 선악열매 먹고 뱀의 말에 연합되어 살아가는게 에덴에서 쫒겨난 아담의 후손들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모두 선악과를 입에 물고 태어났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반발심을 감추고 있는데, 이게 선악과 독성입니다. 이게 평소에는 잘 감추어져 있다가 누군가에게서 복음을 들으면 반발심이 생기고 튀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 나는 안 믿을 거야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복음 싫어 사랑의 하나님이 좋아 그러니까 우리끼리 서로 사랑하고 우리들이 행복한 세상에 도움되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야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세상 속에서 그 세상을 향해 미련하게도 십자가의 도만 전하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는 것, 이 땅을 다녀가신 하나님이심을 무식하게 증거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리 똑똑하고 많이 배운 자라도 십자가로 말미암아 어리석고 미련하고 천한 자로 만드시는 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입니다.
그런 자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룩한 교회이며 예수는 그런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게 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이 좋아서, 복음을 많이 알아서 십자가만 자랑하는 게 아니고, 주님의 십자가만 자랑할 수밖에 없도록 주께서 우리 입을 가리시고 믿음이란 띠로 우리를 묶어서 원치 않는 그곳으로 끌고 가신단 말입니다. 우리 인생을 복음을 부득불 살아내는 고난으로 채워주시는 그분이시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를 시작하면서부터 십자가 은혜의 절대성과 필연성을 전하고 싶었던 거예요.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고린도교회야 그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인 십자가를 진짜 알고 있니 라고 묻고 있는 거에요 니들이 그 사랑을 알아?
(고전 2장)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지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이 세상 권력을 가진 똑똑한 사람들도 십자가의 도를 몰랐다.. 그리스도를 몰랐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떻게 십자가를 알게 되었니?.. 라는 뜻입니다.
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너희들이 십자가를 모르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는 나 바울이 아니라 어느 누가 와서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하고 믿을 수도 없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과 1년이 넘도록 있으면서 가장 걱정되었던 건 너희들이 내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좇아 학습하는 것으로 십자가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었다..
(고전 2장)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어떻습니까? 성도라면 바울이 말한 이 내용을 한 번쯤은 경험해보셨을 거예요. 열심히 성경 공부했고, 훌륭한 목사님 찾아다니면서 설교를 달달 외우기도 했고, 성경 몇십 독씩 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보니 내가 공부한 말씀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나를 찾아와서 나로 하여금 내가 알았던 것들을 배설물처럼 내려놓게 만들더라.. 말슴에 찾아진 자라면 그런 경험이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신 것을 사도인 나도 열어 보여줄 능력이 없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여러분의 문제는 바로 안다고 하는 것이문제다. 성령 받고 은사가 나타나고, 세례도 알고 성찬도 바울도 안다고 하는데, 정말 너희가 아는 게 맞느냐는 겁니다. 내가 보니 아닌 것 같다..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선비들이, 변론가들이 몰랐던 그리스도를 너희들은 알아서 이렇게 교회에 파벌이 생기고, 은사 자랑질하고, 교회 안에 음행이 있고, 음식 문제 하나도 분별하지 못하고, 사도인 나를 두고 정통이냐 아니냐를 서로 다투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한 것은 지금처럼 너희가 감당치 못하기 때문에, 즉 너희들이 깨닫고 소화할 능력이 없음을 처음부터 알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럼 결론은 뭡니까? 고린도교회야, 너희들은 여전히 육에 속한 자들이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은혜로 받지 못하는구나.. 이게 참 무서운 말이잖아요. 은혜로 주신 게 뭐라고 했습니까? 생명이죠. 생명 없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그죠? 다른 건 줘도 되고 안 줘도 됩니다. 하지만 생명은 안 주시면 큰일 난단 말입니다.그래서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온 영을 받은 자들만 주님의 십자가 다 이루심의 공로로 주어지는 새 생명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데, 그들만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의 기쁨과 안식 하나님이 비밀로 감추신 것까지도 알게 되는데, 그렇지 않고 성령의 조명과 다스리심이 없으면 니들처럼 육에 속한 종교 행위만을 내놓게 된다.. 바울이 보는 고린도교회의 상태가 이렇다는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너희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병을 낫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 만큼은 내 능력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게 진짜 말씀을 맡은 성도예요. 한마디로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사람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의 교회, 그리스도의 마음과 그리스도의 심장과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이는 너희들처럼 하나님을 가르치려는 교만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2장 14절에서 16절의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 많잖아요. 주를 가르치려고 달려드는 사람들...
(고전 2장)
14 육에 속한 사람은
아 참 바울은 말이죠. 어떤 의미에서는 정나미가 떨어지는 사람이에요. 성격이 얼마나 별난지 자기 판단으로 영과 육의 사람으로 갈라버려요. 육에 속한 사람과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 이런 말 함부로 못하거든요. 그죠? 예를 들어 천명 정도 모이는 교회가 있다고 칩시다. 당회장 목사가 말하길 우리 교회에는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세요. 당장 일 납니다. ㅎ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바울이 보기에는 육에 속한 사람 고린도교회가 주를 가르치려고 달려들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마지막 강의까지 오면서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아는 사도 바울은 참 놀랍다고 해야 하나.. 한편으로는 무섭다고 해야 하나..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우리의 지식이나 표피적 해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하늘의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만해도 그래요... 그렇게 문자 층 밑에 있는 비밀한 말씀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고린도교인들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면서 복음의 핵심을 시작부터 시종일관 담대하게 전하고 있단 말입니다.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한 너희들에게.. 육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해놓고는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이것도 밑자락 하나 깔고 하는 말이잖아요. 그리고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교회들에게 지금 이 복음의 진리를 증거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말씀이 역사하는 교회라면 세상 속 교회는 고린도교회 같은 분열과 혼란, 미혹과 갈등, 교만등의 각종 문제가 발생할 터인데, 그때 하늘에 완성된 교회가 잠깐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니까 바울은 지금 고린도교회에 있을 수 있는 누군지 모를 그 어떤 성도를 위해서 이 말씀들을 전하고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가 북북 갈리는 말, 또 어떤 이에게는 위로와 평안이 되는 말씀으로 갈라진단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지상의 교회는 그렇게 말의 전쟁 거짓된 말과 깨끗한 말 즉 악한 영과 전투하는 교회인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때 그리스도 예수의 세례로 인해서 그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고, 그때 잠깐 거룩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빛은 항상 어둠을 배경으로 나타나잖아요. 그리고 그 빛에 의해 어둠은 더욱 어둠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말씀의 사건들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 말씀으로 인해서 어둠과 빛이 갈라지고, 부정함과 거룩함이 갈라지게 되는 거예요. 그때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지,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다..
교회의 교회 됨은 결코 많은 지식과 능력에 있는 게 아니라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꼭 붙드는 세상이 보기에 세상 쓰레기 같은 자들, 미말에 끌려가는 패잔병 같은 자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밝히 드러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거룩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찬송을 받기 원하십니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야말로 찌끼 같고 미말에 끌려가는 패잔병 같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찬송을 받으십니다. 그들이 사람의 이름으로 모이지 않고 교회의 이름으로 모이지 않고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거룩한 교회입니다. 그들이 약함을 자랑하는 교회인 거예요. 성령의 다스리심이 있는 교회는 그런 교회입니다.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의 이름만 높이고 찬양하는 교회입니다.
오늘날 메가 처치들, 대형교회들을 보세요. 성가대만 대여섯개씩 됩니다. 거기에 수억짜리 파이프오르간에 CCM 밴드들이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를 부른다고 그게 찬양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다 종교놀이입니다. 그래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에서 찬송을 아예 못 부르게 했습니다. 십자가도 치워버렸어요. 그런 성상들, 성물들을 교회에서 아예 치워버렸어요. 설교자도 가운을 입지 않았어요. 오늘날 목사와 성가대가 가운을 입는 건 우리는 다른 이들과 구별됐다는 뜻이에요. 일반 교인들과는 다르다는 뜻이잖아요. 그런 나쁜 놈들이 어디 있어요? 거룩에도 차등이 있습니까? 하여간 이게 참 이 막장이 어디까지 갈지를 모르겠는데.. 오늘 본문처럼 성령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지 않는 그런 종교행사에 그치지 않도록, 사람의 말과 지식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대신하게 될까 봐 바울은 그렇게 두려웠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때로 갈수록 그런 현상들은 더 심해질 거에요.새벽이 오긴 전에 어둠이 짙은 것 처럼
(딤후 4장)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또 변하면 안 됩니다. 세상 끝날까지 세상은 세상 다워야 해요. 바울 당시의 초대교회나 중세 암흑기의 그들이나 오늘처럼 말씀이 메말라 믿음을 볼 수 없는 종말의 때에 교회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종교인들의 악행은 날로 더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둠이 짙게 깔린 이 마지막 때에 육에 속한 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팔면서 사람의 영혼까지 매매하는 거에요. 기독교 서점을 가보세요,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기도 응답에 관한 책이에요. 하나님과 거래하는 방법, 신학자란 자들 목사란 자들이 그따위 짓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렇게 하늘에 닿는 온갖 방법론들을 개발하고 가르치는 것으로 십자가의 도가 전파되지 않도록, 그 은혜의 영광이 비치지 않도록 세상 신이 땅의 교회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게 오늘날 기독교의 현실이에요.
그러나 이 악한 세대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영원한 현실인 것을 바울이 우리에게 이렇게 진심어린 말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넘겨주신 깨끗하고 정직한 그 말씀이 우리가 모일 때마다 나누어지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는 거예요. 집에서 인터넷 틀어놓고 앉아있으면 다 의인이 돼버리니까. 이렇게 모여서 은혜의 진리의 말씀을 나눠야 주의 이름 앞에 무릎 꿇는 죄인이 된단 말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분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주가 계시기 때문에 이 풀 한 포기 없고 물 한 방울 없는 광야를, 독사와 전갈이 들끓는 이 광야를 저와 여러분은 오늘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거예요. 우리를 따르는 반석이 되시는 그 생명수로 부족함이 없는 그런 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저 멀리 뵈는 시온성, 우리 아버지 집을 향해 가는 그 길에 말씀으로 서로 일으켜 세워주고 서로 손 잡아 이끌어주는 동무들이 있어서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종교의 신전을 떠나 주의 십자가가 선 영문 밖으로 나가는 그 행렬 속에 저와 여러분의 찬송이 있기를 빕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그 길이에요. 그러니까 다들 힘내시고 서로의 약함을 대신 져 줄 수 있는 그런 한 몸 된 교회가 되기를 빕니다.
끝으로 바울은 죄인의 괴수인 자신을, 예수를 핍박한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세례가 목적이 아니라 교회를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이나 교회에 매이지 않고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의 그 뜻 안에서 복음의 자유를 누렸던 성도였습니다. 한편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망의 몸에 묶여있는 죄인인 것을 고백할 수 있는 한 인간이었단 말입니다. 그 바울이, 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있는 하나님의 성도를 위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을 위해서 이렇게 장문의 편지를 쓴 것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복음을 알고 십자가 은혜를 살아내고 있지만, 육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고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것은, 감히 우리가 거룩한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우리의 착한 행실도 아니고 우리의 열심 있는 종교 생활도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피 뿌림, 우리에게 입혀주신 피로 빤 그 예복이 바로 우리의 거룩이고 우리의 착한 행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때로 자신에게 절망하지만, 그런 내 모습 때문에 주저앉지 말라는 말입니다. 답이 없는 나에게서 눈을 들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빕니다. 같은 것을 바라고 같은 것을 기뻐하며 동일한 하늘의 복을 누리는 서머나가 되기를 빕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이 나라를 이 땅에서부터 누리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이 뛰고 있는 여러분은 그렇게 신령한 자요 온전한 자요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세상에는 감추어진 것이나 여러분에게는 십자가의 그 말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고 이 땅을 다녀가신 그분과 지금 사귐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에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조차 알지 못했던 그 십자가의 도를 이제 여러분은 알았고, 또 날마다 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는 그런 복된 교회입니다. 요한복음 16장에서 말씀하신 그 일이 이제 여러분에게 이루어진 거예요.
(요 16장)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4장)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러므로 신령한 여러분은, 온전한 여러분은 세상 누구에게도 판단 받지 않지만, 모든 것을 판단하고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신령한 자는 사람을 자랑하지 않고, 세상 것들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고전 3장)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여러분이 이 세상을 통과하면서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의 증인으로 그분이 남기신 그 피를 증거 하는 일,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바울처럼 날마다 별세하다가 어느 날 보이지 않게 되는 것, 에녹은 세상에 보이지 않더라.. 하나님 안으로 사라지는 것..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영생의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세 전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진 그 십자가가 우리의 알파요 오메가인 것을 알고 그 십자가의 영광만 자랑하는 그런 서머나 교회가 되시기를 빕니다.
자, 이제 고린도교회에 전하고자 했던 바울 사도의 그 십자가라는 복음, 그 십자가 안에 담긴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에게도 온전히 전해진 줄 믿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이 저와 여러분에게 영원토록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를 영원 전부터 아시고 사랑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아들의 피로 사신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하신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합니다. 고린도교회에 주신 그 십자가의 그 말씀이 이 자리에 모인 하나님의 사람들 심령에 새겨지고 살아있는 말씀으로 역사함으로 어둠이 짙어가는 마지막 때에 새벽을 깨우는 찬송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도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히 증거 할 수 있는 그런 복음의 군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있는, 그 희락과 그 복락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넘치는 사랑과 소망으로 우리 주님을 뵈옵는 그날까지 우리 손을 꼭 붙들어 지켜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